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전통적인 탄생, 결혼, 장례풍속에 관한 소고

2007. 6. 2. 23:27운영자자료/1.운영자 자료실 1

러시아의 전통적인 탄생, 결혼, 장례풍속에 관한 소고 (자료출처 : 소련선교회)

조성현(한국외대 대학원 사학과 졸업)

한 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 중 어느 민족에게서나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탄생·결혼·죽음에 대한 독특한 풍속과 의식은 각 민족들을 구별해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러시아의 문화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이번 회지부터 3회에 걸쳐 러시아의 탄생·결혼·장례 풍속에 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탄생'의 문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러시아 농촌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산파를 중심으로 아이의 출생과 세례, 산모에 대한 출산 후의 의식, 산파와 아이 그리고 가족간의 유대관계를 다루고 있다. 결혼 풍속은 러시아의 영토가 넓은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 중에서 대러시아의 결혼풍속에 대해 살펴보고, 더불어 러시아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가 결혼 전까지 지켜야 할 금기사항을 중심으로 다루어 볼 것이다. 삶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과 관련된 의식에서는 슬라브인들의 전통적인 장례의식과 기독교 수용 이후의 교회 중심의 장례의식을 다루어 볼 것이다.

1. 탄 생 풍 속

러시아에서는 아기탄생의 과정에서 산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아기의 출생, 산모의 산후 조리, 아기의 성장과정 등에 있어서 산파와의 유대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따라서 아기의 출생, 세례, 산모의 손씻기 의식 등에 관한 내용을 산파와의 관련 속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산파는 아이를 받을 뿐만 아니라 아기와 산모를 위해 주술적인 행위를 동반하는 여러 필요한 절차(탯줄 자르기, 산후 처리, 아기와 산모 씻기기)를 수행할 줄 알았다. 혁명 이전 대부분의 여성들은 산파의 도움으로 출산을 했다. 산파는 대개 그 지역에서 잘 알려진 나이든 농촌여성이었다. 산파는 과부이고, 혼자서 출산을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때로 산파에게는 일정한 자격조건이 요구된다. 더 이상 월경이 없어야 하며, 임신한 상태여서는 안되며,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처녀는 산파가 될 수 없다. 산파는 행실이 반듯한 자라야 하며 남편에 대해 불복종한 적이 없어야 한다. 산파가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면 그녀가 받는 아이는 죽거나 병약하게 태어난다고 믿었다. 민간신앙에 따르면 산파는 시신을 씻어서는 안되는데, 이는 그녀가 받아 낸 아이의 죽음을 초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산파를 고를 때에는 산파의 가정생활이 행복한지의 여부에 따른다. 자식이 없거나, 자식을 여읜 여성은 피했다. 왜냐하면 그런 여성이 받아낸 아이는 사산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또한 산파의 모든 언행은 갓난아기에게 반영된다고 믿었다.
대부분의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산파에게도 아기의 출생은 의료현상일 뿐만 아니라 삶의 시작을 의미했다. 적절한 세례, 기도식, 주문(呪文)을 동반하고 그것으로 긴장이 완화되는 초자연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산파는 산모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며 산파가 산모의 집으로 대개는 빈손으로 가지 않고 빵과 달걀 두개를 가지고 간다. 그리고 아기를 위해 깨끗한 깃저고리, 끈, 모자, 박하 잎사귀, 비누 등을 가지고 간다. 아이들은 대지로부터 어머니로 바로 연결될 수 있도록 땅이나

