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크멘이라는 이름은 처음에 종족명이라기 보다 중앙아시아의 일부 집단, 즉 이슬람을 받아들인 튀르크인을 지칭하는 말로 넓게 사용되었다. 튀르크인들 중의 튀르크인이라는 자부심이 그들에게 있다. 전통적인 유목 민족으로서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국가들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 위치 및 분포지역
튀르크메니스탄은 구소련 최남단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카스피해를 끼고 북쪽에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벡키스탄, 남쪽으로는 이란, 남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접해 있다. 면적은 488,100 km2로 남한 5배 정도의 넓이이다. 인구는 4,483,000명 정도이고 이중 77%가 튀르크멘족인데 9%의 우즈벡족과 7%의 러시아인, 2%의 카작인이 소수민족으로 있다.(1997 자료)
수도는 아쉬하바드이고 다섯 개의 행정구역, 발칸(Balkan)주, 아할(Akhal)주, 마리(Mary)주, 레밥(Lebap)주, 다쉭호부즈(Dashkhovouz)주로 나누어진다. 이중 마리(Mary)주의 메르브(Merv)는 역사상 바그다드, 카이로, 다마스커스와 더불어 8백여 년 전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거점도시의 하나로 압바스왕조와 셀축제국의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한 곳이었다. 이 지역은 동서교역의 중점도시로서 교역간의 영향으로 무역뿐만 아니라 조로아스터교, 네스토리안의 기독교, 불교의 영향을 받았는데 현재 이 지역은 유네스코와 정부의 지원으로 유적지로 발굴되고 있다.
튀르크멘 사람들은 주로 튀르크메니스탄에 거주하며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아프가니스탄, 이란, 중동지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특히 이란에 백만 이상의 투르크멘인이 있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우즈벡, 타직에 다수 분포한다.
♠ 기후 및 자연환경
90%이상이 검은 사막인 카라쿰으로 구성되어 있고, 우즈벡과의 국경에 아무다리야 강이 흐르고 있다. 심한 대륙성 기후로 극도로 건조하며 7월 평균기온은 38℃이며, 1월 평균기온은 4℃이나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계절에 따라 모래바람이 몰아치며, 습도가 낮고 강우량이 아주 적기 때문에 관개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 언어
공식언어는 튀르크어계의 튀르크멘어로 인구의 95%이상이 사용하고 있으며, 역시 38%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오구즈 그룹 튀르크어는 현재 터키공화국에서 사용되는 터키어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서 사용되는 아제리(Azeri)어, 튀르크멘 공화국에서 사용되는 튀르크멘(Türkmen)어와 불가리아의 북동 지방, 도브루자, 몰다비아의 남부 지방, 우크라이나의 남서 지방에서 사용되는 가가우즈(Gagauz)어 등을 포함한다.
♠ 역사
튀르크메니스탄은 기원후 5세기 이후에 튀르크족들이 중앙아시아 서부지역으로 이주해 와 살게 되면서 서서히 페르시아의 거주지에서 튀르크계 부족들의 거주지로 변하게 되었다. 튀르크계의 한 부족인 오구즈족이 9세기말에서 10세기초에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이슬람을 수용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중앙아시아 역사에 튀르크멘이라는 이름이 나타나게 되었다.
중앙아시아의 튀르크멘족은 항상 다른 민족에 의하여 침략을 받아 왔으며, 이러한 불안한 상황가운데 그들 스스로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하여 타부족과의 동맹과 전쟁의 기술들을 발전시켜 왔다. 1717년 러시아의 1차 침입에 튀르크멘인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나 실패하고, 1869년 러시아의 2차 침입 때 점령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재정 러시아 시절 계속적인 반란이 있었으며, 1920년 볼셰비키 정권이 수립된 이후에 소련의 일부로 튀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다. 그 이후(1991. 10. 27)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해체되면서 튀르크메니스탄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한국과는 1992년 2월 7일에 수교되었다.
♠ 정치
고대의 실크로드상의 중요한 거점을 중심으로 교역을 장악하고 통행료를 합법화하였었는데, 투르크멘인들이 가진 강한 우월감과 반항적인 독립심은 바로 이 때에 확립되었다. 현재 구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이후 막대한 양의 지하자원 개발과 더불어 투르크멘의 정부는 스스로 무분별한 개방보다는 신중한 외교노선을 통하여 은둔과 개방의 양면외교정책을 취하고 있다. 구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니야조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체를 유지하고 있다.
