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막을 짓는 자 [출31장1절~11절]

2006. 7. 17. 00:27목양자료/3.강해설교

출31:1-11 회막을 짓는 자

여호와께서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시어 회막과 그에 속한 모든 기구와 제사장의 의복과 성소의 관유와 성소의 향을 만들도록 하시고, 오홀리압을 그와 함께 일하도록 세우셨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일하게 하셨다.
브사렐은 유다 지파요, 오홀리압은 단 지파이다. 브사렐은 총감독이요(대하1:5), 오홀리압은 그의 보좌관이다. 유다 지파는 왕 지파이며, 단 지파는 북쪽에 진을 친 지파들의 대표이다(민2:25). 회막을 짓는 자는 유다 지파이며, 그와 함께 모든 백성이 헌신하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브사렐에게 하나님의 신을 충만하게 하시어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성소에 속한 모든 것을 만들게 하셨고, 오홀리압을 그와 함께 세우시고,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어 그들로 여호와의 명하신 것을 다 만들게 하셨다. 회막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하게 하신 자들에 의하여 지으셨다.

회막을 짓는 자는 유다 지파의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함을 입은 자이며, 여호와의 신으로 지혜와 총명을 받은 온 백성이 헌신하였다.
옛 경륜에서 모세의 회막의 완성은 다윗 성전이다. 다윗 성전에서 모세의 회막이 완성되고 해석된다.

회막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그 식양을 보이시고(히8:5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장막을 지으라, 출25:40,26:30,27:8), 유다 지파의 브라셀과 단 지파의 오홀리압과 그 외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케 하시고 지혜를 주시어 짓게 하셨다.

안식의 땅 가나안에 여호와의 전을 지은 사람은 유다 지파인 다윗 왕과 하나님께서 지혜로 충만케 하신 그의 아들이다. 성신께서 다윗에게 하나님의 전의 식양을 가르치셨고(대상28:12-21),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케 하신 솔로몬 왕과 그 종들과, 다윗 왕을 기뻐하는 이방의 두로 왕과 그의 종들이 함께 하나님의 전을 짓게 하셨다. 두로 왕의 종 히람은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고 어머니는 단 지파이며, 그는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이 충만한 사람인데 그가 솔로몬 성전의 모든 놋 기구를 만들었다(대하2:7 솔로몬이 두로 왕에게 청하되 당신은 금 은 동 철로 제조하며 자색 홍색 청색실로 직조하며 또 새길 줄 아는 공교한 공장 하나를 내게 보내어 내 부친 다윗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예비한 나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고; 11-14 두로 왕이 솔로몬에게 답하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다윗 왕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시고 명철과 총명을 품부하시사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게 하시도다. 내가 공교하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 왕상7:14 히람은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 놋 점장 히람의 어머니를 납달리 지파의 과부라고 말한 것은 그녀가 납달리 지파에 속한 단 지파의 여인인 까닭이라 생각된다.

스룹바벨 성전은 여호와께서 고레스를 세우시어 세계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해방하고 격려하여 짓게하셨고(스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다), 고레스가 성전 규모를 정하고 경비를 대었다(스6:3-4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되 고와 광을 육십 규빗으로 하고,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경비는 왕실에서 내리라).

회막은 향과 기름의 장막인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거처요 통치하시는 보좌이다. 회막은 이스라엘이 즐겁게 헌신한 재료로 짓고, 여호와께서 산에서 보이신 식양대로 짓고, 여호와의 신으로 지으며, 유다 지파를 머리로 한 온 이스라엘이 짓는다.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 왕 솔로몬으로 짓게 하시며 이방인이 즐겨 참여하여 짓고, 만국의 권세가 복종하여 그 보화로 짓게하셨다.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하늘의 영광으로 함께는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스도께 하나님의 성령을 충만케 하시어 그의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함께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은 만국 백성으로 즐거이 하나님께 헌신하며 복종하여 교회를 이루게 하셨다.

성소에 대한 모든 것을 만드는 자에 대한 이야기가 31장 1-11절의 내용이다. 주보를 읽으면서 설명을 하겠다.

출31:1-11 회막을 짓는 자

여호와께서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시어 회막과 그에 속한 모든 기구와 제사장의 의복과 성소의 관유와 성소의 향을 만들도록 하시고, 오홀리압을 그와 함께 일하도록 세우셨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일하게 하셨다. 일하는 사람들은 유다 지파의 브사렐 또 단 지파 오홀리압을 세워서 그와 함께 일하게 하고 무릇 또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게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그러니까 유다 지파 브사렐은 총 감독이고 단 지파 오홀리압이 보좌관이면 그 외에 많은 지혜로운 사람들을 세워서 성소에 속한 모든 것을 만들도록 해라 그런 말씀이다.
해석이다. 브사렐은 유다 지파요, 오홀리압은 단 지파이다. 브사렐은 총감독이요(대하1:5), 오홀리압은 그의 보좌관이다.

