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 설교 - 회복됨을 감사하라!

2020. 11. 11. 15:37목양자료/2.설교자료

회복됨을 감사하라. 호1:10-2:1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성도 여러분들과 가정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 성도님 모두 한 해 동안 영적으로 육적으로 거두게 하시고/ 지켜주시고/ 축복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바란다.

1.먼저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자.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출 23:16절에 하나님께서 수장제정하신데서 유래하였다. 추수를 마치고 추수한 것을 저하면하나님께 수장절을 지킨 것이 추수감사절의 성경적인 근거이다.

그 다음의 유래는 교회사적으로 주후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와 가족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라는 배를 타고 117일 동안 대양을 항해하며 횡단하면서 파도와 굶주림과 질병으로 어린이를 포함해서 44명이 생명을 잃고 고난 중에 살아남은 성도들신대륙 미국에 상륙하여 먼저 교회를 세우고 인디언으로부터 선물 받은 옥수수와 채소, 씨앗으로 농사를 지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첫 수확을 하여 1621년 하나님께 추수감사예배를 드린 데서 유래한다.

감사고난 중에도 드리는 것이 진정한 감사이다. 미국청교도 신앙으로 세운나라이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도시에 사는 분들이나 농어촌에 사는 분들/ 모두 성도라면 누구든지 추수감사절을 지며 1년간 수입과 추수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마땅하다.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성령을 받으라’, ‘복음을 전’, ‘믿으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감사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며/ 드린 성도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명하셨다. 그렇다. 추수감사는 신앙고백이다. 예배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사이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추수감사를 드려야한다.

2.누구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까?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드린 ‘모리아’산 희생제사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고 큰 복을 받게 되었으며/ 메시아(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하나님께서 언약해 주셨다(창22장) 희생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아브라함의 후으로 보내주신 것처럼 희생적인 감사를 통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에 팔려온 것도 감사를 했다!(창45:5-8)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육지처럼 건넌 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출15:20-22) 시편기자는 환난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시54:6-7) 죽음에서 살려주심에 감사를 드렸다!(시56:12-13)

★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고 재정과 물질의 수입과 추수의 기쁨과 축복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라!.

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십자가에 희생당하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자!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리자!.

하나님의 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께 감사를 드리자! 성령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셔서 잘 살도록 인도해 주시고/ 지면에 운행하시고 우리 속에 내주하셔서 가르쳐주시고 인도해주신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목회자님께도 고마움을 느껴야한다. 부모님의 은혜와 형제자매와 믿음의 형제자매인 성도들 서로간에도 고마움을 알아야한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모두에게 감사드리기를 바란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자.

호세아란 말은 ‘구원자’라는 의미로, 여호수아의 본명기도 하나 여기 호세아는 브에리(땅에서 솟구치다)의 아들이라고만 밝힌다.

호세아 선지자는 선민 이스라엘의 가증한 타락을 지적하면서 심판 경고 및 용서와 회복의 약속을 보여주며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호세아는 자신을 배반하고 음란을 저지른 아내 고멜을 끊없는 용서와 사랑으로 받아주는 실제적인 삶의 모습을 통 죄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적 사랑을 예표 한다.

회복됨을 감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줄 믿고 감사하라.(10)

하나님의 약속은 정한 때가 이르면 반드시 성취될 줄 믿는다. 10절은 이스라엘이 범죄로 인하여 심판의 고난을 겪지만, 궁극적으로 회복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번창하게 할 것이라는 아브라함 언약(창15:5)의 반복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창할 것이라예언이 성취된 적이 있나? 아니다. 이들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 패망하고 이방으로 흩어진 후 헬라제국 로마제국 등에 짓밟히고 노예상태로 살았지 이들이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셀 수도 없는 번성은 맛보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까?(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신 분이기에 그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줄 믿으시죠? 그렇다면 10절의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대속의 죽음/ 부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를 통해 세워진 신약교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헤아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란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오늘날 세계 방방곡곡에 세워지고 전해지고 있는 복음운동을 통해 죽은 영혼을 구원하는 신약교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해 연합한 자이며 하나님의 인도와 돌보심을 받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를 말한다.

