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출40장]
2006. 7. 17. 00:36ㆍ목양자료/3.강해설교
출40: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
1-16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고 명하심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는 때는 1월 1일이다. 제 2년 1월 1일에 성막을 세웠다. 여호와께서 유월절을 해의 시작으로 삼게 하셨으며, 해의 시작에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실 성막 곧 회막을 세우게 하셨다. 솔로몬 성전은 출애굽 후 480년에 건축을 시작했다(왕상6:1). 솔로몬 성전에서 애굽에서 해방된 목표가 달성되었다. 스룹바벨 성전은 고레스 왕 원년에 성전을 지으라는 명을 내렸다(스1:, 6:3). 고레스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징계를 끝내시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는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기구를 배열하는 것과 기구와 제사장을 기름부어 거룩하게 한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증거궤를 들여놓고 장으로 궤를 가리우고; 상을 들여놓고 물품을 진설하고 등대를 들여 놓고 불을 켜고,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의 장을 달고;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물을 담고,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뚤 문을 달았다: 관유를 성막과 그 안의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번제단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물두멍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겉옷을 입히고 아론에게처럼 기름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여호와의 거처인 성막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제사장을 만나시는 회막이다. 휘장으로 가리우고 여러 문이 있지만, 기름을 부어 대대로 영영히 동거하며 봉사하게 하신 것이 성막 곧 회막의 의미이다.
17-33 성막을 세움
모세가 성막을 세운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되었다"는 말로 각 구분을 끝맺는다. 성막을 세우되 받침을 놓고 널판을 세우고 띠와 기둥을 세우고, 성막의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었다; 증거판을 궤에 넣고 채를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궤를 성막에 들여놓고 장을 드리워 증거궤를 가렸다; 회막 안 곧 성막 북편 장 밖에 상을 놓고 여호와 앞 그 상 위에 떡을 진설했다; 회막 안 곧 성막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하고, 여호와 앞에 등잔불을 켰다; 금 향단을 회막 안 장 앞에 두고 향을 살랐다; 성막문에 장을 달고,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드렸다;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씻을 물을 담고 모세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나아갈 때에 씻었다; 성막과 단 사면에 포장을 치고 뜰문의 장을 달았다. 성막을 세운 내용을 기구의 배열과 거기에서 여호와를 봉사한 것으로 함께 언급한다.
34-38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기 때문이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다.
시내산 위에 임하신 여호와께서 회막에 임하여서 제사장의 봉사를 받으시며 백성의 길을 주야로 인도하셨다. 여호와께서 유월절에 애굽의 권세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셨으며, 광야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친히 회막에 함께 계시어 그들을 인도하시며, 언약의 땅에 영광이 충만한 성소를 세우셨다(왕상8:10-11). 그러나 성소에 임하신 여호와의 영광의 충만함 앞에 옛 언약의 중보자인 모세와 제사장은 서서 섬길 수가 없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어 백성들로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도록 명하셨다(레1:1-2). 이 은혜의 동거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서 온전히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과 영광의 광채이시며 교회의 형제이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에 만유 안에서 그의 영광을 보며 섬긴다.
40장에는 성막을 세우신 일과 그 성막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히 거하시고 인도하신 내용으로 되어 있다. 1-16절까지는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정월 초 일일에 회막 곧 성막을 세우고 이렇게 세우고 이렇게 해라. 그래서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는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7-33절까지는 17절에 제 이년 정월 곧 그달 초 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모세가 성막을 세우고 모세가 구체적으로 성막을 세운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34-끝절 까지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 그 말이 34절에도 있고 35절에도 있고 강조되어 있다. 그 충만한 영광이 백성들을 인도했다 그런 내용이다.
1-16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고 명하심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는 때는 1월 1일이다. 제 2년 1월 1일에 모세가 성막을 세웠다. 그래서 2년은 출애굽 2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 도달하기까지가 몇 개월 걸렸나요? 잘 모르겠다. 그 동안 배교 사건이 있고 또 이런 저런 계시 사건이 있고 그리고 나서 지금 성막을 세우는 것은 일월 일일이다 그 말이다. 1년 지나고 일월 일일이다 그 말이다. 그런데 왜 1월1일에 세우라고 하는지 그런 의미들을 살펴봐야 되겠다 그 말이다. 그래서 다른때 성소를 세우실 때는 특별히 날짜를 지목했을 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 것을 쭉 검토를 해 봐서 만일에 다른 성소를 지을 때 날짜가 의미가 있으면 이것도 분명히 의미가 있어야 맞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성소 짓는 날짜를 보니까 솔로몬 성전은 출애굽 후 480년에 건축을 시작했다. 그것이 솔로몬 제 4년이지만 성경은 언급하기를 출애굽 후 480년 후에 이렇게 설명을 해 주고 있다. 그러면 이 솔로몬 성전은 출애굽부터 계산을 한다. 그리고 480년이라고 기록을 한다. 480년은 사울 40년 다윗 40년 그것하고 나니까 480년이고 만일에 그것을 빼면 400년일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희들을 400년 동안 종살이하고 내가 거기서 너희를 건져내리라. 하는 약속이 솔로몬 때 성전을 지음에서 완성된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그들 중에 성소가 되셔서 함께 계시고 하는 것이 솔로몬 성전에서 완성되었다. 그러니까 솔로몬 성전은 출애굽 후 480년 솔로몬 몇 년 몇월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스룹바벨 성전은 고레스 왕 원년에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제 그들이 구체적으로 짓기는 돌아와서 칠월 달에 하나님 앞에 처음 제사를 단에다가 드렸다. 그리고 나서 돌아온지 2년엔가 전 지대를 놓고 집을 지었다. 그런데 그런 문제보다도 언제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을 받았느냐 했을 때는 고레스 왕 원년에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면 고레스 왕은 하나님이 무엇 하려고 세웠는가? 이사야서에 보면 여호와의 종으로 고레스를 세웠다. 바벨론에게 이스라엘이 70년 동안 포로 생활 한 것을 끝내는 사람이 고레스 왕이다. 그리고 고레스가 모든 사람에게 명령을 내려서 여호와의 전을 짓도록 했고 자기도 자기의 왕궁에 보화를 주어서 전을 짓도록 했다. 그것이 스룹바벨 성전이다.
왜냐하면 고레스 왕의 승리는 이제 바벨론에 멸망과 자기 백성의 해방의 시점이 고레스 왕이다. 그래서 고레스 왕을 왜 하나님이 즉위 시켰는가? 이스라엘을 원수로부터 해방시키고 자기 백성의 구원자가 되도록 하실려고 고레스를 취임시켰다. 그러니까 고레스는 취임 원년에 하는 말이 하나님의 전을 예루살렘에 짓도록 하나님이 자기를 왕으로 세웠다. 그렇게 에스라서 1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성전을 지으라 했을 때는 그냥 돈 모아지니까 짓고 그런 문제보다도 성전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언약의 거처로 지어질 때는 반드시 시작할 때 그 의미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1월 1일에 세워라. 그런데 그 명령을 따라 성전을 구체적으로 세운 것은 출애굽한 후로 1년 지나서 2년 1월1일에 세웠다.
