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 설교- 넘치는 은혜 넘치는 감사

2020. 11. 4. 10:03목양자료/2.설교자료

넘치는 은혜 넘치는 감사

고린도 후서 9:6-15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그것은 질병이나 실패나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믿어지지 않는 불신앙으로,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 막힌 귀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한량없는 은혜가운데 살면서도 마냥 울적해하고 불평불만이나 원망으로 가득 찬 마음 때문에 추호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냐는 말입니다.

여러분, 풍족한 물질의 소유만이 축복은 아닙니다.

기쁨과 감사만이 진실한 의미에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욕망과 불안을 불러일으킨다면 어찌 그것을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추수 감사절 주일로 지난 한 해 동안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추수 감사절의 유래는 늘 들어서 잘 아실 것입니다.

추수 감사는 글자 그대로 추수한 곡식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강조해도 오늘날의 추수 감사절은 옛날처럼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예전에 농사를 지으며 밭에서 일할 때에 해가 뜨고 밭에서 일하는 동안 해가 지는 삶을 살아갈 때는 하늘을 쳐다보고 살아왔습니다.

제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하나님이 좋은 날을 주고 비를 주셔야 농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가을 추수를 마치고 시월상달 길일을 택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햅쌀로 시루떡을 찌고 소를 잡아서 천지신명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형식은 달라도 그것은 추수감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고 농사를 지어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 기술로 농사를 짓습니다.

그렇게 농사를 져도 수지가 맞지 않으니 더 감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더군다나 도시에만 사는 사람들,

돈만 가지면 먹고 싶은 것 다 사먹고 쌀 나무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묻는 아이들이 어찌 추수 감사를 알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추수의 감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일을 절대로 잊지 말고 또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심는 것과 물주는 일은 사람의 기술이라 할 찌라도 오직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셨기때문입니다(고전3: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 찌니라.”(16:15)

 

사람들이 애완동물로 기르는 대표적인 두 종류의 동물이 있습니다.

개와 고양이입니다.

물론 뱀과 돼지와 같은 동물을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은 특이한 경우이고 대부분 애완동물 하면 개와 고양이를 기릅니다.

그런데 개와 고양이는 성질상 큰 차이점이 있다고 합니다.

개는 주인이 9번을 잘못하고 1번을 잘하면 그 한번 잘 해준 것으로 인해 주인을 따르고 꼬리를 흔들며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정 반대라는 거예요.

9번을 잘 해주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한번을 잘못하면 그 한번 잘못한 것으로 인하여 주인을 멀리하고 눈치를 보고 슬슬 피해 도망을 간다고 합니다.

이런 동물의 특징을 비유해서 어떤 사람은 고양이형 교인과 강아지 형 교인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추수감사절에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한 가지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감사하지 못하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원하는 한 가지를 이루지 못했다고 9가지를 잘해주고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한 가지를 헤아리기 전에 이루어진 9가지를 헤아리면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를 섬기는 연보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감사의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 자녀 된 우리들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잘 살고 행복하게 살고 풍요롭게 사는 것을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떨어진 누더기 옷을 입고, 신발은 짝 짝으로 신고, 얼굴은 세수를 하지 못해서 지저분하고, 머리를 감지 못해서 이곳저곳에 새 집을 짓고 있는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이런 아들을 소개하면서 이 놈이 제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이렇게 소개하고 싶은 아버지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지 잘 생기고 깨끗하고 세련되고 보기에도 좋은 그런 아들로 꾸며서 내보내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모든 아버지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 아버지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시나니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원하지만 때로는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부족해서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모든 것이 풍족하다고 탕자는 말하고 있고,

아삽이라는 시인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50:12)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져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3)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성 프랜시스가 무신론자와 토론을 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마침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프랜시스는 시각장애인에게 묻기를 만일 내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준다면 당신은 아마도 나를 존경하겠지요?”

그 장애인이 대답했습니다.

존경뿐이겠습니까? 나는 선생님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프랜시스는 무신론자에게 말했습니다.

어떻소. 이 시각장애인은 눈을 뜨게 해준다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되겠다고 하는데, 당신은 눈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다하라 요네코라는 일본작가 쓴 책 중에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주인공인 다하라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생을 비관해, 달리는 전동차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죽지 않고 생명을 건지게 됩니다만 안타깝게도 오른쪽 손가락 세 개만 남기고 왼팔과 두 다리 모두를 잃고 맙니다.

