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 설교- 우리에게 임하신 주의 성령

2019. 6. 2. 10:17목양자료/5.절기자료

우리에게 임하신 주의 성령

민수기 11:24-30

 

오늘은 오순절에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임하셨던 성령 강림을 기념하여 지키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님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를 힘썼을 때 오순절 날 성령께서 120명의 제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그 후 완전히 변화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먼저 그들은 듣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한 각 나라의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아직도 제사장들의 위협이 등등할 때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그들의 믿음과 생각과 삶을 완전히 180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강림의 사건은 오늘 우리들의 믿음과 생각과 삶도 완전히 바꾸어놓은 줄로 믿습니다.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주일이면 주님 앞에 나와 그 예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고 그 분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관을 버리고 그 분의 말씀과 신앙에 따라 살아가는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변화인지 모릅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성령님이 얼마나 절대적인 분인가를 기억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끊임없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수 없다고 불평했을 때 모세를 도와 함께 백성들을 이끌어갈 70명의 장로들을 선택하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먼저 백성들을 모아서 여호와의 말씀을 알리고 택함을 받은 70명의 장로들을 성막에 모아 세웠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셔서 모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들에게 임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70장로는 그 자리에서 예언을 하므로 성령님이 임하심을 경험 하였습니다.

그런데 70명의 장로로 택함을 받은 엘닷과 메닷이라는 사람이 장막에 오지 않고 자기 진영에 머물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어째든 최고 지도자인 모세에게로 그리고 성막에 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모습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런데 오지 않고 진영에 머물렀던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였고 다른 장로와 마찬가지로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모세에게 알려지자 모세의 수종이었던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그들을 말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오히려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대답합니다.

그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는 이 말은 신약에서 오순절에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임하실 성령을 예언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신약의 오순절을 상징하는 구약의 대표적인 성령 강림절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강림에 대하여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먼저,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자기 뜻대로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도 그랬고 우리도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엘닷과 메닷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장막에 오지도 않았고 자기 진영에 머물렀는데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셨다고 하는 것은 잘 이해가 안가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보통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님을 생각하면서 성령님은 성도들이 모여서 사모하고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임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령님은 그럴 때 임하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런 때만 성령님이 임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를 축소하고 제한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성령님은 기도할 때도 임하시지만 기도하지 않은 다른 때에도 얼마든지 임재 하십니다.

고넬료의 집에서는 베드로의 말씀을 들을 때 오순절 다락방에서와 같이 임하셨습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이 일어날 때는 특별히 길선주 장로가 자신의 죄를 회개했을 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요한 웨슬리에게는 수요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들을 때 임재 하셨고 마르틴 루터에게는 신앙서적을 읽을 때 임하셨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성령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오려고 길을 가던 때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령님은 모세에게로 나온 68명의 장로들에게도 임하셨지만 진영에 머물러 있던 2명의 장로들에게도 임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과 방법을 초월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우리의 생각으로 제한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은 자신의 뜻대로 언제든지 우리에게 임하시고 어디서든지 성령의 충만을 허락해주십니다.

성령강림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는 그런 뜻이 아니고 오히려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맛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사모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봉사하고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집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숲속에서 다양한 통로를 통하여 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해야 합니다.

모세에게 온 장로들에게 주셨지만 오지 않은 두 명의 장로들에게도 주셨습니다.

장막에 모여 있던 장로들에게도 주셨지만 진영에 머무른 장로들에게도 주신 성령님의 다양한 역사를 경험하면서 성령 충만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로, 성령님을 주시는 목적은 주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바로 모세가 혼자서 일을 할 때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70장로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모세를 도와 일을 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성령을 받자 예언을 했다는 말씀이 나오고요, 모세는 성령을 받은 자들이 다 선지자가 되는 것을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주님께서 맡겨준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그들은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증거 하지 않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증거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도의 개척 선교사였던 스코트 목사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미개척 선교지를 향하여 가다가 적의를 품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긴 창으로 그의 심장을 겨누었습니다.