그러면 1월1일은 그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냐? 이 일월 일일은 출애굽부터 세는 날이다. 제 2년 1월1일로 출애굽으로부 센 제 2년 1월1일이다. 그러면 언제 그들이 출애굽을 했는가? 유월절을 그들의 해의 첫달로 삼으라고 명령을 하셨다. 그러니까 실은 유월절 때 출애굽 했고 다음에 유월절 때 성소를 짓는 것과 같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유월절을 해의 시작으로 삼게 하셨고 해의 시작에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심 회막 곧 성막을 세우게 하신 것이다 그런 말씀이다.
처음 유월절 때는 각자 자기 집에서 유월절 양고기를 먹었는데 이제 성소가 세워지면 하나님의 집에서 그 대표자가 먹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성소 삼으시리려고 유월절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고 그 구원을 완성한 것이 언약을 갱신하고 성소를 세울 이 때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는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기구를 배열하는 것과 기구와 제사장을 기름 부어 거룩하게 한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그래서 1-8절까지는 기구에 배열에 대한 문제고 그리고 9-16절 까지는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는 내용이다. 9절부터 보면 거룩하게 하라. 거룩하게 하라 그 말이 계속 반복되어 있다. 그러니까 쭉 읽어 보면 여기서는 반복되는 말이 있구나? 보면 그냥 안다. 그렇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그러니까 회막은 문맥을 따라서 보아야 한다. 어느 때는 뜰까지 포함해서 그것을 회막이라고 그러고 어느 때는 뜰은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안채를 두고 회막이라고 하니까 문맥을 따라서 이것이 어디까지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나중에 더 설명을 하겠다.
그 다음에 증거궤를 들여놓고 장으로 궤를 가리우고 이것은 본문 자체가 단락을 나누어준 것은 아닌데 제가 성소 제도를 따라 나누는 것이다.
상을 들여놓고 물품을 진설하고 등대를 들여 놓고 불을 켜고,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의 장을 달고; 거기가 한 단락이 되겠다. 그런데 이 본문은 또 이런 말로 계속 반복 되어 있다.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여기서 성막 했을 때는 안채다. 뜰까지 포함한 것이 아니다.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물을 담고,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뚤 문을 달았다: 그것이 기구를 배열한 것이다.
그 다음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관유를 성막과 그 안의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번제단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여기서는 거룩하다는 말로 문단이 거듭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특별히 번제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그 안에 것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번제단에 대해서 그 거룩이 강조되어 있다. 그 안에 있는 것보다도 번제단에 지극히 거룩하다고 강조되어 있다. 가령 우리 같으면 증거궤 지극히 거룩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증거궤가 지극히 거룩하다 하지 않고 번제단에 거룩을 강조하고 있다.
번제단에 관유를 발라 그것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게 되리라 그렇게 되어 있다. 거룩하다는 말에 대해서 그 앞에 있는 증거궤나 금 향단 그런데 대해서는 지극히 거룩하다 그런 말이 없고 오히려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이것이 거룩에 대한 총 서론이다. 전체를 발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해 놓고 그 다음에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그리고 물두멍과 그 밭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그렇게 되어 있다.
여기서 9절에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바르라. 했을 때 이 성막은 성소 안에 있는 안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뜰에 있는 물두멍과 번제단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 안채에 있는 문제를 말하고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 10절부터는 그 뜰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안채에 대해서 지극히 거룩하다 하지 않고 뜰에 있는 번제단에 대해서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거룩을 강조하고 있다. 왜 그러냐면 여기서는 그 안에 있는 것이 더 거룩하고 뜰에 있는 것을 덜 거룩하고 하면 차라리 우리 개념에 더 맞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이제 여기 설립된 성소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만나시는 장소로서 세우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번제단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백성은 항상 번제단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 이전에는 번제단이 강조가 안되고 증거궤가 강조가 되었다. 내가 거기서 너를 만나리라. 이렇게 증거궤가 항상 강조되었는데 여기서는 이제 번제단을 지극히 거룩하게 되리라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접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 단에서 자기 백성의 예물을 받으신다. 그래서 여기서는 번제단에 강조가 되어 있는 것이다.
물두멍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이제 그 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장 직분을 행하는 아론을 거룩하게 한다.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겉옷을 입히고 아론에게처럼 기름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그렇게 되어 있다. 이 기름 부음은 성소의 기름 부음과 같다. 기름 부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들은 대대로 성소에 속하고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무를 행해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직무를 행해라. 그런데 아론과 그 아들들을 우리 식으로 묶지 않고 아론에 대해서 쭉 한 번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그 아들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들들도 아론처럼 기름을 부어라. 그러니까 본문을 자꾸 읽어야 된다. 우리는 아론과 그 아들들 하면 한꺼번에 제사장 임명했다는 말만 하는데 여기는 아비에게 한 일을 자식에게서 반복되도록 했다. 그리고 대대에 영영히 제사장 직분을 행하리라 해서 그 기름 부음 때문에 영원한 거룩하게 되고 절대로 그 교제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성소를 세우라는 명령과 함께 성소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내용이 여기 있는 내용이다.
여호와의 거처인 성막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제사장을 만나시는 회막이다. 왜 성막 회막 이렇게 달리 쓰고 있는가? 이것은 장소 적으로는 같은데 단어를 달리 쓰고 있는가 했을 때 성막 하는 것은 거룩한 거처로 의미가 강하고 회막은 백성과 만나는 장소로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그것을 같은 등치 개념으로 막 놓고 있다. 내가 너희중에 거하는 그 집은 내가 제사장을 만나는 장소다. 함께 기름 부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의 성소의 기름 부음이 제사장에게 있어서 영원한 함께 만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휘장으로 가리우고 여러 문이 있지만, 기름을 부어 대대로 영영히 동거하며 봉사하게 하신 것이 성막 곧 회막의 의미이다.
