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 설교-약속대로 임하신 성령

2019. 6. 2. 10:23목양자료/5.절기자료

약속대로 임하신 성령 요14:16-18, 행2:1-4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는 소설 속에서 할아버지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해가 떨어질 때에 저녁노을은 왜 저렇게 아름다운가요?”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떠날 때의 말이란다. 저건 해님이 산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거란다. 그래서 저렇게 아름다운거지” 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을 들은 하이디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이디에게 이별은, 늘 눈물과 슬픔을 연상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별을 아름답게 생각하거나 기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다시 만날 약속이 있는 이별은 결코 슬픈 이별이 안입니다. 떠나는 태양의 저녁노을이 한편으로는 슬픔을 주면서도 아름다움을 주는 이유는 바로 그 다음날 또 다시 태양이 떠오른다고 하는 확고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눈에는 그것이 아름답게 비쳤던 것입니다. 만일 오늘 지는 태양이 영원히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면 아마도 아름답기는커녕 공포와 슬픔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제자들이 보는 눈앞에서 홀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이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던 제자들은 울며불며 통곡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쁨과 환희 속에서 그의 승천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며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돌아오신다고 하는 너무나도 분명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승천의 모습은 저녁노을의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약속대로 임하신 성령”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령 강림은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1)다른 보혜사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란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그 의미는 “상담자”, “위로자”, “모든 부족한 것을 채워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즉 병이 들면 병을 고쳐 주시고, 낙심하면 위로해 주시고, 부족하면 채워 주시는 분이 보혜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한 것은 성령님 외에 첫 번째 보혜사가 있다는 말인데 그분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첫 번째 보혜사가 되시어 병든 자들을 치료해 주시고,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을 붙잡아 일으켜 주시고, 부족한 것을 채워 주시고, 버림 받고 소외 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위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가 온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른 보혜사는 성령님입니다. 오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병을 고쳐 주시고, 낙심한 자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시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힘과 권능을 주시고,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아 함께 있는 한정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보혜사가 되셨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성령님은 믿는 자 누구에게나 보혜사가 되어 주십니다.

2)영원히 함께 하실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수난을 예고하셨을 때 제자들의 걱정은 태산 같았습니다.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겠다고 요한복음 본문 18절에서 에서 말씀하시며 두려워 말고 근심하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다른 보혜사인 성령이 함께 하심이 곧 나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떠나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오히려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모든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재로 오순절 날까지 모여 있는 성도들 모두에게 성령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성령이 각자 그들 위에 그리고 모두 위에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에 성령 받은 무리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이나 다른 나라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세계 곳곳에 다른 민족 즉 언어권에 선교가 이루어 질 것을 의미 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어 세계 각처에 믿는 자들이 생길 때 그들 가운데에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3)진리의 영으로 오실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람들을 감화 감동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에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진리를 깨닫게 되고, 믿게 되고, 진리 안에서 행하게 역사하십니다.

학업 때문에 뒤늦게 군 생활을 하게 된 한 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훈련소의 훈련 기한을 마치고 전방에 있는 부대로 배치되어 갔습니다. 신병이 되어서 내무반에 신고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무반에서는 신고식을 할 때마다 반드시 내무반장이 좋아하는 유행가를 불러야 한다는 이상한 습관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이 기회를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확실하게 증거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군대에 입대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내무반에 다 모여서 신고식을 하기 전에도 간절한 기도를 하면서 성령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순간 성령께서 찬송가 434장을 하라는 조용하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결국,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후에 벌어지는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노라는 각오로 성령의 음성을 따르기로 작정하고는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순간 고참들의 고함과 야유와 협박이 찬송을 중단시키려고 했지만, 어디선가 "조용히 해라, 찬송 좀 듣자" 하는 어떤 소리와 함께 그 신병은 찬송가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 내무반에서 그 고참이 그 젊은이에게 다가와 성경에 대해 묻고, 성경공부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 고참은 제대 후에 고향에 돌아가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큰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께서는 때로는 잔잔하고 고요하게, 때로는 급하고 강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새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2.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1)오순절에 임한 성령 강림은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오순절이라는 명절이 있습니다. 유월절이 지나고 오십일 째 되는 날입니다. 유월절이 지난 후 칠일이 일곱 번 지나면 칠칠절이라고 하여서 보리를 추수하는 날로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맥추절 바로 다음날이 오순절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제자들을 비롯하여 주님을 믿는 무리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기도가 열흘 째 지속되어 하나님이 예정하신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들에게 임합니다. 그 곳에 모인 무리들은 성령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하는 분인지 잘 몰랐으나 그들은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믿음은 말씀하신 그 분의 인격을 믿는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격을 믿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믿고 기다린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의 인격을 믿는다면 그분의 말씀도 믿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은 의지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믿었으면 맡기고 기대하며 주님의 때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 강림은 주님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또한 요엘 선지자를 통해 주신 예언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욜 2:28-30).

