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28. 23:43ㆍ목양자료/2.설교자료
2008년 5월 11일 성령강림주일 티칭 김 진현목사님
영혼이 잘됨 같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2)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의 선배님들을 보면 모두가 다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어인이 조서에 찍혀 금령이 내려진 것을 알고도 집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단 6:10).
사도 바울은 9시, 12시, 3시 기도시간에 기도를 드렸으며, 주님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부르셔서 바울이 기도하는 중이라고 말씀하시며 기도하는 중에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되는 것을 환상을 통하여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라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행 9:9:11-12, 17).
또한 로마서를 보면 사도 바울은 항상 내 기도에 쉬지않고 너희를 말한다고 함으로 그에게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대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않고 너희를 말하며”(롬1:9).
사도요한 또한 기도의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은 기도하는 가운데(계1:10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천사의 방문을 받고 그 천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지시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요삼 1장 2절 말씀에도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 또한 항상 위하여 중보하며 기도하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중에 “나는 얼마나 부족한가?”하는 자책과 함께 “주님, 저도 기도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저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말씀을 읽는 중에, 때로는 심령 가운데 영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주셨고 제 마음 심비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낙망하지 말고 기도하라”(눅18:1-8)
“믿음으로 기도하라”(약5:15)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라”(빌 4:7)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마 7:7-8)
“내가 응답하리라”(시 91:15)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
제가 작년에 영적침체 가운데 기도원에 가서 금식을 하면서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를 3시간 간격으로 나누어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중보하며 산책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특별히 중보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많이 받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금식이 끝나는 날 아침에 기도를 마치고 아내가 오기까지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서 조금 무료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기다리던 중에 난생 처음 셀폰으로 인터넷을 접속하게 되었고 셀폰을 통하여 뉴스를 보는데 헤드라인 뉴스로 아프카니스탄에 한국인 23명(분당 샘물 교회)이 인질로 억류되어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자마자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가 느껴졌고 곧 이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중보하며 기도하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집으로 돌아 온 후에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케네스 해긴)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뛰어난 기도의 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쩐 분은 낙타무릎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기도하는 자세로 별세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소수의 특별한 분들만 쓰시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한 날이나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은 기도가 필요한 매우 긴급한 사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부족하고 연약한 데도 불구하고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최근에 예언적인 여정의 길을 걸어가면서 느끼고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저를 향한 사랑과 계획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저는 너무 연약하고 너무 미련하며 너무 준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련한데도 불구하고 약한데도 불구하고 부르시고 택하시고 능력과 은사를 부어주시며 준비시키셔서 쓰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진심으로 원하기만 하면 우리를 쓰실 준비를 다 해놓고 계십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미련함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하나님, 우리는 미련하고 부족하고 연약한데도 불구하고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길 원하시며 전심으로 가까이 나아오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진정 하나님은 미련하고 약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롭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고전1:27).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대양을 향해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고 출범하기 시작한 다니엘 휄로쉽 교회를 향하여 예언적인 말씀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과 다니엘 휄로쉽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하심을 날마다 지속적으로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려있다는 감동을 주십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보좌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라는 감동을 주십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들어갈 때까지 지속적으로 회개하며 갈망하며 기도할 때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예언에 대하여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예언을 소원하며 추구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4장 1절에 보시면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함으로 예언은 신령한 것들 중의 