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jikistan

2013. 12. 10. 17:36선교자료/5.선교자료

Tajikistan

Ⅰ.일반

1.위치 : 중앙아시아
2.기후 : 대륙성, 건조기후
3.면적 : 143,100㎢
4.인구 : 592만명(98)
5.수도 : 두산베(Dushanbe, 60만명)
6.주요민족 : 타지크인 64.9%, 우즈베크인 25%, 러시아인 3.5%, 기타 6.6%
7.주요언어 : 타지크어, 러시아어, 터키어
8.종교 : 회교(수니파80%, 시아파5%)


Ⅱ.정치

1.국가성립 : 91.12.21
2.독립기념일 : 91.9.9
3.정체 : 공화제 (대통령제)
4.국가원수 : 라흐모노프(E. Rakhmonov)
5.의회 : 최고회의(Supreme Soviet)
6.수상 : 아지모프(Y. Azimov)
7.외무장관 : 나자로프(T. Nazarov)
8.주요정당 : 타지키스탄 인민당, 타지키스탄 민주당, 타지키스탄 공산당,
이슬람 부흥당
9.국제기구가입 : UN(92.3), CIS, EBRD, FAO, IBRD, IMF, OSCE, ESCAP, ICAO 등29개 국제기구 가입


Ⅲ.경제

1.국내총생산 : $34억(96) (1인당 $577)
2.중점경제정책 : 점진적인 경제 자유화, 국영 기업의 민영화 및 경제 개혁
3.화폐단위 : 타직 루블(Tajik Rouble)
4.주요자원 : 알루미늄, 금, 철, 납, 주석, 아연, 우라늄, 수력자원풍부
5.교역 : 수출 (알루미늄, 면사)-6,810만불, 수입(공산품 등)-6억5,670만불

타직(Tajik)이라는 종족명은 본래 처음에는 기원전 8세기에 페르시아 사람들에 의해서, 후에는 튀르크(돌궐), 중국 사람들에 의해서 아랍(Arab)인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8∼11세기에는 타직이 아랍인을 지칭하기보다는 이슬람 종교를 신봉하는 무슬림을 지칭하는 말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타직은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이슬람 개종자 이란인을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티무르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던 14세기에 타직은 중앙아시아의 이란계 무슬림을 지칭하는 말로 정착되었다. 지금은 타직키스탄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에 살며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 위치 및 자연환경


타직키스탄의 면적은 143,000km2이며, 국토의 90%를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 고원이 차지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동쪽으로는 중국, 북쪽으로는 크르그즈스탄과 우즈벡키스탄에 접해 있다. 또한, 넓게 펼쳐진 페르가나분지와 북서부와 중부의 튀르키스탄 제라프샨, 기사르, 아라이 등 여러 산맥들이 있다. 그리고 남부 파미르고원에는 최고봉인 콤니즘봉과 레닌봉이 솟아 있다. 남서부는 대륙성 기후로 건조하고 사막과 스텝, 산악 지역이 많아 급사면과 방목지, 모래땅으로 이루어져 있다. 타직키스탄의 기후는 대륙성 기후로서 건조하고 기온의 연교차가 커서 겨울은 최저 -60℃, 여름은 최고 45℃에 이르고 있다. 수도는 두샨베이다.

