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 설교- 하나님의 영으로

2019. 6. 2. 10:12목양자료/5.절기자료

하나님의 영으로

에스겔 37:1-10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을 기다리던 120명의 무리 속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예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아울러 교회의 탄생을 가져오게 됩니다.

또한 교회가 능력을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교회에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탄생이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오늘도 교회는 성령 충만을 통하여 존재하게 됩니다.

교회의 힘과 능력은 성령 충만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돈이 능력이 아니고 숫자가 힘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하고 성령 충만을 힘입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히말라야 설산에는 혹독한 추위에 집도 없이 살아가는 설산조라는 새가 있다고 합니다.

이 새는 밤새 추위에 떨면서 내일은 집을 지어야지다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음날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면 집짓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따뜻한 햇볕 속에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가 다시 밤이 되면 집을 짓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날이 새면 집을 지겠다.’ 다짐을 합니다.

그렇게 후회하고 다짐을 하다가 결국은 집을 짓지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설산조의 어리석음을 우리가 범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면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신앙으로 살 것을 다짐합니다.

그러다 조금 살만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잊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던 120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부탁을 받은 사람은 500여명이 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500여명의 사람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40일을 참지 못하고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120명만 모여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나머지 380여명은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또한 주님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40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주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기다리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여러분, 바라기는 정말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시고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주님이 축복하시고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의 포로생활가운데서 보았던 환상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재 하셔서 그의 영으로 놀라운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환상가운데 한 골짜기 가운데로 인도해 가시는데 그 골짜기에는 수많은 뼈가 널려있었습니다.

그 뼈는 아주 말라버린 오래 방치된 뼈였습니다.

이 뼈는 죄의 결과로 나타난 인간의 아픔과 슬픔과 비극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고 뼈가 가득한 골짜기의 신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인간의 사악함은 이런 뼈의 골짜기를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1984년 롤랑조페 감독이 만든 킬링필드라는 영화를 보면,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는 10년 동안 150-160만 명의 양민들을 살해하여 해골골짜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보다 앞서 나찌 독일의 히틀러는 무려 600만 명의 유태인을 가스실로 끌고 가 거대한 죽음의 골짜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 정권 때 광주에서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고 집단매장을 하였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킬링필드요 해골의 골짜기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이 땅을 부요가 가득한 땅으로 만드셨습니다.

정의가 가득하고 거룩함이 충만하며 병들거나 아픔이 없저주와 가난과 죽음이 없는 평화의 동산으로 사랑의 동산으로 이 세계를 만드시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도 심히 좋았던 이 땅이 왜 이렇게 죽음의 골짜기로 킬링필드로 바뀌었습니까?

성경은 그 이유를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죄악과 마귀가 합작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이 처참한 세계, 마른 뼈와 같은 세계를 만들어놓고 말았습니다.

건강과 생명을 죽이고 축복과 풍요를 죽이며 영생이 죽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죽음의 골짜기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환상이며 상징입니다.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희망은 없고 절망만 있을 뿐입니다.

한숨과 체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이런 비참한 포로생활을 해야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한 잘못 때문입니다.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요 우리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느 곳을 보아도 마른 뼈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뼈들이 서로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사악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돈을 위해서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부도덕한 일도 서슴치 않고 행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총으로 자기 친구들을 수십 명씩 죽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죽음의 골짜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른 뼈의 비극은 어떻게 해결되고 종결될 수 있겠습니까?

 

소망 없이 뒹구는 마른 뼈들을 바라보고 있던 에스겔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오래 되어 말라비틀어진 마른 뼈들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그 뼈들을 바라보는 에스겔의 마음이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에스겔아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물으십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도저히 소망이 없고 도저히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이 뼈들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마른 뼈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절망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바라볼때는 소망이 있습니다.

상황을 바라보면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상황보다 크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를 바라보지 마시고 문제보다 크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보면 사람이 한없이 크게 보이고 문제를 바라보면 정말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낙심하고 그 문제에 짓눌려 인생을 포기해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보지 마시고 사람을 보지 마시고 그 문제보다 그 사람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강한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문제는 한 없이 작아 보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보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지상의 것은 정말 적게 보입니다.

