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12. 07:32ㆍ목양자료/2.설교자료
1. 일반적인 학습
①. 예화는 성도들로 하여금 진리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②. 좋은 예화는 성도들로 하여금 진리를 오래 동안 기억하게 할 것이며, 설교를 듣는데 지루
함을 제거하고, 흥미를 유발시킨다.
③. 그러나 간혹, 예화로 인해 설교의 메시지가 흐려지는 경우도 있으며 설교와 맞지 않는 예
화는 설교를 혼란스럽게 하여 진리를 훼손하는 역작용을 할 수 있다.
④. 예화는 단순해야 한다. 간단한 이야기로 진리를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어야지 이야기로 선포되는 형식을 취해서는 안된다.
⑤. 가급적이면 예화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⑥. 같은 예화를 두 번 다시 하지 말라. 한 번 한 예화는 패기 하지 말고 날짜와 시간을 적어
영원히 기억하도록 해서 다시 쓰지 말아야 한다.
이상하게도 성도들은 말씀을 잊지만 수 년전에 했던 예화는 잊지 않는다. 예화를 사용하되 가
급적이면 성경에 있는 예화를 사용하라. 그렇게 하면 같은 이야기를 해도 시비를 하지 않는다. 같
은 예화를 사용했다고 해서 설교가 잘못되었다거나 설교의 질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러나 성도들은 같은 예화로 인해 자기들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같은 설교를 재탕했다고 하며
(예화를 두 번 사용한 것이지 같은 설교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단정해 버린다) 설교 준비에
소홀한 목사라 하고 심지어 실력이 없는 목사라고 한다.
⑦. 단편적이고 짧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에화는 최상의 예화가 된다.
2. 좋지 못한 예화
(1). 가족 이야기
자기 가족들의 일들을 예화로 사용하지 말라.
목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일들은 자기 가족들의 일들일 것이다. 그래서 설교 가운데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되는데, 이것이 대단히 좋지 아니한 경우가 된다.
목사의 사 생활이나 가족들에 대한 일들은 가급적 성도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이 장기적인
목회에 유익하다. 이 말을 반대로 말하면 자기 가족에 대한 공개적인 발언들은 목회자의 목회 수
명을 단축시킬 수가 있다는 말이다. 목사의 가족이 모든 면에서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는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 성도들의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는 공통점을 가진 평범한 가정이다. 그런데 설
교 가운데 극히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를 무슨 특별한 사안이나 되는 것처럼 자주 등장시켜 회자
(會炙)시키는 것 자체가 사실상 자연스럽지 못하다. 목사의 가정 이야기가 성도들에게 좋은 느낌
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성도들이 목사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졌을 때다. 그러나 성도들
의 목사에 대한 감정이 나빠지면 목사 가족들의 이야기는 극도로 성도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목사가 자기 가족들을 자랑하면 부러워하면서도 시기를 하고, 목사가 자기 가족들을 비하하여
말하면 영락없이 성도들은 목사의 가족들을 비하한다.
예를 들면 목사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을 하면 부러워하면서도 시기 질
투를 하고, 공부를 못해서 진학을 하지 못하면 비웃고 下視를 한다.
특히 목사는 자기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목사가 자기 부인을 떠받치면 공처가
라고 하고, 下視를 하면 폭군이라고 하며 비웃는다. 그런데 요사에 젊은 목사들이 성도들 앞에서
자기 부인을 가르쳐 "사모"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다.
[우리 사모가----어쩌고, 저쩌고------]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목사의 품위를 떨어뜨릴 뿐 아
니라, 목사의 일반적인 상식의 무식에 대한 스스로의 폭로가 되어 식견이 있는 성도들에게 큰 실
망을 준다. 성도들 앞에서 목사는 아내를 지칭할 때 '우리 집 사람'이라 던지 '저의 내 자(內 者)
라는 낮춤말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목사는 일반적인 상식에 무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렇듯 목사의 아무 생각 없는 아내와 자식 자랑 내지, 가족들에 대한 가벼운 농담이나 비하
들은 목사의 가정 생활을 성도들에게 공개해 목사 가정의 신비감을 감퇴시키고 하나님의 종의 품
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2). 성도들의 이야기
교인들의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목사들이 설교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유혹 중의 하나가
들은 바 바 있는 성도들의 이야기이다. 설교나 심방 중에 한 교회의 성도의 이야기를 한 다는 것
은 절대적으로 삼가야 한다. 만일 성도들이 그런 이야기를 내 놓는 한이 있어도 동참해서는 안된
다. 멀리 돌아 남의 이야기하는 듯 해도, 몇 년전에 다른 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전재해도 성
도들은 그 이야기가 지금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목사에게 경계심을 가진다. 즉 내 이야기도 목사가 하고 다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
국 성도들은 목사에게 마음의 문을 꼭꼭 잠그고 목사의 가벼운 말과 처신에 비웃음과 경계심을
가지므로 하나님의 종과 성도간의 관계가 소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목사의 목회에 치명적인 결
과를 가져온다.