♠ 역사적 배경


중앙아시아에 아직 정착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인 기원 전 2세기경에 페르시아계 타직(Tajik, Tadzhik)인들은 유라시아 고원에서부터 중앙아시아로 이동하여 이란고원으로부터 카스피해, 그리고 중국 변경까지 널리 분포되어 거주하였으며 중앙아시아의 정착문화를 주도해 왔었다.
소그디아, 호라산, 박트리아의 오아시스 지방에서 독자적인 정착 문화를 형성한 타직인들은 일찍부터 중국, 인도, 페르시아를 연결하는 국제 무역의 중심적 역할을 해 왔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이동해 온 튀르크계 부족들로 인해 타직키스탄과 주변에 거주하던 타직인들의 문화는 튀르크화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계속하여 유지해 왔다.
기원 후 7∼8세기 아랍 이슬람군이 중앙아시아에 진출하여 이 지역을 점령되게 되자, 페르시아계 토착 주민들인 타직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었고,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인들이 이들을 타직(Tajik)이라고 부르면서 이들도 튀르크인들에 대하여 자신들을 구별하여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16세기 이후 튀르크계 우즈벡족이 침입하면서 트랜스카프카즈 지방의 튀르크화가 진행되자, 타직은 이란을 중심으로 한 페르시아 문화권에서 소외되었으며, 이슬람의 종파도 시아파에서 순니파로 변하게 되어 이란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지고 말았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타직인들은 우즈벡인들의 부하라칸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 시기에 타직어는 부하라칸국의 공용어로 쓰였다. 이 시기에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아무다르야강 남부 지방을 장악하게 되어 타직인들은 정치적으로 크게 두 집단으로 분리되었다. 1860년대에 타직키스탄 대부분의 영토를 러시아제국이 통치하게 되었으며, 1917년 공산혁명 후에는 타직스탄은 튀르키스탄자치국과 부하라인민사회국으로 양분되었다. 그러나 1924년에 이 두 타직 집단이 통합되어 새로운 타직자치국이 탄생해 우즈벡공화국에 속해 있었다가, 1929년에 독립하여 소련 연방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러시아의 식민통치와 스탈린이 마음대로 그어버린 국경선으로 말미암아 민족들간 갈등과 혼란이 계속되었다. 원래 타직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사마르칸드와 부하라는 우즈벡키스탄에 들어갔으며 북부의 코젠트의 우즈벡인구는 타직에 예속되었던 것이다. 1991년 소련의 붕괴 후에 두샨베를 중심으로한 동부인(이들은 강한 회교도이거나 민주주의자)들과 쿨야브와 코젠트의 타직족(공산주의로 알려져 있으며 우즈벡족과 러시아인과 연합함)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민족의 내전으로 1993년에는 2만여 명이 죽고 50만 명의 난민을 내는 고통과 쓰라림을 겪었다. 현재는 1997년 내전종식이후로 경제발전을 위해 고전분투 하고 있다.

♠ 언어와 민족 구성


타직키스탄의 인구는 약 5,946,000명(1997. 7 자료)인데 그 중 65%가 타직족, 25%가 우즈벡족, 3.5%가 러시아인이다.
현재 타직인은 타직키스탄에 약 386만 명을 포함해서 아프가니스탄에 아프간인구의 1/4인 약 6백만 명이 있으며 그 밖의 구소련 독립국과 중국 우이구르 자치구 신강성에 수백명의 타직인들이 소수 민족으로 거주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타직어를 사용하며 아직까지도 러시아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타직어는 페르시아어와 흡사한 남서 이란어 계통이다. 타직인들은 수세기 동안을 거쳐 내려오면서 외즈벡족들과 혼혈되어서, 우즈벡인들과의 민족적 유대가 깊다.

♠ 정치


타직키스탄은 1991년 9월 9일 독립한 이래 세 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이슬람과 민주개혁 세력이 연합하여 공산당 출신 장기 집권자 나비예프를 축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란의 원리주의 이슬람 혁명을 시도하는 이슬람 세력과 민주 자유 체제를 주장하는 지식인들 사이의 세력다툼은 국가를 혼란 속으로 몰아 넣고 말았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극단적 이슬람 세력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 세력에 대한 우려는 미국, 터키, 러시아 등과 이웃 우즈벡키스탄으로 하여금 군부를 지원하게 만들었었다. 이처럼 이란 정부는 이란계 신생 국가 타직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연결하는 새로운 페르시아 문화권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타직인들 대부분이 시아파가 아니고 순니파 무슬림들인 관계로 순니파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의 확장을 우려하는 미국과 터키 등 외부 세력의 견제로 쉽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내전 후 현재의 대통령은 1994년 선출된 에모말리 라흐마노프이다.

