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감사주일설교 - 잊지 말아야 할 감사(시 103:1-5)

2015. 7. 2. 14:23목양자료/5.절기자료

잊지 말아야 할 감사(시 103:1-5)


신구약 성경 가운데 「감사」라는 단어가 나오는 성경구절이 177개가 됩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워낙 고난을 많이 겪은 민족입니다. 그래서 우리말에 감사를 표현하는 말이 별로 없습니다. 고작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 정도입니다. 오히려 불평하는 말이나 짜증내는 말, 욕하는 말들이 상당히 발달한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러나 일찌감치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을 보면 감사를 표현하는 단어와 문장이 참 다양하고 풍성합니다.


감사는 습관입니다. 감사와 불평은 똑같이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감사라는 금을 캐내고, 어떤 사람들은 불평이라는 돌멩이를 캐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좋은 것을 갖다 주고 좋은 환경이 갖춰져도 부족하다고 불평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불평이 몸에 베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습관이 된 것입니다. 불평을 너무 자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화; 멕시코 어느 마을에는 사시사철 온천이 나온다고 합니다. 따뜻한 물이 나와서 거기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은 감사해야 마땅한데 감사보다는 불평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 비누는 나오지 않는가?” 하고 불평한다는 것입니다. 온천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비누가 땅에서 안 나온다고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평이 습관화된 자의 모습입니다

잠언 22:24~25에 보면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질까 두려움이니라.”하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이 습관화되어 있는 사람과는 사귀지도 말라고 할 정도로 불평은 심각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불평의 습관이 감사의 습관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시편 103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노래합니다. 송축한다는 것은 “노래하며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다윗만큼 고난 많은 인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스스로에게 여호와께 찬송하고 감사하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잊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너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쉽게 잊어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평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맥추감사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떤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시편 103편을 통해서 다윗은 무엇을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는지 3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죄를 사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하라

3절을 처음 부분을 읽겠습니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가운데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죄용서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어떤 종교입니까? “죄 사함의 종교”입니다. 왜 기독교가 죄 사함의 종교입니까? 로마서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에는 절대로 죄인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인에게는 영원한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의 죄는 죄 없는 자가 대신 피 흘려 죽어야만 사해집니다. 그런데 공범인 인간이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딸려 피 흘리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피 흘림의 종교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땅에서 허무와 절망 가운데 살다가 죽을 것이고, 죽어서도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은혜요 축복입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죄 사함을 그냥 값없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4:6~8에 보면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죄 사함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감사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속의 은혜요,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여기서「사한다」는 말을 히브리어로 「사라흐」라고 합니다. 그 뜻은 능동 분사 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끊임없이 계속하여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우리 죄를 용서하셨지만, 지금도 용서하시고, 앞으로도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86:5을 보면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하심이 후하심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시기를 억지로 마지못하여 하시는 것이 아니라 즐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좀 뻔뻔하게 예수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계속 용서하신다고 하시고, 죄를 사해주기를 즐기신다고 했는데, 왜 우리가 죄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가기를 망설이겠습니까? 죄를 가지고 뻔뻔스럽게 주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뻔뻔스러운 사람을 미워하고 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뻔뻔스럽게 보시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시고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화; 어떤 전쟁터에서 한 병사가 탈영하려다가 붙잡혔습니다. 전쟁 중 탈영병은 사형에 처했습니다. 사령관이었던 장군이 사형을 선고하려고 하자 부관이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장군, 마지막으로 이 병사를 무조건 용서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말에 감동한 장군이 그 병사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대가를 지불하거나 용서를 구한 것도 아닙니다. 장군이 일방적으로 무조건 용서한 것입니다. 결국 그 병사는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했고, 한 평생 장군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용서가 사형보다 위대한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우리도 영원히 죽을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용서와 은혜로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안다면 제대로 주님을 믿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생활을 대충하는 사람은 이 놀라운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대충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죄 용서받은 것을 안다면 십일조 문제 주일 성수 문제 새벽기도 문제는 다 해결 됩니다.


오늘 맥추감사 주일에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죄 사함의 축복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죄 사함 받은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병을 고치시는 은혜에 감사하라.

