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맥추감사절 설교 5편 - 2

2014. 6. 23. 21:54목양자료/5.절기자료

1.   감사함으로 들어가라
     시편 100:1∼5
     목양교회/유관지 목사


2003년 맥추감사주일 예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시편 100편은
영적인 감동이 간결하게 표현된 대표적인 감사찬양시입니다. 시편 100편은 항
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는 경건한 마음을 잘 표현하
고 있습니다.
이 시에는 깊은 감사, 진정한 감사가 진하게 스며 있습니다.

우리들은 감사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감사에는 바람직하지 못한
감사들이 있습니다.

먼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감사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누가복음 18장에 기록된 바리새인의 기도입니다. 바리새인은 성
전에 따로 서서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
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감사가 진정한 감사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남이 들으라고 하는 감사입니다. '여봐라 감사'입니다. '여봐라 보아
라, 나는 이렇게 감사하느니라' 하는 것입니다.

위장된 감사가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으면서 감사한 척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4장을 보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했는데 더둘로라는 말 잘하는
사람을 법정대리인으로 내세웠습니다. 더둘로는 재판장인 로마총독 벨릭스에게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민족이 당신의 선견
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어느 곳에서나 진심으로 감사하나이
다"라고 했습니다.
벨릭스는 매우 포악한 통치를 한 총독이어서 이 때 태평하기는커녕 반란이 자
주 일어나고 사람들은 총독에 대해 불만과 원한이 컸는데 감사한다고 했습니
다.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거짓 감사입니다. 더둘로는 "진심으로 감사하나
이다" 했지만 실제는 '거짓으로 감사하나이다'입니다.

반짝 감사가 있습니다.
오늘 같은 감사와 관련된 절기에만 반짝, 감사의 불꽃이 일었다가 도로 꺼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밖에 억지 감사도 있고, 메마른 감사도 있습니다.

시편 100편의 감사는 그런 감사가 아닙니다.
진정한 감사입니다.
풍성한 감사입니다.

시편 100편은 '감사의 시'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4절의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라는 말은 '감사함으로 모든 일을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디모데 전서 4장 4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시간들, 그리고 여러 사건들, 처지와 환경들을 감
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복과 은혜, 많은 유익이 있게 됩
니다.

오늘은 감사함으로 문을 들어가는 사람들, 감사함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주
어지는 많은 유익들 가운데 세 가지를 같이 생각해 봅니다.

첫째, 감사할 것들이 더 많아집니다.

4절을 다시 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의 문'은 성문을 말합니다.
감사함으로 성문을 들어가면 궁정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것들이 더 많아집니다.
더 큰 감사의 제목들이 계속해서 생깁니다.

다니엘서 2장을 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습니다. 마음을 번민하게 만들어 잠을 이루
지 못하게 하는 꿈인데 어떤 꿈인지 잊어 먹었습니다.
박수, 술객, 점쟁이, 술사들을 불러서 '내가 꾼 꿈을 알아내고 해석을 하라. 그
렇게 하지 못하면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했습니다. 무리지요. 불가능한 것을 강
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꿎은 사람들이 많이 죽게될 판인데 불 판인데 하나님이 밤에 환상을 통해서
다니엘에게 그 꿈과 해석을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다니엘은 먼저 하나님이 지혜와 능력을 주신 것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서 2장
23절,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
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
나이다", 이렇게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그 다음에 찾아온 풀무불
의 시험도 이기게 하셨고,
느부갓네살 왕이 두 번째 꾼 꿈도 해석하게 하셨고,
벨사살 왕의 잔치에 나타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글씨도 해석할 수 있게
하셨고,
사자굴의 어려움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환상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찬양할 때 더 많은 것들을 주셨
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하 22장은 다윗의 승전가인데 다윗은 50절에서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고 지금까지 승리
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더 많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4장 15절에서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은혜를 더하게 합니다.
감사는 나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
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합니다.
그 다음,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으며 미리 감사하여야합니다.
기도생활을 하면 여러 가지를 체험하게 되는데 그 체험 가운데 하나가 감사하
면서 기도하면 응답이 빠르고 크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7절은 우리에게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감사가 넘치면 다른 것도 넘칩니다.

부산복음병원 원장을 지낸 고 장기려(張起呂) 박사님을 잘 아실 것입니다. 평양
에서 일하시다가 6·25때 국군이 평양에서 후퇴할 때 급하게 피난 오느라고 부
인을 두고 아들 하나를 간신히 데리고 월남했습니다. 부산에 복음병원을 세워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한번은 서울에 왔더니 친구가 꼭 만나자고 했습니다.
1970년 대에 있었던 일인데. 명동 부근의 사무실에서 친구를 만났더니 친구는
이제 재혼을 해서 새 가정을 이루라고 간곡하게 권했습니다. 그 권유를 물리치
고 나오다가 심란해서인지 계단을 헛디뎌서 발목의 아킬레스건이 끊어졌습니
다.
급하게 부근에 있는 백 병원에 입원했는데 입원해 있으면서 장기려 박사님은
세 가지를 감사드렸다고 합니다.
첫째, 지금까지 자기 힘으로 잘 지낸 것으로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호해 주어서 잘 지낸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하고,
둘째, 그 동안 바빠서 친지, 제자들을 만날 틈이 없었는데 많이 문병 오니 그들
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고
셋째, 일고 싶었던 책을 읽게 된 것을 감사드렸다고 합니다.
그 때 다친 것이 가벼운 부상이 아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잘 회복되어
테니스도 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감사했기 때문에 빨리 회복되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함으로 문에 들어가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을 감사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감사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일들이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둘째, 기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시편 100편은 감사의 시인데 1절과 2절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즐거워하고 기
뻐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갈지어다

고린도전서의 시각 부분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참다운 목회자로서 바울의 모습
을 보게 됩니다.
2절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
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대단한 말썽꾼들이었습니다.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았고
분파가 심했고 사사건건 의견 다툼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을 꾸짖고 가르치기 위한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도입니다. '이 말썽꾼들아
왜 이렇게 내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것이냐?'라는 말로 시작할 것 같은데 고린
도교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 그들을 축복하면서 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
니"라고 했습니다.
말썽 많은 고린도교인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바울의 말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
들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 편지, 고린도전서를 가지고 고린도교회를 방문한 사람이 디도
입니다. 디도는 고린도교회에 다녀와서 바울을 만나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사도
님의 편지를 받고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른 길로 들어섰습니다'고 보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7장 6절과 7절에서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라고 했고
이어 13절에서는 더욱 많이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좀 어려운 일이라도 감사함으로 감당하면 기쁨이 찾아옵니다.
감사의 열매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 8절에서 '내가 편지를 보내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가벼운 후회이지요.
만일 바울이 먼저 편지, 고린도전서에서 '이 말썽꾼들아!' 했다면 더 후회했을
것입니다.
불평의 열매는 후회입니다.

여러분, 감사함으로 모든 일의 문을 들어서기 바랍니다.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새 달을 맞이할 때마다 감사함으로 새 달의 문을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새 달이 기쁨으로 찰 것입니다.