짚더미 위에서 태어나게 된다. 난로의 불과 정화수를 준비해 놓고 아기를 맞이한다.
대가족 제도의 농촌여성에게 출산은 고통스럽지만 의례적인 것이었다. 첫아이의 출산을 제외하고 진통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곧장 산파를 부르지는 않는다. 아기의 탄생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더욱 쉽게 출산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아기를 낳자마자 산파는 아기가 건강한지를 알아 보기 위해 아기의 머리와 발을 똑바로 해보고,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에 있는지를 확인한다. 산파는 신생아의 병, 탈장을 등을 치료할 수 있었다. 출산의 과정에서 산파의 주된 임무중 하나는 산모와 아기를 '불순한 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산파는 교회의 향, 성수, 기도문 등을 사용하였다.
위급한 경우에 산파는 신생아에게 세례를 해준다. 만일 갓난아기가 너무 약하면 산파는 자기 방식대로 항아리에 아기를 놓고 세례를 한다. 산파가 세례를 할 때 접시에 성수를 넣고 보통 물과 섞어 희석시킨다. 그리고 나서 이것을 아기에게 3번 붓는데 그때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리고 이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시도다."라고 말한다. 산파의 행위의 기초는 물에 의한 정화(淨化), 기도문 낭송, 명명(命名)하기이다. 큰 불행을 막기 위해 행해지는 이러한 세례의식은 교회의 세례의식으로도 대체되지 않았다. 교회는 세례를 받지 않은 채 아이들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교회법상으로 여성의 종교행위가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례의식을 산파에게 위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 후 산파에 의한 세례는 교회의 몰락과 함께 더욱 일반화되었다. 때로 산파는 사산아(死産兒)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금지된 행위였다.
정상적인 출산의 경우 산파는 유능한 조력자였다. 의료행위와 종교적인 원조를 제공함과 더불어 산파는 산모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그 가족을 위해 이삼일 동안 집안일을 돌봐주었다. 이는 산모가 출산 후 혹독한 기후 속에서 힘든 일을 하게 되면, 불구가 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출산 후 합병증의 위험성 때문이다. 이 기간동안 산파가 주로 하는 일은 산모와 아기를 목욕시키고 산모뿐만 아니라, 세례받지 않은 아기는 모든 불행으로부터 무방비상태이므로 아무도 그들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이다. 난산인 경우 산파는 그녀를 도와 필요한 주술적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산모의 남편을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들도 부른다. 모든 사람은 산파의 지시에 지체없이 따르며 산파가 일하는 동안 산파의 권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산파의 활동의 본질인 산모의 집에 머무는 것은 출산 후 산파와 산모의 불결함을 씻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손씻기 의식'에 의해 치러졌다. 산모와 산파는 서로의 용서를 구하면서(산모: 부인이여,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산파: 신은 당신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나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각자의 손에 3번 물을 붓는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여러 가지 대상물이 더 추가되기도 한다. 이 의식은 목욕탕이나 집안에서 행해지며 대개 산모와 산파만이 이 의식에 참여할 수 있다. 러시아의 일반적인 전통에 따르면, 이 의식은 출산 후 3일째 되는 날 행해지며 '손씻기 의식'이 모두 끝나면 산모는 일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고, 산파도 그 집에 머무는 것이 끝나게 되어 다른 아이를 받으러 갈 수 있었다.
산파는 보수를 받기보다는 선물을 받는다. 선물은 빵 뿐만 아니라 정화와 관련된 물품(비누, 수건 등)이어야 한다. 산파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 것은 용서 받지 못할 죄로 여겼다. 그러나 산파는 그 가족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가난해도 각 가정은 비누 한 장을 산파에게 주어야 한다. 산파에게 비누선물을 의무적으로 하면서 정화가 필요하다고 인식되었다. 손씻기 의식은 산파에 대한 의무적인 선물로 끝이 난다.
산파가 받은 아이와 산파 간에는 신비한 인연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산파는 깊은 존경을 받으며 그녀가 아이를 받아준 집에 결혼식이나 경사가 있을 때 명예 인사로 초청되어 환대를 받는다. 산파는 자기가 받은 아이를 손자라고 부르고, 그 아이는 산파를 할머니라고 부른다. 매년 산파는 크리스마스에 그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그 '손자'의 모든 중대사에 초대된다.