이젠 꼼짝 없이 죽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 서서 늘 가지고 다니던 바이올린을 켜면서 원주민들의 언어로 찬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그 앞에 무릎 끓고서 면류관 드리세.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스코트 목사는 잠시 후면 다가 올 죽음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찬양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3절이 다 끝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눈을 떠보니 그를 겨누고 있던 사람들의 손에서 창이 떨어져 있었으며,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찬양을 받으실 그 높으신 이름이 누구인지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과 함께 집으로 가서 여러 해 동안 그들 가운데서 거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성령님을 받을 때에는 분명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받은 성령을 장로들이 받았을 때 70명의 장로들은 예언을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예언은 성령의 은사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예언을 성령의 제일 첫 번째 은사로 꼽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예언하기를 사모하고, 방언도 금하지 말아야 하지만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언을 하였다는 것은 성령께서 임하실 때는 어떤 성령의 은사가 나타난다는 것이요 그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을 받은 자로서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게 주신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은사를 활용하여 일할 때 우리는 효과적으로 능력 있게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성령을 받은 자는 성령의 역사나 은사에 대해서 시기하지 말고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장막에 나아오지 아니한 엘닷과 메닷에 대하여 여호수아는 그들을 말리소서.’했습니다.

이 말을 다른 번역으로 보면 그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들, 즉 모세의 명대로 성막에 나오지 않았던 그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고 어떻게든지 책임을 묻고 그들을 징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여호수아가 그들을 시기하여 경계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을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임하신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였고 그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도 성령을 받아 선지자가 되게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 주의 일을 감당할 때 우리는 흔히 여호수아와 같은 잘못을 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못마땅하게 여기고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을 시기하면서 성령님을 독점하려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고 우리 모두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우리 모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하십니다.

각자에게 맞는 성령의 은사도 주시고 크게 들어 쓰시기도 하시고 작게 들어 쓰시기도 하시고 이런 저런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절대 다른 사람들의 역사에 시기하면 안 됩니다.

그들에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여야 합니다.

모세는 정말 이런 면에서도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장로님이 외국의 어느 지역에 선교사를 도와서 큰 농장을 개발했습니다.

못사는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고 일을 하면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준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선교지의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노동의 가치를 심어주었던 아주 훌륭한 사업이었고 선교사역의 대표적인 성공 프로젝트로 꼽힐 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성공 프로젝트가 다른 지역으로 활발하게 확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런 성공 사역이 널리 확장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고 잘 살게 되면 더 좋을 텐데,

그리고 그 노하우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 효과적으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은 그 프로젝트가 확장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노하우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막으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선교열매를 자신만이 따 먹고 누리고 영광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 것은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은 성령의 역사요 성령의 도우시는 은혜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교만하지 않을 수 있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인정해야 하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또한 우리는 절대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의 D. L 무디 목사만큼 기독교를 부흥시킨 인물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복음적이고 영감 있는 열정적인 설교로 수많은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했습니다.

그의 집회가 있을 때는 언제나 은혜를 받으려고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한 지역에서 무디 목사를 초청하여 전도 집회를 가지려는 준비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때 어떤 젊은 목회자가 벌떡 일어나 왜 강사로 무디만 고집합니까? 무디 외에는 설교자가 없단 말입니까?

그가 성령을 독점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존경받는 원로 목회자가 조용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무디만이 성령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 시대에 무디를 독점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대에도 분명히 성령께서 쓰시는 사명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것을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와 택함을 받은 장로들이 성막에서 성령의 강림을 경험한 후에 그들은 진중으로 돌아왔습니다.(30)

성막에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성령의 강림을 체험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진중으로 가정으로 일터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모시고 사는 자들은 먼저 자신의 모습 속에서 그 결과가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을 모시고 살았던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다고 했습니다.(12:3)

아울러 내가 살아가고 있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일할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진중입니다.

 

서른이 넘어서 군 생활을 하게 된 어떤 목사님이 군대에서 경험했던 간증입니다.

신병이 되어서 내무반에 신고식을 하게 될 때, 고참의 엄포와 함께 신고식에서 반드시 내무반장이 좋아하는 유행가를 불러야 한다는 요구에 괴로워하던 날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의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찬송가 384장을 하라는 조용하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후에 벌어지는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노라는 각오로 성령의 음성을 따르기로 작정하고는 그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고참들의 고함과 야유와 협박이 찬송을 중단시키려고 했지만, 어디선가 "조용히 해라, 찬송 좀 듣자." 하는 어떤 소리와 함께 그 목사님은 찬송을 끝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 내무반에서 한 상관이 그에게 다가와 성경에 대해 묻고, 성경공부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 상관은 제대 후에 어느 자그마한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큰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은 자로서 성령의 말씀하심에 조용히 귀 기울이며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님은 때로는 잔잔하고 고요하게, 때로는 급하고 강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 음성에 순종할 때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로서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가정과 직장과 일터와 학교에서 성령님께 민감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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