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지 탐방...독일

2010. 4. 21. 14:35운영자자료/종교개혁지 순례

 



9/11(월)
스위스의 인터라켄에서 대학의 도시 바젤로 이동했습니다. 바젤 대학을 방문하고 특히 위대한 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됐었고, 그의 자택은 유명한 명소가 되었는데, 겉모습에 치중하지 않는 스위스 사람들의 사고관을 볼 수 있는 것은 바르트의 집이라는 표식도 없고, 단지 작은 주소 명패를 보면서 인기나 명성, 권력에 치우치지 않는 서민적인 마인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바젤에서의 잔잔한 감동을 뒤로 하고, 독일에 있는 고성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로 가던 중에 바쁜 일정 속에 휴게소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모든 일행들이 점심을 때우고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습니다. 고성과 중세 대학이 있는 이 하이델베르크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예수회 교회도 있고,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도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를 끼도 도는 네카강을 보면서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 이제까지 밀렸던 기행을 올리며 3시간 동안 작업을 하니 벌써 여기는 밤 11시고, 한국은 새벽 6시가 됐네요. 저도 오늘은 여기까지 일하고 좀 쉬어야겠습니다.
내일은 보름스와 아이제나흐, 에르푸르트로 이동하면서 마틴 루터에 대해서 좀더 깊은 공부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오늘 올릴 사진은 스위스의 인문학을 이끌었던 바젤 대학에서 찍은 사진과 하이델베르크의 고성에서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그리고 교회앨범 코너에는 하이텔베르크 전경과 하이델베르크에서 바라본 고성의 모습을 올립니다.
자! 오늘도 우리 은제교회 교우들을 평안함을 기도합니다.

 

 



9/12(화)
안녕하세요. 은제가족 여러분! 박지영 사모입니다.
오늘은 목사님이 너무 피곤해하셔서 제가 대신 기행문을 적습니다. 이의 없으시죠.*^^* 제가 쓴다고 아쉬워하지 마세요.

오늘 방문지역은 루터가 종교개혁운동을 본격적으로 했던 보름스, 아이젠나흐, 에르푸르트 지역을 방문했답니다. 매일같이 6시 기상, 각방에서 기도회, 7시 식사, 8시 출발하는 빠듯한 일정 속에서 몸은 피곤하지만 많은 도전과 열정을 느끼게 됩니다.
우선, 보름스 지역은 루터가 박해를 피해 피신했던 곳으로 루터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루터에게는 아주 든든한 평신도 후원자가 있었는데 그 당시 선후제였던 프리드릭 경입니다. 프리드릭은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종교개혁 운동 속에서 쟌후스가 아무런 재판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 자기 영토 내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로 생겨서는 안되겠다고 하는 도덕적인 이유에서 루터를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를 도와주면 줄수록 루터의 신앙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평생의 동지이자 든든한 후원자가 됩니다. 그래서 카톨릭으로부터 루터가 박해를 받게되자 그를 납치하는 형식으로 이 곳 보름스 지역에 루터를 피신시켜 그의 종교개혁 운동을 계속 지속시키게 됩니다. 역시 위대한 목회자 뒤에는 위대한 평신도가 있어야 되나 봅니다. 저희 은제교회 성도 여러분이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셔서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500년된 루터나무와 루터가 작사한 찬송가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의 가사가 쓰여져 있는 루터 기념교회를 보았습니다. 사탄은 찬송을 싫어하므로 그는 누구와 있든지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독일 내에 있는 루터 기념교회는 모두 이 가사"내 주는 강한 성이요"가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우투반을 차로 4시간 이동해서 과거 동독지역이었던 아이젠나흐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은 루터가 보름스 지역을 나와서 비텐베르크에서 본격적인 종교개혁운동을 하기 전에 머물렀던 곳으로 라틴어로 쓰여졌던 성경을 독일어 성경으로 번역한 유명한 장소입니다. 루터가 머물렀던 곳은 산꼭대기에 있는 성으로 수백 계단이 되는 그 곳을 걸어 올라가느라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유사시에는 산과 성을 이어주는 다리가 올라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훌륭한 요새였습니다. 이 곳에서 루터는 성경을 번역하면서 하도 심심해서 긴 복도를 따라 병을 세우고 공을 굴리는 운동을 했는데 이것이 볼링의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루터가 머물렀던 방은 아주 조그만한 방인데, 그의 일기장을 보면, 너무나 인간적이고 나약한 루터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종교개혁운동을 하면서 순간 순간 두려워하고, 무서워 하고, 떨리면서도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라는 확신을 가지고 한 발짝식 나아간 루터의 모습이 흡사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루터는 우리처럼 나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의 것을 선택함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이루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루터가 성경을 번역했던 루터 방에 있는 책상 옆에는 철동상으로된 사탄의 모습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루터는 인생을 사탄과의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루터는 성경을 번역하다가 조금 힘들고 나약해지면 쓰고있는 잉크병을 사탄에게 집어 던져서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외치면서 믿음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차로 1시간 30분을 이동해서 에르푸르트 지역을 방문하여 루터가 신부서품을 받았던 "성 어거스틴 수도원" "에르푸르트 대학" "에르푸르트 대성당과 감리교회"를 방문하고 저녁을 먹고 호텔에 오니 오늘도 10시였습니다.
유럽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느낀 것이지만,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있고, 삶의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럽 교회가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약해져 있지만 분명 이들의 역사와 삶 속에 흐르는 기독교의 정신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내일 하루 마지막 루터의 관한 탐방을 끝내면 이번 유럽 종교개혁지 순례는 마치게 됩니다. 너무나 중요한 기독교의 역사를 이렇게 탐방할 수 있도록 시간과 건강을 하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뒤에서 기도와 격려로 후원해주신 은제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일의 마지막 기행문을 기대해 주시고, 오늘은 루터가 1521년 신성로마제국과 황제 앞에 루터가 종교재판을 받았던 곳을 기념하는 조각과 루터가 아이젠나흐에서 피신하면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며 앉았던 그의 방과 책상의 사진을 올립니다. 교회앨범에는 루터나무와 어거스틴 수도원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9/13(목)
어제는 제 아내가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원기회복.. 제가 글을 씁니다. 이제 유럽 종교개혁 순례의 여정이 끝나 갑니다. 아마도 이 기행문의 마지막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국의 웨슬리, 스위스에서의 칼빈, 그리고 독일에서의 루터와 그와 함께 했던 종교개혁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시대의 선지자요, 하나님이 세우신 종으로써 새로운 소명감과 비젼을 가지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랑하는 은제 교우들에게 또한 감사드립니다.