3절 하반 절을 읽겠습니다.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병을 고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병’이란 육체의 질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병”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말하는 병은 정신적 고통과 죄로 인한 모든 부작용을 의미합니다. 상한 마음, 실패, 절망, 포기, 고독, 우울증, 불면증 등을 통틀어 “모든 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이 모든 병을 고침 받는 치유와 회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대부분은 건강한 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병을 고쳐주신 적이 없기 때문에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배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 없이 살고 있다면 원인모를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을 사람이 수두룩할 것입니다. 그나마 우리가 예수 믿고 살기에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여기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병에서 고쳐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원인을 몰라서 고치지 못하는 병이 많습니다. 감기의 원인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모르고 계시는 병, 여러분이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의 몸속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병을 고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병 고쳐 달라고 기도한 것도 아닌데도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타나야 할 병이 나타나지 않고 건강하게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치유와 회복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병에서 고침 받으셨습니까? 꼭 감사하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별로 어떤 병이 없이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도 고침 받으신 것입니다. 오늘 모든 병에서 고침 받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도 감사하고 입술로도 감사하고 헌금으로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준비하지 못하셨다면 오늘 약속을 꼭 하시고 다음 주일이나 또 드릴 수 있을 때 어느 주일에라도 드리면 됩니다. 고침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마귀에게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출애굽기 15:26을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병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여호와 라파”라는 것입니다. 이 <라파>라는 단어의 뜻은 단순한 육체의 질병만을 고치는 의료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모든 병에서 고쳐서 원래의 완전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병을 계속해서 고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고치시는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5에 보면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17에 보면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하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의 모든 병을 거두어 짊어지고 가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치료하고 계신다는 과학적인 증거도 있습니다. 1998년, 미국 듀크 대학병원의 ‘해롤드 쾨니히와 데이비드 라슨’이라는 두 의사가 특별한 실험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발표에 의하면 매 주일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병원에 입원 할 확률이 적고, 입원하더라도 빨리 치료되어 입원기간이 짧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 주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1999년에는 약 4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예배에 참석하여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이, 우울증을 줄이는데 효과가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의 경우, 고혈압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밝혀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손뼉 치며 노래하고, 새벽부터 기도하는 것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치료자를 가까이 하니까 계속 치료되어서 건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안 믿는 분들보다 7년을 더 오래 살 살 것이고 병이 나도 빨리 낫는 은혜를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박희옥 권사 간증; 하나님이 우리교회 박희옥 권사님을 기적적으로 고쳐주셨습니다. 그분의 간증을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왜 우리 병을 고치실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13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는 흙으로 지어진 진토입니다. 그래서 연약한 체질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친히 우리를 지으신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몸바탕이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진토의 체질임을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잘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능히 고치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우리의 소원을 만족케 하신 은혜에 감사하라.

다윗은 그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5절을 읽겠습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소원을 만족케 해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이 청춘이 되게 하셔서,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고 비상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낱낱이 이루어 주시고, 만족케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민수기 6:24에 보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말씀하고 있고, 시편 107:30에 보면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하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는 분입니다.


예화; 전라남도 해남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본래 집이 가난해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며 가난한 살림을 도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있는 교회 주일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의 꿈은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이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 수가 없습니다. 고민하던 소년은 어느 날 방바닥에 엎드려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전상서, 하나님, 저는 중학교에 가고 싶습니다. 저는 집이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 수가 없습니다. 저를 중학교에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그 편지를 흰 봉투에 넣고, 그 봉투 위에 <하나님 전상서>라고 쓰고, 뒷면에는 자기 주소와 이름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길가에 있는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어느 날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꺼내다가 받는 사람의 주소가 없는 그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받는 자의 이름이 하나님 전 상서라고만 되어 있는 편지를 누구에게 보내야 하나 난감해 하다가 하나님하고 제일 가까운 사람이 목사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편지를 해남읍 교회 이 준목 목사님이라는 분에게 갖다 드렸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난 목사님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음 주일 그 소년을 불러다가 교회에서 먹고 자게하고, 나중에 중학교를 보냈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신학대학에 진학했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와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이전에 한신 대학교 총장이셨던 오 영석 박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한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드린 기도의 소원을 신기한 방법으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제목과 소원을 신기한 방법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말씀의 결론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죄를 사하신 은혜에 감사하고, 병을 고치시는 은혜를 감사하고, 우리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는 은혜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