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위기 진단과 지도력 향상을 위하여
2006. 7. 9. 00:23ㆍ신학자료/8.목회학 자료
목회자의 위기 진단과 지도력 향상을 위하여
첫번째 글> = 위기와 지도자 =
A.위기가 닥아 왔을 때...........
공동체의 위기!! 그것은 지도자가 만나야 하는 필연적인 상황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을 위한 몸부림이며, 개혁을 향한 방향전환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살아있음의 호흡이며 성숙을 향한 목마름라 합니다. 그것은 침체된 공동체에 호흡을 불어넣어주는 자극제가 되기도 하고 분열된 의식들을 하나로 묶어주기도 한답니다.
이 위기를 만난 지도자가 때로는 위대한 지도자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위기 관리를 서투르게 하여 그 동동체와 함께 침몰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위기를 보는 지도자의 시각입니다.
위기를 자신들의 야욕을 채울 절호의 찬스로 보는 지도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물론 위기상황이 발생할 때만 득세하는 성지이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위기의식을 조성하고 위기상황을 조작하는 것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들의 위기관리 수법을 보면 흔히 물리적인 힘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임기응볍에 지나지않고 또 더 큰 위기와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또 다른 부류로 위기의식이 전혀 없는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변화를 싫어합니다. 현재의 소유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위기극복의 출구마저 스스로 차단한채 아늑한 자장가를 즐깁니다. 지도자 예레미야는 조국 유다의 멸망이 촌각에 달려있음을 봅니다. 북쪽 바벨론의 침공은 막을 힘도 없으며 또 항전해서도 소용없음을 경고했습니다. 유다가 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너희가 하나님 앞에 범죄했으며 그 징계로 바벨론의 포로가 될것이라고 역설했답니다.
그러나 지도자 하나냐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이와같은 위기 상황을 반대로 안이하게 보았습니다. 결코 유다는 완전히 망하지 않습니다. 혹 일부 포로가 된다 하더라도 2년 이내에 귀환할 것이라고 장담했지요. 이 두 지도자의 위기 진단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유다는 망했습니다.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쇠사슬에 묶여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하나냐는 수 개월 후에 죽었다. 포로생활은 70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현명한 지도자는 위기진단을 바로 합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에 위기가 몰아닥쳤습니다. 민족감정과 지역감정에다 분배문제의 불만이 폭발되었습니다. 교회 안으로부터 발생한 이 위기상황을 보는 사도들의 시각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먼저 이 위기발생의 원인을 지도자인 열두사도 자신들에게서 찾았습니다. 말씀을 제쳐두고 재정출납에만 급급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 다음 즉각적인 처방에 들어갔습니다.
새 일꾼을 뽑아서 역할을 분담시키고 사도들은 말씀 봉사와 기도하는 본연의 사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초대교회의 위기는 그 교세가 확장 일로에 있을 때에 왔습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급팽창한 그 힘의 한가운데서 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 어쩌면 치명적일 수 있는 총체적 위기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 위기를 창조적인 기회로 바꾸어 놓은 사도들의 리더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궁급합니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전체교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고백하고 밀실이 아닌 민중 앞에서 민중에 의한 절차로 수습을 단행했습니다. 위기를 관리할 새 인물의 자질과 덕목은 어떤 것인가를 여기에서 배우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 지혜가 있는 사람, 이웃으로 부터 칭찬 받는 사람이라고 공표하고 있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이들의 통찰력 또한 우리를 긴장시킵니다. 이와같은 사도들의 리더십은 위기에 처한 그 공동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성경을 오늘까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회중 모두가 이 위기 관리방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더욱 흥왕되어 갔다고 흐믓한 소식을전해 줍니다. 제자의 수가 더욱 많아졌다고 자랑합니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복종했다고 찬양합니다.(사도행전 6:1-7)
여러분!! 오늘 우리가 처한 곳을 어떠합니까?
