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도 자 론
2006. 7. 9. 00:46ㆍ신학자료/8.목회학 자료
지 도 자 론
Ⅰ. 서 론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세상에 있는 어떤 단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일찌기 나사렛 회당에서 이렇게 천명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 (눅 4:18 - 19)
이 말씀은 주께서 감당하셔야 할 사명이면서 지상의 교회가 맡아야 할 과제인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럴 힘이 없어 보인다.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Snyder)는 그 저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가장 큰 장애물은 제도화 된 교회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오늘의 교회는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져 있고 그 생명력을 잃었으며 제도의 그물에 얽매어 있음을 본다. 교회가 가지는 대부분의 관심이 외적 표지에 집중되고 있으며 영혼을 치유하고 생명으로 이끄는데는 무력증에 걸려있다. 그러나 교회 아닌 어느 단체도 교회의 사명을 대신 할 수는 없다. 불신자들로 부터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다”는 소리와 함께 교회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 나고 있는 것은 실로 가슴 아픈일이다. 교회에 대한 이같은 지적은 단순히 교회 혁신이나 개선의 요청이 아니라 교회 본질적 개념과 사명과 존재의의를 다시 발견하고 그것으로 갱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교회는 항상 개혁의 여지가 있게 마련이고 끊임없이 갱신하면서 그 생명을 지탱해 왔다.
교회의 갱신은 성경의 본질적인 교회모습을 근거로 하여 참 교회다운 교회로 갱신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올바른 교회론의 정립은 필요하다. 그래서 바울사도의 교회관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엡 4장에서 교회론을 정립하고 오늘의 상황에서 본인이 섬기는 교회에 적용을 시도하려 한다. 이를 위해 Ray C. Stedman 저 「생명력 있는 교회의 비결」 (권명달 역)과 「Sings of The Spirit」 (H.A.Snyder 저)를 참고도서로 했다.
“어떻게 한가지 제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상심과 환멸과 절망의 근원의 되면서, 동시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생명과 끝없는 위안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요 ? 성경에서 그 대답은,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 실은 두개의 교회라는데 있읍니다. 둘 다 종교적이지만 하나는 이기적이고, 권력에 굶주리고 잔인하고, 극단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강하고, 사랑에 가득차고, 관대하고, 신령합니다” Ray C.Stedman “생명력있는 교회의 비결”, 권명달 역, 1983,p.135.
라고 Ray C.Stedman의 말을 상기하면서 다른 하나의 교회에 대한 꿈을 가져본다.
Ⅱ. 교회갱신에서 본 지도자론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조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1 - 16)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바울은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는 교회를 서로 연결되어 협동하는 지체들로 구성된,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으로 묘사한다. 놀랍고 위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교회를 몸으로 생각한다면 몸의 생리학을 배우게 되며 누구든지 그 몸에 들어가 가담하므로 비로서 지체로서 이바지할 분야가 생기게 된다. 11절에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하신 말씀은 교회의 목회자 즉 목자를 뜻한다. 목회자는 성서에서 감독(Bishop or Overseer)이라 불리고 또는 장로(Elder)라고도 불리운다. 초대 교회에서는 목회자나 장로가 단 한 사람 있는 예는 없었고 언제나 여러사람 있었다. 그들은 교사이며 관리자였으나 베드로의 말처럼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벧전5:3). 따라서 “목회자들은 우두머리로서 권세를 휘두를 것이 아니라 모범으로서 권위를 세워야 한다.”Ibid.,p.136.
그는 자신이 말씀을 순복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도 따를 의욕이 생길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어떤 권위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목회자에게 주어진 다스릴 권리는 직위가 아니라 한 은사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명령체계가 아니다. “20세기를 걸쳐 오는 동안 교회는 세상의 권세 구조를 거듭 빌어다가 그 이름만 바꾸어 놓고 사뭇 군림 함으로 주께서 의도하신 종의 도리를 파손시켰다”Ibid.
