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0. 17:37ㆍ운영자자료/중국교회에 관한 자료
길림성 조선족 삼자교회들의 분열 사례
조선족 교회가 분열되는 것은 아픈 현실이다. 본 자료에 언급된 교회들은 모두 삼자교회이다. 요령성과 길림성에 있는 조선족 교회는 거의 다 삼자교회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다. 이 자료는 비록 7개 교회의 경우를 취급하고 있지만 조선족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분열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자료가 조선족 선교 초기에 작성된 것이지만 지금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수치상의 오류가 있을 수 있고, 확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힌다.
1. 平安基督敎會(黑龍江省 牧丹江市 平安街, 담임교역자 李康喆 長老)
1. 시 주변 처소교회: 약 80개
2. 시내 구역: 3개
3. 등록 교인수: 약 300명(출석 교인수: 100여명, 제직 17명)
4. 교회상황
1) 1943년 북만노회가 목단강에 있을 때 김은숙 권사(현재)의 부친이 북만노회 영수로 잇으면서 교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다. 그 후 근래에 와서 1993년 11월에 암임교역자 유영로가 목사안수를 받고 시무하고 잇었으나 최근 1995년 10월 6일에 별세함으로 지도자 부재 상황이 되어 교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음.
2) 현재 교회 청년 중에서 신학교(남경신학1, 동북신학2)에 재학중이나 교회의 내부 분열과 이단의 접근에 따른 교회의 어려움이 가중되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5. 교회분열의 원인
1) 교회내부에 쓴 뿌리 발생.
1992년 담임교역자(당시 전도사)가 한국과 내통하여 간첩임무를 받고 북한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교인 중의 한 사람이 공안 당국에 고발함으로 담임교역자가 2년 3개월간 가택연금을 당한 일이 있다.
2) 이단의 침투로 내분 발생
10.28휴거파(1992.10.28 이장림의 휴거파), 안식교, 광야교회(삼자교회 반대파)등의 영향으로 평안교회에 분열이 발생하였다.
*광야교회는 자체교리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여 삼자교회는 세상 정부의 조종을 받는 음녀교회라고 비판하며 따라서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단의 교회 접근 형태 대부분이 먼저 경제적 지원으로 접근하여 성경공부를 교리공부로 유도하여 기존 교회로부터 이탈시키는 방법으로 교회를 분열시킨다.
3) 단기 선교 명목의 사역자들에 의한 분열 발생
단기 선교의 명분으로 사전 계획 없이 불시에 방문한 사역자들에 의해서 주변 교회들의 상황판단 없이 금품을 제공하며(처소 지도자에게 직접 전달 방식), 중심교회 지도자와의 사전 연락과 협의 없이 성경공부를 함으로서 이후 교회 내부에 주도권 다툼, 또는 의심, 시기, 질투가 발생함으로 교회가 분열되었다.
2. 長春基督敎會(吉林省 長春市, 담임교역자 지경수 전도사)
1. 시내주변 처소: 13개(원거리 3곳은 별도로 예배 모임)
2. 등록 교인: 약 300여명(출석교인은 200여명)
3. 교회상황
문화혁명 이후 교회 재건이 시작될 무렵 문혁 이전 교회 집사 직분을 가졋던 자 또는 믿음 있는 자들이 지도자로 등장하여 처소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때 당국에서 교회터들을 헐값으로 처분하는 과정에서 몇몇 집사들이 연합해서 교회 터를 잡아 교회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후 교회내부 주도권 다툼이 발생하게 되었다.
1990년 지경수 전도사의 부임시에 교회가 3파로 분열된 상태였다. 이는 외국교회(한국, 미국)에서 직접 책임 집사를 통하여 경제적 지원이 됨으로써 교회 내부에서 지도자에 대한 불신과 함께 파벌이 조성되어 분란이 야기되었다. 현재는 안정된 상태이나 아직도 과거 책임집사가 이끄는 노장파들의 처소 모임이 있다. 이 처소들은 아직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자체 예배당이 없어 한족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헌금의 3/10을 한족교회에 재차 헌금하고 있다.
4. 교회분열의 원인.
1) 가난한 교회에 갑작스런 외부 경제 지원이 있음으로 이권을 위한 주도권 다툼이 발생하였다.
2) 교회의 위계질서가 없고, 지도자의 자질 부족으로 교역자의 권위가 상실되었다.
3) 새로 부임하는 전도사와 기존의 평신도 지도자 간에 사전 조율이 없어 강들이 발생하였다.
4) 민족적 기질이 한족교회와 비교하여 분란이 많은 편이다.
5) 현지 지도자와 사전 협의 없는 외부사역자의 처소교회 접근 성경공부 등이 분열을 조장하였다.
3. 永吉縣 基督敎會(吉林省 永吉縣 口前鎭, 담임교역자 차철 전도사)
1. 현내 처소교회: 약 90여겨(비준처소 - 50여개, 군소가정처소 -40여개) 이중 조선족 처소는 25개 정도.