하나이며 특별히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3절에 보시면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라고 하여 예언하는 자의 역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언하는 자는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6절에 보시면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여 계시의 유익성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12절에 보시면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이들과 같이 멸시하고 공격하지 말고 예언이 개인의 덕 뿐만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기까지 하니 단순히 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기까지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도 예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주변에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제 주변에 함께 교제하고 사랑하며 존경하는 분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예언적인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이 얼마나 큰 지를 깨닫고 위로를 받고 소망 중에 인내하며 더욱 힘을 내어 기도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 예언적인 말씀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들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제가 들은 예언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예언을 사모하시기 때문에 사역을 하시게 되면 성도님들 중에서 예언사역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치유, 축사 등 갖가지 은사들이 활성화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에 대해서 더욱 사모하며 배우고 연습하는 중에 있습니다. 며칠 전 예언 을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두 분의 파트너와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분은 의사 선생님이셨고, 두 번째 분은 교사 선생님이셨는데요, 첫 번째 분과 연습할 때 “하나님 이 분에 대해서 한 말씀드릴 수 있게 감동해 주옵소서.” 기도 드린 후에 잠시 기다리는데 아무런 감동도 그림도 영상도 음성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에 대해 듣기만 하고 염치없게 “죄송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연세가 드신 집사님과 연습을 하면서 “하나님 이 집사님에 대해서는 꼭 한 말씀드릴 수 있게 감동해 주옵소서.” 기도드린 후에 기다리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런 감동도 그림도 영상도 음성도 없었습니다. 집사님께서 받으신 감동을 따라 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 제가 말씀드릴 차롄데, 제가 받은 감동이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다른 때처럼 죄송합니다. 제가 초보자라서 특별히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려는데, 이 집사님께서 너무 진지하게 들으시려는 자세(눈도 감으시고 경청하여 들으시려는)를 하셔서 그 순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아무 말이라도 한마디 해야지 하지 않으면 너무 실망하시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때 마침 제가 미국에서 난생 처음 들었던 예언적인 말씀이 기억이 났고(“너무 근심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전적으로 맡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또 며칠 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올라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사님을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하심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시겠다는 그런 감동을 주십니다. 축복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아무런 받은 감동도 환상도 음성도 없이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요? 그래서는 안되는 거죠? 그런데 그날 그렇게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오 주님 용서하옵소서.
“빛은 어둠 속에 있다” 패트리샤 킹(Light belongs in the Darkness)
내가 처음 예언할 때에는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말을 기본적으로 했었습니다. 그 말은 상당히 단순하지만 가장 탁월한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영원한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입니다.... 나는 기대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다린 후 그분이 말씀하신다고 느끼는 것을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나의 예언적인 수준은 너무 단순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나는 신실하게 걸어 나갔고 신선한 말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결국 나는 예언의 유창함과 권위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작은 신실함이라도 가지고 나간다면 하나님은 이것을 증가시킬 것입니다 .....나는 예언전도 훈련시 예언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영원한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God loves you forever.)라고 말하도록 격려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진리입니다. 그 어떠한 예언보다 이 단순한 5개의 어절로 구성된 문장이 거리의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합니다. 이 말의 능력은 정말로 놀랍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암5:14)
날마다 기도하실 때마다 또 이렇게 모이실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을 믿음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으며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며칠 전에 말씀 전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컴퓨터에 앉아 타이핑을 하며 준비한 부분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의 범사가 잘되기를 바랐습니다. 생업이 잘되기를 바랐고 가정이 평안하기를 바랐고 모든 범사의 일이 잘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육신적으로 건강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라고 서신을 써서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범사가 잘되고 육신적으로 강건해지는 것도 영혼이 잘되는 것보다 먼저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에 ‘네 영혼이 잘됨같이’ 라는 전제를 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은 잘되고 있습니까?”