새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감사함으로 새 주일의 문을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새 주일에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새 날을 맞이할 때마다 감사함으로 매일 매일 새로운 날의 문을 들어가시기 바
랍니다.
하루를 기쁨으로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찬송가 13장의 가사 가운데 3절에 "삶이 기쁜 샘이 되어 바다처럼 넘치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살아갈 때 그 감사가 기쁨의 샘이 되어 기쁨의 물이 우리 삶에 바
다처럼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서 51장 3절에는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셨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
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51:3) 라는 말씀이 있습
니다.
하나님의 동산에는 기뻐함이 있습니다.
즐거워함이 있습니다.
감사함이 있습니다.
창화하는 소리, 기쁜 노래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우리 나라가, 이 땅이, 이와 같은 것들, 특히 감
사와 기쁨, 정확하게 말하면 감사함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넘치는 동산으로 만
들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셋째, 아름다운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시편 100편 감사의 시는 예배 때 부른 찬양입니다. 1절과 2절과 3절은 예배를
인도하는 분이 예물을 들고 성전으로 가까이 가는 도중에 찬양대가 부른 노래
이고 4절과 5절은 화답하는 노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여러분, 오늘 이 교회의 문에 들어올 때 감사
함으로 들어오셨습니까?
우리는 교회에 들어올 때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 아름다
운 환경 속에서 예배 드릴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나라
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 감사를 안고 들어와야 합니다.

군부대 출입문에는 대개 아치가 세워져 있고 거기에 그 부대의 구호가 크게 적
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필승' '단결' '충성' 이런 것들이지요. 예전에는
'멸공' 이라는 말이 많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부대의 군인들은 경례할 때 그 구호를 외치면서 경례를 합니다.

교회에 들어올 때 보이지는 않지만 아치가 세워져 있는 것처럼 느끼시기 바랍
니다.
역시 보이지 않지만 그 아치에 '감사!' 이렇게 크게 쓰여 있는 것을 보시게 되
기 바랍니다.
마음속으로 '이크, 주차장 벌써 다 찼네!' 하시지 말고 '감사!' 하면서 들어오시
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차할 자리, 저절로 찾아집니다.

시편 50편 14절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예배 드릴 때는 감사로 드
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배에서 배놓을 수 없는 것이 찬양인데 찬양도 감사로 드려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지어다" 시편 147편
7절의 말씀입니다.

예배에는 감사가 꼭 있어야합니다.
감사가 빠진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시편 100편은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시편 100편은 특히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 감사의 대상이 누구인가,
누구에게 예배를 드리고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 할 유일한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시편 100편은 3절에서 그 하나님은 창조자이며 목자, 즉 이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일을 섭리하고 꼴을 먹여주는 분이
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감사 드려야 할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시편 100편은 4절에서 그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는 분
이라고 가르쳐줍니다.

느헤미야가 고국에 돌아와서 힘써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그 봉헌예배
를 드리는 기록이 12장 27절에서 47 절까지 나옵니다.
느헤미야는 감사 찬송하는 무리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에스라가 인솔해서 성
을 오른쪽으로 돌아가게 하고 하나는 느혜미야와 함께 왼쪽으로 돌아가게 해서
두 무리가 성전에서 만나게 했습니다.
그 날 예루살렘 성벽은 감사 찬양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봉헌예배가 드려졌습니
다.

우리의 예배는 감사가 알맹이인 예배, 감사로 포장된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오늘 우리는 2003년 맥추감사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동안은 7월 마지
막 주일에 드리다가 올해부터 6월 첫 주일에 드리기로 했습니다.
처음이기 때문에 낯선 느낌도 있고 덜 익은 느낌도 있습니다.
6월 마지막 주일이 저희 교회 창립감사주일이기 때문에 중복을 피해서 그 동안
7월 마지막 주일에 맥추감사예배를 드려왔는데 무더운 때이고, 휴가철이고, 여
름성경학교, 수양회 등 행사가 겹치는 때이어서 좋은 분위기 속에서 감사예배
를 드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6월 첫 주일로 옮겼는데 '감사로 하반기를 시작하자'하는 것이 이렇게
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분, 감사함으로 하반기의 문에 들어가기 바랍니다. 하반기에 감사한 일들이
더 많이 생기고, 기쁨이 넘치고, 신령과 진정의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게 될 것
입니다..

'하반기는 7월부터인데요' 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감사를 마음에 새겨야 하반기를 감사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4월 마지막 주간에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하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
다. 그 기도원의 컴퓨터실에 들어가서 그것을 정리하는데 옆자리의 젊은 목사
님이 제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모니터에 '목회 계획'이라고 제목이 되어 있는 것
을 보고 '어느 교회 목사님이신 데 벌써 내년 목회 계획을 세우십니까?'했습니
다. 사실은 다 내년 계획이 아니고 일반적인 계획이었지만 점잖게 '아, 내년에
무엇을 하려면 지금부터 계획을 세워서 하반기부터 그 방향으로 밀고 나가다가
연말에 가서 확정해야 하는 거요.'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지금부터 감사의 문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7월 첫 주일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성찬식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번 6월은 창립 42주년 감사찬양예배, 장로님 취임예배 등 매우 바쁘
게 보낼 것입니다. 그것들을 정리하고, 하반기를 맞이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고,
각종 수련회와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성찬예배를 드리고 출발하려고 합니다.

저희 교회 아나바다가 아주 잘 되고 있지요. 교회에 온 손님들을 안내하면서
'여기는 아나바다 운동을 하는 곳입니다' 하면 '아나바다가 무엇입니까?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아실 것입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쓴다'인데 누
가 만들었는지 참 잘 만든 말입니다.

'고,미,안.감,사' 운동을 하고 있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고,미,안,감,사', 무엇일까
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입니다.
'고미안감사' 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이 세상은 훨씬 부드러워지고 편해질 것입
니다.
교통방송에서 '지금 어디에서 접촉사고가 났는데 운전자끼리 길 복판에서 잘잘
못을 가리고 있어서 매우 혼잡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는 방송이 나오는
일도 적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2003년의 하반기 '고, 미, 안, 감, 사'를 많이 하면서 보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5장 4절을 보면 "누추함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
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하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시간들, 일들, 처지, 형편의 문으
로 들어가서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할 일들이 더 많아지고 기쁘게 살고, 아름다
운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감사의 유익
    (렘 30:17-20)

영국의 종교가요 유명한 기도의 사람 윌리암 로우(Law, William 1686-1761)는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생의 행복과 만족을 찾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지 그 사건에 대해서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얼른 보기에는 불행한 재화같이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가운데서 그것이 도리어 축복의 결과가 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기도를 특별히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금식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고, 구제품을 많이 내어주는 사람도 아니고, 절제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의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감사할 줄 알고 무엇이나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자기도 하려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선의의 사실로 알고 받아들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일, 그것은 언제나 행복과 만족을 가져오고야 마는 비결이다

죤 밀러는 말하기를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씨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씨는 그에게 이런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루에 1만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줄 것입니다."
그는 병석에서 매일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감 두개를 건네주었습니다.
가와가미 기이치씨는 손을 내밀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굳었던 몸이 풀리고 질병에서 벗어났습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포로의 자리에서 풀어 주시고 그들의 병든 삶을 고쳐주시겠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그들의 입술에서 감사의 소리가 나올 때 그들에게 더 큰 유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의

첫째는 번성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19]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라 하였습니다.

토마스 아켐퍼스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항상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며, 그의 축복을 교만한 자의 손에서는 거두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언제나 허락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헨리 포드가 한창 자동차 왕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시골벽지 여교사로부터 피아노를 구입할 수 있도록 1천 달러를 기증해 달라는 간곡한 호소편지를 받았습니다.
포드는 의례적인 요청인 줄 알고 10센트(약 80원)만 보냈습니다.
그러나 여교사는 모욕감이나 절망감을 갖지 않고 감사하며 그 돈으로 땅콩 종자를 사 학생들과 땅콩농사를 시작하여, 수확한 후 포드에게 땅콩을 보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에 감동을 받은 포드는 1만 달러를 벽지학교에 보냈습니다.
이처럼 감사는 더 큰 번영을 가져오는 도구입니다.

