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예물을 드려 성소를 지으라[출 35장]

2006. 7. 17. 00:33목양자료/3.강해설교

출35: 여호와께 예물을 드려 성소를 지으라

언약 체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처음: 중보자를 산으로 부르심, 십계명과 언약의 말씀들, 모세가 기록함, 피로 언약을 체결함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심, 친히 쓰신 돌 판을 주려고 산으로 오르라 하심, 안식일에 모세를 맹렬한 불같은 영광 안으로 들어오게 하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성소를 산에서 보이신 식양대로 지으라 하심(언약적 관계에 치중, 궤-증거판-속죄소-만나시고 말씀하심 등등, 배열한 순서도 언약적 친교에 치중함), 지혜로운 직공, 대대의 표징으로 안식일 명령, 친히 쓰신 증거판을 주심.

갱신: 두 번째 돌 판을 주시려고 산으로 오르게 하심(34:),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심, 갱신된 언약의 말씀, 모세에게 기록하게 하심, 여호와께서 십계의 말씀을 기록함, 모세 얼굴의 광채, 성일로서 안식일을 명하심, 여호와의 성소를 위해 즐겁게 드리는 예물(예물의 종류와 만들 것), 성소를 지을 지혜로운 자들, 넘치는 예물, 유다지파의 지혜자가 만든 성소(순서와 배열이 준공과 관계됨), 증거막을 만든 지혜자와 성소의 재료(모든 자의 풍성한 헌신), 아론의 옷, 성소의 준공, 성소를 세움(준공 순서와 같음),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임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심

1- 3 안식일을 지키라 명하심
처음 언약 체결 시에 여호와께서 친히 기록한 돌 판을 주시기 위하여 안식일에 모세를 시내 산의 영광 안으로 부르시고, 그들 중에 거하실 성소의 식양을 이르시고, 성소를 지을 지혜 자들에 대한 말씀에 이어서, 안식일을 명하시고, 친히 쓰신 증거 판을 주셨다: 갱신된 언약의 판을 주시기 위하여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부르시고,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시고, 언약의 말씀을 이르시고, 모세가 이 말씀을 기록하고, 여호와께서 십계의 말씀을 돌판에 기록하셨다. 이어서 성소에서 여호와와 대면하여 말하는 모세의 얼굴의 영광과, 안식일에 대한 명령과, 이스라엘의 헌신과 지혜자들에 의한 성소의 준공과, 성소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인도하심을 기록한다.

처음 언약 체결에서 안식일을 지키라 명하시고 친히 기록하신 돌 판을 주셨다. 언약을 갱신할 때에는 친히 기록하신 돌 판을 주신 후에 모세의 얼굴의 영광을 말하고 이어서 안식일 명령과 성소를 지을 헌신과 지혜자들을 언급하신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언약 곧 성소의 안식과 관계된다. 처음 언약 체결 후에 명하신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의 대대의 표징으로 큰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영원한 표징인데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평안하셨기 때문이다. 언약을 갱신하신 후에 명하신 안식일은 성일로서 안식일이며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니 처소에서 불도 피워서는 안된다. 그날에 일하는 자는 죽이라. 자기 안식을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여호와를 범하는 자는 언약백성으로부터 제외된다.

하나님께서 이 안식을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와 살로 세우신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온전히 성취하셨다.

4- 9 여호와께 드릴 물품
여호와께 드릴 예물은 25:1-7과 같다. 마음에 원하는 자가 자기 소유 중에서 예물을 취하라고 명하신다. 출애굽 시에는 애굽의 보화가 이스라엘 자손에 의해서, 다윗 성전에는 그 권세와 지혜를 듣고자 하는 열국 백성의 영광이, 스룹바벨 성전에는 고레스가 머리인 열국의 보화가 드려졌다. 여호와께서 만국을 진동시키시고 만국의 보배로 그 전을 충만케 하리라는 언약이(학2:7-9)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 예수는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다. 성소에 나타내신 여호와의 평강이 주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교회에 주어졌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로서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리며 봉사한다.

10-19 여호와께서 만들도록 명하신 것
여호와께서 무릇 지혜로운 자로 만들게 하신 것은 성소의 기구와 성소를 섬기는 제사장의 거룩한 옷이다. 여호와의 지혜가 성소를 만든다. 여호와의 지혜의 영으로 채우심을 받은 백성이 여호와의 성소를 짓는다.

