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아내,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2006. 11. 10. 15:11ㆍ신학자료/8.목회학 자료
목회자의 아내,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목회자의 아내는 누구인가? 당연히 목회자의 아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사모는 목회자인 남편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 사모는 남편인 목회자의 부속물이 아니다. 즉 남편이 존경받으면 존경받고, 무시되면 똑같이 무시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목회자의 아내도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남편은 그녀의 머리이다. 하지만 남편이 사모의 최고 결정자는 아니다. 사모 역시 하나님의 독특한 피조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모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신다. 그래서 사모를 창조하셨고 놀라운 섬김의 기술을 주셨으며 그녀의 손에 소중한 사역을 맡기셨다. 예수님은 사모를 위하여 죽기 위해 하늘 보좌를 떠나셨고 성령에 의해 여인의 몸으로 이땅에 오셨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일어나셨다. 주님은 사모의 인생에 대해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는데 그것은 흥미롭고 가치로운 것이다. 사모는 고유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고 독립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다. [사모의 정체성, 하나님 안에 있다] 모은 문화속에서 목회자의 아내들은 자문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느 문화에 적합할까? 도대체 나에게 적당한 곳은 어디인가?' 그들 중 많은 사모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종 적은 생활비에다 존경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자주 비난받고 배척되고 오해를 받기까지 한다. 그들의 자녀들은 목회자 자녀라는 칭호를 싫어할지도 모르고, 심지어 자신들은 결코 사역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할지도 모른다. 목회자의 아내는 외로울 수도 있고 자신은 적합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으며,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목회자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도 커다란 부담감을 가질 수도 있다. "사역에서 목회자의 재우자가 그들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목회자의 아내로 소개되는 것을 주목해 본 적이 있는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자신의 남편의 아내로, 남편이 가진 직업의 부인으로 소개되고 있는가? 하지만 이러한 일이 내게 일어났을 때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저는 질브리스코라는 제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중요하다. 그것은 내가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사모로서의 한 사람의 정체성도 궁극적으로 남편이나 아이들이나 또는 교회 섬김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안에 있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일 속에 있는 거서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에 있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잘 수행했느냐, 내가 얼마나 성공했느냐 또는 내가 교회에서 필요한 여성도들의 리더로 얼마나 잘하느냐에 있지 않다. 그것은 내가 참석하는 모임에 얼마나 잘 참여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벌견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목회자 아내들은 교회에서 열리는 온갖 모임에 참여해야 한다고 느낀다. 사모들은 모든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끼고, 모든 이벤트를 도와야 하고, 모든 결혼식과 세례에 참석해야 하며, 모든 병자와 죽음이 임박한 노인들을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들이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스스로 잘못하고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아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고 그럼므로 무한한 가치를 가졌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크리스천의 활동이 얼마나 많은가 또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주님의 사랑을 얼마나 잘 알고 그분을 섬기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시편 139편 13절은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셨다" 고 말씀하신다. 멋진 예술 작품처럼 우리의 엄마들의 자궁 속에서 하나님은 목회자의 아내를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일들을 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우리 문화의 색깔로 채색하셨고, 우리가 믿기 어려울 만큼 그분이 우리를 위해 마음 속에 작정하신 특별한 부르심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것인가? 첫째 하나님과 사랑하는 관계로 부르셨다. [사모도 주님과의 관계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맨 먼저,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목회자 아내를 만드셨다.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특권이자 책임이다. 이는 근본적인 부르심이다. 그분은 무엇보다 먼저 그분 자신에게로 우리를 부르셨다. 이 땅의 어떤 피조물보다 먼저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다. 나의 인생에서 다른 어떤 관계보다 이 관계에서 성장하고 양육될 책임이 내게 있다. 그것은 틀림없이 나의 남편과 아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부모와 교회와 세계와의 관계 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 나의 인생의 최고의 목표와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이 본질적인 소명으로부터 다른 모든 소명들이 뒤따른다. 