종이라면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림이 아니라 그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음으로써 행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감당해야 할 종의 직분은 무엇인가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엡4:11) 이 말씀이 명확하게 한계를 지어준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와 지도자와 평신도를 바르게 이해할 지식을 얻게 된다. 교회 생활의 원칙 중에서 에베소서 4장의 선언보다 혁명적인 것은 없는 것이다. 즉 교회의 궁극적인 일은 성도들(평신도)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지 전문적인 성직자나 소수의 선택된 평신도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선언이다.mon”인데, 예술가나 수공인(手工人) 즉 손으로 무엇을 만들거나 짓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단어 “artisan”이라는 말이 거기서 나왔다. 이 단어가 제자들을 부름과 관련하여 신약성서에 처음 나타난 것은 극히 관심을 가질만 하다.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을 지나시다가 그물 깁는 어부들을 만나셨는데 “깁는다”(Mending)이라는 낱말은 따로 에베소서 4장의 “온전케 한다”라고 번역된 것과 같은 낱말이다.Ibid.,p.149.
따라서 목회자들의 “온전케 한다”는 역할은 성도들을 깁는일, 즉 행동에 대비시키는 일이다. 그 단어는 또한 “갖추어 주다”, “준비시키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것은 평신도들로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존재로 준비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목회자의 역할 분담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성도들로 봉사의 일을 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들 네가지(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은사가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데 사용하는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제외하고는 이들 직분의 수행은 불가능한 것이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라고 했다. 또 그의 생애 말련에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가르치도록 그에게 권면했다. 이처럼 말씀으로 가르칠때에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벧전5;27)일은 가능한 것이다. 그럼 “온전케 함”의 목적이 무엇인가 ? 그것은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함,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 이같은 일들은 “세상과 교회라는 두 영역에서 사용되도록 주어진 것이다”Ibid.,p.168.
봉사의 일이란 세상을 향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과 접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서 존재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말씀과도 통한다. 여기서 봉사의 순서는 첫째로 전도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기쁜소식을 전해 주는 것보다 귀한 봉사는 없다.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죽으심은 만인의 구원을 위함인데 이 복음을 듣지 못하여 영접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죽을자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귀한 봉사이다. 둘째는 사랑의 실천이다. 기도, 위로, 구제, 보살핌 (짐을 나누어짐) 등 사랑의 실천은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봉사이다.
이와같은 일에 모델이 됐던 이들로는 17 - 18c를 통하여 경건운동을 펼치면서 교회갱신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Spener (1635 - 1705) 와 Francke (1663 - 1727), Zinzendorf (1700 - 1760)와 Wesley같은 이들이다.
H.A.Snyder의 “Sign of the Spirit” 3장, 4장, 5장을 통해서 저들 생애에 나타난 것을 보면 첫째, 성서를 깊이 연구한 것과 둘째, 평신도에 깊이 관심을 두어 지도한 것과 셋째, 가난한 이들을 세심히 보살핀 것들이다. 약속이나 한 것 처럼 저들의 삶이 이 세가지가 공통점이며 또한 전부였던 것은 우연의 일치라기 보다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종들의 가야할 길을 바르게 걸었을 뿐이라고 결론지어야 옳을 것이다.
Ⅲ. 그 적용
교회갱신의 가장 저해 요인은 목회자(나) 자신인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나 자신임을 고백한다. 이제는 성령의 물줄기가 막힘없이 흐를 수 있도록 깨끗하게 청소된 파이프가 될 것을 결심하면서 앞으로의 목회계획을 이렇게 세워본다. 편이상, 1.목회자, 2.평신도, 3.세상(교회밖)으로 나누어 실천방안을 구상했다.