①. 얼마 전에 어느 집사님 한 분이 수술을 받게 되어 문병을 갔습니다. 몹시 불안해하고 있었
습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하고 수술 받읍시다"하며 기도를 끝내고 나올 때에 저는
한 마디 더 보탰습니다. "수술 잘 받기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마는 마취에서 깨어날 때 헛소리
안하기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이 좋겠소"라고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이 때의 헛소리가 진짜입니
다. 술취한 자와 술이 깬 자를 놓고 보면 술취했을 때 한 소리가 전부 진짜입니다. 술 깬 다음에
앞뒤 가리고 체면 차리고 점잖게 하는 말은 전부 거짓이며 위선입니다.
(3). 막연한 추측
확실하지 못한 이야기를 확실한 것처럼 꾸며 말해서는 안된다.
①. 미국의 [존 호프만]이라는 사람은 프린스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아무런 낙이 없이 살았습
니다. 그런데 [월슨]박사가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그의 말을 듣고 힘을 얻게 되었습
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시지 않
는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그는 [윌슨]박사와 상담을 하다가 "하나님을 위대하시고 크신 하나님
으로 믿으라"고 하는 말을 통해 새로운 다짐과 변화를 가졌습니다. 그 후 그는 크고 위대한 사역
자로 살아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주님은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크게 사용하십
니다.
첨부: [존 호프만]과 [월슨]박사는 누구인가. 그들이 크고 위대한 사역 자라는 이유가 무엇인
가의 설명이 없어 듣는 이들을 멍하게 만든다.
②. 1928년에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자들이 시카고의 한 호텔에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그
때 이후 27년후에 조사를 해보니『챨스 수홥』이라는 사람은 세계 최대 강철 회사 사장인데 결국 빚에 쪼들려 죽었습니다.『아터 커튼』이라는 사람은 세계 최대의 양곡 투기업자인데 파산해서
외국에 도망가서 죽었고,『리챠드 휘든이』라는 사람은 뉴욕 증권거래소 사장인데 교도소에 갇혀있다가 출소한지 얼마 안되어 집에서 죽었습니다.『쩨세 리버모어』라는 사람은 '월'가의 거부였으나 모든 것을 다 잃고 자살을 했고,『이반 쿠룩』이라는 사람은 세계 최대 전매청장 이였는데 이도 역시 자살을 했습니다.
첨부. 이 예화도 많이 사용되는 예화이지만, 어디에서 그런 말이나 왔는지 그 출처를 대지 않
으면 꾸며낸 이야기가 될 우려가 많다.
(4). 목사의 지식 자랑과 경험들.
또는 자기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설명에 설명을 해야 겨우 이해될 수 있는 어려운
이야기를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예화를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유혹이나, 자기 지식의 자랑이나, 설교 준
비를 많이 했음을 자랑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예화는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말씀을 헤치는
독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 외의 모든 지식은 비록 그가 전
문적인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상식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즉 목사는 성경 말씀 이외의 모
든 전문적인 지식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성도들은 경제, 법, 정치, 철학, 심지어 신학
의 전문적인 지식을 표시하거나 발언하는 것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다.
성경의 전문성 이외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은 성도들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자기의 전
문성을 성경 말씀에 밀착시켜 사용할 줄 아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경제 문제나 시사
문제 도는 정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나는 군목으로 제대를 했다. 그래서 종종 군대에 있을 때의 경험을 말하곤 했는데, 그로 인해
'모든 일들 군대식으로 해결하려는 목사------'라는 오해를 많이 받아야 했다.