이제 회막에서 함께 계신 관계는 다시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 갱신이 이처럼 회막을 짓는데서 완결된 것이다. 왜 영원한 한집에 거하기 때문에 그렇다. 처음에 돌 판에 법을 샛길때는 시내 산에 있었고 그 영광은 두려운 영광이었다.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런데 언약을 갱신할때는 모세를 안식일에 영광 안으로 들어오게 했고 모세가 하나님을 보았고 그리고 하나님도 그 이름을 반복해서 선언해 주셨고 그리고 모세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고 그렇게 언약이 새롭게 되었고 이 새로운 관계를 확정한 것이 하나님이 집을 짓도록 한것인데 이 집은 하나님이 성소에 기름부음을 제사장에게 부어서 한 기름부음으로 거룩하게 했다. 기름은 그 당시 생명의 풍성함이다. 그런데 그 생명의 부요함으로 함께 묶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집이 자기 백성과 한 기름부음 한 성령안에서 함께 사는 그런 자리가 되도록 했다. 그것이 여기 성막을 지으라는 내용인데 1월1일에 즉 이스라엘 백성을 출생 시켰던 유월절에 그 해 그 달에 그렇게 해서 함께 거하는 집을 짓도록 했다.
17-33 성막을 세움
그냥 대충 읽으면 똑 같은 말 같고 자세히 비교해서 읽으면 차이점을 두고 있다. 그러니까 구약의 반복법의 지혜를 따라서 읽으면서 그것을 비교해 보는 것이 아주 좋다. 제가 머리가 좋아서 성경에 없는 것을 끄집어내면 배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머리로 한 것이지 성경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배워 봤자 잊어버린다. 왜 성경에 없는 것은 나의 머리로 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어렵다. 그리고 몇 년을 배우면 그 수준에 도달할꼬 등급이 생겨 버린다. 그런데 복음을 하루를 살아도 부부다. 인제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더 시일이 지나야 되겠지만 사랑의 관계에 있어서는 여러해 산 사람한테 가서 부부가 뭐다오 이렇게 물어 볼 필요가 전혀 없다. 어제 결혼했어도 부부니까 물어 볼 필요가 없다. 복음을 그렇게 성경의 증거된것이고 단순한 것이다.
그것의 풍성함은 더 많이 묵상을 하고 배우겠지만 그 관계의 설정은 단순하고 확실해야 한다. 그러니까 복음을 말하는데 몇 년을 배워야 그 수준에 도달하고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아주 어렵도다. 이제 배우니까 좀 알겠도다.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성경을 편안한 마음으로 주의 깊게 읽으라 그 말이다. 여러분이 절대로 목사를 특수한 선생으로 만들면 안된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 즉 아들 됨에 확실히 서도록 하나님께서 은사로 목사를 세우셨어도 목사가 특수한 선생이 아니다.
구약 때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신약 때는 이제는 아들 안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 모든 백성이 기록된 성경 안에서 아들의 음성을 듣는다. 교회가 영원히 그 열린 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런 의미로 목사를 특별한 권위자로 만들면 안된다. 여러분이 읽어야 되고 못 읽었으면 회개를 해야 되지 아 우리 목사님은 많이 아는구나. 그래 가지고 자기는 괜찮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지나가 버리면 안된다. 성경을 못 읽은 죄를 회개해야 되지 은혜 받은 척 하고 우리 목사 좋다 하고 자기는 안 읽고 하면 안된다 그 말이다. 여러분이 다른 성경을 볼 때도 그렇게 성경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성막을 세웠다는 내용인데 17절을 보면 제 2년 정월 그 달 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모세가 성막을 세웠는데 이 성막은 내부에 있는 것이다. 안채다.
모세가 성막을 세운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는 말로 각 구분을 끝맺는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완성하셨다. 그러니까 이 중보자가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룬 것이다. 아버지의 모든 뜻을 다 이룬 것이다. 그러니까 19절에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그 다음에 21절에도 그 말로 끝났고 23절, 25절 27, 29, 32절 제일 끝에도 한마디로 하면 그 말로 끝맺고 있다. 모세가 이 같이 그 역사를 필하였더라. 하나님의 중보자인 모세가 그 일을 마루리 했다. 하나님은 그 중보자 모세를 통해서 그 일을 완벽하게 하셨다 그 말이다.
그 일을 나중에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그 일을 온전하게 하셨다. 그 일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반복하면 이 말이 열 쇠되는 말이다. 요새처럼 감리사 세워서 이것도 완전 저것도 완전 부품 조사하고 있다는 정도가 아니다. 이 말로 각 부분을 끝맺는다.
구체적으로 세운 내용이다.
성막을 세우되 받침을 놓고 널판을 세우고 띠와 기둥을 세우고, 성막의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었다; 증거판을 궤에 넣고 채를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궤를 성막에 들여놓고 장을 드리워 증거궤를 가렸다; 이제 휘장으로 가리웠다. 제일 안채 내실이다. 그 다음에 회막 안 곧 성막 북편 장 밖에 상을 놓고 여호와 앞 그 상 위에 떡을 진설했다; 이것은 성막 안인데 휘장밖이다. 그리고 휘장밖 북편에다가 상을 놓았는데 그 상은 여호와 앞 그 상에 떡을 진설했다. 이 떡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떡이면서도 안식일에 제사장이 물려서 먹는 떡이다. 그런데 여호와 앞에 있는 상이다.
회막 안 곧 성막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하고, 여호와 앞에 등잔불을 켰다; 이 불로 여호와 앞에 등잔불이다. 금 향단을 회막 안 장 앞에 두고 향을 살랐다; 이것은 장밖에 두고 그런 표현을 쓰지 않고 장 앞에 두고 그런 표현을 쓰고 있다. 상은 휘장 밖이다 한 번 해 놓고 한 번더 말하기를 이 상은 여호와 앞에 있다 그렇게 했다. 한 번은 밖에 있다 해 놓고 밖에 있다고 하는데 여기 보니까 금향단은 휘장 앞에 두고 향을 살랐다.
성막문에 장을 달고;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드렸다; 성막 문 앞에는 어떤 문이냐면 내실 문 앞이다. 안채 문앞이고 저 입구 문 앞이 아니다. 어느 때는 이것을 입구에다 배정을 할 때도 있지만 여기서는 입구보다는 그 안채 문 앞이다. 그래서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거기 드렸다. 그리고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여기서 회막도 안채 건물이다.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씻을 물을 담고 모세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나아갈 때에 씻었다; 성막과 단 사면에 포장을 치고 뜰문의 장을 달았다. 성막을 세운 내용을 기구의 배열과 거기에서 여호와를 봉사한 것으로 함께 언급한다. 무슨 말이냐면 기구 배열을 쭉 하고 나서 기구 배열만 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무엇을 했는가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성막을 세운 것과 거기에서 봉사가 함께 언급되어 있다.
34-38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기 때문이다. 34-35절은 그 말을 반복하고 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성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그러니까 여기서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그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다.
