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도시
창춘(长春)
창춘은 지린성(吉林省)의 성도(省都)로서 지린성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다. 전국적으로도 주요도시의 하나로 중앙정부로부터 독자적인 권한을 인정받고 있다. 예부터 ‘北國春城’이라 불렸던 창춘시는 봄과 여름에는 거리마다 꽃과 가로수가 우거진 아름다운 곳이다.
행정구역 및 인구 난�(南关), 콴청(宽城), 차오양(朝阳), 얼따오(二道), 뤼웬(绿园), 솽양(双阳)구(区)와 주타이(九台), 위슈(榆树), 더후이(德惠)현급시(縣級市), 농안(农安)현(县) 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면적은 18,881㎢, 인구는 724만 명(2005년)이다.
역사 창춘은 1800년에 청(淸)조가 ‘창춘청’이라는 지방행정기구를 설립한 후부터 발전하여 1865년 처음 성을 쌓았는데, 1883년에는 인구 9만 명의 지방이었다. 1896년 러시아가 침략하여 철도 건설권을 장악하였고, 1906년 러일전쟁이 끝나고 난 후 일본이 권한을 장악하였다. 1908년 일본은 만주 철도 부속지를 확대하고 창춘역을 지었다. 당시 시의 면적은 21㎢, 인구는 15만 명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滿洲事變) 후 창춘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1932년 3월 일본은 만주국을 세우고 창춘을 ‘신징(新京)’으로 고쳐 불렀다. 1944년 시의 면적은 80㎢, 인구 82만 명이었다가 1946년 5월부터는 국민당이 장악하여 시의 인구는 17만 명으로 감소했다. 공산화 이후 1954년부터 지린성 성도로 지정되어 다음 해에는 전국 10대 도시로 지정되었고 1979년부터 15대 경제중점도시가 되었다.
기후 및 교통 계절풍의 영향으로 겨울이 길고 봄에는 바람이 많으며 여름엔 따뜻하지만 짧고 가을은 맑지만 기온차가 크다. 연평균 기온은 4.8℃인데, 최고 기온은 39.5℃, 최저기온은 -39.8℃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567㎜이다. 교통은 철도로는 베이징(北京)에서 약 15시간, 하얼빈(哈爾賓)에서 3시간 30분, 선양(沈陽)에서는 약 4시간이 소요된다. 항공편으로는 베이징에서 1시간 30분, 상하이(上海)로부터는 2시간 30분, 광저우(廣州)에서는 4시간이 소요된다. 철도는 베이징, 선양, 창춘, 하얼빈, 모스크바 경유노선과 창춘-홍콩 노선이 있다. 그 외에 베이징, 톈진 등 전국 주요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산업 및 경제 창춘에는 석탄, 석회암, 진주, 동, 은, 철 외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일정량 매장되어 있으며 공업과 농업이 비교적 균형 있게 발달된 곳이다.
특히 교통운수설비 제조공장은 중국 전체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전국 13%), 자동차제조공장(長春第1氣車製造廠)은 중국 자동차 생산의 1/5, 창춘기차공장(長春客車廠)은 철도기차생산의 1/2, 창춘트럭공장(長春拖拉機廠)은 중국 3대 트럭공장의 하나로 전국의 1/10을 생산하고 있다. 그 외에 현지의 자원과 조건을 이용한 곡물가공(穀物加工), 하이테크, 석유화학공업이 발전하였다. 농업은 평탄한 지형과 비옥한 토지의 자연조건하에 옥수수, 콩, 쌀, 수수가 많이 생산되고 있으며, 국가의 주요 상품곡물기지 및 옥수수 수출기지로 지정되어 있다. 최근 들어 축산업의 생산이 증대되고 있다. 1988년부터 창춘에는 신기술산업개발구(長春高新技術産業開發區)가 설치되었다. 이 개발구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동식물원이 있고, 서쪽에는 자동차제조공장이 있으며 동쪽에는 인공삼림공원이 있다. 통신, 금융, 상업 등 기초시설이 이미 잘 갖추어져 있고 교통이 편리하여 시내의 역이나 호텔, 공항 등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종교 및 기독교 현황 2개의 큰 삼자교회와 많은 교회가 있는데, 신도가 만 명 정도 되는 상당히 큰 규모의 교회도 있다. 우마루(五馬路) 한족교회는 12,000여 명의 성도가 있으며, 그 외 4-5,000명 되는 한족교회도 있다. 이들 한족교회들은 외부의 지원 없이 교회를 건축하고 운영하고 있다. 정식으로 운영되는 조선족 삼자교회는 두 개가 있는데, 200여 명 정도의 신도가 모여 예배를 드린다. 그 외에 다수의 가정교회가 장로 등 평신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지도자를 양육시킨 후 인근지역으로 파송해 다른 가정교회를 개척하는 형태로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100명가량 모이는 가정교회는 아주 많아서 이들 가정교회 지도자를 양육하고 지원하는 사역자들도 많은 편이다. 이곳엔 탈북자들이 많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이 진행되어 왔다. 창춘은 지리적으로도 동북삼성의 중앙에 위치했지만, 영적인 센터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기도제목 1. 창춘시의 교회들이 성결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주변지역에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어지도록 기도하자. 2. 창춘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임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교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
옌지(延吉)
옌지시는 지린성(吉林省) 동부에 위치한 옌볜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의 성도(省都)로서 옌볜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다. 북한 및 러시아와 인접한 지역에 위치해 일찍이 중국, 북한, 러시아 간의 삼자무역이 활발히 전개된 곳이다. 최근에는 두만강유역 개발과 함께 국제무역의 거점도시로서 입지가 강화되고 있다.
