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결혼식 (아 3:9-11)
2006. 1. 26. 11:28ㆍ목양자료/3.강해설교
솔로몬의 결혼식 (아 3:9-11) = 영적 혼인단계 = 요 약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천국으로 데려오는 과정이 그의 구속사역의 과정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과정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이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내가 포함된 이 구속사의 과정을 실재가 되게 적용하신다. 그런데 여기에는 성화를 향한 노력과 몸된 지체들의 수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참으로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왕 노릇하실 때 자기도 이웃도 사단도 온 세상도 놀라는 사건이 될 것이다. 설 명 1. 배 경 ⇒ 솔로몬과 술람미가 왕궁에서 혼인하는 장면이다. 2. 적 용 (진단) 신혼의 첫 사랑을 잃었습니까? (해결) 주님께서 만드신 포도주가 더 좋으니 기도하십시오. 3. 영적인 혼인 단계 복음 안에서 이미, 재림 안에서 아직 연합되었다. 그러나 혼인 단계란 성숙과 사랑 안에서 현재 이 연합을 누림이다. 4. 솔로몬이 만든 신부의 가마 ⇒ 천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구속의 대 원리가 나타나 있다. 1) 주재료 - 레바논 나무 신부의 고향 나무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암시 2) 가마의 기둥 - 은 은은 구속의 상징(출30:18) 기둥은 저주의 십자가의 상징(갈3:13) 3) 가마의 바닥 - 금 금은 신성 부활 믿음을 상징 바닥은 바탕이나 행함을 상징 4) 가마의 방석 - 자색 자리는 왕적 위치를 상징 자색은 왕의 색깔이다(삿8:26). 5) 가마의 치장자 - 예루살렘 여자들 성화는 자신의 신앙적 노력과 몸된 지체들의 열렬한 사랑이 필요하다. 6) 태후의 축하 - 솔로몬의 면류관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왕 노릇하실 때 모두가 놀라는 사건이 될 것이다(시2편). 아가 3:9-11 9 (성민 2)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연을 만들었는데 10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담이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구나 11 (성민들)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원 문 9 ןוירפא 앞피르욘(일인승의 가마를) ול השׂע 아사 로(그를 위해 만들었다) ךלמה 함멜레크(그 왕) המלשׁ 쉴로모(솔로몬이) יצעמ 메아체(나무로) ןונבלה 할레바논(레바논의) 10 וידומע 암무다우(그것의 기둥을) השׂע 아사(만들었다) ףסכ 카세프(은으로) ותדיפר 레피다토(그것의 등(back)은) בהז 자합(금이요) ובכרמ 메르카보(그것의 자리는) ןמגרא 아르가만(자주빛이요) וכות 토코(그것의 중앙은) ףוצר 라추츠(덮어 씌워졌다) הבהא 아하바(사랑이) םלשׁורי תונבמ 밉베노트 예루솰라임(예루살렘의 딸들에 의한) 11 הניאצ 체에나(너희는 나와서) הניארו 우르에나(보라) ןויצ תונב 베노트 치욘(시온의 딸들아) המלשׁ ךלמב 밤멜레크 쉴로모(솔로몬 왕을) הרשעב 바아타라(왕관을 쓰고 있는) ול־הרשעשׁ 쉐잍테라 로(그에게 관을 씌웠도다) ומא 임모(그의 어머니가) ותנתח םויב 베욤 하툰나토(그의 결혼날에) םויבו 우베욤(그리고 그 날에) ובל תחמשׂ 시므하트 립보(그 마음이 기뻐하는 날에) 스 토 리 행렬의 가마는 두 개였다. 하나는 왕의 신부가 타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왕이 타고 있었다. 신부가 탄 가마는 문이 달린 침대 가마였고 왕이 탄 가마는 의자가 있어 움직이는 보좌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솔로몬의 가마에 쏠렸다. 그의 가마는 자기가 직접 설계한 것으로 신부와의 결합을 기뻐하는 그의 이념이 가득히 담겨 있었다. 가마의 주재료는 레바논의 백향목이었고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가마의 자리는 아름다운 붉은 방석이었고 가마의 내부는 시녀들의 사랑이 담긴 수려한 장식물로 잘 치장되어 있었다. 왕의 결혼식은 국가적인 대 경축행사였다. 각국의 사절단은 물론 혼인을 축하하려는 백성들까지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왕의 곁에는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고 왕의 머리에는 그의 모친이 씌어준 축하의 면류관이 있었는데 이 면류관은 술람미를 받아들이는 모친 심정의 대 변혁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조바심을 가졌던 시녀들에게 놀라운 것이었다. 이 시간 “솔로몬의 결혼식”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드디어 솔로몬 왕과 술람미가 온 시온성과 온 나라의 백성들이 모인 가운데 태후와 신하를 비롯한 온 왕실의 축하 속에서 혼인을 합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도 장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혼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잊어서는 안될 점은 그러한 일이 있기 전에 신앙생활 속에서 주님과의 영광스런 연합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의 넘치는 말씀입니까? 이것은 꿈도 환상도 아닙니다. 이것이 영적인 혼인 단계에서 누리는 영적인 경험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에는 이제 사귀려는 단계, 약혼의 단계, 혼인의 단계, 주님을 만족시키는 단계 등의 단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단계에 속하십니까? 이 혼인 단계의 신앙에 들어가야 신앙생활이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혼인 단계의 연합의 비밀이 본문의 솔로몬이 만든 연 즉 가마에 나타납니다. 여기 솔로몬의 가마는 ‘아피리욘’이라 하여 옥좌가 있는 가마입니다. 그러니까 신부가 탄 ‘미타’ 침대 가마와는 다릅니다. 이 가마들은 가마 제작자인 솔로몬의 이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이 가마는 실용성의 수준을 넘어 술람미를 신부로 자기 신부로 데려온다는 어떤 상징적인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가마의 재료가 가진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주재료는 레바논 나무였습니다. 9절에 “레바논 나무로” 그랬습니다. 이 레바논 나무는 나무 중의 나무인 백향목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백향목이라 하지 않고 레바논 나무라 한 것은 바로 신부의 고향 나무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즉 이것을 가마의 주재료로 함은 레바논 출신 술람미와의 결혼을 심히 자랑스럽게 생각함과 아울러 백향목의 아름다움에 술람미의 아름다움을 일치시키고 있으며 그 안에 거하므로 그녀와의 결혼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으로 보면 이 백향목은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인성 즉 육신을 상징합니다. 