(5). 교리적인 예화
기독교의 교리는 성도들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진리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기독교 교리의 잘못된 해석이나 인식으로 인해 터부니 없는 이단 논쟁과 극단적인 교회 분쟁이
있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상당 기간동안 목사들은 이 교리적인 문제에 자기도 모르게 매달리
게 된다. 설교가 교리적이 되고 학교에서 배운 신학을 설교에 자주 인용하게 되는데, 배운 것을
지혜롭게 요리하거나 탈색하지 않고 원색적으로 사용해서 성도들을 혼란시키고 거부감을 일으키
는 경우가 많다. 감리교 신자들이 있는 곳에서 감리교와 장로교를 비교 설명하는 일도 있고, 타
교파 출신교인들 앞에서 타 교파를 설명하기도 한다. 성도들은 이런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러므로 교리적인 문제는 성경을 공부할 때 가르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①. 우상은 무식한 사람들의 책이다 라는 말은 그레고리우스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우상을 통
해 하나님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한 그 자신도 우상을 섬기는 일에 빠졌다.
예레미아는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도는 나무 뿐이라[렘 10:8]"이라고 했고, 하박국은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합 2:18]"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사람들이 우상을 통해 하나님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은 순전한 거짓임을 들어내었다. 즉 하나님에 대하여 무식한 자들이 우상을 보고 하나님을 배운다는 억지 주장이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예언자들이 그렇게 꾸준히 우상을 버리도록 백성들에게 강요했겠는가?
그러나 교황 주의자들은 확실한 원리로 우상이 책의 역할을 한다고 한 결정은 예언자들에 의
해 전적으로 정죄 되었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참되신 하나님과 우상을 대립시키고 결코 조화될 수 없는 것으로 대치시켰기 때문이다. (칼뱅의 기독교 강요 중에서)
(6). 예민한 신학적인 논쟁들.
신학적 논쟁은 절대적으로 삼가야 한다. 이단이나 케도릭, 타 종교등등, 우리와 입장을 달리하
는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은 성도들을 심란하게 만든다. 이런 것들은 교육 시간을 활용하여
가르쳐야 할 것이다.
①. 기독교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6천년으로 봅니다. 6천년전 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본재 여부입니다. 사람들에게
는 '하나님은 과연 계신가?'계시다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 않고 그 궁금증을 풀
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이런 학설은 이단적인 요소를 많이 가진 세대론자들의 학
설이다.)
(7). 철학적인 이야기.
중세는 신학을 논할 때 철학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학과 철학이 완전히
분리되어 다른 학문이 되어 있다. 그러나 두 학문 사이에 아주 긴밀한 관계는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목사들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한, 철학에 대해 깊이 접하지 못했다. 다만, 예과
시절이나 대학 과정에서 교양 과목으로 잠간 맛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철학자라는 자
기 착각을 말아야 한다. 고로 철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처움부터 무리가 된
다.
①. 신학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노력을 합리론적인 유신론 증명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로 하나님의 존재여부를 증명해보려는 시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유신론 증명에는
네가지 있는데 첫째는, 본체론적 유신론 증명, 둘째는 우주론적 유신론 증명, 셋째는 목적론적 유
신론 증명, 넷째는 도덕적인 증명입니다.
이중에서 본체론적 유신론증을 살펴보면,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든지, 안 믿든지 하나님
에 대한 개념이 마음 속에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음 속에 하나님
이라고 하는 분이 어떤 분이시며, 어디에 계신가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
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추적해 나가서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것이 본체론적 유
신혼 증명인 것입니다. 안셀렘이나, 데카르트같은 유명한 신학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우주론적 유신론 증명을 주장하는 존 로크나 토마스 아퀴나스,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신학자들
이 우주론적 논증은 인과율의 법칙에 의한 논증입니다. 어느한 존재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연구하다 보면 인류 최초의 조상이 나타나게 되고, 그 인류 최초의 조상은 바로 하나님이 만들었
음을 주장함으로 하나님의 조재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목적론적 유신론 증명을 보게되면, 우주의 삼라만상에는 질서가 있고 분명한 조화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우주의 대 자연계의 질서와 조화는 우연이 아니라 그것을 주장하시는 분이 있고,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그렇게 주장했고, 키에르 케고르가 그렇습
니다.
마지막 도덕적인 유신론증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내면에는 양심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서 주신 것임을 주장합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양심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양심을 만드신 하나님
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임마누엘 칸트는 주장했습니다.
(8). 다른 사람의 경험을 자기의 경험으로 말하기.
이것은 하나의 거짓 말이 된다. 예화 사용에 있어 어떤 경우에도 떳떳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교에 사용되는 예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매개체이기 때문에 예화 자체도 거룩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라 해도 거룩함을 指向하는 것
이여야 할 것이다.