총 감독의 이름은 붙이지 않았어도 브사렐을 지명해서 불러서 내 신으로 충만케 하고 지혜와 총명을 주어서 금은 보석으로 이렇게 만들도록 해라. 브세렐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하고 나서 그 다음에 오홀리압을 불러서 그와 함께 일하게 해라. 그리고 이하 동문 그런 식이다. 그러니까 내용상 봤을 때 분명히 브사렐이 총 감독이고 오홀리압은 그 보좌관이다. 그런데 대하 1장5절을 보면 여기서는 오홀리압 이야기는 쭉 빠져버리고 브사렐이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브사렐이 총 감독이다.
유다 지파는 왕 지파이며, 단 지파는 북쪽에 진을 친 지파들의 대표이다(민2:25). 회막을 짓는 자는 유다 지파이며, 그와 함께 모든 백성이 헌신하게 하셨다. 여기서는 이것이 전면에 드러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항상 여기 있는 문장의 내용을 쓰면서도 여기 있는 의미는 그것의 완성의 시점에서 제대로 해석이 된다. 그러니까 완성된 시점을 보고 이 쪽으로 읽으면 이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가 있는 것이다. 조금더 읽겠다.
여호와께서 브사렐에게 하나님의 신을 충만하게 하시어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성소에 속한 모든 것을 만들게 하셨고, 오홀리압을 그와 함께 세우시고,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어 그들로 여호와의 명하신 것을 다 만들게 하셨다. 회막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하게 하신 자들에 의하여 지으셨다. 회막을 짓는 자는 유다 지파의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함을 입은 자이며, 여호와의 신으로 지혜와 총명을 받은 온 백성이 헌신하였다.
여기 내용을 보니까 누가 짓냐면 다윗 지파 브사렐이 총 감독으로 짓는다. 그런데 그는 왜 그것을 지을 수가 있느냐? 하나님이 그에게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케 해서 여러 가지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공교한 작품들을 만들 수 있는 재주를 주셨기 때문에 짓는다 그런 말이다. 그러면 요새 이것을 읽은 사람들은 아 미술도 은사고 음악도 은사구나. 그냥 이렇게만 볼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조각하고 수도 놓고 그런데 재주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여호와가 신으로 충만케 해서 일하도록 했을 때 이 사람이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함을 입었다 그 말은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은 성령의 충만한 그러면 도덕적으로 완전함 이 쪽으로 읽으려고 그런 다. 그런데 여기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게 했다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함을 입게 했다 그 말은 내용상 그로 성소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는 말이다. 성소는 여러 가지 작품들이 있다. 그것을 지을 수 있도록 재주를 주셨는데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케 해서 그렇게 했다는 직무 적인 말이다.
직무 적인 충만이다. 그러니까 충만이라는 말도 단어적으로 풀면 안되고 그 문맥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그것을 읽어야 한다. 항상 근접 문맥을 봐야 한다. 그래서 여호와의 신으로 지었따. 왜 여호와의 신으로 브사렐을 충만케 해서 짓게 했다.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케 한 것은 여러 가지 공작 기술이다. 그것을 주어서 여가지가 연구를 하게 해서 그것을 만들도록 했다 그런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재주가 아니라 신으로 충만케 한 재주다 그런 말이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여호와의 신으로 지었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무릇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게 네게 명한 것을 만들게 할지니 그렇게 되어 있다. 여기서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했을 때 이 지혜다 한 말은 무슨 도덕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런 지혜가 아니라 여기서는 이런저런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드는 지혜다. 그런 재주가 있는 사람에게 내가 지혜의 영을 주어서 이러 이런 것을 만들도록 했다. 그러니까 재능 있는 사람들을 부른 것이다. 그런데 그 재능은 일반 작품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소를 짓도록 여호와의 신으로 그들을 감동하겠다 그런 말이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만드셨는데 어떻게 자기 종들의 손가락을 움직여서 만들었다. 이런 표현법이다. 그러면 조금 이해하기가 좋을 것이다.

그런데 옛 경륜에서 모세의 회막의 완성은 다윗 성전이다. 다윗 성전에서 모세의 회막이 완성되고 해석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성소 짓는 이야기를 해석할 수가 있겠는가? 일단은 방금 근접 문맥을 해석했다. 유다 지파가 총 대장이고 거기 단 지파가 보좌관으로 있고 또 여러 지혜로운 자들에게 지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케 해서 짓도록 했다. 그러니까 여기 보면 하나님의 신이 이 모든 일을 하는데 왕 지파인 유다 지파를 감동했고 단 지파도 감동하고 여러 사람을 감동해서 한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해석하려면 일단 모세 장막을 완성한 것이 다윗 성전이다. 그러면 거기서는 어떻게 사람들이 성전을 지었는가? 그것을 읽어보면 짓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있고 이제 진정한 의미는 신약 성소를 짓는데서 나타날 것이다. 어떻게 예수께서 그의 성전으로 교회를 지으셨는가? 그런 문제들 어떻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교회를 성전 삼으셨는가 하는 문제를 읽으면 이 의미가 완전히 밝혀 질 것이다.

