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덴마크/ 아이슬란드/ 그린란드의 역사

2012. 11. 1. 00:04교회사자료/10.세계사

 

덴마크

 

 

Kongeriget Danmark
덴마크의 국기 덴마크의 국장
국기 국장
표어: 신의 가호, 국민의 사랑, 덴마크의 힘(Guds hjælp, Folkets kærlighed, Danmarks styrke)
국가: 사랑스러운 땅에서1
덴마크의 위치
수도 코펜하겐
55°40′34″N 12°34′06″E / 55.676111°N 12.568333°E / 55.676111; 12.568333
공용어 덴마크어
정부 형태 입헌군주제
여왕
총리
마르그레테 2세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건국
8세기
면적 43,094 ㎢ (134위)
 • 내수면 비율 1.6 %
인구
 • 2008년 어림 5,475,791명
 • 인구 밀도 129.16명/㎢ (78위)
GDP (PPP) 2006년 어림값
 • 전체 $1,985억 (45위)
 • 일인당 $37,000 (6위)
HDI 0.952 (13위, 2006년 조사)
통화 크로네 (ISO 4217: DKK)
시간대 CET (UTC+1)
 • 여름 시간 CEST (UTC+2)
ISO 3166-1 208
ISO 3166-1
alpha-2
DK
ISO 3166-1
alpha-2
DNK
인터넷 도메인 .dk
국제 전화 +45
1왕실이나 군대에서는 Kong Christian을 부른다.

덴마크 왕국(Kongeriget Danmark 콩게리게트 단마르크[*] 듣기 , 문화어: 단마르크)은 유럽에 있는 입헌 군주국이며, 수도는 코펜하겐이다.

[편집] 역사

[편집] 고대

현재의 덴마크 지역에 인류가 최초로 거주한 시기는 약 20만년 전이며, 약 5만년 전경 빙하가 북쪽으로 이동, 광범위한 툰드라 지대가 형성되면서 순록을 사냥하는 유목민들이 정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구·신석기시대(BC 9500년-BC 1500년), 청동기시대(BC 1500년-BC 400년) 및 철기시대(BC 400년 이후)를 거친 후, AD 500년경에 농경을 주로 하는 앵글족유트족이 처음으로 집단부락을 형성하였다.

[편집] 국가형성기(바이킹 시대)

6세기-10세기 사이에 바이킹유틀란트 반도를 중심으로 원시 왕정국가를 형성하면서 스웨덴 남부, 영국 동부, 심지어 지중해 연안까지 진출하는 위세를 떨쳤으며, 특히 9세기 경에는 영국 북부지역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826년에 최초로 기독교가 전래되어, 이외링 지역에서 일어난 왕가는 970년께 하랄(Harald) 왕 치하에서 덴마크를 완전히 기독교화하였고, 1014년경 그 아들인 스벤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잉글랜드 왕을 겸하였다.

 

하랄 왕의 차남 크누드 1세(카누트 대왕)가 1016년에 잉글란드 왕위에 올랐고 1018년에는 덴마크 왕을 겸하였으며, 1028년에는 노르웨이 왕으로 추대되어 '북해 제국(앵글로 스칸디나비아 대제국)'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크누드가 세상을 떠나자 북해 제국은 와해되고, 유틀란트 반도국 덴마크로 되돌아왔으며 얼마 후 크누트의 친척 스벤 2세가 덴마크 왕에 즉위하였다.

 

그리고 브레멘 대주교덴마크 왕권의 지지 기반이 되었다. 12세기 초부터 덴마크를 중심으로 스칸디나비아 독립 교구가 정착한다.

 

한때 덴마크를 진동시키던 왕위 계승 분쟁을 가라앉히고 발데마르 대왕이 즉위하였다. 그의 오른팔인 로스킬 주교 압살론은 코펜하겐 시를 건설하여 오늘날 덴마크의 수도로 번성하는 초석을 만들었다. 한자 동맹과도 경쟁하고 발트 해 연안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편집] 고대와 중세

고대부터 윌란 반도(유틀란트 반도)에는 데인족이 살고 있었다.