2. 결 혼 풍 속

각 민족은 고유한 결혼관과 풍속을 가지고 있다. 옛 러시아의 젊은 여자들은 결혼 문제에 관해서 지극히 비합리적인 점(占)에 많이 의존하며, 같은 나이의 여자들에게 뒤쳐지지 않고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상대를 구하고 싶어한다. 지금까지도 젊은 여자 자신의 나이를 셀 때 부끄러워하고, 좀 더 일찍 시집간 여자는 자신이 자랑스러워한다. 초혼제(부활절 후 첫째주에 죽은 자에게 제를 지내는 풍속) 때 부모 잃은 자식들은 부모의 무덤을 찾아가서 이별을 고하고 자신의 결혼을 축복해주기를 기원하다.
러시아의 각 지방마다 결혼 풍속은 여러 형태를 띈다. 그리고 각 풍속은 생동감과 고유한 성격, 상징성과 풍자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결혼풍속의 상징성과 풍자성은 많이 사라졌고, 단지 그 풍속 행위만이 존재할 뿐이다. 러시아의 신랑, 신부는 교회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슬픔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인생길을 함께 할 것을 결정한다. 이 길의 출발점에서 성스런 교회가 주님의 축복을 구하는데, 교회가 돌보는 가운데 이들이 화목하게 현세의 그리스도의 가족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다.
결혼 성례식은 반지교환식과 대관식으로 이루어진다. 복음서, 십자가, 결혼반지, 관, 포도주가 든 잔, 양초 등을 준비한다. 교회 안에 신랑과 신부가 서 있을 곳에는 단자 혹은 다른 직물이 깔려져 있다. 신랑과 신부가 교회 안으로 입장한 후, 기도를 드리고 반지를 서로 교환한다. 신랑과 신부가 결혼에 대해 상호동의를 표현한다. 성직자가 신랑과 신부에게 관을 씌운다. 관을 씌운 후, 신랑과 신부를 축복하면서 성직자는 다음과 같은 성례 수행자의 축사를 해 준다.: "우리 주 하나님, 영광으로 이들을 혼인시키소서!" 신랑과 신부는 경탁을 한바퀴 돌고나서 사도행전과 복음서를 낭송하고 함께 포도주를 마신다. 포도주에는 동전이 끼워진 빵이 담겨져 있다. 사제가 신랑과 신부에게 세 번 마시게 준다. 신랑은 세 번째 잔을 다 마시고 바닥에 던지고 그것을 발로 으깨어 버린다. 끝으로 관을 벗는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신랑은 신부의 손을 꼭 잡아야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결혼으로 생각되거나, 사람들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예견한다.
교회로 가기 전에 신랑과 신부를 담비모피나 다른 종류의 모피에 나란히 앉힌다. 매파는 두 사람의 머리를 빗겨준다. 이 빗은 특별히 마련된 국자에 담겨진 포도주나 꿀에 적셔진 것이다. 결혼식 때 결혼 촛불을 밝힌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 두 양초를 신랑과 신부가 지낼 방에 있는 호밀이 담긴 큰 통에 세우는데, 신혼부부의 침대 머리쪽에 1년동안 세워 둔다.
구운 음식이 준비되면, 신랑측 친구 중 한사람이 흰 빵과 소금 그릇 뿐만 아니라 구운 음식을 식탁보로 싸서 신혼방에 있는 침대로 가져간다. 방문에 앉아 있던 아버지는 신부를 남편될 신랑에게 건네주며, 신부에게 점잖은 훈계를 해 주는데, 부부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매파는 젊은 부부를 목욕탕에 데려간다. 목욕탕에는 장모가 보낸 의복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장모는 그들에게 '카샤(죽)'라는 결혼 피로연 음식을 준비해 준다.
결혼전 날, 신랑집으로 6-7세의 아이들을 초대해서 신부에게 줄 패물함에 연지, 하얀 분, 향수, 부채, 장갑 등을 담게 한다. 이 패물함을 잠궈서 그 날 저녁에 신부에게 보낸다. 결혼식 하는 날 아침에 미리 뽑아 둔 꼬마가 신부에게 새 신발을 신겨주고 신부 머리를 따 주고 돈을 받는다. 신혼부부는 불도 떼지 않은 텅빈 방에서 자도록 되어 있다. 침대 아래에는 호밀이나 짚을 깐다. 그리고 결혼 첫 날 밤에 신부는 신랑의 장화를 벗기는데, 신랑 오른쪽 발꿈치에는 동전이 들어 있으며, 왼쪽 장화 속에는 채찍이 들어 있다. 신랑의 요구에 따라 어떤 발의 장화를 먼저 벗기냐는 신부에게 달려 있다. 만약 왼쪽발부터 벗기면 신부는 채찍을 장화 속에서 꺼내게 되어 채찍으로 신부는 맞게된다. 오른쪽발부터 벗기면 그 안에 있던 동전은 신부가 갖게 된다. 만약 신부가 신랑의 왼쪽 장화를 벗기는 등의 경솔한 행동을 하면, 다음날 신랑의 친구는 밑바닥이 새는 컵을 왼손으로 막아 들고 음료수를 부어서 이 컵을 신부 어머니에게 건네준다. 