(9). 극단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예화
또 예화를 사용하는 설교자가 예화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할 요량으로 극단적인 흥미를
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며,
(10). 타종교나 다른 기독교 종파를 비판하는 이야기.
우리 노회에 불교 승려로 있다가 개종하여 목사 되신 분이 있었다. 그 분이 너무 귀해서 노회
의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모시고 집회를 했다. 그러나 기대한 은혜는 고사하고 교회를 시험 들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 왔다. 그것은 그 분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승려로 있을 때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때문이다. 즉 그 이야기들은 모두 불교에 대한 이야기들이 였다. 그 분은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하여 설교를 하기도 했는데 20년이 넘게 몸담은 불교에 대한 지식이 훨씬
해박해서 불교에 대해서는 30분 이야기하고 복음은 10분 이야기하는 식이 되어 부흥회를 하는 것
인지 아니면, 불교의 팔만 대장경을 공부하는 것인지 분별이 안되는 것이 였다.
목사들이 흔히 불교를 비판하는 예화를 하고 다른 기독교 교파를 비판하는 예화를 한다. 그것
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역겨움을 만들어 낸다. 이런 경향은 특히 60-70년대에 대 유행을 했었는
데, 그 때는 교파의 분열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금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기독
교 내에서의 교파 관념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설교자가 교파 운운하는 말을 하면 구태성
을 벗어나지 못한 융통성 없는 목사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우리들의 정통성이나 이단들이나 타 교파 내지 다른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에 가르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11). 너무 긴 예화.
너무 긴 예화는 성도들을 지루하게 하고 흥미 위주가 되게 하며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니라 이
야기를 듣는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한다. 가급적 5분 이상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12). 한 설교에 너무 많은 예화들.
이 점도 삼가야 할 점이다. 한 설교에 3가지 이상의 에화는 설교의 강조점을 흐리게 할 우려
가 있다.
(13). 공갈 협박성 예화.
강남의 어느 큰 교회 부흥회에 참석을 했다. 강사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한 부흥사였다.
그 부흥 목사는 집회 기간 내내 성도들을 공포 분위기로 몰고 갔다. 그는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거나, 병이 들거나, 망하거나 했다고 했다. 정말 한심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여기 몇가지 예를 들면
①. [내가 아는 어떤 교회에 아주 못된 집사 세끼가 있는데------- 그게 무슨 무슨 일로 목사를
몹시 괴롭혔지------. 그러다가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 가는 길에 바로 교회 앞에서 차에
치어 꽉 되지고 말았어.]
②. [내가 경상도 지방에 부흥회를 갔을 때 이야기야. 집회를 하고 있는데 옆 집에 사는 술 주
정뱅이 녀석이 술을 처 먹고 씨끄럽다고 교회에 들어 와 난동을 부린 거야. 그래서 내가 그 놈을
보고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꺼꾸러 져라' 했다고. 그러자 그 자리에서 꺼구러져 일어나지를
못하더라고------ 제 놈이 안 넘어지고 견뎌!!!!]
③. [전라도 지방에 집회를 인도할 때야. 마침 그 교회는 성전 건축을 해야 해서 헌금 작정을
하게 되었는데 '아나니아' 장로가 있더라고-------. 부잔데 헌금은 쮜 꼬리만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래 내가 일어나라고 했지. 일어 나는 거야. 그래서 '김 장로! 왜 그 모양이야. 건축비의 반만 부
담해.'라고 했더니 꼼작 못하더구먼.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약속만 하고 헌금을 안해서
목사가 큰 고생을 했어. 그 장로 녀석 나중에 어떻게 된지 알아. 집 구석에 불이 나서 몽땅 망해
버렸어.]
④. [서울의 어떤 교회에서 집회를 안도할 때인데------ 그 교회 장로 하나가 글쎄, 내 부흥 집
회에는 참석하지 않고 애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구경을 갔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그 날싸 말고 비
가 오고 번개 천둥이 많이 치더라구. 갑자기 비가 오니 길거리에서 우산을 한 개 사 쓴고 다닌
모양인데 갑자기 벼락이 그 장로에게 떨어졌지 뭐야. 즉살을 했지-------]
(14). 기복적인 성격을 가진 예화
부흥사들이 흔히 쓰는 예화들 가운데 전혀 성경에 맡지 않는 미신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하나
님의 영광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오로지 세속적인 복을 받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는 거짓되고 과
장된 이야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 영혼 구원의 성스러운 사역을 이루워야할 강단에서
거침없이 난발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는 육신의 축복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지만, 진실한 축복의 말씀은 주님의 8복에
나오는 말씀에서나, 성령의 열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5). 자기의 치적을 과대 선전하는 예화.