♠ 산업 및 경제
현재경제성장은 마이너스 성장이나 세계 3위 규모(러시아, 아제르바이잔 다음으로)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이 나라 경제개발의 기초가 되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송유관 프로젝트를 통하여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또한 석유, 요오드, 나트륨, 납, 아연, 구리 등과 모래, 석회암 등 건축 재료가 많이 나기 때문에 튀르크멘족의 상당수가 자원 개발 및 정제 등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카펫트, 비단 제조 등도 이들의 중요한 경제적 수입원의 하나이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중앙아시아 최대의 카펫트생산지이다. 현대적인 방직기술은 부족하지만 전통적인 수공예로의 제조기술이 뛰어나 수세기에 걸쳐 대상의 주요한 무역품목이 되어왔다. 철도로는 글라스노보드스크-차르죠와 마리-쿠슈카를 잇는 철도가 이미 설치되어 있다. 간선철도의 카스피해연안 출발역인 글라스 노보르스크는 튀르크메니스탄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 사회 및 문화
튀르크멘족은 전통적인 유목 민족으로서 스텝교역의 교량역할을 하여 교역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대상에게 있어서 천벌 내지는 역병과 같은 존재였고, 부하라, 사마르칸드 노예시장의 주 세력으로 유명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이웃 종족들에게 이해되어졌다. "튀르크멘인들은 사람보다 들짐승에 가깝고, 두려움과 굴복을 모르는 자이며, 여자들과 아이들까지도 죽을 때까지 싸운다."
수세기 동안 목축, 농업은 이들의 주요 생계 수단이었으며 빵과 쌀밥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쌀밥은 '필라브'라고 하고 음식은 향신료가 적은 순수한 것이 많다. 고기요리는 토마토와 양파를 넣어 끊여 만든 다양한 종류의 스튜가 있는데, 다량의 기름과 소금을 사용하고 있다. 양고기는 이들의 최고 음식이자 주식이며, 대표적 요리는 케밥이다. 케밥은 구운 빵에 구운 양고기 간과 야채를 넣어 만든다.
이들은 또한 먼여행으로 부터 안전하게 돌아온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쿠다이(Qudaiy)라는 신에게 감사하며 향연을 갖는다. 이 축제의 시작은 양을 잡으면서 시작되며 그 양을 다 먹음으로 마치게 된다.
튀르크멘도 대부분의 이슬람 사회와 같이 남자들에 비하여 여성들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그들은 남편과 오빠, 심지어는 남자 손님들에게까지 복종해야 한다. 여자들은 또한 카페트를 짜는 기술로 등급이 매겨지기도 한다.
결혼은 이슬람의 관습에 따라 대부분 남녀의 얼굴을 알지 못한 채 부모의 결정에 따라 하게 된다. 튀르크멘은 사촌간의 결혼은 허용되지 않으나 같은 집에서 자란 사촌의 결혼은 허용한다. 그들은 가난한 친족은 멀리 있는 친족이고, 부유할 수록 더 가까이 한다.
한편 그들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는 일종의 튀르크멘식 기마경기인 부스카쉬(Buskashi)경기이다. 이 운동의 기구는 염소나 송아지의 머리 없는 시체로 만드는 공이다.
혁명 전에는 대부분이 문맹이었으나 현재는 99.9%가 글을 읽을 줄 안다. 또한 라디오와 TV프로그램이 튀르크멘어와 러시아어로 방송되고 있으며 신문과 다른 간행물도 출판되고 있다. 강력한 경찰력을 바탕으로 한 체제로서 서구와의 교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 종교
대부분이 순니 이슬람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사나운 기질로 '맹렬한 비정통의 경건'으로 이름이 났다. 회교가 95%이며, 러시아 정교가 4% 정도이다. 이들은 대부분 수피즘의 영향을 받은 수피 이슬람이며, 샤머니즘, 민족종교와도 혼합되어 있다. 튀르크멘 여인들은 이슬람이 강요하는 여성들의 베일을 착용하지는 않는다. 라마단의 금식기간을 지키며, 부유한 사람들은 메카를 순례하려고 한다. 대도시에 사는 젊은 투르크멘인들은 구소련 체제하에서 강한 영향을 받아 무신론의 성격이 강하다. 정부는 정책상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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