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0만 굶어죽게 한 폭정에도 어떻게 권력 유지했나

2020. 6. 20. 10:15운영자자료/중국선교를 위한 기도정보

4500만 굶어죽게 한 폭정에도 어떻게 권력 유지했나[송재윤의 슬픈 중국]

입력 2020.06.20. 09:00 댓글 51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10회>

◇리더십이 국가 운명 가른다…마오의 총체적 실패

리더십이 국가의 명운을 가른다. 리더십은 종합적 국가경영의 능력이다. 국가의 리더는 정부의 중장기 목적을 설정하고, 발전전략을 창안한다. 행정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액션플랜을 설계한다. 복잡다단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크고 작은 위기를 관리한다. 의사소통의 능력과 행정상의 추진력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리더십은 경제를 살리고 사회를 안정시킨다. 나쁜 리더십은 경제를 후퇴시키고 사회를 해체한다. 리더십에 따라 국가의 근본가치와 사회·경제적 기본제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유교의 전통에서 리더십의 총체적 실패를 폭정(暴政)이라 부른다. 폭정을 초래한 나쁜 지도자를 폭군(暴君)이라 부른다. 폭군의 폭정은 최악이다. 경제를 망쳐서 민생을 위태롭게 한다. 사회갈등을 조장시켜 야만적 폭력의 상황을 초래한다. 다수 지지를 얻어 등장한 권력일지라도 정책실패로 위기를 초래하면 통치의 정당성을 상실한다. 천명(天命)이 뒤바뀐다. 천명이 바뀌면, 정권의 교체를 넘어 국가체제의 근본적 전환까지 요구될 수 있다. 폭군의 폭정은 그렇게 혁명의 모멘트를 배태한다.

폭군의 폭정은 멀리 있지 않다. 마오쩌둥 통치 하의 중국의 경제는 총체적 대실패를 면치 못했다. 소련식 경제 5개년 계획(1953-1957)으로 중국경제는 4%의 성장을 이뤘으나 대약진운동(1958-1961)으로 중국경제는 몰락했다. 대기근으로 3천만에서 4천5백만의 인민이 아사했다. 미(未)출생인구까지 보면 대략 7천6백만의 인구가 희생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그는 분명 희대의 폭군이었다.

<“노동자계급이 일체를 영도해야 한다!” 1970년, 작자미상. “최고영도자” 마오쩌둥은 늘 노동자 농민 계급의 영도력을 강조했다. chineseposters.net>

◇마오, 덩샤오핑이 경제 살리자 ‘문혁’ 일으켜 숙청

무너진 경제의 재건을 위해 류샤오치와 덩샤오핑은 과감하게 농업우선정책(1961-1965년)을 추진했다. 그 결과 연평균 9.6%의 경제성장이 이뤄졌다. 폭정을 선정(善政)으로 뒤바꾼 스마트한 실용의 리더십이었다. 대기근을 초래해 이미 천명을 상실한 마오는 정치적 계략에 몰두한다. 그는 중공중앙의 권좌에서 류와 덩을 몰아내기 위해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을 일으킨다. 마오는 “10년의 대동란”을 통해서 죽는 날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역시나 경제였다. 마오의 권력이 유지될수록 경제는 더욱 얼어붙었다. 1967년 한 해 산업생산량은 무려 14%나 감소했을 정도다. 식량 배급분이 줄어들고 가용 생필품이 부족해졌다. 삶은 갈수록 각박해졌다. “살림살이 고달픈데 혁명이란 웬 말인가?” 1976년 4월 청명절을 맞아 중국인민들은 톈안먼 관장이 몰려나와 광란의 정치를 규탄하며 울분을 토로했다.

5개월 후 9월 9일 마오는 마침내 숨을 거둔다. 죽기 며칠 전 그는 부인 장칭과 후계자 화궈펑을 앞에 두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한 평생 장제스와 전쟁하고 문화혁명을 했다. 전자의 공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후자에 대해선 다른 견해도 있는 듯하다.”

