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산 (아4:12-15
2006. 1. 26. 11:30ㆍ목양자료/3.강해설교
아름다운 동산 (아4:12-15)
= 자랑스런 성도 =
요 약
주님의 자랑스런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감복함에서 비롯된다. 이런 사람은 주님만 사랑할 뿐 아니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늘 친밀하고 깊은 영적 교제를 갖는다. 그 결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각종 은혜가 구비된 아름다운 능력과 신앙의 인격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존경하고 높여드리고 그 분의 소원을 만족해 드릴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통해서 큰 은혜를 끼치신다. 그러므로 결국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가정과 사회와 나라와 인류의 귀한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설 명
1. 배 경
⇒ 술람미가 아내로서 남편의 보배로운 존재임을 시사한다.
2. 적 용
(진단) 가정과 사회에서 늘 성공적이지 못합니까?
(해결) 서로의 한 마디 격려의 말이 큰 힘이 됩니다.
3. 주님의 자랑스런 성도
1) 친밀하고 깊은 영적 교제
12절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① “나의 누이 나의 신부” -깊고 친밀한 영적 교통을 의미한다.
② “잠근 동산이요 …” - 주님만 사랑하며 깊은 영적 교통을 시사한다.
“잠근” “덮은” “봉한” - 오직 주님만을 위한 존재
“동산” - 아내의 품으로 뜻 받아들여 심적으로 편안하게 해 드림
“우물과 샘” - 깊은 영적 교제의 상징(잠15:15-18)
2) 성령의 각종 은혜로 풍성
13-14절 “네게서 나는 것은 - 모든 귀한 향품이요”
성숙한 성도에게서 나타나는 영적인 아름다움의 풍성을 상징한다.
이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연합의 결과이다.
3) 은혜를 끼치는 성도
15절 “너는 동산의 샘이요 -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샘 우물 시내가 당시의 귀한 보배이듯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에게 은혜를 끼친다.
아가 4:12-15
12 (솔로몬)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원 문
12 לוענ נג 간 나울(잠근 동산이로다) יתחא 아호티(내 누이여)
הלכ 칼라(신부여) לוענ לג 갈 나울(잠근 동산이로다)
םותח ןיעמ 마얀 하툼(덮여 있는 샘이로다)
13 ךיהלשׁ 쉘라하이크(너의 가지(shoots)는)
םינומר סדרפ 파르데스 림모님(석류나무와)
םידגמ ירפ םע 임 페리 메가딤(좋은 열매를 가진)
םירפכ 케파림(헨나(고벨화)로다) םידרנ־םע 임 네라딤(나드(nard)를 가진)
14 דרנ 네레드(나드와) םכרכו 웨카르콤(샤프론과) הנק 카네(칼라무스(창포)와)
ןומנקו 웨킨나몬(시나몬(계수)과) יצע־לכ םע 임 콜 아체(모든 나무와)
הנובל 레보나(향기있는) תולהאו רמ 모르 와아할로트(몰약과 침향과)
ישׁאר־לכ םע 임 콜 라쉐(모든 귀한) םימשׂב 베사밈(향품이어라)
15 םינג ןיעמ 마얀 간님(동산 샘이요) םייח םימ ראב 베에르 마임 하임(생수의 우물이요)
םילזנו 웨노젤림(흐르는 시내로구나) ןונבל־ןמ 민 레바논(레바논에서부터)
스 토 리
남편의 사랑에 감복한 술람미는 시댁과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
신부는 신랑을 위하여 준비되어진 아름다운 동산과 같았다.
그 동산은 친밀하며 안락하고 유쾌한 휴식처였다.
그녀에게서 언제나 볼 수 있었던 것은
맑고 밝은 아름다운 표정과
천성적으로 고운 마음씨
존경하는 깊은 애정
희생적인 사랑
순복함
수줍음
깨끗한 마음씨
게으름 없는 부지런함
알뜰하게 꾸려 나가는 살림꾼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강한 절제심
언제나 위로와 힘이 되는 언어의 미덕
그리고 신랑을 위한 주밀한 생각들이었다.
이러한 그녀의 내조는 남편으로 하여금 가정에서
왕궁에서 나라에서 세계에서 성공하도록 한 지극한 보배였다.
