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속전 [출30장11절~16절]

2006. 7. 17. 00:23목양자료/3.강해설교

출30:11-16 생명의 속전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그리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할 때에 온역이 없다.

이스라엘 자손은 속전을 여호와께 드리므로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수 된다. 여호와께 속한 백성은 온역이 없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생명의 하나님이 시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출15:26). 아브라함의 후손일지라도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되는 것처럼 속전을 냄으로 성소에 계신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수 된다. 이스라엘일지라도 속전 없이 계수되면 그들은 여호와께 성소에 계신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수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만사를 구비하사 다윗의 왕국을 든든히 세우셨을 때에 다윗이 교만하여 인구를 조사하였다. 이전에는 다윗이 전쟁에 승리할 때마다 말의 발의 힘줄을 끊고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였었다. 이 일에 하나님이 진노하사 이스라엘을 치셨다(삼하24:). 다윗은 이스라엘을 생명의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백성으로 계수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권세에 속한 자로 계수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생명의 속전으로 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값주고 교회를 사셨다(벧전1:18-19). 종인 이스라엘은 속전을 여호와께 드려서 그의 백성으로 계수 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인 자들은 속전을 낼 필요가 없다(마17:25-26).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대로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속전은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것인데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균등하게 내야 한다.

속전은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을 금액을 내야 한다. 속전에 대한 규례는 출애굽기 38:25-28에도 있다. 거기에서는 빈부 차이 없이 똑 같은 금액을 낸다는데 강조 점이 있지 아니하고, 성소의 재료인 은과 반 세겔이라는 액수가 강조 점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속전은 회막의 봉사에 쓰인다. 속전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속한다. 처음 계수된 육십만이 드린 속전은 성소의 판장과 문의 은 받침과 뜰의 은 가름대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장자에 대한 속전의 규례는 민3:에 있다. 이스라엘 중 이십세 이상의 남자를 계수하니 603,550명이었다. 레위지파는 계수 하지 아니하였다. 레위지파는 일 개월 이상의 남자를 계수 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계수 하였다. 이스라엘의 장자의 수가 레위지파의 일개월 이상인 자보다 수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오 세겔씩을 속전으로 모세에게 내야 한다. 모세가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사람에게서 속전을 받아서 그것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었다.

이십세 이산으로 계수된 자의 속전의 의미는 장자를 대속하는 속전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장자를 대신한 자들은 레위인이었고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장자를 대신하여 여호와의 소유로 삼으셨다. 레위인으로 대속하지 못한 장자는 오 세겔을 내서 생명을 속하였다. 이스라엘의 총회로 계수된 이십세 이상의 남자의 속전은 반세겔이요; 장자의 속전은 레위지파이며, 값으로는 오 세겔이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중에 함께 거하시는 언약의 관계를, 민수기는 믿음의 봉사를 주제로 한다. 생명의 속전을 드려서 성소를 봉사하도록 이스라엘을 부르셨다. 그들의 생명은 여호와의 것이며 여호와를 봉사하는 것이 구속된 백성의 생명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속되었다.

거기 보면 12절에 보면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리라고 했다.