여기서는 세미콜론으로 나눌 이유가 없다. 차리라 나누려면 충만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한 번 나누고 그 다음에 여기 있는 것에서 나누고 그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면 될 것이다. 내용으로 나누자면 처음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해서 모세가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과 그 다음에는 이 성막에 구름이 떠올라서 자기 백성을 인도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 인도는 낮이나 밤이나 항상 있었다는 이야기 그 세 구분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시내산 위에 임하신 여호와께서 회막에 임하여서 제사장의 봉사를 받으시며 백성의 길을 주야로 인도하셨다. 지금 내용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집을 짓고 거기 거하시는데 제사장이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아서 대대로 제사장 노릇하면서 거기 하나님의 상과 단과 향단에 나가서 하나님을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구름이 성막에 떠 오르면 백성이 진행했고 떠 오르지 않으면 머물렸다. 이렇게 인도했는데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구름 기둥안에 불이 있어서 인도했다.
여호와께서 유월절에 애굽의 권세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셨으며, 그 인도를 이스라엘 백성이 주야로 보았다. 밤에나 낮에나 하나님이 지키시고 인도하셨는데 그 인도는 유월절부터 시작돼서 광야에 배교에도 불구하고 친히 인도하시며 언약의 땅에 영광이 충만한 성소를 세우도록 까지 인도하셨다(왕상8:10-11에 보면 하나님의 법궤를 새로 지은 성전으로 메어 들였는데 그 성전으로 메어 들이고 나니까 제사장이 나왔다. 제사장이 나왔는데 그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서 제사장이 섬길 수 없었더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여기 임한 영광이 거기 임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 임한 영광은 어떤 영광이냐? 시내 산에 임했던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런데 시내 산에 임한 영광에는 모세만 올라갔지 제사장은 올라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 하나님께서 언약을 새롭게 하시고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처를 짓고는 그 거처는 제사장이 봉사하는 거처다. 그런데 이것은 대대로 제사장 노릇을 하도록 했고 처음 언약을 체결할 때는 아론과 같이 와라. 다른 사람은 오지 말아라 그렇게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보니까 아론과 그 아들들이 대대로 나올 수 있는 거처다.
그러나 성소에 임하신 여호와의 영광의 충만함 앞에 옛 언약의 중보자인 모세와 제사장은 서서 섬길 수가 없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어 백성들로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도록 명하셨다(레1:1-2) 이것은 레위기 전체를 푸는 열쇠다. 여기서 분명히 세우신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서 모세가 들어가지 못했다. 레1장을 보니까 그 회막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야! 너희들이 나에게 예물을 가지고 오려거든 이렇게 가지고 들어와라. 불렀다. 이제 그 하나님의 영광은 여기처럼 회막에 가득하지 않고 지성소로 철수한 식이었다. 그 지성소 앞에까지 나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렇게 하셨다.
이 은혜의 동거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서 온전히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과 영광의 광채이시며 교회의 형제이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에 만유 안에서 그의 영광을 보며 섬긴다.
이제 하나님께서 성소에 임하셨던 은혜의 동거는 예수 안에서 완성하셨는데 이 예수는 은혜와 진리와 충만하다 했을 때 이 은혜와 진리는 같은 개념이다. 어떤 의미로 은혜인가? 진리로서 은혜 그림자로서 은혜가 아니라 진리로서 은혜 참으로서 은혜가 충만한 분이신 데 그는 어떻게 해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신가?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고 우리의 대표자로 계시는데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본체의 형상이시다. 그분은 아버지와 일치되신 분으로 여기 오셨다. 그런데 그분은 교회의 형제이신 데 그분이 보좌 우편에 계시는데 영원한 동거를 이루셨다.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에는 만유안에서 그의 영광을 보며 섬긴다. 우주적인 성소로 완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 대표자요 형제이기 때문에 그에게 속한 형제들이 대대로 제사장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예수의 성령으로 부으심을 받아서 함께 살고 함께 봉사한다. 영원한 교제를 이루셨다. 그 영광이 충만하다. 우리들은 그 영광을 보고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영광의 상 앞에서 먹고 마시고 우리기 지금도 하늘 성소에서 하나님을 뵐 뿐만 아니라 주님 재림하시면 만유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우주적인 헌신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교회가 누리는 은혜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오신 것이다. 그것을 구약 때는 이렇게 하나님이 성소 안에서 계심을 통해서 진행되었던 거이다 그런 말씀이다. 그러니까 성소를 세우고 이 단계로 나가고 그러지 않고 아예 성소를 세울 때 떡도 드리고 제물도 드리고 한꺼번에 하고 있다. 그리고 성소에 기름을 부으면 제사장도 함께 기름을 붓고 있다.
성소를 다 지어 놓고 제사장 앞으로 나올 것 저 입구에서 들어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지을 때 기름을 붓고 지을 때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다. 그러니까 성소를 세웠다는 것과 함께 거하면서 드렸다는 것을 같은 의미로 바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심을 말하는데도 구약 때는 아직도 그 영광 앞에 설 자가 없었다. 왜 아직도 온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이 은혜의 동거를 하나님의 아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형상이신 예수 안에서 그분의 상 앞에서 먹고 마시는 교제 안에서 완성하셨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그 성소를 짓는 것을 완성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해서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성소로 교회를 지으셨다.
성소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모세는 종으로 사람이 만든 장막을 지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친히 보좌 우편에 취임하신 아들로서 땅에 속하지 아니한 영원한 하늘에 속한 성소로 교회를 지으셨다. 우리는 그 영광 앞에 서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서도록 그 은혜의 일을 완성하셨다. 이제 이 하나님께서 레위기 회막에서 부르신다. 이제는 시내 산꼭대기에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이제는 자기 백성들을 부르신다. 백성들아 너희들이 나한테 예물을 가지고 나오려거든 이렇게 나와라. 그렇게 해서 이 회막이 자기 백성의 제사장이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고 한 성소에 속한 자로 하나님을 봉사하게 하셨다. 한 성소에 속한 기름부음이 제사장에게 있다. 이제는 번제단이 지극히 거룩하다고 그랬다. 거기에 백성의 예물이 끊임없이 아침과 저녁으로 드려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 식탁에서 교제하는 교제의 처소로 지으시고 그 교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레위기다. 그 레위기의 말씀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이 다 끝나니라. 실은 시내 산 율법이 끝난 것이다.
그러니까 레위기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교제의 핵심이 전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신약의 예수의 구원과 구속의 언어들이 전부 출애굽과 레위기의 언어로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일을 더 많이 쓰면 좋겠지요? 그런데 그 중요한 사실만 썼으니까 여러분이 그쯤 알고 읽어야 된다. 일단은 그 문장을 읽으면서 그 문장 자체에서 의미를 파악하고 이것이 이전 역사에서는 어떻게 됐는데 지금 여기서는 이렇게 됐고 또 예수 안에서는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비교하고 그리고 증거해야 되는 것이다.