회막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그 식양을 보이시고(히8:5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장막을 지으라, 출25:40,26:30,27:8), 유다 지파의 브라셀과 단 지파의 오홀리압과 그 외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케 하시고 지혜를 주시어 짓게 하셨다.
이 앞에 출25장부터 몇 군데 보면 산에서 본 식양대로 지어라 는 말이 거듭 반복되었다. 산에서 본 식양대로 이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산에서 네게 보인 본을 쫓아 장막을 지어라 이것은 하늘에서 섬기는 것들의 모형인데 그렇게 말하고 있다. 모세가 짓는 것은 하늘에서 섬기는 것들의 모형인데 산에서 본 식양대로 지으라 그랬다고 되어 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산에서 모세에게 그 식양을 보이셨는데 이 식양은 하늘에서 섬기는 것들의 모형이고 그리고 유다 지파의 브사렐과 단 지파의 오홀리압과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케 하시고 지혜를 주어서 짓게 하셨다.

그러면 다윗 성전은 지은 사람은 누군가?

안식의 땅 가나안에 여호와의 전을 지은 사람은 유다 지파인 다윗 왕과 하나님께서 지혜로 충만케 하신 그의 아들이다. 성신께서 다윗에게 하나님의 전의 식양을 가르치셨고(대상28:12-21),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케 하신 솔로몬 왕과 그 종들과, 다윗 왕을 기뻐하는 이방의 두로 왕과 그의 종들이 함께 하나님의 전을 짓게 하셨다. 두로 왕의 종 히람은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고 어머니는 단 지파이며, 그는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이 충만한 사람인데 그가 솔로몬 성전의 모든 놋 기구를 만들었다.
(대하2:7 솔로몬이 두로 왕에게 청하되 당신은 금 은 동 철로 제조하며 자색 홍색 청색 실로 직조하며 또 새길 줄 아는 공교한 공장 하나를 내게 보내어 내 부친 다윗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예비한 나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고; 11-14 두로 왕이 솔로몬에게 답하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다윗 왕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시고 명철과 총명을 품부하시사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게 하시도다. 내가 공교하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 왕상7:14 히람은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 놋 점장 히람의 어머니를 납달리 지파의 과부라고 말한 것은 그녀가 납달리 지파에 속한 단 지파의 여인인 까닭이라 생각된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이 성막에 나타나 있다. 그런데 출애굽기는 곧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심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함께 하는 언약 체결이 출애굽기의 강조 점이다. 그러면 광야에서는 아직 하나님이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유리할때다. 그 때 모세에게 산에서 식양을 보이셨는데 이 양식은 하늘에서 섬기는 것들의 모형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산에서 식양을 보이시고 유다 지파 브사렐 단 지파 오홀리압 그 외에 여러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케 해서 그것을 짓도록 했다. 특별히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케 했다는 사람은 브사렐을 두고 그렇게 말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말해도 브사렐처럼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면 이것이 완성된 때는 어느 때냐?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제는 이동식 천막이 아니라 요동치 않는 바위 위에다가 금집을 지었다.

돌 새켜를 놓고 나무 한 켜를 놓고 그 안쪽을 금으로 입혔다. 그러니까 든든한 집을 지었다. 이것이 모세 회막의 완성이다. 그러면 모세 회막은 유다 지파 브사렐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지었는데 그러면 다윗 성전은 어떻게 지었는가? 하나님이 모세에게 식양을 보인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 다윗에게 성소 식양을 보여 주시고 그 손가락으로 친히 그려 주시고 그리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지혜를 충만케 주셔서 그로 성소를 짓게 했다. 그러면 솔로몬이 연장을 잡고 지었냐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솔로몬에게 지혜를 충만케 하셔서 하나님의 전을 짓도록 했는데 다윗이 예비한 지혜로운 그런 종들하고 두로 왕 히람 이 사람은 이방 왕이다. 이 두로 왕은 다윗을 즐거워하고 친교를 맺었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셔서 성전을 짓게 하신 것을 기뻐하고 솔로몬이 요구 한데로 좋은 백향목과 잣나무를 많이 보냈다. 그렇게 해서 솔로몬의 종들과 자기 종들이 함께 여호와의 전을 짓도록 했다. 그런데 특별히 누가 재주꾼으로 강조되냐면 이제 이방인 중에 히람이라는 사람이 있다. 성경에 보면 후람이라고도 하고 히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 이름이 임금 이름하고 같아 가지고 히람의 종 히람 그러면 앞에 이름은 임금이고 뒤에 이름은 부하다. 그런데 후람의 종 후람 그러면 이 단어가 무엇인지 저도 잘 모르겠다. 어느 때는 할아버지 이름을 아버지 이름하고 연결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애굽 왕을 바로 라고 그런 것처럼 두로 왕을 후람 또는 히람이라고 그러는지 그것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떻든 두로 왕은 다윗과 솔로몬을 기뻐했다. 그래서 솔로몬으로부터 많은 밀가루와 기름을 받고 자기는 잣나무와 좋은 백향목을 주어서 짓도록 했다.