♠ 경제


타직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신생독립국중 가장 가난한 나라이다. 현재 이곳의 경제상황은 과거 러시아인의 오랜 식민통치와 지배로 오히려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경제상황은 더욱 침체되고 와해의 단계에까지 갔으며 민족분규로 말이암은 내전으로 더욱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막대한 천연광물의 매장량과 수력발전이 용이하여 기본적인 경제는 점차 회복되어 가고 있다. 수도 듀산베의 파미르고원 아래에 있는 키프로젬 시장에는 매일 1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 상품 매매가 행해지고 있다. 두샨베(Dushanbe)는 타직어로 월요일을 가리키는 말로 매주 월요일마다 이 지역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장이 열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스탈린 시대에 강제 이주해 온 고려인 후예들이 이 지역에서 가장 활동적으로 기업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사회와 문화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타직키스탄의 인구 증가율은 대단히 높아서, 인구의 절반이 20세 이하이며, 9살 이하의 어린이가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타직인들의 대부분은 크싈락(Qyshlaq)이라고 불리우는 지방 농촌 부락에 거주하고 있는데, 크싈락의 거주 가옥은 더러운 진흙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부분의 집들은 평평한 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각 집마다 넓은 과수원을 가지고 있다. 크싈락으로 불리는 부락에는 학교, 병원, 가게 등이 구비되어 있다.
대개 타직키스탄의 풍습과 전통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족들과 비슷하며 페르시아적 문화를 저변에 깔고 있다. 타직키스탄은 페르시아 및 타직 문학의 기초자인 루다키(Rudaki)를 비롯하여 많은 시인 문학가를 배출했다. 이곳에서는 튀르크족의 전통 씨름 귀레쉬(Gresh)와 같은 구슁(Gushing)이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이며 궁도도 널리 행해진다.

♠ 종교


타직인들은 대부분 순니파 무슬림들인데 멀리 떨어진 산간 지방에는 시아파 무슬림들이 다소 있다. 타직키스탄은 가까이 인접해 있는 우즈벡키스탄과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발전해 왔는데, 구소련 붕괴 이후 새롭게 독립하면서 같은 민족인 타직인들이 많고 새롭게 이슬람 편향 정부가 수립된 아프가니스탄과 정치적으로 유대 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공산주의의 몰락은 이 지역에서 쇠퇴해 있던 회교 전통을 부활시키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란은 타직키스탄에 회교사원 건립을 위한 재정 지원을 약속했고, 1991년 12월에는 370만명의 타직 회교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타직인들의 반응은 공식적인 종교 지도자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회교 사원 속에만 갇혀 있지 않고 세속적인 분야를 발전시키는 것, 표현의 자유를 갖는 것을 뜻한다. 국호에 회교 라는 말을 끼워 넣는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와 이란의 포교 활동은 도시보다 시골에서 더 활발한데, 페르가나계곡은 호전적이며 전통적인 이슬람의 온상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의 과격파 무슬림들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이슬람근본주의 운동인 와하비즘을 신봉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 포교단들은 방대한 양의 쿠란을 배포하며 종교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구소련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처럼 이제 갓 무신론 공산체제에서 독립한 타직키스탄 사람들의 신앙심은 그렇게 독실하지는 않다

. 타직키스탄이 러시아인들이 가르쳐 준 시릴어를 버리고 아랍문자로 바꿀 것을 발표하자, 사우디는 아랍어로 된 쿠란을 대량 인쇄하여 보급하고 있다. 한편, 터키는 도시들을 중심으로 튀르크화된 로마자 타자기를 대량 공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문자를 빌미로 외부 세력간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정교분리를 기반으로 하는 서방지향적인 국가 체제를 확립한 이슬람 국가 터키와 이슬람 정통주의를 고수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이란 사이에서 다른 중앙아시아국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쟁적 세력 다툼이 계속되고 있는데,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선교자료 > 5.선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선교 영상  (0) 2016.05.30
V. 개신교 선교 (AD 1750-)  (0) 2014.09.11
Turkmenistan  (0) 2013.12.10
Kyrgizstan  (0) 2013.12.10
카자흐스탄  (0) 201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