어머니가 그 컵을 받아 드는 순간, 음료수가 밖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이것은 신부의 가정교육을 잘못 시킨 신부 어머니를 질책하는 것이다. 신랑이 덕스럽지 못한 신부라고 질타하거나 신부의 조심성 없는 행동이 나타나면, 그 모든 책임은 신부 어머니가 받는 것이다. 신부는 어려서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올바른 가정교육을 어머니로부터 받아야 한다. 신부가 순결하지 않다는 것은 한 평생 신랑에게 시샘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이것은 평탄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가져온다.
결혼식에 사용되는 담비모피는 비기독교적인 풍속이다. 러시아에서 동전이 나타나기 전에 모피가 그 역할을 대신했으며, 담비모피는 신부에 대한 보답을 의미한다. 결혼 전 날에 목욕하는 풍속은 결혼의 정결을 말하며, 침대에 짚을 까는 것은 집안의 융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랑과 신부를 모피에 앉히는 것은 부(富)를 뜻한다. 신부가 신랑의 장화를 벗기는 풍속은 아직도 러시아의 많은 지방에서 행하여지고 있다. 이것은 신랑에 대한 신부의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혼식에서는 항상 축가를 부른다. 노래는 남편과 아내가 되어서 해야 할 의무를 담고 있는데, 후렴에는 슬라브 민족의 사랑과 기쁨의 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신부는 애가를 부른다. 결혼하기 전에 신부는 반드시 애가를 불러야 하는 미신이 있는데, 신부가 부모님과 형제가 사는 집을 떠나는 것을 슬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에서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이다. 따라서 신부는 결혼식때까지 지켜야 할 것이 많다. 신부를 뜻하는 '네베스타'라는 명칭은 '볼 수 없는'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신부가 될 여자를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게 하여 악의 힘으로부터 막는다는 것이다. 결혼을 앞둔 신부는 자신의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슬픈 얼굴을 하며 얌전히 손님처럼 행동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르한겔스크 지방에서는 중매가 들어온 아가씨는 집안 일을 하나도 하지 않고 집밖을 나가면 안된다. 친구집을 찾아가는 것도, 놀러 나가는 것도, 교회에 가는 것도 안된다. 야로슬로브스끄 지방에서는 신부가 검정 옷을 입고 있어야 하며, 결혼식 때까지 길거리에 나가서는 안된다.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신부는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신부는 결혼식 때 긴 베일을 머리에 쓴다. 더욱이 어떤 지방에서는 신부가 결혼하기 전에도 긴 베일을 머리에 쓰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며, 잠을 잘 때에도 쓰고 자야한다. 신랑 부모의 집에서 삼일 간 지낸 후 자신들의 집으로 왔을 때 그제서야 아내는 처음으로 얼굴을 내보인다. 이 풍속의 의미도 다름이 아니라 신부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머리를 덮어 씌우므로 해서 해로운 힘을 막으려는 것이다. 신부가 이 풍속을 어기면 질책을 면치 못한다. 왜냐하면 이 풍속에는 친족에 대한 존경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자는 남편에게 해를 끼치게 되어 남편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다고 여겨진다. 이 풍속의 또다른 의미는 얼굴을 가리지 않는 신부는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에서 유래된 것이다. 공주가 하늘색 꽃을 꺾어 버리고 어머니로부터 약간 떨어져서 조심성이 없이 자신의 얼굴을 훤히 드러내 보여서 그 아름다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 돌풍이 불며 공주가 돌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 공중에서 사라졌다.




