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관리는 이루어진다
2006. 7. 9. 00:05ㆍ신학자료/8.목회학 자료
감정관리는 이루어진다
김양환 목사
1. 자신을 [감정관리 모델]로 생각하고 이론과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1) 나는 선천적으로 악성감정이 강한 사람처럼 느끼고 있었다.
필자가 영성신학에 입문하기 전에 각종 악성감정의 표출로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를 위해 [특별 금식기도]까지 했었다. 이것은 내 의지적인 노력이나 결심으로도 감정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초월적 능력에 의존해서 치유해 보려는 신앙적 결단임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나 신앙적 노력이 내가 원하는 것처럼 근본적 치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안 될까? 그래서 깨우친 것이 [나는 선천적으로 많은 결함과 약점을 가지고 태여 낫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필자는 이를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도 해 보았고 많은 눈물과 땀을 소진해 본 경험이 생생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동양철학이 거짓 말처럼 내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악성감정이 표출하지 않는 삶을 갈망하고 있다. 그래서 <치유 목회>가 인기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95년 이후 EQ심리학이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는 것도 감정관리의 필요성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욕구에 부합되기 때문일 것이다.
2) 신앙적인 삶과 관상기도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신교 500년 역사 속에서 신학교 교육과 교회 프로그램에서 크게 잘못한 것 중 하나가 기독교 [전통적 기도학]을 외면했다는 점이다. [전통적 기도학]은 대부분의 학자가 3단계 구분론을 선택한다. 이것이 [구송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다. 그러나 개신교는 구송기도(Vocal prayer)가 기도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묵상(Meditation)과 관상기도(Contemplation)는 제한된 특수한 사람들(교부나 영성가 등)이나 하는 [특별한 기도]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개신교에서는 묵상과 관상기도에 대한 신학적 교육과 훈련이 일반적으로 무시되어왔기 때문에 [개신교 기도학]은 구송기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영성수련생 중에 악성감정에서의 해방을 위해 [40일 금식기도]를 한 사람이 몇 사람 있다. 40일 금식기도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가장 어려운 초인적인 기도운동이다. 그러나 저들의 고백은 40일 금식기도로도 악성감정에서의 해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40일 금식기도도 구송기도의 범주에 속하는 기도임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기도학에서 [구송기도]는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요청하고, 감사하고, 참회하는 등]의 기도로 구분한다. 이것이 기도의 [제1단계]다. 이 말은 기도의 제2, 제3단계가 있어야 함을 뜻한다. 이것이[묵상과 관상기도]다. 이 단계에 들어가야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얻고, 느끼고, 깨닫고, 만나고 등]의 신앙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필자는 묵상기도와 관상기도가 신앙적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15년 간의 영성운동을 통해서 철저하게 느끼고 있다. 묵상과 관상기도는 참 크리스챤이 되게 하는 가장 필요한 기도운동이요 보편화가 가능하다.
기독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과 실천력> 혹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영감과 실천력, 혹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생활은 묵상과 관상기도의 단계에서만 가능해 진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러한 묵상과 관상기도의 학습과 수련이 없다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 엄청난 잘못이 전통적 기도학을 외면한 신학교 교육에 있음을 인식하고 시급하게 시정해야 한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것은 치유목회나 EQ심리학이 미치지 못하는 완벽하고도 실용적인 방법을 [예수님이 새롭게 개척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내용이다. 이것을 필자가 관상기도에서 깨우쳤다는 것은 관상기도의 실용성을 말해 주는 것이 된다. 이처럼 관상기도는 기독교 사역자의 필수품에 속한다.
2. 인간은 악성감정에서 해방이 가능하다.
사실상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미움, 짜증, 분노 질투 등(악성감정)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이 악성감정이 인간을 불행하게 해주는 주범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것을 EQ심리학에서 구체적으로 연구 실험해서 발표한 이후 많은 지도자들이 감정문제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에서는 비교적 이 감정문제에 대해 관심이 약하다. 혹자는 이것은 세속적인 것, 불필요한 것, 신앙적 관심사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식적으로 피하려고도 한다.
필자가 영성운동에 몰두한지 15년이 되었다. 나 자신이 언제부터 감정관리가 되었을까? 아마도 초기에는 가벼운 짜증이나 원망 같은 것이 마음에 남아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8~9년 전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에서 가벼운 원망 같은 악성감정마저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 자신도 신기하게 느끼며 감사한다.