예를 들면 가시나무 그러면 죄 있는 인간의 인성을 상징합니다. 혹은 잣나무는 낮아지고 낮아지시며 고난받는 그리스도의 비천하신 인성입니다. 그러나 백향목은 원죄조차도 없는 무흠한 그리스도의 인성을 뜻합니다. 그런데 백향목의 주관적인 의미는 좀 다릅니다. 즉 솔로몬의 가마가 술람미를 상징하듯 이 백향목 가마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신령한 성도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성도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롬8:9). 그래서 주님께서는 술로몬이 자기가 만든 가마를 탄 것처럼 주님께서는 임하심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실 뿐 아니라 거기 임재하십니다. 물론 지상에서의 온전이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영성이 입혀질 때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아름답습니다. 2. 가마의 기둥은 은이라 했습니다. 10절에 “그 기둥은 은이요” 했습니다. 여기 은은 일반적으로는 희고 오염을 제거하는 금속으로 솔로몬의 진실성을 상징하고 기둥은 그 진실함이 매우 견고함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결혼 풍습에 신랑이 검거나 흰 예복을 입는 의미도 그러한 진실 순결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복음적인 의미에서 은은 화폐로서 성경에서 대개 값을 의미하는 구속의 상징입니다(출30:18). 구속이란 사셔서 구원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혹은 대속이라 하는데 대신 지불하심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팔리면 은에 팔립니다. 요셉도 예수님도 은에 팔렸습니다. 이 은에 팔림은 우리 죄를 담당하신 십자가 대속의 예표입니다. 더구나 여기 은 기둥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신 것처럼 십자가의 예표요, 기둥이니 그 은혜가 변치 않는 견고함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신부들도 십자가의 공로로 죄성이 처리 받은 심령이 되어야 그 깨끗한 심령을 가마 삼으시고 주님께서 거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합당한 가마가 되려면 죽으심의 공로를 성령으로 적용 받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고후4:10-11에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속의 적용으로 되는 성결도 있지만 내가 죽어지는 겸손의 죽어짐도 있습니다. 성경에 죽어짐에는 이미 죽어진 죽음이 있는가하면(골3:3) 날마다 죽어야 할 죽음이 있습니다(고전15:31).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진 죽음이란 은혜를 받으면 성결함이 찾아오는 죄에 대한 죽음입니다. 혹자는 예수 안에서 이미 죽었는데 무슨 노력이 필요 하느냐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 드는 것을 보아 성령 충만을 입어야 실재를 경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죽는 죽음은 나를 낮추며 육체를 쳐서 순종하고 복종하는 겸손의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전자는 성령의 도우심 아래 믿음으로 받고 후자의 죽음은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킴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고전15:31). 그러므로 은 기둥처럼 죄와 자아의 옛사람을 온전히 십자가 아래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3. 가마의 바닥은 금이었습니다. 역시 10절에 “바닥은 금이요” 그랬습니다. 바닥은 기초로서 이는 솔로몬의 근본적인 마음의 바탕을 암시합니다. 마치 놋대 위에서 기도한 솔로몬처럼 바닥의 소제가 지니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금이니까 금은 영광과 불변의 상징으로 솔로몬이 이 혼인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결코 변치 아니할 것임을 표현함입니다. 그런데 복음적인 관점에서는 금은 신성이나 부활이나 믿음 등을 상징합니다. 이 객관적 구속의 사실을 주관적으로 적용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입어야 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바닥은 발을 딛는 곳으로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가 행해야 함을 암시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속에 부활의 생명과 능력이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그 심령으로 살게 하며 산 그 심령에 거하여 계십니다. 그런데 내가 철저히 죽어지면 사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롬6:8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했고, 딤후2:11에는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했습니다. 그리고 롬6:4에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고, 골2:12에도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4. 가마의 방석은 자색 담이었습니다. 10절에 “자리는 자색 담이라” 했습니다. 여기 자리는 위치 즉 왕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담’은 ‘덮개’ 혹은 ‘방석’(Seat)을 뜻합니다. 그런데 색깔까지도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 자색은 왕의 색깔로(삿8:26) 이 가마가 왕의 보좌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왕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앞에서 성육신, 죽으심, 부활,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겠습니까? 승천하셔서 왕권을 가지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그래서 여기 왕권이 나옵니다. 이렇게 성경은 그 구조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으심 등 구속사의 진리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높이 되신 왕권을 입은 성도를 예수님께서 가마 삼으시고 기쁨으로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나깨나 예수 그리스도를 입어야 합니다. 