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 설교 -추수감사절

2020. 11. 11. 15:45목양자료/2.설교자료

2015년의 추수 감사절 (시 50:14-15/23)

오늘 추수감사절과 총동원 주일을 맞이하여 성도 여러분의 가정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으로 축원한다. 우리 성도님 모두 한 해 동안 축복해주신 하나께 진심으로 감사를 고백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바란다.

여!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가 무엇? 영혼구원, 전도이다. 그래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은 전도였다. (마28:18-20)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한 영혼이 구원받는 일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 전도는 한사람을 교회로 데리고 와서 교회를 부흥시키자는 차원이 아니다. 전도는 그 보다 훨씬 더 큰 생명과 관계되는 문제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세상을 구원하고, 영혼들이 멸망당하않고 구원시키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오늘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신 분들에게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함께 하시길 바란다.

♱오늘의 주제, 추수감사절의 배경을 알아보자!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배경은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성경적인 근거요, 다른 하나는 청교도들에 의하여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⑴성경적인 근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3대 절기(유월절, 맥추절, 수장절)가 있는데 가을 추수 후 수확을 저장후 지키는 절기인 수장절이 오늘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출23:16).

⑵ 오늘 세계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저 미 대륙을 건너갔던 청교도들에게 그 기원이 있다. 그들은 조국(영국)종교박해를 피해 1620년 ‘메이 플라워’를 타고 65일 항해 끝에메리카에 102명이 도착했는데 1년이 지나면서 46명 추위와 풍토병과 영양결핍으로 죽었다.

그들은 어렵게 인디언들에게 옥수수와 감자 씨를 얻어다 심고 경작해서 겨우 석 달 먹을 양식을 수확해놓고, 기뻐서 하나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추수감사절 유래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처음 한 일은 예배당을 짓는 일이었다. 우리가 하나님 잘 믿어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그래서 예배당을 지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키우자” 그래서 학교를 지었다. 그리고 세 번째 가서야 자집들을 지었다. 그 후 1789년 초대 미국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11월 26일추수감사절로 선포하고 이날 전 미국인들은 교회모여 하나님이 베푸신 크신 은혜를 감사하며, 서로의 축복과 감사를 기원했던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1921년부터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추수감사절,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추수감사절 예배로 드리고 있는 것이다.

1. 여! 감사가 무엇인가?

여기 ‘감사’라는 말에 해당하는 우리말 표현은 ‘고마움’이다. 이 말은 동사로 ‘고맙다’로 ‘은혜나 신세를 입어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라는 뜻이다.

이것을 한자어를 풀이해 보면 감사는 ‘느낄 感’과 ‘사례할 謝’로 되어있다. 그러니까 고마움을 느끼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사례(즉 표)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구약에서는 ‘감사하다’는 말이 ‘야다’이다. 이 말은 ‘찬양하다, 고백하다.’라는 말로도 쓰인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감사는 고마움을 적극적으로 노래로든 물질로든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언제나 감사는 관계 안에서 일어나게 된다. 상대방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어서, 내가 소중한 은혜를 받았다면, 이제 내가 그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한다. 그 상대가 구체적으로 그것을 받고, 기뻐할 수 있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감사이다. 이처럼 감사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표현되어야 한다. 찬양으로, 입술의 고백으로, 몸의 헌신으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감사를 표할 때까지는 믿음이 아니다. 사랑도 행동으로 드러날 때가 사랑이다. 감사는 믿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응답의 행위이다.

또한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신16:12)에 “너는 애굽에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찌니라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다. 피땀 흘려 농사를 지었지만 모든 소득은 주인의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애굽으로부터 해방시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도록 하셨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힘껏 농사를 지었다. 이제는 아무도 빼앗는 자가 없었다.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크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은혜를 입은 사람의 마땅한 도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2. 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까?

우리의 창조주이시기에 감사해야 한다. (시100:3)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

‘그’라는 말이 네 번 반복이 되고 있다.“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절대 보호,’‘절대 사랑’,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는 축복’을 깨달아야 한다.