(1) 목회자(나)의 갱신
항상 영적능력의 빈곤을 느껴왔다. 하나님께 의존하는 목회가 아닌 인간의 힘 (지혜, 경험등)을 의지했던 것이다. 그 증거로는 기도를 게을리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말씀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섬김의 자세와 회생적인 사랑의 목자상을 잃었다. 고압적이고 군림하는 자세가 내 모습이다. 이런것들을 해결해야 한다.
@ 기도에 대하여
①정기적으로 한다.
②두 사람 이상의 기도회는 먼저 시작하고 나중에 끝낸다.
③주말은 따로 기도의 장소를 찾는다 (기도원).
④성도들을 위하여 진실한 기도를 힘쓴다.
@ 말씀에 대하여
①정기적으로 읽고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②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접근한다.
③가르치는 일을 위하여 연구하는 자세로 임한다.
@ 대인관계에 대하여
①항상 겸손을 힘쓰겠다.
②나만 못한 삶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기를 힘쓰겠다.
③되도록 높임말(경어)를 쓰겠다.
④내 입장보다 상대방 입장을 먼저 생각하도록 힘쓰겠다.
⑤질타하기전에 하나님이 그(저)도 사랑하고 계심을 생각하겠다.
⑥대접받을 생각보다 대접할 마음을 갖도록 힘쓰겠다.
⑦불평(남에 대한)을 삼가도록 노력하겠다.
@ 가치에 대하여
①시각적이고 현실적인 가치관을 배제토록 힘쓰겠다.
②영혼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로 기쁨이 되게 힘쓰겠다.
③양이 아닌 질에 큰 비중을 두도록 힘쓰겠다.
(2) 평신도 갱신
오랜 목회 경험에서 얻은 결론적인 답이 있다. 평신도를 양육하지 않고 교회부흥을 꾀하는 일은 모자가 아니라 사업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하게 옛것을 답습함은 양육의 일이 얼마나 나 자신을 속박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편안한, 목회, 충분한 여가와 휴식을 맛보기 위하여 평신도들을 거의 방치하고 지냈다. 그러나 진젠돌프나 요한 웨슬레의 소그룹을 통한 지도육성은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낳았는가.
이제부터 어려운 길, 벅찬 일에 도전하여 보려 이렇게 계획한다.
@ 성경공부에 대하여
①계층별로 주 1 회 이상 성경공부를 실시한다.
②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주일에 있는 각 기관 월례회는 평일로
돌리고 주일은 성경공부를 한다.
③구역인도자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한다 (구역공과 지도만 아니라).
④성경읽기 대회를 대대적으로 실시한다.
@ 찬양에 대하여
①주일밤을 찬양의 밤으로 하고 찬양을 통한 영적각성을 일으킨다.
②찬송가 가사외기 대회를 한다.
@ 교제와 축하에 대하여
①축하할 만한 일들을 찾아 교회가 빠짐없이 축하해 준다(생일, 결
혼, 기념일, 출생 등)
(3) 세상(교회 밖)을 향하여
한국교회 현실에서 세상(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는 이들은 자유주의 신앙노선을 걷는 사회복음주의자들이다. 개인심령 구원을 힘쓰는 복음주의 교회 입장은 세상에 대하여 소극적인 인상을 주어 왔다. 또 그럴수 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 복음주의 입장에 서는 변명해 왔다. 그러나 일찌기 경건주의를 앞세웠던 갱신의 기수들의 사회관심과 사랑은 얼마나 적극적이었던가. 고아원을 세우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차원의 사업에 관심을 두고 그야말로 영혼과 육체를 아울러 돌아보았다.
사회의 비등한 여론의 따가움은 교회가 세상을 등한이 하는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구상해 본다.
@ 구제에 대하여
①제정에 비례해서 파격적으로 구제비를 세운다.
②도움의 물질보다 사랑의 마음을 준비한다.
③ 1년에 2번 헌혈운동을 한다.
@ 전도에 대하여
①분기별로 지역전도를 힘쓴다 (전체신도).
②개인전도 훈련을 실시한다.