어느 해 독일 전역에 흉년이 들어 대다수 국민들이 몹시 어려움을 겪을 때 비교적 넉넉하게 사는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노부부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빵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 바구니에는 한 사람이 한 개씩 먹을 수 있는 빵이 있단다. 자 이제 가져가거라."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서로 큰 빵을 가지겠다고 달려들어 움켜쥐고는 그냥 집으로 갔습니다.
다음날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빵을 다 가져간 뒤에 남은 빵을 가지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크레첸이라는 소녀는 언제나 작은 빵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노부부는 그런 크레첸을 매우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크레첸은 노부부가 준 빵을 쪼개다가 은화 여섯 닢을 발견했습니다. 깜짝 놀라 헐떡이며 은화를 가지고 달려온 크레첸에게 할아버지는 웃으며
"이 은화는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아이에게 주려고 제일 작은 빵을 만들 때 넣은 거란다. 크레첸, 네게 주는 선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는 호의에 감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을 잊어버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감사 있는 자에게 더 넉넉히 주시는 분이 십니다.
감사하십시오. 더 큰 하늘의 축복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둘째. 인생의 아름다움을 주십니다.(19절)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 하겠으며”라 하였습니다.
16년 동안 병상에 누워 살아온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사지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늘 통증 가운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 입에서는 늘 감사하는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엄지손가락 하나를 쓸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손가락으로 성경책장도 넘길 수 있었고, 빨대를 이용해 차도 마실 수 있었으며, 음식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할머니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할머니는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으며, 낙심될 일도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의 말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 하실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감사 속에서 하나님이 그의 마음 안에 계실 때 그는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인생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키게로는 말하기를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위대한 미덕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미덕의 근원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취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삶이란 왜 이렇게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작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추구하는 아름다운 신앙인들이야말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가진 것이 많다고 아름다운 인생의 모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물질과 관계가 없습니다.

인생의 행복과 아름다운 고상함은 감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세 가지만 들어주마."
이 사람은 무척 기뻐하면서 무슨 소원을 아뢸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마도 자기 아내가 퍽 싫었던 모양입니다.
첫 번째 소원으로 "지금 마누라를 데려가시고 새 마누라를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소원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내를 데려가셨습니다.
장례식날 문상객은 참 많이도 왔습니다.
그 문상객들은 한결같이 "아이고, 그 좋은 분이 돌아가셨군요."하며 "남들 몰래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참 좋은 일 많이 하셨는데, 그렇게 착하고 복된 분이 돌아 가셨군요"라고 이구동성으로 죽은 아내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문상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자기 아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고, 그런 사람이 죽어서 되겠나' 싶어 하나님께 "제 마누라를 다시 살려 주십시오"라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두 번째 소원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으니 무엇을 구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하나 남은 소원을 투자할 만큼 귀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아예 하나님께 여쭈어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라."
이렇게 해서 그는 정말 세 번째 소원을 이렇게 기도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현재의 내 처지 이대로 좋습니다. 이대로도 분에 넘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그 이후?이 부부는 깊은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많은 이들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비추어주는 빛의 모습으로 간직되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질이 있어도 비천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식이 있어도 추한 사람이 있습니다.
권력이 있어도 초라한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더하여 주는 유익을 반드시 얻게 될 것을 믿습니다.
셋째. 믿음을 굳게 세우는 유익이 있습니다.(20절)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무릇 그를 압박하는 자는 내가 다 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굳게 세우는 도구가 감사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해하지 못한다. 만족하지 못할 때 따르는 결과는 불평이며, 불만이며, 짜증이며, 자포자기이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 만족한 사람은 늘 감사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두 마을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감사 촌에 살고 한 사람은 불평 촌에 삽니다.
불평촌의 사람은 무엇이든지 불만이고 무엇이든지 분노하고 무엇이든지 근심스럽습니다.
잠재적으로 항상 불만과 불평의 연기가 담배 연기처럼 코에서 입에서 기어 나옵니다.
기쁘고 좋을 때도 기분 나쁜 일을 예상하면서 그것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문호 버너드 쇼가 자기에게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자기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많은데 이것이 비극이며,
둘째 비극은 자기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때에 절망하는 것이 비극이라고 했습니다.
잘 되어도 비극, 절망이고 안 되어도 비극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불평촌의 사람은 주소가 그 동네이므로 이 비극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감사촌의 사람은 어떠한 가운데 서도 감사합니다.
고생할수록 하나님께 감사하고 시련을 받을수록 하나님께 감사의 농도가 깊어집니다.
봄에는 꽃 피는 것이 감사하고, 여름에는 무성한 것이 감사하고, 가을의 낙엽이 감사하고, 겨울에는 뿌리가 감사합니다.
무에서 출발한다면 모두가 감사합니다.
마음의 비교 점을 제로에다 두면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무에 비하면 옷 한 벌, 얻어먹는 밥 한끼가 감사합니다.
병원에가 보면 내가 건강한 것이 기적 같습니다.
죽은 사람들에 비하면 지금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한 가지만으로도 밤새도록 찬송하고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사실입니다.
내가 건강한 이유는 하나님이 건강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방군의 한 병사가 죽어가면서 목사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는 이 병사가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병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 어머니께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목사가 무엇을 감사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게 좋은 어머니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제가 기독교인인 것, 이렇게 죽을 수 있는 것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에 대해 감사합니다."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는 자에게는 마귀도 물리치는 굳센 믿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터 위에 견고히 서서 믿음으로 큰 능력을 지니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맥추절을 지키는 자의 축복
     출애굽기 34:22-24
     강남교회/김성광 목사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칠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
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
지 못하리라” (출애굽기 34장 21∼24절)
설교개요
성경구절 : 출애굽기 34:22-24
A. 맥추절에 대하여
1. 맥추절
2. 본문 배경 설명(출 34:22-23)
B. 맥추절을 지키는 자의 축복
1.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 승리 (출 34:24a)
2. 네 지경을 넓히리니 - 번영, 번성 (출 34:24b)
3.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 보호, 안전 (출 34:24c)
C.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맥추절을 지켜서 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A. 맥추절에 대하여

