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함께 묻힌 애달픈 형제

2007. 7. 8. 22:46참고자료/4,예화자료

유석오 일병과 그 동생 석환 일병은 6·25 전쟁에 같은 날 참전했다 같은 날 전사했고 오랜 세월이 흘러 이들의 유해도 함께 발견되어 국립대전 현충원에 나란히 안장되어 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이들 형제(유석오(당시 26세)씨와 동생 석환(당시 17세))는 1950년 12월 31일 국군 8사단에 입대해 10연대에 배치되었습니다. 3남 1녀 중 셋째였던 석환 씨가 맏형인 석오 씨를 무척 따랐다는 유족들의 얘기로 미뤄 볼 때 석환 씨는 군번을 받는 순간에도 형과 바싹 붙어 다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16세였던 이들 형제의 여동생 석연(73) 씨는“막내 오빠는 군에 갈 나이가 안 됐지만 큰오빠와 함께 징집돼 입대했다”며 “막내 오빠가 큰오빠를 항상 의지하고 따라다닌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유 일병 형제는 1951년 2월 중공군의 춘계대공세 때 강원 횡성지구에서 전투를 치른 뒤 같은 해 4월 6일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에 참전했다가 적탄에 맞아 함께 짧은 생애를 마쳤습니다. 형제의 유해는 전투가 벌어진 전남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지역에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육군 전사(戰史)에 따르면 당시 대구에 주둔했던 육군 8사단 3대대 10중대원들은 화순 지역의 화학산과 밀봉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1951년 4월 화순읍 이십곡리 일대로 파견되었습니다.

 

화순에 도착한 이튿날 새벽 빨치산의 기습공격을 받고 백병전을 벌이다 26명이 전사해 주민들이 전사자들을 매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전사 당시 유석오 씨는 만삭인 아내와 세 살된 아들이 있었지만 아들도 고된 피란생활 끝에 숨졌습니다.

 

“아들 2명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는 평생을 가난과 싸우며 눈물로 지새우다 10여 년 전에 세상을 뜨셨고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더 일찍 가셨다”고 여동생 석연 씨가 말했습니다. 육군은 2001년 5월 유해발굴 작업 과정에서 형제의 유해를 발견해 유전자(DNA) 조사를 거쳐 신원과 유족을 확인한 뒤 2002년 4월 대전현충원에 안장했습니다.

 

참고로 6·25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 국군의 인명 피해: 전사자-58,809명/ 부상자-178,632명/ 실종 및 포로- 82.310명 / 계 - 319,759명

* 연합군의 인명 피해: 전사자- 36,991명/ 부상-115,648명/ 실종 및 포로-6,944명 / 계:159,583

* 공산군의 인명 피해 : 북한군 전투 손실- 520,000명 / 중공군 전투 손실- 900,000명

* 민간인 : 사망(학살당한 인원 포함)-370,599명/ 부상자-229,625명/ 납치-84,532명/행방불명 자:303,212명

* 피난민- 240만명/ 전쟁미망인- 20만명/ 전쟁고아- 10만명

 

6·25전쟁 57주년을 맞아 의미 깊은 날이지만 6·25전쟁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것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계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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