③일년에 2번 총동원 주일을 지킨다.
Ⅰ. 서 론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세상에 있는 어떤 단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일찌기 나사렛 회당에서 이렇게 천명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 (눅 4:18 - 19)
이 말씀은 주께서 감당하셔야 할 사명이면서 지상의 교회가 맡아야 할 과제인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럴 힘이 없어 보인다.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Snyder)는 그 저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가장 큰 장애물은 제도화 된 교회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오늘의 교회는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져 있고 그 생명력을 잃었으며 제도의 그물에 얽매어 있음을 본다. 교회가 가지는 대부분의 관심이 외적 표지에 집중되고 있으며 영혼을 치유하고 생명으로 이끄는데는 무력증에 걸려있다. 그러나 교회 아닌 어느 단체도 교회의 사명을 대신 할 수는 없다. 불신자들로 부터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다”는 소리와 함께 교회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 나고 있는 것은 실로 가슴 아픈일이다. 교회에 대한 이같은 지적은 단순히 교회 혁신이나 개선의 요청이 아니라 교회 본질적 개념과 사명과 존재의의를 다시 발견하고 그것으로 갱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교회는 항상 개혁의 여지가 있게 마련이고 끊임없이 갱신하면서 그 생명을 지탱해 왔다.
교회의 갱신은 성경의 본질적인 교회모습을 근거로 하여 참 교회다운 교회로 갱신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올바른 교회론의 정립은 필요하다. 그래서 바울사도의 교회관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엡 4장에서 교회론을 정립하고 오늘의 상황에서 본인이 섬기는 교회에 적용을 시도하려 한다. 이를 위해 Ray C. Stedman 저 「생명력 있는 교회의 비결」 (권명달 역)과 「Sings of The Spirit」 (H.A.Snyder 저)를 참고도서로 했다.
“어떻게 한가지 제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상심과 환멸과 절망의 근원의 되면서, 동시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생명과 끝없는 위안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요 ? 성경에서 그 대답은,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 실은 두개의 교회라는데 있읍니다. 둘 다 종교적이지만 하나는 이기적이고, 권력에 굶주리고 잔인하고, 극단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강하고, 사랑에 가득차고, 관대하고, 신령합니다” Ray C.Stedman “생명력있는 교회의 비결”, 권명달 역, 1983,p.135.
라고 Ray C.Stedman의 말을 상기하면서 다른 하나의 교회에 대한 꿈을 가져본다.
Ⅱ. 교회갱신에서 본 지도자론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조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1 - 16)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바울은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는 교회를 서로 연결되어 협동하는 지체들로 구성된,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으로 묘사한다. 놀랍고 위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교회를 몸으로 생각한다면 몸의 생리학을 배우게 되며 누구든지 그 몸에 들어가 가담하므로 비로서 지체로서 이바지할 분야가 생기게 된다. 11절에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하신 말씀은 교회의 목회자 즉 목자를 뜻한다. 목회자는 성서에서 감독(Bishop or Overseer)이라 불리고 또는 장로(Elder)라고도 불리운다. 초대 교회에서는 목회자나 장로가 단 한 사람 있는 예는 없었고 언제나 여러사람 있었다. 그들은 교사이며 관리자였으나 베드로의 말처럼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벧전5:3). 따라서 “목회자들은 우두머리로서 권세를 휘두를 것이 아니라 모범으로서 권위를 세워야 한다.”Ibid.,p.136.
그는 자신이 말씀을 순복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도 따를 의욕이 생길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어떤 권위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목회자에게 주어진 다스릴 권리는 직위가 아니라 한 은사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명령체계가 아니다. “20세기를 걸쳐 오는 동안 교회는 세상의 권세 구조를 거듭 빌어다가 그 이름만 바꾸어 놓고 사뭇 군림 함으로 주께서 의도하신 종의 도리를 파손시켰다”Ibid.