1. 맥추절

현대인들은 감사의 부재로 ‘감사 실종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경쟁의식과 바쁜
일과로 서로 감사를 잊고 지냅니다. 감사하지 않으니까 대신에 미움이 생기고 원망과 불평
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이 베푼 사랑과 은혜에 감사할 줄 모릅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기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요즘 이렇게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을 등한히 하는 자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부모님께 감사할 줄 아는 자녀들이 공부도 잘한다고 합니다. 대개 공부를 못하는
자녀들이 부모님께 원망, 불평합니다. 이런 자녀들은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도 감사하지 않
고, 결국은 문제아가 됩니다. 사회에 나가서 직장에서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이 나
중에 갈 곳은 감옥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을 배워서, 선생
님께도 감사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도 감사해야겠습니다.
제자들이 전심을 다해 가르치는 스승께 감사할 줄 모릅니다. 사원들이 회사에 감사할 줄
모릅니다. 노조운동은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노조운동으로 인해서 회사가 망한다면 결국 감사할 줄 모르는 행위가 되고 마는 것입
니다. 또한 백성은 자기가 태어난 국가에 감사할 줄 모릅니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에 감사할 줄 모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 호
흡이 있고 생명이 있는 인간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특히 감사절을 맞이하여 잃어버렸던 감사를 되찾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면 큰 축복과 은총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새벽 기도를 다녀오다가 길에서 지갑 하나를 주웠습니다. 지갑이 두툼하여
열어보니 안에는 수표와 현금, 백화점 상품권 등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지갑 안에서 전화
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한 뒤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지갑 주인은 거금이 든 지갑을 찾아 주었는데도, “고맙습니다." 하고 한 마디 하더니 별
다른 인사도 없이 그냥 가버렸습니다.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
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지갑을 찾아 준 사람에게 고마움의 표시를 하지 않으면 형사처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갑을 찾아 준 사람에게 5∼20퍼센트의 한도 내에서 사례
를 하지 않으면 법에 저촉된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돈 주인이 처벌을 받게 되는 죄목은
‘감사하지 않은 죄'입니다.
반면 유실물을 획득한 사람은 7일 안에 경찰서에 신고해야 합니다. 만약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는 횡령죄에 해당하여 1년 이하의 징역을 살게 됩니다. 이상은 유실물 관리법에 나오
는 내용인데, 중요한 것은 감사하지 않는 것도 죄에 해당된다는 사실입니다.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일상 생활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있어서 감사가 필요
합니다. 가정에 감사가 있으면 행복합니다. 직장에서도 감사가 있으면 성공하는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도 감사가 있으면 건전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감사가 있
으면 부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
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없습니다. 대개 성공한 사람들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
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실패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혜서인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명언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늘 배우려는 자세
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
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 감사하는
사람이다."
돈만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부자가 아닙니다.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아
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입니다. 우리는 이 명언을 통해서 감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
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감사가 필요합니다. 보통 신앙에는 3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받는
단계', 둘째는 ‘감사의 단계', 셋째는 ‘드리는 단계'입니다.
첫째 단계, ‘받는 단계'는 교회에 나온 지 6개월에서 1년 정도 되는 초신자 때입니다. 이
때는 대개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을 잘 받습니다. 은혜 받고, 구원받고, 축복도 받습니다.
그래서 첫째 단계는 ‘축복의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신앙이 조금 성숙해져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감사하는 단계'입
니다.
그리고 셋째 단계는 ‘드리는 단계'입니다. 말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드
리고 물질과 정성을 다해 헌신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감사헌금도 드리고 십일조도 바칩니
다. 성가대도 하고, 주일하고 반사도 하고, 남·여선교회에 들어가서 봉사도 합니다. 하나님
의 은혜에 보답하는 성숙한 믿음의 단계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가장 성숙한 신앙은 바로 ‘드리는 단계'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
는 부모님께 무조건 받습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부터 감사하게 되고, 더 나이가 들면 부모
님께 무엇으로 보답하여 효도할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마치 수증기와 같습니다. 태양이 비추면 물은 수증기가 되어 위로 올라가고 올라
갑니다. 그것이 모이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모이면 큰 물이 되어 하늘에서 비가 쫙쫙 내리
게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있지만,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없습니
다. 감사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더 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잠언 3장 9∼10절에는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
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부
모님도 공경의 대상이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도 공경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서 넘치는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오늘은 맥추절을 맞이하여 감사절기예배를 드립니다. 그 기원은 본문 출애굽기 34장에 나
와 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십계명과 율법 중에서 ‘절기에 대한
법(의식법)'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종교적인 의
무로써, 일년에 3번, 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을 절기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4∼17절에도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
기를 지키라 …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
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
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
일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절기를 지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
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신명기 16장 10∼11절 말씀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만큼 하나님께 드리되, 억지로 드리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봄에 봄 농사 지은 것, 지난 몇 달 동안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을 가지
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껏 드려야 합니다. 또한 주변에 고아나 과부나 객과 같이 불행한
사람, 억울한 일 당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감사와 찬송을 돌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절기를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허락해 주십
니까?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약속도 받지 못합니
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하게 절기를 지키면 세 가지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생존경쟁에서 이기
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둘째, ‘네 지경을 넓히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모
든 것을 확장시키시고 번창케 만들어 주십니다. 셋째,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적군으로부터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여러분도 모세
를 통해서 주신 맥추절을 믿음으로 지켜서 이러한 축복을 받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B. 맥추절을 지키는 자의 축복

1.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 승리

“내가 열방(列邦)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출 34:24)

여기서 ‘열방'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에 이미 그 땅에 정착하고 있던 원주민을 말합니다. 그곳에는 모두 7족속, 헷 족속, 기르가
스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땅을 허락하셨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들어가서 전쟁에 이기고 또
이겨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땅은 황무지 같은 땅, 아무것도 없는 땅, 임자 없는 땅이 아
니었습니다. 이미 정착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는 쳐들어가서 싸워 승리하고 땅을 정복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이었습니다. 그 땅의 본래 주인은 원주민이 아니라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네 앞에서 쫓아내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과의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여,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족속은 보통 족속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으로, 전부
신장이 장대한 거인이고 장사였습니다(민 13:28∼29). 그래서 10명의 정탐꾼들 중 8명은, 그
들에 비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같이 작으니 어떻게 싸우겠냐며 부정
적인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반드시 승리하고
그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그 땅을 도저히 점령할 수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할
수있습니다. 소년 다윗으로 하여금 장수 골리앗과 싸워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능력과
은총을 주시기만 하면 승리하고, 점령하고,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
나님과 함께 해 승리하는 삶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레위기 26장 8절에는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숫자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편에 서 계시느
냐에 따라 승패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다섯 명과 함께 하시면 백 명을 쫓아내고, 하나님
께서 백 명과 함께 하시면 만 명이라도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반드시 이
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일서 5장 4절에도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
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
고 그 믿음을 통해서 이기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패배자가 되지 않고 승리
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하고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까? 감사하는 자만이 승
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감사는 범사에 승리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감사의 조건을 더 넘쳐
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 처하더라도 감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느 날 한 직공이 실수를 하는 바람에 그만 공장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공장은 순식
간에 전쟁터처럼 변하고, 사장은 잿더미 위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그의 아내가 찾아왔습니다. 아내는 울고 있는 남편을 발견하고는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 길로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강대상 앞에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버리셨습니까? 지난 6년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톱에서 피가 나도록
열심히 일을 했는데, 남은 것은 다 타버린 공장뿐입니다.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망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남편은 잿더미 위에서 울고, 아내는 성전에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울면서 기도하는
아내에게 문득 ‘그래도 감사하지. 남편이 살아 있는 것도 감사하고, 우리가 건강한 것도 감
사하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내가 절망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장이 불 탄 것도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의 기도
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감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집에 남아 있는 돈을 모두 챙겨다
가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공장이 불탔다는 소문이 퍼지자 교회 성도들, 친지, 주위의 동료 등 여기저기서 모
금을 해 주어서, 다시 공장을 크게 짓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교회에 출석하게 되어 집사가
되었습니다. 새 공장에서의 사업도 잘되고 점점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공장이 다시 서고는
직원이 수백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사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차를 하나
사서 그 차로 봉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9인승 승합차를 사서 매 예배 시간마다
교인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축복에 축복을 주셔서, 좋은 집도 장만하게
되고 공장도 날로 번창하여 ‘삼양가구사’라는 이름이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감사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넘치게 받게 된 것입니다.
위기에 빠졌을 때 감사하지 못하고 슬퍼하고 절망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그것으로 끝날지
도 모릅니다.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감사하며 믿음을 가지고 도
움을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이전보다 더 크게 역사하시고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2. 네 지경을 넓히리니 - 번영, 번성