그런데 필자가 이렇게 된 것 중하나가 예수님의 [감성적 방법론]을 새롭게 그리고 강하게 깨우치고, 말씀에 심취하고 압도를 당하게 하는 [말씀과의 만남의 체험]을 한 것이 8~9년 전이라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가 10년 가까운 시간 속에서 자신의 감정관리가 만족할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신비한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 필자가 이 감정계발 프로그램을 통해서 깨우친 것은 예수님의 방법론은 전연 새로운 것이고, 또 놀라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방법을 전폭적으로 활용 만하면 누구나 지옥 같은 악성감정에서 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느 날 집사람과 함께 영성수련장에 간 일이 있었다. 그 때에 한 수련생이 집사람에게 "사모님! 김 목사님이 정말 신경질 같은 것을 1년 내내 내시지 않으십니까?"라고 질문을 했었고, 집사람이 "목사님은 화내시는 일 같은 것 전연 없으십니다"라고 대답해서 한바탕 웃었다. 지금도 필자는 이것이<꿈만 같은 삶이다>라고 느낀다.
그런데 우리감정이 관리되고 있느냐의 여부는 [부부간의 감정교환이 시금석이다]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집 밖에서는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지만 집에서는 잘 안 된다는 말을 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나와 무관한 지나가는 사람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다. 부부는 가장 가까이 그리고 강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표출된다. 그 대표적인 감정이 <사랑과 미움>이다. 이것이<천국과 지옥>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단순한 생활철학이 예수님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방법론이다.
필자는 15년 동안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탐색하는 일에 모든 정성과 노력 그리고 관상기도(Contemplation)를 통해 영성적 깨우침에 주력했었다. 그래서 얻어진 경험과 방법을 다음에 정리해 본다. 이것이 필자의 [노하우]라고 해도 좋다.3.이곳에서는 <방법론 제목>만 소개한다
1) [가슴으로 신앙 생활을 하라]
2) [미움은 사탄의 속성이다]를 체질화가 되게 한다
3) [말씀의 포로가 되라] 그렇게 되면 해방이 가능해 진다.
4) [교인들의 감정관리 훈련 경험을 축적하라] 그렇게 되면 본인 감정도 계발된다.
5) [5분 명상 훈련]을 활용한다. 그러면 묵상과 관상기도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 훈련은 <성경+마음+성령=영성적 사건>이라는 신앙적 결과가 나타난다
6) [사탄의 작전개시 신호]에 민감해야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7) [악성감정 상황일기]를 작성한다. 이것은 [감정관리 학습]에 필요한 항목이다.
8) 하나님의 감정을 반추한다. 이것이 감정계발 비법의 하나다.
9) [악성감정을 입으로 확인하라] 이것이 [감정관리 학습]이 되기 때문에 필요하다.
김양환 목사
1. 자신을 [감정관리 모델]로 생각하고 이론과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1) 나는 선천적으로 악성감정이 강한 사람처럼 느끼고 있었다.
필자가 영성신학에 입문하기 전에 각종 악성감정의 표출로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를 위해 [특별 금식기도]까지 했었다. 이것은 내 의지적인 노력이나 결심으로도 감정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초월적 능력에 의존해서 치유해 보려는 신앙적 결단임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나 신앙적 노력이 내가 원하는 것처럼 근본적 치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안 될까? 그래서 깨우친 것이 [나는 선천적으로 많은 결함과 약점을 가지고 태여 낫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필자는 이를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도 해 보았고 많은 눈물과 땀을 소진해 본 경험이 생생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동양철학이 거짓 말처럼 내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악성감정이 표출하지 않는 삶을 갈망하고 있다. 그래서 <치유 목회>가 인기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95년 이후 EQ심리학이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는 것도 감정관리의 필요성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욕구에 부합되기 때문일 것이다.
2) 신앙적인 삶과 관상기도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신교 500년 역사 속에서 신학교 교육과 교회 프로그램에서 크게 잘못한 것 중 하나가 기독교 [전통적 기도학]을 외면했다는 점이다. [전통적 기도학]은 대부분의 학자가 3단계 구분론을 선택한다. 이것이 [구송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다. 그러나 개신교는 구송기도(Vocal prayer)가 기도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묵상(Meditation)과 관상기도(Contemplation)는 제한된 특수한 사람들(교부나 영성가 등)이나 하는 [특별한 기도]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개신교에서는 묵상과 관상기도에 대한 신학적 교육과 훈련이 일반적으로 무시되어왔기 때문에 [개신교 기도학]은 구송기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영성수련생 중에 악성감정에서의 해방을 위해 [40일 금식기도]를 한 사람이 몇 사람 있다. 40일 금식기도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가장 어려운 초인적인 기도운동이다. 그러나 저들의 고백은 40일 금식기도로도 악성감정에서의 해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40일 금식기도도 구송기도의 범주에 속하는 기도임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기도학에서 [구송기도]는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요청하고, 감사하고, 참회하는 등]의 기도로 구분한다. 이것이 기도의 [제1단계]다. 이 말은 기도의 제2, 제3단계가 있어야 함을 뜻한다. 이것이[묵상과 관상기도]다. 이 단계에 들어가야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얻고, 느끼고, 깨닫고, 만나고 등]의 신앙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필자는 묵상기도와 관상기도가 신앙적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15년 간의 영성운동을 통해서 철저하게 느끼고 있다. 묵상과 관상기도는 참 크리스챤이 되게 하는 가장 필요한 기도운동이요 보편화가 가능하다.