그런데 특별히 아주 재주꾼은 하나 보냈는데 이 사람은 놋 일은 전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솔로몬의 지시를 받아서 놋으로 많은 기구를 만들었는데 놋이 너무 너무 많아서 그 무게를 측량할 수 없다. 성전 문 앞에 큰 놋 기둥도 이 사람이 만들었고 재단에 쓰는 놋 불기구들 놋 물두멍도 이 사람이 만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고 어머니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런데 어머니 신분을 말하기를 어느 때는 단 여자라고 말하고 어느 때는 납달리 지파 과부라고도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이렇게 틀린 이야기를 성경에 가지고 있을 것인가? 틀리면 그냥 빼 버렸든지 그러지 전혀 틀린 것을 가지고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런데 그대로 나 뒀다. 그러면 그것은 해석을 해야 될 것이다.

단은 본래 하나님의 언약의 땅에서 자기 기업을 잘 갖지를 못하고 많은 사람이 유리하다가 저 북쪽에서 깊은 산 속에 기업을 얻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고 편안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거기 쳐들어가서 그 땅을 정복해서 단 지파를 이루고 살았다. 그러니까 북 쪽에 있는 단 지파는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땅을 빼앗아서 산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제비 뽑아서 사는 자들은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납달리 지파 바로 옆에 붙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는 정확하게는 몰라도 출신은 단 지파인데 납달리 지파로 산다거나 이런 저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그 내용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사람은 혼족이다. 아버지는 두로 사람 어머니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러면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딸을 이방인 남자에게 주어도 안되고 또 이방인 딸을 데려와도 안된다. 그것이 본래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율법이다. 그런데 두로 임금은 솔로몬하고 연합해서 성전도 지었다. 성전은 본래 이방인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잡혀 왔을 때까지라도 거기 산발랏과 도비야 무리들 이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혼족이다. 그 사람들이 함께 전을 짓자 하니까 못 짓게 했다. 그런데 두로 사람은 순수한 이방인인데 오히려 무엇을 가져다주라고 하면 기뻐서 갖다 주고 또 재주 꾼 까지 보내 줘서 함께 지었는데 이 재주꾼은 아예 혈통 상으로 혼족이다. 그렇게 지어져 있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성전은 이방인은 절대로 못 들어오는 이런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 보니까 완전히 이방인이 성전 뜰에 있는 놋 기구를 만드는데 전담을 해 버렸다. 그리고 성전 안에 최고급 나무를 대는 것도 이방인이 했다. 즐거이 헌신했다. 이것이 솔로몬 왕국의 특징이다. 평화의 왕국이다. 다윗처럼 칼로 전쟁해서 한 왕국이 아니고 그들이 다 즐겨 복종하고 와서 지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 보니까 결혼으로 연합까지 되어 있다. 그런데 솔로몬도 장가갈 때 바로의 딸을 얻었다. 성전을 칠년 짓고 궁전을 위해서 십삼년 지었다. 그러니까 목사들이 설교하기를 자기 집은 13년 짜리 짓고 예배당은 칠년 짜리 지으니 그 집안이 안 망하겠냐고 이런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왕의 딸을 얻은 것을 성경은 전혀 비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에 많은 이방인 여자를 얻은 것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히려 말하자면 인질 즉 옛날에 국제 결혼은 인질 식이다. 그런 식으로 혼인을 통해서 많은 나라들과 연합해서 국력을 강대하게 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책망을 받았다.
그리고 첩을 천명쯤 두었다는 일로는 비방을 받지 않고 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켰다는 것으로 비판을 받고 있지 아내를 많이 둔 자체로 비판을 받고 있지 않다. 구약은 그렇다. 단지 그가 정치적으로 왕은 은금을 많이 두어서는 안되고 말을 많이 두어서도 안되고 여자를 많이 두어서도 안된다. 그것은 연산군처럼 되지 말라 그런 말이 아니다. 그들은 이방 권세를 의지해서는 안된다. 다 국제 결혼 다 이런 방식인데 솔로몬은 그렇게 해서 국력을 굉장히 강하게 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망한 이유가 거기가 있다.
다윗도 그것 때문에 망할 뻔했다. 임금이 된 뒤로 내 군사가 몇 명이나 되느뇨 하고 숫자를 계산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속전을 내고 여호와의 장자로 계산을 해야 되지 자기 군인으로 계산해서는 안된다. 여호와의 장자로 계산하는 것이 20세 이상으로 계산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다윗도 한 번 큰일날뻔 했다.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말의 발의 힘줄을 끊어 버렸다. 말을 의지하지 안했고 골리앗도 겁나지 않았다. 그런데 솔로몬은 요새 식으로 하면 탱크를 많이 수입해서 여기 저기다가 진지를 많이 구축했다. 그래서 솔로몬은 나라가 건설된 것은 평화의 왕국인데 그는 세상 권세의 나라로 타락해 버린 것이다. 그래 가지고 많은 토목 사업을 해서 국력을 강대하게 했다. 그것 때문에 솔로몬이 망한 것이다.
