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음악
2006. 7. 9. 00:48ㆍ신학자료/8.목회학 자료
1. 목회와 교회음악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전제들(여섯 가지 명제).
1. 모든 목회자는 교회음악에 관여해야 한다.
2. 교회 음악인들은 목회사업에 관여해야 한다.
3. 목회자는 음악의 목적과 실행적인 측면을 신학적인 목표와 연관지어야 한다.
4. 교회음악인은 자신의 음악적인 전문지식을 목회사업이라는 보다 넓은 개 념과 연결시켜야 한다.
5. 목회자는 음악적 기술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교회음악에 영향을 주는 문 제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6. 교회음악인은 신학에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예술 형태로서의 음악”을 “복음 전파사업으로서의 음악” 이라는 보다 높은 차원의 이해로 끌어올 려야 한다.
2. 교회 회중의 음악
신약성서의 음악
신약성서는 혼자 부르는 찬송이나 회중이 함께 부르는 찬송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교회중에서 찬미하는 것”을 권면하고 가르치는것이 교회음악이 성취해 야 할 최고의 목표이다.
가치의 위계
만족스런 찬양의 경험을 갖고자 하는 소망을 건설적으로 성취하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 다. 하나는 찬양을 방해하는 요소를 찾아내어 시정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바람직한 찬양에 도움이 되는 요소들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방해적인 요소들
오 용: 안타까운 점은 찬양의 행위를 왕왕 다른 의례적인 것들과 결합시킨다느 사실이다.
신약성서도 찬양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지만, 상황의 편의를 도모하기위한 목적으로 사용한 예는 찾아볼수 없다.
교회회중의 찬양을 편의주의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이러한 습관적인 오용은 찬송의 참 의미를 무의미하게 만들수밖에 없다.
무의미성: 찬송가의 원래의 뚜렷한 주제를 무시하고 다른것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할때마다 참여자들은 다른것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유의미성의 수준을 저하시키는 또 한 가지 요소는 “준비자세”의 결여이다.
무감동: 자주 부르거나 틀에박힌 방식으로 부르게 될때 무의미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방해적인 요소들이 늘 존재하고 교회회중의 찬양에 대해 고종관념을 갖고있을때, 그것은 궁극적으로 예배에 손실을 준다는 것이다. 목회자나 인도자가 이렇게 습관적으로 찬양을 이끌어 나갈때, 신약성서에서 권하고있는 종류의 찬양을 경험을 얻게될 확률은 감소되거나 아예 없어지게 될 수도 있다.
성공적인 요소들
가사가 건전한 찬송: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는 반드시 신학적으로 건전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큰 힘을 미치는 그러한 노래들에는 복음의 진리가 올바로 담겨져 있어 야 한다.
잘 선택된 찬송가: 찬송가를 선택하는 과정에는 현장의 상황과 교회회중의 장기적인 필 요 모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문제는 오로지 가스펠 찬송만을 부르는데 있다.
찬송가의 절의 선택은 으미있는 것, 그리고 특정한 상황에 적합한 내용과 표현을 담은것으로 일부, 또는 전부를 선택할수있다.
목회자와 음악인이 서로 차이점들을 서로 밝히고 해소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창조적인 탐색 의 기회를 얻을수있을 것이다.
잘 부른 찬송가
초 점: 실용적인 기능보다는 영적인 가치의 영역에 초점을 두도록 회중을 이끌어야 하며, 그러한 목적을 위해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 두는것이 필요하다.
박 자: 박자가 너무 빠를때는 노래하는 사람들이 어휘와 곡조를 제대로 소리내기도 어려워 진다.
음 향: 반향이 너무크거나 “잠자는 방”의 음향환경은 좋지 않다.
친숙성-지나친 친숙성: 신선한 느낌을 줄수있는 어떤 요소라도 첨가된다면 도움이 될것이 다.
친숙성-전혀 친숙하지 않은 곡: 전혀 모르는 새 곡이 사용될 경우, 적어도 성가대만이라도 노래에 친숙해지고 편안히 노래할수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반 주: 대부분의 교회회중과 성가대는 다른 지도자보다는 피아노나 올갠으로부터 노래에 필요한 일차적인 자극과 지침을 받는다.
인도자의 책임: 적절한 찬송가들을 선택하기위한 맥락을 충분히 검토하게 되면, 그것으로 인도자의 책임의 상당부분이 완수된 것이다.