기독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과 실천력> 혹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영감과 실천력, 혹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생활은 묵상과 관상기도의 단계에서만 가능해 진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러한 묵상과 관상기도의 학습과 수련이 없다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 엄청난 잘못이 전통적 기도학을 외면한 신학교 교육에 있음을 인식하고 시급하게 시정해야 한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것은 치유목회나 EQ심리학이 미치지 못하는 완벽하고도 실용적인 방법을 [예수님이 새롭게 개척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내용이다. 이것을 필자가 관상기도에서 깨우쳤다는 것은 관상기도의 실용성을 말해 주는 것이 된다. 이처럼 관상기도는 기독교 사역자의 필수품에 속한다.
2. 인간은 악성감정에서 해방이 가능하다.
사실상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미움, 짜증, 분노 질투 등(악성감정)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이 악성감정이 인간을 불행하게 해주는 주범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것을 EQ심리학에서 구체적으로 연구 실험해서 발표한 이후 많은 지도자들이 감정문제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에서는 비교적 이 감정문제에 대해 관심이 약하다. 혹자는 이것은 세속적인 것, 불필요한 것, 신앙적 관심사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식적으로 피하려고도 한다.
필자가 영성운동에 몰두한지 15년이 되었다. 나 자신이 언제부터 감정관리가 되었을까? 아마도 초기에는 가벼운 짜증이나 원망 같은 것이 마음에 남아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8~9년 전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에서 가벼운 원망 같은 악성감정마저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 자신도 신기하게 느끼며 감사한다.
그런데 필자가 이렇게 된 것 중하나가 예수님의 [감성적 방법론]을 새롭게 그리고 강하게 깨우치고, 말씀에 심취하고 압도를 당하게 하는 [말씀과의 만남의 체험]을 한 것이 8~9년 전이라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가 10년 가까운 시간 속에서 자신의 감정관리가 만족할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신비한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 필자가 이 감정계발 프로그램을 통해서 깨우친 것은 예수님의 방법론은 전연 새로운 것이고, 또 놀라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방법을 전폭적으로 활용 만하면 누구나 지옥 같은 악성감정에서 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느 날 집사람과 함께 영성수련장에 간 일이 있었다. 그 때에 한 수련생이 집사람에게 "사모님! 김 목사님이 정말 신경질 같은 것을 1년 내내 내시지 않으십니까?"라고 질문을 했었고, 집사람이 "목사님은 화내시는 일 같은 것 전연 없으십니다"라고 대답해서 한바탕 웃었다. 지금도 필자는 이것이<꿈만 같은 삶이다>라고 느낀다.
그런데 우리감정이 관리되고 있느냐의 여부는 [부부간의 감정교환이 시금석이다]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집 밖에서는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지만 집에서는 잘 안 된다는 말을 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나와 무관한 지나가는 사람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다. 부부는 가장 가까이 그리고 강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표출된다. 그 대표적인 감정이 <사랑과 미움>이다. 이것이<천국과 지옥>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단순한 생활철학이 예수님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방법론이다.
필자는 15년 동안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탐색하는 일에 모든 정성과 노력 그리고 관상기도(Contemplation)를 통해 영성적 깨우침에 주력했었다. 그래서 얻어진 경험과 방법을 다음에 정리해 본다. 이것이 필자의 [노하우]라고 해도 좋다.3.이곳에서는 <방법론 제목>만 소개한다
1) [가슴으로 신앙 생활을 하라]
2) [미움은 사탄의 속성이다]를 체질화가 되게 한다
3) [말씀의 포로가 되라] 그렇게 되면 해방이 가능해 진다.
4) [교인들의 감정관리 훈련 경험을 축적하라] 그렇게 되면 본인 감정도 계발된다.
5) [5분 명상 훈련]을 활용한다. 그러면 묵상과 관상기도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 훈련은 <성경+마음+성령=영성적 사건>이라는 신앙적 결과가 나타난다
6) [사탄의 작전개시 신호]에 민감해야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7) [악성감정 상황일기]를 작성한다. 이것은 [감정관리 학습]에 필요한 항목이다.
8) 하나님의 감정을 반추한다. 이것이 감정계발 비법의 하나다.
9) [악성감정을 입으로 확인하라] 이것이 [감정관리 학습]이 되기 때문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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