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의 준공[출36-39장]

2006. 7. 17. 00:34목양자료/3.강해설교

출36:-39 성소의 준공

처음 언약을 체결하시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성소를 짓도록 명하실 때(25:-31:)에는 성소를 산에서 보이신 식양대로 짓게 하셨고 같은 말로 긑 맺으며, 성소의 순서와 내용은 언약적 관계에 치중하여 언급하셨다. 언약을 갱신하실 때에는 즐거이 드리는 백성들의 헌신과 여호와의 지혜의 영의 부으심을 받은 자들의 자원하는 헌신에 치중하여 기록하며, 순서와 내용도 성소의 준공과 만드는 법과 관련하여 기록하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는 말로 긑 맺는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거처는 중보자를 통해서 이루시며 여호와의 지혜의 영으로 이루시며 여호와의 지혜의 영으로 부으심을 받은 백성의 자원하는 헌신으로 이루시며 유다 지파의 후손을 통해서 이루신다. 이 은혜의 동거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영을 교회에 부으심으로 완성하셨다. 교회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을 주께 드리며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새 이스라엘이다.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하도록 여호와의 명하심을 받은 자들은 브사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여호와의 지혜로 부으심을 받은 백성이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소를 지으며, 짓는 자를 "그들이" 또는 "그가" 라고 언급한다. 여기서 그는 유다지파인 브사렐이다.
그러한 자들은 여호와께 지혜를 얻은 자들이며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다. 그러한 자들을 모세가 불렀다. 그들이 모세에게서 예물을 받았다. 그 예물은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속하여 가져왔기 때문에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았다. 그러므로 백성에게 가져오는 것을 멈추도록 하였다. 이미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았다.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 만든 성소의 일은 다음과 같다. 성막, 성막을 덮는 웃덮개, 성막을 세울 널판, 띠, 휘장과 문의 기등, 언약 궤와 속죄소, 떡상, 등애, 분향할 단, 번제단, 물두멍, 성막의 뜰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언약적 관계를 나타내는 용도 보다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을 따라서 기록하였다. 38:8에 물두멍을 만드는 재료에 대해서 언급한 것도 그러한 특징이다.
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이 쓴 물품의 목록은 모세의 명을 따라서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계산하였다. 유다 지파 부사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한 모든 것을 만들었다. 단 지파 오홀리압이 그와 함께 하였는데 그는 재능이 있어서 조각하며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를 놓았다. 레위지파와 그들의 감독인 아론의 아들과 부사렐과 오홀리압을 언급한다.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를 대표한다.
성소의 건축 비용을 성소의 세겔대로 합산한다. 특별히 은에 대해서는 조사를 받아 속전을 낸 자의 수를 언급하며 그것으로 만든 기구를 자세히 기술한다. 또 놋으로 만든 기구도 자세히 언급한다. 30:11-16에서는 제사장의 봉사 문맥에서 속전의 의미를 말씀하셨는데 속전은 이스라엘의 생명을 속하여 여호와 앞에서 기념이 되게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조사 받은 자의 전체 수와 그것으로 만든 기구들에 치중하여 기술한다. 이스라엘의 헌신은 속전의 의미이며 성소의 기구에서 여호와 앞에 영원히 기념된다.
제사장의 의복도 청색 자색 홍색실의 재료와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함과 거룩함으로 언급하며 만드는 방법에 치중하여 기록한다(39:3).
이스라엘 자손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준공하여 모세에게 가져왔다. 가져온 순서는 레위의 아들들이 성막을 메는 것과 일치한다(민3:21-37).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친 것으로 본즉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을 축복하였다. 여호와의 명을 이루신 중보자께서 백성을 축복하였다.


문단 구분이 많아서 구분 없이 설명을 했다. 먼저 주보를 읽으면서 말씀을 드리겠다.