본문은 이제 결혼한 술람미가 가정에서 남편에게 얼마나 만족스러운 아내인가를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술람미가 이와 같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녀가 남편의 사랑을 많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두 사람의 사랑을 비교한 바 있듯이 솔로몬의 사랑은 언제나 그녀보다 앞섰습니다. 그러자 술람미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지만 마침내 남편을 사랑을 따라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사랑을 예표하기 때문에 반드시 신랑의 사랑이 앞서거나 아내에게 대한 교훈이 더 많이 나오지만 지상의 부부는 어느 편이든지 먼저 성숙하고 깨달은 편부터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동일한 결과가 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을 보면 22절에는 아내에 대한 교훈이 먼저 나오고 33절에는 남편에 대한 교훈이 먼저 나옴을 봅니다. 이것은 특별한 순서가 없고 서로 먼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금슬은 진정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감복할 때 비로소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사랑을 깨달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이처럼 금슬 좋은 가정이 되기 위해 진실한 사랑을 많이 투자하시기 바랍니다(갈6:7).
그럼 본문에 나타난 아내로서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요?
1. 친밀함의 미덕입니다.
12절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그랬습니다.
앞서 말씀한대로 누이란 말은 당시에 아주 친근한 부부 사이일 때 썼던 호칭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을 오빠 같이 느껴짐은 남편의 앞서는 사랑은 물론 남편에 대한 아내의 존경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누이처럼 느껴짐은 아내의 순복함은 물론 아내에 대한 남편의 너그러움을 시사합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에베소서 5장의 부부에 대한 교훈은 여러 면에서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예표나 가정의 질서를 떠나서 보더라도 남편은 존경받기를 좋아하고 아내는 잔잔한 사랑 받기를 좋아하는 심리를 가졌을 뿐 아니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때 가장 행복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이처럼 이 누이라는 용어가 솔로몬 부부에게 통용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두 사람이 친밀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친밀함은 어느 한 편이 먼저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이루어졌습니다. 현대의 많은 부부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한 집에서 살아도 마음은 천리 만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남이 더 나을 정도의 부부들이 더 많습니다. 이 가정 회복이 아가서를 통해서 빨리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도 성도들과 친밀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신령한 측면에서 이 친밀함은 무엇일까요? 말씀과 기도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한 기도를 통해 우리 중심을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를 더 깊이 깊이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놀라운 비밀을 우리에게 속삭여 주시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를 더 따뜻이 포옹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깊은 친밀성이 없이는 주님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캐나다의 세계적인 영성신학자인 제임스 휴스턴박사는 “기도란 우정 즉 친밀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 묵상과 기도로서 주님과 친밀하시는 미덕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 신부의 은혜의 미덕입니다.
12절 중반에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했습니다.
여기 신랑은 신부를 동산 우물 샘으로 비유합니다. 여기 ‘동산’은 남편을 편히 쉬게 해주는 신부(4:6, 12, 15, 16, 16, 5:1, 6:2, 8:13) 혹은 그 품을 비유함이요, ‘우물’이나 ‘샘’은 잠15:15-18을 보면 성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즉 이것들은 부부생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휴식과 만족의 요소들입니다. 이처럼 부부는 서로를 편히 쉬게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만날수록 피곤한 스타일이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율법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식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첫 사랑을 기억해 보세요.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사랑하는 술람미는 남편을 위한 은혜로운 미덕을 갖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주님에 대하여 은혜로운 미덕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앞서 자기를 주실 만큼 은혜를 베푸셨으니 이제는 우리도 주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마음 동산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쁘게 거하시게 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성전 삼고 거하시므로 성전다운 성전 제사장다운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벧전2:5에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주의 공로를 입어 거룩하여 지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신부의 정조의 미덕입니다.
다시 12절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잠근’ ‘덮은’ ‘봉한’ 등 3회에 걸친 폐쇄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은 강한 강조형으로 술람미가 오직 일편단심 신랑만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부의 사랑이란 남편 외에 개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조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런데 부부에 있어서 이 정도는 마땅한 현상이지 이 사실이 그리 대단해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감히 왕후를 어느 누가 유혹한다고 이러한 표현을 쓸까요? 그러나 뭇 남성에 대한 강한 폐쇄성을 강조함은 남편에 대해서는 강한 개방성과 아울러 준비성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이 표현을 통해 술람미가 얼마나 남편을 위해서 배려하고 준비하다가 자기를 열어주는지 알게 합니다. 흔히 남편이 취하기 어려운 아내들이 있습니다. 부탁 드리는 것은 아내는 언제나 취하기 쉬워야 합니다. 외부에 대해서는 강한 정조를 가져야 하지만 남편에게는 최대한 취하기 쉽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즉 진정한 정조란 외부에 대한 폐쇄성과 아울러 남편에 대한 적극적인 개방성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남편을 위한 준비와 배려를 세 가지에 비유한 것은 일차적으로 강조형입니다. 그런데 관찰해 보면 세 가지가 점차 축소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면으로든 남편을 수용하는 마음의 자세를 묘사함입니다.