20-29 여호와의 성소를 위하여 예물을 드리는 자들과 그들이 드린 예물
여호와의 성소를 위하여 예물을 드리는 자들에 대해서 마음이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자라고 언급하며, 그들을 다시 여러 모로 언급하고 그들이 드리는 예물을 자세히 언급하며,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남녀가 드렸다고 결론한다. 그 목적은 그들 모두의 자원하는 헌신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30-35 성소의 기구를 만드는 지혜로운 자
유다지파 부사렐을 여호와께서 지명하여 부르시어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셨다. 또 단지파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고,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케하사 성소에 속한 굥교한 일을 연구하게 하셨다. 유다지파는 왕지파요 단지 파는 북쪽에 진을 친 지파들의 머리이다.
오늘은 35장이다. 34장 27절 28절에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언약의 말씀을 기록하고 하나님도 십계명의 말씀들을 돌 판에 기록해 주시고 그렇게 해서 이제 두 번째 언약이 체결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언약의 판을 들고 모세가 내려오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세우신 중보자의 영광이다. 그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났다. 그랬는데 백성들이 그 영광을 보기를 두려워 했기 때문에 모세가 수건을 가리웠고 그리고 여호와 앞에 들어갈때는 벗고 또 나오면 가리우고 그렇게 했다고 말씀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 중보자에게서 여호와의 영광이 빛나는데 그것이 곧 갱신된 언약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영광의 빛을 보지 못하도록 수건으로 가리웠다. 중보자에게는 그영광이 주어졌는데 아직 백성에게는 된 것이 아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오셔서 마치 모세가 성소안에서 들어가면 수건을 벗고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고 그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났던것처럼 이제는 성소에 계신 하나님이 친히 오셧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수건이 벗겨졌고 영광에서 영광에서 변한다고 말씀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도 구약을 읽을 때 모세의 책으로 읽으면 휘장이 가리워지고 하나님의 아들의 책으로 읽으면 휘장이 벗겨지는 것이라고 고후3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이제 언약 갱신을 따라서 새로운 성소를 지으라고 35장 이하에서 말씀하고 있다. 이 성소를 새로 짓는 일에 있어서도 언약 갱신의 의미가 나타나 있다. 먼저 35장 이하를 해석하기 위해서 특별히 35장1-2절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을 해석하기 위해서 언약 체결의 전체적인 틀을 보고 안식일에 계명이 그 언약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고 해석을 해야 될 것이다. 그러면 언약 체결의 순서를 보면 처음 언약 체결을 했을 때 아마 출19장부터 보면 될 것이다. 중보자를 산으로 부르셨고 그리고 십계명과 언약의 말씀을 이르셨고 그리고 모세가 그것을 기록하고 백성들은 다 지키겠나이다 대답하고 피로 언약을 체결했다. 24장에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언약 체결 뒤에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시는 언약 체결의 식사가 있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다. 내가 친히 돌 판에 말씀을 기록해 줄것이니까 산으로 올라오라 그렇게 말씀하셨고 모세가 산에 올라갓는데 엿새 동안에는 구름이 가리고 있다가 제 칠일 안식일에 하나님이 모세를 불렀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안으로 들어갔는데 백성들이 볼때는 맹렬한 불같았다.

그리고 이제 산으로 올라간 모세가 40일 동안 굶고 있었는데 거기서 여호와께서 성소에 대한 계시를 하셨다. 그것이 25-30장까지 나온 이야기다. 그 성소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성소고 산에서 본 식양대로 지어라.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범죄 하기 전까지 있었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성소를 지을 순서를 보면 언약적 관계에다가 치중을 한다. 그 성소에 대한 기사가 35장 이하에도 반복되고 있다. 특별히 36장부터 거의 똑 같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면 25장 있었던 성소에 대한 계시하고 36장부터 있는 성소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떻게 보면 거의 똑 같은 것처럼 되어 있다.

25장부터 있었던 것은 언약적 관계에다가 성소를 치중해서 성소도 내가 이스라엘 중에 거할 성소를 지어라. 하늘에서 본 식양대로 지어라 그렇게 말했고 그 설명도 보면 성소의 용도가 설명되어 있다. 그 궤를 만들고 거기다가 증거 판을 두어라. 그 위에다가 속죄소를 두어라. 내가 거기서 만나고 말씀하리라.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고 말씀하시는 장소로서 속죄소 그러나 여기 36장 이하에서는 그런 설명은 없다. 재료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있어도 그 용도에 대한 설명을 없다. 그러면 왜 앞에는 용도에 대한 설명이 있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중에 거하셔서 그들을 만나실 것인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교제의 처소로서 성소를 말하기 때문에 거기는 성소에 대한 용도들이 쭉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런데 36장 이하에서는 그 용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재료 헌신 거기가 강조가 되어 있다.