종이라면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림이 아니라 그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음으로써 행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감당해야 할 종의 직분은 무엇인가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엡4:11) 이 말씀이 명확하게 한계를 지어준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와 지도자와 평신도를 바르게 이해할 지식을 얻게 된다. 교회 생활의 원칙 중에서 에베소서 4장의 선언보다 혁명적인 것은 없는 것이다. 즉 교회의 궁극적인 일은 성도들(평신도)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지 전문적인 성직자나 소수의 선택된 평신도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선언이다.mon”인데, 예술가나 수공인(手工人) 즉 손으로 무엇을 만들거나 짓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단어 “artisan”이라는 말이 거기서 나왔다. 이 단어가 제자들을 부름과 관련하여 신약성서에 처음 나타난 것은 극히 관심을 가질만 하다.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을 지나시다가 그물 깁는 어부들을 만나셨는데 “깁는다”(Mending)이라는 낱말은 따로 에베소서 4장의 “온전케 한다”라고 번역된 것과 같은 낱말이다.Ibid.,p.149.
따라서 목회자들의 “온전케 한다”는 역할은 성도들을 깁는일, 즉 행동에 대비시키는 일이다. 그 단어는 또한 “갖추어 주다”, “준비시키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것은 평신도들로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존재로 준비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목회자의 역할 분담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성도들로 봉사의 일을 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들 네가지(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은사가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데 사용하는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제외하고는 이들 직분의 수행은 불가능한 것이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라고 했다. 또 그의 생애 말련에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가르치도록 그에게 권면했다. 이처럼 말씀으로 가르칠때에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벧전5;27)일은 가능한 것이다. 그럼 “온전케 함”의 목적이 무엇인가 ? 그것은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함,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 이같은 일들은 “세상과 교회라는 두 영역에서 사용되도록 주어진 것이다”Ibid.,p.168.
봉사의 일이란 세상을 향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과 접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서 존재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말씀과도 통한다. 여기서 봉사의 순서는 첫째로 전도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기쁜소식을 전해 주는 것보다 귀한 봉사는 없다.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죽으심은 만인의 구원을 위함인데 이 복음을 듣지 못하여 영접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죽을자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귀한 봉사이다. 둘째는 사랑의 실천이다. 기도, 위로, 구제, 보살핌 (짐을 나누어짐) 등 사랑의 실천은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봉사이다.
이와같은 일에 모델이 됐던 이들로는 17 - 18c를 통하여 경건운동을 펼치면서 교회갱신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Spener (1635 - 1705) 와 Francke (1663 - 1727), Zinzendorf (1700 - 1760)와 Wesley같은 이들이다.
H.A.Snyder의 “Sign of the Spirit” 3장, 4장, 5장을 통해서 저들 생애에 나타난 것을 보면 첫째, 성서를 깊이 연구한 것과 둘째, 평신도에 깊이 관심을 두어 지도한 것과 셋째, 가난한 이들을 세심히 보살핀 것들이다. 약속이나 한 것 처럼 저들의 삶이 이 세가지가 공통점이며 또한 전부였던 것은 우연의 일치라기 보다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종들의 가야할 길을 바르게 걸었을 뿐이라고 결론지어야 옳을 것이다.
Ⅲ. 그 적용
교회갱신의 가장 저해 요인은 목회자(나) 자신인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나 자신임을 고백한다. 이제는 성령의 물줄기가 막힘없이 흐를 수 있도록 깨끗하게 청소된 파이프가 될 것을 결심하면서 앞으로의 목회계획을 이렇게 세워본다. 편이상, 1.목회자, 2.평신도, 3.세상(교회밖)으로 나누어 실천방안을 구상했다.
(1) 목회자(나)의 갱신
항상 영적능력의 빈곤을 느껴왔다. 하나님께 의존하는 목회가 아닌 인간의 힘 (지혜, 경험등)을 의지했던 것이다. 그 증거로는 기도를 게을리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말씀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섬김의 자세와 회생적인 사랑의 목자상을 잃었다. 고압적이고 군림하는 자세가 내 모습이다. 이런것들을 해결해야 한다.