여기 정조의 미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령한 교훈은 주님만 사랑하는 신앙의 정조를 가짐입니다. 우리는 결코 호세아의 정조 없는 아내 고멜의 초기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잠그고 덮고 봉했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외부적인 유혹과 시험이 많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시험을 이깁니다. 성도는 오직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4. 신부의 인격적인 미덕입니다.
13-14절에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그랬습니다.
여기서 본문 해석의 중요한 열쇠는 “네게서 나는 것”(ךיהלשׁ 쉘라하이크)이라는 문구입니다. 이 문구의 원문의 뜻은 ‘너의 식물(植物)들’ 즉 동산의 소출로서 신부의 인격의 미덕을 묘사함입니다.
먼저, 신부에게서 석류나무가 난다고 했습니다. 석류나무는 석류 열매를 생산하는 나무입니다. 석류는 건강하고 밝은 표정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석류나무는 석류와 달라서 생산적인 것입니다. 이처럼 술람미의 표정은 항상 행복에 넘쳐 있었고 늘 그 표정이 밝았습니다. 늘 신랑을 향한 환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석류나무를 첫 번째로 기록한 것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표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늘 웃어야 좋습니다. 집에서도 웃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 안에서 살 때 이런 건강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 안에서 살지 못하면 웃을지라도 그리 밝지 못하고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특히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구속하여 주심에 대해 찬양함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욕심이 많아서 보이는 것이나 큰 능력과 축복을 생각하기에 기쁨이 없습니다. 진정 가난한 심정으로 우리를 택하여 주심만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구하지 아니한 다른 모든 것도 다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의 아버지와 신랑 되신 예수님이 계시는데 무엇이 불만입니까? 해처럼 밝게 사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각종 아름다운 과수인데 이 과수들은 씨 가진 각종 열매를 생산하는 나무로서 술람미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뜻합니다. 그런데 각종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아름다운 마음씨인 성령의 9가지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혀야 합니다(갈5:22).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많아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고벨화인데 이 꽃은 신부의 꽃으로 색깔은 희거나 노랗고 작은 송이로 뭉쳐있는데 그 향내는 진하고 자생력이 강한 꽃입니다. 이처럼 신부는 ‘나는 이제 당신의 것이니까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자나깨나 당신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도 역시 피로 사신 주님의 것이니까 자나깨나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다음은 나도초인데 약혼식에 쓰였던 헌신을 상징하는 나도향을 생산하는 나무로서 나무 전체에서 나도향을 채집합니다. 그래서 나도초는 그 향을 생산하는 나무이므로 약혼식에서 옥합을 깨뜨렸던 그 헌신의 지속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성도는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과 힘을 다햐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다음은 나도입니다. 여기 ‘나도’(דרנ 네레드)는 앞의 나도초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마리아가 예수께(막14:3, 요12:3) 그리고 술람미가 신랑에게 부은 향유로서 비싼 향유입니다(마16:26). 이것은 옥합이 깨어져야 나는 것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대로 하려는 마음을 뜻합니다.
다음은 번홍화(Saffron 샤프란)인데 키는 작지만 꽃은 붉은 염색재료로 쓰이고 신맛을 내는 조미료로 쓰이고 방향제로 쓰이는 만능 꽃입니다. 신령한 의미에서는 만능일지라도 나타내지 않는 겸손함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도 이 신맛 나며 붉은 꽃을 먹는 모습을 수줍음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다음은 창포가 났는데 창포는 물 속에서 자라는 미용재료로서 사욕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특히 왕후는 탐욕으로 재산을 증식하거나 자격 없는 골육 지친을 관리로 등용 등 사욕이 없어야 합니다. 이처럼 창포와 같이 시기심이 없이 나와 남의 신앙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은 계수인데 출20:23에서 ‘육계’로 번역되어 관유와(출30:24) 향료로 사용되는(시45:8) 오늘날 계피 나무입니다. 이 계수나무는 녹색의 잎과 녹색의 꽃을 가진 특이한 상록수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껍질을 벗겨 사용하므로 그 생명을 죽게 합니다. 이것은 신부의 부지런한 희생적인 모습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성도는 주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함의 미덕을 가져야 합니다(계2:10).