그러나 내려가면 내겨갈수록 점점 더 크게 보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문제가 크게 보이면 보일수록 주님 앞으로 계속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점점 작아지고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살 수 있겠느냐?

인간적으로 보면 도저히 살 수 없지만 주님의 능력 안에서는 살 수 있음을 믿습니다.

현실 속에서는 소망을 가질 수 없지만 주님의 임재 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요 축복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이 예배를 통하여 바로 이 주님을 만나야 하고 주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주간도 문제 속에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던 성도들이 있다면 이 시간 마른 뼈들이 능히 살 수 있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제보다 크시고 어떤 상황보다 크시고 위대하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작아지고 절망은 변하여 소망이 되고 한숨이 변하여 기쁨이 될 줄 믿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살 수 없지만 그러나 주님은 하실 수 있다고 고백한 에스겔 선지자를 향하여 주님은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절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자에게 부활의 소망 부활의 능력을 전할 사명이 바로 우리에게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에게 대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바로 마른 뼈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소망 없는 자가 아니다. 나는 절망에 빠질 자가 아니다.

나는 능히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소망가운데 승리할 수 있다.

나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절대로 어떤 절망 속에서도 낙심해서는 안 될 줄 압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 낙심될 때 절망될 때 여러분 스스로에게 선포하고 대언함으로 절망의 골짜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절망가운데 빠진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 문제에 짓눌리고 상황에 포로가 되어 소망 없이 절망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할 사명이 바로 우리에게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시대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이 민족을 다시 일으키고 이 사회와 민족을 죽음의 골짜기에서 생명의 골짜기로 만들어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에스겔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마른 뼈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을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이런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 뼈 저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살이 오르며 그 위헤 가죽이 덮였으나 생기는 없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형태는 갖추었으나 능력 있는 군대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나 달릴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능력 있는 군대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겠습니까?

그 속에 생기가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야 합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들어갈 때 차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갈 때 소망을 가질 뿐 아니라 그 소망을 향해 앞으로 전진 할 수 있습니다.

솔제니친이 반체제 운동을 벌이다가 결국 강제수용소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모진 고문과 고통을 당하면서 추위와 기아와 12시간의 중노동으로 점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보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만 암에 걸리게 됩니다.

암이 점점 퍼져 나가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어 일어설 힘조차 없이 쓰러질 때에 그의 옆에 누군가 스치는 것을 느낍니다.

모든 생각이 없어지고 마지막이라고 느끼는 그 순간에 누군가가 자기 옆에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눈을 떠보니 흰옷을 입은 분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십자가를 그어 줍니다.

그 속에 뜨거운 무엇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놀라운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고통스럽던 아픔도 사라졌습니다.

그는 은혜를 받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나와서 일 년 만에 그는 몸도 회복되고 자유를 얻고 미국 때에 가서 작품 활동도 하고 세계를 향해 큰일을 하게 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오아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의 생기인 성령이 임하게 될 때 능력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악한 마귀와 대적하여 승리하는 십자가의 군병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에스겔에게 보여준 이 환상은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와 소망 없이 절망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유대 백성들에게 주시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너희들이 얼마 있지 않아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해방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마른 뼈와 같이 소망 없이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고 힘을 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환상이 오늘 여러분들의 환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일들을 계획하시고 이런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절망의 골짜기에서 마른 뼈와 같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소망 없는 사람들같이 한숨을 쉬며 절망 속에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보다 더 크시고 어떤 상황보다 더 크신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좌우의 어떤 칼보다도 더 예리한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생기가 되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모든 절망을 극복하고 소망가운데 능력 있는 십자가의 군병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마른 뼈들을 능력 있는 군대로 만들어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고 말씀으로 충만해질 때 이런 놀라운 역사가 우리 가운데사도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민에게 증거 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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