3. 성 가 대
왜 성가대가 존재하는가?
성가대의 역할을 제사장으로, 때로는 복음전도자로, 그리고 또 보조자로 간주할때 흥미롭고도 일관성없는 현상이 나타난다. 필자 자신의 입장은 성가대를 보조자로 보는것이다. 이 개념을 따를때, 성가대원은 다른 교회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도교 신자의 성장의 단계를 밟아나가야 하는것이 마땅하고 또 바람직한 일이다.
성가대와 회중의 음악
첫째, 성가대가 따로 노래를 부를때 회중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만한다. 성가대가 합창곡 을 매주 불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신도들 각자가 성취감과 목적의식을 느끼 는것이 성가대의 성장과 건전성에 필요하다.
과정인가, 결과인가?
기독교의 가치관의 견지에서 평가해 볼때, 성가대가 관여하는 과정은 음악 자체보다 사람 에 대한 더 큰 관심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과정에 우선성을 두는 음악적 탁월성에 대한 욕구를 포기해야 하는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다. 만일 과정이 바람직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훌륭한 음악의 창조로 연결될 것이다.
전쟁 사령부인가, 화합의 센터인가?
성가대가 만들어 내는 산물보다 성가대 자체에 더 가치를 둘때, 성가대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는 모범이 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기독교 신앙을 더 잘 이해하고 그대로 살기 위해 자각적으로 노력하는 자세가 노래하는 기술연마에 투여될 것이 다.
4. 올 갠
목회자와 올가니스드 각자가 주어진 상황의 잠재력과 한계를 인식하는것이 필수적이다.
올갠과 교회회중의 찬양
어떤 크기의 악기를 연주하게 되든지, 또 어느 수준의 역량을 갖고 있든지, 모든 올가니스 트의 첫째 가는 사명은 회중의 찬양을 후원하는 것이다.
“예배는 첫 음과 함께 시작된다.”
올갠 전주에 관한 상이한 이해와 사용법들.
1. 신호로서의 전주: 대부분의 화중에게 있어서 전주 시간은 예배 시간이 아니라 예배 이전에 연주되는 서곡이다.
2. 분위기로서의 전주: 그러한 목표를 설정한 경우, 대부분의 회중은 전주의 목적을 귀 띔 받을 필요가 있다.
3. 음악을 통한 예배로서의 전주: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예배 참예자 편에 서 음악에 전심하는것이 필요하다. 다만 가끔 암시를 주거나 상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4. 이념을 통한 예배로서의 저주: 오히려 진정한 응답을 하기 위해서는 예배 참예자 편 에서 이념과, 또 연관된 관념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이상의 네가지 견해들이 개별적이고 서로 분리되는것은 아니지만, 몇몇은(즉 1과 2, 또는 1과 3) 서로 배타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차이점들을 깨닫고 인정해야하며 그것을 그리스 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수렴시킬수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음악의 벽지
예배드리는 교회는 침묵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침묵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만일 회중이 침묵의 시간에 익숙하지 않다면, 각 교인들은 그 시간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지도를 받을 필요가 있다.
회중의 찬양의 우선성은 두 가지 사실을 함축한다.
첫째, 그것은 목적과 평가의 우선성을 의미한다.
둘째, 그것은 비교적 능력이 제한된 올가니스트의 능력의 범위 안에서도 성공적인 목회사 역이라는 과제를 수행할수 있음을 의미한다.
5. 음악과 예배
왜 예배에서 음악을 사용하는가? 라는 질문에 성경은 찬양의 당위성에 대하여는 이야기 하 고 있지만 어떤 음악인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가르침을 하지 않는 다.
교회사를 보아도 음악의 역할에 관해 일치된 입장을 가진 적이 없다.
참여로서의 음악
이 입장은 일차적으로 전체 회중을 참여자로서 경험하게 하는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성가 대의 참여, 그리고 개별적인 독창자나 연주자들은 최소한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주석으로서의 음악
곡조는 특별한 형식이 없이 자유로우며 본문의 서역에 따라 다양해 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음악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실용적인 것이다. 음악은 완전히 본문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권면으로서의 음악
그러한 곡들은 대중 복음주의를 배겨으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음악은 개인적인 신앙간증의 표현을 듣는 이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대한 유사한 체험으로 인도하려는 초대와 결합한 것 이다. 이때 독창자나 성가대는 설교자나 목음전도자의 임무를 담당하거나 동참하게 된다.