“네 지경(地境)을 넓히리니"(출 34:24b)

여기서 ‘지경'은 어디를 말합니까? 출애굽기 23장 31절에 보면, “내가 너의 ‘지경'을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까지 정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쪽과 서쪽의 경계를 홍해에서 지중해까지, 남쪽과 북쪽의 경계를 아라비아
광야에서 유브라데 강까지로 정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광활한 땅을 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여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넓히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사업이나 일도 점점 더 확장되어야
지, 축소되다가 망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넓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하나
님께서는 우리의 기업을 번성케 하십니다. 영토를 넓혀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 때는 비로소 그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어서 이스라엘의 국토가 나일 강
에서 유브라데 강까지로 넓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수많은 나라들이 속국이 되어 조
공을 바치는 왕국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절기를 지키면, 하나님께서 번성의 축복을 주셔서 기업의 지경
을 넓혀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업도 번창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러나 교만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도움이 떠납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떠납니다. 가난과 저주와 질병과 죄악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사야 54장 2∼3절에는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
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로 만족하시지 않습니다. 두 개, 세 개로 번창케 하는 역사를 허락하셔서 확
장하여 체인을 형성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는
자, 몸과 마음과 물질과 정성을 바쳐서 하나님 앞에 산 제사를 드리는 자를 번창케 하시겠
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감사는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첫째, 기도의 문이 열리게 합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잘하
는 사람은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
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저 원망, 불평만 쌓입니다. 둘째, 기도의 문만 열리는 것
이 아니라, 마음 문도 활짝 열립니다. 셋째,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넷째, 만사형통하게 하십니다. 다섯째, 감사하는 사람은 대인관계도 좋습니다. 원망, 불평하
는 사람은 대인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세하지 못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섯째, 감사하는 사람은 자기 일에 충성을 다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넘치는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갑절의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감사를 통해서 여러분의 활동 범위,
영역이 더 넓어지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프랑스의 한 웅장한 성당에 바하 연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잘 알려진 오르간연주자가 있
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시각장애자였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그는 건반 앞에 앉기
만 하면 마치 하나님이 임재한 것 같은 감동적인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래서 한 관광객이 그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시각장애자인데, 어떻게 그런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습니까?"
“나는 눈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귀와 손과 발이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
륭한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연구와 노력을 통해 보이는 사람보다 더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대개 원망, 불평하는 사람을 보면 없는 것만 놓고 원망, 불평합니다. 부정적인 것, 남의 약
점만 보고 따집니다. 이런 사람은 성공하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좋은
점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것, 가능성이 있는 것,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감사해야 합니다. 없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한평생 원망, 불평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까? 부부는 서로 가진 장점을 보고, 또한 도울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는 유익이 되는 것을 보고 감사, 찬송해야 합니다. 손해 본 것만 가지고 인생을 평가한다면
감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사람은 패자이고, 감사하는 사람은 승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감사의 시작은 축복
의 시작이고, 불평의 시작은 저주의 시작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인생을 원망, 불평하며
살겠습니까? 아니면 감사하며 살겠습니까? 감사의 씨앗을 심으면 30배, 60배, 100배로 감사
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보답할 줄 아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
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정문술 집사님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미래산업의 회장인 정 집사님은, 어느
날 카이스트에 300억 원의 연구비를 기증해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럴 만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미래산업이 사업이 부진하고 연구 발전이 안될 때, 카이스트의 이광형 교수가 찾아와서
첨단기술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미래산업은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이광형 교수에게, 무엇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미래산업이라는 회사에 가서 기술
을 가르쳐 주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국비장학생으로 해외로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입니다. 국가에서 준 돈으로 공부를
했으니 나도 국가의 발전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마침 미래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 국가에 보답하기 위해서 기술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그 회사가 잘되어 나도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국가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회사를 발전시키고, 회사는 학교에 연구비를 지원했습니
다. 서로 은혜에 보답하여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잘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국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국가에도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합니다. 사업을 해서 성
공했으면 사회에도 환원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으면 선생님께도 감사해야 합니
다. 또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으면 교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
아가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음으로 은혜를 은혜로 갚지 못합니다. 원망과 불평과
부정적인 삶에 빠져서 자멸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작은 일에서나 큰 일에서
나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감사를 시작할 때 축복이 시작되고, 감사를 통해서 더 큰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 보호, 안전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貪)
내어 엿보지 못하리라"(출 34:24c)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인 남자들은 어느 곳에 살든지 간에, 1년에 3번 돌아오는 절기 때에는 집을 비우고 예루
살렘 성전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라갔습니다. 그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도적이 들거나, 적군
이 쳐들어 와서 재산을 다 빼앗아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이 예배를
위해 집을 비운 동안에는 그런 위험을 막아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 하나
님도 감사할 조건을 더 풍족하게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손해 보게 하시지 않습니
다. 어린 자녀가 월급 봉투를 타 가지고 와서 부모님께 드리면 부모가 자녀에게 손해 보게
합니까? 육신의 부모도 그렇거든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몸과 마음과 물질과
정성을 다해서 충성, 봉사,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하시고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
입니다.
또한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국가
적인 위험과 군사적인 위험에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가정과 재산상의 위험에서 보호하
셨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위험에서도 보호하셨습니다. 오고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지 않도
록, 병들지 않도록, 사고 나지 않도록 지켜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올바로 잘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예배 드릴 때 예배
드리고, 충성할 때 충성하고, 헌신할 때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 봉사,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키고 보
호하여 주십니다. 축복 가운데서 재산을 지켜 주시고, 건강을 지켜 주시고, 가정을 지켜 주
시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32∼33절에는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
은 의인에게 해를 끼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침범해 오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
시지 않으면 결코 악인이 의인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24장 15∼16절에도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
니라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
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인과 의인 가운데, 의인은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축복하시고 악
인은 멸망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해가
우리에게 덮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지켜 주시는 사람은 결코 두려워하며 살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떠난 한 여자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악성 위궤양을 앓고 있었
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때가 되어 떠났습니다.
그런데 선교지로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본부에서 선교 지원금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동안 선교사님은 아무 활동도 못하고 매일 보리죽만 먹으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그렇게 고생을 하며 지내고 나니 이상하게도 위장병이 없어져 버렸습
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선교 지원금이 도착하여 육 개월 동안 활발히 선교활동을 할 수 있
었습니다.
그는 본국으로 돌아와 선교보고를 하면서, 한 달 동안 선교비가 오지 않아 보리죽만 먹었
던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 보고가 끝나자 한 의사가 그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그때 보리죽만 드셨기 때문에 살아나신 겁니다."
“왜요?"
“악성 위궤양은 먹으면 안되거든요. 굶어야 낫습니다. 만약 그때 이것저것 먹었더라면 선
교지에서 돌아가셨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하심으로 선교사님의 생명
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때로는 어려움을 당하는 것도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통해서 건강을 되찾기도 하고, 잃어버린 신앙을 되찾기도 합니
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와서 깨어지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더 큰 축
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C.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맥추절을 지켜서 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여러분, 절기를 무시하거나 귀찮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겸손히 성경 말씀에 있는 그대로
순종하여 절기를 지키고 예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하여 주시는 것입
니다. 몸과 마음과 물질과 정성을 다해서, 지난 봄 동안 역사하신, 지난 몇 달 동안 역사하
신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에 감사함으로 맥추절을 지키는 믿음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 주변의 적국과 싸워 승리하게 됩니다. 생존경쟁에서 승리하게 됩니
다. 여러분의 위치에서, 직장과 사업장에서 번성하며 번창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어려움과
위험과 죄악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 보호하여 주십니다. 암으로부터 지켜 보호
하시고, 각종 질병과 사고에서 지켜 보호하시고,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지켜 보호하여 주
시는 것입니다.
미국에 5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 셀러 중에 바바라 존슨이라는 주부가 쓴 『모자에 제
라늄 꽃을 꽂고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바바라 존슨은 원래 남편과 네 명의 아들이 있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문제가 불어 닥쳤습니다. 집에 돌아오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그만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첫째 아들은 음주 트럭 운전자에 의해 치어 죽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호모
섹스에 빠져 집을 떠나 버렸습니다. 셋째 아들은 베트남전에 파견되어 18세의 어린 나이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연속되는 불행으로 ‘하나님, 어찌해서 내게는 불행만 다가옵니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과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비참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부정적으로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해!' 하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하나님, 내 남은 생애를 다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감사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
습니다. 시간만 나면 교회에 가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식물인간이었던 남편이 기적적으로 생기를 되찾고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나도 뭔가 좋
은 일을 해야지.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해야지.' 하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재난을 당해 실의에 빠진 부모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베트남 전쟁
으로 전사한 젊은이들이 5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전사했을 때 그 부모들의 심정
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위로했습니다.
‘아들이 죽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국가를 위해서 큰 일을 한 겁니다.'
또한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편지를 쓰고 전화를 해서 위로했습니다. 그들을
모아 함께 기도도 하고 그들을 위한 세미나도 개최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이들을 도와주
는 그룹을 만들고 선교회도 조직했습니다.
그는 남을 돕는 일로 아주 바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시고, 희망과 능력
을 주셔서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출판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강사로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성계의 지도자가 되어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호모섹스로 집을 나갔던 둘째 아들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쓴 책은 베
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는 남은 생애를 보람 있게 사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만약 절망하고 낙심했더라면 더 비참하게 살았을 텐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감사하고 또 감사했을 때 그의 인생은 새로워졌습니다. 진로가 바뀌게 되
었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성공했습니다.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남을 도와주는 존경받
는 여성계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원망하며 사시겠습니까? 불평하며 사시겠습니까?
남의 약점만 끄집어내고 욕하며 사시겠습니까? 비관적이며 부정적인 삶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감사하며 사시겠습니까?
작은 일부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서도 감사하고, 가정에서도 감사하고, 직장
에서도 감사하고, 국가와 민족, 사회에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씨를 뿌릴 때 감사의
열매, 축복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감사로부터 출발합니
다. 감사는 여러분의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라도 감사로 충만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라
     롬 12:1-2



