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7. 12:48ㆍ선교자료/2.중국선교자료
파룬궁(法輪功)의 실체와 중국선교
1999년 4월 말, 1만 여 명에 이르는 파룬궁 수련자들의 베이징 중난하이 시위는 중국 전역 뿐만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큰 파장을 일으켰다. 흔하디 흔한 일개 기공 수련단체의 영향력이라고 보기에는 그 숫자적 규모도 엄청났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파룬궁 활동 금지 조치와 강력한 진압 과정도 대단한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조차 6·4 천안문 사건 이후 가장 심각한 정치사건이라고 표현할만큼, 중국 대륙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파룬궁의 실체는 무엇인가? 단순한 기공단체인가 아니면 신흥종교인가?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1억 명에 달하는 방대한 추종자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숫적 방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중국이 처한 정신적, 영적 상황일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관점에서 파룬궁의 허와 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중국의 정신적 빈 공간에 유일하고도 완전한 대안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계절이 그 땅 위에 임하도록 더욱 열심을 다 할 때임을 안다.
파룬궁이 몰고 온 기공 바람과 탄압 전쟁
수면 위로 떠오른 파룬궁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 그것도 정치의 중심지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지난 4월 25일 1만 5천여 명의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름하여 4·25 사건. 이들의 시위 목적은 파룬궁을 기공 수련단체로 합법화해 줄 것과 구속된 수련자들을 석방시켜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50주년, 천안문사태 10주년, 5·4학생운동 80주년이었던 1999년, 그 어느 때보다 중국 당국이 사회 안정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파룬궁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처음에는 “이들의 활동을 막지 말라”는 특별지시를 내렸고,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시위대 대표를 면담한 덕분에 시위는 평화적으로 끝이 났다. 공안들도 전혀 긴장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시위 발생 4일 후인 4월 29일 장쩌민 주석은 시위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당국은 시위 관련자를 의법처리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그 후 몇 달 지난 7월 22일, 중국 정부는 파룬궁을 불법집단으로 규정하고 파룬궁 수련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7월 29일 미국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파룬궁 창시자 리홍즈(李洪志)에 대해 공공질서를 문란케 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인터폴(국제경찰) 회원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리홍즈 체포 협조를 요청받은 미(美) 국무부는 중국과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홍즈를 중국 당국에 인도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미 국무부는 중국 당국에게 파룬궁 추종자들의 시위가 평화적인 것이었다면서, 파룬궁 금지 방침을 재고할 것과 억류된 관련자들을 석방해 줄 것을 촉구함으로써 중국 내의 파룬궁 문제가 외교문제로 비화될 위험까지 몰고 갔다.
본 기사에서는 파룬궁 시위의 확산 전말을 살펴보고, 파룬궁이 어떤 단체인지, 중국 정부가 파룬궁을 탄압하는 이유 등을 보도된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4·25 파룬궁 시위 사건
중국과학원의 원사(院士) 허쭤시우(何嬪彧)는 4월 19일, 톈진(天津)사범대학교에서 발행하는 <청소년과기박람(靑少年科技博覽)>이라는 잡지에 “나는 청소년들의 기공수련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파룬궁 수련을 하면 정신장애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발표에 분노한 파룬궁 수련자들이 허쭤시우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매일 몇 십 명씩 톈진사범대학에 몰려들어 연좌시위를 벌였다.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자 4월 24일, 잡지사가 있는 톈진교육원 정문 앞에서 약 6천 명이 모여 연좌시위를 하며 허의 사과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사과를 받아 내지 못했고, 오히려 수련자들이 공안들에게 구타당하거나 구속되었다. 그러자 4월 25일, 1만 5천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베이징으로 몰려와, 정치핵심 인물들이 모여있는 중난하이를 포위하고 연좌 침묵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이들은 허쭤시우 문제를 엄격히 처리해 줄 것과, 톈진에서 공안에게 구속된 파룬궁 수련자들을 석방해 줄 것, 파룬궁을 합법적인 단체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라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었지만, 주룽지 총리가 시위대표를 만남으로 사태는 조용히 끝이 났다. 이 사건을 통해 세계 언론은 중국 사회가 변화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7월 22일 중국 정부는 파룬궁 조직을 불법 집단으로 규정하고 파룬궁 수련을 금했다. 그리고 4·25 시위의 주동자와 핵심인물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 시위의 주동자는 파룬궁의 창시자 리홍즈라고 주장했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리홍즈가 상인 신분으로 4월 22일 베이징으로 들어와 23일 톈진사범대학에서의 시위를 주동하고, 24일 홍콩으로 떠나기 전까지 베이징에 있으면서 각 지방의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해 25일 베이징 중난하이로 모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 공안부는 리홍즈가 4·25 사건을 지휘했다고 보고, ‘파룬궁 문제는 엄숙한 정치투쟁’이라고 못박고 리홍즈에 대해 지명 수배령을 내렸다. 그러나 리홍즈는 4·25 시위에 대해서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며, 당시 자신은 미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가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파룬궁은 무엇인가?