카를 대제의 북진정책의 결과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졌다.

 

811년 프랑크 왕국과 아이더 강을 국경으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바이킹의 해상원정은 8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

 

구드프레드 왕은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의 공격을 잘 막아내었다. 10세기에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11세기 초 크누트 대왕(재위 1014∼1035) 때에 덴마크-노르웨이-잉글랜드(동군연합)의 왕위를 겸하는 대왕국을 창건하였다.크누트가 죽자 곧 그 대왕국은 분열되고, 덴마크는 다시 스칸디나비아의 한 세력으로 전락하였으나, 크누드의 조카 스벤 2세에 의해 로마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신 덴마크 왕국이 건설되었다. 스벤 2세가 죽은 뒤, 1074~1134년까지 스벤 2세의 다섯 아들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고, 그 동안에 한때 앵글로색슨의 세력하에 있던 덴마크교회는 다시 함부르크의 세력하에 들어갔다가 1104년경 룬드를 대주교구로 한 독자의 국교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1134년 이후, 다시 교회와 국가의 분열 및 국내분쟁이 지속되다가, 1157년 발데마르 1세(재위 1157∼1182)가 일어나서 국내를 통일하고 발데마르 왕조를 일으켰다. 발데마르 1세는 군사력을 재편성하여 독일에 대항하고 발트해의 슬라브 세력과 싸웠는데, 그때 슬라브인의 침입에 대비하여 셸란섬에 구축한 성채가 오늘날의 코펜하겐의 기원이 되었다.

 

발데마르 2세 때 정치적·경제적 발전이 촉진되었으나, 그가 죽자 다시 왕·교회·귀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서 왕권이 약화되고, 또 같은 시대에 발트해의 지배 및 슐레스비히의 영유권를 둘러싸고 스웨덴·노르웨이·한자동맹 세력과의 항쟁이 지속되어 왕국의 약체화를 가져왔다.

 

발데마르 4세가 죽은 뒤, 발데마르의 딸 마르그레테와 그녀의 남편, 즉 노르웨이왕이자 스웨덴 왕위계승자인 노르웨이의 호콘 6세의 아들인 덴마크의 올라프 2세(재위 1375∼87)가 왕위에 오르자 마르그레테가 섭정이 되어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해오다가 호콘 6세, 올라프 2세의 사후인 1387년 덴마크 및 노르웨이의 군주로 승인받았다.

 

마르그레테는 다시 1389년 스웨덴왕을 겸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동군연합 형태의 3왕국의 통합은 1397년의 이른바 칼마르 동맹에 의해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1448년 덴마크의 왕조는 올덴부르크가로 바뀌었으나 칼마르 동맹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편집] 근대

1520년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가 독립을 요구하던 스웨덴과 전쟁을 벌여 보게순 전투에서 스웨덴의 스투레 일파를 격파하고 스톡홀름에 입성하여 분리주의자들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스웨덴은 다시 봉기하여 독립을 이룩하여, 결국 1523년 칼마르동맹은 해체되었다.

 

덴마크의 종교개혁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3세에 의해 추진되어 루터교가 받아들여졌으며, 한편 그 무렵에 노르웨이는 자치운동이 완전히 봉쇄당한 채 사실상 덴마크의 속국이 되어 버렸다.

 

크리스티안 3세 때는 원로원 등 귀족세력의 강화를 바탕으로 해서 경제의 발전 및 학자의 배출 등 국가번영의 기운을 보였으나, 그 후 덴마크의 프레데릭 2세 때 발트해의 주도권을 놓고 덴마크·스웨덴·폴란드·뤼벡 사이에 ‘북방 7년전쟁’이 일어났고,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4세 때는 2차에 걸친 스웨덴과의 싸움으로 국토의 손실과 국력의 쇠퇴를 가져왔다.