그런데 제 옆에서 누가 “아니요” 하고는 후다닥 도망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하고 쳐다보았더니 제 막내아들 이삭(Isaac)이가 제 방에 몰래 들어 왔다가 ‘아니요’ 하고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잡아서 기도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잡으려고 나가려다 문득 제 심령에 “너의 영혼은 어떤가” “너의 영혼은 잘되고 있는가?”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은 잘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최근 어느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이 말씀을 따라하라고 하셨습니다. “잘되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정말 잘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정말 잘되고 있는가? 대부분의 한국교회의 영적상태는 어떠한가? 라는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몇몇 교회들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침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육적인 병을 고치는 병원들은 많아지고 더욱 커지고 새로워져 보였고 또 골목골목마다 대나무를 꽂은 점집들, 우후죽순 늘어난 절들과 관련 상점들 또한 많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도로도 더 넓어지고 좋아진 것 같은데 유독 교회만 옛날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성장도 변화도 없이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 세 달간 주변의 교회들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최근 까지 주변의 몇몇 교회들을 방문하며 예배들 드렸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교회에서 저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텐데 그 바람을 타야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욱 많이 기도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앞으로 많은 비난과 공격이 있을 텐데 그것들을 이길 각오를 굳게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는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며칠 후에 예배드리는 중에 몇 가지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첫번째 환상은 많은 청중들이 모여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마치 휴스턴에 있는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레익우드(Lakewood) 교회와 같이 회중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강력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임하는 영상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며 기도하며 나갔을 때 저와 유사한 환상을 본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환상은 마지막 대추수와 대부흥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시키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한국에 이런 교회들이 많아지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강력한 영광의 빛이 임하는 교회, 마지막 대추수와 대부흥을 위해 준비하여 쓰임받는 교회, 이런 교회들이 많아지도록 더욱 기도해야 겠다는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환상은 어느 한 교회에서 예배 중에 두 팔을 벌리시고 계신 인자하신 예수님의 인자하신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치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 코르코바도산(corcovado Mt.704m) 정상에 있는 그리스도상과 같은 모습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예수님 얼굴이 그 교회 목사님 얼굴로 겹치는 영상이었습니다. 순간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교회 목사님께서 은퇴를 앞두고 계신 상황인데 아들을 후임으로 세우려고 무리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한국의 큰 교회 목사님 들 중에 이 일에 자유로운 분들이 많지 않은 상황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신데, 사탄은 끊임없이 사람이 주인이 되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탄의 유혹에 빠져 함부로 교회의 주인이 되며 그것을 즐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인이 되며 사람이 영광을 받는 교회는 모래 위에 세운 교회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 모래 위에 세운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운 교회로 바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환상들을 통하여 이 땅의 교회들이 그 부르심과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함으로 인해 이 땅에 너무 많은 어두움이 실제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어두움이 임하는 곳에 진리의 빛이 임하기를 위하여, 이런 어두움이 임하는 사람에게 치유의 빛이 임하기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라는 감동을 강력하게 주셨습니다.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난외 주)는 말씀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는 말씀을 깊이 인식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토저(A.W.Tozer) 목사님은 “만일 성령이 오늘날의 교회에서 떠나신다 해도 우리가 지금하고 있는 일들의 95퍼센트는 계속 진행될 것이며, 아무도 전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초대교회를 떠났었더라면 그들이 하던 일의 95퍼센트는 중단되었을 것이며 모든 사람이 그 차이를 알았을 것입니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래리 리(Larry Lea) 목사님은 ‘최상에로의 부르심(Highest calling)’ 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미국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흘러넘치는 성령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흐름이 새롭게 물결치는 대신에 명예나 행사들, 전통들이 판치는 것은 영적인 건강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한국교회의 영적상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총신대학 부설 한국교회 연구소에서 펴낸 “한국교회의 현실과 전망”에서 한국교회가 경계해야 할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먼저 교회관에 있어서 경계해야 할 일이 있는데, 교회가 세속적인 풍조의 영향을 받음으로 교회 본연의 모습을 점차 상실하고 있으며, 물량주의, 형식주의 영향으로 외적규모에 치중하고, 내적성장을 소홀히 하고 있으며, 인간존중보다는 경제성과 효율성에 입각 기업적, 상업적 