배열한 순서로 보면 언약적 친교에가 치중되어 있다. 가령 배열한 순서를 보면 36장 이하에서는 지성소로부터 뜰까지 나온다. 그런데 앞에 25장부터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법궤가 있고 떡상이 있고 등대가 있고 향단은 없다. 그 다음에 밖으로 나와서 번제단이 있고 그리고 그 다음에 제사장에 대한 말씀이 있고 나서 제사장의 봉사용으로 향단이 있다. 그러니까 거기서는 모든 기구의 배치나 기구의 내용 설명이 하나님이 어떻게 거기서 자기 백성을 만나시고 교제하시는가 하는 언약적 친교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고 36장에서는 언약적 친교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전체적으로 헌신해서 그 성소를 지었던가? 헌신에 의미에다 강조를 두었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순서로 그렇게 달라져 있다.
36장부터 순서는 언약적 친교가 아니라 성소를 세우는 준공하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순서대로 짓고 순서대로 배열하면 된다. 그것이 강조되어 있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는가 의미를 알겠지요? 처음에는 언약 체결이지만 여기서는 언약 갱신이다. 언약 갱신은 언약이 파괴되지 않고 시행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서들이 그렇게 조절되어 있다. 지금 언약 갱신에서는 이전에 언약이 무너지지 않고 집행되면 되겠지요? 그러니까 거기가 강조되어 있고 이전에는 내가 어떻게 너희와 함께 있겠는가? 그것이 더 강조되어 있다. 비교보면 알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지을 지혜로운 직공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나서 대대의 표징으로 안식일을 명령하고 그리고 친히 증거 판은 주심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31장까지 그렇게 되어 있다. 30장 까지는 성소에 대한 이야기고 31장에 보면 지혜로운 직공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안식일을 대대의 표징으로 지키라는 말씀 그리고 나서 친히 쓰신 돌판을 주셨다 그것이 31장에 내용이다. 그런데 언약을 갱신할때는 어떻게 되어 있냐면 34장에 보면 그것이 나온다. 이제 산으로 올라와라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나서 산에 오른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선포하시고 그리고 갱신된 언약의 내용들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가나안 땅의 정복과 그 땅의 큰 축제다. 그리고 그 말씀을 모세보고 기록하라고 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십계명의 말씀을 기록했다. 거기 까지가 34장28절 까지다.
일단 기록하면 언약은 완성된 것이다. 왜 문서에다가 싸인을 했으니까 그렇다. 그리고 나서 35장 그 후반부를 보면 모세 얼굴에 광채가 난 이야기 그리고 35장에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있고 그 다음에 4절부터 보면 이제 하나님 앞에 즐겁게 예물을 드려라. 또 성소를 어떻게 지혜로운 자들이 지을 것인가? 그리고 물건을 가져왔는데 넘쳤더라.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지혜 자들을 임명하셨는데 유다 지파의 브사렐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성소에 배열이 쭉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준공 검사가 있는데 그것이 38장 21절이다.
그러니까 38장 21절까지는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 브사렐이 만든 성소에 대한 재료와 종류들이 쭉 기록되어 있고 그리고 38장 21절에 보면 어떤 재료로 쭉 지었더라는 준공검사 이야기가 있다. 재료들이 쭉 기록되어 있다. 그 다음 39장32절에 진짜 준공검사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40장에 보면 성소를 세웠는데 세우는 순서로 그 앞에 준공검사 순서하고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그 성소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했는데 그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다. 그렇게 해서 끝나고 있다. 왜 이렇게 전체적인 것을 보냐면 지금 성소를 지으라는 말로서 성소를 지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 언약의 거처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언약이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이루시고 그것을 기록해 주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리고 말씀을 기록해 주기 전에 함께 거하실 성소에 대한 규례를 쭉 이야기 하고 그것이 끝나니까 말씀을 기록해서 보냈다. 그러니까 성소가 언약의 목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심 그것이 목표다. 그러니까 언약 갱신에 대해서도 언약의 말씀을 새롭게 하시고 다시 성소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보면 지루하다. 왜냐하면 거의 반복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또 단순히 반복되어 있으면 좀 그런데 반복 자체에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 언약의 관계에 강조를 주어져 있고 그 다음에 언약이 갱신된 뒤로 성소를 지으라 했을 때는 그 성소에 모든 백성이 참여하고 그리고 영광스럽게 짓고 그리고 그 건물이 완성됐다는 의미로 구조가 되어 있다. 어떤 식이냐면 제일 처음에는 성소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고 나서 성소를 지을 지혜로운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언약을 갱신한 뒤로는 업자부터 고른 식이다. 처음부터 안식을 먼저 말씀하고 그리고 나서 거기 보니까 지혜로운 자들을 길게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성소를 이야기하고 나서 안식일을 말하고나서 소위 업자 이야기를 한 식이다.
그러니까 짓는 것과 안식이 뒤로 돌려져 있다. 그리고 나서 돌 판에 법을 새겨 주셨더라 그렇게 해서 마무리가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제 먼저 안식일을부터 말하고 그 다음에 성소를 지을 지혜로운 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그 다음에 성소에 대한 이러저런 한 일이 쭉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미 순서가 바꿔져 있다. 그리고 성소를 지으라는 순서도 언약적 관계에다가 강조를 둔 것이 아니라 준공검사하는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세우는 방식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순서로 이미 건물이 지어진것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준공 검사 했더라 하고 끝나고 있다. 다시 재료를 쭉 검사하고 나서 준공검사를 한 이야기로 끝나고 있다. 그러니까 이미 순서가 바꿔져 있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반복법만은 아니다. 그런 것을 비교해서 읽어봐야 좋을 것이다.

이제 구체적인 순서로 들어가서 강론하겠다.

1- 3 안식일을 지키라 명하신다. 그러면 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그러면 4 계명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 말인가? 그런 말이 아니라 이 언약 갱신과의 관계에서 안식일이다. 언약 갱신에 있어서 안식일의 의미 언약에 있어서 안식일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의미를 보아야 한다.