 

1660년 덴마크의 프레데릭 3세는 귀족세력과 대립하는 도시부르주아 및 루터교 성직자와 결합하여 왕위의 세습제를 승인받고, 1665년에는 국왕의 절대주권을 승인받아 절대군주제를 확립하였다.

 

1788년 농노제가 폐지되고, 1797년 자유무역의 원칙에 입각한 관세법이 성립되어 덴마크의 경제가 활력을 얻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 함대의 공격을 받고 나폴레옹 편에 서게 된 덴마크는 영국·러시아·스웨덴 등 동맹국과 싸운 끝에, 1814년킬 조약에 의해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할양하고 4세기에 걸친 노르웨이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하여 덴마크의 영토는 현재의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그린란드로 국한되었다.

 

국내적으로는 프레데릭의 절대왕정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1842년에는 입헌적 대의정치를 주장하는 국민자유당이 결성되었다. 그리하여 1849년 덴마크의 프레데릭 7세는 자유주의자들의 요구에 따라 전제정치를 포기하고, 자유헌법을 성립시켜서 입헌군주제를 수립하였다.

 

또한 1864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패배하여 홀스텐(홀슈타인)과 슬레스비(슐레스비히)를 상실했으며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1920년, 북슐레스비히를 수복하였다.

[편집] 현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중립을 지켰으나 독일 바로 근처였기 때문에 민간인 상선들이 독일 잠수함에 격침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어 1944년까지 고초를 겪었다. 덴마크에 사는 사람들 중 유대인들이 독일군에게 끌려갔으나 중앙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비율이 미미하였다. 또한, 전쟁 중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독일군들이 빼앗았다. 1945년 5월에 덴마크 전체가 연합군에 의하여 해방되었다.

 

 1944년에는 덴마크의 영토였던 아이슬란드가 독립하게 되었다.

[편집] 지리

인공위성에서 본 덴마크.

덴마크는 윌란 반도와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빙하 침식에 의해 산이 별로 없으며, 평야가 많다. 예전에는 황무지가 많았으나 개간되었다.

[편집] 기후

덴마크의 기후는 북대서양해류(멕시코만류) 및 대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편서풍의 영향을 받아 겨울에는 위도에 비해 온난하고, 여름에는 서늘하여 기온의 연교차가 적다. 이렇게 온난한 기후는 북유럽과 중부유럽의 중간지대로서의 특색이다. 그러나 연중 바람이 많고 겨울에는 기후 변화가 심하다. 편서풍으로 인해 덴마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차를 이용하여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반면, 유틀란트 반도 서부에는 강한 바람을 피하기 위하여 새로이 개척한 농지 주변이나 독립가옥 주위에 방풍림(防風林)을 조성한다.

 

가장 추운 1월의 전국 각지의 평균기온은 -1.5℃이고, 가장 더운 7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17℃이다. 5월부터 8월은 낮시간이 거의 18시간 지속된다. 전국 각지의 연강수량은 650mm이며 강수분포는 연간 대체로 균등하나 7∼12월, 특히 8월에 비가 많이 온다. 지역적으로는 서부가 강수량이 많고 동부로 갈수록 적어진다. 강우일수(降水日數)는 연간 약 160일, 강설일수(降雪日數)는 연간 20∼40일 정도이다.

[편집] 정치

덴마크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기반한 의원 내각제정부가 구성되는 입헌 군주국이다. 현재의 국가 원수여왕 마르그레테 2세이며 정부의 수반은 총리가 맡고 있다. 2007년 총선 결과 자유당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이 총리직을 3번째 연임했다.[1]

[편집] 주민

주민은 게르만계의 덴마크인이 대부분이며 다른 민족은 적게 존재한다.

