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설교 -

2020. 11. 21. 11:19목양자료/2.설교자료

당신은 깨어 있습니까?

마가복음 13:24-37

 

오늘은 2020년도 교회력이 새롭게 시작되는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구세주로 오신 주님의 성탄절을 앞에 두고 4주일에 걸쳐 지키는 주일을 말합니다.

대림절에 우리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와 뜻을 깊이 묵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 성탄절보다 더 귀하고 복된 날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신 역사적인 날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날입니다.

인간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 날입니다.

인간의 운명이 바꾸어진 날입니다.

그렇게 좋은 날이기에 우리는 기쁨으로 그 날을 맞이할 수밖에 없고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경건히 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아울러 아직도 이러한 성탄의 뜻을 깨닫고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우리는 성탄절의 의미와 뜻을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이 땅에 오신 주님만을 기다리는 과거의 절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성탄절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셨던 주님은 분명히 심판의 주님으로 다시 오십니다.

성탄절에 오신 주님이 구원의 복음을 전해주었다면 다시 오실 주님은 그 구원의 복음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성탄절에 오신 주님이 인간의 운명을 바꾸셨다면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은 인간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으실 것입니다.

성탄절에 구세주로 오신 주님을 기다리며 심판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가 바로 대림절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을 기다리는 자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 한 세 가지가 있는데 먼저는 그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이 분명이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장 중요한 강조점입니다.

초림의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성탄절에 우리는 재림의 날이 분명히 있을 것을 다시 한 번 확신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있기는 있는데, 분명히 오시기는 오시는데,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주님은 계속해서 4번이나 깨어있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언제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깨어있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이 세상에 오실 때 깨어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밖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깨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시므온과 안나같은 사람들이 깨어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깨닫고 큰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시므온이 한 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이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이때에 깨어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시므온과 안나와 같이 주님의 축복을 받고 주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깨어있는 삶이 축복이요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러면 깨어있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먼저, 깨어있다는 말은 자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열심히 자고 있습니다.

도둑이 들어가서 물건을 다 가지고 나가도 알지 못합니다.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상태를 깨어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분명한 상태는 잠을 자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잠을 자지 않을 때 그것을 성경은 깨어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적으로 20년이나 잠을 자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10년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5년 이상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잠에서 일어나기가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일어나라고 깨우면 귀찮아합니다. 더 자고 싶다고 말합니다.

신경질을 부립니다. 상관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합니다.

 

지난주와 저 지난주에 우리 교회가 새 생명 전도 축제를 했습니다만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합니까?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함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만 또 한 가지 이렇게 오래 동안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한 목적도 있는 줄 압니다.

영적으로 잠을 자면 마귀가 언제 어느새 엎어가는 줄 모릅니다.

한번 교회에 안 나오면 계속해서 나오기가 싫어지고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남편이 지금 잠을 자고 있습니까? 길어지기 전에 빨리 깨워야 합니다.

자녀가 잠을 자고 있습니까? 마귀가 엎어가기 전에 빨리 깨워야 합니다.

귀찮아해도 깨워야 하고, 신경질을 내도 깨워야 하고 상관하지 말라고 해도 상관하면서 깨워야 합니다.

내버려 두면 위험하고 더 일어나기가 힘들고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지 깨워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깨어있다는 것은 졸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자는 것은 아예 드러누워서 잠을 자는 것을 말한다고 하면 졸고 있는 것은 자세는 분명 자는 것은 아닙니다.

책상에 앉아있습니다.

언 듯 봐서는 공부하는 것 같고 성경 읽는 것 같습니다.

책도 펴있고 성경도 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고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모양만 갖췄다고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잠을 자는 것은 아닙니다만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상태도 깨어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졸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좋지 않은 통계입니다만 지금 한국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일주일에 딱 한 번 주일 낮 예배시간만 참석하고 그 이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일오후 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교회 봉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절반을 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 모양을 보면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 같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 낮 예배시간만 나와서 눈을 뜨고 있고 나머지는 영적으로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날의 모습하고 평일의 모습이 전혀 다릅니다.

교회에서는 그럴듯한 신자인데 회사에 가면 전혀 신앙인이 아닙니다.

