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부족' 혹은 '40명의 여인들의 후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어원적으로는 '40개의 텐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유목민 생활을 하던 40개 집안이 모여 시작된 민족임을 암시한다.
♠ 위치 및 자연환경
중앙아시아의 남동쪽에 위치하여 텐산산맥과 파미르 알타이 산맥의 북쪽을 차지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카작스탄, 서쪽으로는 우즈벡키스탄, 남쪽으로는 타직키스탄, 동쪽과 남동쪽으로 중국의 위구르 자치구인 신강성과 접하고 있다.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한 198,500㎢이며 국토의 95%가 해발 1,000m 이상이고(85%가 해발 1,500m 이상) 평균고도가 2,750m인 산악국가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고지대이기 때문에 단지 국토의 7%에서만 경작이 가능하다. 기후는 대륙성 사막기후로 여름은 건조하고 뜨거우며 겨울은 춥다. 수도는 비쉬켁이다.
♠ 종족 및 언어
구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중에서 러시아인의 비율이 높았던 크르그즈스탄은 경제 상황에 따라 점차로 자신의 민족국가로 되돌아가 현재는 절반을 넘는 비율을 크르그즈족이 차지하고 있다. 1997년 통계에 의하면 총인구 4,512,809명 중 투르크계 크르그즈인인 52.4%, 러시아인인 18%, 우즈벡인이 12.9%, 우크라이나인이 2.5%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크르그즈족은 크르그즈스탄을 비롯하여 우즈벡, 타직, 아프간 북부, 파키스탄, 중국 위구르 자치구에서 살고 있다. 언어는 공식적으로 튀르크계의 크르그즈어를 사용하나 아직까지 러시아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 역사
크르그즈라는 종족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1세기경 중국 역사서인 <한서>에서이다. 중앙아시아의 크르그즈인을 고대 중국인들은 '권곤'이라고 불렀다. 기록된 사료에 의하면 그들의 영토는 현재의 타직키스탄 지방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사료에 의하면 크르그즈인들은 적갈색의 모발과 초록색의 눈을 가졌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무렵에 이미 크르그즈인들은 튀르크화 되어 있었다. 크르그즈인은 여러 세기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전역을 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유랑민족으로 집과 초지들을 빼앗기는 수많은 수난과 약탈을 당해왔다. 크르그즈라는 이름은 AD 8세기의 오르콘 비문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는데 여기에는 그들이 사얀산맥 북쪽의 예니세이강의 윗 부분에서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AD 840년에는 몽골리아의 튀르크제국 위그르를 정복하기도 했으나 10세기 초, 카라키타이 제국의 창설로 지금의 몽골지역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13세기에 징기스칸에 복속되었다가 1609년에는 카작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17-18세기 무렵에는 중가르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1760년부터는 청나라에게 복속되면서 다시 천산산맥 지역으로 돌아온 크르그즈인들은 코칸드 칸의 영향력 아래 있게 되었고, 이 시기에 이슬람이 크르그즈민족 사이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즈벡인의 강압적인 통치로 우즈벡인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되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1845, 1857, 1858, 1870년에 코칸드 칸에 반기를 들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19세기에 들어와 러시아인들이 중앙아시아 크르그즈인 거주지역으로 진출하면서 러시아와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1868년에 코칸드 칸이 러시아의 보호하에 들어가게 되자 크르그즈인들은 서서히 러시아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크르그즈인들의 반러시아 반란은 1870년까지 계속되었으나 1918년 4월 30일 크르그즈는 러시아 연방내의 투르케스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분이 되었다. 1924년 10월 14일 크르그즈 자치구가 결성되고 다시 1926년 2월 1일 크르그즈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재편성되었다. 1936년 12월 5일에 크르그즈는 한 독립공화국으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에 가입했다. 1991년 8월 모스크바에서 불발 쿠데타가 있은 후에 보리스 옐친과 고르바쵸프의 핵심 지지자였던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은 1991년 8월 31일 중앙아시아 중에서는 최초로 소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2월 21일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하였다.