참으로 신약교회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구원 받았음을 믿는 믿음으로 언약을 맺고/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신 성령이 내주하며/ 그 영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신약교회는 진정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요, 참 이스라엘이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뿐만 아니라 호세아와 맺은 언약을 어떻게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그리고 온전히 이루시는 줄 믿는다. 그 약속을 성취하시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정하신 방법으로 이루시는 줄 믿고/ 오래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성도되기 원한다.

세상 무엇도/ 세상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약속을 좌시키거나 무효화하지 못하였다. 한치의 오차나 착오도 없이 일점일획의 가감도 없이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성취될 줄 확실히 믿는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호세아를 통해 재차 확정하신 일이 오늘 우리 가운데 실제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지게 될 줄 믿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영원까지도 변함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언제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위에 굳건히 서며, 그 말씀 안에서 우리의 삶의 길과 방향을 확지어야 할 것이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 또한 말씀과 더불어 확실하고 굳건하게 세워질 것이다.

회복 됨을 감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둘째로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 헌신하라(11)

11절에서 남쪽 유다자손과 북쪽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 올라올 것이라 한다.

여기서 한 우두머리는 누구일까? 역사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을 주도한 스룹바벨로 보지만, 구속사적 관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두머리가 누구이며 그 땅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하게 하실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될 때에는 분열이 치유되고 일치된 영으로 한 지도자를 따르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 솔로몬 사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된 이후 무수한 전쟁과 갈등과 다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복날에는 그들이 일치하여 하나 되고 화목하게 되며 한 영으한지도자를 따르며 한 목표를 지향하는 삶을 살 것을 회복의 구체적인 면모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땅(하아레츠:가나안땅)에서 올라오리라’는 말은 마치 봄이면 식물이 땅을 뚫고 올라와 그 땅 표면 전체를 덮을 정도로 번성할 것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백성들이 오늘 본문의 가르침을 통해 가장 먼저 무엇지향해야하고/ 무엇이 가장 절실한 문제인지 바로 깨달아야 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일치와 나 됨이다.

모두가 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고대하고 갈망하며 부르짖지만 실그것은 무의미한 구호가 되고 공허한 외침이 되는 것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풍조에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하나님을 섬기며/ 한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와 의견이 다르거나 정파가 다르기 때문에 멸시하고 정죄할 뿐 아니라, 자기 탐욕을 위해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내고 몸을 찢고 분열시키는 일이 너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교회가 서로 찢고 물어뜯을 때 교회는 성장하거나 부흥하지 않고 침체를 면하지 못한다.

성도들이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되기 위해서는, 부분을 통전체를 보고/ 전체를 통해 부분을 깨달으며/ 둘 이상의 단위하나로 통합을 이루는 통섭/ 즉 넘나듬의 사고방식으로 하나됨을 이루어가는 방향으로 기독교인의 사고방식이 바뀌게 될 때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 주실 줄 믿는다.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이러한 일치와 연합은 그 자체가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며, 이것을 토대로 하나님께서는 참된 부흥의 역사를 베풀어 주실 줄 믿는다.

회복된 은혜에 감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새로운 삶을 살라 (11:b-2:1)

회복된 이스라엘의 면모에 대해 세 가지로 말씀하신다. 먼저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이라 하신다. 다음은 형제에게 ‘암미’할 것이라. 그리고 너희 자매에게 ‘루하마’라 칭 할 것이라 한다.

이러한 본문은 호세아가 낳은 자식들의 이름은 비극적인 운명을 나타낸 것이었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이들을 ‘축복된 것’, ‘영광스러운 것’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먼저 이스르엘(יןרעאל)의 경우 그것은 비극적이고 저주스런 지명이지만 장차 하나님은 그것을 크고 영광스러운 땅으로 변모시킬 것임을 말씀한다.