1-16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고 명하심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는 때는 1월 1일이다. 제 2년 1월 1일에 성막을 세웠다. 여호와께서 유월절을 해의 시작으로 삼게 하셨으며, 해의 시작에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실 성막 곧 회막을 세우게 하셨다. 솔로몬 성전은 출애굽 후 480년에 건축을 시작했다(왕상6:1). 솔로몬 성전에서 애굽에서 해방된 목표가 달성되었다. 스룹바벨 성전은 고레스 왕 원년에 성전을 지으라는 명을 내렸다(스1:, 6:3). 고레스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징계를 끝내시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는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기구를 배열하는 것과 기구와 제사장을 기름부어 거룩하게 한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증거궤를 들여놓고 장으로 궤를 가리우고; 상을 들여놓고 물품을 진설하고 등대를 들여 놓고 불을 켜고,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의 장을 달고;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물을 담고,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뚤 문을 달았다: 관유를 성막과 그 안의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번제단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물두멍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겉옷을 입히고 아론에게처럼 기름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여호와의 거처인 성막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제사장을 만나시는 회막이다. 휘장으로 가리우고 여러 문이 있지만, 기름을 부어 대대로 영영히 동거하며 봉사하게 하신 것이 성막 곧 회막의 의미이다.
17-33 성막을 세움
모세가 성막을 세운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되었다"는 말로 각 구분을 끝맺는다. 성막을 세우되 받침을 놓고 널판을 세우고 띠와 기둥을 세우고, 성막의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었다; 증거판을 궤에 넣고 채를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궤를 성막에 들여놓고 장을 드리워 증거궤를 가렸다; 회막 안 곧 성막 북편 장 밖에 상을 놓고 여호와 앞 그 상 위에 떡을 진설했다; 회막 안 곧 성막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하고, 여호와 앞에 등잔불을 켰다; 금 향단을 회막 안 장 앞에 두고 향을 살랐다; 성막문에 장을 달고,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드렸다;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씻을 물을 담고 모세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나아갈 때에 씻었다; 성막과 단 사면에 포장을 치고 뜰문의 장을 달았다. 성막을 세운 내용을 기구의 배열과 거기에서 여호와를 봉사한 것으로 함께 언급한다.
34-38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기 때문이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다.
시내산 위에 임하신 여호와께서 회막에 임하여서 제사장의 봉사를 받으시며 백성의 길을 주야로 인도하셨다. 여호와께서 유월절에 애굽의 권세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셨으며, 광야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친히 회막에 함께 계시어 그들을 인도하시며, 언약의 땅에 영광이 충만한 성소를 세우셨다(왕상8:10-11). 그러나 성소에 임하신 여호와의 영광의 충만함 앞에 옛 언약의 중보자인 모세와 제사장은 서서 섬길 수가 없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어 백성들로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도록 명하셨다(레1:1-2). 이 은혜의 동거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서 온전히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과 영광의 광채이시며 교회의 형제이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에 만유 안에서 그의 영광을 보며 섬긴다.
40장에는 성막을 세우신 일과 그 성막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히 거하시고 인도하신 내용으로 되어 있다. 1-16절까지는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정월 초 일일에 회막 곧 성막을 세우고 이렇게 세우고 이렇게 해라. 그래서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는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7-33절까지는 17절에 제 이년 정월 곧 그달 초 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모세가 성막을 세우고 모세가 구체적으로 성막을 세운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34-끝절 까지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 그 말이 34절에도 있고 35절에도 있고 강조되어 있다. 그 충만한 영광이 백성들을 인도했다 그런 내용이다.
1-16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고 명하심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는 때는 1월 1일이다. 제 2년 1월 1일에 모세가 성막을 세웠다. 그래서 2년은 출애굽 2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 도달하기까지가 몇 개월 걸렸나요? 잘 모르겠다. 그 동안 배교 사건이 있고 또 이런 저런 계시 사건이 있고 그리고 나서 지금 성막을 세우는 것은 일월 일일이다 그 말이다. 1년 지나고 일월 일일이다 그 말이다. 그런데 왜 1월1일에 세우라고 하는지 그런 의미들을 살펴봐야 되겠다 그 말이다. 그래서 다른때 성소를 세우실 때는 특별히 날짜를 지목했을 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 것을 쭉 검토를 해 봐서 만일에 다른 성소를 지을 때 날짜가 의미가 있으면 이것도 분명히 의미가 있어야 맞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성소 짓는 날짜를 보니까 솔로몬 성전은 출애굽 후 480년에 건축을 시작했다. 그것이 솔로몬 제 4년이지만 성경은 언급하기를 출애굽 후 480년 후에 이렇게 설명을 해 주고 있다. 그러면 이 솔로몬 성전은 출애굽부터 계산을 한다. 그리고 480년이라고 기록을 한다. 480년은 사울 40년 다윗 40년 그것하고 나니까 480년이고 만일에 그것을 빼면 400년일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희들을 400년 동안 종살이하고 내가 거기서 너희를 건져내리라. 하는 약속이 솔로몬 때 성전을 지음에서 완성된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그들 중에 성소가 되셔서 함께 계시고 하는 것이 솔로몬 성전에서 완성되었다. 그러니까 솔로몬 성전은 출애굽 후 480년 솔로몬 몇 년 몇월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스룹바벨 성전은 고레스 왕 원년에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제 그들이 구체적으로 짓기는 돌아와서 칠월 달에 하나님 앞에 처음 제사를 단에다가 드렸다. 그리고 나서 돌아온지 2년엔가 전 지대를 놓고 집을 지었다. 그런데 그런 문제보다도 언제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을 받았느냐 했을 때는 고레스 왕 원년에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면 고레스 왕은 하나님이 무엇 하려고 세웠는가? 이사야서에 보면 여호와의 종으로 고레스를 세웠다. 바벨론에게 이스라엘이 70년 동안 포로 생활 한 것을 끝내는 사람이 고레스 왕이다. 그리고 고레스가 모든 사람에게 명령을 내려서 여호와의 전을 짓도록 했고 자기도 자기의 왕궁에 보화를 주어서 전을 짓도록 했다. 그것이 스룹바벨 성전이다.
왜냐하면 고레스 왕의 승리는 이제 바벨론에 멸망과 자기 백성의 해방의 시점이 고레스 왕이다. 그래서 고레스 왕을 왜 하나님이 즉위 시켰는가? 이스라엘을 원수로부터 해방시키고 자기 백성의 구원자가 되도록 하실려고 고레스를 취임시켰다. 그러니까 고레스는 취임 원년에 하는 말이 하나님의 전을 예루살렘에 짓도록 하나님이 자기를 왕으로 세웠다. 그렇게 에스라서 1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성전을 지으라 했을 때는 그냥 돈 모아지니까 짓고 그런 문제보다도 성전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언약의 거처로 지어질 때는 반드시 시작할 때 그 의미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1월 1일에 세워라. 그런데 그 명령을 따라 성전을 구체적으로 세운 것은 출애굽한 후로 1년 지나서 2년 1월1일에 세웠다.