그런 그녀에게 선교사를 지망하는 아키도시키라는 청년이 청혼을 하여 결혼을 하게 된 다하라는 슬하에 2명의 딸까지 두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다하라는 남편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 주기 위해 칼을 가지고 감자껍질을 벗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남은 세 개의 손가락만으로는 감자 껍질을 벗길 수가 없었습니다.

식칼을 들고 껍질을 벗기려고 하면 자신을 조롱하듯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려서 도저히 요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 두 번, 여러 번을 반복하였으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남편에게 맛있는 요리 하나 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면서 손가락 세 개로 식칼을 들고 땀과 물로 범벅이 된 채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먼저 감자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반으로 쪼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하니까 감자는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감자를 쪼갤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울면서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하면서 맛있는 감자요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혹시 여기에 감자껍질을 벗길 수 없는 분이 계십니까?

마음만 먹으면 감자껍질을 벗길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뭐 대수냐? 라고 말씀 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감자껍질을 마음대로 벗기는 것이 소원인 사람도 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 것이 소원인 사람,

자기 스스로 밥 먹을 수 있기를 소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을 한번 만이라도 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금년 일 년도 여러분에게 풍성한 축복을 주신 줄 믿습니다.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신 줄 믿습니다.

한 가지 서운한 것을 가지고 원망하지 말고 9가지, 10가지, 100가지 주신 복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넘치는 축복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8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하면서 그 이유를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에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주신 축복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저 혼자서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착한 일에 넘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정말 멋있게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사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그런 삶으로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사랑 받아서 그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삶이 진정 아름다운 삶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의 삶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이었던 헨리 포드는 믿음이 독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가서 고아원을 방문하여 강당을 하나 지어줄 것을 약속하고 그 일을 위해 2,000파운드를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신문에 뜻밖에도 헨리 포드 회장이 고아원을 위해서 20,000파운드를 기증하기로 약속하다.”

2,000파운드가 20,000파운드로 잘못 게재된 것입니다.

고아원 측에서 그 기사를 보고 포드 회장을 찾아와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사에 정정 기사를 내도록 요청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헨리 포드는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 수 없지요.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18,000파운드를 더 내겠습니다.

그 대신 고아원의 강당이 완공이 되고 나면 그 입구에 이런 글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헨리 포드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드려진 헌금으로 지어진 강당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모든 착한 일에 넘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함도 마땅히 넘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낭비가 아니고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 감사는 언제나 감사는 언제나 축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착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고 할 때,

먼저는,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셨는데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 헌금, 감사헌금, 선교헌금 등을 인색함으로나 억지로가 아니라 즐거움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모든 착한 일에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진돗개하고 똥개하고 두 마리를 키우면서 주인이 정성껏 밥도 주고 목욕도 시키고 사랑해주고 자식같이 돌봐주었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 그런 모습을 보고 두 마리의 개가 대화를 합니다.

먼저 진돗개가 말을 합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 주인을 보니까 나는 꼭 하나님을 보는 것 같애. 정말 우리 주인은 하나님 같지 않냐?’

그러니까 똥개가 펄쩍 뛰면서 말을 합니다.

무슨 소리야 주인이 그렇게 우리를 잘 섬기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인 것이 분명해.’

축복하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둘째는,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특히 혹독한 가뭄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을 도와주는 일을 위해 헌금, 연보를 하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고난 받는 자를 도와주는 것,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것,

자연 재해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이것이 착한 일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줄 믿습니다.

 

모든 착한 일에 넘치게 할 때 더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9절 말씀에서 바울은 시편 1129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감사하며 그것을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주님이 원하시는 착한 일에 넘치게 했을 때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누구에게 복을 더하시는 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영국의 스펼전 목사님은 이런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영원한 빛을 주신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더하여 주신다는 말일뿐 아니라,

이 세상의 복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이 세상의 복 뿐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복까지 더하여 주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10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고침 받은 한 명의 나병환자가 주님 앞에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랬을 때 주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나병은 이미 고침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은 영적구원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병을 고침 받은 것에 감사하였더니 영적인 병을 고침 받는 놀라운 축복을 주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감사를 많이 심으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많이 거두게 될 줄 믿습니다.

복으로 많이 심으시기 바랍니다.

더 많은 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이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케 되는 이 감사의 계절에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