우리의 사역의 동기는 주님을 향한 열정적인 사랑에서 솟아나야 한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자랄 때 사람들을 향한 열정과 교회의 사역이 꽃 피고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나는 30년 넘게 목회자 아내로서 사역하도록 하는 것이 매일매일 내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이 '사랑' 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증인이 되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를 원한다. 교회가 나에게 그것을 하라고 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 역시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섬기기를 원하는 것은 그분이 종으로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다른 사람의 짐을 지셨기 때문에 나도 같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그분과 시간을 맣이 보내면 보낼수록 나는 그분처럼 되고 싶다. 나는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무릎을 꿇는 기도로 하나님을 기뻐하므로 이 근본적인 부르심을 키워간다. 나는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자원함으로 하고 싶다. 나는 목회자 부인으로서 기대 되는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말씀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청년이나 장년들 또는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 성경을 가르친다. 나는 내가 하나님에 대하여 갈급하기 때문에 성경을 향해 열정을 가진다. 내가 하고 있는 사역, 나의 만족, 나의 즐거움과 나의 기쁨은 성경 안에 있다. 나는 내가 침체되었을 때에 나를 끌어 올리고, 내가 교회의 섬김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교회 구성원으로 깨어 있지 못할 때에 나를 강건하게 해 주는 것은 살아 있는 말씀이다. 요약하면, 나는 교회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안에 계신 주님을 섬긴다. 또 달리 말한다면 나는 주님을 섬기기 때문에 교회를 섬긴다. [사모는 하늘 유업에 남편과 함께 참여하는 자] 두 번째는 사모와 남편의 관계이다. 사모가 그리스도께 복종할 때, 그것은 그분을 위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복종할 수 있는 두번째 자질을 갖게 만든다. 이것은 만일 그녀가 목회자의 부인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녀가 독신녀나 과부 또는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는 다른 평범한 여자였다면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주님께 대한 복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목회자 아내는 목회자의 아내로서 부름 받은 예수의 제자이다. 사모는 사람들이 그녀가 목회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 때문에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섬기러 오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일을 한다. 그런 고상한 부르심을 받은 남자와 결혼한 특권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목회자와 장로, 교회 리더, 선교사와 결혼하는 놀라운 특권을 가진 우리는, 자신의 은사와 노력을 결합시키고 또 처음으로 사탄을 곤경에 빠뜨려 슬프게 만듦으로써 우리의 영향력을 배가할 수 있다. 베드로는 믿는 남편과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라고 말했다. '함께' 이다. 베드로와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왕국을 일으키기 위해 전세계를 여행하였고, 그들의 은사와 부르심에 따라 함께 사랑으로 주님을 섬겼다. 그들은 교회가 성장하도록 함께 그들의 생애를 사용하였고 로마에서 순교의 고통을 함께 겪었다. 그들은 함께 유업을 받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목회자의 아내는 하나님의 상속인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 상속자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구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목회자의 남편을 가진다는 것은 그들이 함께 놀라운 결속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공동의 구주를 가지고 공동의 대의명분을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목회자 아내는 사역에서 그녀의 남편과 관계를 가지고 또 그리스도의 몸과 관계를 가진다. [의당 사모도 교회공동체의 일원이다] 에베소서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은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의 일원이다. 목회자와 사모도 마찬가지다. 교회공동체 구성원이 되는 것에 관하여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은 교인들만 아니라 지도자에게도 해당된다. 아내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손이나 발 또는 혀 같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될 수도 있다. 그녀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재능과 은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그녀는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 때때로 나는 목회자의 사모가 목회자와 결혼하지 않은 여성도보다 일을 덜 하는 것을 본다. 마치 사모가 된 것이 사택에 숨기 위한 일종의 핑계인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그녀가 과거에 교인들에게 상처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사모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여인이 되기 위해 교회의 리더십에 의해 용납되고 격려받아야 한다. 다른 모든 여성들이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격려받는 것처럼 말이다. [목회자의 아내도 주님 명령에 순종할 뿐] 목회자의 아내와 세상의 관계이다. 