[편집] 언어

덴마크어공용어이다. 덴마크인과 스웨덴인, 그리고 노르웨이인은 서로 자국어로 이야기해도 무리 없이 서로 통한다. 영어독일어, 프랑스어도 외국인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덴마크의 문자 해독률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편집] 종교

루터교국교로 인정받으며 그 외에 감리교, 모라비안, 구세군 등의 다른 개신교 종파들과 동방정교회가 존재한다. 로마 가톨릭의 경우는 0.55% 존재한다. 이슬람교, 유대교 등의 다른 종교는 아주 적게 존재하며, 특히 이슬람은 아랍 세계이란에서 온 이민들이 믿는다.

[편집] 교육

이 나라는 문맹률이 매우 낮은 나라이며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이 나라의 자치령인 페로 제도그린란드 역시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편집] 군대

이 나라에서는 징병제를 실시한다.

[편집] 경제

이 나라의 자치령인 페로 제도그린란드2005년부터 지리는 물론이고 경제·외교적으로도 자치를 얻었다. 덴마크 본토 또한 세계적인 경제 수준을 자랑한다. 협동조합을 이루어 농업을 발달시켰다. 젖소를 많이 사육하는 손꼽히는 낙농 국가이며, 낙농 제품이 큰 수출품 중의 하나이다. 돼지의 사육도 활발하여, 베이컨이 비싼 가격으로 수출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린이들의 장난감 회사 레고의 본사가 있다.

[편집] 문화

Lt rubjerg knude.jpg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이 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같은 군주 밑에서 연합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형제의식이 강하다.

[편집] 대외 관계

[편집] 대한 관계

한국 전쟁대한민국병원선 MS 유틀란디아를 보내 의료 지원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병원선의 의료 기자재를 한국에 기증하고 한국에 국립의료원을 설립하여 한국의 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2007년 현재 덴마크에는 약 9000명의 한국 입양인이 있으며 교민은 250여 명이 있다. 한국 대사관, KOTRA, 한인교회, 한국센터, 한글학교가 있고 정한친선협회, 유틀란트 모임, 코리안 클럽, 한인회가 있다.

(한국어) 덴마크 관광

 

 

<아이슬란드>: 덴마크로부터 독립

 

Lýðveldið Ísland
아이슬란드의 국기 아이슬란드의 국장
국기 국장
표어: (없음)
국가: 로프쇤귀르
(Lofsöngur)
아이슬란드의 위치
수도 레이캬비크
64°08′00″N 21°56′00″W / 64.133333°N 21.933333°W / 64.133333; -21.933333
공용어 아이슬란드어
정부 형태 공화제
대통령
총리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요한나 시구르다르도티르
독립
• 독립
덴마크로부터 독립
1918년 12월 1일
면적 103,000 ㎢ (107위)
 • 내수면 비율 2.7 %
인구
 • 2006년 어림 300,000명
 • 2005년 조사 299,404명
 • 인구 밀도 2.89명/㎢ (188위)
GDP (PPP) 2005년 어림값
 • 전체 $102.6억 (139위)
 • 일인당 $34,600 (11위)
HDI 0.968 (1위, 2006년 조사)
통화 크로네 (ISO 4217: ISK)
시간대 GMT (UTC+0)
 • 여름 시간 (없음)
ISO 3166-1 352
ISO 3166-1
alpha-2
IS
ISO 3166-1
alpha-3
ISL
인터넷 도메인 .is
국제 전화 +354
덴마크-아이슬란드 동군연합이었다.

 

아이슬란드(아이슬란드어: Ísland 이슬란드, 문화어: 이슬란드) 또는 아이슬란드 공화국(-共和國, 아이슬란드어: Lýðveldið Ísland 리드벨디드 이슬란드)은 북대서양의 섬나라이다.

 

그린란드의 동남쪽, 영국덴마크의 자치령인 페로제도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도는 레이캬비크이다.

 

대서양 중앙 해령의 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슬란드는 화산 활동이 활발하며, 지열의 작용도 거대한 규모로 이뤄진다. 또한 북극권 바로 아래에 국토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수목의 생장에 제한을 받으며 빙하의 흐름도 활발하다. 이런 지질학적 특징은,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황무지와 고원지대가 끝도 없이 계속 되며, 화산활동으로 높이 솟은 산들 사이로 형성된 거대한 빙하퇴가 바다를 향해 저지대로 흘러내린다. 멕시코 만류에 의해 위도에 비해 따뜻한 기온이다.