다음에는 술람미에게서 각종 유향목이 났습니다. 이 나무는 젖과 같은 하얀 유향을 생산하는 나무입니다. 젖을 생산하는 유향목이니 젖은 경제를 상징합니다(출33:3, 민13:27, 수5:6). 그러므로 이 나무는 살림살이를 잘하는 술람미의 알뜰함을 묘사합니다. 아무리 마음씨가 고와도 살림살이 못하면 그것은 실격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절약만 해서 이월금만 많으면 살림 잘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일에 잘 써서 좋은 결과를 많이 내는 것이 일을 잘한 것입니다.
다음에는 몰약인데 몰약의 미용성과 방부성 그리고 참아내는 마취성 등의 특징은 외부적으로는 부드러우면서도 내적으로는 강한 절제심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주를 위해서 인내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에 침향은 (αλοη 알로애, 요19:39) 알로애로서(요19:39) 몰약과 침향의 원료로 사용되었는데(시45:8, 잠7:17) 완하성과 방부성 및 미용과 치료의 약리 작용을 하는데 이는 놀라운 작용을 하는 언어생활의 미덕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모든 귀한 향품이라 함은 이상의 열거된 향품 외의 다른 숨겨진 향품을 총 망라한 것으로 이는 신부가 신랑을 위해 숨겨놓은 주밀한 계획과 생각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신랑을 깜짝 짬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들입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항상 살펴서 궁리해야 합니다. 이 상의 모든 요소들은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의 미덕과 동일합니다.
이상의 여러 가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그녀에게서 언제나 볼 수 있었던 것은 맑고 밝은 아름다운 표정과 천성적으로 고운 마음씨 존경하는 깊은 애정 희생적인 사랑 순복함 수줍음 깨끗한 마음씨 게으름 없는 부지런함 알뜰하게 꾸려 나가는 살림꾼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강한 절제심 언제나 위로와 힘이 되는 언어의 미덕 그리고 신랑을 위한 주밀한 생각들이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 공주 출신의 다른 왕후들은 호화롭게 자라온 배경 때문에 살림도 모르고 근면도 모르고 고생도 모르는 게으르고 헤픈 여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전혀 다른 서민의 배경에서 성장한 술람미이기에 그가 보여준 모습은 솔로몬과 온 왕궁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에게도 아름다운 인격적 미덕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신부의 보배됨의 미덕입니다.
15절에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했습니다.
12절과 본문에서 신부를 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물을 비교하면 12절의 물은 상징적인 개념으로 성을 의미하지만(잠15:15-18) 본 절은 당시의 물의 일반적 개념으로 보배를 의미합니다. 즉 이와 같은 현숙한 아내를 얻은 솔로몬에게 있어서 술람미는 보배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배의 범위가 동산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나라와 세계로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즉 동산이 가정이라면 우물은 동네요 레바논의 시내는 열방으로 흐르는 물입니다. 여기 “시내”(םילזנו 위노젤림, streams, KJV)가 복수형이듯 레바논의 산맥에 쌓였던 눈이 녹아 요단강처럼 이스라엘에 흐르거나 바르발 아마나와 같이 아람으로 흐르는 물이 있습니다(왕하5:2). 이것은 술람미가 열방의 보배라는 직접적인 뜻보다 술람미의 이런 좋은 내조로 말미암아 남편을 세워줌으로 그 사랑은 남편을 통해 가정과 나라와 세계를 향해 흘러간다는 뜻입니다. 가정에서 살 맛나지 않는 남편이 사회에 나가서 잘 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늘 주님 기쁘시게 해 드리면 주님께서는 자기를 나타내사 모두에게 은혜를 끼치십니다.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않으면서 주님을 부려 온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진실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사 아버지께서 나사렛 예수님에게 함께 하신 것처럼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들도 주님 때문에 가정의 보배 교회의 보배 사회의 보배 나라와 인류의 보배가 됩니다.