그러니까 솔로몬 성전은 오히려 평화의 왕국 다윗은 칼로 온 세계를 정복하고 온 세계는 복종했지만 솔로몬은 칼로 정복하지 안았다. 그 지혜의 말씀을 들으려고 먼 남방에서 스바 여왕이 와서 복되도다 당신의 종들이여 내가 왕으로 있는 것 보다 당신의 종으로 있는 것이 훨씬 좋겠다. 왜 당신의 지혜로운 말을 듣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해서 보물을 가지고 와서 경배하고 돌아가고 그렇게 해서 솔로몬 왕국은 평화의 왕국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그 성전을 지었을 때 성전을 짓는 까지라도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되어 있고 오히려 혈통적으로 연합되어 있고 재주도 연합되어 있고 오히려 놋으로 만든 뜰은 전부 이방인이 만들었다. 나중에는 이방인의 뜰이 따로 있지만 여기서 뜰은 완전히 이방인이 만들었다. 그것이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서 만들었던 회막의 완성이다. 안식의 땅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요동치 않는 안식의 거처를 지으셨을 때 그것은 칼의 권세로 짓는 것이 아니라 모든 권세가 다윗에게 복종했고 세상 모든 제물을 다윗에게 가져다가 바쳤다. 그것을 솔로몬에게 주었을 때 그가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한 자가 되어 가지고 여호와의 전을 지었는데 이방인이 같이 지었다. 그런데 여기도 단 지파하고 연결이 되어 있다.
스룹바벨 성전은 여호와께서 고레스를 세우시어 세계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케 하고 격려하여 짓게 하셨고(스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다), 고레스가 성전 규모를 정하고 경비를 대었다(스6:3-4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되 고와 광을 육십 규빗으로 하고,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경비는 왕실에서 내리라).
솔로몬 성전은 다윗이 하나님의 성신으로 그 식양을 받았다. 모세의 회막은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서 지시 한데로 지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뒤로는 유대 임금이 그런 것이 아니고 스룹바벨이 계시를 받았다거나 당시 제사장인 여호수아가 성소에 대한 그런 계시를 본 것이 아니라 성전은 제사장이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왕이 짓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궁궐이다. 거기서 제사장은 백성의 대표로 예배는 해도 하나님은 왕으로 보좌에 계신 분이다. 그래서 항상 왕들이 짓는다. 그런데 이 고레스 성전은 아예 이방 임금이 지었다. 어떻게 지었냐면 하늘이 하나님이 나를 천한 만국의 임금으로 세우시고 내게 명령하시기를 예루살렘에 전을 지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에스라서 1장에 조서를 내려서 말을 한다. 그리고 하는 말이 그 규모는 이렇게 해라 규모를 다 말했다. 그러니까 요새 식으로 하면 조감도를 나 냈다. 가로 세로 높이를 정하고 그 비용은 전부 궁궐에서 내라. 했다. 완전히 이방인이 지었다. 그런데 이 이방인 왕은 세계의 왕이다. 여호와께서는 천지의 주재 신데 세상의 모든 권세를 고레스에게 주고 그 모든 권세가 자원해서 하나님이 나로 전을 짓도록 했도다. 이방 임금이 스스로 즐거워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지었다.
그러면 광야에서 지은 모세의 장막은 애굽에서 빼앗아 온 제물이다. 여호와께서 애굽의 장자를 치니까 그들이 겁나서 은금을 가지고 와서 주면서 빨리 나가라고 그랬는데 그것을 가지고 지었다. 백성들은 즐거이 냈다. 우리가 60만 명이니까 나는 60만 분의 일만 내면 되겠구나. 그런 식으로 낸 것은 아니고 족장들은 큰 수레도 내고 금 그릇 은그릇 다 냈다. 이것 가지고 이 반지 헌금하라는 말은 아니다. 하여튼 애굽에서 빼앗아 온 것은 냈다. 왜 여호와가 왕이시다. 그 왕이 빼앗아서 자기 백성에게 주니까 자기 백성은 즐거이 헌신해서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을 지었다. 그리고 다윗 성전은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서 이방인을 정복토록 했고 그 모든 금은 보화를 하나님의 창고에다 넣고 그것으로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지었다. 그리고 이방인도 와서 즐거이 헌신을 했다.
그런데 이제 스룹바벨 성전은 세상을 정복했던 고레스 임금이 그가 얻은 모든 권세를 가지고 여호와의 전을 그가 즐거이 짓고 있고 그런 의미로 그가 여호와의 종으로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계시록에서도 천하만국의 보화가 바로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의 것으로 들어올 것이다. 왜 그가 왕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계시록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처음에는 성령으로 충만한 유다 지파 브사렐과 단 지파와 그 외에 백성들 그 다음 솔로몬 성전은 유다 지파 왕 다윗 그리고 그의 아들 지혜로운 왕 솔로몬 그와 그리고 이방의왕 두로왕이 기뻐해서 자기 종을 보내서 당신의 종과 내 종이 함께 지읍시다. 그렇게 해서 솔로몬 성전을 지었다. 그리고 스룹바벨 성전은 이방인 왕이 비용을 다 대어서 지었다.
