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설교 - 모두가 기뻐하는 추수감사절

2020. 11. 4. 09:54목양자료/2.설교자료

모두가 기뻐하는 추수감사절

디모데전서 2:1-7

 

2017624KBS에서 방영된 영웅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는 67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원들의 전설을 들려주었습니다.

강뉴부대는 6.25동란 시 파견된 에디오피아 군대를 말합니다.

6.25동란은 68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민족 최대의 비극입니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 삶의 터전을 잃은 실향민들, 사랑하는 이들과 생이별한 이산가족들의 한과 눈물은 오늘도 흘러넘치는 민족의 아픔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처절했던 6.25를 통해 우리는 또한 고마움을 되새길 수 있는데 가장 어려웠던 그 순간 수많은 나라들이 우리를 돕고자 나섰던 것입니다.

16개국이 군대를 파견하고, 5개 국가가 의료부대 및 시설을 지원했습니다.

이들이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대한민국을 위해 병력을 보내고 적잖은 희생을 치른 것에는 저마다의 정치적·외교적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만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달랐습니다.

모든 것을 자국의 이익으로만 계산하는 국제사회 현실에서 에티오피아는 정말 순수한 뜻에서 참전한 나라입니다.

에티오피아가 참전했던 이유는 그들에게도 아픔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1935년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은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는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어느 나라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27만 명의 에티오피아인이 숨졌고, 국권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독립을 위해 끝까지 싸웠고, 1941년에 기적적으로 이탈리아를 몰아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도움을 받지 못한 설움을 겪었던 셀라시에 황제는 UN으로부터 파병요청을 받자 흔쾌히 군대를 한국에 파견합니다.

셀라시에 황제는 출정식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우리 에티오피아가 항상 추구하고 있는 세계평화라는 이 신성한 세계정책을 실현하고 보호하기 위해 그대들은 오늘 장도에 오르는 것이다.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

그리고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이렇게 파병된 부대가 바로 강뉴부대입니다.

이들은 강원도 화천, 철원, 포천 지구를 중심으로 전투한 가장 용맹스러운 부대원으로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오늘 이렇게 발전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들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나라들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고 우리도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고 협력하는 것이 감사의 정신을 구현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나라의 은혜, 그리고 이웃들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노을 진 들판 위에 한 가난한 부부가 서 있는 그림입니다.

온종일 고된 농사 끝에 그들이 얻은 것이라고는 몇 알의 감자뿐이었습니다.

고단하고 궁핍한 생입니다.

그러나 저 멀리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손을 모읍니다.

비록 가난하고 힘겹지만 그날의 은혜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자주 속상함과 부러움과 두려움이란 감정에 부딪히곤 합니다.

일이 뜻대로 안 돼 속상해하거나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부러워하거나 무시로 닥치는 고난과 질병 앞에 두려워합니다.

이런 인생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참된 만족과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만종에 나오는 두 부부처럼 어떠한 형편에서도 감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감사는 오늘의 현실을 넘어 하늘의 풍성을 누리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무언가로 인해 속상해하고 부러워하고 두려워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감사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할 것들을 헤아려 보십시오.

지금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고 내 곁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 감사로 인해 당신의 삶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과 평안으로 가득해질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세분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간구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간구하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간구하고 병을 고쳐달라고 간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드리는 기도의 형태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드리는 일반적인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는 무엇을 구하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교제 사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고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할 때마다 나를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요청하였는데 선교사들이나 주의 종들, 그리고 어려운 형편에 처해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도고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에는 감사가 들어있습니다.

기도할 때 간구하지만 말고 우리의 간구가운데 역사하고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야 그것이 또한 올바른 기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기도가운데 감사는 얼마나 될까요?

잘은 몰라도 대부분 성도들의 기도는 간구는 많지만 감사는 많지 않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감사가 결핍된 기도는 어린 아이의 기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지 못하고 하늘에 풍성한 은혜를 힙 입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기도가운데 무엇보다도 감사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기도야말로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만족과 평안으로 이끌어가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감사하여야 할 여러 가지 조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평안하고 고요한 가운데 신앙생활하고 있음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데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면서 그 이유로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최근에 중국에서 한국의 선교사들이 추방당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더욱 심해져가는 느낌인데 지금까지 쌓았던 모든 성과를 고스란히 내려놓고 쫓겨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혹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 교회는 더욱 어려운 형편에 놓여있었습니다.

황제의 말 한마디에 교회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었습니다.

네로 황제 같은 경우 로마를 불사른 것이 기독교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여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순교시켰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어떻게 복음이 잘 전파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복음을 듣고 예수 믿겠다고 감히 나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얼마나 평안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북한의 지하교회가 발각되지 않기 위하여 찬송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지만 우리는 마이크를 5대씩 동원하여 찬송을 힘차게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누가 와서 제지하지 않습니다. 전화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여 감사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어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껏 예배할 수 있을 때에 열심히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마음껏 찬송하시고 마음껏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국가적인 예배환경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마찬가지인데요, 언젠가 우리도 마음껏 예배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찬송하지 못할 때가옵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할 때가 오기 전에 열심히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5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참된 신은, 진짜 신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한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도바울이 아덴에 가보니까 많은 신을 섬기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제단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긴다는 말은 우리가 여러 신을 섬기지만 혹시 알지 못해서 섬기지 못하는 신이 있더라도 노하지 마시고 이해해주시고 용서해주시고 우리에게 화를 내리지 않게 해달라는 뜻을 담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얼마나 많은 신들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성경에는 세상의 신은 다 헛된 것이고 진짜 신은 한 분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은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알고 섬기고 복을 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 지 모릅니다.

저는 가끔 세상의 헛된 신을 섬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헛된 신을 통하여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다고 이 세상의 복을 받으며 살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런 복도 베풀 수 없는 신에게 내 운명을 맡긴다는 것처럼 어리석고 불쌍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헛된 것에 복을 달라고 빌고 그러면서 아무런 복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명의 구원자가 되시며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주님을 향한 우리의 섬김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정성과 수고와 헌신도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간구하고 기도하는 것이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허락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헛된 것에 충성하지 마시고 더욱 주님께 충성하고, 헛된 것에 헌신하지 마시고 주님께 더욱 헌신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는, 한 분 중보자 예수님을 믿고 있음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5절 하 반절에 보면,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씀합니다.

중보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분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주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중보자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 흥행하는 이단가운데 자기가 중보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하고 그 헛된 말에 속아서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믿다가 나중에 아니라고 판명되어 지금까지 했던 수고가 다 헛된 것으로 판명될 때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깝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참된 중보자 유일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놀라운 은혜를 받은 줄 믿습니다.

 

넷째는,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고 있음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그를 전파하는 자를 잡아서 가두고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은 주님은 사랑하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셨습니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런 바울을 택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워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신 것도 감사한데 거기다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명자로 세워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사명자로 세움을 받은 것은 부담이 아니라 축복이고 진정으로 감사한 일인 줄 믿습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다른 분이 아니라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쓰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나로 인하여 가족이나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평안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며 한 분 하나님을 섬기고 한 분 중보자를 통하여 구원의 길로 가고 있음에 감사하며 맡겨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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