분위기로서의 음악
기도나 성찬식같은 예배의 봉헌 순서시에 음악이 조용히 배경에 깔릴때, 초대의 시간에 성 가대가 잔잔하고 부드럽게 허밍할때, 그러한 때에 우리는 음악이 분위기를 조성하기위해 사용되는 이 위험하고 불분명한, 그러나 중요한 영역을 들어서게된는 것이다.
이 방법은 참된 예배의 결과로서 경축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러한 감정을 인위적 으로 조작할 위험이 있다.
교회음악인이나 목회자는 복음에 대해 사람들이 응답할때 자연히 수반되는 완전히 적절한 감정들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복음을 전파하는 일보다 더 강조하는 위험 지대에 서있다.
계시로서의 음악
음악은 주석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제공할수있는 계시의 종류이외에도 잠재적으로 깊은 차원의 의사소통이 있다. 즉 신학적인 교리를 초월하는 이해와 의미를 신앙에 부여하는 것 을 말한다.
현실용납에 부치는 추신
소예배당과 대성당은 예배드리는 그리스도인에게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경험을 잠재적으로 제공한다는 것을 깨닫는것이 중요하다. 각상황의 타당성과 한계를 깨닫고 주어진 상황에 적합한 예배형식을 선택하는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6. 예배를 위한 계획
예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예배의 형태에는 최소한 네 가지가 있다.
1. 다양성: “찬송가 샌드위치”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예배는 다양성의 원치과 모든것이 어 떻게든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그러한 구성에 대해 이렇다할 정당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2. 주제 중심주의: 그 날의 주제를 뚜렷하게 부각시키려는 지대한 노력을 하지 않는한, 많 은 예배 참예자들은 예배의 초반부에 있었던 찬양과 성경봉독의 내용이 30분 후에 이어질 설교와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 닫지 못한다.
3. 교차 형태: 예배를 이와같이 구성하는것은 처음에 나온 두 형태의 예배와는 판이한 일 종의 역동성을 포함한다.
첫째 모델은 다양성과 예측가능성에 의존하고,
둘째 모델은 지적인 구성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 셋째 모델은 인간적인 경험과 성서의 예들에서 흔히 볼수있는 과정을 보여준다.
4. 대화 형태: 이러한 종류의 경험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익히 알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예시한 것처럼, 이 예배 형태는 사람들이 서로를 잘 알고 기도교에 헌신하는 정도가 비슷한 작은 그룹에 국한된다. 만일 이 세 가지 요소(규 모, 서로 잘 아는 정도, 믿음의 강도의 보편성)가 심각한 정도로 변화될때, 그 그룹이 즉석에서 의미있게 예배를 진행시키는 을력은 감소될 것이다.그 러한 때에, 예배 의식이라는 구조가 개입되는것이 도움이 된다.
계 획
누가 예배를 계획해야 하는가?: 목회자와 음악 감독자가 지난 주의 주보를 들고 적절하게 내용을 바꾼후, 모든것를 비서에게 맡기는 것이 활씬 간단하고 능률적인 일이긴 하다. 이에 대한 대안은 시간과 힘을 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따분하고 힘든 학습과저을 허용해야 한다. 예배를 위한 훈련과정이 “목회사역을 위해 모든 성도를 준 비시키는” 일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믿는 확신이 없다면, 이 모든 준비과정은 무의미 할 뿐이다.
어떻게 예배를 계획할 것인가?: 예배를 준비하는 개인, 운영위원, 또는 평신도 그룹은 먼저 몇가지 기본적인 결론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설교와 성례식이 예배 전체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예배에서 목회자가 하는 역할의 고유한 측면은 무엇인가? 대중예배를 계획하고 인도하는데 있어서 어떤 전문지식을 계발하고 활용해야 하는가? 우리 교회 회중에게 적합한 예배 형태와 순서의 다양성의 범위는 얼마나 넓은가?
이러한 사항들을 고려하고 난뒤, 가장 중요한 논제는 시간 배정의 문제이다. 즉 예배의 모형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찬송가 샌드위치”의 예배에 수년간 익숙해진 수동적인 자세로부터 예배에 의식적으로 적극 참여하는 자세로 변화되는 과정은 느리고 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치있는 목표이다.
7. 음 향 과 예 배
환경의 영향은 회피할수 없으며 방이 갖는 음향적인 성격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여향을 미친다.