신앙인의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양보할 줄도 모르고 이해할 줄도 모르고 사랑할 줄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졸지 않고 깨어있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겉으로만 신앙인이 아니고 모양만 신앙인이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 낮 시간만이 아니라 주일오후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시간에도 더욱 모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때에 절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여야 합니다.

기도해야 하고 더욱 충성해야 합니다.

선데이 신자만이 아니라 평일 신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만 신앙인이 아니라 사회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아름다운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깨어있는 것은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보면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분명히 깨어있다는 것은 주님이 맡겨준 일을 잘 감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종들에게 깨어있다는 것은 열심히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깨어있다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주부에게 깨어있다는 것은 가정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직장인에게 깨어있다는 것은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깨어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맡겨준 일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준 일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서 주님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주님의 상급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구약 다니엘서 12장 2절과 3절을 보면, “땅의 티끌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영생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런데 그 축복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빛나고 축복받을 사람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라는 것입니다. 전도한 자입니다.

 

한 6-7년 전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소방훈련을 하던 어머니들이 사고가 나서 4명중 3명이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한 명이 교회 집사였고 전도를 참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성도들이 그 집사를 보고 집사님은 전도를 잘 해서 하나님이 살려주셨다고 했습니다.

전도를 잘하기에 일찍 데려갈 수 없어서 살려주었다고도 했습니다.

전도하는 자를 주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전도하는 자에게 주님은 가장 큰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전도하는 자가 사명을 감당하는 자입니다.

전도하는 자가 되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네 번째로, 깨어있다는 것은 어떤 일에 골똘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잠을 자는 사람의 특징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졸립기만 합니다. 매사가 귀찮습니다.

그래서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면 마지못해 ‘알았어. 알았다니까’ 말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알은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깨어있다는 것은 어떤 일을 골똘히 생각하고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골똘히 생각하고 집중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이 끝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옥이 있고 천국이 있음을 기억할 뿐 아니라 그것에 집중하고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이것이 깨어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3장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에 대하여 얼마나 잘 알고 계십니까?

그것을 얼마나 골똘하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것에 얼마나 가치를 두고 그것에 얼마나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종말을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늘 교훈을 삼아야 할 사건이 노아시대의 홍수의 사건이고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입니다.

늘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시대의 사람들의 문제는 한 마디로 집중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집중의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집중하다가 결국 주님의 경고를 알지 못했고 홍수를 대비하지 못했고 그래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잘못된 것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집중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의 사위들은 놀고 즐기는 것에 정신이 빠져서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점도 어떤 일에 집중하느냐? 하는 집중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치고 심판이나 천국이나 지옥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말은 수도 없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에 대하여 졸고 있는 사람처럼 별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이 있어 정신 차려’ 하면 ‘응 알았어.’ 대답은 하면서도 그 일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지옥이니 천국이니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는 문제, 여기에도 별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고 잘 지낼까?

어떻게 아이들 교육 잘 시켜서 좋은 학교에 보낼까?

여기에 온통 관심이 있고 여기에만 집중을 하고 이런 것만을 생각합니다.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중요한 일이 골똘하지 못하면 그것은 영적으로 절대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의 목적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되는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언젠가 죽음이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중요한 것에 기억하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야 이것이 진정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을 때 이 세상의 삶이 행복해집니다.

 

중국 지진 참사 때 한 매몰된 남자의 뉴스가 세계 전역에 퍼졌습니다.

두꺼운 콘크리트에 매몰되어 상반신만 밖으로 나온 남자를 꺼내려고 시도했지만 꺼내지 못합니다. 군인이 옆에서 장비가 올 때까지 물을 먹이면서 인터뷰로 가족과 아내에게 집에 가서 만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거 작업이 오래 지연되면서 그 남자는 끝내 정신을 잃고 죽어갑니다.

그때 군인이 그 남자에게 울면서 말하는 것이 자막으로 방영됩니다.

“잠들지 마! 깨어 있어! 죽지 마!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가 있잖아. 바보야! 깨어있어! 잠들지 마! 죽지 마 바보야!”

그는 끝내 깨어있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 장면이 전 세계로 방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반대로 2주 3주 동안 잔해 속에 묻혀 있으면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 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잠들지 않고 깨어 있던 사람들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죽음과 심판의 문 앞에서도 살게 됩니다.

반대로 삶의 문턱에 걸쳐 있으면서도 잠드는 사람은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깨어있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창골산 봉서방에서 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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