행정구역 및 인구 투먼(圖們), 뚠화(敦化), 롱징(龍井), 훈춘(琿春)시(市)와 허롱(和龍), 안투(安圖), 왕칭(王淸)현(縣) 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면적 1,350㎢, 인구는 41만 3천1백 명(2004년)이다. 역사 예전에는 옌지를 ‘난깡(南崗)’, ‘옌지깡(煙集崗)’이라고 불렀다. 1875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산짐승들이 나오는 삼림지대였는데, 1881년 청(淸)나라가 이곳에 초간국(招墾局)을 설치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옌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34년 동북을 강점한 일본이 옌지시를 ‘간도성’으로 고치고 이곳을 자원약탈과 동북침략의 근거지로 삼으면서부터이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한 이후 1946년에서 1948년까지 중국 공산당 지린성 위원회는 이곳에 위치해 있다가 1952년 9월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설립된 후 자치주의 직할시가 되었다.
기후 및 교통 온대 기후로 여름엔 고온다우하고 가을엔 시원하며 겨울은 춥고 길다. 연평균 5.7℃로 최저 기온은 -32.7℃이고, 연강수량은 550㎜이다. 훈춘에서 톈진(天津), 베이징(北京), 창춘(長春), 선양(沈陽) 간 열차가 옌지를 경유하여 하루 12회 운영되고 있으며 투먼, 훈춘 간의 철도, 러시아의 마하린까지의 철도가 운영되고 있다. 도로는 훈춘의 창링즈(長嶺子)를 거쳐 자르노비항까지 있고 청진항으로 가는 도로가 롱징, 북한의 회령을 거쳐 이어진다. 항공편은 베이징, 선양, 따롄, 창춘행이 취항하고 있다.
산업 및 경제 옌지에는 철, 동, 석탄, 금, 몰리브텐, 목재 등의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어 이를 바탕으로 기계, 시멘트 공업이 비교적 발달하였다. 옌지시는 옌볜지역 공업생산액의 26%를 차지하는 신흥공업도시이다. 금, 아연, 동, 망간 등의 금속광물과 석탄, 석유, 석회암 등 비금속광물이 고루 매장되어 있는데, 석유는 1억 톤이 넘게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석회암은 9,600만 톤으로 지린성에서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으며 그 외에 흑연, 수정 등의 매장량도 풍부하다. 총생산액 중 4.7%만이 1차 산업이고, 2차 산업이 59.9%, 3차 산업이 35.3%를 차지한다. 수입에서도 농업은 5.5%임에 반해 공업 65.2%, 건축업 7.9%, 운수․통신업이 3.7%, 상업, 요식업이 17.7%를 차지하여 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낮음을 볼 수 있다. 농업총생산액은 지린성 전체의 0.4%밖에 안 되며 그 비중은 농업이 66.2%를 차지하고 축산업이 30%를 차지한다. 옌지시는 기계, 건축자재, 건축재료, 야금, 석유화학, 동력자원 등이 주로 발달하였다. 그 형태는 집체소유제(集體所有制)가 대부분이다. 제2차 산업은 점점 쇠퇴하는 데 반해 3차 서비스업은 증가하고 있다. 한편 옌지시는 동북의 교역 중심지이고 조선족 특산품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한국과의 교류는 밀접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옌볜과학기술대학(延邊科學技術大學)이 1991년 9월 9일 개교하여 중국과 한국 간의 합작교육을 통해 문화 및 경제, 기술교류를 증진하고 있다. 옌지시는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위해 인근의 블라디보스톡항을 이용 중에 있으며, 3시간 거리의 북한의 청진항을 옌지시 전용항으로 임대하여 화물 수송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였다.
종교 및 기독교 현황 옌지에 처음 복음이 전파된 것은 1903년 영국의 한 선교사에 의해서였다. 그 이후 훈춘 일대에 뿌리내린 기독교는 점차 발전하여 1930년대 초 허롱에만 17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신도가 1,800여 명에 이르렀다. 훈춘에는 신도 수가 5,000여 명에 이르기도 했다. 천주교도 1906년 독일 신부에 의해 알려져 1940년대 초엔 신자가 14,800명에 이르렀다. 1965년 통계에 의하면 당시 천주교가 2,700여 명, 기독교인이 2,100명, 불교승이 3명이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교회인 옌지교회는 조선족 교회임에도 성도가 12,000명으로 옌볜 전 지역을 포괄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교회이다. 옌지교회는 롱징교회, 왕청교회 등 옌볜지역의 다른 교회들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옌지는 백두산을 가기위한 경유지로 한국과 많은 연계를 가진 곳이다. 조선족이 문화, 사회의 중심이다. 이곳에 있는 조선족을 상대로 유치원이나 양로원, 장애인 사역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도제목 1. 옌지시를 통해 북한과 러시아 지역에 복음이 뻗어나가도록 기도하자. 2. 옌지시의 대표적인 교회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헌신된 지도자들이 나오도록 기도하자. 3. 옌지시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과 한국인들과 조선족들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연합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