소리의 특징들
메아리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나, 적당한 양의 반향은 바람직하다.
회주의 요청에 따라 융단, 커텐, 그리고 쿠션을 넣은 회중석 등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러 한 소재와 재료들은 소리를 대단히 잘 흡수한다. 이러한 소재들을 혼합하여 사용하면 음향 적으로 죽은 방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당연하다.
음향과 기능
교회의 경우, 회중이 적절하게 예배에 동참할수 있기 위해서는 방의 모든 부분에서 나는 소리들을 강화시키는것이 필수적이다.
음악을 위한 조건에 대해 말하면, 예배를 위한 방은 바이얼린의 몸체나 공명상자가 줄의 진동에 의해 나는 소리를 증폭시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음악 소리를 도와주고 강화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행동을 위한 제안
현재의 상황: 죽은 방일 경우에는 소리를 흡수하는 재료-융단, 커텐, 방음 타일 등- 를 제거하는 것이다. 만약 현재의 방이 지나치게 음향적으로 살아 있다면, 방음 소재를 조금만 사용해 보는 것이다.
상황을 변화시키기: 시간을 내어 교회의 대표단을 인솔하여 음향이 잘 고려된 교회들 을 순회하여 보라.
새로운 환경: 이것을 사치스러운 경비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새 건물을 사용하 게 될 회중의 예배 전체가 여기에 달려있음을 함리적으로 인식하는 당연한 귀결로 보아야 한다.
음향적으로 필요한 조건들
목회자- 자신의 목소리가 잘 전달된다는 확신을 갖고 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말할수 있 어야 한다.
성가대- 쉽게 노래할수 있고 따라서 방해적 요소가 없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오갠- 소리를 “부드럽게” 만들고, 융화시키고, 아름답게 만들고, 그리고 간화시킬수 있도 록 충분한 반향을 필요로 한다.
회중- 말과 음악을 똑똑하고 쉽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쿠션과 덥개를 씌운 회중석은 사람이 차 있든지 비어 있든지 상관없이 똑같은 음향적 특징 을방에 부여해줄 것이다.
8. 록 음악의 시대인가? 반세 반석인가?
20세기 중반의 상황
20세기 중반에는 팝음악(또는 세속음악)과 교회음악(또는 신성한 음악)간의 구분이 명확하였다. (필자가 사용하는 “팝음악”이라는 말은 가볍고 상업적인 연예활동에 속하는 어떠한 형태의 음악이든지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양자는 각각 명확히 정의되고 확연하게 서로를구분짖는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다.
교회밖의 상황
수세기 동안, 팝음악은 문화적 악(惡)의 상징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들어와 대중통신의 발달과 더불어, 팝음악은 여러가지 형태로 20세기 초반에 숨어 있던 어두운 장소로부터 빠져나와 사실상 사회 전체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세계 전반을 통해 보편적으로, 선교사들은 기독교 신앙이 전파될때 새 신도들이 새로 얻은 신앙을 표현할수 있도록 새로운 종류의 음악을 배워야 한다는것을 주지시켜왔다. 드럼소리(즉 세속음악이나 팝음악의 특징적인 소리)는 옛날 이교도의 삶의 소리로 인식되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삶은 새로운 종류의 음악(서부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 음악)으로 표현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관습은 20세기 중반에 와서 의구심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많은 지도자급들이 서양 선교사들 대신 토착지 인물들로 대치됨에 따라, 토착적인 음악의 표현의 적합성이 재검토되고 인정되었다.
교회 내부의 상황
20세기 중반까지는 교회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학도라면 당연해 교회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음악이 탁월하고(“가장 좋은 것만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적합함.”) 그리고 동시에 신성해야(어떠한 세속적 내용도 피해야 함.) 한다고 배웠다.
1940년대 말에 랠프 카마이클의 작품들을 선두로 하여 일종의 “복음주의적인 팝송”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프레드 워링과 그의 펜실베니아 사람들과 같은 당시의 세속음악그룹과 깊이 연관된 다양한 악기와 합창기법을 사용한 음악이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 계통의 라디로 방송국의 고정 프로가 되었던 이러한 음악조차도 듣자마자 그것이 어떤 음악인지 알수 있었고, 또한 세속음악과는 분명히 다른 종교적 색채가 강하였다. 교회 성가대는 팔레스트리나, 바하, 스타이너, 해리로우 셸리, T. 테르티우스 노블, 또는 죤 피터슨의 음악을 부를수 있었지만, 그 성가곡들은 일상적인 세계의 음악과는 혼동될 위험성이 전혀 없었다.