2. 등록교인 : 200여명(출석교인 140여명, 재직 6명)
3. 교회상황
1991년부터 1995년 9월까지 LA은혜한인교회(김광신 목사)의 영향을 받아왔음. 1995년 동북신학원에 재학중인 차철 전도사의 부임 이후 재미한인교회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만들어 가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의 장로와 연결되어 조건 없는 지원(인민폐 40만원)을 받아 500석 정도의 예배당을 신축하고 입당예배를 드렸다.
4. 교회분열의 원인
1) 경제적 지원을 빌미로 한 외부 간섭.
LA은혜한인교회의 영향아래 있을 동안 내부갈등과 분파 싸움으로 인하여 2회 분열하였다.
2) 이단의 침투로 인한 분열 조장.
다미선교회의 영향으로 교인 중 일부가 별도 예배 모임을 갖게 되면서 교회에 분파 발생. 현재도 5명 정도가 시내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구원파(복음침례회), 안식교, 레마선교회 등의 활동이 동일하게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성경공부(교리공부)를 하게 됨으로 기존교회의 분열을 야기시킴과 동시에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4. 朝陽川基督敎會(吉林省 龍井市 朝陽川鎭, 담임교역자 박동관 전도사)
1. 진내 처소교회: 13개 단독교회, 기타 10명 모임처소 등 다수.
2. 교회 관련 처소(구역): 20개.
3. 등록 교인수 : 300여명(출석교인:180여명)
4. 교회상황
권사 한 분의 지도아래 교회처소를 꾸려오다가 한국교회의 지원(감리교, 순복음, 기타)으로 교회부지를 확보하여 신축 완료되었으나 경제관련 분란으로 권사님이 물러나고 현재 교역자인 박동권 전도사가 동북신학원 졸업과 함께 부임하게 되었다. 이후 원사님이 이끄는 처소, 권사님을 반대하는 집사들에 의한 별도 처소 등으로 분열되었다가 최근 권사님 처소가 기존 교회로 통합되었고, 아직 반대 집사들의 처소는 별도 모임을 갖고 있다.
현재 주변 단독 처소들의 난립으로 정부비준은 받지 못하고 있으며 공안 당국의 개입에 의하여 한 처소(연길 시내 관련처소)가 폐쇄되는 일이 있었다. 이때 교인 당 200원, 교회는 2,000원의 벌금을 물었다.
5. 교회분열 원인
1) 처소교회 지도자의 교회 관리능력 부족과 도덕성 문제.
* 외부 사역자(당기 방문자 포함)들이 교회 지도자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금전을 전달함으로써 책임성과 관리능력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 지도자가 일반 성도보다 잘 산다는 인식을 주게됨으로 교인들 간에 신심이 저하되었다.
2) 교인들의 의식수준 미달
* 재직들 사이와 교인들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발생하여 소수의 분열이 발생하였다.
* 교회 내부 문제를 외부(종교국, 공안국)에 고발하는 일이 빈번하여 이로 인한 분열 조장.
3) 교리문제와 이단침투
* 주변처소들의 난립으로 기존교회인 삼자교회에 경제적 유혹 등의 영향을 주었다.
* 주변교회 현황 :
연남교회처소(40여명-연길시내교회)
신풍교회처소(70여명-미 침례파 영향)
오순절 성령파(35명-소련에서 유입)
김목수교회(10여명-호주 공명자 전도사)
제7일안식일교회 처소(80여명)
엘리야복음선교회처소(35명)
기타 10여명 처소 모임(처소교회에서 사소한 다툼으로 분열되어 나옴) 다수.
5. 興安基督敎會(吉林省 延吉市 興安鄕, 담임교역자 박경호 전도원)
1. 교회 관련 구역: 15개
2. 등록 교인수: 300여명(출석 교인수: 150여명)
3. 교회상황
연길교회의 지교회로 있다가 1994년부터 독립교회(담임 박상화 장로)로 있게 되었다. 이후 박장로의 교회 관리 능력 부족으로 교인수가 300여명에서 70여명으로 떨어졌다가 현재 담임교역자인 박경호 전도원이 맡게 됨으로 다시 교회가 회복됨.
4. 교회분열 원인
1) 무분별한 외부 사역자 접촉.
* 외부 방문자들에게 무분별하게 주일 강단을 내어줌으로써 교회 질서가 혼란해지고 강단 말씀 선포가 잘못됨으로 교인들이 시험에 들게 하고 분열을 조장하였다.
* 외부 사역자(박 모 목사-기장, 연변대학 민족교육원)의 잘못된 교회 접근으로 교인들을 유혹(옷장사-공장운영)으로 추종 교인들이 교회를 이탈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2) 이단 접근에 의한 교회 분열
* 기독교복음침례회(권신찬)의 접근으로 1개 처소가 넘어감.