 

 

[편집] 행정구역

아이슬란드의 행정구역

 

다음은 아이슬란드의 8개 지역이다(괄호안은 중심도시, 면적(㎢), 2007년현재 인구, 인구밀도)

[편집] 역사

본래 아이슬란드는 무인도였는데, 874년 노르웨이로부터 첫 정착민이 들어왔다. 그뒤 930년 의회가 생겼다. 1262년 노르웨이령이 되었다가, 1380년 덴마크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814년 아이슬란드는 킬 조약으로 덴마크령이 되는 것을 인정받았다.

 

1904년에는 자치가 인정되었고, 1918년 12월 1일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국왕과의 동군연합으로 독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동군 연합은 강제로 해체되었다(그러나 아이슬란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중립을 지켰다).

 

그 후, 1944년 6월 17일부터 지금까지 공화국으로 운영되고 있다.

[편집] 지리

[편집] 기후

아이슬란드의 기후는 다소 찬 해양성 기후이다. 하지만 따뜻한 북대서양 해류가 흐르기 때문에 매우 높은 위도에 위치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따뜻하다. 겨울은 바람이 불지만 따뜻하며 여름은 다소 건조하고 시원하다. 알래스카 반도와 얄루산 열도와 기후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북극과 거의 근접하지만 겨울에도 아이슬란드의 항구는 거의 얼지 않는다. 얼음이 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북쪽 해안에서 1969년 일어난 이후 이제껏 없었다.

 

남쪽 해안은 습윤하고 따뜻하며 바람도 많이 분다. 좀 더 고도가 낮은 내륙 지방은 북쪽 지방으로서 가장 건조한 지방이며 남부보다 눈이 더 많이 내린다. 중앙 고지가 가장 추운 곳이다.

 

1939년 6월 22일 30.5도의 최고 기온이 관측되었으며 가장 낮은 기온은 1918년 1월 22일 섭씨 영하 38도였다.

월평균 최저 기온 및 최고 기온(°C) (1961–1990)[1]
위치 1 2 3 4 5 6 7 8 9 10 11 12 연간l
레이캬비크[2] 1.9 2.8 3.2 5.7 9.4 11.7 13.3 13.0 10.1 6.8 3.4 2.2 최고 7.0
-3.0 -2.1 -2.0 0.4 3.6 6.7 8.3 7.9 5.0 2.2 -1.3 -2.8 최저 1.9
아쿠레이리[3] 0.9 1.7 2.1 5.4 9.5 13.2 14.5 13.9 9.9 5.9 2.6 1.3 최고 6.7
-5.5 -4.7 -4.2 -1.5 2.3 6.0 7.5 7.1 3.5 0.4 -3.5 -5.1 최저 0.2

[편집] 주민

스칸디나비아 반도노르드인브리튼 섬아일랜드켈트족 등의 기원을 갖는 아이슬란드인이 주로 거주한다. 아이슬란드는 지역적으로 고립된 섬으로 최근 100년은 몇 안 되는 이민과 세대에 의한 인구증가가 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인구는 증가 경향에 있다. 이 나라는 (Eurostat 통계에 따르면)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이 2를 넘는 유일한 유럽 국가이다(2004년 현재 2.03).

[편집] 언어

언어아이슬란드어가 사용되지만, 영어덴마크어는 초등학교에서 배우기 때문에 국민의 대부분은 다언어 사용자이다. 또 문해율이 99%이다.

[편집] 종교

거의 루터교를 믿는 개신교 신자가 많다.

[편집] 문화

[편집]

아이슬란드에는 을 쓰는 사람도 많고 을 읽는 사람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긴다. 출간되는 책의 수는 1천 명당 2.8권으로 독일 0.8권, 영국 0.6권, 미국 0.4귄으로 휠씬 높은 수치이다.