@ 기도에 대하여
①정기적으로 한다.
②두 사람 이상의 기도회는 먼저 시작하고 나중에 끝낸다.
③주말은 따로 기도의 장소를 찾는다 (기도원).
④성도들을 위하여 진실한 기도를 힘쓴다.
@ 말씀에 대하여
①정기적으로 읽고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②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접근한다.
③가르치는 일을 위하여 연구하는 자세로 임한다.
@ 대인관계에 대하여
①항상 겸손을 힘쓰겠다.
②나만 못한 삶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기를 힘쓰겠다.
③되도록 높임말(경어)를 쓰겠다.
④내 입장보다 상대방 입장을 먼저 생각하도록 힘쓰겠다.
⑤질타하기전에 하나님이 그(저)도 사랑하고 계심을 생각하겠다.
⑥대접받을 생각보다 대접할 마음을 갖도록 힘쓰겠다.
⑦불평(남에 대한)을 삼가도록 노력하겠다.
@ 가치에 대하여
①시각적이고 현실적인 가치관을 배제토록 힘쓰겠다.
②영혼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로 기쁨이 되게 힘쓰겠다.
③양이 아닌 질에 큰 비중을 두도록 힘쓰겠다.
(2) 평신도 갱신
오랜 목회 경험에서 얻은 결론적인 답이 있다. 평신도를 양육하지 않고 교회부흥을 꾀하는 일은 모자가 아니라 사업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하게 옛것을 답습함은 양육의 일이 얼마나 나 자신을 속박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편안한, 목회, 충분한 여가와 휴식을 맛보기 위하여 평신도들을 거의 방치하고 지냈다. 그러나 진젠돌프나 요한 웨슬레의 소그룹을 통한 지도육성은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낳았는가.
이제부터 어려운 길, 벅찬 일에 도전하여 보려 이렇게 계획한다.
@ 성경공부에 대하여
①계층별로 주 1 회 이상 성경공부를 실시한다.
②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주일에 있는 각 기관 월례회는 평일로
돌리고 주일은 성경공부를 한다.
③구역인도자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한다 (구역공과 지도만 아니라).
④성경읽기 대회를 대대적으로 실시한다.
@ 찬양에 대하여
①주일밤을 찬양의 밤으로 하고 찬양을 통한 영적각성을 일으킨다.
②찬송가 가사외기 대회를 한다.
@ 교제와 축하에 대하여
①축하할 만한 일들을 찾아 교회가 빠짐없이 축하해 준다(생일, 결
혼, 기념일, 출생 등)
(3) 세상(교회 밖)을 향하여
한국교회 현실에서 세상(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는 이들은 자유주의 신앙노선을 걷는 사회복음주의자들이다. 개인심령 구원을 힘쓰는 복음주의 교회 입장은 세상에 대하여 소극적인 인상을 주어 왔다. 또 그럴수 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 복음주의 입장에 서는 변명해 왔다. 그러나 일찌기 경건주의를 앞세웠던 갱신의 기수들의 사회관심과 사랑은 얼마나 적극적이었던가. 고아원을 세우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차원의 사업에 관심을 두고 그야말로 영혼과 육체를 아울러 돌아보았다.
사회의 비등한 여론의 따가움은 교회가 세상을 등한이 하는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구상해 본다.
@ 구제에 대하여
①제정에 비례해서 파격적으로 구제비를 세운다.
②도움의 물질보다 사랑의 마음을 준비한다.
③ 1년에 2번 헌혈운동을 한다.
@ 전도에 대하여
①분기별로 지역전도를 힘쓴다 (전체신도).
②개인전도 훈련을 실시한다.
③일년에 2번 총동원 주일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