운영을 추구함으로 실리주의(보이는 성과만을 추구함)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교회 중심의 집단 이기주의 성향을 보이며 무질서와 갈등에 휩싸여 있으며, 이단세력의 미혹에 효과적인 보호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사회의 변화와 요구사항 그리고 문제점들에 대한 대처 능력이 부족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신앙관에 있어서도 세속적이며 현세적인 면이 많으며, 혼합신앙의 성격(자유주의, 급진주의, 동교다원주의)과 적극적 사고와 가능성의 사고방식에 의한 인본주의가 압도하고 있으며 무속신앙 영향으로 비성서적 귀신론에 입각한 축사행위와 비성경적 변태적 성향을 보이고 이중적인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타 열광적 자극적 감정적, 암시요법에 의한 치유, 비성서적인 신비주의, 왜곡된 종말론, 비윤리적 성향, 한국 민족성의 병폐(거짓말, 공사구분 없음, 허영심, 겉모양에 더 신경) 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회관에 있어서도 세상에 대한 양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이나 예수님과 같은 자세로 정당한 사회문제에 대한 시민운동에 협력 참여 (환경보호운동, 동성애 반대 캠페인...) 성서적인 참여를 통하여 민족의 선도자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폐쇄적인 극보수주적인 태도와 친정부적이며 권력지향적인 태도와 적극적인 참여(정치신학, 민중신학, 해방신학)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선교관에 있어서도 양극단이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 본받아 복음 전도와 봉사를 동시적으로 병행하지 않고 한쪽은 복음전도만을 추구하는 가하면, 다른 쪽은 하나님의 선교(사회인권문제, 인간화)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선교를 교회의 자기 과시로 이용하기 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상을 앞서 인도하는 예언자와 안내자의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은 교회가 시대의 변화와 위기적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여 그 사명과 부르심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변승우 목사님이 쓰신 “주여~”라는 책을 통해 한국교회의 실상을 더욱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구원받는 사람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적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과거의 역사, 성경말씀 그리고 간증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간증 부분에 보면 박용규 목사, 비오 신부, 토마스 주남 여사, 릭 조이너, 하워드 피트만, 밥 존스, 김옥경 권사 순으로 간증을 싣고 있는데,
박용규 목사님은 “목사님! 눈물을 거두세요” 라는 책에서 꿈에 본 천국과 지옥 간증에서 천사를 통하여 “역사 이래 저주받은 영혼들이 지옥에서 상상하지 못하는 고통의 생활을 하는데 그 숫자는 천국에서 구원받은 영혼에 비하면 천배나 된다…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지 않았느냐? 앞으로 역사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1000:1이 더 넘을 것이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비오 신부님은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이 겨울날 눈송이 흩어지듯…강물처럼 많다”고 하였습니다. 토마스 주남 여사는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책에서 “계속 의도적으로 죄를 지은 크리스천들 가운데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심판 후에 불 못으로 들어가게 된다….단지 20%의 교회들만이 나를 최우선으로 놓고 있다. 나머지 교회들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재정수입을 늘리는 일에만 마음을 쓰고 있다. 많은 목사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게 되고 그들의 성도들이 뒤따르게 되리라”는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들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요즘 선지자로서 가장 성공적인 사역을 하고 있는 릭 조이너는 “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이란 책에서 현대 교회의 영적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군대 환상을 통해 현 상태로는 절대로 구원받을 사람이 많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본 군대 환상은 첫번째 군대와 두번째 군대 그리고 세번째 군대에 대한 것이었는데,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첫번째 군대는 그 수가 가장 적었으나 진정으로 헌신된 군대였으며 그 다음 군대는 어느 정도 헌신된 군대 그리고 세번째 군대는 첫번째 군대와 두번째 군대를 합한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았는데, 지리멸렬한 어중이 떠중이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주님께서 말씀 하시길 “지금으로선 나의 모든 군대가 세번째 그룹의 상태에 있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워드 피터만은 “지금 세상 사람 중 97.5%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시대를 그대로 대변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인들은 입으로만 믿는 자들이며 마음으로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고 간증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2000명 중의 50명! 2.5%! 이것이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충격적으로 적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김 옥경 권사님은 한국교회의 영적실상에 대하여 이 책(p.272-273)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한국 교회의 영적실상을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말씀이 바르게 가르쳐지지 않아 성도들이 회개하지 않고, 참된 믿음이 없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성도가 적으며 수많은 성도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사고 있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많은 목사님들이 양들을 좁은 길로 인도하지 않고 자신의 안전과 보장을 위해 넓은 길로 가게 하여 멸망케 하고 있으며, 양들에게 신령한 꼴을 먹이는 데는 관심 없고 오직 교회 성장, 즉 교인 수가 늘어나고 교회를 확장하여 부요케 되는 일에 마음이 빼앗겨 있는 것을 너무도 아파하셨습니다. 