리홍즈에 의해 창시된 파룬궁은 1992년부터 전파되기 시작한 기공수련 단체로서, 기공에 뿌리를 두고 불교, 도교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리홍즈에 의해 이론화된 파룬궁의 수행체계인데, 여기서 ‘파룬’이란 불교의 8만 4천 법문 중 하나로서 가장 높은 단계의 기공법이다. 이것은 일반 기공처럼 수준 낮은 병 따위를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높은 단계로 사람을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리홍즈는 파룬궁을 통해 누구나 파룬따파를 읽고 수련하면, 나쁜 습관을 버리고 기공을 통해 깨끗하고 훌륭한 삶을 살게 된다고 말했다. 또 수련을 통해 초월적인 정신세계를 소유할 수 있으며, 보통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교는 진(眞)을 수양하고, 불교는 선(善)을 수양하지만 파룬궁은 진, 선, 인(眞, 善, 忍)을 동시에 수련해서 최종적으로는 우주와 동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법륜(轉法輪)』이라는 책에 의하면, 기공을 배울 때 만약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 아무 것도 배울 수 없고, 남을 해하려는 마음을 먼저 내려놓을 때 수련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병치료에 대해서는, 병이 있으면 수련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몸을 정화해 주어야 하며, 정화된 사람만이 진정으로 파룬궁을 배울 수 있는데, 이것은 우주 안에 생노병사(生老病死)가 모두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볼 때 파룬궁이 신체단련을 목표로 하는 단순한 기공단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1992년 전파된 이래로 현재까지 중국 대륙에 약 1억 명의 파룬궁 수련자가 있다고 추산된다. 또한 전세계로 퍼져나가 현재 30여 개국에 최소 7천만 명에서 1억 이상의 수련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에도 파룬궁을 수련하는 이들은 천 명 정도에 이른다. 한국 내 파룬궁 수련자들은 2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직장인, 주부, 사업가, 대학생 등 다양하며, 새벽녘이나 초저녁에 서울 올림픽공원, 보라매공원, 일산 호수공원 등 비교적 공기가 맑고 조용한 곳에 모여 수련을 하고 있다. 이들은 파룬궁 창시자 리홍즈가 출연한 비디오 테이프와 책자를 통해 수련동작과 방법을 익혔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수련을 권하고 있어 한국에도 파룬궁 수련자는 계속해서 증가해 가는 추세이다. 또한 파룬궁 수행법을 설명한 『전법륜(轉法輪)』과 『중국법륜공(中國法輪功)』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 보급되고 있으며, 한글판 비디오 테이프도 나와 있다.
중국 정부의 파룬궁 탄압
처음 4·25 파룬궁 시위에 그다지 긴장하지 않던 중국 당국의 표정이 싸늘해진 것은 지도부의 몇 가지 상황 판단 때문이었다.
첫째, 시위 장소가 문제였다. 4월 25일 새벽부터 몰려든 시위대는 중국 지도부들의 거주지역인 중난하이를 포위했다.
둘째, 파룬궁의 힘 과시도 역효과를 불렀다. 당국은 시위대가 1만 5천 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은 숫자가 모였다고 한다. 게다가 파룬궁 수련자는 1억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중국 공산당원 6천1백만 명 보다도 많은 숫자이다. 수련자들의 막대한 수가 중국 지도부를 긴장시켰던 것이다.
셋째, 만만치 않은 조직력도 입증되었다. 중국 국가안전부와 공안부를 비웃듯 파룬궁 수련자 수만 명이 아무도 모르게 중난하이를 포위했다. 더구나 이들은 인터넷과 핸드폰 등의 첨단장비로 연락망을 구축, 당국의 허를 찔렀던 것이다. 중국 정부가 파룬궁을 탄압하는 주원인은 파룬궁이 그 세력을 이용해 공산당 독재에 대항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같은 조직이, 개혁 개방 이후 급격한 체제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불안 세력과 결합될 경우 사회안정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의 조사에 의하면 파룬궁은 중국 전역에 걸쳐 연구부 밑에 총 지부 39개를 설립하고 1천9백여 지부와 2만 8천여 소단위 조직을 세워 완전한 조직 계통을 구축했고, 2만 3천 개의 집회장소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리홍즈는 전화와 팩스는 물론이고, 컴퓨터 통신망 등 ‘국가 정보기관과 맞먹는 보안체제’를 유지하면서 전국의 파룬궁 조직을 지휘했다고 한다.
파룬궁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은 매우 단호하다. 중국 공안부에서 발표한 통고문에 의하면, 공산당원은 혼자서라도 절대 파룬궁을 수련할 수 없다. 일반시민들도 파룬궁을 수련하거나 파룬궁과 관련된 어떠한 집단 행동도 할 수 없다. 또한 파룬궁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기호도 내걸어서는 안 되며 출판물 제작·배포도 금하고 있다. 그리고 말도 조심해야 한다. 파룬궁을 선전하거나 옹호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되지 않는다.