처음 언약을 체결하시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성소를 짓도록 명하실 때(25:-31:)에는 성소를 산에서 보이신 식양대로 짓게 하셨고 같은 말로 긑 맺으며, 성소의 순서와 내용은 언약적 관계에 치중하여 언급하셨다. 언약을 갱신하실 때에는 즐거이 드리는 백성들의 헌신과 여호와의 지혜의 영의 부으심을 받은 자들의 자원하는 헌신에 치중하여 기록하며, 순서와 내용도 성소의 준공과 만드는 법과 관련하여 기록하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는 말로 긑 맺는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거처는 중보자를 통해서 이루시며 여호와의 지혜의 영으로 이루시며 여호와의 지혜의 영으로 부으심을 받은 백성의 자원하는 헌신으로 이루시며 유다 지파의 후손을 통해서 이루신다.
이 은혜의 동거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영을 교회에 부으심으로 완성하셨다. 교회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을 주께 드리며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새 이스라엘이다.

이것이 36-39장 까지의 전체의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작은 문단을 따라 설명을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 성소에 대한 문제가 25장부터31장 까지도 있다. 모세를 산으로 부르시고 내가 너에게 돌판에 법을 써서 주시리라. 부르시고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도록 까지 주어진 계시가 성소에 대한 계시였다. 그래서 25-31장 까지 성소를 짓는 규례가 쭉 나온다.
그런데 거기서는 어떻게 성소를 지으라고 했냐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실 거처로서 성소를 짓게 하셨고 그리고 산에서 본 식양대로 지어라 그렇게 시작해서 그 말로 끝난다. 산에서 본 식양대로 하는 것이 성소에 대한 계시의 핵심적인 언어였다. 그리고 그 뒤에 성소 기구에 대한 배열과 내용을 보면 언약적 관계에 치중하여 말씀하셨다. 무슨 말이냐면 그 내용을 보아도 가령 지성소를 만들어라 하면 어떤 지성소인가? 내가 거기서 너와 만나리라. 의미가 있다. 또 등대를 만들어라. 용도는 항상 내 앞에 빛을 비추게 해라. 떡 상을 만들어라. 그것은 항상 내 앞에 떡을 진설해라. 그런 용도가 설명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순서를 보면 법궤 그리고 속죄소 그리고 지성소로부터 떡상 등대 그리고 앞으로 나와서 번제단 그리고 나서 제사장의 이야기를 쭉 하고 나서 다시 향단으로 출발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만나는 단들로부터 출발을 해서 그 다음에 백성의 대표자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오는가로 마무리 되어 있다. 그 내용도 내가 그 앞에서 너를 만나리라. 너는 내앞에 항상 떡을 진설해라. 하는 그런 언약적인 관계로 내용이 되어 있다. 그것이 25-31장 까지 내용이다. 왜냐하면 언약 체결의 장면이기 때문에 처음 언약 체결에서는 그 배열되는 순서와 내용이 언약적인 관계와 관계되게 전부 기록이 되어 있고 그리고 그 시작하는 말로 끝맺는 말은 내가 산에서 본 식양대로 지어라. 그 말이 시작하고 끝맺는 말로 반복되어 있었다. 더구나 구약은 반복법으로 가르치니까 그런데도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읽어보면 반복의 뉘앙스 차이가 있다. 그런 것을 잘 분별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언약을 갱신할때는 어떻게 하느냐? 처음 언약을 체결하실때는 성소를 여호와의 거처로 짓도록 했고 그리고 그 내용과 순서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언약적인 관계에다가 강조를 두었고 그리고 그 중심되는 언어는 너에게 산에서 본 식양대로 그렇게 되어 있다 그 말이다. 그런데 언약을 갱신하고 여기서 성소를 지어라고 36장부터 말씀했을 때 35장에도 보면 안식일문제가 있고 나서는 4절에 보면 마음에 원하는 자가 가져올 것 재료에 대한 언급이 있고 10절부터 보면 마음이 지혜로운 자가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다 만들지니 그들이 만들 물건이 쭉 기록이 되어 있고 20절에 보면 마음에 감동된자와 원하는 자가 성막을 짓게 하여 이러이러한 예물을 드렸다. 그들이 드린 예물을 쭉 다시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고 그리고 다 가져왔다 그런 말로 되어 있고 30절에 보면 여호와의 신이 충만한 자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입었다. 그런 말이 35장에 가득차 있다. 그러니까 자원하는 자 모두가 가져왔고 여호와의 신이 충만한 자들이 다 지었다. 그런 말이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36장1절에 보면 브사렐과 오홀리압과 무릇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것을 할줄 알게 하신 자들은 여호와의 무릇 명하신대로 할것이니라 하고는 그들이 한 일이 2절부터 쭉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도 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 또 하나님께서 그런 지혜를 주신 자들이 와서 행해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언약을 갱신할때는 즐거이 드리는 백성들의 헌신 또 여호와의 지혜의 영의 부으심을 받은 자들의 자원하는 헌신 그런데가 치중되어 있다. 그러니까 35장에 그 말이 많이 반복되어 있다.