<결론>
이 시간 주님의 얼마나 만족스런 신부였는가를 반성해 봅시다. 습3:17에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 때문에 견딜 수 없이 행복하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주님의 그 큰사랑을 깊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심령이 더욱 밝고 건강하고 충성되어 우리를 통해서 주님이 나타나시는 놀라운 보배로운 역사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자랑스런 성도 =
요 약
주님의 자랑스런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감복함에서 비롯된다. 이런 사람은 주님만 사랑할 뿐 아니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늘 친밀하고 깊은 영적 교제를 갖는다. 그 결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각종 은혜가 구비된 아름다운 능력과 신앙의 인격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존경하고 높여드리고 그 분의 소원을 만족해 드릴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통해서 큰 은혜를 끼치신다. 그러므로 결국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가정과 사회와 나라와 인류의 귀한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설 명
1. 배 경
⇒ 술람미가 아내로서 남편의 보배로운 존재임을 시사한다.
2. 적 용
(진단) 가정과 사회에서 늘 성공적이지 못합니까?
(해결) 서로의 한 마디 격려의 말이 큰 힘이 됩니다.
3. 주님의 자랑스런 성도
1) 친밀하고 깊은 영적 교제
12절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① “나의 누이 나의 신부” -깊고 친밀한 영적 교통을 의미한다.
② “잠근 동산이요 …” - 주님만 사랑하며 깊은 영적 교통을 시사한다.
“잠근” “덮은” “봉한” - 오직 주님만을 위한 존재
“동산” - 아내의 품으로 뜻 받아들여 심적으로 편안하게 해 드림
“우물과 샘” - 깊은 영적 교제의 상징(잠15:15-18)
2) 성령의 각종 은혜로 풍성
13-14절 “네게서 나는 것은 - 모든 귀한 향품이요”
성숙한 성도에게서 나타나는 영적인 아름다움의 풍성을 상징한다.
이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연합의 결과이다.
3) 은혜를 끼치는 성도
15절 “너는 동산의 샘이요 -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샘 우물 시내가 당시의 귀한 보배이듯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에게 은혜를 끼친다.
아가 4:12-15
12 (솔로몬)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원 문
12 לוענ נג 간 나울(잠근 동산이로다) יתחא 아호티(내 누이여)
הלכ 칼라(신부여) לוענ לג 갈 나울(잠근 동산이로다)
םותח ןיעמ 마얀 하툼(덮여 있는 샘이로다)
13 ךיהלשׁ 쉘라하이크(너의 가지(shoots)는)
םינומר סדרפ 파르데스 림모님(석류나무와)
םידגמ ירפ םע 임 페리 메가딤(좋은 열매를 가진)
םירפכ 케파림(헨나(고벨화)로다) םידרנ־םע 임 네라딤(나드(nard)를 가진)
14 דרנ 네레드(나드와) םכרכו 웨카르콤(샤프론과) הנק 카네(칼라무스(창포)와)
ןומנקו 웨킨나몬(시나몬(계수)과) יצע־לכ םע 임 콜 아체(모든 나무와)
הנובל 레보나(향기있는) תולהאו רמ 모르 와아할로트(몰약과 침향과)
ישׁאר־לכ םע 임 콜 라쉐(모든 귀한) םימשׂב 베사밈(향품이어라)
15 םינג ןיעמ 마얀 간님(동산 샘이요) םייח םימ ראב 베에르 마임 하임(생수의 우물이요)
םילזנו 웨노젤림(흐르는 시내로구나) ןונבל־ןמ 민 레바논(레바논에서부터)
스 토 리
남편의 사랑에 감복한 술람미는 시댁과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
신부는 신랑을 위하여 준비되어진 아름다운 동산과 같았다.
그 동산은 친밀하며 안락하고 유쾌한 휴식처였다.
그녀에게서 언제나 볼 수 있었던 것은
맑고 밝은 아름다운 표정과
천성적으로 고운 마음씨
존경하는 깊은 애정
희생적인 사랑
순복함
수줍음
깨끗한 마음씨
게으름 없는 부지런함
알뜰하게 꾸려 나가는 살림꾼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강한 절제심
언제나 위로와 힘이 되는 언어의 미덕
그리고 신랑을 위한 주밀한 생각들이었다.
이러한 그녀의 내조는 남편으로 하여금 가정에서
왕궁에서 나라에서 세계에서 성공하도록 한 지극한 보배였다.