주님의 다른 제자처럼 그녀는 결코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눌 의무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지상명려어은 우리 모두 즉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 그녀는 목회자의 아내로서 공동체 내의 그녀의 위치를 사용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나는 내가 목회자의 아내로서 주님을 사랑하는 여성이기 때문에 손님들과 이야기하고 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얻는다. 주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드물지 않다. 우리는 어떤 교회 행사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우리는 배후에서 도울 수 있다. 우리는 교회에서의 우리의 지위 때문에 공개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초대하고 은사를 가진 다른 사람을 격려해 전도를 하게 하거나 그런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다. 우리는 촉매역활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내게도 동일해] 나는 때때로 자문한다. 목회자 부인이 되는 것에는 문제는 없는가? 사람들은 그들을 위하여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항상 감사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아니다" 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분은 나의 모든 사역에 감사하게 생각하신다. 그분의 기쁨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격려를 받는 것은 가능하다. 이것은 사모가 하나님께서 적어도 다른 사람을 인도하시는 만큼 자신을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인도하시는 만큼 말이다. 목회자의 아내는 그녀 자신이 앉을 자리가 필요하고 스스로에게 약간의 좋은 충고를 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다른 크리스천 여성처럼 자신이 주님의 은혜로운 속삭임을 얼마나 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내적으로 얼마나 강해져야 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만일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라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가? 첫째, 매일 성경에 깊이 빠져 들어야 한다. 성경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에 자신의 인생과 상황을 적용해야 한다.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성경이 특별히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자문하면 된다. 나는 내가 목사 부인으로서 해야 할 것과 관련된 것을 읽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도록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분은 나에게 어떤 격려의 약속을 주시고 계신가? 그분은 나에게 어떤 것에 관해 경고하시는가? 우리가 해야 할 것들에 관해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이야기할 것이고 우리를 가르쳐 줄 것이다. 나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오래 전에 몇몇 청년들이 나에게 자신들과 함께 술집(local bar)에 갈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그때가 남편과 내가 청년 사역을 감당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 당시 우리 교회에 전혀 와 본 적이 없는 젊은이들과 접촉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한 청년을 양육하고 있었는데, 그는 내가 그의 친구들을 만나주길 원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친구들이 자신에게 성경에 관해 물었는데 자신이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친구들이 밤에 술집에 있을 텐데, 아마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만일 이 젊은 친구와 함께 간다면 누군가는 나를 볼것이라는 점이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서 놀라 뛰쳐나올지도 모르고 그곳에 왜 내가 갔는지도 모를 것이다! 슬그머니 나의 평판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의 평판뿐만 아니라 남편의 평판도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그 청년들은 다른 곳에서는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말씀을 읽을 때 나를 가르쳐 주시도록 기대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었다. 며칠 후에 나의 갈급한 질문에 응답을 받았다. 빌립보서 2장 7절, "오히려 지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를 읽고 있었다. 갑자기 그분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나의 세계에 오셨다는 것과 그분의 세계를 나에게 가져오셨다는 것을 묵상하게 되었다. 그분은 술집(drinking houses)에 들어가는 것이나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 것을 천사가 볼까봐 염려하지 않았다. 그분은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고 그 시대 로마인들을 위해 세금을 거두고 있는 땅의 찌끼보다 못한 세리 마태를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주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분의 평판에 관해 걱정하지 않았다면, 내가 염려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음 주 나는 그와 함께 그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선술집으로 갔다. 이것이 교회 다니지 않았던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했던 역사의 시작이었다. 당신이 목회자의 아내라면 당신 자신의 명예보다 하나님의 명예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동체에서 우리의 지위에 연연하기보다는 그분의 명예와 지위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교회 안의 성도들이 당신에 관해 생각하는 것에 관심을 덜 갖게 될 것이다. 남편처럼 분명하게 사모인 당신도 하나님나라를 위해 온전히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 많은 것을 희생당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다른 사람들이 항상 우선적으로 남편의 관심과 시간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분노를 자제하게 될 것이다. 