36장1절에도 짓는 자가 여호와의 영으로 부으심을 받은 자다. 그런 말이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순서와 내용을 보면 36-39장 까지가 순서가 쭉 있다. 거기 보면 성소와 준공과 만드는 법과 관련하고 기록되어 있다. 이 앞에 25-31장 까지는 언약적인 관계에 강조를 두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가령 내가 너와 만날 지성소 내 앞에 항상 떡을 두도록 해라. 내 앞에 항상 등불을 비추게 해라. 씻어 죽기를 면하고 내 앞에 나와라 그런 말들이 붙어 있는데 여기 36장 이하에서는 그런 말들이 없다. 여기서는 만드는 방법과 관계되어 있고 순서도 준공순서와 관계 되어 있다. 처음에는 준공순서와 관계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인 관계가 순서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지성소 내가 너와 만날 장소 떡상 등대 그 다음에 번제단 이 단에서 항상 하나님이 만나신다. 그 다음에 성소에 뜰 해 놓고 그 다음에 제사장이 입을 옷 그 다음에 제사장이 나올 향단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드릴 향품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 백성을 만나시며 또 그 대표자를 씻어서 거룩하게 해서 자기 앞으로 나오게 하는가? 이런 언약적인 관계가 순서다.
순서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만나시는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 36장부터는 그런 순서가 아니라 준공순서와 관계가 있다. 성막을 세우는 순서와 관계가 있고 그리고 내용도 언약적인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방법에다가 강조가 되어 있다. 그리고 시작하고 끝맺는 중요한 언어는 무엇이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 하는 말로 끝맺는다. 36-39장을 보면 물건을 만들고 나서는 특별히 제사장 옷을 만든 후에 그 말이 많이 붙어 있다. 그 말이 많이 붙어 있고 제일 뒤에도 그 말로 끝나 있다. 모세가 보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다 행하였더라. 그러므로 그가 그들을 축복했다 그 말로 끝맺고 있다.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백성이 다 행했다. 그 말이 여기 언약갱신에 있어서 성소를 짓는말에 시작과 끝을이루고 있는 말들이다.
그 다음부터는 설명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실 거처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지었다. 모세를 떠나서는 성소에 대한 규례를 아는 법도 없고 그것을 감독할 자도 없고 이룰자도 없다. 왜 모세가 행하기 때문에 그렇다. 백성들이 물건을 가져와도 모세가 받고 모세가 받은 것을 지혜로운 자들에게 주어서 짓도록 했다. 그러니까 중보자를 떠나서는 산에서 식양을 보이는 법도 없고 중보자를 떠나서는 그것을 짓게하는 방법도 없다. 마지막도 중보자 모세가 좋다고 하니까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실 거처는 중보자를 통해서 이루신다.