모두가 위기라고 입을 모읍니다. 문제는 위기를 진단하는 그 시각의 차이입니다. 너무 안일하게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또 너무 성급하게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 두 시각은 모두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위기의 상황이 악순환으로 고질화될때까지 엉거주춤하고 있는 정부나 정치 지도자여서도 안됩니다. 또한 위기상황을 단숨에 해결코자 거리로 뛰쳐 나오는 성급함도 금물입니다. 이 두 행동들은 위기관리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극한 상황의 벼랑으로 치달을 뿐입니다. 위기는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어느 기관에게나 닥치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슬기롭게 승화시키느냐에 민족의 생명은 좌우됩니다. 좀더 긴 안목으로 역사를 인식하는 냉철한 통찰력이 요청되는 시대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오늘 위기에 직면한 공동체가 있습니까?
그 위기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지도자가 있습니까?
먼저 위기를 직시하는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겸허한 결단을 서둘러야 합니다.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B.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농부가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읍니다. 냄새나는 거름통을 메고 변소에서 인분을 퍼 밭에 뿌리고 있었읍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감싸고 피해갑니다. 일을 도와주고 있는 아들에게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읍니다. "아버지가 밉지 않으냐?" 아들은 자랑스럽게 대답했읍니다. "대통령보다더 훌룡해요." 농부와 그 가족은 이 나라의 참된 주인입니다.
농사를 짓는 일은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더구나 냄새나는 인분을 퍼서 밭에 뿌리는 일은 고역스럽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자기가 지키고 서야 할 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뿐 아니라 고통스러워도 부자가 합심하여 농부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대통령이나 군대의 사랑관이 되는 것 못지 않게 훌륭한 일입니다. 지키고 서야 할 자리, 천하 미인 양귀비도, 영웅 호걸 열사들도 지키고 서야할 자리를 이탈하면 쓸모 없는 존재가 되며,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고 맙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지켜야 할 가장의 자리가 있고, 어머니는 주부의 자리가 있읍니다. 각자의 자리가 잘 지켜지면 가정은 행복의 요람이요, 작은 천국이지만 이 자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지옥이 됩니다. 정치인이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 물리적인 힘에 의하여 쫒겨나게 되고, 나라는 혼란을 거듭하게 되며, 군인이 나라를 지켜야 할 자리를 이탈하면 국방의 위협을 받게되고, 학생이 제자리를 이탈하여 저리로 쏟아져 나올때 사회가 불안한 것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맡을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사회의 지탄을 면할 길이 없읍니다. 최선을 다하는 농부처럼 천직의식을 가지고 성도가 서야 할 사회적 위치를 지키여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질서요, 법입니다.
두번째 글>
= 일반적인 지도자가 되기위하여 받아야 할 교육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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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과 목 주 요 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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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리더십 .좌표로서의 행동 스타일
.관리자의 지도.통솔력
.리더십의 기본적 관점
.현대의 상황과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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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의 자기 분석 .리더십을 지탱하는 것
.사람을 알고 자신을 알라
.자기를 살리고 주위도 살린다
.당신의 지식.경험은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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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에 맞는 리더십 강화 .자기 계발 방법의 재지검토
.변화 시대의 리더십 기반의 강화
.개성을 살린 계발의 포인트
.자기 계발과 인재 양성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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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글>
= 목회자의 지도력과 신학 =
우리는 목회자의 지도력과 신학을 먼저 예수의 사역(Ministry)을 통해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예수의 3대 사역은 말씀선포, 가르침, 치유(돌봄)였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지도력은 카리스마적 권위주의에 있지않고 그의 신학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목회자의 지도력은 목회자의 영감에 충만한 예배와 감동적인 설교와 실력있는 가르침(교육) 과 희생적이고 사랑에 가득찬 돌봄에서 나오는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예배학,설교학,성서신학에 대한 해박한 신학적 지식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목회자의 지도력은 지나친 우월감이나 기름 부음을 받은 주의 종이란 교만에서 벗어나 기도해서 얻은 영적인 힘과 노력해서 얻은 신학적 지식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목회자의 지도력을 서술하면,
첫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소명의식과 필요한 은사를 하나님께로 부터 받았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둘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종으로서 교회와 사회에 대한 봉사에서 나온다.