예수를 입는 것이 곧 연합이요 영적인 혼인입니다. 이렇게 가마 자체가 지니는 의미가 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마음과 영혼과 육체에 예수를 입혀달라고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요 거룩이요 영생이요 승리요 능력이요 복이며 영광입니다. 그리고, 가마의 치장자는 예루살렘 여자들이었습니다. 10절에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구나” 했습니다. 여기 예루살렘 여자들이란 왕궁의 시녀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사랑이 입혔구나”는 이 가마가 온통 그녀들의 아름다운 장식품들로 잘 치장되었음을 뜻합니다. 본래 장식품은 물질과 정성과 기술과 시간이 모아진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없으면 만들지 못합니다. 본래 이들은 왕을 사랑하는 술람미의 경쟁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축하보다는 시기할 자들인데 그들이 솔로몬의 혼인 가마를 꾸몄습니다. 그런데 꾸며도 보통으로 꾸미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중경해석법이 적용되는데 즉 이렇게 반대자들이 이랬다면 그 나머지의 사람들이야 어떠했겠는가 함입니다. 즉 온 나라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다 나서서 춤을 추며 이 혼인을 열렬히 축하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지혜로 꾸민 아가서입니다. 솔로몬은 이 한 부류의 여자들을 통해서 이 혼인의 그 기쁨과 성대함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신령한 의미에서 보면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노력은 물론 열렬히 지지하고 축하하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처럼 여러 방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믿음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화는 성화의 방편을 힘써 적용하는 인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가족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지체들 즉 교회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그런가 하면 환경적인 연단과 훈련도 필요합니다. 여기 열렬한 축하객들처럼 열렬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런 뜨거운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부흥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와 모든 심령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이 구속의 산물로 지어진 신령한 성전에 하나님께서 기쁘게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령한 의미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신령한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높은 수준에 올라가지 못했기에 다른 지체들을 시기도 하고 질투도 하면서도 그러나 마음을 돌이켜 돕기도 하며 열심을 보이는 양면성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전에 술람미가 검다고 흘겨보며 업신여기기도 했던 사람들입니다(아1:6).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이 혼인함을 온 정성을 다해 돕습니다. 우리에게 서로 높이 되려는 질투가 존재한다면 그것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더 자랄 수 있는 길은 나를 비우고 남을 도울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장하지 못했을 때는 누가 크냐가 그들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장 낮아져서 남을 섬기는 자가 되라는 교훈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원리요 지체의 원리요 사랑의 원리요 교통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절정은 솔로몬 왕 머리의 면류관에 나타납니다. 11절에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했습니다. 여기 솔로몬의 왕의 모친이 왕의 머리에 축하의 면류관을 씌워 주었다는 것은 이 혼인을 준비했던 시온의 여자들도 깜짝 놀랄만한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장 반대하던 왕의 모친이 아닙니까? 그도 그럴 것이 그 위대한 지혜의 대왕인 아들을 그 산골 처녀에게 장가보내고 싶은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모친이 이 혼인식에 너무 기뻐서 왕의 머리에 축하의 면류관까지 씌었으니 시온의 여자들이 보기에도 놀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들 혼인 성사의 최고 기득권자인 태후의 전격적 축하는 시온의 여자들도 깜짝 놀랄 만한 일입니다. 여기 모친은 율법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모친이 아들에게 면류관을 씌움은 결국 술람미를 자부로 인정함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술람미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운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왕노릇하시면 그 까다롭던 율법도 자동으로 지켜지는 역사가 나타나 율법도 성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롬8:4). 이 의는 경건하다 소문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것입니다(마5:20). 그래서 자기도 놀라고 이웃도 놀라고 사단도 놀라고 온 세상도 놀랄만한 최고의 사건이 됩니다. 이 그리스도의 승천 사건을 예언한 시편 2편에도 놀라운 사건으로 예언합니다. 시2:5-12에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결론> 이 시간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함께 거하시고 함께 동행하시고 함께 동역하시기에 합당한 그 분의 가마인지 살펴보십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성령으로 입어서 주께서 거하시기에 합당한 성도가 됩시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가르치고 더 기도하고 서로 도웁시다. 그래서 우리의 육체와 영혼과 삶이 온전히 주님을 모시고 주님이 왕 노릇 하는 왕권으로 움직이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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