♠ 정치 및 경제
현재 크르그즈스탄은 사회,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서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종교적으로도 비교적 온화하고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크르그즈스탄은 같은 민족인 터키와 유대관계를 깊이 하고 있는데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 미국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이 가장 많은 국가로 알려져 있다. 현 대통령은 아스카르 아카예프로 1990년 10월 28일 취임 후 개혁파 정치인과 경제학자를 각료로 영입하고 국영기업 민영화 및 가격자유화조치 등 시장경제로의 조속한 이행을 위한 과감한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크르그즈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카작스탄과 함께 가장 적극적으로 자유경제체제를 도입하며 친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이다. 1997년에는 크르그즈스탄의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이 방한했고 양국 우호관계와 협력의 원칙에 관한 공동선언에 서명함으로 양국간 관계를 강화하게 되었다. 크르그즈에서는 한국기업이 현지에서 쉽게 활동할 수 있도록 투자여건을 개선하며 통신망 현대화사업과 관광산업 개발, 산업기술 연수 등의 분야에서 서로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 사회 및 문화
전통적인 유목민족이었던 크르그즈인들은 이동이 용이한 텐트인 유르트(Yurt)에 살면서 그들의 생활에 적합한 문화를 발달시켜 왔다. 겨울에는 모든 일족들이 함께 모여 거주하고 여름에는 높은 산에 올라가 텐트를 줄지어 짓고 거주하면서 목초지를 이용한다. 야크고기로 만든 미트볼과 양고기수프, 국수류의 아쉬, 큰 빵인 난 등이 주식이며 딱딱한 버터밀크로 만들어진 쿠르트라는 음식을 좋아한다. 크르그즈인들은 대단히 친절한 민족으로 어느 경우에나 손님접대를 잘 한다. 또한 크르그즈인들의 풍부한 구전문학 전통은 그들의 문화생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즉흥적이며 시적인 노래를 통하여 병고침을 바라거나 비를 내려주기를 바라는 등의 샤마니즘적인 신앙을 표출하기도 한다. 또한 "손님은 신의 선물, 오랫동안 머물러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속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교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손님을 만났을 때 악수를 하는데 오른손으로만 했을 경우에는 사악한 마음이 없음을 양손으로 했을 경우에는 서로의 정이 깊음을 표현한다. 크르그즈 문화는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노인들을 특별히 존경한다. 노인들에게는 존경의 표시로 '악사칼'(백발)이라는 칭호가 주어진다.
♠ 종교
원래 샤마니즘적 신앙을 가지고 있던 크르그즈인들은 17세기 중엽 무함맏의 추종자들이 대거 거주하던 카쉬가르와 페르가나 지역으로 쫓겨 내려가 이주하면서 그들과의 접촉을 통해 이슬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크르그즈인들은 17-18세기에 중앙아시아 전역에 널리 번창하던 수피즘 운동을 통해 대거 집단적으로 이슬람화되었으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코칸칸국의 영향 아래 비로소 무슬림 집단으로 그 기세를 떨치기 시작하였다. 현재 그들은 자신들을 모두 무슬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대개 수니파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오히려 전통 이슬람의 모습은 쇠퇴하고 자신들의 전통적 샤머니즘과 결합된 정령주의적인 민족 이슬람(Folk Islam)이 발달해 왔다. 이슬람 규율에도 없는 조상숭배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귀신에게 사로잡힐 것에 대한 영적 불안감이 민간에 지배적이다. 고대 정착지역이었던 오쉬(Osh)는 중앙아시아 이슬람 세계에서 최초의 인간 아담이 정착했었다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수피 무슬림들의 순례장소이며 도시 서쪽의 언덕에 자리한 술레이만의 왕좌 때문에 메카 다음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크르그즈스탄은 우즈벡이나 타직에 비해 이슬람의 정도가 약하며 구세대들 중에는 신실한 사람들도 있으나 젊은 세대들은 단지 종교에 대한 어떤 존경심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크르그즈인들은 자기 자신들을 무슬림이라고 부르며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들의 문화적인 소속감을 가지고 있다. 비록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나 실천에 있어서는 약할지 모르지만 가까운 가족구조, 민족주의, 주로 크르그즈인들끼리로 제한된 결혼제도, 삶속에서의 제반행사의 준수, 전통 의례 및 관례등으로 인해 무슬림으로서의 크르그즈인들의 소속감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비록 크르그즈인들이 유목민이고 수니파 전도자들의 노력에 의해 단지 명목상으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고는 하지만 소비에트 통치로도 크르그즈인들을 이슬람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소비에트 당국은 이들에게 문자를 바꾸도록 하고 종교적 가르침을 금지하고 종교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격렬한 역선전을 하는 등 여러 가지 기법들을 도입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실패로 돌아갔다. 구소련 붕괴 이후 종교적 자유가 부여되면서 전에는 젊은 세대가 이슬람 사원을 방문하는 것이 드물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스크를 방문하고 있으며 소비에트 통치 당시에는 크르그즈 전역에 단지 33개의 등록된 모스크가 있었지만 1990년 이래로 2,000개 이상의 새로운 모스크가 크르그즈스탄 안에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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