셋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봉사이지 권력을 가지고 교회의 법규나 규칙을 행사하는 일이 아니다.
넷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종일 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종도됨으로 신도들에게서 스스로 비판을 받는데 있다.
다섯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지도적 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민주적사상의 실천에 있다.
여섯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구체적인 영적 권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대한 예언자적인 외침에 있다.
일곱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것으로 끝나지않고 그의 삶속에서 실제적 모범을 보여주는데 있다.
목회자가 지도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것은 올바른 신학적 이해이다. 신학이란 기독교 전통의 해석과 현지적 상황의 해석 사이의 상호 비판적 관계와 상관관계를 수립하는 시도라고 트레이시는 말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부르조아적인 중산계급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쉽게 교회에 나올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미래의 한국교회는 물량적인 개체교회 중심의 성장만을 계획할 것이 아니라, 신도들의 삶의 질적인 성장을 위한 신앙지도 계획이 필요하다.
네번째 글>
= 목회자 자신의 위기진단 =
= 위기의 원인 =
루드 윌레스(Ruth Wallace)는 "위기감은 무언가 자기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서 그것을 보상하려는 감정적인 갈망을 생산한다." 고 지적했다. 윌레스에 따르면 네가지 결핍 또는 상실감이 위기를 조성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1) 사회적인 보상의 결여:
다른 사람에게 충분한 인정과 보상을 받을 수 없을 때 오는 상실감
(2) 생의 지속성의 결핍:
역할의 변화 또는 일반적인 위기사건들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상실감
(3) 신앙적인 연대감의 상실 :
자기 신앙의 경험이 자기가 듣는 진리와 거리가 있거나 믿음의 공동체에서 소외되었을 때 오는 상실감
(4) 인격적인 영향력의 상실: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과 다른사람들로부터 무시받고 소외받을 때 오는 상실감 등이다.
= 위기의 특성과 자기진단 =
위기를 진단 할 수있는 행동의 징후로는 피로, 무력감, 무능, 혼란, 근심,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혼란, 그리고 가족관계의 혼한 등이 있다. 위기란 어떤 외적 위험에 대한 개인의 내적인 반응이며, 위기를 촉발시키는 사건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다시말해 위기의 첫번째 단계는 자극 또는 촉발적인 사건의 발생이다. 이때에는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그 사건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대응책을 발견하여 그 사건에 대처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대응책이 실패하면 사람들은 위기상황에 빠지게 된다.
누구나 일단 위기상황에 빠지게 되면 그 위기를 촉발시킨 사건이 어떠한 사건이든 그가 당하는 위기의 특성들은 대동소이하다. 여러가지 위기의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위기를 촉발시키는 초기 사건의 크기와 위기식의 크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위기는 사건에 대한 주관적 평가와 대응책이 실패한 결과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를 당한 사람이 어떻게 그 사건을 평가하는가에 따라 위기 발생은 크게 달라진다. 즉 위기를 촉발하는 사건보다 그에 대처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평가가 위기감 조성에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위기 상황에 부딪힌 사람들은 초기 사건으로부터 오는 상실의 위협 때문에 상황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보는 눈을 상실해 버린다. 따라서 자기에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어디에서든지 그 위기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맹목적으로 거기에 빠져버린다.
셋째로 그 위기 상황에 위협적이라고 평가할 수록 그에 대항하는 방법들을 원시적이고 비합리적이요 감정적이 된다. 즉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면 실제적인 현실과의 접촉은 잃어버리고 그 상황에 빠져 변덕스러워지고, 퇴보적이며, 유아적인 대인관계를 갈망한다.
넷째로 위기 상황에 있는 사람은 보통 때부다 훨씬 덜 방어적이고 변화에 대해서 취약성이 있다. 그러므로 위기경험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그 기간은 짧지만 빠르게 절정에 이를 수도 있고 변화될 수도 있는 고조된 심리적 민감성을 가지고있다.