"사람은 삶이 무서워서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무서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어느 철학자가 말한 적이 있다. 그 분의 말대로 사람들은 문명 사회를 만들어 냈고 또 수많은 종교를 만들어 숭배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科學이 발달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신을 섬기고 宗敎를 찾게 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와 미신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종교 활동을 함으로써 신이라고 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안녕과 평화를 유지하고 건강과 행복을 지키며 자녀의 번성과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죽은 후에 좋은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복 받기 위해 종교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제사를 지내는데, 그 제물은 짐승들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죽은 것을 바칩니다. 구약의 종교도 그랬습니다. 결국 그 제물들은 죽은 제물이요, 그 죽은 제물을 바치는 제사도 죽은 제사입니다. 구약 시대는 죽은 제물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제사를 지냈기에 예배를 본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산 제물, 산 제사를 원하시지 죽은 제물, 죽은 제사를 원치 않습니다.
오늘날은 옛날처럼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를 죽여 피 뿌려 제물로 드리지 않고 내 몸의 열매인 물질을 獻金으로 바칩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和睦 祭物로 받쳐 피흘려 죽어 산 제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내 마음과 정성을 담아 헌금으로 드려야 합니다. 또한 獻身과 奉仕로 우리의 몸을 받쳐야 한다. 그래서 신약 시대는 禮拜를 본다고 하지 않고 드린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산 제물입니다.
본문 말씀에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1절)고 했습니다. '산 제사'란 구약의 죽은 제사, 그리고 모든 종교와 미신의 제사와는 다른 제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산 祭祀가 되게 하려면 산 제물을 받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산 제물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산영으로 드린 제사, 생활의 제사, 우리의 온 몸으로 드리는 제사, 온전히 주님께 바쳐진 제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良心이 죽고 靈이 죽은 자가 천 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드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받지 않을 것이며 그 제사는 죽은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과 정성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바치고 생명을 바치고 우리의 생을 바치는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意識的인 祭祀보다 그들이 生命과 몸을 바쳐 順從함으로 드리는 의로운 생활을 기뻐하시고 이를 산 祭物로 받으신 것입니다.
산천의 초목이 세상을 떠날 때 큰 나무는 집 대들보와 기둥 그리고 석가래 작은 나무는 연장 자루로 남기고 갑니다. 쓸모 없는 나무는 화목이 되어 에너지로 사용됩니다. 소는 논밭을 갈고 짐을 실어 온갖 힘든 일을 하다가 세상 마칠 때 가죽은 구두의 재료로 그 고기는 식용으로 이용됩니다. 닭은 밤잠 안자고 시간 알려 주며 알 낳아 주고 죽을 때 요리감으로 제공됩니다. 돼지는 욕심 많고 더럽다고 꿀꿀 돼지라 하지만 죽을 때는 그 몸 전체를 사람의 營養食으로 제공됩니다. 여우도 죽을 때 그 털가죽을 남기는데 만물의 靈長인 사람이 아무런 것을 남긴 것 없이 세상을 떠난다 함은 너무 가련합니다.
우리의 생활 전체가 하나님 앞에 산 祭祀인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땀과 눈물과 수고와 내 영과 육신, 시간과 재주와 재산을 다 받쳐 몸으로 산 제사 드리시는 축복 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날 하나님께 麥秋 感謝節 헌금을 드리려고 합니다. 가인처럼 얻은 곡식의 일부를 아무런 感謝나 고마움의 표시 없이 바친다거나 精誠 없이 형식적이거나 체면치레로 바치는 예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헌금은 산 제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獻金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되어 상달되기를 바란다면 아벨이 드린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기름지고 부드러운 첫 것이나 값나간 것으로, 죄 사함에 감격하여 피 뿌리는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평가할 때 精誠을 보시고 그 마음을 보십니다. 주님은 자색 옷을 입고 자신을 뽑내면서 드리는 많은 양의 헌금보다는 비록 작은 두 렙돈의 돈이지만 생활비 전체를 드린 정성을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드릴 산 제사란 무엇을 말합니까?
옛날 헬라 사람들은 철학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육신은 영혼의 감옥이라 했습니다. 이 사상 때문에 영혼은 중히 여겼으나 몸은 천히 여기고 무시했습니다. 이런 사상은 기독교 사상이 아닙니다. 육체를 천히 여기거나 멸시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몸을 천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을 責望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책망했습니다(고전 3 : 16).
하나님께서는 몸과 靈魂을 똑같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이나 영혼이 다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과 함께 몸도 대단히 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 하느냐?'고 한 말씀에서, 우리 몸은 성령께서 사시는 성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우리 몸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몸은 성령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너희 몸으로 ‥‥‥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한 것은 몸 전체가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눈과 귀와 입, 그리고 손과 발 등 이런 肢體뿐 아니라 우리의 몸 전체가 하나님께 바쳐져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우리의 매일의 삶이 하나님께 바쳐져서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져서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생활을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 버린다면, 禮拜堂에서 드리는 예배도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전 생활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祭祀라면 우리의 모든 소유가 그 제사에 사용되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유는 두 가지입니다. 형태가 있는 것들과 형태가 없는 것들입니다
첫째, 형태가 없는 것들이란 여러 가지 은사들입니다. 믿음과 聖靈의 아홉 가지 열매뿐 아니라 일반 은사, 즉 지식이나 기술, 재능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제물로 사용되어져야 할 것들입니다.
둘째, 형태가 있는 것들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과 소유물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되어질 때 그것을 獻身이라 합니다.
어느 선교사의 선교 보고서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선교사는 대양주의 동쪽에 있는 뉴헤브라이즈(New Hebrides)군도에서 선교 활동을 했는데, 원주민들이 돼지를 잡을 때마다 돼지 꼬리를 잘라서 따로 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엇 하려고 돼지 꼬리를 보관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고기는 우리를 위한 것이고, 꼬리는 우리의 신들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기발한 생각입니다. 아마 그들의 신은 바보 신일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하나님을 뉴헤브라이즈 사람들처럼 섬기지는 않는지요? 모든 좋은 것들은 자기가 취하고, 대단치도 않은 돼지 꼬리 같은 것만 겨우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우주와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합당한 것으로 섬기고 있는지 자신을 향해 물어 봅시다.
오늘의 말씀 1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절).