어제는 루터의 청년기를 에르푸르트에서 찾아보았고, 오늘은 에르푸르트에서 아이슬레벤으로 버스로 2시간 이동했습니다. 그 곳에서 루터의 생가와 사망한 집, 유아세례 받았던 안드레아 교회 등을 방문하고, 다시 2시간 이동하여 비텐베르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도시 자체가 루터의 도시입니다. 루터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곳이며, 부패한 카톨릭에 대항하여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였던 비텐버그 성 교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수요예배를 저녁 시간에서 앞당겨 비텐버그 성 교회의 양해를 구하고 이 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마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시간 동안 루터와 수 많은 종교개혁자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온 몸과 맘에 전율과 감동이 넘쳐 흘렀습니다. 교회 안에 안치되어 있는 루터의 무덤과 그의 그림자와 같이 도와 동역했던 멜랑히톤의 무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호텔에 짐을 풀고는 다시 루터 박물관을 찾아 갔습니다. 개관한 지 2년 밖에 안된 박물관인데 정말 잘 전시해 놓았고, 루터의 모든 것에 다시 한번 복습할 수 있었습니다. 관람 후 이탈리아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의 세미나실에 전 일행이 모여 이번 순례에 대한 강평회를 했습니다.
모두들 이 의미있는 순례가 그 어떤 여행보다 뜻 깊었으며 목회와 사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결같이 고백하는 것을 보면서 이 감동과 공부가 나만의 것이 아니었구나 하면서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루터를 쓰시기 위해 주변의 수많은 일군들을 세우시고 그들과 함께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루터만이 아니라 칼빈에게는 파렐, 베제, 녹스를, 웨슬리에게는 그의 형제와 모라비안 교도들, 그리고 그를 도왔던 많은 일군을 보면서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사람을 통해서 하시지만, 어떤 한사람을 세우시고 그와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그러기에 두려워 할 것도, 도망갈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솔라 피데)"를 외쳤던 개혁자들의 신앙을 본받아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그리고 담대하게 목회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 짐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이번 순례를 통한 결단의 한 부분입니다. 많은 부분에 있어 목회의 변화와 방향에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생각하고 살아왔던 제 삶을 다시 돌아보면서 더 큰 안목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는 목회를 해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됩니다.
짐을 정리하고 자려고 하니 벌써 이 곳 비텐베르크는 밤 12시가 훌쩍 넘어 갔네요. 서울은 지금 오전 7시일텐데....  참 매번 부족하지만 기행문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신 반영제, 이귀숙, 박연옥, 이상태, 공명자, 이효숙, 이배옥, 이경미.... 그리고 묵묵히 반가움으로 글을 읽어 주신 은제 가족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은 주일예배 설교를 홈페이지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설교를 해주신 장성배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하여튼 집 떠나니까 모든게 다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합니다. 은제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한번 21세기의 시대를 이끌어 갈 개혁정신으로 흔들리는 교회와 교권을 다시 세우고, 하나님의 복음의 깃발을 높이 들고 힘차게 나아가 봅시다.
오늘 올린 사진은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였던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모습과 그 안에서 수요예배드리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