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김대두

2008. 3. 23. 18:22참고자료/4,예화자료

김대두(당시 26세)는 너무나 잔학한 연쇄살인범으로서 지금도 그는 살인마의 전형으로 국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1975년 8월 12일 전남 광산군(현 광주 광산구)의 한 외딴집에서 주인 안모 씨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10월 8일 검거될 때까지 55일 동안 서울, 경기, 전남 등을 오가며 9차례에 걸쳐 17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혔고 3명을 강간했습니다. 전남 무안에서는 일가족을 살해했고, 서울에서는 칠순 할머니와 어린아이까지 죽였습니다.  

 

1975년 10월 8일. 서울 청량리경찰서에 동대문구 전농동의 세탁소 주인이 보낸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한 청년이 피 묻은 청바지를 맡기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세탁소 앞에 잠복해 있던 경찰은 청바지를 찾으러 온 청년을 붙잡았습니다. 160cm도 안 되는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의 그 청년은 경찰 조사에서 뜻밖의 사실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교도소에 있다가 사회에 나오니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배운 기술도 없을 뿐 아니라 장사할 돈도 없었다. 친척과 친구들도 전과자라고 냉대를 했다. 그럴수록 남보다 끗발나게 살고 싶었는데 집에서 도와줄 형편이 못돼 일을 저질렀다” “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젖먹이는 우는 소리가 귀찮았다. 처음 전남 광산서 살인하고 나니 그 후로는 사람 죽이는 일이 두렵지 않았으며 내 깡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법원은 1심에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항소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는 상고를 포기해 사형이 확정됐습니다. 국선 변호인이던 이상혁 변호사가 재판을 맡고 종교교화는 김수진 목사가, 그리고 개인교화는 김혜원이란 여성이 맡았습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던 김대두는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믿기로 하고 얼마 남지 않는 생애를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1976년 12월 28일. 김대두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형장에 입회한 목사에게 “지은 죄를 깊이 뉘우친다.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냉대가 시정되었으면 한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상혁 변호사에 따르면 김대두는 마지막 처형 순간에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웃는 얼굴로 사형대에 올랐습니다.  

 

잔학하기 그지없었던 살인마에게 웃음을 되돌려주고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준 것은 그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날 우리가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들은 우리가 사는 사회에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 생각해서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로운 사회는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나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너무나 단순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눅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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