[편집] 요리

이 부분의 본문은 아이슬란드의 요리입니다.

[편집] 경제

아이슬란드는 원래 경제력이 높은 나라 중 하나였으나 최근에는 금융위기를 겪고 있다. [4] 하지만 금융위기가 아이슬란드를 물가가 비싼 나라에서 관광하기에 편한 나라라는 이미지로 바꾸어 놓고 있다. [5]그러나 2009년 1월 28일 아이슬란드는 결국 정부가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와 반정부 시위로 붕괴되었고, 이중고를 겪게 되었다.[6]

[편집] 대외 관계

아이슬란드는 실제적으로 거의 모든 국가와 외교 및 무역 관계를 가지는데, 북유럽 국가들, 독일, 미국, 기타 NATO 국가들과 유대가 특히 강하다. 아이슬란드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에, 북한과는 1973년에 수교하였다. 노르웨이 주재 한국대사관이 아이슬란드 대사 업무를 겸임하며, 아이슬란드도 중국 주재 대사관을 통해 대한민국 대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일본은 대량의 캐플린(Capelin; 바다빙어과의 바닷물고기)을 아이슬란드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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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 덴마크 자치령
 
Kalaallit Nunaat
Grønland
그린란드의 국기 그린란드의 국장
국기 국장
표어: 없음
국가: 그대는 우리의 조상의 땅
그린란드의 위치
수도 누크
64°10′30″N 51°44′20″W / 64.175°N 51.738889°W / 64.175; -51.738889
공용어 그린란드어
정부 형태 덴마크 자치령
덴마크 여왕
총리
마르그레테 2세
쿠피크 클레이스트
자치령 덴마크 자치령
 • 자치 1979년
면적 2,166,086 ㎢ (13위)
 • 내수면 비율 81.1 %
인구
 • 2009년 어림 57,600[1]
 • 인구 밀도 0.026명/㎢ (230위)
GDP (PPP) 2001년 어림값
 • 전체 $11억
 • 일인당 $20,000
통화 크로네 (ISO 4217: DKK)
 • 여름 시간 없음
ISO 3166-1 304
ISO 3166-1
alpha-2
GL
ISO 3166-1
alpha-3
GRL
인터넷 도메인 .gl
국제 전화 +299
  1. CIA World Factbook
그린란드의 위성 합성 사진
그린란드의 지도

 

그린란드(그린란드어: Kalaallit Nunaat 칼라알릿누나앗, 덴마크어: Grønland 그뢴랜[*], 문화어: 그뢴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1]으로 덴마크의 자치령이다. 2009년 자치권의 확대를 선언하여 제한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수도는 누크이다. 캐나다아이슬란드와 국경을 접한다.

 

 

[편집] 역사

그린란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500년 무렵으로, 에스키모가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이후 서기 986년에는 노르만 족에리크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발견한 땅에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기를 바랐고, 이에 따라 자신이 발견한 섬의 이름을 '초록의 땅'이라는 뜻의 '그린란드'라 이름 지었다.

 

이 때부터 그린란드에 노르만 족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원주민인 이누이트 족과 충돌이 잦았고, 수천 년간 살아오면서 그린란드의 빙설 기후에 완벽히 적응한 이누이트 족과 달리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고, 척박한 환경으로 목재, 철 등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할 자원의 부족으로 인구 증가에 큰 어려움을 겪어, 숫적, 군사적으로 이누이트 족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예로 1379년 이누이트 족의 습격을 받아 노르만 족 남성 18명이 사망했는데, 당시 노르만 족의 인구는 40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본토와의 교류를 통해 15세기까지 노르만 족은 그린란드에 거주하였으나, 소빙기로 해안에 유빙이 생겨나면서 본토와의 교류에 문제가 생긴데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교류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결국 그린란드의 노르만 족 거주지는 소멸되었다.

 

 이후 18세기 초에 그린란드 거주지가 덴마크에 의해 재개척되면서 덴마크령의 거주지가 되었다.