참된 목자가 적고 삯 군 목자들 때문에 수많은 양들이 늑대와 이리에게 약탈당하여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울부짖으며 통곡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부어지기 시작하면서 저희에게 아버지의 심장이 이식되어 우리의 지하 처소는 통곡의 방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너무도 단호하고 엄한 음성으로 주님을 입술로만 사랑하고 마음은 멀고, 교만하고 완악하여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며 멸시하는 이 땅의 성도들의 그릇된 태도와 잘못된 모습들(특별히 회개를 원치 않고 세상을 사랑하며 음란과 방탕으로 무절제하며 성령을 멸시하는 오만함)을 지적하시며 참된 회개를 촉구하시는 시간이 매일 반복되고 반복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회개를 외치지 않고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들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거룩으로 이끌지 않고 무엇보다도 주님께로 인도하지 않아 발생된 것임을 알게 하시어서 저희는 두렵고 무섭고 놀라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당연히 많은 크리스천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참된 믿음을 소요하고 있으며, 날마다 죄와 싸우며 거룩을 추구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신부들로서 천국에 갈 거라고 믿었기에 처음에는 너무도 놀라서 이 계시들을 무시하려고 애썼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교만하고 오만하여서 이런 음성을 듣는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나중에야 위 내용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은 “생사를 건 교회개혁”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병, 그것도 아주 큰 중병이 들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목사와 장로의 순수한 헌신으로 성장한 교회인데 이제는 그들의 부패 때문에 심판받을 교회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목사 장로들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하나님의 엄중하신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독재자들은 삼권만 장악하지만 교회의 독재자들은 삼권보다 더 무서운 영권까지 장악하여 갖은 공갈 협박에 무당과 같은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국교회는 개혁되어야만 합니다. 특히 한국장로교회는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해 생명을 걸어 볼려고 합니다. 오랜 망설임과 주저 끝에 결국 이 일에 손을 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제 나름대로는 교회 개혁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인간적인 야망과 욕심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의식과 제도, 그리고 직위를 보수하려고 하지 말고 과감하게 낡은 의식과 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욕심을 위해 만든 자리들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교회를 교회답게 지키며 형식(가죽부대)이 나니라 진리(새 포도주)를 보수하는데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생사를 걸려고 합니다. 더 이상 미루다간 한국교회는 공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여러분들의 많은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교회의 영적상태는 교만이 극에 달한 상태라는 것을 심령으로 깨달게 됩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함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2:4)
구본우 목사님은 “내 손을 높이 들리이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요즈음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 때 놀라운 성장과 새벽을 깨우는 기도로 소문났던 한국교회였지만 지금은 성장을 멈추었으며 내적으로도 거룩함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를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도 미약하여 일반인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늘의 한국교회는 영적각성과 명예회복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영적각성은 새로운 기도운동, 다시 말해서 기도를 새롭게 함으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인격과 삶의 수준은 기도의 내용, 곧 무엇을 구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지금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무엇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면 무어라 말씀하실 까요?... ”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요엘 2:12-13)
여러분 5월 11일 해운대 백사장 영적 각성 집회 주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여, 살려 주옵소서.” 집회 제목이 정말 리얼한 것 같습니다.
오늘 참석하지는 못하였지만 동일한 심정으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고, 이대로 가다가는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계속하여 미루다가는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임박한 심판 의식을 지니고 간절히 부르짖으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주여~용서하여 주옵소서. 주여~살려주옵소서. 주여~영적인 잠에서 깨워 주옵소서. 주여~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다음은 어느 한 중보기도단체의 회개기도문 내용 중에 일부입니다.
“1907년 하나님께서 평양에 성령불로 임하셔서 대한민국에 부흥을 주셨지만 한국교회는 1938년 9월 10일 다수를 점하는 대표성을 지닌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하여 한나라의 교회 전체가 우상숭배를 하는 민족적 죄를 지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주님 앞에 겸비하여 우리의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한국교회가 한국교회의 원죄인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하고 열방을 위한 거룩한 제사장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대한 민국에 부흥을 주시고자 하는 마음을 알고 먼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 가겠습니다 ……2008년은 한국교회가 신사참배의 죄를 지은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주님의 정한 때가 되어 주님께서 대한민국백성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길 간구합니다. 2008년도가 신사참배의 죄를 한국교회가 집단적으로 회개하는 원년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강력한 회개의 영을 부으소서. 거룩한 애통함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주여~ 대한 민국 곳곳마다 강력한 회개의 영을 부어주소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먼저 우리들 자신부터 회개함으로 용서함 받고 살림받고 변화받고 새로워져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쓰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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