출30:11-16 생명의 속전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그리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할 때에 온역이 없다. 그렇게 12절에 나와 있다. 그러나 항상 제일 처음과 마지막이 주제와 결론과 같은 성격으로 중요하고 그리고 그 가운데는 그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 보니까 계수 받은 모든 사람은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리라 그래야 온역이 없으리라 그렇게 12절에 말씀하고 있다. 그 다음에 13절부터는 그러면 생명의 속전은 얼마냐 은 반세겔을 내는 것인데 부자나 가난한 자나 차별 없이 내라. 하는 것이고 그 다음 16절에는 이것은 회막에다 쓰는데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 생명을 속하리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렇게 세 구분을 할 수가 있다. 그러면 제일 처음에 있는 것이 생명의 속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 중요한 문구다. 그러면 생명의 속전은 어떻게 내느냐? 계수 받은 모든 사람은 내야 되고 이렇게 내면 백성 중에 온역이 없다 그것이 생명의 속전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면 그 의미는 무엇이냐면? 이스라엘 자손은 속전을 여호와께 드리므로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수 된다. 여호와께 속한 백성은 온역이 없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생명의 하나님이 시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출15:26- 여기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마라의 쓴 물로 인도하시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내 계명을 지키면 애굽에 있는 모든 질병이 들지 않게 하리라. 그렇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께 속한 백성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씀하고 병은 여호와께 속하지 않는 백성에게 주겠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애굽에는 모든 온역으로 쳐도 너희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치료해 주겠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듣고 내게 속하면 그것이 출15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소유로 구별하시고 처음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스라엘로 계수 받은 사람들은 속전을 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여호와께 속한 백성이 된다. 여호와께 속한 백성이기 때문에 이방 세계에 있는 병으로 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시고 그들을 치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여기서 내용은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산된다 그 말하고 온역이 없다 하는 말은 실은 같은 설명이다. 여호와의 백성이기 때문에 온역이 없게 하겠다 그 말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산 된 자는 반드시 속하는 돈을 내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면 이것이 세금인지 읽어보면 알 것이다. 그러니까 이 문장을 읽으면 문장 안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에게 모든 병을 치료해 주겠다 했을 때 너희들이 내게 속하면 내 말을 잘 들으면 그렇게 되어 있다. 그것이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수 된다 세어진다 그런 말과 같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일지라도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되는 것처럼 속전을 냄으로 성소에 계신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수 된다. 여기 제일 끝에 보니까 속전은 성소에서 쓰도록 했다. 그것이 성소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리라 했다. 그러니까 이 속전은 성소와 관계된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출생되어도 할례를 받으면 여호와의 백성으로 소위 출생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어도 그냥 계수 될 수 없고 계수될 때 속전을 내면 그것은 성전에 계신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산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속전은 성전에 계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기념이 되는 것이다. 그런 내용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그들이 속전을 내면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할례는 팔일만에 계산해서 출생의 의미를 갖고 속전은 20세가 되면 계산 되고 민수기를 보면 그들은 여호와의 군병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성소의 봉사에 쓰라 해서 그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으로 출생되는 것이다. 20세가 되면 여호와의 군인으로 봉사하는 나이다. 민수기를 보면 섬기는 백성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그것이 속전을 내는 것이다.

이스라엘일지라도 속전 없이 계수 되면 그들은 성소에 계신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수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만사를 구비하사 다윗의 왕국을 든든히 세우셨을 때에 다윗이 교만하여 인구를 조사하였다. 이전에는 다윗은 전쟁에 승리할 때마다 말의 발의 힘줄을 끊고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였었다. 이 일에 하나님이 진노 하사 이스라엘을 치셨다(삼하24:). 다윗은 이스라엘을 생명의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백성으로 계수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권세에 속한 자로 계수 하였기 때문이다. 즉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으로 계수 하지 않고 자기를 섬기는 자기 군인으로 계산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전부 죽이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산 됐어도 성소에 계신 여호와를 봉사하는 백성으로 계산되지 않고 다윗을 봉사하는 백성으로 계산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을뻔 하였다.

이스라엘을 생명의 속전으로 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값주고 교회를 사셨다(벧전1:18-19- 여기 보면 우리는 은이나 금같은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어린 양으로 보배로운 피로 속죄함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대목자장이신 예수님께서로 돌아왔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속전이라는 말을 우리들은 구약의 제사법에다가 막 적용하면 안된다. 죄를 대신해서 양을 죽여야 되고 그런 것보다도 구약의 속전의 의미는 20세 이상을 계산할 때 대는 속전이다. 그것이 근본 개념이다.

종인 이스라엘은 속전을 여호와께 드려서 그의 백성으로 계수 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인 자들은 속전을 낼 필요가 없다(마17:25-26).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대로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속전은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것인데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균등하게 내야 한다. 속전은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을 금액을 내야 한다. 속전에 대한 규례는 출애굽기 38:25-28에도 있다. 거기에서는 빈부 차이 없이 똑 같은 금액을 낸다는데 강조 점이 있지 아니하고, 성소의 재료인 은과 반 세겔이라는 액수가 강조 점이다.