이스르엘 즉 ‘하나님께서 흩으셨다’는 부정적인 말씀이 ‘하나님께서 파종하셨다’는 긍정적인 말씀이 되리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형제에게 암미(עמי) 즉 ‘나의 백성’이라 할 것이라 한다. 로암미 즉 ‘내백성이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외면하셨지만 회복의 때에는 나의 백성이라고 그의 백성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던 처음의 상태로 복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루하마(רחמה)는 ‘긍휼하심을 입은 자’라는 것이며, 이는 고멜이 낳은 딸 ‘로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 즉 사랑받지 못하는 자라는 로루하마가 루하마라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 ‘사랑 받는자’가 된다는 말이다.

너희 형제/ 너희 자매가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온전히 연합되어 서로가 서로를 형제처럼, 자매처럼 대우하게 된다는 것을 말함과 동시에,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김을 받지 못했던 모든 백성들이 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여김을 받는 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면모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세워진 신약교회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성도들이 서로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여기고 사랑하며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성도라고 일컬음을 받고 있지만, 이전에는 하나님의 언약이나 구원과 관계없는 ‘루암미’였고 ‘로루하마’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없는 자이더니”라는 말씀처럼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도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긍휼과 자비, 은혜를 기대할 수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공로가 없음에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고/ 그 은혜로운 대속사역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긍휼과 축복의 삶을 살도록 축복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실로 하나님의 은혜로/ 전혀 새로운 이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림을 받고/ 전혀 새로운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예수 십자가 보혈에 의지하여 구원 받은 성도들은 “거듭난 자즉 다시 태어난 자라는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저주스런 삶의 자리에서 나와 축복된 삶의 자리에 서게 되었으니 오직 그에 합당한 삶, 곧 축복된 삶, 빛된 삶,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아내야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부흥회나 대중 집회 등을 통해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일시적인 믿음은 길가에 뿌려진 씨앗과 같다.

이 같은 거품과 같은 일시적인 믿음을 버려야 한다.

신유집회 등을 통해 넘어짐이나 방언터짐 병고침 등/ 이적을 보고 믿는 이적적 믿음은/ 돌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이적이 행해지는 동안 믿음을 가진 것 같으나 깊은 뿌리가 없어 곧 시들고 말라 버린다.

성도에게 필요한 믿음은 일시적 믿음이나 이적적 믿음이 아니라 구속적 믿음이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중생케하는 구속적 믿음/ 즉 성도의 심령 속에 義가 들어와 예수의 형상을 닮아가는 믿음인 것이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게 될 줄 믿는다.

애굽에서 죄의 종노릇하던 백성들을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게 함은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로 칭의/ 즉 ‘의롭다 함을 받게 됨’으로 죄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여기에서 머물면 안 된다.

홍해를 건너 광야생활을 시작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성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성화는 오직 성령충만/ 즉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 내주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적극 순종하는 삶을 통해 성화/ 성결/ 거룩/ 성령의 충만한 삶을 통해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내가 지배되어지는 상태/ 즉 구원 받은 자의 구별된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칭의가 의롭다함을 받아 확신을 갖게 되었다면/ 성화는 말씀에 의지해서 구별된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성화의 단계를 거친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영화의 단계라 한다.

사람의 종말은 자연인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종말 즉 예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즉 재림이) 있으며/ 영화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인 우주적 종말인 파루시아가 임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추수 때(파루시아) 알곡은 창고로 들어가 상급을 받고 가라지는 불에 태움을 받게 될 줄 믿는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한다. 나라와 민족이, 사용자와 근로자, 과 북, 목자와 양이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배려하여 함께 올라와 크게 됨을 감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줄 믿고 감사하라.(10) 둘째로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해 헌신하라(11)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새로운 삶을 살라 (11:b-2:1)

하나님이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줄 믿고 감사하면서/ 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구속적 믿음을 가진 성도 여러분이 되셔서 더욱 복에 복을 더하는 귀한 추수감사절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