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12. 11:53ㆍ선교자료/2.중국선교자료
북양군벌의 시조 원세개[袁世凱]
중화민국 임시대통령에 취임한 뒤의 원세개
원세개의 육필원문.
천진[톈진]에 있는 원세개의 옛집.
청나라 말기의 대 군벌 원세개.
원세개[袁世凯(1859年—1916年)]의 자는 위정[慰庭]이요 호는 용암[容庵]으로 중국 근대에 한때 중원땅을 제패했던 북양군벌[北洋军阀]의 시조요, 중화민국 대통령까지 취임함으로 한때 청나라 말기, 민국초기의 중국 정계를 좌우지 했던 사람이다.
1859년9월16일, 하남성 항성의 한 관환가문에서 태어난 원세개는 과거에 급제를 하지 못하게 되자 종군했다.
1892년 조선내란[전봉준농민전쟁]으로 청나라에 파병을 요하게 되었는데 원세개도 조선내란평정에 출전하게 되었다. 조선에 있는 기간, 원세개는 군사,외교능력이 뛰어나 청나라의 중시를 받게 되었는데,1894년 리홍장의 추천으로 주 조선 총리대신으로 임명, 1895년부터 천진에서 [신식육군]을 훈련, 7000여명의 병력을 장악하면서 무시할 수 없는 역량으로 되었고, 이를 기초로 자기 세력을 키움으로 북양군벌의 기틀을 마련했다. 1901년 직예총독 겸 북양대신으로 임명,1907년에 군기대신 겸 외무부 상서로 추대,1908년 선통[宣统]황제가 즉위하면서 황실의 배제로 하야했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이 폭발하면서 내외로 곤경에 빠진 청나라정부에서는 다시 원세개를 등용, 총리내각대신으로 군정대권을 잡게 되었다.
대권을 잡은 후, 청나라 망국의 조짐을 보아낸 원세개는 전국의 혁명세력과 자기의 옛부하들와 연합하여 청나라 황제를 몰아내고 공화[共和]제를 실시했다.
1912년3월, 혁명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관계로 원세개를 중화민국 임시대통령에 취임, 얼마 지나지 않아 중화민곡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권을 잡은 원세개는 ,1915년 12월 황제[帝制]를 회복, 중화제국을 건립하고 기년을 홍헌[洪宪]으로 개칭,1916년 3월 22일, 내외의 압력으로 제국을 폐지하고 민국을 회복, 1916년 6월 6일, 뇨독증으로 북경에서 57세를 일기로 사망했는데 8월 24일 하남 안양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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