이 속전에 대한 것이 출38장에도 있다. 거기는 성전을 짓는 구체적인 작업 과정을 말씀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도 있고 거기도 속전을 내라는 말이 있는데 거기서 강조 점은 은으로 내라. 반 세겔을 낸다 그것이 강조점이다. 그래서 성소는 금과 은과 동으로 지었는데 은은 이스라엘 백성의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들이 낸것인데 은으로 반 세겔을 내서 얼마 냈다. 그것으로 성소의 모든 밭침들을 만들었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 거기서는 강조점이 무엇이냐면 금과 은과 놋 하는 금속에서 주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가치에 대한 문제다. 금이나 은이나 놋같은 귀한 금속들을 드렸다. 그렇게 된것이고 여기서는 은으로 내라 그런 말은 없다. 여기서 강조점은 가치 있는것이 아니라 계수된 모든 사람들은 내라. 부자나 가난한 자나 차별없이 내라. 그러니까 여기서는 그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수된 모든 사람들이 속전을 내라는 것이 강조점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은을 빼 버린 것처럼 이해하면 안된다 그 말이다. 여기서는 은이라는데 강조 점이 아니라 부자고 가난하고 상관이 없이 20세 이상된 모든 사람은 속전을 내라. 그것이 강조점이고 성소를 짓는 재료를 이야기 하는데서는 귀중한 보석들로 지었는데 은 반세겔을 냈다. 가치에 대한 문제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은으로 냈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영해해서 은은 성소를 판자로 만들고 금으로 입히는데 그 밑에 밑받침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 또 뜰의 휘장을 치고 그 가름대를 은으로 만들지 않았냐? 그런데 가름대 이야기는 못하고 은 이야기만 한 것이다. 어떻게 하냐면 속죄가 성소의 기초다. 속전으로 기초를 만들었지 않냐? 그러니 예수의 피를 의지하면 금같은 성전도 지어낸 것이고 예수 피를 의지하지 않으면 그것은 무너진 것이다. 밭침이 부실해 봐라 무너진 것이 아니냐? 그래가지고 받침이라는데 강조를 둔다. 왜냐하면 우리가 교리적으로 볼 때 예수 피로 구속을 받지 않으면 신앙이 다 가짜거든. 그 교리를 가지고 읽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밭침은 은이니 한다. 그런데 놋으로 된 밭침도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끼면 안되는 것이고 밭침은 은이니 해가지고 푸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것이 없다.
거기서는 귀한 보석으로 지었다. 금과 은과 같은 귀한 금속으로 지었다 하는데 강조 점이 있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면 거기 은은 왜 전부 육십삼만 삼천 오백명 이십세 이상이 은 반세겔을 내니까 몇 달란트인데 그것으로 한 달란트로 밭침을 만들어서 몇 개를 만들고 쭉 나온다. 그러면 왜 거기는 그런 것이 있는 것인가? 그 당시는 제가 생각할 때는 동은 화페로 사용이 안됐을 것이다. 화폐 단위는 주로 세겔 달란트 그런 단위인데 그것은 주석서들은 보면 전부 은과 금으로 된 주화들이다. 동은 소위 돈으로 계산 된 것이 아니다 그 말이다. 요새는 상업 용어를 잘 모르겠지만 그전에는 화폐 가치하고 실물 가치하고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요새는 화폐 가지는 돈이고 실물 가치로는 없는 것이다. 단지 교환한다는 의미로 그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지 종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금 한 세겔을 가지고 녹여버리면 금 반지 한 개를 그대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기서는 그런 화폐 단위로 쓴 것이 세겔 단위다. 물론 더 작은 단위도 있지만 근본적인 것이 세겔이다. 아마 그래서 반 세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은 한 세겔하면 노동자 4일 임금이 되고 반 세겔하면 이틀지 임금이다. 그러니까 요새 색으로 하면 일당 정도 되는 식이다. 왜냐하면 보통 한 번 일하면 한 이틀씩 밥 먹을 수 있으면 보통 일당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이기 때문에 은 주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지 그것이 밭침이기 때문에 중요하고 한 그런 의미는 그 문맥에서는 없다. 단지 성소가 재료가 금과 은과 동이다. 그런데 은은 반 세겔 내도록 했다 그런 말이다.

