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론산 (수15:1-12)

2006. 1. 28. 00:00목양자료/3.강해설교

에브론산 (수15:1-12)
초점:위대한 능력

요 약
에브론산에서 유다지파를 바라보면서 깨닫는 것은 먼저 축복이 얼마나 귀한가를 발견하게 된다. 유다는 아버지에게 큰 축복을 빎을 받았다. 또 이 산에서 믿음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게 된다. 유다 지파의 수장 갈렙의 믿음으로 그 큰 땅을 정복했다. 또 이 산에서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느끼게 한다. 불가능한 마지막 고지를 악사를 사랑하는 옷니엘이 정복했다. 또 이 산에서 간구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딸이 갈렙에게 구할 때 샘물을 주었다. 그리고 이 산에서 소망의 위대성을 확인한다. 빈 축복은 450년이 지났으나 이루어졌다.


오늘은 "에브론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에브론산은 수15:9절에만 나타난 산으로 별로 들어보지 못한 산입니다. 이 산은 유다지파의 광활한 땅에 유달리 우뚝 솟아 있는 산입니다. 그러므로 이 산 위에 올라가서 볼 때 유다지파가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우리는 이 산에서 하나님께서 유다지파에게 허락하신 귀한 복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에브론산에 올라가서 발견되는 깊은 영적 감동은 무엇일까요?
1. 우리는 에브론산에서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12절은 유다지파의 경계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절만 보면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제비 뽑은 땅의 극남단은 에돔 지경에 이르고 또 남으로 신 광야까지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12지파가 제비를 뽑아 땅을 얻었는데 유다가 얻은 땅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땅은 12지파 중에 가장 넓은 땅입니다. 더구나 이 땅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묻힌 땅이기에 아무나 소유해서도 안될 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땅이 제비 뽑혀 유다 지파에게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과연 무슨 일일까요? 이것은 바로 야곱의 축복의 결과였습니다.
우리 총회에서도 이번 9월 총회부터는 제비뽑기로 총회장을 선출합니다. 그러니까 통합측 총회에서도 제비뽑기를 하자 하여 안건이 총회에 올라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무책임한 일이라고 하는데 결코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꼭 될 사람을 되게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유다지파가 큰 복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유다가 아버지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창49:8-12에 그 축복의 내용이 나타나 있는데 축복의 분량을 글자 수로 친다해도 총 968자 중에 242자로 4분의 1이나 됩니다. 축복기도를 길게 한다고 복을 많이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이렇게 축복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그 만큼 그가 축복 받을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유다는 기근 시에 자기와 자기 가족의 목숨을 걸고 베냐민을 데리고 양식을 구하러 갔습니다. 그래서 그가 받은 축복을 창 49장에서 보면 형제들의 찬송이 되는 복,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복, 최고의 권세자가 되는 복, 능력의 사람이 되는 복, 그리고 복의 사람이 되는 복이었습니다. 즉 모든 것이 최고가 되는 복이요 구세주까지 이 지파에서 나오기로되어 있으니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넓은 유다지파의 기업을 바라보면서 축복의 귀중성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축복을 귀히 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우리는 에브론산에서 믿음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절에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곧 그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거민을 쳤는데" 했습니다.
유다지파가 땅을 제비 뽑아 보니 그 땅은 가나안에서 가장 강하고 고약한 아낙 자손 세 지파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낙자손이란 거인족들입니다. 여기서 골리앗이 나왔는데 가나안 거민들도 크지만 이들은 더욱 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쳐들어 갔더니 모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불가능하였지만 믿음으로 나가니 산과 같이 큰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유다지파의 수장 갈렙의 믿음을 민 14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민14:7-9을 보면 돌로 치려는 백성들 앞에서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했습니다.
수14:10 이하에도 그의 믿음이 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팔십 오세의 노인이지만 45년 전과 동일하게 그 믿음은 조금도 변치 않았습니다. 그 믿음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승리를 안겨다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넓은 땅과 험악한 산지가 갈렙에게 돌아왔습니다. 믿음이란 이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신하면 안됩니다. 갈렙은 불신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3. 에브론산에서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15:16-17에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함으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했습니다.
매튜 헨리라는 주석가는 옷니엘이 악사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용감한 행동이 나오게 되었을 것이라고 주석했습니다.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선포되었으니 다른 사람이 기럇 세벨을 정복하면 악사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자 옷니엘은 목숨을 걸고 그 험한 기럇 세벨을 정복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사랑은 그 어떤 것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롬8:35-37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죽을 죄에서 구원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힘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도 훌륭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은 주님의 고난의 사랑을 깨달을 때 완성되기 시작합니다. 그 때부터 내 몸바쳐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눅 7장을 보면 죄 많은 여인 막달라 마리아가 나옵니다. 마리아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발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은 행동은 당시 최고의 사랑과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그녀가 예수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사랑을 가장 많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은이라 사람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7:47) 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도 기럇 세벨이 있습니다. 다른 죄악의 문제는 정복하고 정복했는데 그러나 온갖 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복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럇 세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복음이 무엇인지도 압니다.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 안의 승리도 거룩도 영광도 압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온전한 신앙 안에 거해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나 요한이나 프란시스가 그토록 영적으로 성숙했던 것은 예수님의 그 사랑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은 그들이 불완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무죄상태요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주의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면 죄악을 이기는 복음의 능력을 알면서도 주님보다 세상을 주님보다 자기 중심을 택하고 맙니다. 즉 주님을 사랑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복음에 견고히 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신앙의 완성입니다.
갈렙은 기업을 받았지만 그 기업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는 생명 건 사랑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바가 되었지만 그 신령한 복을 온전히 누리려면 주님의 사랑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에브론산에서 우리는 사랑의 놀라운 힘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깊이 깨닫기를 갈망하여 간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이 산에서 간구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 15:18-19절에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 샘과 아랫 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했습니다.
악사가 출가하기 위해 나귀를 탔다가 다시 내려와 샘물을 구한 것이 뜻밖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샘물은 윗 샘과 아랫 샘이었습니다. 이 샘은 성령의 내적 사역과 외적 사역의 예표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 속에서 생명의 성령이 터져나오고 우리의 위에서 능력의 성령이 입혀집니다.
그런데 악사와 같이 겸손히 내려와 구해야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한 것을 주십니다. 그 귀한 것은 곧 성령이십니다. 그러나 교만히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주시지 않을 뿐 아니라 사단이 틈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한 기도의 위대성입니다.

마지막. 이 산에서 우리는 소망의 힘이 무엇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유다가 야곱에게 축복을 받은 것은 약 450년 전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 빈 축복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됩니다. 그러므로 결코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주의 언약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유다 지파의 기업에 우뚝 솟은 에브론산이 증거하는 것처럼 우리도 귀한 것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축복이 얼마나 귀한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이지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간구의 힘이 얼마나 귀한지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소망의 힘이 얼마나 귀한지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가 큰 복을 누리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복락을 다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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