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실크로드 선교를 위한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네트웤 (김상길)

2013. 5. 7. 12:35선교자료/2.중국선교자료

실크로드 선교를 위한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네트웤

카자흐스탄  김 상길 선교사

들어가는 말

  1970년대 이후 선교 한국은 급격하게 활성화 되어졌다. 30-40년 사이 세계에 유례가 없는 선교적 성과를 거두어 지금은 세계 2위의 선교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현재 2만 3천명이 넘는 선교사가 세계 169개 국가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선교에 대한 인식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 변화를 이끌었던 주요 요인들은 우선은 한국교회가 선교를 유행처럼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선교사들을 통한 부정적 요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복되어진 사역들로 인하여 비효율적이고 과다 소비적인 선교를 하였다는 이유들이 결국 선교에 부정적인 인식들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선교 한국을 이끌었던 것은 몇 가지 선교적 슬로건들로 인한 바람이었다고 생각한다. 10/40창 선교, 미전도 종족입양, 백투 예루살렘 등등 선교 동원전략들로 인하여 마치 유행처럼 선교를 하였었다. 이러한 동원 전략은 지금도 여러 가지 선교적 유행어들을 만들고 있다. 선교의 본질은 잃어버리고 동원 전략에 의한 충동적 선교가 많았기에 선교사들도 현장에서 우왕좌왕하여 지치고, 후원하는 교회나 단체는 지도자들의 인식에 따라 선교 정책도 달라져 선교사들과 후원단체들과의 소통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였다. 선교 동원 전략이 바뀔 때마다 지역적으로 호황을 누리는 선교지가 있는가 하면 어느 한쪽은 관심에서 멀어져 외로움을 느끼는 선교지도 있었다. 이러한 추세대로 간다면 멀지 않은 시간에 한국교회의 선교적 열풍도 유럽이나 미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이 영국교회로부터 인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30년이 넘게 사역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영국 교회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선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되어 “Missional Church"라는 교회 본질 회복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지금쯤에서 한국교회도 선교의 재정비를 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지면에서 그러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세계는 하나의 네트웍으로 이루어져 세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우리의 선교적 전략은 어떠한지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 지역에만 집중하고 있는 선교가 이제는 네트웍을 통하여 광범위한 선교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지간의 연결과 선교사들 간의 연결은 필연적 과제가 되었다. 현재적 선교적 현황을 점검하지 아니하고 자아도취에 빠져 이대로 간다면 우리의 선교는 내용이 없는 껍데기만 선교가 될 것이다.

  KWMA가 2012년 1월 9일 발표한 “한국 선교사 현황”을 보면 가장 많이 파송된 선교지가 중국이다. 물론 마카오와 홍콩을 포함한 중국으로 147개 단체가 3775명을 파송하고 있다. 당연히 선교지 일 순위이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지 20년만의 성과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 순위로 미국이다. 75개 단체에서 2697명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삼 순위는 일본으로 85개 단체에서 1347명이 파송을 받아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필리핀, 인도, 러시아 순으로 나온다. 이것이 선교 대국이라고 자랑하는 한국 선교의 현주소이다.

  본 발제는 앞으로 선교한국이 세계 속에서 진정으로 선교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진정한 선교적 열매는 복음을 전하는 것만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은 선교지가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설 수 있는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 순위 선교지 중국을 선교중국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선교한국이 선교의 리더쉽을 발휘하는 것이라 본다. 그런 차원에서 선교중국으로 가는 길목으로서의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를 새롭게 조명해 보려 하는 것이다.

실크로드 선교의 당위성

  중국 서안에서부터 시작한 실크로드는 고대 중국이 세계 속에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아주 중요한 무역로 였다. 사실 실크로드가 언제 어디서 시작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역사 이전과 역사 이후의 실크로드를 정리하면 어느 정도 실크로드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5월 SRF(Silk Road Forum)가 터어키 이스탄불에서 열렸다. 그곳에서 터어키에서 사역을 하는 조 용성 선교사(GMS)가 발제한 “변화하는 실크로드와 선교”에서 실크로드에 대한 구분을 어느 정도 명확히 하였다. 그것을 재인용하려한다.
 
