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를 다시생각한다

2011. 9. 12. 21:46신학자료/2.신학자료2(인물중심)

히틀러가 제국의 부활을 꿈꾸던 독일 국민의 마음을 유혹해 유럽에서 유대인을 모두 쓸어버리려고 모략을 꾸밀 때, 독일 안에서부터 나치를 무너뜨리려고 은밀히 움직이는 소수의 독일인이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디트리히 본회퍼도 그중 하나다. 믿음으로 죽음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은 그는 히틀러 암살 공모에 가담했다가 1945년에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처형되었다. "악에 맞서지 않는 것은 악에 동의하는 것이며 악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나서던 그는 결국 자기가 믿는 대로 살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


성경에 기반을 둔 확고한 신학을 가진 신학자로서, 목양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 목사로서, 남들보다 몇 걸음 앞서 미래를 내다보는 선지자로서, 유대인들을 구하는 싸움에 뛰어든 정보국 스파이로서 그가 살았던 다채로운 삶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붙들린 결과였다. 그는 반나치 활동을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의무'라 여겼고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 고통 받는 것을 특권이자 영광이라 여긴 인물이다.

이러한 본회퍼의 신앙과 삶의 족적은 한결같이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본회퍼의 신학은 서로 다른 많은 이들에게 여러 가지 오해를 받아 온 게 사실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본회퍼가 남긴 신학적 유산을 재조명하고 암울했던 독일의 역사와 갈등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인간적인 몸부림을 유려한 필치로 엮어 낸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을 능가하는 서사적 전개

한국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이 책의 저자 에릭 메택시스는 예일대학교 재학 시절에 일찌감치 필력을 인정받은 인물로 몇 해 전에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윌리엄 윌버포스의 일대기로 대중성을 인정받았으며, 2010년에 미국에서 출간한 이 책을 통해 사실성과 깊이, 서사적 전개가 돋보이는 전기 작가로서 독보적인 자리를 확보했다는 평을 받는 걸출한 인물이다.

저자는 자신의 문학적 소질을 십분 발휘해 디트리히의 부모인 카를과 파울라의 만남부터 1945년 4월 9일 디트리히가 처형되고 몇 개월 후에 열린 추모 예배까지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연대기별로 치밀하게 추적하되 소설적 기법을 차용함으로써 놀라운 독자 흡입력을 보여 준다.

저자는 디트리히의 예리한 지성과 고매한 성품, 확고한 의지를 형성해 준 가정환경, 인생의 일대 전기가 되었던 뉴욕 아비시니안 침례교회와의 만남, 하나님께 붙들려 미국이라는 안전한 피난처를 버리고 독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신학적 토양, 발키리 음모와 작전 7의 전말, 생의 끝자락에서 나눴던 약혼녀 마리아와의 로맨스까지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수많은 편지와 일기, 다양한 주변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본회퍼의 삶과 신학을 풍성한 이야기로 되살려 냈다.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방대한 자료와 증언들은 서사적 전개에 치밀한 사실성을 더한다. "그동안 본회퍼의 전기를 여러 권 읽었지만, 이 책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 주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는 독자들의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독일의 역사와 문화로 본회퍼를 읽다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은 본회퍼가 살았던 당시 독일의 비극적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본회퍼의 영적 성장과 목회 투신, 히틀러 암살 공모와 순교로 이어지는 일련의 삶을 유럽과 독일의 역사라는 거시적 맥락에서 생동감 있게 그려 낸다.

한 인물을 그가 살았던 시대와 분리해서 다루다 보면 핵심을 놓치기 십상이다. 시대의 격랑 속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던진 본회퍼의 경우에는 특히나 그렇다. 당시 독일의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는 본회퍼의 삶이나 사상, 신학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없다.

이에 저자는 1,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20세기 독일의 복잡하고 비극적인 역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덕분에 독자들은 히틀러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독일의 독특한 문화와 독일인 특유의 기질, 마르틴 루터가 독일에 남긴 종교적 유산과 그로 말미암은 뜻밖의 혼란, 시대의 격랑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기독교회와 그들을 이용하는 히틀러의 정치적 모략, 제국교회와 고백교회의 갈등과 충돌, 군 장성들이 반나치 활동에 뛰어드는 과정을 보다 사실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그간 '비종교적 기독교'라는 단편적인 용어로 많은 오해를 받아 온 본회퍼의 사상과 신학을 역사적 맥락 안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얻게 된다. 본회퍼의 생애를 다룬 기존의 많은 전기들 속에서도 이 책이 유독 빛을 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본회퍼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한 시대를 올곧게 살아온 인물의 인생에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힘이 있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교인이 이권을 놓고 다투는 이야기가 연일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가 하면, 고매한 목회자들은 현실 세계를 뒤로 하고 신학적 견해와 교리 속으로만 파고드는 오늘날 한국교회에 본회퍼의 서른아홉 생애는 말 그대로 흙탕물을 정화하는 정화제이자 잠들어 있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각성시키는 각성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본회퍼의 발자취를 더듬다 보면 왜 그가 신자와 회의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을 질책하고 각성시키는 위치에 서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삶으로 말하는 인물을 찾기 힘든 이 시대에 본회퍼는 진정 자신의 삶으로 자신이 믿는 바를 웅변하는 인물이다.

"참으로 복음적인 설교는 아이에게 잘 익은 사과를 주거나 목마른 사람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을 주면서 '네가 원하는 게 이거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 했던 그는 정말로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절멸의 위기에 처한 유대인을 구하는 일에 자신의 삶을 던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호하지 말고 증명해 보이라고 말한 그대로 온 삶으로 그분의 말씀을 증명하면서 서른아홉 짧은 생을 불살랐다.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 악에 맞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악에 동의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악에 맞서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악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은 암울하고 암담한 교회와 세상을 바라보며 여전히 안락한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고 그저 한탄만 하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본회퍼가 하는 경고의 말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본회퍼를 다시 읽어야 할 이유다.

나는 본헤퍼의 신학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행동하는 양심에는 기꺼운 마음으로 동의할 수 있다고 본다.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악을 묵과 하거나 악에 동의 하는 것과 같은 부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