그러면 1월1일은 그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냐? 이 일월 일일은 출애굽부터 세는 날이다. 제 2년 1월1일로 출애굽으로부 센 제 2년 1월1일이다. 그러면 언제 그들이 출애굽을 했는가? 유월절을 그들의 해의 첫달로 삼으라고 명령을 하셨다. 그러니까 실은 유월절 때 출애굽 했고 다음에 유월절 때 성소를 짓는 것과 같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유월절을 해의 시작으로 삼게 하셨고 해의 시작에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심 회막 곧 성막을 세우게 하신 것이다 그런 말씀이다.
처음 유월절 때는 각자 자기 집에서 유월절 양고기를 먹었는데 이제 성소가 세워지면 하나님의 집에서 그 대표자가 먹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성소 삼으시리려고 유월절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고 그 구원을 완성한 것이 언약을 갱신하고 성소를 세울 이 때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는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기구를 배열하는 것과 기구와 제사장을 기름 부어 거룩하게 한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그래서 1-8절까지는 기구에 배열에 대한 문제고 그리고 9-16절 까지는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는 내용이다. 9절부터 보면 거룩하게 하라. 거룩하게 하라 그 말이 계속 반복되어 있다. 그러니까 쭉 읽어 보면 여기서는 반복되는 말이 있구나? 보면 그냥 안다. 그렇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그러니까 회막은 문맥을 따라서 보아야 한다. 어느 때는 뜰까지 포함해서 그것을 회막이라고 그러고 어느 때는 뜰은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안채를 두고 회막이라고 하니까 문맥을 따라서 이것이 어디까지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나중에 더 설명을 하겠다.
그 다음에 증거궤를 들여놓고 장으로 궤를 가리우고 이것은 본문 자체가 단락을 나누어준 것은 아닌데 제가 성소 제도를 따라 나누는 것이다.
상을 들여놓고 물품을 진설하고 등대를 들여 놓고 불을 켜고,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의 장을 달고; 거기가 한 단락이 되겠다. 그런데 이 본문은 또 이런 말로 계속 반복 되어 있다.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여기서 성막 했을 때는 안채다. 뜰까지 포함한 것이 아니다.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물을 담고,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뚤 문을 달았다: 그것이 기구를 배열한 것이다.
그 다음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관유를 성막과 그 안의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번제단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여기서는 거룩하다는 말로 문단이 거듭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특별히 번제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그 안에 것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번제단에 대해서 그 거룩이 강조되어 있다. 그 안에 있는 것보다도 번제단에 지극히 거룩하다고 강조되어 있다. 가령 우리 같으면 증거궤 지극히 거룩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증거궤가 지극히 거룩하다 하지 않고 번제단에 거룩을 강조하고 있다.
번제단에 관유를 발라 그것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게 되리라 그렇게 되어 있다. 거룩하다는 말에 대해서 그 앞에 있는 증거궤나 금 향단 그런데 대해서는 지극히 거룩하다 그런 말이 없고 오히려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이것이 거룩에 대한 총 서론이다. 전체를 발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해 놓고 그 다음에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그리고 물두멍과 그 밭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그렇게 되어 있다.
여기서 9절에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바르라. 했을 때 이 성막은 성소 안에 있는 안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뜰에 있는 물두멍과 번제단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 안채에 있는 문제를 말하고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 10절부터는 그 뜰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안채에 대해서 지극히 거룩하다 하지 않고 뜰에 있는 번제단에 대해서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거룩을 강조하고 있다. 왜 그러냐면 여기서는 그 안에 있는 것이 더 거룩하고 뜰에 있는 것을 덜 거룩하고 하면 차라리 우리 개념에 더 맞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이제 여기 설립된 성소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만나시는 장소로서 세우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번제단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백성은 항상 번제단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 이전에는 번제단이 강조가 안되고 증거궤가 강조가 되었다. 내가 거기서 너를 만나리라. 이렇게 증거궤가 항상 강조되었는데 여기서는 이제 번제단을 지극히 거룩하게 되리라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접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 단에서 자기 백성의 예물을 받으신다. 그래서 여기서는 번제단에 강조가 되어 있는 것이다.
물두멍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이제 그 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장 직분을 행하는 아론을 거룩하게 한다.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겉옷을 입히고 아론에게처럼 기름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그렇게 되어 있다. 이 기름 부음은 성소의 기름 부음과 같다. 기름 부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들은 대대로 성소에 속하고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무를 행해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직무를 행해라. 그런데 아론과 그 아들들을 우리 식으로 묶지 않고 아론에 대해서 쭉 한 번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그 아들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들들도 아론처럼 기름을 부어라. 그러니까 본문을 자꾸 읽어야 된다. 우리는 아론과 그 아들들 하면 한꺼번에 제사장 임명했다는 말만 하는데 여기는 아비에게 한 일을 자식에게서 반복되도록 했다. 그리고 대대에 영영히 제사장 직분을 행하리라 해서 그 기름 부음 때문에 영원한 거룩하게 되고 절대로 그 교제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성소를 세우라는 명령과 함께 성소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내용이 여기 있는 내용이다.
여호와의 거처인 성막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제사장을 만나시는 회막이다. 왜 성막 회막 이렇게 달리 쓰고 있는가? 이것은 장소 적으로는 같은데 단어를 달리 쓰고 있는가 했을 때 성막 하는 것은 거룩한 거처로 의미가 강하고 회막은 백성과 만나는 장소로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그것을 같은 등치 개념으로 막 놓고 있다. 내가 너희중에 거하는 그 집은 내가 제사장을 만나는 장소다. 함께 기름 부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의 성소의 기름 부음이 제사장에게 있어서 영원한 함께 만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휘장으로 가리우고 여러 문이 있지만, 기름을 부어 대대로 영영히 동거하며 봉사하게 하신 것이 성막 곧 회막의 의미이다.