처음 언약 체결 시에 여호와께서 친히 기록한 돌 판을 주시기 위하여 안식일에 모세를 시내 산의 영광 안으로 부르시고, 그들 중에 거하실 성소의 식양을 이르시고, 성소를 지을 지혜자들에 대한 말씀에 이어서, 안식일을 명하시고, 친히 쓰신 증거판을 주셨다. 그러니까 처음 언약 체결을 보니까 안식일에 돌판에 쓴 법을 주기 위해서 불렀고 또 그동안 40일 동안 성소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하고 나서 그것이 끝나고 난 뒤로 그 성소를 지을 지혜자를 언급하고 나서 안식일을 지켜라. 그리고 나서 돌판에 쓰신 법을주셨다. 그러니까 처음 언약 체결도 안식일로 시작해서 안식일로 끝난 내용이다. 안식일에 대한 문제가 언약 체결의 핵심이다.
갱신된 언약의 판을 주시기 위하여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부르시고,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시고, 언약의 말씀을 이르시고, 모세가 이 말씀을 기록하고, 여호와께서 십계의 말씀을 돌판에 기록하셨다. 이어서 성소에서 여호와와 대면하여 말하는 모세의 얼굴의 영광과, 안식일에 대한 명령과, 이스라엘의 헌신과 지혜자들에 의한 성소의 준공과, 성소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인도하심을 기록한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언약 체결을 하고 나서 새로운 성소를 지어라 했을 때 그 성소는 어떤 성소냐면 모세 얼굴에 그 영광이 빛나는 성소가 같다. 처음 언약 체결 시에는 모세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는 모세의 얼굴에 영광이 나타난 것은 아니고 오히려 40일 동안 굶었다는데 강조가 있다. 그런데 두 번째 언약의 갱신이 있을 때는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났고 그 빛나는 영광의 의미로 성소를 짓는 것이다. 처음 언약 체결은 안식일에 빽빽한 구름가운데로 모세를 부르신 그런 의미의 성소면 언약 갱신이 된 의미의 성소는 모세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의미로 성소다. 그렇게 배열이 되어 있다.
처음에 모세는 이런 영광을 갖지를 안했다. 두 번째 올라갔다 내려왔을 때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로 성소를 지어라 했을 때 성소 지으라는 처음에다 무엇을 배열하고 있냐면 안식일에 대한 명령을 배열하고 있다.

그러면 이 안식일이 어떤 의미냐? 처음 언약 체결에서 안식일을 지키라 명하시고 친히 기록하신 돌 판을 주셨다. 언약을 갱신할 때에는 친히 기록하신 돌 판을 주신 후에 모세의 얼굴의 영광을 말하고 이어서 안식일 명령과 성소를 지을 헌신과 지혜자들을 언급하신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언약 곧 성소의 안식과 관계된다. 장소 적으로 성소면 날에 있어서는 안식일과 관계되도록 되어 있다. 처음 언약 체결 후에 명하신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의 대대의 표징으로 큰 안식일이다. 31장13저부터 보면 안식일을 지켜라. 나와 너희 사이에 대대에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라. 안식일을 지켜라.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니라. 만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그리고 나서 돌 판에 법을 기록해 주셨다. 처음 안식일은 무엇이라고 설명을 했냐면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의 대대의 표징으로 큰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영원한 표징인데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평안하셨기 때문이다. 언약을 갱신하신 후에 명하신 안식일은 성일로서 안식일이며 여호와께 특별한 안식일이니 처소에서 불도 피워서는 안된다. 그날에 일하는 자는 죽이라. 자기 안식을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여호와를 범하는 자는 언약 백성으로부터 제외된다. 왜 안식일날 일하면 죽이는가? 법을 어겼으니 죽여라 하는 것은 재판 개념이 아니라 처음 언약 개념에서는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여호와라. 거룩하게 한다 그 말은 안식일에 쉼에서 나타나 있다. 성소의 교제에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안식일에 쉼에서 나타나 있다. 그것이 곧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거룩한 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그날 일하면 하나님을 그들의 안식의 주로 시인하지 않고 자기 손의 수고로 먹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죽음이다. 단순히 너무 높은 법을 어겼으니까 죽어라 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안식의 주인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의 세계로부터 제외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죽음이다. 그것은 언약적 관계다. 나는 너를 거룩하게 하는 자다. 이것은 영원한 너와 나의 표징이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언약을 갱신하고 난 뒤로는 그렇게 설명한 것보다도 이 안식일은 성일이고 여호와께 큰 안식일인데 특별한 날이다. 내가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에 쉬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 백성과의 관계로 설명한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한다. 나는 너희를 내 소유로 삼는다. 그런데 가 안식일을 둔 것이 아니라 천지 창조와 제 칠일에 쉼에다 강조를 두고 있다. 천지 창조와 제 칠일에 쉼 그런 의미로 내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다. 그렇게 되어 있다.