중국 당국이 파룬궁을 타도하기 시작하면서 파룬궁 관련 서적도 대거 압수, 소각되었다.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우한(武漢) 등지에서 파룬궁 관련 출판물 수만 권을 소각했고, 상하이(上海)에서도 4만 5천 권의 관련 서적과 사진을 압수, 분쇄시켰다. 경찰은 지린성 창춘에 있는 리홍즈의 주택을 급습, 리의 모습을 한 금부처상을 비롯해 많은 사치품들을 압수했다.
또한 중국 당국의 보도에 의하면, 리홍즈가 불법조직인 ‘파룬따파연구회’를 조직, 미신과 사설을 퍼뜨려 사람들을 현혹시켜 많은 수련자들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7월 28일까지 파룬궁 때문에 사망한 사람이 전국 30개 성(省)에서 743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이 조직은 합법적 신청 및 허가를 거치지 않고 계획을 꾸미고, 집회를 가지고, 시위를 벌이고, 사람들을 모아 공공 질서를 어지럽히는 활동을 하여 사회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대대적 반격 나선 파룬궁
정부에 의해 불법조직으로 규정되어 해체 위기에 몰린 파룬궁은 이에 지지 않고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신도용 전언 통신문을 통해 “훙파(弘法, 교리 전파)에 진력하고 불의를 누를 공력(功力)은 지금부터 시작된다.”고 선언했다. 지도부는 인터넷을 통해 향후 투쟁전략도 공개했다. 세계 주요언론을 통해 파룬궁 탄압의 부당성 역설, 인권단체와 연대 모색, 길거리에서의 파룬궁 수련, 서명운동 등을 펼쳐 정부에 청원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대규모 연행사태가 발생할 경우 상경(上京)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수도 베이징과 각 성 정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중국 당국의 단속이 시작된 이후에도 중국 전역에서 계속되는 시위로 이미 수천 명이 검거됐으나 파룬궁의 반발은 수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공안 당국은 파룬궁 책임자에 대해서 국가 안전위해죄를 적용키로 하는 등 엄벌로 맞서기도 했다. 이것은 최소 징역 3년에서 사형까지 가능한 항목이다. 또한 중국 정부는 중국 내에서 파룬궁 인터넷 홈페이지 접속을 금지시켰으며, 파룬궁을 비난하는 홈페이지를 개설, 인터넷 전쟁을 펼치고 있다. 또한 지난 6월 말부터 ?인민일보(人民日報)?등을 통해 미신의 허상을 폭로하는 글을 연재했다. 홍콩 최대 일간지 ?동방일보(東方日報)?는 미국 소식통을 인용, “파룬궁이 미 중앙정보국(CIA) 및 반체제 조직과도 폭넓게 접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리홍즈는 성명을 발표, “중국 정부의 이번 파룬궁 금지 조치로 중국 내 추종자들이 더 심한 박해를 받아 천안문 사태와 같은 또 한 차례의 유혈사태가 발생할 것이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파룬궁이 합법화될 때까지 무기한 청원투쟁에 나설 것”을 공언하고 있어, 제2의 천안문 사태와 같은 유혈사태 발생마저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중국 당국의 커다란 고민이다.
파룬궁을 보는 여러 시각들
홍콩에 거주하는 칼럼니스트 신밍쇼우(55세)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칼럼 ‘사선’에서, 파룬궁 조직의 성공은 공산당의 실패에 바탕을 둔 것으로 케케묵은 공산당 이론에 싫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한편, 도덕과 규범이 붕괴된 중국 사회에 탈출구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중국 당국의 파룬궁 탄압은 중국 지도부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공산주의 붕괴는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고 말했다.
중국 역사를 전공한 미국 하버드대 필린 쿤 교수는, “역사적으로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빈부 격차가 벌어지고 전통적인 가치가 붕괴되는 시점에는 각종 종교집단이 융성했다.”면서, 특히 정치적인 색채가 별로 없었던 종교 집단도 지도자 검거 등 정부의 탄압이 시작되면 폭력적인 집단으로 변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서방 외교관은 “파룬궁은 천안문 사태와는 별개의 문제로, 중국 정부가 그것을 천안문 사태와 연결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선전술의 하나”라고 분석했다. 그는 “파룬궁을 천안문 사태와 연결시키는 것은 당의 생존이 위협을 받을 경우 군사력을 동원, 지난 89년과 같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관련자들에게 시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주주간(亞洲週刊)』에서 장쉰(江迅)은 “중국 정부의 부패는 인민들로 하여금 당에 대한 신앙을 상실하게 하여 파룬궁의 진, 선, 인에 마음을 쏟게 했으며, 당국의 엄격한 사상통제 하에서 기공과 종교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의 길이 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중국 사회에 결사의 자유가 없고 사회단체의 자유결사도 허락되지 않지만, 사람들은 기공과 종교를 통해 결사의 자유를 간간히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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