그러면 속전이라는 의미는 무엇이냐? 너희들이 죄가 많으니까 돈 내라 그 말인가? 그러면 다른데서 속전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면 해석하기가 좋을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의 속전은 회막의 봉사에 쓰인다. 속전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속한다. 처음 계수된 육십만이 드린 속전은 성소의 판장과 문의 은 받침과 뜰의 은 가름대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그러면 이 속전의 의미는 무엇이냐? 장자에 대한 속전의 규례는 민3:에 있다. 이스라엘 중 이십세 이상의 남자를 계수하니 603,550명이었다. 레위 지파는 계수 하지 아니하였다. 레위 지파는 일개월 이상의 남자를 계수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계수하였다. 이스라엘의 장자의 수가 레위 지파의 일개월 이상인 자보다 수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오 세겔씩을 속전으로 모세에게 내야 한다. 모세가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사람에게서 속전을 받아서 그것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었다.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의 속전의 의미는 장자를 대속하는 속전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장자를 대신한 자들은 레위인이었고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장자를 대신하여 여호와의 소유로 삼으셨다. 레위인으로 대속하지 못한 장자는 오 세겔을 내서 생명을 속하였다. 이스라엘의 총회로 계수된 이십세 이상의 남자의 속전은 반세겔이요; 장자의 속전은 레위 지파이며, 값으로는 오 세겔이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중에 함께 거하시는 언약의 관계를, 민수기는 믿음의 봉사를 주제로 한다. 생명의 속전을 드려서 성소를 봉사하도록 이스라엘을 부르셨다. 그들의 생명은 여호와의 것이며 여호와를 봉사하는 것이 구속된 백성의 생명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속되었다.
이 속전의 의미는 너희들이 나한테 죄 용서 받으려면 돈 내라. 우리들은 속한다 속전 그러니까 그렇게들 보통 생각을 한다. 그래서 찬송가를 보면 금이나 은같은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 것 아니요 한 찬송가가 있다. 거기 보면 죄로부터 용서 받은 데 강조를 주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면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구약에서 속전의 의미는 무엇이냐?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는 이스라엘의 총회원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속한 백성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그 밑에 나이는 어린아이로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이 속전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민3장을 보면 장자를 속하는 규례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 했을 때 20세 이상으로 계수한 것이 민수기에서 계산한 수인데 그것은 여호와의 총회원을 계산하는 것이고 싸우는 군인으로서 계산한 것이고 그런 의미로 하나님을 봉사하는 백성을 계산한 것이었다. 그러면 그들의 대표로 봉사하는 자는 누구냐? 장자다. 장자 대신에 레위 지파를 구별하셨다. 그래서 60만을 계산했을 때 장자로 계산되는 레위 지파는 계산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레위 지파는 몇 살로 계산했느냐? 일 개월 이상으로 계산했다. 왜냐하면 레위 지파는 수가 훨씬 적거든요. 일 개월 이상으로 계산했다.
그렇게 하고 누구 하면 맞췄냐면 이스라엘의 장자 수하고 맞췄다. 왜냐하면 장자가 하나님의 것이다 했다. 초태생이 장자인데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봉사해야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장자를 대신해서 레위 지파를 장자 지파로 삼으셨다. 그러니까 이십세 이상으로 계산된 사람들이 있고 그 다음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니까 장자를 계산하고 레위 지파 일 개월 이상된 자를 계산 해보니까 레위 지파 숫자가 적다. 그래서 그 나머지 숫자는 은 오세겔씩을 모세에게 내면 모세가 그것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어서 쓰도록 했다. 그러므로 아론과 그 아들들이 즉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해서 하나님을 봉사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실은 하나님 앞에 봉사해야 되는데 레위 지파가 봉사하니까 그 값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어서 그들도 봉사케 한 것이다. 그것이 소위 속전에 대한 문제다. 그러니까 민수기의 속전은 무엇이냐면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장자로 계산된 것은 출애굽기를 보면 그들은 내것이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 장자로 대속했을 때는 유월절 양의 피로 대속이 된 것이다. 유월절 양이 장자를 대신해서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와의 것으로 계산되었고 그들은 여호와의 장막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으로 구별된 것이다. 그것이 속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다.
그러면 여기 보니까 20세 이상된 자는 이제 오 세겔을 낸 것이 아니라 반 세겔을 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까 오세겔은 훨씬 비싸다. 왜냐하면 이것은 장자에 대한 문제고 여호와의 총회원으로 계산되는 문제가 아니라 성소에 대한 봉사의 문제가 있거든요. 그러면 항상 성소의 세겔대로 성소의 봉사하는 것은 훨씬 크고 무겁다. 성소는 성소의 밖에것 보다 더 거룩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총회원으로서 여호와를 봉사하는 백성으로 계수 되는 것은 반 세겔인데 여호와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봉사하는 값은 오 세겔로 훨씬 비싸다. 그러니까 이 장자를 대속하는 그런 문맥에서 20세 이상이 속전을 내는 의미를 더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장자 봉사는 성전 봉사다. 그러기 때문에 20세 이상이 하나님 앞에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산 될 때 그들은 민수기를 보면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으로 계산되는 것이고 그런 의미로 반 세겔을 내서 그 반 세겔을 가지고 성소 봉사에 쓰도록 한 것이다. 제일 성소 봉사에 쓴 것은 성소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다.
마17장을 보면 성전 세를 거두는 사람이 베드로한테 묻기를 너희 선생을 반 세겔을 안 내냐? 이 반 세겔을 성전 세다. 성전 세라는 것은 곧 계수 된 20세 이상 된 자가 내는 것이다. 한 번 계산해서 내 버리면 평생 끝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총회원으로 계산 된 자들은 내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예수님께서 물었다. 종이 돈을 내냐? 아들이 돈을 내냐? 아들이 아버지한테 돈을 내는 법은 없다. 그래도 오해를 면하기 위해서 네가 가서 고기를 잡아 그 입을 보면 은 한 세겔이 있을 것이니까 나하고 너의 몫으로 내라. 그러나 본래 아들은 돈 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셨다.
거기 보면 성전세를 내는 문제다. 그러면 어떤 의미로 종이냐? 모세에게 속한 자들은 종으로 하나님을 봉사했다. 그래서 그들은 은 반 세겔을 내서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산되고 그들이 은 반 세겔을 내는 것이 성소 봉사해서 사용되고 곧 그것이 하나님의 성소에서 이스라엘의 봉사 즉 이스라엘을 기념하는 것이어서 그들이 하나님을 봉사하는 봉사가 은 반 세겔의 성소 활용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장자가 성소에서 봉사해야 되는데 은 오 세겔을 내면 아직 장자는 오지 않았어도 은 오 세겔의 봉사에서 장자 봉사가 나타난 것처럼 그들은 은 반 세겔을 성소 세로 내고 그렇게 해서 그것이 성소에서 활용되면 그들의 봉사가 성소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모세에게 속한 종들은 은 반 세겔로 하나님을 봉사했다. 그들이 종일 때는 그렇게 했다.