3. 장 례 풍 속

예로부터 러시아인들은 인간에게 죽음이란, 죽음 뒤에 오는 새로운 세계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에로의 경계일 뿐이며, 사람이 죽은 뒤에도 다른 어떤 곳에서 삶은 계속 지속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노동 도구와 음식물을 같이 매장하였다. 장례(葬禮)행렬은 여성들이 앞서서 마을과 들판을 지나갔으며, '쿠르간'이라는 무덤을 만들고 그 무덤에는 빵이나 피로기(삐라기, 러시아식 만두)가 던져졌다. 처음에는 무덤 아래에 구덩이를 파지 않았는데, 기독교의 수용 이후 무덤 구덩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쿠르간 매장은 기독교적인 장례 방식에 의하여 16세기 무렵이 되면 거의 사라졌다.
고대 슬라브인들은 죽은 자를 언덕이나 동굴에 매장했고, 관은 '다시 깨우는 것'을 촉진할 수 있도록 나무 통을 파서 만들었다. 죽음에 즈음한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땅 위나 짚 위에 놓여졌는데, 이것은 그들이 땅으로 돌아가는 것과 그곳에서의 재생(再生)을 촉진시키기 위해서이다. 죽은 이는 물로 닦고, 짚과 함께 관에 넣여져 들판에 매장됐다. 깨끗하게 죽은 사람은 땅에 묻히지만 부정하게 죽은 자(마녀, 부모에게 저주받은 자) 등은 늪이나 바위틈에 매장했다. 기독교 묘지가 아닌 구릉 묘지에서의 매장은 16세기까지도 가능했었다. 이와 같은 슬라브적인 장례 풍습은 러시아 농민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환생을 위하여 교회 묘지가 아닌 구릉 묘지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16세기 무렵까지도 슬라브적인 장례 풍속이 계속되었다는 것은 농민들이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례식 참석자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손을 난로 안에 넣었는데, 이는 고인의 영혼과 들판의 다산성 사이의 유대를 확인하고 고인을 조상과 재결합시키기 위해서이다. 죽음은 대지로의 재탄생으로 여겨졌다. 봄과 가을에는 재생과 결실의 시기에 맞추어 고인을 위한 제일(祭日)이 있었는데, 고인의 호의에 감사하기 위해 블리니와 계란, 술, 피로기 등을 대지에 대접했다. 이러한 슬라브 민족의 전통적인 장례의식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교회 중심의 의식으로 변모해 갔다.
교회에서의 장례는 전통적으로 농민들이 행하였던 '보내는 의식'에 이어 나타났다. 나이든 사람들은 수의를 미리 준비해 두었고, 관은 죽은 후에야 마련되었다. 누군가 죽으면 친척과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 서둘러서 통보하는데, 이는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 그들이 고인을 방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첫 번째 통곡을 시작하면서 죽음을 확인한는 절차를 거친 후 수의를 입히고, 긴 의자 위에 짚을 깔고 머리를 이콘이 놓여 있는 '크라스느이 우골(성스러운 구석)'을 향하게 하고 시신을 놓아둔다. 묘지에 관속의 시신을 안치할 때는 머리가 서쪽을 향하고 발이 동쪽을 향하게 하며 발치에 십자가를 둔다.고대 슬라브에서는 집에서의 애도가 끝난 후 바로 들에 매장되었지만, 기독교적 의례를 수용한 이후에는 교회로 옮겨져서 추도식을 끝낸 후 교회 묘지에 매장되었다.
오늘날까지 장례는 교회에서 행해진다. 사람이 죽고나면 교회는 고인(故人)이 창조주 하나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 기원한다. 장례식이 교회에서 거행되고 나면 시신을 묘지로 모신다. 그리고 고인을 위해 부지런히 기도하며 그도 우리를 위해 기도할 것을 믿는다. 신자들은 동료 신자인 고인과 작별한다. 장례 참석자, 가족, 친지들은 고인이 영원한 세상으로 갔다는 표시로 손에 불붙은 양초를 들고 있다. 고인을 추억하며 드리는 예배는 추도회라고 하며 죽은 뒤 3, 9, 40일에, 그리고 기제사에 행한다. 또한 고인의 명명일과 그 밖의 아무때나 행할 수 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교회에서 축하하는 기독교와 연관되는 축제일과는 별도로 조상의 명복을 비는 라두니차(부활제후 제1주째에 지냄), 루쌀리(고대 슬라브인의 死者추도제), 쎄미크(부활절후 제7주째의 목요일에 행해지는 민간제사)같은 추도행사가 거행되었다. 그리스도 강림절과 주현절 사이의 스뱌트키와 부활절 7주일 전의 마슬레니차 등도 그 기원을 보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제사지내고 다음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이상에서 살펴 본 러시아인들의 탄생, 결혼, 죽음과 관련된 의식은 슬라브민족의 전통적인 민간 신앙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그 위에 기독교적인 요소가 가미된 양상을 띄고 있다. 러시아에서 공식적으로 표현되는 탄생, 결혼, 장례의식은 기독교적인 것이지만, 실제로 여러 가지 의식 속에는 민간 신앙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