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주일 설교- 삼위일체 하나님의 축복

2019. 6. 10. 15:52목양자료/2.설교자료

삼위일체 하나님의 축복   잠언 8:22-36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령강림주일 다음에 삼위일체 주일을 지켜 왔는데 이것은 순서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성령님이 강림하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전히 알려지셨다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미 구약시대부터 알려지셨고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성부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 거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경험한 제자들은 그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승천하시면서 주님께서는 내가 떠나면 너희에게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실 것을 말씀하셨고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드디어 오순절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성령님이 강림하셨고 그 성령 강림을 통하여 세 번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시게 되었습니다.

성령 강림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은 완전하게 우리에게 나타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령 강림 주일 다음에 삼위일체 주일로 지키게 된 것이고 이것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세분이 계시는데 그 세 분 하나님은 능력과 존귀와 영광에 있어서 동일하신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다른 세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세 하나님이 동시에 한 분이시다는 말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말입니다.

세분이면 세 분이고, 한 분이면 한 분이지 어떻게 세 분이 하나이냐? 하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어려워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런 예를 들기도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어느 때는 남편으로, 어느 때는 아버지로, 어느 때는 직장인으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라면 이 교리는 어려울 것도 없고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삼위일체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여기의 한 남자는 나타나는 모습은 달라도 한 남자이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동시에 하나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을 드리면 왜 이 어려운 삼위일체 교리가 우리에게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말도 없는데 왜 이런 어려운 말을 만들어서 복잡하게 하느냐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교리는 인간의 하나님 경험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을 경험하고 성령 하나님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이 진리를 알기 전에도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이셨습니다.

구약 창세기 1장에 보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의 신인 성령님이 계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창조에 참여하셨습니다.

창세기 126절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하셨습니다.

인간을 삼위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나타난 삼위 하나님이 인간에게 알려진 것은 제일 먼저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가 더 설명할 필요 없이 구약에서 창조의 하나님으로 구원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하나님을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고민과 혼란을 안겨주신 분이 나타나셨으니 그 분이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30살 때까지는 목수라는 직업을 가진 아주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고 나타나신 후 그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 시작합니다.

각종 병자들을 고치시고 악한 마귀와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했던 권세 있는 말씀들을 전하십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도 살리는 일을 통하여 이분이 하나님이 계시하신 메시야 구세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후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후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간다고 하시면서 승천하시게 됩니다.

이런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 분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고 이구동성으로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주님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열흘 만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셨습니다.

그 분의 강림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외국에는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제자들의 입에서 유창한 외국어가 쏟아졌습니다.

유대 당국자들을 무서워하여 숨어 있던 사람들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 한 사람의 설교가 한꺼번에 3천명의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이 집을 팔고 밭을 팔아 제자들의 발 앞에 두고 그것을 제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이 서로 나누어 쓰는 상부상조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통한 기적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경험한 제자들은 이 성령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는 성경에 원래부터 있었던 내용이기는 하지만 성부 하나님에 대한 경험, 그리고 성자 예수님에 대한 경험, 성령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은 세 분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은 동시에 한 분이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라는 표현은 성자 예수님에 대한 언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자 예수님이 창세전에 이미 계셨으며 성부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함께 동역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0절에 보면,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했습니다.

예수님도 창조자로서 함께 창조사역에 동참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오늘의 말씀은 삼위일체에 대한 구약의 중요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삼위일체 교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먼저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존재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어떤 신도 하나님이 될 수 없음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입니다.

요즘 많은 기독교 이단들이 자신들의 교주를 재림주 보혜사 성령님 등으로 선전하며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데 여러분, 어떤 누가 무슨 말을 하여도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사위일체나 오위일체 육의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안상홍 장길자 이만희 문선명 같은 사람들이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가 될 수 없고 보혜사 성령님이 될 수 없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외에 그 어떤 누구도 절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영광과 예배와 존귀를 받으실 분은 오직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만을 섬기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그 삼위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이유가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죄악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속죄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대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구원의 방법을 완성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구원의 복된 소식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받아들이게 하신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님을 주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 그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인줄 믿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은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정말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그 하나님을 섬겨야 할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무엇이라고 하나님이 그것도 삼위의 하나님이 이토록 역사하시고 희생하시고 연합하시어 은혜를 베풀어주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은혜를 생각할 때 너무나 죄송하기도 하고 너무나 감격스럽기도 합니다.

 

제가 첫 목회자에서 그 다음 목회지로 옮길 때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단독목회 5년차인 저에게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면 몰라도 지금 단독목회를 5년씩이나 하고 있는데 부목사로 간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받아들이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누워있는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열어보니 부목사로 오라는 교회의 나이 드신 장로님들이 오신 것입니다.

그때 제 생각에 어떤 마음이 들었느냐 하면은,

제가 무엇인데 이 새벽에 이 먼 곳까지 그것도 나이가 지긋하신 장로님들이 오셨을까?’

내가 무엇인데 이렇게까지 하실까?’ 그런 생각이 들어갔을 때 저는 두말없이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저는 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중부 사랑의 동산에서 하는 뜨레스디아스 집회에 갔을 때 저는 정말 엄청난 사랑과 호의를 받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이 전부 이런 호의를 받은 것입니다.

그때 제 생각이 내가 무엇인데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하고 이런 호의를 베풀어주는가?’ 너무나 고맙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친절과 생각외의 호의에 대해서도 이런 고마운 감정을 느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부 성자 성령님이 하신 일을 볼 때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럽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무엇이라고, 뭐가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우리를 위해 성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까?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하신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 은혜를 깊이 느낄 수 있고 이 감격을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와 사랑을 정말 깊이 느끼고 감격스러워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노예상인으로 많은 흑인들을 잡아다가 팔았던 존 뉴톤이었습니다.

그가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구원받은 감격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는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나 같은 죄인 살리시기 위해 성 삼위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할 때 우리도 이런 감격적인 노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입니다.

누구와 같은 죄인이 아니라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온갖 고통을 당하시고 피 흘리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서 성령님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입니다.

이 시간 삼위 하나님이 저를 위해 여러분을 위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생각하며 뉴톤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찬송가 305장입니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때 우리는 감격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고 감격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성 삼위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복음에 헌신하도록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삼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렇게 역사하시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셨다고 하면 우리도 이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헌신해야 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역은 사랑의 사역이었습니다.

희생의 사역이었고 겸손의 사역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 삼위 하나님의 협력 사역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감당하는 우리도 이와 똑 같은 모습으로 해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모범대로 이 일을 위해 희생해야 하고 겸손하게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 되는 협력을 통하여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대제사장의 기도를 드리실 때 지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11)

우리와 같이, 나와 하나님이 일체가 되신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비결이 되는 줄 믿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함으로서 하나 됨의 힘과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복음을 증거 하는 선한 일을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신앙이 주는 교훈은 협력하고 돕고 하나 되어서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말씀드린 대로 삼위일체 교리는 이미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만 삼위일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은 삼위 하나님에 대한 경험에서였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오셨고 성자 예수님이 오셨고 성령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하나님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들에게서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하고 있을까요?

사랑의 모습을 경험하고 있을까요?

겸손의 모습, 희생의 모습을 경험하고 있을까요?

감동과 감격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겠습니까?

성 삼위 하나님을 경험한 흔적이 우리 가운데서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 barnab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