천지를 창조하고 나서 제 칠일에 쉬었다. 왜 그가 창조자고 그가 자기 백성에게 안식을 주는 자다. 그런 의미로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노라. 그러니까 그날에 쉬어라 그렇게 되어 있다. 만일에 그 날에 일하면 죽여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 자기 백성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분으로 하나님의 쉼에 자기 백성을 참여시키는 쉼으로 말씀하고 있다. 그 의미와 성소를 연결시키고 있다. 처음 성소는 안식일과 연결시킬 때 거룩하게 하는 분으로서 안식 하나님의 성소에 자기 백성을 출입시키는 분으로서 안식 거룩한 교제에다가 강조를 두었고 여기서는 역사의 완성에다가 강조를 두었다. 나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 쉬었다. 너희들이 나와 함께 쉬자. 그런 의미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신 분으로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안식을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와 살로 세우신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온전히 성취하셨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께서 이 안식을 성취하셨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하셨다. 구약 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표자 모세를 중보자로 세우시고 안식을 주셨다. 그런데 이 언약의 완성은 중보자가 하나님의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안식일에 주인이시고 그가 자기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셨다. 이분은 모세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얼굴 꺼풀에 빛나는 분이 아니라 그리소 성소에 들어갈 때만 수건을 벗고 나와서는 가리운 분이 아니라 그는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 분이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완성하셨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안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우리가 주님의 부활의 상에 앉는 것이다. 이것이 내 살이요 내 피다. 우리의 먹고 마시는 일상의 양식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상에 축제의 떡 구약의 하나님의 성소에는 떡상과 포도주가 있었고 그리고 그 밖에 뜰에는 그 단에다가 번제의 제물을 불태웠다. 하나님의 떡상에는 고기를 안 드린다. 그런데 그것을 연합시키고 있어서 내 살과 피라 하면서 성소 안에 제사장의 양식인 떡과 포도주에다가 그것을 연결시키고 있다. 요6장을 보면 보리떡 다섯 개와 일용할 양식을 그렇게 연결시키고 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참 안식을 누린다.
왜냐하면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셔서 역사를 죽음이 정복된 하늘에 속한 새로운 세계로 완성하셨다. 그가 참으로 우리의 생명의 주님이시오 안식의 주이시다. 그날 주의 상에 앉는 것을 대수롭게 생각하고 다른 일로 움직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런 의미로 주의 상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성찬식 할 때만 빨리 오고 우리 집에서도 일하다가 밥먹을 때만 빨리 들어오면 되니까 그러면 될 것이 아니냐? 그런데 성경은 기본적으로 구약의 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온 날을 즐거운 날로 지내도록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예수의 부활의 날에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가 모여서 부활하신 주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데 그것이 구약의 성소의 완성이다. 예수님은 모세같은 그런 분이 아니라 성소에 계신 하나님이 오셨기 때문에 그는 영광의 광체가 빛나고 우리는 그 얼굴을 대면함으로 모세가 성소에서 하나님을 뵌것처럼 휘장을 벗는 자유하는 아들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고 모세처럼 수건을 쓰지 않는다. 우리는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완성하셨다.