바쁜 남편의 삶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선권을 가진다는 것을 깨달앙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줄 서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가? 나는 선교사 아내로 10년, 목회자 부인으로 30년을 보냈기 때문에 이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처럼 그와 이야기하기 위해 줄을 서 있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사역에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에 자기 연민에 빠질 여력이 없었다. [자녀에게 믿음의 좌우명을 설명하자] 사역하는 부모로서 경험하게 되는 가장 악몽 같은 일 중 하나가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어긋나거나 부모인 우리들의 사역때문에 희생당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목회자 라이프 스타일이나 경제적 어려움, 또는 친구들의 조롱과 비웃음으로 성도로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게 되지나 않을지 염려가 된다. 때때로 우리의 아이들이 부모들에 대한 비난들이나 교회 분열을 보면서, 커서는 리더십을 갖고 주님을 섬기기 보다는 오히려 결코 교회 문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할 수도 있다. 만일 자녀들이 부모들이 자신들의 어려운 순간을 통해서 더 주님을 신뢰하게 된다는 것과 사역이 형벌이 아닌 특권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또 "나와 내 집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라는 당신의 좌우명을 설명해 준다면, 아이들은 모두 훌륭하게 자라게 될 것이다. 이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가지셨는데 그도 비뚤게 나아갔다. 그의 이름은 아담이었고 그는 낙원에서 살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었고, 아담이 자유의지를 잘못 행한 결과였다. 아이들은 그들 스스로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그들의 닻을 달아줄 수 있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을 가로막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으며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 때때로 고통이 기쁨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만일 아이들이 당신이 슬픔과 비통을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본다면, 그들도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 희망을 잃지 않고 동일하게 할 것이다. 만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린 예배가 당신의 삶을 다스리는 요소라는 것을 아이들이 본다면, 그들도 스스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섬김의 축복과 흥분에 사로잡히도록 기도하라. 그리고 아이들이 당신의 모범을 본받아 어느 날 자신들도 그런 가정을 세우기를 원하도록 기도하라.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들도 우리의 사역의 범주 안에 있다. 남편 스튜어트와 나는 확실히 우리 아이들을 양육할 때 항상 옳은 일만 행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역시 모든 악한 것을 행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우리에게 그들이 보았던 것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기로 결정해서 사역의 동역자로 함께 하나님을 위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한 부부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것을 좋아했고 그들도 우리와 같기를 원했다. 우리는 사역에서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변호할 여지가 없는 것을 변호하는 대신에 가능한 한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추구했고, 죄된 것을 대항하기 위해 우리의 믿음의 전쟁에서 피할 수 없는 많은 어려움을 감당하도록 기도하려고 노력했다. [영광의 길에 남편과 함께 초대된 사람] 그래서 목회자의 아내란 어떤 사람인가? 목회자의 아내는 무한한 특권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으로서 그분을 영원히 사랑하고 섬기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동역자로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남편의 엄청난 은사와 함께 빛나는 존재이다. 그녀는 하늘과 땅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남편과 함께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녀는 그리스도가 위해 죽었던 교회를 사랑하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섬기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녀는 그분이 우리의 욕구를 아신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에 대해 응답 하실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즉각적으로 응답된다는 거서이나 우리가 심지어 기도가 이루어질 때 응답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반드시 우리의 자녀들이 고통과 아픔을 역시 함께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분이 구세주의 지혜로서 약간의 어려움을 우리의 길에 허락하실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도록 하기 위해 허락된 고통이나 기회를 그분을 떠나는 것으로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바람을 대항해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항상 그분을 신실하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질 브리스코(Jill Briscoe) / 미국 브룩필드 엘름브룩 교회의 담임목사였던 스튜어트 브리스코의 아내로서 남편과 함께 연설가와 저술가로 왕성한 사역을 했다. 40권 이상의 저서가 있으며, 사모들을 위한 저널인 Just Between Us의 발행인이다. - 목회와 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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