첫번째 글> = 위기와 지도자 =
A.위기가 닥아 왔을 때...........
공동체의 위기!! 그것은 지도자가 만나야 하는 필연적인 상황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을 위한 몸부림이며, 개혁을 향한 방향전환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살아있음의 호흡이며 성숙을 향한 목마름라 합니다. 그것은 침체된 공동체에 호흡을 불어넣어주는 자극제가 되기도 하고 분열된 의식들을 하나로 묶어주기도 한답니다.
이 위기를 만난 지도자가 때로는 위대한 지도자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위기 관리를 서투르게 하여 그 동동체와 함께 침몰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위기를 보는 지도자의 시각입니다.
위기를 자신들의 야욕을 채울 절호의 찬스로 보는 지도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물론 위기상황이 발생할 때만 득세하는 성지이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위기의식을 조성하고 위기상황을 조작하는 것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들의 위기관리 수법을 보면 흔히 물리적인 힘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임기응볍에 지나지않고 또 더 큰 위기와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또 다른 부류로 위기의식이 전혀 없는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변화를 싫어합니다. 현재의 소유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위기극복의 출구마저 스스로 차단한채 아늑한 자장가를 즐깁니다. 지도자 예레미야는 조국 유다의 멸망이 촌각에 달려있음을 봅니다. 북쪽 바벨론의 침공은 막을 힘도 없으며 또 항전해서도 소용없음을 경고했습니다. 유다가 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너희가 하나님 앞에 범죄했으며 그 징계로 바벨론의 포로가 될것이라고 역설했답니다.
그러나 지도자 하나냐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이와같은 위기 상황을 반대로 안이하게 보았습니다. 결코 유다는 완전히 망하지 않습니다. 혹 일부 포로가 된다 하더라도 2년 이내에 귀환할 것이라고 장담했지요. 이 두 지도자의 위기 진단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유다는 망했습니다.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쇠사슬에 묶여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하나냐는 수 개월 후에 죽었다. 포로생활은 70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현명한 지도자는 위기진단을 바로 합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에 위기가 몰아닥쳤습니다. 민족감정과 지역감정에다 분배문제의 불만이 폭발되었습니다. 교회 안으로부터 발생한 이 위기상황을 보는 사도들의 시각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먼저 이 위기발생의 원인을 지도자인 열두사도 자신들에게서 찾았습니다. 말씀을 제쳐두고 재정출납에만 급급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 다음 즉각적인 처방에 들어갔습니다.
새 일꾼을 뽑아서 역할을 분담시키고 사도들은 말씀 봉사와 기도하는 본연의 사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초대교회의 위기는 그 교세가 확장 일로에 있을 때에 왔습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급팽창한 그 힘의 한가운데서 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 어쩌면 치명적일 수 있는 총체적 위기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이 위기를 창조적인 기회로 바꾸어 놓은 사도들의 리더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궁급합니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전체교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고백하고 밀실이 아닌 민중 앞에서 민중에 의한 절차로 수습을 단행했습니다. 위기를 관리할 새 인물의 자질과 덕목은 어떤 것인가를 여기에서 배우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 지혜가 있는 사람, 이웃으로 부터 칭찬 받는 사람이라고 공표하고 있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이들의 통찰력 또한 우리를 긴장시킵니다. 이와같은 사도들의 리더십은 위기에 처한 그 공동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성경을 오늘까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회중 모두가 이 위기 관리방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더욱 흥왕되어 갔다고 흐믓한 소식을전해 줍니다. 제자의 수가 더욱 많아졌다고 자랑합니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복종했다고 찬양합니다.(사도행전 6:1-7)
여러분!! 오늘 우리가 처한 곳을 어떠합니까?