4- 9 여호와께 드릴 물품이 쭉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여호와께 드릴 예물은 25:1-7과 같다. 마음에 원하는 자가 자기 소유 중에서 예물을 취하라고 명하신다. 출애굽 시에는 애굽의 보화가 이스라엘 자손에 의해서, 다윗 성전에는 그 권세와 지혜를 듣고자 하는 열국 백성의 영광이, 스룹바벨 성전에는 고레스가 머리인 열국의 보화가 드려졌다. 여호와께서 만국을 진동시키시고 만국의 보배로 그 전을 충만케 하리라는 언약이(학2:7-9)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 예수는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다. 성소에 나타내신 여호와의 평강이 주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교회에 주어졌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로서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리며 봉사한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하고 스룹바벨의 인도로 돌아왔을 때 성전을 지었다. 그것은 성전은 고레스 임금이 자기 왕궁의 보화로 지으라고 했다. 그리고 원하는 자는 돌아가서 여호와의 전을 지어라. 그래서 돌아갔다.
그때 원수의 박해가 있어서 성전을 짓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열국을 진동하리라. 그렇게 해서 그 모든 보화를 이전으로 들어오게 하리라. 그리고 너희에게 평강을 주리라. 이 평강은 그냥 예수 믿고 마음이 기쁘다 그 말이 아니라 열국의 권세를 정복하신 평강이다. 그 평강을 너희에게 주리라. 그 평강은 모든 열국의 보화가 모아 드는 평강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 평화를 예수 안에서 완성하셨다. 처음 성전에 있는 영광은 애굽에 모든 보화로 드려진 영광이고 평화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원해서 드렸고 바로는 자원해서 드리지 않았다. 핍박 자였다. 그리고 그 성전이 완성된 다윗 시대 때는 이방이 자원해서 드린 것이 아니었고 다윗이 정복해서 그 모든 보화로 성전을 짓도록 했다. 그런데도 칼의 권세로 정복해서 성전을 짓지 못하도록 했지만 그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는데 그는 자기 아버지의 것으로 지었을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남방 여왕이 모든 보화를 가지고 들어온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평화 모든 세계가 정복되고 모든 세계가 여호와께 즐거이 헌신하는 온전한 평화와 영광을 솔로몬 성전에서 드러내셨다.
나중에 바벨론 성전에서 이제 고레스 임금이 이방인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해서 잡혀갔다. 이방인 임금이 여호와께서 나를 세워서 이렇게 천하 만국을 정복하게 했는데 여호와를 위해서 전을 짓고 나와 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게 해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했다. 누구든지 자원하는 자는 돌아가거라. 이방 임금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 성전이 어려웠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고레스를 통해서 만국을 진동한 정도가 아니라 내가 새롭게 만국을 진동해서 모든 보화로 이 전으로 모이게 하리라. 그리고 이 전에 평강을 주리라. 그 평강은 천하 만민이 복종하는 평강이요 천하 만민이 그 보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리는 평화다. 그런데 그 일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성하셨다.
예수는 고레스 같은 임금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왕이다. 그런 권세의 왕이기 때문에 천하 만민이 그에게 복종하고 이제 교회가 그의 모든 생명으로 그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몸된 교회를 짓기 위해서 헌신하고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내서 돌 위에 돌이 놓인 것처럼 우주적인 성소를 짓도록 움직이다. 단순히 예배당 짓는데 돈을 낸다 그 말이 아니다. 천하 만민이 그의 거처가 되도록 우리가 몸으로 헌신한다. 이 일을 위해서 즐거이 자원해서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낸다. 우리 먹고 마시는 모든 것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의 영광 천하 만민이 예수님께서 복종하는 영광을 위해서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린다.
10-19에서는 여호와께서 만들도록 그런 성소에 기구들에 대해서 쭉 말씀하고 있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의 명하신 것을 만들지니 성막과 증거궤와 상과 쭉 순서대로 되어 있는데 이 순서가 무엇과 일치되느냐? 준공 순서와 거의 같다. 처음에는 이런 순서가 아니다. 여기서는 먼저 성막의 지붕을 덮고 그 다음에 벽을 만들고 그 속에다가 증거궤와 속죄소와 그리고 나서 휘장으로 가리우고 그 앞에 상을 놓고 등대와 향단을 놓고 또 문을 닫고 그 다음에 뜰 밖에다가 번제단을 놓고 그 다음에 포장을 쳐서 뜰을 만들고 문을 만들고 그리고 나서 성소를 봉사할 제사장의 옷을 만들고 그러면 끝난다.