본문은 이제 결혼한 술람미가 가정에서 남편에게 얼마나 만족스러운 아내인가를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술람미가 이와 같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녀가 남편의 사랑을 많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두 사람의 사랑을 비교한 바 있듯이 솔로몬의 사랑은 언제나 그녀보다 앞섰습니다. 그러자 술람미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지만 마침내 남편을 사랑을 따라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사랑을 예표하기 때문에 반드시 신랑의 사랑이 앞서거나 아내에게 대한 교훈이 더 많이 나오지만 지상의 부부는 어느 편이든지 먼저 성숙하고 깨달은 편부터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동일한 결과가 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을 보면 22절에는 아내에 대한 교훈이 먼저 나오고 33절에는 남편에 대한 교훈이 먼저 나옴을 봅니다. 이것은 특별한 순서가 없고 서로 먼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금슬은 진정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감복할 때 비로소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사랑을 깨달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이처럼 금슬 좋은 가정이 되기 위해 진실한 사랑을 많이 투자하시기 바랍니다(갈6:7).
그럼 본문에 나타난 아내로서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요?
1. 친밀함의 미덕입니다.
12절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그랬습니다.
앞서 말씀한대로 누이란 말은 당시에 아주 친근한 부부 사이일 때 썼던 호칭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을 오빠 같이 느껴짐은 남편의 앞서는 사랑은 물론 남편에 대한 아내의 존경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누이처럼 느껴짐은 아내의 순복함은 물론 아내에 대한 남편의 너그러움을 시사합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에베소서 5장의 부부에 대한 교훈은 여러 면에서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예표나 가정의 질서를 떠나서 보더라도 남편은 존경받기를 좋아하고 아내는 잔잔한 사랑 받기를 좋아하는 심리를 가졌을 뿐 아니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때 가장 행복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이처럼 이 누이라는 용어가 솔로몬 부부에게 통용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두 사람이 친밀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친밀함은 어느 한 편이 먼저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이루어졌습니다. 현대의 많은 부부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한 집에서 살아도 마음은 천리 만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남이 더 나을 정도의 부부들이 더 많습니다. 이 가정 회복이 아가서를 통해서 빨리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도 성도들과 친밀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신령한 측면에서 이 친밀함은 무엇일까요? 말씀과 기도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한 기도를 통해 우리 중심을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를 더 깊이 깊이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놀라운 비밀을 우리에게 속삭여 주시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를 더 따뜻이 포옹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깊은 친밀성이 없이는 주님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캐나다의 세계적인 영성신학자인 제임스 휴스턴박사는 “기도란 우정 즉 친밀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 묵상과 기도로서 주님과 친밀하시는 미덕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 신부의 은혜의 미덕입니다.
12절 중반에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했습니다.
여기 신랑은 신부를 동산 우물 샘으로 비유합니다. 여기 ‘동산’은 남편을 편히 쉬게 해주는 신부(4:6, 12, 15, 16, 16, 5:1, 6:2, 8:13) 혹은 그 품을 비유함이요, ‘우물’이나 ‘샘’은 잠15:15-18을 보면 성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즉 이것들은 부부생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휴식과 만족의 요소들입니다. 이처럼 부부는 서로를 편히 쉬게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가 만날수록 피곤한 스타일이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율법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식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첫 사랑을 기억해 보세요.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사랑하는 술람미는 남편을 위한 은혜로운 미덕을 갖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주님에 대하여 은혜로운 미덕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앞서 자기를 주실 만큼 은혜를 베푸셨으니 이제는 우리도 주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마음 동산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쁘게 거하시게 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성전 삼고 거하시므로 성전다운 성전 제사장다운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벧전2:5에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주의 공로를 입어 거룩하여 지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신부의 정조의 미덕입니다.
다시 12절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잠근’ ‘덮은’ ‘봉한’ 등 3회에 걸친 폐쇄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은 강한 강조형으로 술람미가 오직 일편단심 신랑만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부의 사랑이란 남편 외에 개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조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런데 부부에 있어서 이 정도는 마땅한 현상이지 이 사실이 그리 대단해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감히 왕후를 어느 누가 유혹한다고 이러한 표현을 쓸까요? 그러나 뭇 남성에 대한 강한 폐쇄성을 강조함은 남편에 대해서는 강한 개방성과 아울러 준비성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이 표현을 통해 술람미가 얼마나 남편을 위해서 배려하고 준비하다가 자기를 열어주는지 알게 합니다. 흔히 남편이 취하기 어려운 아내들이 있습니다. 부탁 드리는 것은 아내는 언제나 취하기 쉬워야 합니다. 외부에 대해서는 강한 정조를 가져야 하지만 남편에게는 최대한 취하기 쉽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즉 진정한 정조란 외부에 대한 폐쇄성과 아울러 남편에 대한 적극적인 개방성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남편을 위한 준비와 배려를 세 가지에 비유한 것은 일차적으로 강조형입니다. 그런데 관찰해 보면 세 가지가 점차 축소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면으로든 남편을 수용하는 마음의 자세를 묘사함입니다.