모두가 위기라고 입을 모읍니다. 문제는 위기를 진단하는 그 시각의 차이입니다. 너무 안일하게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또 너무 성급하게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 두 시각은 모두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위기의 상황이 악순환으로 고질화될때까지 엉거주춤하고 있는 정부나 정치 지도자여서도 안됩니다. 또한 위기상황을 단숨에 해결코자 거리로 뛰쳐 나오는 성급함도 금물입니다. 이 두 행동들은 위기관리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극한 상황의 벼랑으로 치달을 뿐입니다. 위기는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어느 기관에게나 닥치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슬기롭게 승화시키느냐에 민족의 생명은 좌우됩니다. 좀더 긴 안목으로 역사를 인식하는 냉철한 통찰력이 요청되는 시대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오늘 위기에 직면한 공동체가 있습니까?
그 위기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지도자가 있습니까?
먼저 위기를 직시하는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겸허한 결단을 서둘러야 합니다.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B.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농부가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읍니다. 냄새나는 거름통을 메고 변소에서 인분을 퍼 밭에 뿌리고 있었읍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감싸고 피해갑니다. 일을 도와주고 있는 아들에게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읍니다. "아버지가 밉지 않으냐?" 아들은 자랑스럽게 대답했읍니다. "대통령보다더 훌룡해요." 농부와 그 가족은 이 나라의 참된 주인입니다.
농사를 짓는 일은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더구나 냄새나는 인분을 퍼서 밭에 뿌리는 일은 고역스럽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자기가 지키고 서야 할 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뿐 아니라 고통스러워도 부자가 합심하여 농부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대통령이나 군대의 사랑관이 되는 것 못지 않게 훌륭한 일입니다. 지키고 서야 할 자리, 천하 미인 양귀비도, 영웅 호걸 열사들도 지키고 서야할 자리를 이탈하면 쓸모 없는 존재가 되며,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고 맙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지켜야 할 가장의 자리가 있고, 어머니는 주부의 자리가 있읍니다. 각자의 자리가 잘 지켜지면 가정은 행복의 요람이요, 작은 천국이지만 이 자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지옥이 됩니다. 정치인이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 물리적인 힘에 의하여 쫒겨나게 되고, 나라는 혼란을 거듭하게 되며, 군인이 나라를 지켜야 할 자리를 이탈하면 국방의 위협을 받게되고, 학생이 제자리를 이탈하여 저리로 쏟아져 나올때 사회가 불안한 것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맡을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사회의 지탄을 면할 길이 없읍니다. 최선을 다하는 농부처럼 천직의식을 가지고 성도가 서야 할 사회적 위치를 지키여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질서요, 법입니다.
두번째 글>
= 일반적인 지도자가 되기위하여 받아야 할 교육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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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과 목 주 요 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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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리더십 .좌표로서의 행동 스타일
.관리자의 지도.통솔력
.리더십의 기본적 관점
.현대의 상황과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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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의 자기 분석 .리더십을 지탱하는 것
.사람을 알고 자신을 알라
.자기를 살리고 주위도 살린다
.당신의 지식.경험은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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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에 맞는 리더십 강화 .자기 계발 방법의 재지검토
.변화 시대의 리더십 기반의 강화
.개성을 살린 계발의 포인트
.자기 계발과 인재 양성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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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글>
= 목회자의 지도력과 신학 =
우리는 목회자의 지도력과 신학을 먼저 예수의 사역(Ministry)을 통해 모색해야 할 것이다. 예수의 3대 사역은 말씀선포, 가르침, 치유(돌봄)였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지도력은 카리스마적 권위주의에 있지않고 그의 신학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목회자의 지도력은 목회자의 영감에 충만한 예배와 감동적인 설교와 실력있는 가르침(교육) 과 희생적이고 사랑에 가득찬 돌봄에서 나오는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예배학,설교학,성서신학에 대한 해박한 신학적 지식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목회자의 지도력은 지나친 우월감이나 기름 부음을 받은 주의 종이란 교만에서 벗어나 기도해서 얻은 영적인 힘과 노력해서 얻은 신학적 지식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목회자의 지도력을 서술하면,
첫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소명의식과 필요한 은사를 하나님께로 부터 받았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둘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종으로서 교회와 사회에 대한 봉사에서 나온다.