그런데 중보자를 통해서 어떻게 이루시냐면 여호와의 지혜의 영으로 부으셔서 짓도록 하셨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지혜의 영이 이루시는 것이고 또 여호와의 지혜의 영으로 부으심을 받은 백성의 자원하는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들이 자원해서 와서 지었다. 또 그 여호와의 지혜로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주로 유다 지파라고 기록하고 있다. 유다 지파 홀의 자손 브사렐 그리고 단 지파 오홀리압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거기도 보면 단지파 오홀리압은 보조자로 주어진것이고 그 일을 전부 주관하고 지은 사람은 실은 브사렐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까 유다 지파의 후손을 통해서 이루신다.
이것이 여호와의 전을 짓는방식이다. 중보자 모세를 통해서 했는데 여호와께서 그 영을 부으셔서 이루셨고 그 영을 부음받은 지혜로운 자들이 자원해서 이루었고 그런데 그들은 유다 지파였다. 많은 사람이 여호와의 영으로 부으심을 입었지만 대표자는 유다 지파다. 그를 통해서 지으셨다.
이 은혜의 동거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영을 교회에 부으심으로 완성하셨다. 교회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을 주께 드리는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새 이스라엘이다. 그런데 이 은혜의 동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 이 은혜의 동거를 누구를 통해서 이루셧냐면 그 아들을 중보자로 세우셔서 이루셨다. 그 아들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예수로 자기 백성중에 출생하신 분이시다. 그분이 중보자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들의 영을 교회에 부으심으로 완성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영원한 거처로 교회를 지으셨는데 중보자 예수로 그리고 그 중보자 예수의 영을 교회에 부으셔서 완성하셨다.
그런데 이 예수는 유다 지파다. 예수는 유다 지파로 오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 영을 그 백성들에게 부으셨다. 그 백성들은 보좌에 오르신 중보자의 영 그 영을 부으셨는데 그분은 유다 지파로 오신 분이다. 그런데 영의 부으심을 받은 대표자는 항상 유다 지파 브사렐로 항상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영을 그의 교회에 부으셔서 교회는 다 자원하는 백성이어서 하나님 앞에 백성들이 가져와서 지었던것처럼 만사와 만물로 주의 영광을 위해서 봉사한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의 거처 교회를 완성하기 위해서 수고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루셨다. 그래서 교회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즐거이 헌신하는 백성이고 몸으로 산 제사는 자원하는 헌신의 백성이다. 이제 교회가 주님의 거처요 주님의 전을 짓고 있는 것이다.


이제 36장부터 설명하고 있다.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하도록 여호와의 명하심을 받은 자들은 브사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여기서는 여호와의 지혜로 부으심을 입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오홀리압과 브사렐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들 이들은 여호와께서 그 영을 부으셔서 성소에 속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재능을 주신 자들인데 그들이 명하신 일을 한다.
여호와의 지혜로 부으심을 받은 백성이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소를 지으며, 짓는 자를 "그들이" 또는 "그가" 라고 언급한다. 여기서 그는 유다지파인 브사렐이다. 여기서 그는 그가 하는 말은 36장20절부터 보면 그가 그렇게 되어 있다. 31절에도 그가 그렇게 지었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37절에는 이름을 불러서 브사렐이 지었다고 그렇게 되어 있다. 37장10에 그가 17절에 그가 25절에도 그가 또 38장1절에 그가 그랬다. 또 8절과 9절에 그가 전부 그가 그랬고 39장2절에도 그가 그 다음에 36장6절에는 그들이 8절에는 그가 22절은 그가 27절은 그들이 30절 그들이 32절 이스라엘 자손이 그렇게 되어 있다.