그런데 처음 25장은 이런 순서가 아니다. 관계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기 때문에 먼저 궤부터 이야기를 한다. 그 궤에다가 증거 판을 넣어라. 내가 거기서 모세를 만나리라. 그 다음에 떡상을 말하고 등대를 말하고 그 다음에 휘장을 치고 나면 단을 말한다. 이것이 전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만나시는 곳이다. 그리고 나서 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제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제사장의 봉사할 향단에 대한 이야기를 뒤에다 놓고 있다. 관계에다 치중을 하니까 그렇다. 여기서는 준공 순서와 일치된 방식으로 말씀하고 있다. 이쯤 했으면 거의다 된 것이다. 그런 순서로 되어 있다.

20-29에 보면 그들이 어떻게 자원해서 예물을 드렸는가? 처음 25장에는 많은 제물을 드렸다는 이야기는 없다. 자원하는 자들이 이런 저런 예물을 드렸다 예물의 종류만 있고 그 예물은 내가 너희 중에 거할 성소를 지어라. 그 예물과 성서와 일치되어 있다. 그것만 있지 어떻게 예물을 많이 드렸는가 하는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성소를 지으라고 새롭게 명령했을 때는 그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이 풍성하게 모아 들었다. 하는데다가 강조가 되어 있다. 돈이 다 준비가 된 것이다. 그전에는 재료만 강조했는데 이제는 그 재료를 모든 사람들이 즐거이 냈다. 그 전에는 즐거워하는 자만 내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 20절부터는 모든 사람들이 즐거이 냈다 거기가 강조가 주어져 있다. 본문을 보면 더욱 좋다. 21절을 보면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원하는 자가 와서 (이 무릇 하는 것은 실은 모든 그런 말이다)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해서 이러이러한 것을 냈다. 그리고 22절에 또 반복하기를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핀 보니까 몸에 있는 것 다 빼냈다. 그전에는 이런 언급이 없다. 자원하는 자는 이런 것을 내라. 그리고 그 자원하는 것으로 내가 거할 성소를 지어라. 그런 언약 적인 관계만 있는데 여기는 구체적인 헌신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감동된 자 자원한 자 무릇 무릇 모든 쓸 것을 다 냈다. 그리고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몸에 있는 것 다 빼냈다. 읽으면 그 말이다. 가슴핀 귀고리 목거리 여러 가지 금품 그리고 거기도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보니까 안 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몸에 있는 것을 자기 영광을 위해서 부착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전부 여호와의 전에 드렸다는 구조다. 또 무릇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과 이런 것을 다 가져왔고 무릇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자는 가져다가 드렸고 무릇 25절은 마음이 슬기로운 여인은 가져왔고 26절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여인이 가져왔고 모든 족장은 더 귀한 보석 호마노 또 에봇에 물릴 보석들을 가져왔고 29절 총 결론에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의 남녀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빙자해서 만들도록 명하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 이러하였더라. 이것이 구약 기록 법이다. 읽어보니까 알도록 되어 있다. 그냥 너무너무 좋아서 기록한 것 같다.
마음에 감동된 자 자원하는 자 무릇 남녀 이것 있는 자 저것 있는 자 있는 대로 각각 그리고 총 결론에 남녀가 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25장에는 이런 기록이 아니다. 자원하는 자는 가져와라 그리고 제물 종류만 있다. 종류는 여기와 순서가 같다. 그리고 나서 하는 말씀이 내가 거할 성소를 지어라. 그렇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그들이 어떻게 자원하고 즐거워하고 모든 사람이 기뻐서 냈는가? 있는 것을 다 냈는가? 있는 대로 다 내 놨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으로 예배당 짓자고 설교하면 안된다. 이것은 구약의 성소나 성막을 신약에 예배당과 연결시키면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거하시는 집으로서 여호와의 영광이었다. 그렇지만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다. 물론 여러분이 교회 예배 처소를 위해서 헌신하고 또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과 이 본문을 연결시키는 것은 다르다 그 말이다.
구약에 있는 모든 제도들을 신약의 제도와 연결시키면 안된다. 자기 집들을 60평 살면서 예배당은 전세 집이냐? 맞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것은 우리의 신앙 자세에서 적용하는 것이지 구약 성경은 그대로 인용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말이다. 구약 성경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예배당이 초등 학교 건물보다 작다. 돈은 더 많이 주어서 실하게 지었는가 몰라도 그리고 돈도 별로 안 들겠구나. 가정집처럼 인테리어가 많이 들어가야 돈이 들지 벽만 쭉 있고 그러니까 돈도 별로 안든 것이다. 그러면 이제 마호멧 교도처럼 돔을 금으로 도금하면 돈이 좀 들까 별로 돈든 것이 아니다. 자기 주택 5-60평 짜리면 아파트 백평 짓는 것보다 훨씬 돈이 더 들것이다. 그리고 크기로 하면 초등 학교가 훨신 더 크고 그러니까 그런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다. 구약 성소와 제사장의 제도를 교회 조직에 붙이면 안된다. 이것은 여호와의 영광의 거처로서 성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30-35절부터 보면 이제 성소의 기구를 만드는 지혜로운 자들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다. 그 언급은 실은 36장까지 넘어가고 있는데 36장에는 명한대로 할것이냐 명령이 있기 때문에 단을 나누고 있는 것이고 31장1-3절 까지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출3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출31:2)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출31:3)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재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셨다. 31장에서는 이런 지혜자를 언급했을 때도 모세에게 언급했다. 모세야 내가 누구를 지명해서 불렀다 이런 언급인데 여기35장에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봐라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지명해서 불렀지 않냐? 온 백성에게 소개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온 백성이 이 사람들이 전을 짓는 것으로 알고 함께 봉사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지혜 자들이 백성과 연결 되어 있다. 소개하는 내용도 달라 있다.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공교한 일을 연구하고 금 은 놋으로 일하게 하시며 보석을 깎고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공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또 단지파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고,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케하사 성소에 속한 굥교한 일을 연구하게 하셨다. 그리고 나서 브사렐과 오홀리압과 마음에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의 모든 일을 하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 여호와의 무릇 명하신대로 할것이니라. 명령이 나온다. 모든 백성에게 이런 지혜로운 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보니까 하나님께서 그 신으로 충만케 하사 지혜와 총명으로 충만케 하신 자들이다.