[편집] 자치권의 회복

냉전 시기에 미국은 그린란드 지역에 지정학적 관심을 보여왔으며 1946년 미국은 덴마크에서 그린란드를 1억달러에 구입하겠다고 제안하지만 덴마크는 거절했다. 하지만 1950년 덴마크는 미국의 툴레 공군 기지 건립 제안을 받아들여 1951년 건설을 시작한다. 1953년 완성된 이 기지는 나토의 방어전략의 일환이 된다.

 

그린란드는 1979년 5월 1일부터 덴마크 국회에 의해 자치권을 획득하지만 국가 원수는 덴마크의 여왕이었으며 외교권과 국방도 덴마크가 맡아왔다. 1985년, 그린란드는 ECC의 상업적 어업 규제와 물개 가죽제품의 금지에 반발해 독자적으로 탈퇴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와 맞물려 그린란드의 독립에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2] 그린란드는 2008년 11월 25일에 자치권 확대를 위한 투표를 치렀다.[3] 그리고 이 투표에서 75%가 자치권 확대에 찬성하면서 독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4] 마침내 2009년 6월 21일누크에서 자치권 확대 발효 기념식을 열고 사실상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다만 자치권이 발효되어도 여전히 덴마크가 국방이나 외교적 사안에 대해서는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 [5] 이 조치로 덴마크로부터 지원받던 연간 보조금 32억 덴마크 크로네(덴마크의 통화)가 중단되기는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개발 가능성이 생긴 지하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사법 및 경찰권을 가지게 되며, 제한적이나마 외교권도 가지게 되었다. [3]

[편집] 지리

지리적-문화적으로는 북아메리카에, 정치적으로는 유럽에 속한다. 남동쪽으로 대서양아이슬란드, 동쪽으로 그린란드 해, 북쪽으로 북극해, 서쪽으로 배핀 만캐나다누나부트 준주가 자리잡고 있다. 섬의 81%가 얼음으로 덮여있다.

[편집] 환경

여름 한 철 나무가 자라고 꿀벌과 모기가 날아다닌다.[6]

[편집]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그린란드의 행정 구역입니다.

[편집] 경제

워낙 춥고 척박해서 경작지는 2%도 채 안되며, 식량은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한다. 주요 수출품은 새우잡이를 통해 보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행산업 등과 함께 루비 등 광물자원을 통한 수출이 늘고 있다.

[편집] 정치

이 나라는 덴마크의 여왕을 모시며 자치 총리가 있다. 그 이전에는 총독을 두었다.

[편집] 군사

이 나라는 국군이 없으며 덴마크가 방위권을 행사한다.

[편집] 주민

그린란드인이 85-90%를 차지한다. 덴마크인, 미국인, 기타 원주민도 거주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비교적 온난한 기후를 보이는 주도의 남서쪽에 거주한다.

[편집] 언어

예전엔 그린란드어덴마크어공용어였지만, 2009년 6월부터는 그린란드어만이 유일한 공식어가 되었으며, 덴마크어는 고등교육의 언어로 남았다. 그린란드어는 이누이트어와 같은 언어라고해도 무방하다. 교육받은 이들은 대부분 영어를 불편함 없이 구사한다.

[편집] 종교

대부분이 루터교를 믿는다. 일부는 로마 가톨릭이나 토착 종교도 믿는다.

[편집] 스포츠

축구협회와 국가대표팀이 있기는 하지만, FIFA의 정식 회원국이 아니다. 연중 낮은 기온때문에 경기장에 잔디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NF-보드의 회원국이다.

 

2007년에는 독일에서 열린 남자핸드볼선수권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린란드는 Island Games과 Arctic Winter Games에 참가하고 있다.

[편집] 사건

1968년 1월 21일툴레 공군기지 인근에 핵폭탄4발을 적재한 B-52 폭격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출처 : 내마음의 보석상자(上善若水/?光養晦)
글쓴이 : 대륙철도횡단열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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