전부 만든 사람을 그가 또는 그들이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면 어느것은 그가 만들고 어느것은 그들이 만들었는가? 실은 정확한 표현법은 아니다. 항상 브사렐을 대표로 하고 그러면서도 오홀리압을 그 보조자고 그 외에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부으심을 받고 자원해서 이 일에 참여했다. 그런데 대표자는 브사렐이다. 그렇게 언급이 되어 있다. 그래서 여호와의 지혜로운 영으로 부으심을 받은 자들이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소를 지으며 짓는 자를 그들이 또는 그가로 언급한다. 여기서 그는 유다 지파인 브사렐이다. 그런데 그것을 말할 때 지혜로 부으심을 받았다고 첨부하고 있다. 그러니까 36장1절이나 또는 35장에 있는 여호와의 지혜의 영이 그 일을 행하셨다는 말을 실은 반복하고 있다.
그런 자들이 지었다. 그 여호와의 지혜의 영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중보자로 보내셨고 그 중보자를 통해서 모든 일을 행하셨는데 그 중보자의 영을 우리 안에 부으셨는데 그 중보자는 하나님 자신과 일치하신 분이다. 그영을 부으셔서 하나님 자신과 일치되는 새 백성으로 우리를 지으시고 그의 거처인 교회를 지으신 것이다 그 말이다. 그래서 첫 문단에다 전체를 요약하고 뒤에는 그냥 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해야 39장까지 한 단락을 요약을 하겠다.
그러한 자들은 여호와께 지혜를 얻은 자들이며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다. 그러한 자들을 모세가 불렀다. 그들이 모세에게서 예물을 받았다. 그 예물은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것이다. 총 건축주가 모세다. 그런데 모세는 종으로서 집 맡은 자로서 봉사했고 이 집을 짓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다 히브리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래도 여기서 보면 일단 건축주가 모세다. 왜냐하면 물건을 전부 관리하는 사람이 모세고 준공검사한 사람이 모세다. 그래서 그러한 자들은 여호와께 지혜를 얻은 자들이며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다. 그러한 자들을 모세가 불렀다. 그들이 모세에게서 예물을 받았다. 그 예물은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속하여 가져왔기 때문에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았다. 그러므로 백성에게 가져오는 것을 멈추도록 하였다. 이미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았다.
성경 기록이 그렇게 되어 있다. 36장7절을 보면 그렇게 결논을 내라고 있다. 그 안에는 가져오지 말라. 이렇게 설명적인 언어로 되어 있고 뒤에는 이미 가져온 물건도 반복해서 남았다 함으로 풍성함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 구조다. 그래서 그들이 자원해서 즐거이 가져왔는데 남았다. 그런데 이 일을 하는 자가 모세다.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 만든 성소의 일은 다음과 같다. 성막, 성막을 덮는 웃덮개, 성막을 세울 널판, 띠, 휘장과 문의 기등, 언약 궤와 속죄소, 떡상, 등애, 분향할 단, 번제단, 물두멍, 성막의 뜰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언약적 관계를 나타내는 용도 보다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을 따라서 기록하였다. 38:8에 물두멍을 만드는 재료에 대해서 언급한 것도 그러한 특징이다.

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이 쓴 물품의 목록은 모세의 명을 따라서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계산하였다. 유다 지파 부사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한 모든 것을 만들었다. 단 지파 오홀리압이 그와 함께 하였는데 그는 재능이 있어서 조각하며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를 놓았다. 레위지파와 그들의 감독인 아론의 아들과 부사렐과 오홀리압을 언급한다.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를 대표한다.

성소의 건축 비용을 성소의 세겔대로 합산한다. 특별히 은에 대해서는 조사를 받아 속전을 낸 자의 수를 언급하며 그것으로 만든 기구를 자세히 기술한다. 또 놋으로 만든 기구도 자세히 언급한다. 30:11-16에서는 제사장의 봉사 문맥에서 속전의 의미를 말씀하셨는데 속전은 이스라엘의 생명을 속하여 여호와 앞에서 기념이 되게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조사 받은 자의 전체 수와 그것으로 만든 기구들에 치중하여 기술한다. 이스라엘의 헌신은 속전의 의미이며 성소의 기구에서 여호와 앞에 영원히 기념된다.