마오의 사망은 급변을 예고했다.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최고영도자의 지위에 올랐다. 다음 달 그는 미국으로 날아간다. 공산권 지도자로는 최초의 방미였다. 중국의 변화 의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1962년 덩샤오핑은 이미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의 비유를 들며 실용주의 개혁을 주도했었다. 문혁 기간 동안 그는 두 번이나 가혹한 숙청을 당했다. 그의 동생은 자살했고, 아들도 자살을 시도했을 정도였다. 때문에 세계는 덩샤오핑의 진심을 신뢰했다.

1978년에서 2005년 사이 중국은 연평균 10%의 경제성장을 이어갔다. 경제가 매해 10%씩 성장하면, 매 7년마다 2배, 4배, 8배, 16배씩 기하급수적으로 경제규모가 팽창한다. 개혁개방은 중국을 송두리째 바꾼 포스트-마오 시대 중공정부의 혁명적 결정이었다.

어떻게 그 큰 변화가 가능했을까? 국가경영의 기본노선이 변화했기 때문이었다. 마오의 공산 근본주의 대신 덩의 경제적 실용주의가 새로운 시대의 정신이 되었다. 중국철학의 개념을 빌자면, “엄(嚴)”의 통치가 “관(寬)”의 통치로 뒤바뀐 결과다. 마오쩌둥은 과연 어떻게 폭군의 폭정을 초래하고도 권력을 유지했을까? 정치학적 난제가 아닐 수 없다.

<1983년 9월 26일자 타임지 표지 “마오의 유령 추방하기”>

◇“敵我를 식별하고 단 하나의 적에 공격 집중하라”

1965년 12월 역사학자 우한(吳晗, 1909-1969)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마오를 숭배하는 지식인들은 일사분란하게 4년 전 발표됐던 그의 희곡 “해서파관(海瑞罷官)”을 공격해댔다. 우한은 학계 및 예술계에 똬리 튼 반혁명·수정주의 세력의 상징이 되었다.

마오쩌둥의 혁명이론에 따르면, 혁명은 언제나 아군과 적군의 식별에서 시작된다. 적아(敵我)구분의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단 한 명의 적에 공격을 집중하는 것이다. 우한을 향한 문예계의 비판이 고조되자 그를 옹호하는 집단이 순식간에 부각되었다. 우한의 “해서파관”을 놓고 중국의 학계와 문예계가 두 편으로 선명하게 갈라졌다. 언론의 기고문과 관영매체의 선전을 통해 얼마 후 마오를 추종하는 극좌(極左)세력의 라인업이 실체를 드러냈다.

문혁의 제1선에는 야오원위안(姚文元, 1931-2005)와 치번위(戚本禹, 1931-2016) 등 30대 신예들이 배치됐다. 제2선에는 관펑(關鋒, 1919-2005), 장춘차오(張春橋, 1917-2005), 왕력(王力, 1922-1996) 등 40대의 중견지식인들이 포진했다. 그들의 뒤에는 천보다(陳伯達, 1904-1989), 캉성(康生, 1898-1991), 셰푸즈(謝富治, 1909-1972)와 장칭(江靑, 1914-1991)이 있었다. 문혁의 사령탑 꼭대기에는 최고영도자 마오쩌둥이 떡 버티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호화열차에 몸을 싣고 베이징을 떠난 후였다. 그는 우한과 항저우의 고급 빌라에 머물면서 문혁의 정치판을 원격조정했다.

<“마오주석을 따라서 영원히 혁명을 일으키자!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8주년을 열렬히 경축하며!” 1967년 작. 작가: 왕후이(王暉). 문화혁명의 지도부: (왼쪽부터) 캉성, 저우언라이, 마오쩌둥, 린뱌오, 천보다, 장칭 chineseposters.net>

마오의 투쟁이론에 의하면, 내부의 적과 투쟁하기 위해선 우선 외부의 적을 인지해야 한다. 문혁 발발 직전 마오가 감지한 외부의 적은 미소 양국이었다. 야오원위안의 우한 비판이 게재된 1965년 11월 30일 인민일보 제1면 헤드라인은 저우언라이 총리의 연설문을 보도 하고 있다.

“전 세계는 현재 대격변, 대분화, 대개조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대오와 세계인민의 혁명역량은 신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거대한 반미(反美)혁명의 새로운 폭풍이 일어나고 있다! 미(美)제국주의에 맞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보위하고, 무산계급과의 국제연대와 세계혁명의 인민대오를 결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흐루쇼프 수정주의에 반대해야만 한다.”