그런데 아들은 그렇지 않는데 아들은 한 푼도 내지 않고 면제된다 그런 말인가? 실은 더한 것이다. 모세는 종으로 봉사하고 은 반 세겔로 봉사했고 장자는 은 오 세겔로 훨씬 큰 봉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아들은 한 푼도 안 낸다 그런 문맥보다는 실은 그런 내는 방식으로는 봉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아들은 세금을 낸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구원된 것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피 때문에 그들은 여호와의 장자로 구원됐다. 왜냐하면 애굽의 장자는 다 죽었는데 이스라엘의 장자는 안 죽었다. 그래서 장자는 내것이라고 하나님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장자를 구별한 것이 20세 이상으로 구별 한데서 총회적으로 나타난 것이 됐다.
그러기 때문에 신약의 교회는 은 반 세겔을 내서 하나님을 봉사하는 백성으로 그렇게 구속되지 안았다. 우리들은 유월절 양의 피가 아니고 은 반 세겔이 아니고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어린양의 피로 대속되어서 아들이 되었다. 은 반 세겔로 봉사하는 종이 아니라 우리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내는 아들로 구속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지불하신 속전이다. 어린양으로 보배로운 피로 구속이 됐다 하는 말이 그런 말이다. 그렇게 해서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으로 대속된 것이다. 우리들은 은 반 세겔로 봉사한 것이 아니라 구약의 장자처럼 은 오 세겔로 하나님을 봉사하지 않고 우리들은 예수 안에서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전 생명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속전에서 말하고 있는 은혜의 일이다.
우리는 구약처럼 반복되는 제물로 하나님을 섬긴다거나 또 20세 이상으로 계수 되어서 반 세겔로 섬긴다거나 장자로 오 세겔로 섬긴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유월절 양으로 대속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장자로 구별됐어도 그런 것으로 봉사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배로운 아들의 피로 대속되어서 이제는 그의 몸으로 구원됐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양이나 짐승으로 봉사한다거나 휘장 밖에서 봉사한다거나 장자를 대표로 파송해서 봉사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주의 몸으로 구속된 모든 백성들은 그가 피로 우리를 대속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려야 할 속전이다. 은 반 세겔을 내는 종으로 봉사가 아니라 우리의 전체를 드려서 봉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약 교회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봉사다.
그래서 제사장의 봉사에 대해서 쭉 이야기를 하고 나서 제사장이 쓰는 속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세로 내는 것을 제사장이 쓴다.

아들은 주인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상속자고 주인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의 것이 전부 아들의 것이고 아버지의 일이 전부 내 일이다. 그러니까 한푼도 안 낸다 그런 자유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