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탄생 당시의 통치자들의 상황

2008. 5. 4. 20:42목양자료/1.기독교자료

예수님 탄생 당시의 통치자들의 상황

 

 

  1. 신약에 등장하는 1세기 통치자들

 

1)      황제

 

시이저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안) BC 27-AD14

 

가이사 아구스도(2:1): 예수님 탄생 때의 로마 황제로서 호적조사를 실시하여 요셉과 마리아가 이로 인해 베들레헴으로 내려갔다. 황제 숭배의 의식을 처음으로 시행했으며 이에 항거하다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부터 박해를 당했다.

 

티베리우스: AC 14-AD 37

 

디베료 (3:1): 이 로마 황제의 통치 기간 중에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클라우디우스: AD 41- AD 54

 

글라우디오(18:2): 이 황제는 로마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다. 이 당시에 추방당한 사람 중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포함되었다.

 

네로: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할 당시의 황제AD 54-AD 68

 

네로(25:10, 28:19): 네로 황제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로마의 대박해가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이 당시에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하였다.

 

티투스(디도): 예루살렘 성을 포위 공격한  끝에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과 그 성전을 함락시켰던 인물이며 유대 열심당원들의 반란을 진압한 인물

 

도미티아누스(AD81-AD91): 그는 재임기간 중에 자신을 주와 하나님으로 부를 것을 강요하며 교회에 대한 대박해를 실시했다. 아마도 그의 박해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배경 역할을 했을 것이다.

 

2)      행정관리

 

본디오 빌라도: 26-36,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3:1,23:1)

안토니우스 펠렉스(벨릭스): 52-59년 바울이 그 앞에서 심문당함(23:26-24:27)

폴키우스 페스투스(베스도): 59-61 (24:27)

 

3)      , 분봉왕, 영주

 

헤롯대왕: BC 37-AD 4(1세대) 팔레스틴 전체의 왕을 역임(2:1-19,1:5)

아켈라오: BC4-AD6(2세대)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의 영주 역임(2:22)

헤롯빌립: BC4-AD34(2세대) 이두래, 드라고닛, 고올라니 등의 분봉왕(3;1)

헤롯안티파스: BC4-AD39(2세대) 갈릴리의 베레아의 분봉왕 역임

                  (6:14-29,3:1, 13:31-35,23:7-12)

헤롯아그립바 1: 37-44(3세대) 팔레스틴 전체 왕을 역임

헤롯아그립바 2: 48-70 (4세대) 칼키스와 북쪽 영토의 분봉왕 역임(25:13-26:32)

 

 

  1.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네 명의 군주

 

유다는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황제의 막강한 세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예수님이 탄생할 당시에는 로마의 초대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옥타비안)이다. 로마의 평화의 기초를 놓은 아구스도의 전성기였고 그는 자신이 고안한 황제를 머리로 하는 원수정치 구조를 통하여 팍스 로마나(F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가 그리스도의 강림과 때를 같이하여 수립된 것이다.

 

로마의 평화는 그 평화의 영향력이 미치던 지역에서 이념이나 종교의 전파에 이바지하였고 그 평화와 함께 도로의 건설, 상업과 무역의 성장이 병행되었다. 아구스도가 이룩한 내적 평화의 지속과 외적 질서의 유지로 인하여 모든 지중해 연안들이 이처럼 하나의 통치 아래 놓여 번영과 평화를 누리던 때였다.

 

그러나 로마가 번영을 누리면 누릴수록 그에 비해 로마의 내부는 더욱더 정치구조화 되어갔으며 정복당한 속주들에게 평화와는 거리가 먼, 더 많은 과세와 억압의 신음소리들이 점점 높아만 갔다.

 

이처럼 위장된 평화 아래서 공포정치의 극을 이루었던 헤롯대왕 때에 주님은 오셨다.

헤롯대왕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연도에 사망했다(BC4 년 경으로 추측함).

 

그래서 유다지역을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다스리게 되었다. 악명 높은 아켈라오를 피하기 위해 애굽에서 피난살이를 했던 예수님의 부모는 유다의 베들레헴에 머물기를 포기하고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로 갔다.

 

여기서 예수님은 역시 헤롯의 작은 아들 안티파스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처럼 예수님은 탄생하시면서부터 헤롯과 아켈라오 및 안티파스 등 헤롯 일가의 세 군주들과 만난다.

 

***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다 ***

 

그는 에돔(이두매) 사람으로 에서의 후예이며, 안티파테스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 되도록 충분한 기반을 닦았다. 헤롯왕조의 시조로 불리는 안티파테스는 유대의 마지막 왕조인 마카비(하스몬) 왕가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단순히 이두매 족속으로 유다왕조를 무너뜨렸다고 하면 논란의 이유가 없겠지만 안티파테스가 혈통으로는 이두매족이라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그의 국적은 엄연한 유대인이라는 데 있다. 이두매는 마카비 왕조의 정복정책에 의해 유대에 합병되었던 것이다.

 

안티파테스는 마카비 왕조에 중신으로 기용되어 있으면서 권력싸움을 이용하여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왕으로 추대하는데 성공한다. 헤롯은 주전 55년 부터 주후 93년 경까지 팔레스티나와 그 인접국가를 통치한 왕조의 이름으로 헤롯대왕은 헤롯왕가의 창시자이다.

 

25세 때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갈릴리의 지사를 거쳐 BC 40년에 로마황제 아구스도에 의해 유대왕으로 임명되었다. 이두매, 사마리아, 갈릴리 지방을 쳐서 BC37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대왕으로 군림하였다.

 

성격이 강인하고 또 현명한 재질을 가졌으나 매우 잔인한 행위도 일삼았다. 많은 공공사업과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도 착수했다. 10명의 아내와 많은 자녀가 있고 그 자녀들의 권력싸움 또한 대단했다.

 

그는 결국 악질에 걸려 죽었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불안을 느껴 베들레헴의 유아들을 살해한 장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