반미·반수(反修, 반수정주의)의 국제적 맥락은 어렵잖게 짐작된다. 1964년 8월 베트남북부 해역에서 이른바 통킹만 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의 존슨행정부는 베트남에 18만 4천 명의 전투병을 배치했다. 베트남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자 중국의 언론은 날마다 반미 선전문구를 쏟아냈다.

 

1965년 9월부터 소련에서는 흐루쇼프의 후임 알렉세이 코시긴(Alexei Kosygin, 1904-1980)이 집권했다. 그는 임금인상, 노동복지, 소비재공급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1965년 소련경제개혁”을 개시했다. 소련의 과감한 경제개혁은 당시의 류와 덩이 이끄는 경제개혁과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국제정세에 대응하여 마오는 소련식 수정주의의 비판이야 말로 미제국주의의 준동에 맞서 공산혁명의 생명을 지키는 숭고한 투쟁이라 선전했다. 비로소 그는 미·소 양국을 모두 외부의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내부의 적을 소탕하는 이념의 진지를 구축했던 것이다.

마오는 경제를 망치고 민생을 위기로 내몬 폭정의 폭군이었다. 그럼에도 마오는 인민의 심장에 불을 질러 정적들을 모두 도려낼 수 있는 음모와 계략의 최고수였다. 폭군의 권모술수, 거기서 현대중국의 모든 비극이 시작됐다.<계속>

<1966년 6월 베이징 시내를 행진하는 홍위병의 모습. 문혁 당시 10대의 청소년들은 마오쩌둥 권력의 원천이었다. / 공공부문>

※필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중국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의 건국 전후부터 1960년대까지 근대사를 서술한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까치)를 최근 출간했다. 중국 근현대사 저작을 3부작으로 구상 중이며 이번에 연재하는 ‘문화혁명 이야기’는 2권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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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랑카1시간전

    단하나의 적이라면 조선인가 기득권층의 대변인

    답글2댓글 찬성하기106댓글 비추천하기29

  • 이상민35분전

    중공들 너무 대놓고 부들대면 신분 들켜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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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mcool36분전

    100년 가까이 친일 매국을 하고 가짜 뉴스를 퍼트리며 선동하고 현재도 일본을 이롭게 하는 죠선이 어떻게 언론권력을 유지했나? 이 주제로 기획 기사를 쓰지 그래?

    답글 작성댓글 찬성하기19댓글 비추천하기6

  • 봄의꿈29분전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바보는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호찌민 등이다. 그들은 이념을 가지고 민족 단합을 이루었으나 전체 국민을 거지로 만들었다. 이념 하나만을 믿고 모든 것을 그 종속으로 보았다. 공산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능력자의 성공을 빼앗아 무능력자에 줘야 하니 폭력은 필수도구였고 성실, 노력, 창의의 결과물은 압수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폭압정치가 되고 국민은 가난해졌다. 아직도 이를 믿는 바보들이 정계 학계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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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구리18분전

    중국은 다시 빨간 깃발이나 흔들고 왕골방석이나 만들며 살아야한다 미국이 옛소련 견제한다고 중국을 너무 키워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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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탑방37분전

    조선일보야 아베 조 시나 빠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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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olet28분전

    폭군도 다 무지한 백성몫~ 중국이 하나의 언어만 쓰는 것도 다 원인중의 하나~ 다 ~니들 몫이다! 죽는것도 잘사는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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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gh073048분전

    조중동 같은 찌라시 수준의 중국 관영 공산당 매체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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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민29분전

    제일 짜증날때 약국이나 병원에 갔는데 신문이 개 조 ㅅ 선 일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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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론14분전

    조선찌라시 요즘 공산당, 6.25 기사 쏟아내네... 북한관련 어떻게든 안 좋은 이미지 심을라고 노력한다.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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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이28분전

    중꿔는 모택똥 홍위병 , 조선 은 똥재인 문빠가 나라의 좀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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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은선5분전

    폭군의 권모술수 ㅡㅊㆍㅇ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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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분전

    제목 보고 너네일 줄 알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웃고 간다 ㅋㅋㅋㅋㅋ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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