그러면 왜 하나님을 섬기며 헌신해야 합니까?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어느 것도 '내 것'이라고 자기 所有權을 주장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生命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救援해 주시고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이것만은 '내 것'이라 할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만 청지기일 뿐입니다. 관리인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고 헌신해야 합니다.
큰집에는 관리인이 있습니다. 大統領도 국가를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대학교의 總長이나 기업체의 代表도 청지기입니다. 牧師도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그 집이나 그 집에 있는 모든 것을 그 주인에게서 받아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그 어느 것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내 육체와 영혼을 관리할 책임과 믿음과 사랑의 관리자이며, 지식과 시간, 그리고 재능과 물질을 관리할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나 그것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즉 하나님을 몰라보는 것은 그것이 어느 것이든지 간에 도로 달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맡긴 生命을 내 놓아라." 하실 때 누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네게 위임한 物質을 내놓아라. 다른 사람에게 맡기겠다. " 하실 때 누가 못 내놓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받은 것으로 힘써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생활이 예배가 되는 영적 예배요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敎會에 남자 집사님이 영화사를 했던 분이 있었는데, 서점을 하면서 고등부 부장으로 봉사하고, 예배 시간에는 3층 방송실에서 해드폰을 끼고 예배 시간마다 설교를 녹음하고, 마이크며 음향 기기를 조절하고, 교회의 모든 현수막이나 게시판 등 글씨 쓰는 것은 도맡아 봉사했습니다. 그는 안수 執事가 되고, 長老가 되고도 즐겁게 奉仕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하나님의 것인 줄 아는 사람은 이와 같이 즐겁게 獻身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치는 영적 예배요, 산 제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음 주일에 바칠 맥추감사 예물은 어떤 것입니까? 산 제물입니까? 죽은 제물입니까? 좋은 것은 내가 쓰고 남는 것을 하나님께 바쳐서는 안됩니다. 많은 것은 내가 쓰고 부스러기를 바쳐서도 않됩니다. 물질만 바치고 몸과 마음을 바치지 않은 것도 산제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형식적으로 흉내만 내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救援해 주신 恩寵에 감사 감격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에 대한 보답으로 감사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어려운 逆境 중에서도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여기까지 오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IMF 시대라고 해서 불신앙적인 생각으로 獻金을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때일수록 믿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주님께 感謝의 표시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30-40년 전에 보리 고개라고 하는 배고픔의 고개를 넘어 왔습니다. 그때에도 우리는 제물을 바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보리밥이며, 쑥 죽이며, 풀떼죽, 감자밥을 같이 나누어 먹으며 배고픔을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썩어 나가고 너무나 배부르게 먹다 보니 병들어 죽게 되었다. 그러므로 배고픈 이웃을 생각하고 굶주린 북한 동포를 적선하며 감사의 제물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진짜 산 제물이다.
하나님께서는 학개 先知者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8) 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은 금 寶貨가 다 하나님의 것이요, 모든 權力과 名譽가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所有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주시려고 마음먹으면 시간 안 걸리고 주시고 아무리 인간적인 방법으로 많은 것을 쌓아 놓았다고 할지라도 빼앗아 가려고 마음 잡수시면 시간 안 걸리고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날 나의 名譽와 物質과 富를 허락해 주시는 것은 나만 쓰고 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써 그것들을 잘 관리하고 베풀고 도와주며 하나님의 것을 잘 쓰라는데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麥秋 感謝節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받은 것 중의 일부를 감사한 마음으로 아낌없이 드려야 합니다. 이는 내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을 아버지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것이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면 주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더 많은 것으로 주실줄 믿습니다.
어느 마을에 결혼을 하여 십 년만에 독자를 낳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점점 자라가자 아들 재롱떠는 것을 보는 재미로 살아갔습니다. 재롱을 부리고 귀여움을 부리는 것을 즐겁게 여겨 장난감도 사다 주고 먹을 것도 사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은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도 않고 먹어 보라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정신없이 혼자서 한참이나 먹다가 쳐다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코 묻고 침 묻은 것이지만 "아버지 이것 먹어" 하고 주면, 자기가 사다 주는 것이지만 그런 자식이 기특하고 귀여워서 또 사주고 또 사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아버지가 주신 祝福을 따라 살면서도 자기가 잘해서 오늘날 내가 이만큼 살고 누린다고 감사하지도 않고 드리지도 않고 드리되 형식적으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다 가져가시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치면 주님께서 자기 것을 주면서도 예쁘고 귀여워서 더많은 것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얼마나 쌓아 두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聖經에 나온 富者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부자가 되어 창고를 짖고 곡간을 늘렸지만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자 하나님께서 그 밤에 그의 생명을 도로 찾으시니 그 많은 물질과 소유를 써 보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바을 사도는 하나님의 청지기인 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받지 않은 것처럼 생각해서 자랑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필요한 인물은 신실한 사람입니다. 헌신도 청지기도 성실성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월터 리프만이라는 컬럼니스트는 현대 역사를 분석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두 종류의 인간이 역사를 움직이고 있다. 하나는 獻身的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요, 다른 하나는 헌신적인 마르크스의 제자들이다. 결국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사람들과 공산주의에 헌신하는 사람들의 싸움이다. 누가 더 헌신하느냐에 이 싸움이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마르크스의 共産主義는 실패한 것이 분명합니다. 세계에서 공산주의를 하는 나라가 두 나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승리한 것입니까? 우리의 싸움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앞으로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물질 만능주의와 과학 만능주의와의 싸움입니다. 物質과 科學이 하나님보다도 크게 보일 것입니다. 魔鬼는 이러한 무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挑戰하고 넘어지게 합니다. 마치 에덴 동산에서 善惡果를 가지고 아담을 넘어지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께 獻身하며 삽시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에 대한 청지기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합시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 산 제물이 되는 것이요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인 줄로 믿습니다.