⑴ 우리는 우리를 택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 내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여 주셨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가?

⑵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감사하여야 한다. (고전6:19 -20)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 우리는 그의 백성이기 때문에 감사하여야 한다.

(3)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에 감사하여야 한다.

3. 그럼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할까?

(골2:7) 넘치는 감사를 하라!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엡5:4) 입으로 감사하라!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많은 은혜를 입으로 표현해야 한다.

마음으로도 감사하라! (골3:16)에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했다.

⑷물질로도 감사하라! (출23:15)에 “하나님은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 또 (잠3:9-10)을 보면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하나님 앞에 예배드림으로써 감사하라! (시50:14)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리며”라고 했다.

⑹ 표현으로 감사하라! 감사는 마음으로 깊이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다 그 고마운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면 더욱 좋감사가 될 것이다. 운동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겼을 때 그 자리에 앉아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처음에그런 모습을 볼 때 어색하게 보였는데 요즘에 와보면 참 게 보이기도 하고 한편 대견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얼마기 있는 모습이고 표현하는 고백적인 모습인가? 백 편의 설교보다 더 은혜가 된다.

⑺ 깨닫는 감사를 하라! 신앙생활에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신앙이 주는 진정한 힘은 깨달음에서 나온다. 사람이 깨닫게 될 때 거기서 힘이 나오고, 거기서 자발적동기가 발생되고, 모험심과 전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거기서 용기가 발생되고, 기쁨과 감사한 마음이 자리 잡게 된다.

♥눅17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 받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지만 고침을 받은 후에는 그 중 한 사람만이 찾아 와서 감사를 했다. 그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상종하기를 꺼려하던 사마리아 사람이다.

그렇게도 무시를 받고, 죄인 취급을 받고, 짐승 취급을 받고 살던 그 사마리아 사람만 다시 찾아와서 정중하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모두 양반처럼 행세하며 교만하게 살던 유대인들이었다.

여! 누가 문화인이고, 누가 도리를 아는 사람이고, 누가 깨닫는 사람일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아홉은 모두 어디 갔느냐?” 그래서 깨닫는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신세진 것을 오랜 후에까지 기억하고 생각하고 고마워하고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그것은 쉬운 것 같지만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인격은 이 같은 은혜를 아는 데 있다. 그리고 도리를 알고 느끼고 갚는 데 있다.

⑻ 감사는 찾아서 하는 것이다. '숨은 그림 찾기' 놀이가 생각이 난다. 그림 속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숨겨져 있다. 언뜻 보면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자세히, 그리고 꼼꼼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고추, 망치, 열쇠, 지갑, 오이, 잠자리...’

감사가 그렇다. 우리 인생 안에 하나님께서 참 많은 감사 거리를 담아 놓으셨다. 그런데 우리가 건성으로 들여다보면, 하나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된다.

그러나 자세하게 꼼꼼히 찾아보면, 그 안에서 많은 감사 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나를 사랑하셨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밀하게 나를 위해 역사하셨구나!

▶기적적으로 암을 치유 받았다는 분의 간증을 들었다. 하루는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 소견으로는 이제 병원 치료는 무의미하니까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을 털어놓았다. 하나님 저는 나름대로 믿음으로 살려고 애써왔습니다. 주일 한 어겨본 일 없고, 교회 봉사라면 누구보다 앞장서왔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위암에 걸려 이렇게 일찍 죽어야 합니까?” 기도한다고 하나님 앞에 서면 이런 불평과 원망을 절규로 쏟아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의 감동으로 언젠가 들었던 담임목사님 설교 한 부분이 생각이 났다.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드리는 기도를 우선적으로 들으십니다. 그래서 응답 받는 기도는 감사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원망을 멈추고 기도를 바꾸기로 했다. 억지로라도 감사하기로 한 것이다. “하나님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할 일이 없지만 좌우지간 감사합니다. 아니 딱 하나 감사할 것은 감사하려고 몸부림치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놀랍게도 성령의 감동으로 감사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감사것들이 하나 둘씩 생각나기 시작한 것이다. 죄 용서 받은 것, 복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 여기까지 순탄하게 살아왔던 것, 좋은 교회 만나 신앙생활 할 수 있었던 것... 그러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더욱 뜨겁게 기도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감사로 기도가 깊어지던 어느 날 온 몸과 마음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더니 병이 낳았다는 것이다.(과학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다. 엔돌핀, 다이놀핀)