이제 회막에서 함께 계신 관계는 다시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 갱신이 이처럼 회막을 짓는데서 완결된 것이다. 왜 영원한 한집에 거하기 때문에 그렇다. 처음에 돌 판에 법을 샛길때는 시내 산에 있었고 그 영광은 두려운 영광이었다.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런데 언약을 갱신할때는 모세를 안식일에 영광 안으로 들어오게 했고 모세가 하나님을 보았고 그리고 하나님도 그 이름을 반복해서 선언해 주셨고 그리고 모세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고 그렇게 언약이 새롭게 되었고 이 새로운 관계를 확정한 것이 하나님이 집을 짓도록 한것인데 이 집은 하나님이 성소에 기름부음을 제사장에게 부어서 한 기름부음으로 거룩하게 했다. 기름은 그 당시 생명의 풍성함이다. 그런데 그 생명의 부요함으로 함께 묶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집이 자기 백성과 한 기름부음 한 성령안에서 함께 사는 그런 자리가 되도록 했다. 그것이 여기 성막을 지으라는 내용인데 1월1일에 즉 이스라엘 백성을 출생 시켰던 유월절에 그 해 그 달에 그렇게 해서 함께 거하는 집을 짓도록 했다.
17-33 성막을 세움
그냥 대충 읽으면 똑 같은 말 같고 자세히 비교해서 읽으면 차이점을 두고 있다. 그러니까 구약의 반복법의 지혜를 따라서 읽으면서 그것을 비교해 보는 것이 아주 좋다. 제가 머리가 좋아서 성경에 없는 것을 끄집어내면 배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머리로 한 것이지 성경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배워 봤자 잊어버린다. 왜 성경에 없는 것은 나의 머리로 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어렵다. 그리고 몇 년을 배우면 그 수준에 도달할꼬 등급이 생겨 버린다. 그런데 복음을 하루를 살아도 부부다. 인제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더 시일이 지나야 되겠지만 사랑의 관계에 있어서는 여러해 산 사람한테 가서 부부가 뭐다오 이렇게 물어 볼 필요가 전혀 없다. 어제 결혼했어도 부부니까 물어 볼 필요가 없다. 복음을 그렇게 성경의 증거된것이고 단순한 것이다.
그것의 풍성함은 더 많이 묵상을 하고 배우겠지만 그 관계의 설정은 단순하고 확실해야 한다. 그러니까 복음을 말하는데 몇 년을 배워야 그 수준에 도달하고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아주 어렵도다. 이제 배우니까 좀 알겠도다.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성경을 편안한 마음으로 주의 깊게 읽으라 그 말이다. 여러분이 절대로 목사를 특수한 선생으로 만들면 안된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 즉 아들 됨에 확실히 서도록 하나님께서 은사로 목사를 세우셨어도 목사가 특수한 선생이 아니다.
구약 때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신약 때는 이제는 아들 안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 모든 백성이 기록된 성경 안에서 아들의 음성을 듣는다. 교회가 영원히 그 열린 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런 의미로 목사를 특별한 권위자로 만들면 안된다. 여러분이 읽어야 되고 못 읽었으면 회개를 해야 되지 아 우리 목사님은 많이 아는구나. 그래 가지고 자기는 괜찮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지나가 버리면 안된다. 성경을 못 읽은 죄를 회개해야 되지 은혜 받은 척 하고 우리 목사 좋다 하고 자기는 안 읽고 하면 안된다 그 말이다. 여러분이 다른 성경을 볼 때도 그렇게 성경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성막을 세웠다는 내용인데 17절을 보면 제 2년 정월 그 달 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모세가 성막을 세웠는데 이 성막은 내부에 있는 것이다. 안채다.
모세가 성막을 세운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었다"는 말로 각 구분을 끝맺는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완성하셨다. 그러니까 이 중보자가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룬 것이다. 아버지의 모든 뜻을 다 이룬 것이다. 그러니까 19절에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 그 다음에 21절에도 그 말로 끝났고 23절, 25절 27, 29, 32절 제일 끝에도 한마디로 하면 그 말로 끝맺고 있다. 모세가 이 같이 그 역사를 필하였더라. 하나님의 중보자인 모세가 그 일을 마루리 했다. 하나님은 그 중보자 모세를 통해서 그 일을 완벽하게 하셨다 그 말이다.
그 일을 나중에 하나님이 아들 안에서 그 일을 온전하게 하셨다. 그 일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반복하면 이 말이 열 쇠되는 말이다. 요새처럼 감리사 세워서 이것도 완전 저것도 완전 부품 조사하고 있다는 정도가 아니다. 이 말로 각 부분을 끝맺는다.
구체적으로 세운 내용이다.
성막을 세우되 받침을 놓고 널판을 세우고 띠와 기둥을 세우고, 성막의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었다; 증거판을 궤에 넣고 채를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궤를 성막에 들여놓고 장을 드리워 증거궤를 가렸다; 이제 휘장으로 가리웠다. 제일 안채 내실이다. 그 다음에 회막 안 곧 성막 북편 장 밖에 상을 놓고 여호와 앞 그 상 위에 떡을 진설했다; 이것은 성막 안인데 휘장밖이다. 그리고 휘장밖 북편에다가 상을 놓았는데 그 상은 여호와 앞 그 상에 떡을 진설했다. 이 떡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떡이면서도 안식일에 제사장이 물려서 먹는 떡이다. 그런데 여호와 앞에 있는 상이다.
회막 안 곧 성막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하고, 여호와 앞에 등잔불을 켰다; 이 불로 여호와 앞에 등잔불이다. 금 향단을 회막 안 장 앞에 두고 향을 살랐다; 이것은 장밖에 두고 그런 표현을 쓰지 않고 장 앞에 두고 그런 표현을 쓰고 있다. 상은 휘장 밖이다 한 번 해 놓고 한 번더 말하기를 이 상은 여호와 앞에 있다 그렇게 했다. 한 번은 밖에 있다 해 놓고 밖에 있다고 하는데 여기 보니까 금향단은 휘장 앞에 두고 향을 살랐다.
성막문에 장을 달고;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드렸다; 성막 문 앞에는 어떤 문이냐면 내실 문 앞이다. 안채 문앞이고 저 입구 문 앞이 아니다. 어느 때는 이것을 입구에다 배정을 할 때도 있지만 여기서는 입구보다는 그 안채 문 앞이다. 그래서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거기 드렸다. 그리고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여기서 회막도 안채 건물이다.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씻을 물을 담고 모세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단에 나아갈 때에 씻었다; 성막과 단 사면에 포장을 치고 뜰문의 장을 달았다. 성막을 세운 내용을 기구의 배열과 거기에서 여호와를 봉사한 것으로 함께 언급한다. 무슨 말이냐면 기구 배열을 쭉 하고 나서 기구 배열만 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무엇을 했는가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성막을 세운 것과 거기에서 봉사가 함께 언급되어 있다.
34-38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기 때문이다. 34-35절은 그 말을 반복하고 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성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그러니까 여기서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그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다.