 

5.   조건 없는 감사
      하박국3 : 17-19


경기도 안양에 <삼덕제지>라는 종이공장이 있습니다. 42년 전에 세워져서 지금까지 학생들 교과서나 우리가 가정에서 사용하는 크리넥스등 많은 종이류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 회사의 [전재준(全在俊)]회장은 80세의 노인입니다. 그런데 조만간에 종이공장이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놀랍습니다. 부도가 난 것도 아닙니다.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전재준 회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1961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주변이 한적했는데 그동안 사람들이 모여들며 덩달아 땅값도 올라갔다. 내가 땀 흘려 번 돈도 아니고 그동안 시민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 가족들과 상의해 흔쾌히 기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종이 공장에서 나오는 먼지와 진동 때문에 고생하신 안양 시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제 공장을 닫으면서 시민 여러분께 이 땅을 드립니다.”하면서 자신의 회사 부지 4천3백64평, 시가 3백억 원 상당의 땅을 그저께 안양 시에 헌납했습니다. 헌납의 뜻을 밝히면서 활짝 웃는 80노인네의 얼굴 속에 진실한 감사의 자세가 있었고 한 없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생애 속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우리 머리 속에는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땅값만 300억에다가 거기에다 빌딩을 세우면 얼마가 될까? 아깝다. 제 정신이냐!”이런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아직도 우리는 조건 없이 베푸는 감사의 정신이 부족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비유를 했습니다. “불교는 초상집과 같고, 유교는 제삿집과 같고, 기독교는 잔칫집과 같다.”참 그럴듯하게 비교한것 같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활자세는 잔치하는 자세여야 합니다. [윌리암 로우(William Law)]라고 하는 사람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세계 최대의 성자는 기도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요, 금식을 많이 한 사람도 아니요, 자선을 많이 베푼 사람도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정말 옳은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누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냐>, <누가 하나님께 늘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냐>할 때 그 기준은 <누가 어떤 일에까지 감사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감사>와<기쁨>이라고 단어의 헬라어 어원은 같은 것입니다. 기쁨은 내적인 것이고, 감사는 외적인 것입니다. <기쁨>이란 그 내용이요, <감사>는 표현의 형식입니다. 그러므로 기쁨 없는 감사는 위선이며 외식이며, 수단과 처세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대는 기쁨이 없는 세대입니다. 잃은 사람은 억울해서 기쁨이 없고, 얻은 사람은 더 얻지 못해서 기쁨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적으면 모자라서 걱정, 많으면 지키느라 걱정, 이래저래 기쁨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지구촌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활조건이 72가지가 있었고, 그 중에 절대 필요한 것은 18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생활조건에 필요한 것은 5백가지이며 절대 필요한 것은 50가지라고 사회학자들은 분석합니다. 필요한 것과 절대 필요한 것이 더 많아졌고, 실제로 더 많이 누리며 사는 현대인들입니다만 과연 60년 전에 누리던 행복지수보다 더 높아졌을까요? 아닙니다. 현대는 여전히 행복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원망하는 사람입니까?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원망하는 사람은 꼭 자기한테 없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가진 것도 많은데 못 가진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나치게 확대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가진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없는 것도 많지만 가진 것, 있는 것을 생각함으로 늘 감사가 넘칩니다. 비록 없어진다 할지라도 지금까지 이미 누렸던 바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남아메리카 주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끊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은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갈 수가 있답니다. 외국 관광객들이 부러워하면서 안내하던 멕시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곳 부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거저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천만에요. 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땅에서 나는 것은 괜찮은데 빨래하기에 꼭 필요한 것이 나오지 않아서 불평이 많습니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필요한 그것이 무엇입니까”했더니“비누가 나오지 않아서 불평입니다.”하더랍니다. 부패한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은 끝없이 요구하고 만족을 모르며 감사를 모르는 삶인 듯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감사보다 불평이 더 있습니까? 죄가 가리어서 그렇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사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의 자비를 기억하고 주신 복을 세어보면 감사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자]는 자신이 싫어하는 인간상이 몇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타인의 실패를 기뻐하는 자이며, 둘째, 윗사람을 헐뜯는 자 곧 앞에서는 굽실거리고 뒤에서는 욕하는 자, 셋째, 용기는 있으나 예의가 없는 자, 넷째,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 곧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가장 싫어하는 자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세상만사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믿는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지만, 인간적인 눈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하나님께 대한 인식이 결여된 사람에겐 매사에 불평과 비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서 왜?”라고 그 뜻을 묻는 부류와 “그 사람이 왜?”라는 감정적인 생각을 하는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이 말은 곧 감사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불평하는 사람은 항상 사람을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하박국 선지자]는 거듭되는 불평과 원망의 삶을 살다가 마침내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자세로 돌아서서 기도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의 가장 큰 불만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불만은 무엇이었느냐 하면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불의를 그냥 두시느냐>하는 것과 두 번째는 <왜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사용하시느냐>하는 문제였습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신정론(神正論)]이라고 부릅니다. 아무튼 하박국은 이 문제에 대해서 생명을 내걸고 하나님께 불평했고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단지 믿음만이 최후승리를 보장한다는 대답을 주심으로 하박국을 이해시킵니다. 하나님의 결론적인 대답에 우리가 잘 아는 하박국 선지자의 유명한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2장4절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이제 하박국은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는 감사로 기도를 마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는 그 마음이 불만으로 가득 찼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머리 숙여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얻을 생명의 면류관을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당하는 어떠한 고난도 감수하며 그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변치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그 구체적인 감사의 내용입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본문에 나오는<무화과나무>,<포도나무>,<감람나무>이 세 종류의 나무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가장 쓸모 있고 가치 있는 과실수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에 소출이 없다는 것은 황폐하고 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라는 말은 더 절망적입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농작물을 거두지 못하게 되면 무엇보다 먼저 가축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먹을 양식도 부족한 마당에 짐승들을 돌 볼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또한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는 가축들을 잡아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로 하박국의 고백 속에 있는 과실이나 밭의 식물, 그리고 양과 소,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양식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이 없다하더라도 여호와를 향한 구원의 소망만은 버리지 않겠다는 것과 그 구원으로 인해 감사한다는 하박국 선지자의 놀라운 감사의 기도입니다.
하박국의 감사를 결론지어봅시다. 한 마디로 <지금 내 생명이 끝난다할지라도 내가 구언 받은 것과 또한 구원 받을 것으로 인하여 나는 감사하노라> 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감사의 차원은 어디까지입니까? 과연 하박국 선지자처럼 이런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내 삶에 가장 귀하고 생명과도 같은 조건들이 내게서 사라진다 할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하박국의 감사가 있느냐 말입니다. 있으면 감사하고, 받아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나에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니 있는 것이 끝난다할지라도 감사하는 이<조건 없는 감사>를 드릴 수 있다면 귀한 마음이요, 귀한 신앙일 것입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다니시는<감사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어떤 잘 믿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한번은 거리에 나가서 고기 한 근을 사가지고 돌아오다가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개 한 마리가 곁을 지나다가 고기를 물고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보기만 하면서“감사합니다.”하고 서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이상해서 무엇이 감사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아 이 사람아, 고기는 잃어버렸으나 내 입맛까지 잃은 것은 아니잖아. 내 입맛은 그대로 있네.”하더랍니다. 맞는 얘기죠. 사실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입맛이 없으면 별로 감사한 일이 못됩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게 하는 이야깁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그렇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할 수 있을 때 감사가 감사됩니다.



출처 : 예꼬누리의 주일학교 자료실
글쓴이 : 예꼬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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