여기 정조의 미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령한 교훈은 주님만 사랑하는 신앙의 정조를 가짐입니다. 우리는 결코 호세아의 정조 없는 아내 고멜의 초기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잠그고 덮고 봉했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외부적인 유혹과 시험이 많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시험을 이깁니다. 성도는 오직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4. 신부의 인격적인 미덕입니다.
13-14절에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그랬습니다.
여기서 본문 해석의 중요한 열쇠는 “네게서 나는 것”(ךיהלשׁ 쉘라하이크)이라는 문구입니다. 이 문구의 원문의 뜻은 ‘너의 식물(植物)들’ 즉 동산의 소출로서 신부의 인격의 미덕을 묘사함입니다.
먼저, 신부에게서 석류나무가 난다고 했습니다. 석류나무는 석류 열매를 생산하는 나무입니다. 석류는 건강하고 밝은 표정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석류나무는 석류와 달라서 생산적인 것입니다. 이처럼 술람미의 표정은 항상 행복에 넘쳐 있었고 늘 그 표정이 밝았습니다. 늘 신랑을 향한 환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석류나무를 첫 번째로 기록한 것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표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늘 웃어야 좋습니다. 집에서도 웃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 안에서 살 때 이런 건강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 안에서 살지 못하면 웃을지라도 그리 밝지 못하고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특히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구속하여 주심에 대해 찬양함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욕심이 많아서 보이는 것이나 큰 능력과 축복을 생각하기에 기쁨이 없습니다. 진정 가난한 심정으로 우리를 택하여 주심만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구하지 아니한 다른 모든 것도 다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의 아버지와 신랑 되신 예수님이 계시는데 무엇이 불만입니까? 해처럼 밝게 사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각종 아름다운 과수인데 이 과수들은 씨 가진 각종 열매를 생산하는 나무로서 술람미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뜻합니다. 그런데 각종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아름다운 마음씨인 성령의 9가지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혀야 합니다(갈5:22).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많아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고벨화인데 이 꽃은 신부의 꽃으로 색깔은 희거나 노랗고 작은 송이로 뭉쳐있는데 그 향내는 진하고 자생력이 강한 꽃입니다. 이처럼 신부는 ‘나는 이제 당신의 것이니까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자나깨나 당신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도 역시 피로 사신 주님의 것이니까 자나깨나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다음은 나도초인데 약혼식에 쓰였던 헌신을 상징하는 나도향을 생산하는 나무로서 나무 전체에서 나도향을 채집합니다. 그래서 나도초는 그 향을 생산하는 나무이므로 약혼식에서 옥합을 깨뜨렸던 그 헌신의 지속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성도는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과 힘을 다햐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다음은 나도입니다. 여기 ‘나도’(דרנ 네레드)는 앞의 나도초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마리아가 예수께(막14:3, 요12:3) 그리고 술람미가 신랑에게 부은 향유로서 비싼 향유입니다(마16:26). 이것은 옥합이 깨어져야 나는 것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대로 하려는 마음을 뜻합니다.
다음은 번홍화(Saffron 샤프란)인데 키는 작지만 꽃은 붉은 염색재료로 쓰이고 신맛을 내는 조미료로 쓰이고 방향제로 쓰이는 만능 꽃입니다. 신령한 의미에서는 만능일지라도 나타내지 않는 겸손함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도 이 신맛 나며 붉은 꽃을 먹는 모습을 수줍음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다음은 창포가 났는데 창포는 물 속에서 자라는 미용재료로서 사욕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특히 왕후는 탐욕으로 재산을 증식하거나 자격 없는 골육 지친을 관리로 등용 등 사욕이 없어야 합니다. 이처럼 창포와 같이 시기심이 없이 나와 남의 신앙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은 계수인데 출20:23에서 ‘육계’로 번역되어 관유와(출30:24) 향료로 사용되는(시45:8) 오늘날 계피 나무입니다. 이 계수나무는 녹색의 잎과 녹색의 꽃을 가진 특이한 상록수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껍질을 벗겨 사용하므로 그 생명을 죽게 합니다. 이것은 신부의 부지런한 희생적인 모습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성도는 주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함의 미덕을 가져야 합니다(계2:10).