여기서는 세미콜론으로 나눌 이유가 없다. 차리라 나누려면 충만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한 번 나누고 그 다음에 여기 있는 것에서 나누고 그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면 될 것이다. 내용으로 나누자면 처음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해서 모세가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과 그 다음에는 이 성막에 구름이 떠올라서 자기 백성을 인도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 인도는 낮이나 밤이나 항상 있었다는 이야기 그 세 구분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시내산 위에 임하신 여호와께서 회막에 임하여서 제사장의 봉사를 받으시며 백성의 길을 주야로 인도하셨다. 지금 내용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집을 짓고 거기 거하시는데 제사장이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아서 대대로 제사장 노릇하면서 거기 하나님의 상과 단과 향단에 나가서 하나님을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구름이 성막에 떠 오르면 백성이 진행했고 떠 오르지 않으면 머물렸다. 이렇게 인도했는데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구름 기둥안에 불이 있어서 인도했다.
여호와께서 유월절에 애굽의 권세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셨으며, 그 인도를 이스라엘 백성이 주야로 보았다. 밤에나 낮에나 하나님이 지키시고 인도하셨는데 그 인도는 유월절부터 시작돼서 광야에 배교에도 불구하고 친히 인도하시며 언약의 땅에 영광이 충만한 성소를 세우도록 까지 인도하셨다(왕상8:10-11에 보면 하나님의 법궤를 새로 지은 성전으로 메어 들였는데 그 성전으로 메어 들이고 나니까 제사장이 나왔다. 제사장이 나왔는데 그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서 제사장이 섬길 수 없었더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여기 임한 영광이 거기 임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 임한 영광은 어떤 영광이냐? 시내 산에 임했던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런데 시내 산에 임한 영광에는 모세만 올라갔지 제사장은 올라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 하나님께서 언약을 새롭게 하시고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처를 짓고는 그 거처는 제사장이 봉사하는 거처다. 그런데 이것은 대대로 제사장 노릇을 하도록 했고 처음 언약을 체결할 때는 아론과 같이 와라. 다른 사람은 오지 말아라 그렇게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보니까 아론과 그 아들들이 대대로 나올 수 있는 거처다.
그러나 성소에 임하신 여호와의 영광의 충만함 앞에 옛 언약의 중보자인 모세와 제사장은 서서 섬길 수가 없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어 백성들로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도록 명하셨다(레1:1-2) 이것은 레위기 전체를 푸는 열쇠다. 여기서 분명히 세우신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서 모세가 들어가지 못했다. 레1장을 보니까 그 회막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야! 너희들이 나에게 예물을 가지고 오려거든 이렇게 가지고 들어와라. 불렀다. 이제 그 하나님의 영광은 여기처럼 회막에 가득하지 않고 지성소로 철수한 식이었다. 그 지성소 앞에까지 나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렇게 하셨다.
이 은혜의 동거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서 온전히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과 영광의 광채이시며 교회의 형제이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에 만유 안에서 그의 영광을 보며 섬긴다.
이제 하나님께서 성소에 임하셨던 은혜의 동거는 예수 안에서 완성하셨는데 이 예수는 은혜와 진리와 충만하다 했을 때 이 은혜와 진리는 같은 개념이다. 어떤 의미로 은혜인가? 진리로서 은혜 그림자로서 은혜가 아니라 진리로서 은혜 참으로서 은혜가 충만한 분이신 데 그는 어떻게 해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신가?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고 우리의 대표자로 계시는데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본체의 형상이시다. 그분은 아버지와 일치되신 분으로 여기 오셨다. 그런데 그분은 교회의 형제이신 데 그분이 보좌 우편에 계시는데 영원한 동거를 이루셨다.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에는 만유안에서 그의 영광을 보며 섬긴다. 우주적인 성소로 완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 대표자요 형제이기 때문에 그에게 속한 형제들이 대대로 제사장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예수의 성령으로 부으심을 받아서 함께 살고 함께 봉사한다. 영원한 교제를 이루셨다. 그 영광이 충만하다. 우리들은 그 영광을 보고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영광의 상 앞에서 먹고 마시고 우리기 지금도 하늘 성소에서 하나님을 뵐 뿐만 아니라 주님 재림하시면 만유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우주적인 헌신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교회가 누리는 은혜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오신 것이다. 그것을 구약 때는 이렇게 하나님이 성소 안에서 계심을 통해서 진행되었던 거이다 그런 말씀이다. 그러니까 성소를 세우고 이 단계로 나가고 그러지 않고 아예 성소를 세울 때 떡도 드리고 제물도 드리고 한꺼번에 하고 있다. 그리고 성소에 기름을 부으면 제사장도 함께 기름을 붓고 있다.
성소를 다 지어 놓고 제사장 앞으로 나올 것 저 입구에서 들어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지을 때 기름을 붓고 지을 때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다. 그러니까 성소를 세웠다는 것과 함께 거하면서 드렸다는 것을 같은 의미로 바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심을 말하는데도 구약 때는 아직도 그 영광 앞에 설 자가 없었다. 왜 아직도 온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이 은혜의 동거를 하나님의 아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형상이신 예수 안에서 그분의 상 앞에서 먹고 마시는 교제 안에서 완성하셨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그 성소를 짓는 것을 완성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해서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성소로 교회를 지으셨다.
성소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모세는 종으로 사람이 만든 장막을 지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친히 보좌 우편에 취임하신 아들로서 땅에 속하지 아니한 영원한 하늘에 속한 성소로 교회를 지으셨다. 우리는 그 영광 앞에 서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서도록 그 은혜의 일을 완성하셨다. 이제 이 하나님께서 레위기 회막에서 부르신다. 이제는 시내 산꼭대기에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이제는 자기 백성들을 부르신다. 백성들아 너희들이 나한테 예물을 가지고 나오려거든 이렇게 나와라. 그렇게 해서 이 회막이 자기 백성의 제사장이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고 한 성소에 속한 자로 하나님을 봉사하게 하셨다. 한 성소에 속한 기름부음이 제사장에게 있다. 이제는 번제단이 지극히 거룩하다고 그랬다. 거기에 백성의 예물이 끊임없이 아침과 저녁으로 드려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 식탁에서 교제하는 교제의 처소로 지으시고 그 교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레위기다. 그 레위기의 말씀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이 다 끝나니라. 실은 시내 산 율법이 끝난 것이다.
그러니까 레위기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교제의 핵심이 전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신약의 예수의 구원과 구속의 언어들이 전부 출애굽과 레위기의 언어로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일을 더 많이 쓰면 좋겠지요? 그런데 그 중요한 사실만 썼으니까 여러분이 그쯤 알고 읽어야 된다. 일단은 그 문장을 읽으면서 그 문장 자체에서 의미를 파악하고 이것이 이전 역사에서는 어떻게 됐는데 지금 여기서는 이렇게 됐고 또 예수 안에서는 어떻게 완성되었는지를 비교하고 그리고 증거해야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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