-미 사이판에 노무로 갔던 자가 영향을 받고 귀국하여 교회 구역에 가담하였다. 그래서 영향을 주게되어 한국과 연계하여 계속적으로 경제적 도움과 함께 영향을 받게 되었다.(시내에 복장사를 차리고 계속 영향을 미친다)
-당시 교회 지도자인 박경호 전도원이 해외 연수차 한국에 나가있는 틈을 타서 교회 내분을 조장하려고 획책하였다. 그 이후 교회가 폐쇄 조치되고 교인들을 연행하는 등 교회 모임 자체가 약 1년간 사실상 정지되었다가 모임에 동참하지 않았던 현 지도자(박복순 집사)와 몇몇 교인들이 종교국의 허락을 받아 1993년 8월부터 모임을 시작하게 됨으로 1994년 현재 70여명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는 실정이다.(지도자 박복순 집사는 연길교회에서 하는 성경학습반 1년 과정에 재학중이다)
-1992년 5월 다미선교회 소속 교인 한 명이 침투하여 집회를 인도하면서 병치료를 빙자하여 방언기도, 철야집회를 하게 되었다. 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경고하면서 교인들을 사로잡아 생업도 포기하고 야외 과수원 단지에 나가 금식하며 철야기도를 하게 하였다. 재직 11명 중 9명이 동참하면서 거의 대부분 교인들이 참여함으로 주변 사회에 소문이 퍼지고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연길교회 유두봉 목사와 지역교회 장로, 권사들이 여러번 방문하여 권면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여러 가정이 공안국에서 해결해 주도록 고발하게 됨에 따라 공안국, 종교국이 합동으로 교회를 폐쇄 압수하게 되었고, 예배 모임을 갖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
1년 후 동참하지 않은 집사와 몇몇 교인들이 종교국의 허락을 받아 다시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함으로 교회가 양분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최근에 폐쇄 압수하였던 교회 건물을 당국에서 매각처분하였는데, 매입한 사람에게서 이단에 넘어갔던 교인들이 다시 교회 거물을 매입함으로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국에서는 문제의 교회건물에서 집회하도록 허가를 내어주지 않겠다고 한다. 아직 남은 이단파 20여명이 모임을 갖고 있는데 연길의 신풍교회(중국기독교침례회-미국 침례교파에서 지원)에서 지원하여 처소를 만들게 하고 폐쇄된 건물을 매입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말미암아 지역교회의 이미지가 실추와 분열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6. 開山屯基督敎會(吉林省 龍井市 開山屯鎭, 지도자 이영덕, 전동일 집사)
1. 진내 구역: 3개
2. 등록교인수: 100여명(출석교인수: 20여명)
3. 교회상황
용정교회 관할지역의 처소(담임 이영덕 집사)이며 1991년도 한국 수원 매산교회의 교회 건축 지원이 있게 되어 교회건축이 시작되었다. 이후 지도자에 대한 금전의혹이 생겨 교회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나 청년들이 노집사들을 구타하는 등 교회 분란이 생김으로 종교국, 공안국이 개입하여 처소모임 불가의 지시가 내렸다.
용정교회(박영호 목사)와 장로들의 중재가 실패하고 교회 내부의 갈등과 다툼이 심화된 상태에서 노장파(이영덕 집사패), 소장파(전동일 집사패)가 한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오전, 오후로 드리게 되는 상황으로 발전되어 종교국에서 하나로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문제만 더욱 커지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한국의 지원교회 관계자가 때늦은 몇 번의 방문이 있었으나 하나로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깊은 갈등과 오해 속에 우뚝 서 있는 교회 건물이 도리어 세상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한편 95년 12월에 소장파 지도자인 전동일 집사의 가택수색과 함께 종교서적을 압수하고 정치적 발언에 대한 문책으로 공안 당국에 기소되어 있다.
4. 교회분열 원인.
1) 동정심에 의한 무분별한 금전지원 - 지도자와 교인간의 불신 조장.
2) 지도자의 소명의식 부재 - 하나의 직업처럼 교회일을 관리하여 지도자의 권위를 상실하였다. 그리하여 교인들의 마음이 분열되었고, 교회의 역할은 무기력하게 되었다.
7. 西城鎭基督敎會(吉林省 和龍市 西城鎭, 담임교역자 박복순 전도원)
1. 진내 구역: 5개(1996년도 10개 구역 확장 예정)
2. 등록교인수: 130여명(출석교인 70여명)
3. 교회상황
1989년 10여명이 가정교회(정기도집사)로 출발하여 1년 후 80여명이 모이고 제직도 11명을 세우게 되었다. 교인 중 한국 친척의 도움으로 교회 건물을 신축하게 되었고 1992년 10월에는 200여명의 교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92년 5월 한국의 다미선교회에서 여자 한 사람이 와서 성령치료를 한다면서 병자를 위해 방언기도를 하고 요란한 집회를 인도하고 간 이후부터 교회 제직 9명을 포함한 대부분의 교인들이 92년 10월 28일 예수재림을 기다리며 일을 하지 않고 금식, 철여기도 등으로 일관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출처ㅣ i love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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