이것이 성전이 나타내는 의미다. 그러니까 여기서 유다 지파 브사렐 단 지파 오홀리압 했을 때 이 사람들은 실은 유다 지파를 머리로한 온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표현법이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전을 중심 해서 동서남북으로 진을 치는데 동쪽은 유다 지파가 대표로 있는 세 지파가 있고 북쪽은 단 지파가 머리로 있는 세 지파가 있다. 그러니까 유다 지파와 단 지파를 언급하면 그런 의미로 온 이스라엘을 말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데도 여호와의 전을 짓는 사람은 유다 지파 중에 성령으로 충만케 된 자다. 그가 총 감독으로 여호와의 전을 짓고 그리고 나머지는 즐거이 헌신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그 나라가 완성되서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전을 돌집으로 지었을 때는 유다 지파 다윗 그리고 그의 지혜로운 왕 솔로몬과 이방왕 두로 왕이 그의 지혜로운 종을 보내서 즐거이 이 집을 짓도록 했고 그런데도 이방인이 무엇을 지었는가 설명했을 때는 성경은 말하기를 성전 뜰에 있는 모든 놋 기구는 그가 지었는데 금과 은으로 성소 안에 것을 지었는가 하는 것은 다 빠져 있다. 성소 뜰 짓는 이야기만 이 두로 사람에게 전부 배당을 해 놨다. 왜냐하면 뜰은 나중에 보면 측량치 말고 이방인에게 맡겨라. 이방인의 침범과 그로 말미암은 구원을 설명했을 때 계시록 같은데서 는 뜰은 척량하지 말며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솔로몬 성전 이후로는 성전에 이방인과 여인들의 뜰이 있어서 여인들과 이방인이 멀리서 예배할 수가 있었다.
벌써부터 성전 제도 안에서도 아브라함의 복이 천하 만민에게 미친다 했던 것처럼 다윗의 왕국에서도 이미 이방인이 성전을 짓는데 깊이 개입되어 있다. 함께 즐거이 헌신하고 함께 지혜로 충만하고 그렇게 되어 있다. 솔로몬은 칼 들고 빼앗아서 짓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로 평화의 전이다. 그들이 즐거이 헌신하는데 이방인이 즐거이 헌신하고 혼족은 이스라엘 백성이 제일 미워하는 족속인데 여기 보니까 아주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여호와의 전을 짓는 자가 혼족이다. 어머니는 이스라엘 사람이고 아버지는 두로 사람인데 그가 그렇게 지었다. 그렇게 되어 있다.
마치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그렇게 한 것처럼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고 어머니는 이스라엘 사람인데 그 아들의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해서 여호와의 뜰을 지었다고 묘사하는 것과 같다. 이제 이방인도 즐거이 이 성전 짓는데 참여한다. 하나님이 천하 만 민중에 함께 하실 약속이 솔로몬 성전에서는 이렇게 더 깊이 나타나 있다. 그러니까 여기 유다 지파 브사렐과 단 지파 오홀리압 했을 때 이것은 유다 지파를 머리로 해서 온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그 지혜의 영으로 충만케 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을 짓게 하겠다 하는 말과 같다.
그러기 때문에 산에서 본 식양 구약에서 산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신이 손가락으로 내게 그려 준 것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실은 같은 말이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다 한 것은 하늘에 가면 진짜 좋은 집이 있다는 그런 말인가? 그런 말이 아니라 모형이라는 말은 하늘에 있는 진짜 집을 축소판으로 모델 하우스로 지어 났다 그런 말이 아니고 하늘에서 섬기는 식양이라 즉 하늘에서 섬기는 것들의 식양이라는 의미로 모형이다. 이제 하늘에서 섬김이 어디서 나타나는가? 솔로몬 성전을 확대 시키면 하늘에 있는 것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셔서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신다.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심으로 하늘에서 섬기는것들이 이제 나타난 것이다.
계시록에 보면 하늘에서 새 하늘과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데 가로 세로 높이가 일만 이천 스다디온 완전히 금집으로 금성이 내려온다. 그리고 문들은 완전히 열두 보석으로 되어 있다. 그것이 구약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구약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한 자리요 또 구약에서 금은 보석으로 짓는 것은 그 완전함을 말을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이지 일만 이천 스다디온 우리가 아파트 한층의 높이가 얼만가? 이렇게 나누기 하면 얼마 공유면적도 빼야 되겠지요? 그래도 세면 140000명은 넉넉히 더 들어가겠지요? 아 얼마큼 살겠구나. 그런 식으로 계산하면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령한 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함을 모세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완전히 아파트 업자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참으로 어리석은 이야기다.
모세 언어를 모르면 해석을 못한다. 왜냐하면 모세 때 하나님이 집을 짓도록 했기 때문에 그렇다. 다윗의 제도도 항상 모세 제도다. 그 개념을 가지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유다 지파와 단 지파를 언급하는 것은 그 후로 하나님의 전을 짓는 것을 봤을 때 이방인이 대대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렇게 했을 때 단 지파는 이스라엘의 북쪽 지파 끝을 대표하는 지파로 일을 해야 되겠고 그런 의미로 유다 지파를 머리로 해서 온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지혜의 영으로 충만케 해서 여호와의 거처 여호와의 전을 짓도록 하겠다. 하는 그런 말과 같은 것이다.