셋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봉사이지 권력을 가지고 교회의 법규나 규칙을 행사하는 일이 아니다.
넷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종일 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종도됨으로 신도들에게서 스스로 비판을 받는데 있다.
다섯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지도적 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민주적사상의 실천에 있다.
여섯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구체적인 영적 권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대한 예언자적인 외침에 있다.
일곱째, 목회자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것으로 끝나지않고 그의 삶속에서 실제적 모범을 보여주는데 있다.
목회자가 지도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것은 올바른 신학적 이해이다. 신학이란 기독교 전통의 해석과 현지적 상황의 해석 사이의 상호 비판적 관계와 상관관계를 수립하는 시도라고 트레이시는 말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부르조아적인 중산계급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쉽게 교회에 나올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미래의 한국교회는 물량적인 개체교회 중심의 성장만을 계획할 것이 아니라, 신도들의 삶의 질적인 성장을 위한 신앙지도 계획이 필요하다.
네번째 글>
= 목회자 자신의 위기진단 =
= 위기의 원인 =
루드 윌레스(Ruth Wallace)는 "위기감은 무언가 자기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서 그것을 보상하려는 감정적인 갈망을 생산한다." 고 지적했다. 윌레스에 따르면 네가지 결핍 또는 상실감이 위기를 조성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1) 사회적인 보상의 결여:
다른 사람에게 충분한 인정과 보상을 받을 수 없을 때 오는 상실감
(2) 생의 지속성의 결핍:
역할의 변화 또는 일반적인 위기사건들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상실감
(3) 신앙적인 연대감의 상실 :
자기 신앙의 경험이 자기가 듣는 진리와 거리가 있거나 믿음의 공동체에서 소외되었을 때 오는 상실감
(4) 인격적인 영향력의 상실: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과 다른사람들로부터 무시받고 소외받을 때 오는 상실감 등이다.
= 위기의 특성과 자기진단 =
위기를 진단 할 수있는 행동의 징후로는 피로, 무력감, 무능, 혼란, 근심,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혼란, 그리고 가족관계의 혼한 등이 있다. 위기란 어떤 외적 위험에 대한 개인의 내적인 반응이며, 위기를 촉발시키는 사건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다시말해 위기의 첫번째 단계는 자극 또는 촉발적인 사건의 발생이다. 이때에는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그 사건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대응책을 발견하여 그 사건에 대처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대응책이 실패하면 사람들은 위기상황에 빠지게 된다.
누구나 일단 위기상황에 빠지게 되면 그 위기를 촉발시킨 사건이 어떠한 사건이든 그가 당하는 위기의 특성들은 대동소이하다. 여러가지 위기의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위기를 촉발시키는 초기 사건의 크기와 위기식의 크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위기는 사건에 대한 주관적 평가와 대응책이 실패한 결과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를 당한 사람이 어떻게 그 사건을 평가하는가에 따라 위기 발생은 크게 달라진다. 즉 위기를 촉발하는 사건보다 그에 대처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평가가 위기감 조성에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위기 상황에 부딪힌 사람들은 초기 사건으로부터 오는 상실의 위협 때문에 상황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보는 눈을 상실해 버린다. 따라서 자기에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어디에서든지 그 위기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맹목적으로 거기에 빠져버린다.
셋째로 그 위기 상황에 위협적이라고 평가할 수록 그에 대항하는 방법들을 원시적이고 비합리적이요 감정적이 된다. 즉 심각한 위기를 경험하면 실제적인 현실과의 접촉은 잃어버리고 그 상황에 빠져 변덕스러워지고, 퇴보적이며, 유아적인 대인관계를 갈망한다.
넷째로 위기 상황에 있는 사람은 보통 때부다 훨씬 덜 방어적이고 변화에 대해서 취약성이 있다. 그러므로 위기경험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그 기간은 짧지만 빠르게 절정에 이를 수도 있고 변화될 수도 있는 고조된 심리적 민감성을 가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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