혁 명
팝음악이 교회로 침투하다.
1960년 쯤에 이 모든 상황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주목할 만한 최초의 충격은 제프리 보몬트의 ꡔ20세기 포크 미사ꡕ라는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1950년대 말에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이것은 대양을 건너 미국에 건너와 “째즈 미사”라는 이름으로 각광을 받았다.(물론 이 음악 용어는 1930년대 말에 유행했던 스윙에서 나온 것이다.) 그 다음 십년동안, 예배와 복음전파를 목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실험적인 팝음악적 표현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였다.
1960년대 중반에 특별한 자극이 두 방향에서 전달되었다. 복음주의적 개신교 교회는 빌리 그래함의 영화와 그들이 팝사운드를 사용하는 음악으로 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그러나 이 새로운 사운드는 빌리 그래함 집회 자체에는 별로 채택되지 않았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제 2차 바티칸 공회의 결정에 크게 영향을 받았는데, 여기에서 특히 연관성있는 두 가지 결정 사항은 다음과 같다. ⑴ 전세계를 통틀어 예배의식은 전통적인 라틴어보다는 그 지역의 언어로 진행돼어야 하고, ⑵ 회중의 음악을 그 지역의 언어로 연주하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때에 해외 선교지에서도 이제까지 거부되어온 지역의 모국어와 전통음악을 사용하는 물결이 강해졌다.(이것은 물론 일상적인 세속음악을 그 나라에서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것과 똑같은 문제이다.)
교회가 팝음악에 침투하다.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밥 딜란같은 포크 음악인들은 지나치게 종교적이지는 않더라도, 여러가지 도덕적인 주제들-교회가 마땅히 진지하게 고려할 만한 주제들-에 초점을 둔 노래들을 작곡하고 노래하였다. 곧 성경의 표현이나 본문에 토대를 둔 노래들-예를 들면, “턴,턴,턴”이나 레오나드 코헨의 “이삭 이야기”같은 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이어서 호킨스 싱거스의 “오, 해피 데이”나 쥬디 콜린즈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같이, 특정한 찬송가를 소재로 한 노래들이 인기를 끌었다. 끝으로 가스펠, 예수 그리스도 수퍼 스타, 그리고 레오날드 번쉬타인의 미사와 같은 아주 기독교적인 음악들이 창작되기 시작하였고 교회 밖의 세계에서도 완전히 수용되었다. 그러므로 1950년대에 서로 불가침적이던 세속음악과 신성한 음악의 범주는 1975년에 이르러 근본적으로 서로에게 완전히 침투하게 되었다.
혁명의 함의
현대적인것의 수용: 20세기에 와서 처음으로 보통 교회 음악인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동시대 인물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일상어의 수용: 우리는 포크 음악의 형태로 일상어를 인정하는 물결을 타고, “일회용 음악”의 개념을 재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은 창작품의 수준이 얼마나 정련한가 하 는 것과는 상관없이 창의성을 권장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초래했다.
일상어를 용인함으로써 교회는 두 가지 사실을 밝히는 셈이 되었다.
첫째, 교회는 가장 소박한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함께 참여할수 있는 형태로 기 독교 신앙의 위대한 진리를 표현하는 것에 적극 찬서하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신앙에 대해 노래하기 위해 특별히 “종교적인” 음악의 언어를 배워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전반을 통틀어 부흥기를 맞을때마다 교회 음악은 자신을 둘러싸고있는 세상, 즉 전문적인 음악인들의 세련된 세계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세계와 접촉을 재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그러한 움직임을 다시 목격한 것이다.
재검토: 단순히 음악, 복장, 오락활동, 또는 식사법 등과 같은 외형적인 것을 강조하 는 것에서 태도, 가치관, 목표, 그리고 헌신과 같은 내적인 문제로 시선을 돌리도 록 한 것이다.
혁명의 결과
새 찬송가: 찬송가 가사를 쓰고 작곡을 하도록 많은 사람들을 장려하는 상황이 되엇 지만, 목회자와 교회 음악인들로서는 그러한 자료들을 선별해야하는 필요가 생기 게 되었다. 그러한 많은 창작곡들은 영속적인 가치를 벼로 갖고 있지 않기 때문 이다.