2)강한 바람 소리처럼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처음 받은 증표입니다. 먼저 모인 모든 사람들의 귀에 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종종 하나님의 임재를 바람으로 표시했습니다. 시편104:2-4에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시 104:2-4)했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바람과 같이 형체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역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인간이 판단하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람은 성령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성령이란 말 자체가 바람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호흡, 또는 숨, 기운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람은 자유 자제 한 것이라는데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성령께서 자유하시는 영이시므로 성령이 임하면 자유 하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동시에 바람은 폭풍과 태풍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가지고 있는 다이나마이트 같은 권능을 상징합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을 받고 말씀을 증거 할 때 일시에 3천명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온 사건이 성령의 권능으로 일어 난 것입니다. 이 성령 충만의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3)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청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것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성령이 불의 혀처럼 갈아지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불은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불로 표현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출 3:2). 그리고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도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출 19:18)고 하였습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각에게 있었다면 각자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하심을 체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악인에게는 소멸시키는 기능과 심판의 기능을 나타내게 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성결케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말 3:2-3) 하였습니다.

또한 선한 일에 불같은 열정을 가지고 일하게 하시며, 죽도록 충성하게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개인을 변화시키고, 개인을 사역자로 세웁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개인을 통해 또 다른 집단을 변화시킵니다. 그것도 동일한 성령을 받고, 동일한 경험을 한 개인들이 각 처에서 성령의 동일한 능력을 따라 활동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은혜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신을 날마다 정결케 하여 주님의 사역을 위해 불같은 열정으로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성령 강림이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성령이 임하면 거듭나 새 사람이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거듭난 새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아무리 악하고 완악한 사람이라도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한 젊은이가 17세 때 주인의 돈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18세 되던 해에는 주인의 아내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후 그녀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밤에 꿈을 꾸는데 환한 빛이 비취더니 천사가 그에게 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 지금 내가 네게 보여 주는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 행하여라.” 천사는 그에게 커다란 성경을 펼쳐 보여 주고는 곧 사라졌습니다. 며칠 후 그는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성경을 구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혼자 성경을 읽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읽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 교도소 안에는 일대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그 젊은 죄수는 물론이요, 그와 동일하게 무서운 죄를 지은 죄인들이 하나 둘 변화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은 모든 죄수들의 공동 소유물로써 그들로부터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 안을 변화시킨 장본인이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 젊은이는 특사로 가출옥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 충만의 감격과 성령의 임재하심을 체험한다면 성령님이 행하시는 동일한 능력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사람과 있는 곳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한 마음, 한 뜻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개인적인 자기 소유를 주장하지 아니하고 모든 물건을 함께 통용했다는 것은 욕심을 비웠다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저들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않고 하늘에 쌓아둘 정도로 변한 것입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습니다. 저들은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사람마다 필요가 다릅니다. 각자의 개성이 다른 만큼 필요도 다르다는 것은 사회적인 현실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현실을 인정하면서 나눔을 실천한다는 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공유의식’이라고 합니다. 내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고 서로의 필요를 따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변해야 아름다운 사회가 됩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저들은 마음을 같이 했습니다. 모여서 같이 떡을 뗐습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성도 간에 사랑의 교제가 일어났습니다.

세상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니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했습니다. 저들의 삶이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큼 저들의 삶이 변했습니다. 저들의 삶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억지로 믿으라고 강요를 안 해도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믿겠다고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변화된 모습입니다.

3)강하고 담대한 복음의 사역자로 변했습니다.

박해자들 앞에서 두려워하던 자들이 강하고 담대해졌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이 충만하게 되니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귀에서 눈으로, 눈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성령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방언은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과는 다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적 언어’였지만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지상 언어’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은 계속적인 현상이었지만 여기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일시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그들이 성령 충만하여 방언을 하게 된 것은 세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바벨탑 이후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았는데 성령 안에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은총이 임하면 서로 통하게 되고, 하나가 되게 합니다. ②복음이 온 세계 각 방언에 확산될 것을 의미합니다. 오순절 이후 주님의 분부대로 성령 충만함을 받은 자들에 의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증거 되게 되었습니다. ③특히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두 한 언어로 통용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께서 강림하신 목적이 무엇이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사명과 능력을 부여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초대 교회 성령 강림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나타나 우리 모두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맞기를 기원합니다.

<2013. 5. 19.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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