82-2 그리고 그 재료는 5절에 있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 제일 끝에 있다. 그런데 여기 39장에서는 그렇게 언급이 되어 있지 않고 재료부터 나와 있다. 청색 자색 홍색 실 이렇게 되어 있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그런 제사장 개념이 아니라 성소에서 섬기는 정교한 성소의 정교함과 관계된 옷이다. 달라져 있다. 여기서는 성소의 정교함을 따라서 만든 옷이다. 그런데 거룩한 옷이다. 재료가 성소의 재료와 같다. 나한테 나와서 제사장 직분을 행하라 하는 언약적인 말로 표현되어 있지 않고 성소에서 섬기는 정교한 옷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표현하는 방식들이 달라져 있다. 그렇게 지금 언급을 한다.

제사장의 의복도 청색 자색 홍색실의 재료와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함과 거룩함으로 언급하며 만드는 방법에 치중하여 기록한다(39:3). 3절을 보니까 만드는 방법이다. 금을 펴서 실처럼 가늘게 오려서 섞어서 짜라. 만드는 방법이다. 여기는 28장과 비교해 보면 그냥 알 것이다. 처음 언약 체결에서 성소에 모든 것은 언약적인 관계 그것이 강조인데 여기서는 성소의 굥교함 그리고 거기에대한 전체적인 자원하는 헌신 더구나 은에 대해서 보니까 모든 계산 받은 자들의 헌신을 말하고 있다. 만일에 은 오세겔을 안 내면 안된다. 그렇게 되어 있다.
여기서는 계산 받은 자의 헌신으로 되어 있고 이 앞에서는 그들이 속전을 내면 온역이 들어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명의 속함에대한 강조인데 여기서는 성소 비용을 전체로 냈다는 의미로 기록되어 있다. 반드시 비교를 해 봐야 한다. 그냥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준공하여 모세에게 가져왔다. 이것은 제사장에 옷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하고나서 39장32절부터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같이 성막과 회막의 모든 것을 준공하여 다 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다 행하고 이것이 반복되는 중요 말씀이고 열쇠되는 말이다. 그들이 성막을 모세에게 가져왔으니 곧 무엇을 가져왔냐? 가져온 것을 쭉 말을 한다. 그런데 가져온것도 순서가 있다.
가져온 순서는 레위의 아들들이 성막을 메는 것과 일치한다(민3:21-37). 여기 보니까 순서가 막 그리고 모든 기구 갈고리 널판 띠 기둥과 밭침들 붉은 물들은 수양 가죽 덮에 해달의 가죽 덮에 가리우는 휘장 여기 까지가 한 단락이다. 이것이 성소 외부에 속한 모든 기구들이다. 그 다음에 증거궤 채 속죄소 향 기구 거기 속한 진설병 정금등대 잔 벌여 놓은 등잔 금 향단 거기 바르는 관유와 향기로운 향 그리고 거기 만든 덮는 휘장 이것이 두 번째 구분이다. 그리고 놋단과 놋 그물채들 그리고 물두멍 밭침 뜰의 포장 이것은 뜰에 있는 모든 기구들이다. 그것을 가져왔다.
이 순서는 무엇과 일치되냐면 민3장21-에 보면 레위의 아들들이 성막을 메는 것과 관계가 있다. 성소의 모든 겉에 있는 기구들은 게르솜이 메고 지성소와 성소에 있는 모든 기구들은 고핫이 메고 그리고 뜰에 있는 놋으로 되어 있는 무거운 것은 므라리가 메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치 성막을 이동때는 그렇게 메야한다. 레위 지파가 성소의 기구를 메는 순서와 관계된 의미로 여기 준공검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움직인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친 것으로 본즉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을 축복하였다. 여호와의 명을 이루신 중보자께서 백성을 축복하였다. 43절에 그렇게 끝맺고 있다. 모세가 준공검사를 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뜻대로 되었기 때문에 복을 주셨다. 축복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소를 짓도록 명령을 받고 또 성소를 짓도록 백성에게 예물을 받고 그 예물을 지혜자들에게 주어서 짓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중보자인데 하나님이 그 영을 부으셔서 그 일을 이루셨다. 그리고 중보자가 보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데로 다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을 주셧다.