회막은 향과 기름의 장막인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거처요 통치하시는 보좌이다. 하나님께서 계신다 그 말은 통치하심으로 계신다 그 말이지 그냥 왔다 갔다 그런 식으로 계신 것이 아니다. 나무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는 식으로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 하나님이 계시다 그 말은 거기 생명과 통치기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교제와 통치 개념이다. 하나님께서 여기 자기 백성을 즐거워하고 계시고 그 것이 그들의 생명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통치로 계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아버지를 만나 뵌다 하는 것은 동네 아저씨 만난 것처럼 눈뜨고 멀동멀동 만나고 만났다고 하면 안된다. 아버지를 즐거워하고 아버지를 배우고 그렇게 하면 만나는 것이지 너 아버지 만났냐 예 만나고 왔어요. 그러면 아버지를 만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그런 의미를 이해해야 될 것이다.
이 회막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는 거처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으로 함께 있자. 이런 생명과 통치로 계시는 보좌다. 그런데 이 앞에 회막은 완전히 기름 장막이었다. 그것도 완전히 향기름으로 발라진 장막이었다. 향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서 맡으시는 기뻐하심의 표현이고 그 기름은 생명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니까 완전히 생명의 충만함이 회막에 칠해져 있다.

회막은 이스라엘이 즐겁게 헌신한 재료로 짓고, 여호와께서 산에서 보이신 식양대로 짓고, 여호와의 신으로 지으며, 유다 지파를 머리로 한 온 이스라엘이 짓는다. 이것은 다윗 성전을 묘하고 있는 말이다. 유다 지파 솔로몬을 위시해서 온 이스라엘이 즐거이 헌신했다. 나중에 보니까 너무 많이 가져와서 그만 가져오라고 했다. 모세 때도 그랬다.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 왕 솔로몬으로 짓게 하시며 이방인이 즐겨 참여하여 짓고, 만국의 권세가 복종하여 그 보화로 짓게 하셨다. 고레스가 그렇게 지었다. 자기 모든 권세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바치고 그 전을 지었다. 이제 계시록에 보면 만국에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이것이 성전의 완성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윗 지파의 왕이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이요 그가 여호와의 전을 짓는 분이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만에 세우리라 했다. 그런데 그는 그의 부활로 함께 하시는 성전을 세웠다. 그는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한 자로서 세우셨다. 그가 자기 백성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그의 신으로 충만케 하셨다. 그것이 여호와의 전인 교회다. 이제 교회는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함을 입은 백성들이고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백성들이다. 그것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중에 생명의 교제로 거하시는 거처요 보좌다. 유다 지파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한 예수님께서 지으셨다.
이제 우리의 모든 것으로 이 하나님을 즐거이 봉사함으로 하나님의 성전은 돌위에 돌이 놓인것처럼 우주적인 성전으로 확대될 것이다. 천하 만민이 그 집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성전이다. 바로 이것은 광야에서 모세에게 장막을 짓게 하시고 유다 지파 브사렐을 신으로 충만케 하시고 또 오홀리압을 그의 보좌로 세우시고 그외 많은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즐거이 거하시는 집을 짓도록 했는데 그 집을 향 기름집인데 여호와의 신으로 짓도록 했다. 바로 그 일은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것이다.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하늘의 영광으로 함께 하시는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스도께 하나님의 성령을 충만케 하시어 그의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함께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은 만국 백성으로 즐거이 하나님께 헌신하며 복종하여 교회를 이루게 하셨다.