이분이 간증을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감사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감사가 암을 고쳤습니다. 감사가 내 인생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렇다. 감사는 힘이 있다.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우리 인생을 복 되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감사를 잃어버리고 산다. 그래서 감사의 힘(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산다. 아니 감사의 힘조차 모르고 산다.

믿음으로 감사하라! 성경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다. D.L.무디는 “당신 자신을 믿어 보라. 반드시 실망하게 될 이다. 사람들을 믿어 보라. 어느 날 죽거나 이별하게 될 것이다. 명예나 돈믿어 보라. 어느 날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라. 그러면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감사는 믿음의 척도이다. 그러므로 믿음 좋은 사람이 감사깊게, 많이 고백한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깊은 감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감사하는 삶이 있기에 믿음이 유지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인(시50:14-15) 보라! “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감사하는 자가 환란 날(어렵고 힘든 때)에 건짐을 받는다.

⑽ 감사가 없는 심령은 그 속에 하나님의 축복을 채울 공간이 없다. 감사가 없는 심령은 돈이 있어도 불평이고 없불평한다. 그런 심령은 관심을 기울여 주어도 불평이고 관심이 없어도 불평이다. 여! 같은 물이라도 젖소가 마시며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

똑같은 사건 속에서 감사가 없는 심령은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나 감사가 있는 심령은 기쁨을 발견하고 감사하게 된다. 환경이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라 내가 감사를 드림으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는 것이 삶의 최대의 지혜이다. 특히 어려울 때 감사해야 진짜 감사이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 한번 감사하는 것은 일이 잘될 때 백번 감하는 것보다 가치 있다. 사람은 실패를 죽기보다 싫어하지만 실패를 잘 요리하면 성공보다 나을 수 있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감사의 문제인 것이다. 문제는 '경이 어떠냐?'의 문제가 아니라 '감사가 있느냐?없느냐?'의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사하는 사람이 되느냐?'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길이 열린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길이 막힐 것이다.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고, 하나님의 축복도 감사하는 사에게 주어진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는 것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가 가진 소중것들을 하나님께 바감사를 표현할 때 사들은 “그 돈이 있으면 다른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너무도 하나님께 감사하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너무도 소중한 몫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고전13:13)에 “믿음, 소망, 사랑이 세 가지가 우리 삶에 항상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기록되었는데 나에게 한 가지 더 추가하라고 한다면 ‘감사’를 넣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감사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응답이요,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표현이요, 믿음의 행위이다.

진정한 감사를 할 때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돈 베이커’목사님이 쓴『감사 요법이란 책에 보면, “사는 환경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태도를 변화시킨다.

감사가 조건과 환경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감사는 나의 마음가짐을 바꾸어 나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나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다. 여! 물론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시지만/ 우리가 아무리 감사를 해도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감사해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정상인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감사해도 안 배운 사람이 박사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감사하면 가난해도 부자 이상으로 행복해 질 수는 있다. 감사하면 장애가 있어도 정상인보다 행복해 질 수 있다. 감사하면 얼굴이 못생겨도 미남미녀보다 행복해 질 수 있다.

사/여! 이 2015년 추수감사절, 이 감사의 계절에 모두가 감사를 고백하므로 믿음과 신앙이 성숙해 짐은 물론이요, 현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쳐해 있다할지라도 감사를 고백하므로 인해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누리며, 기쁨으로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