할례산 (수5:2-9)

2006. 1. 27. 23:59목양자료/3.강해설교

할례산 (수5:2-9)
초점:거룩한 마음

요 약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바꾸어 놓은 할례를 베푼 할례산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마음의 할례를 교훈한다. 할례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구별된 표시이다. 이처럼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죄악을 떨어버린 거룩한 성도로 변화한다. 또 그들은 할례를 순교의 각오와 아픔 속에서 진행했다. 이처럼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주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해 아파하고 주를 위해서 살아가게 된다. 또 할례를 받은 다음부터 가나안의 열매를 먹었다. 이처럼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영적인 풍성한 축복이 오게 된다.


이 시간에는 할례산입니다. 그 동안 별로 못들어 보던 산이름입니다. 성경의 많은 사건은 산과 관계가 깊습니다. 창조의 에덴동산에서 시작하여 노아방주의 아라랏산과 율법의 시내산을 거쳐 구원의 갈보리산에서 신천신지의 시온산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역사는 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 성경의 역사는 산과 관계가 많을까요? 산은 성경에서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긍정의 신령한 차원에서 보면 산은 은혜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산과 같은 은혜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산과 같이 크신 은혜를 받을 때 되어지는 귀한 은혜의 산을 배우게 됩니다. 그 산은 할례산입니다.
3절에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베풀었는데 할례산은 요단강과 여리고 사이 그러니까 길갈 부근에 있었던 장소입니다. 그래서 그냥 길갈이라고도 합니다만 정확한 장소는 할례산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입성한 즉시 할례를 베푼 까닭은 가나안은 언약의 땅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는 거주할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할례란 남자 아이가 나면 8일 만에 행하는 포경수술을 가리킵니다. 할례의 시작은 아브라함 때부터이고 할례의 대상은 이스라엘에 속한 남자와 이방 사람에게서 돈 주고 산 노예까지도 해당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할례산에서 몇 가지 귀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한 마디로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의 상징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시는 마음의 할례의 예표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귀한 일이 생겨납니다.

1.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표시입니다.

창17:10-12에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할례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증표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인가 아닌가는 이 할례의 표시가 있느냐 없느냐만 보면 됩니다. 그러나 블레셋이나 앗수르나 바벨론은 할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블레셋은 사단이요 앗수르와 바벨론은 세상의 상징입니다.
그렇다고 볼 때 하나님 백성과 세상의 구별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할례가 가진 성결의 의미대로 성결의 차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골2:11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했습니다. 여기 바울은 이제는 구약의 할례가 아니라 영적인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육적 몸을 벗는 것이란 주석을 보면 육신적인 죄악을 벗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할례를 할 때 당시 철기 시대이므로 좋은 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를 행했던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 돌은 예수의 예표입니다. 그런데 부싯돌이라고 했습니다. 부싯돌은 불을 일으키는 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공로를 성령으로 적용시키는 은혜를 교훈한 모형입니다.
이 말씀이 앞에 소개한 골2:11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절에도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라는 말씀과 같이 그 공로를 적용시켜 우리 속의 죄악을 수술해 주심이 바로 할례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로 인해 고통하지 말고 하나님께 성령의 불칼로 수술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도 성령의 불로서 제함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영적 할례를 받게 되면 자신이 과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할례는 이렇게 성도를 세상과 다른 딴 사람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바로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는 의미로 길갈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 새롭게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변함 없이 주를 위해 살고자 합니다.

수5:8에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라고 했습니다.
여기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산에서 할례를 받고 있는 장면입니다. 광야 40년 세월에 광야에서 태어난 모든 2세 국민들이 모두 할례를 받지 않았으니 전 국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가나안 땅 적지에서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할례를 시행하게 되면 그 따르는 통증으로 말미암아 군대의 전투력은 거의 제로상태에 이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창세기 34장에서 할례받아 고통하는 세겜 성 사람들을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급습하여 모두 전멸시켰던 사건에서 잘 알수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사용되던 철재 칼이 아닌 부싯돌로 만든 돌칼로 할례를 시행하라 명하셨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또 치유력이 느린 장정들까지 모두 시행했으므로 그 위험성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줄을 믿고 순교적인 믿음과 각오로 그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이러한 할례의 정신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면 할례를 받을 때의 아픔처럼 죄악으로 인하여 가슴을 치며 마음 아파합니다. 이 아픔이 없으면 안 됩니다. 마술사 시몬은 이런 아픔이 없었기에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어도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오순절에 이러한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그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행2:40). 그러니까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철저한 마음의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철저한 자각이 바로 할례의 은혜입니다. 아직도 죄악에 마음 아픈 줄 모르고 있다면 아직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적지에서 할례를 죽음을 각오하고 시행했듯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게 되면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적인 신앙의 각오가 생겨납니다. 이 은혜가 주어질 때 비로소 세상의 죄악을 등지고 죄악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항상 죄악의 반복일 뿐 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을 때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언약의 증표를 생식기의 표피에 주신 이유는 항상 선민이라는 자각을 심어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자각토록 하신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육신의 흔적이 없으니 그 물리적 자각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 은혜가 성령으로 우리 내부에 주어져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바로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그 지속적인 은혜가 매일같이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항상 염려가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할꼬가 됩니다. 그래서 빌3:3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할례당은 진실로 거룩합니다.

3. 마음의 할례는 새로운 축복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수5:12에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했습니다.
할례산에서 할례를 받고 나자 이스라엘에는 만나 대신 새 양식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의 열매였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할례를 받아 죄악을 수술해 내버리면 이제 영혼의 양식이 심령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게 됩니다. 과거에는 만나와 같이 외부에서 나에게 주어져야 유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속에서 영혼의 양식이 터져 나오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배불리 먹일 수 있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이제는 모든 것이 은혜되어 자기에게 양식이 되어 돌아옵니다. 핍박을 받아도 이제는 고통이 아니라 그것이 천국의 열매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5:10) 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이제는 내가 더욱 낮아져 더욱 풍성한 영적인 샘이 심령 속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새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할례를 받고부터 곧바로 가나안 땅을 정복토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에게 주시는 천국의 복락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자기의 공로를 적용시켜 주시는 마음의 할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할례를 받아야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의 표를 받습니다. 이 할례를 받아야 죽으면 죽으리라는 참신앙의 사람이 됩니다. 이 할례를 받아야 영광스러운 새로운 축복이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시는 마음의 할례를 간구하십시다. 그래서 할례산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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