구약 때 장막 중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리스도의 몸과 그의 거처로 지은 교회에 함께 계신다. 교회는 주님의 성전이시고 주님께서 교회에 함께 계신다. 여러분이 그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서 그의 전을 지은 유다 지파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분이 하늘 보좌에 계시는데 그분이 그의 영을 부으셔서 하늘에 속한 거룩한 성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성소로 교회가 우주적인 성소로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그의 백성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셨고 그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즐거이 헌신함을 통해서 그의 나라를 우주적으로 확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에서 완성되었다. 교회를 지으신 분은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 성령으로 충만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고레스보다 더 큰 권세로 천하만국의 권세를 가진 분이다. 이제는 모든 이방인들도 이 왕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그리스도께서 지으신 집은 조용기 목사 예배당하고 비교가 안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부활절 때 흰 옷 입은 것은 구약 때는 최고의 거룩한 옷을 입은 것이 횐옷을 입은 것이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흰옷을 입으면 지성소까지 들어간다. 그것이 구약의 거룩이다. 그 때는 영광스러운 옷을 입으면 안되고 그것을 벗고 새마포 흰옷을 입고 들어간다. 그러니까 온전히 성결케 된 무리들이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온다는 표현을 구약 표현을 써서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그들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 있다. 구약 때는 제단 앞이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향을 사르는 가장 가까운 자리다. 거기에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무리들이 올라와서 거기 있다. 구약 언어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 때는 아무리 흰옷을 입어도 제단 앞에 까지고 또 지성소 앞에 까지다. 거기 이상은 못 들어간다. 땅의 지성소는 들어갔다가 바로 나와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거처가 아니라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제 그 일이 완성되어서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교회는 구약의 희옷 보다 더 흰옷을 입어서 예수의 영광으로 덧입어서 예수와 함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았고 하나님 안에 있다. 휘장밖에 있거나 지성소에 들어간 정도가 아니다. 예수를 믿으면 그렇게 깨끗한 것이다. 예수 믿음이 여러분을 그렇게 깨끗한 백성을 만드는 것이다. 여러분이 참으로 참으로 예수를 즐거워하고 빛 가운데서 살면 여러분이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도 보면 남자는 정장을 하고 오고 여자들은 하얀 흰옷을 입고 온다. 그러면 여자들만 갈 것이다. 왜냐하면 흰옷 입은 무리들만 올라온다고 했으니까 그럴 것이다. 내복은 무슨 옷을 입은 가를 모르겠다. 왜 그 말을 하냐면 초상날 때 보면 하얀 것을 입는데 속에는 양복을 입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식을 모르고 그런 다. 옛날 식으로 이조 때옷을 걸치기는 걸치는데 춥기는 하니까 밑에는 구두 신고 속에는 양복 다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무슨 옷인지 그래서 해본 말이다. 그래서 그전에 그런 말을 했다. 햐얀 옷 입고 올라고 하지 말고 속이나 닦으십시오. 그랬더니 기분이 대단히 나빴던 모양이다. 나는 그 때는 어떤 것이 거룩하다고 알았냐면 내 속에 죄가 완전히 없어져야 거룩하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안됬거든요. 그래서 나는 속으로 고민이 많은데 저 사람들은 하얀 옷을 입고 웃고 있으니까 이해가 안간다. 그래서 그러기는 그랬는데 예수 믿는 것이 깨끗한 것이다. 참으로 믿고 주님을 즐거워하면 그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다.
그런데 너는 도덕적으로 깨끗하뇨? 이렇게 질문하면 그는 깨끗하게 못 만든다. 결혼하고 비슷해서 결혼함으로 완전한 하나를 이룬 것이다. 이제는 휘장을 걷고 하나님이 우리를 즐거워하시면 그 관계로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것은 완전한 거룩이다. 그것은 흰옷 보다 더한 거룩이다. 그것은 하늘 성소에 합당한 거룩이다. 그러니까 구약 언어 개념을 쓰고 있는 것을 그냥 우리 나라 한복 개념에다 그대로 연결을 시켜 버리니까 그 날은 흰옷 입은 날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