이런 것을 일반 은총 예술가를 이쪽으로 연결하면 옳지 않다. 금은으로 장식하니까 아주 고상한 예술품으로 장식했는데 이런 예술적인 은사도 성령의 은사다. 일반 은총의 영역이 그렇다. 그런 신학적인 이야기를 하라 그 말이 아니라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지혜를 충만케 한 것이 아니라 유다 지파 브사렐을 충만케 하시고 단 지파 오홀리압을 충만케 해서 그에게 보조자를 세웠다. 대장은 브사렐이고 보조자가 오홀리압이고 또 그들로 여러 사람을 가르쳐서 이 일을 하게 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예술에 대한 연구하라는 성구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들을 지도해서 여호와의 전을 짓도록 했다. 여호와의 전을 짓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그 신으로 말미암아 유다 지파를 통해서 지으셨다. 그리고 유다 지파와 함께 한 단 지파와 그리고 그들이 가르친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지었다 그런 말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한 사람은 유다 지파다. 그리고 단 지파는 북쪽에 진을 진 지파의 머리 지파다. 나중에 이 단지 파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이름이 빠져 있다. 역대기에서 돌아왔을 때 빠져 있고 그리고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소가 있는데 거기 기초돌에서도 이름이 빠져있다. 그리고 십사만 사천명을 세는 자리에서도 단 지파는 빠져 있다. 빠져 있는 이야기는 아마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우상 지파로 전락한데서 원인을 찾아야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어떻든 왕 지파와 북쪽의 진을 친 머리 지파가 연결 되어 있고 여러 사람들이 연합되어 있다. 여호와의 신이 그들을 지도해서 그렇게 하셨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신이 그 성소를 짓는데 유다 지파인 사람을 통해서 지었다 그런 말이다. 그런데 유다 지파로 성령이 충만해서 여호와의 전을 지은 사람이 있다. 그는 참을 하나님께서 지혜로 충만케 하신 자인데 솔로몬이다. 솔로몬이 그 전을 지었따. 그리고 유다 지파로 오셔서 하나님의 온전한 새 전을 짓는 분이 있다. 그가 성령으로 출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신데 그는 유다 지파다. 그가 그의 백성을 그의 영으로 충만케 하셔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우주적인 성소로 교회를 완성하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예술은사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교회다. 교회는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 하나님이 그 영을 한량없이 주시고 친히 오셔서 그의 영을 교회 가운데 부으셔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가 되도록 하셨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해서 영원히 함께 하는 신령한 성소를 지은 것이다. 그렇게 연결이 된다.
앞에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을 했기 때문에 뒤에 생략을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표현 양식을 보니까 뉘앙스가 달라져 있다. 여기서는 많은 백성이 그에게 연결되어 있다. 그전에는 그런 언급이 아니다. 언약 갱신에 있어서는 자원하고 기뻐하고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지배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충만해서 그 전을 짓는데 36장 보니까 그 예물이 너무 많아서 그만 가져오도록 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드리고 성전을 지었다. 그것이 지금 예배당 짓는데 돈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낸 데서 완성이 된 것이다. 여러분의 모든 수고는 주의 전을 짓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거처로 만민을 회개시키는 일에 우리가 주님의 손으로 수고하는 것이다. 그것이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신 분이 그의 영을 우리에게 부으셔서 우리를 통해서 짓고 있는 전이시다.
그러니까 안식일이 단순히 날 지키는 문제가 아니다. 주님의 부활의 날에 부활하신 주님의 상에서 새로운 양식을 먹고 마시고 새로운 지체들과 하나를 이루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땅에서 누리는 영광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모든 수고를 다 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전도에도 힘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임에서 가난한 자들이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도록 헌신해야 된다. 그런 의미로 우리가 헌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헌신해서 교회가 평안히 예배해야 될 것이다. 자꾸 셋방이나 옮겨 다니고 이렇게 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다. 여러분이 가난하면 하나님도 가난할것이니까 할 수 없다. 우리가 평안히 살면서 아이고 교회는 그냥 모이는 장소이까 별볼일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고 또 우상적으로 해서 여기다 금장식을 많이 해야 영광이다 그런 말도 합당치 않다.
정당한 분별력을 통해서 교회가 예배할 수 있는 안정된 처소에 그리고 아늑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도록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더 신앙이 성장하고 개인 집도 풀리겠지요? 그런데 다 풀려서 일하는 법은 없다. 필요를 따라서 일하고 그 일을 따라서 마음을 쏟고 그렇게 된 것이지 여유 분을 가지고 일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방식은 아니다. 단지 한국 교회가 너무 강조하니까 있는 것으로 봉사한다는 원칙을 말한 것이지 잘못하면 남은 것으로 봉사한다는 것이 있는 대로 봉사한 것처럼 이해하면 안된다.
있는 것은 여러분이 분별력을 따라서 써야 하는 것이지 남은 것이 있는 것인 줄 알고 다 쓰고 나서 내게 있는 것이 얼마인고 이렇고 교회를 봉사하려고 보면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있다는 말은 쓰고 남은 것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여러분이 주어진 것으로 여러분이 분별해 내야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할것인지 분별하면 된다.
도시에서는 예배당 짓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우리가 안정된 장소에서 예배의 분위기가 평안하면 좋을 것이다. 예배 드리는데 더워서 선풍기 틀어서 선풍기 소리인데 목사 소리인지 모르게 윙윙 소리가 나고 그러면 아이들이 짜증나니까 울고 그러면 안 좋다.
그리고 지금은 다 쓰고 있다가 교회가 헌금합시다 그러면 그 때 하려고 하지 말고 여러분이 다른 일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계획을 가지고 적금도 한다. 자기 가정 일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교회는 어느 날 헌금합시다 그러면 그 때부터 하려고 하지 말고 여러분 자신들이 선한 계획을 가지고 예비하고 그렇게 하고 필요하면 힘을 합해서 할 때는 그 때 그것으로 힘을 발휘하고 그런 자기 계획들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냥 목사가 프로그램을 내 가지고 하루에 천원이면 쌉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에 버스만 타도 얼만데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봉사합시다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봉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돈 모으는 아이디어는 될지 몰라도 하나님을 봉사하는 것은 모든 힘을 다하는 것이지 무엇좀 아껴서 이런 것은 힘이 많이 안 들거든.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 아이디어를 가르치면 아 멋있고 힘있는 것 같이 그렇게 하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계획을 가지기 바란다. 여러분 자신들이 어떻게 전도하고 또 교회가 어떻게 모여서 예배할지 그런 문제에 계획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여러분의 계획을 따라 교회에 발표하기도 하고 교회가 그런 조건이 나타나게 되면 그런 힘을 결집시켜서 일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회를 위해서 적금하고 있는 사람은 없지요? 내가 나중에 우리 예배당 지을 때 헌금하게 지금부터 모아야 되겠다. 아마 그런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이들 문제는 결혼해서부터 계획을 가지는데 하나님을 봉사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런 계획이 없다. 그것이 교회가 프로그램을 가지고 명령해서 보다도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교회를 섬결지 계획을 가지고 만민이 복종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만들것인가? 하는 것을 기도해야한다. 천하 만민을 복종시킨 주님의 영의 계획이 여러분 안에 있으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한다. 그것이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내는것이고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조절하고 그런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 안에 주님의 영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
이제 36장부터는 진도가 훨씬 빠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 것을 반복하는데 핵심 즉 기록하는 목표만 다르니까 그것에만 조절해서 40장까지 뛰어 넘어갈 것이다. 한 두 시간이면 출애굽기를 마칠 것이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강론을 통해서 은혜를 입히셨는지 우리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 강론을 통해서 여러분의 신앙이 더 성장되고 천하 만민을 주님의 소유 삼으시는 주의 진리의 영을 따라 여러분이 주님의 교회를 이루는데 더욱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