새로운 보수주의: 1870년대의 팝음악의 양식을 본따서 만들었던 가스펠 찬송가는 이 제 교회의 뚜렷한 “이질성”을 표현하는 음악적 표현이 되었다. 가스펠 음악이 그러 한 특징을 갖는 변화를 겪은것이 아니라 그 음악은 같은 형태로 남아 있으나 다른 음악적 양식들이 사회에서 발젼하게 된 것이다.
교회 음악이 사회의 음악의 손길을 완전히 벗어나 또 다른 혁명을 겪게되려면 다시 1세기를 더 기다려야 할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와 사회간의 관계에서 항상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교회 음악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부단히 변화에 도전하도록 이끌수 있을 것이다.
상업주의: 인쇄업자들의 상업주의 때문에 사스펠이 일회용으로 사용될 수있는 사능성 이 극소화되거나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 결과 교회는 수준 낮은 노래들을 영구적 으로 가지고 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많은 수의 노래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 실은 최고의 가스펠 찬송을 찾아내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원주의: C. S. 루이스는 “각자가 자신의 취향과 욕구를 억제하고 기꺼이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따르려는 상황에서만 교회 음악의 진정한 ‘그리스도적’ 인 측면이 존재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혁명에의 참여
선 택: 선별하는 데에 신중하라. 현대의 적자생존 고정을 참조하라. 가장 유명하고 가 장 인기있는 작곡가들이 쓴 곡이라 하더라도 모두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이 것이 바로 창조과정의 핵심이다.
사 용
첫 단계: 교회 예배에 새로운 표현을 소개할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새로운 음악을 위한 상황을 조성하라. 새로운 음악은 반드시 훌륭하게 연주되어야 한다. 친숙한 것으로 선택하라.
변화의 고통: 변화는 어느 정도의 불편한 느낌이나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음 악에 대한 불안감은 당연한 것이고 그러한 불안감을 줄이려면 새로운 음악을 주의 깊게 선택하고 지혜롭게 도입한다면 최소로 줄일 수 있다.
다르지만 동등한 것: 전통주의자들도 현대적인 것을 들을 필요가 있으며, 재즈광이라 해 도 역사적인 전통으로부터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문제들: 교회음악의 이러한 혁명이 신나고 새로운 사운드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 이는데 성공한 반면, 현대 음악이 음악적인 모든 문제들에 해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거기에는 음향, 성가대, 지휘자, 회중찬양의 수준, 프로그램 등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비 전문적인 지식으로는 옛것에 대한 답습에만 머물 뿐이다. 훌륭한 발전을 하기위해서는 계속적인 관심과 재교육이 필요하다. 즉 교회는 목회자와 음악지도자 그리고 성가대원들과 평신도 청소년들 등의 음악적 수준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를 해야 한다. 교회는 그러한 책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팝음악은 교회에 침투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침투는 우리로하여금 교회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로,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 즉 세계와 새로운 관계에로 전진하도록 도와주었다. 그 침투는 예배와 복음 전파의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 주었고, 또한 그 자체와 관련된 문제들을 한아름 안겨 주었다. 무엇보다도 이 혁명은 하나님의 나라에는 항상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모두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추 신
우리는 서로 함께,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목회사역에 동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일에 부르셨고, 목회사역을 담당하는 우리를 인도하고 후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우리 각자가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우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것에 귀를 기울이라!
서 평
청소년들을 지도하면서 당장 문제거리가 되는 것이 음악(복음송, 드럼 등등)에 관한 문제인다. 그들에게 교육을 잘 시킨다고 하여도 또 문제가 되는 것이 있는데 장년들이다. 장년들을 옛것을 결코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일부터 먼저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것이 선교단의 창립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좀더 일찍 읽었더라면 교회내에 문제거리가 되지 않고 지혜롭게 풀어 나갈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라도 지혜로운 방안을 모색해 보아야 겠다.
그리고 팝음악이 교회에 침투했다고 하는 기존개념을 뒤엎는 ‘교회가 팝음악에 침투한다’는 개념에 대해 찬성하는 바이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받는사람의 입장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필요하며 그들의 음악과 언어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그것들을 활용하는것은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역사속에서 신앙의 부흥기 마다 세상과의 접촉점을 재 정립한것 처럼 이제 새로운 신앙의 부흥기를 맞이하려면 보통사람들의 세계와 접촉을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내면의 충실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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