내가 이 교회 성전을 건축할 때, 내가 누구 누구의 병을 치료했는데, 내가 누구를 장로 시켰더
니, 내가 이 교회를 개척해서 성장 시키는 과정에서 등등------
(16). 다른 목사나 성도들을 비하하는 예화들.
(17). 하나님을 자기의 종처럼 하는 이야기.
100% 자기의 기도를 다 들어 주신다는 거짓 말(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자기가 하자는 대로 모든 일을 하신다는 식의 교만한 말들-----.
(18). 잘못된 복음 해석을 유발시키는 예화
이런 예화는 성도들을 크게 오도해서 평생 지워지지 않고 시정되지 않는 말씀의 곡해를 만들
어 낸다. 말씀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오해는 잘못된 신앙을 가져 오고, 잘못된 신앙은 그의 영혼
과 육신을 동시에 파멸시킨다. 목사는 이 책임을 어떻게 질 수 있는 것인가?
(19). 신유 방언등 은사에 대한 지나친 강조.
하나님께서 종들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그 은사를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
러므로 각종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은사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 은사를 잘 사용하여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가 받고 체험한 은사 자랑
하기만 바쁘다. 그리고 그런 은사를 받아야 잘 믿는다는 식으로 성도들을 호도하고 복음을 외곡
시킨다. 은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한가지 수단이기 때문에 있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그리
고 믿음이 크면 큰 은사를 받고 믿음이 작으면 은사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20). 자기의 영적 체험을 과장하는 간증들.
나는 모든 하나님의 종들은 그가 정상적인 사역자일 경우에 그의 사역을 위한 가장 적절한 영
적 체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영적 체험이야 말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
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영적 체험이 강력하고 확실할수록 그 체험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영적 체험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고, 자기의 체험을 과대 평가하는 일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잘 하라고 준 영적 체험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어 버린다.
(21). 헌금을 유도하기 위한 비 복음적인 이야기.
부흥사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어떤 종류의 부흥하들은 그들이 부흥회를 초청 받았을
때 세가지 의무감을 가진다. 그 첫째는 초청한 본 교회 목사의 위신을 세워 주고 후한 대접을 받
게 하는 일이며, 둘째는 재미있게 설교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끌여 드리는 일이고(숫적인 부흥),
셋째는 헌금을 많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어떤 특수한 목적(건축등)이 있으면 그 목적을 성취시켜 주어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하지 않으면 부흥사로서의 생명이 단축된다고 생각하여, 터
부니 없이 과장되거나, 자기가 체험하지 아니한 이야기들을 자기가 체험한 것처럼 거짓 말을 하
거나, 헌금을 하게 하기 위한 거짓 복음을 전하는 일이 많다.
①. 어느 은혜 체험이 많다는 목사를 우리 교회 부흥회에 초청했다. 그는 정통성이 잇는 정규
신학 대학을 졸업하고 나와 군목으로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이였는데, 집회 도중에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말을 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어린 아이를 낙태시킨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지요. 아무리 태중의 아
이라고 하지만 이미 생명을 가진 아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낙태는 살인을, 그것도 자식을 죽인 것
입니다. 살인 죄를 속죄 받기 위해서는 속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내일은 이번 집회 기간 중에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살인 죄요, 낙태 시킨 것도 살인 죄니 살인 죄를 속
죄하기 위한 속죄 제물을 가져 오셔서 죄 용서를 받으세요. 내가 입신했을 때 지옥을 보니 사람
을 죽이고도 용서 받지 못해 영원히 사형 집행을 당하는 영혼들을 수 없이 보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도록 제가 여러분들에게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목양자료 > 2.설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심방설교 모음 (0) | 2013.05.06 |
---|---|
說 敎 學 (0) | 2013.04.12 |
심은 대로 거둔다”(갈 6:7) (0) | 2012.01.29 |
[스크랩] 2008년 5월 11일 영혼이 잘됨 같이 김진현목사님 (0) | 2012.01.28 |
[스크랩] 성도의 만능열쇠/신명기 28장 1절 - 2절 (0) | 2012.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