하나님이 세우신 중보자가 복을 주었다. 나중에 민수기를 보면 그 복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그 전에 거하시고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고 동거하시는 것이다. 그런 복을 주셨다. 예배당 지으니까 너희들 재산 불어나라 그런 말이 아니다. 민수기에 보면 이 성소와 함께 움직이는 복들이 있다. 왜 성소 준공을 보니까 백성들이 성막을 메는것과 관계되게 기록되어 있다.
다시 돌아가서 이제 앞에 첫 문단을 읽으라 그 말이다. 왜냐하면 전체를 요약을 해야 하니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앞에 전체적인 윤곽을 잡고 그 다음에 부분 부분을 설명해서 마무리를 지은 것이다. 그런데 총 핵심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여호와께서 지혜의 영으로 부으신 자들이 기뻐하고 자원해서 그 일을 했다. 그런데 그 일을 레위 지파가 그 물품을 전부 썼는데 그것은 이다말이 감독을 했다. 그리고 성소를 준공해서 레위 지파 메는 방식으로 언급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며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고 그 짓는 모든 총 건축 비용을 보니까 60만이 속전을 다 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속전 즉 하나님 앞에 봉사하는 백성으로 구원받은것이다. 여기서는 성소 비용과 관계된 의미로 속전을 말하고 처음 언약 체결에서는 제사장의 봉사와 관계된 문맥에서 백성의 속전을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언약적인 관계다. 여기서는 성소를 준공한것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큰 제목을 성소의 준공 그렇게 달아 놓은 것이다.
그 준공은 여호와께서 세우신 중보자가 했다. 하나님께서 그 지혜의 영으로 그 일을 이루셨다. 그 사람은 유다 지파 브사렐이 항상 강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로 그 아들을 보내셨는 그 아들이 중보자다. 그 아들은 아버지와 일치되신 분인데 그 영을 부으셔서 그의 거처로 교회를 짓도록 하셧다. 그가 자원하는마음을 우리에게 주시고 이제는 물건을 가지고 온 정도가 아니라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림으로 우주적인 성소를 짓도록 하나님께서 하셨다. 하나님이 그가 지으신 교회를 기뻐하신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기 바란다.
여러분이 여기서는 성소의 말뚝이 무엇인지 몰라도 되겠지요? 말뚝은 보이지는 않아도 땅속이 들어갑니까 그러니까 든든히 멥니다. 해가지고 겸손해야 됩니다. 겸손의 말뚝 또 녹이 안슬어야 되겠지요 해서 순결한 말뚝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 말이다. 여기서는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는것이지 여러분 보고 건축업자 하라고 말뚝 이야기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으로 신령하게 푼다고 부흥회 하고 있으면 안된다 그 말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신앙의 모델 너도 이런 사람이 되어라. 성경은 우리를 그렇게 저주로 부르지를 않는다. 우리 중에 오신 하나님을 선언하고 누리도록 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인격이지 너도 이와같이 되라는 기준을 제시해서 책망하고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와 함께 하는 교제의 대상으로 존귀케 하신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의 인격이다. 믿음안에서 이것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우리 신앙 고백이 참 문제다. 우리가 사도신경도 고백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예수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는 소위 개인 구원론적인 언급이 강조가 아니다. 우리 교인들이 다 가짜인데 하나님은 그냥 용서하고 천당가도록 했다는 그런 문제가 강조가 아니고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여기 오셨느니라. 기뻐해라. 그것이 실은 강조다. 그리고 그의 오심 안에서 죄의 세력을 끝났느니라.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의의종으로 즐거워해라.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 구원은 그렇게 설명이 안되어 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사도신경 두 번째 고백도 그를 창조자로 고백을 하지 않는다. 실은 성경은 아들을 구속의 완성안에서 창조자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그 아들로 말미암아 만물을 지으셨고 하는데 우리 신앙고백에는 그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해서 소위 구원론 적인 개념으로 정립이 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잘 선언이 안되도록 되어 있다. 