다음에는 술람미에게서 각종 유향목이 났습니다. 이 나무는 젖과 같은 하얀 유향을 생산하는 나무입니다. 젖을 생산하는 유향목이니 젖은 경제를 상징합니다(출33:3, 민13:27, 수5:6). 그러므로 이 나무는 살림살이를 잘하는 술람미의 알뜰함을 묘사합니다. 아무리 마음씨가 고와도 살림살이 못하면 그것은 실격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절약만 해서 이월금만 많으면 살림 잘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일에 잘 써서 좋은 결과를 많이 내는 것이 일을 잘한 것입니다.
다음에는 몰약인데 몰약의 미용성과 방부성 그리고 참아내는 마취성 등의 특징은 외부적으로는 부드러우면서도 내적으로는 강한 절제심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주를 위해서 인내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에 침향은 (αλοη 알로애, 요19:39) 알로애로서(요19:39) 몰약과 침향의 원료로 사용되었는데(시45:8, 잠7:17) 완하성과 방부성 및 미용과 치료의 약리 작용을 하는데 이는 놀라운 작용을 하는 언어생활의 미덕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모든 귀한 향품이라 함은 이상의 열거된 향품 외의 다른 숨겨진 향품을 총 망라한 것으로 이는 신부가 신랑을 위해 숨겨놓은 주밀한 계획과 생각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신랑을 깜짝 짬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들입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항상 살펴서 궁리해야 합니다. 이 상의 모든 요소들은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의 미덕과 동일합니다.
이상의 여러 가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그녀에게서 언제나 볼 수 있었던 것은 맑고 밝은 아름다운 표정과 천성적으로 고운 마음씨 존경하는 깊은 애정 희생적인 사랑 순복함 수줍음 깨끗한 마음씨 게으름 없는 부지런함 알뜰하게 꾸려 나가는 살림꾼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강한 절제심 언제나 위로와 힘이 되는 언어의 미덕 그리고 신랑을 위한 주밀한 생각들이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 공주 출신의 다른 왕후들은 호화롭게 자라온 배경 때문에 살림도 모르고 근면도 모르고 고생도 모르는 게으르고 헤픈 여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전혀 다른 서민의 배경에서 성장한 술람미이기에 그가 보여준 모습은 솔로몬과 온 왕궁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에게도 아름다운 인격적 미덕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신부의 보배됨의 미덕입니다.
15절에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했습니다.
12절과 본문에서 신부를 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물을 비교하면 12절의 물은 상징적인 개념으로 성을 의미하지만(잠15:15-18) 본 절은 당시의 물의 일반적 개념으로 보배를 의미합니다. 즉 이와 같은 현숙한 아내를 얻은 솔로몬에게 있어서 술람미는 보배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배의 범위가 동산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나라와 세계로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즉 동산이 가정이라면 우물은 동네요 레바논의 시내는 열방으로 흐르는 물입니다. 여기 “시내”(םילזנו 위노젤림, streams, KJV)가 복수형이듯 레바논의 산맥에 쌓였던 눈이 녹아 요단강처럼 이스라엘에 흐르거나 바르발 아마나와 같이 아람으로 흐르는 물이 있습니다(왕하5:2). 이것은 술람미가 열방의 보배라는 직접적인 뜻보다 술람미의 이런 좋은 내조로 말미암아 남편을 세워줌으로 그 사랑은 남편을 통해 가정과 나라와 세계를 향해 흘러간다는 뜻입니다. 가정에서 살 맛나지 않는 남편이 사회에 나가서 잘 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늘 주님 기쁘시게 해 드리면 주님께서는 자기를 나타내사 모두에게 은혜를 끼치십니다.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않으면서 주님을 부려 온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진실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사 아버지께서 나사렛 예수님에게 함께 하신 것처럼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들도 주님 때문에 가정의 보배 교회의 보배 사회의 보배 나라와 인류의 보배가 됩니다.
<결론>
이 시간 주님의 얼마나 만족스런 신부였는가를 반성해 봅시다. 습3:17에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 때문에 견딜 수 없이 행복하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주님의 그 큰사랑을 깊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심령이 더욱 밝고 건강하고 충성되어 우리를 통해서 주님이 나타나시는 놀라운 보배로운 역사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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