어떻게 죄인이 용서를 받았는가? 하는 그런 강조점이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졌는가 거기가 강조점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고백들이 성경 시대보다는 초대 교회 때는 구원론적으로 많이 어떤 의미로는 변질된 식이다. 그런 문제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그러니까 여기 성소에 대한 문제도 하나님이 성소를 짓는데 물건은 한마디로 속전에다가 강조를 둬 놨다. 은에가 쭉 풀어벼렸으니까 낸 자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을 입은 자들이 지었는데 자원하고 즐거워하는 헌신의 봉사 그런데 유다 지파 브사렐이 대표자다. 나중에 준공할 때 보니까 레위 지파가 그 물건을 썻다. 그렇게 언급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의 뜻대로 했으니까 축복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것을 짓도록 명령하셨다. 성소를 짓는 사람은 중보자다. 그런데 모세는 종으로 종의 시대에 장막을 지었고 예수님은 사람이 만든 장막이 아니라 이제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심으로 하나님 앞에 거하는 우주적인 성소 하늘의 성소를 지으셨다. 그런데 그의 교회가 그의 성소이다. 왜 아들의 영으로 자원하는 헌신을 하고 만사와 만물을 그의 영광의 거처로 돌려 드리고 있다. 그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교회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대로 성소를 지었기 때문에 축복한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해서 그 뜻을 이루셧기 때문에 하나님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교회를 기뻐하시는것이다.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축복하신 것이다. 그런 문맥으로 되어 있고 이것은 개인에 대한 도덕적인 훈계를 할려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임마누엘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사람이 만든 장막이 아니라 친히 자신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로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내는 우주적인 성소로 지어서 만사와 만물을 주님의 영광의 거처로 돌려드리도록 하셨다.
여러분이 믿는 바 도리를 자랑하라고 말씀을 드린다. 우리가 지금 강론해왔던 방식으로 창세기와 출애굽기가 해석된 예가 없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유명한 책들을 다 봐도 그렇게 기독론적인 설명을 해 오지 못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최고라 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 은혜를 봉사하는 백성으로서 은혜를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예수 안에서 은혜를 고백하고 즐거워해야한다. 또 누려야 된다. 하나님이 아무것도아닌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시는가를 여러분이 깊이 생각하고 여러분이 사람을 생각하고 말고 여러분이 진리를 기뻐해야 한다. 여러분이 이 예수를 증거하면 천사들이 이 크신 은혜를 알고 그리스도를 찬양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고 기도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교제의 생명으로 살고 그리고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해석하는 방법을 알겠지요? 항상 그 시대 그 문맥으로 해석을 하고 그 시대에서 하나님과 관계로 해석을 하고 그리고 나서 이것이 어떻게 예수 안에서 완성됐는지를 설명했을 때만 이전의 모세 시대의 시간성은 배제되고 휘장으로 가리웠던것도 배제되고 하늘 보좌에 계시는 주님이 자기 백성을 기뻐하는 영광의 거처로 해석이 되는 것이다. 항상 그것을 잘 잡아야 한다. 영원히가 이 구조로 다시 설계도를 빼서 막 비디오로 사진 찍어서 보고 성경 보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니 그 건물을 열어보고 이 성소에 수천년 왕래해도 여러분이 예수를 모르면 휘장밖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를 모르는 것이다.
제가 여기서 성소 구조를 말한적이 없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면 구약의 성소를 넘어선 영광스런 성소로서 하나님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다른 성경도 더 큰 축복이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은혜를 주신다. 그것이 교회에 세우신 은혜의 직무다. 여러분이 사모하고 기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