실크로드는 3대 간선과 5대 지선이 있다.

* 3대 간선

1. 초원길

 중국 한나라 이전의 문명 교류의 주통로로 사용되었던 길이다. 유라시 아 북방 ‘초원 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길이다. 서쪽의 끝인 카스피해 연안 혹은 발트해 남단으로부터 흑해의 동북편과 남러시아의 카스피해와 아랄해 연안을 지나 카자흐스탄과 알타이 산맥 이남의 준가리아 분지를 지나 몽골 고비 사막의 북단 오르혼 강 연안으로 이어진다. 이후 동남향으로 바꾸어 중국의 화북지방에 이르러 그 동쪽 끝에 이른다. 이 길을 연장하여 한반도까지 연결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일찍이 문명 교류의 처음을 연 비너스상이 1만 년 전에 이 초원로를 따라 북방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동서로 널리 전파된 것으로 짐작된다. 기원전 4천~3천년경에는 채도 문화가 이길을 거쳐 서아시아에서 중국 및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채도의 길'이라고도 부른다. 서아시아에 기원을 둔 청동기나 로마의 유리도 이길을 따라 전파되었다.

 일본 사학계의 기마 민족설에서 말하는 고분문화기(3세기~5세기)의 기마문화도 초원로를 통하여 전달되었다.
2. 오아시스 길

 ‘오아시스길’이란 중앙아시아의 건조지대(사막)과 반사막에 점재하는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동서로 뻗은 길을 일컫는다. 사막을 비롯한 건조 지대의 군데군데에 항상 물이 고여 있어 수목이 자라고 인간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오아시스다. 오아시스는 사막인들의 생활의 보금자리일 뿐만 아니라, 교역의 중심지로서 문물이 집산되고 교통이 발달되어 왔다.

  실크로드 중에서 심장부에 위치한 오아시스길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역사 전에는 초원로가 많이 이용되었으나 이후에는 오아시스길이 동서교류의 주요 통로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서아시아 지대에는 이미 발단된 교통로가 만들어졌다. 파미르 고원이 장애가 되어 완성되고 있지 못하다가 기원전 138~126년 전한의 장건(張騫,~BC 114)이 파미르 고원을 지나 대월지에 이르는 길을 개척함으로써 완전한 길이 만들어졌다. 한서 서역전에는 남,북 두 길의 노정을 밝히고 그 길위에 있는 주요 국가들의 중심지와 장안이나 서역도호부와 인근 국가들 간의 방위와 거리를 기록하고 있다.

3. 바닷 길

  기원후 후한은 서아시아와의 교류에 관심을 나타냈다. 전성기에 접어든 로마제국이 남해로를 통한 도서 교역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로마의 시장에는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각지의 명산물이 큰 인기를 끌었다. 1세기 중엽에 로마의 항해사였던 히파루스(Hipalus)가 아라비아인들로부터 인도양 계절풍의 비밀을 알아낸 후, 아테네로부터 홍해를 지나 인도양으로 향하는 직항로를 개척함으로써 로마의 동방 원거리 무역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비로소 중국에서 인도로 반출된 비단이 인도 서해안으로부터 해로로 로마에 운송되기 시작하였다. 3세기 중엽에는 로마의 배가 인도차이나나 광동성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카티가라(Kattigara)까지 ‘항해’하는 상선도 나타났다.

* 5대 지선은  5개로 나눌 수 있다.

1.마역로

  남북로의 맨 동쪽에 있는 길로 초원로의 동쪽 끝인 오르혼 강 유역에서 카라코룸을 지나 장안과 유주와 연결된다. 다시 화남을 뻗어 항주나 광주에 닿아서 바닷길과 접한다. ‘북방 유목민족’과 한(漢)민족 간의 동아시아 쟁탈을 위한 싸움길이였다.

2. 라마로

 북쪽 끝은 준가리아(Dzungaria) 분지에서 시작해서 서역 위그르 서북부 고창과 투르판(Turfan)과 타림 분지 동편에 있는 자루기루꾸(러잔)를 지나 티벳의 라사를 거쳐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북인도 시킴에 이른 후 다시 남하 해 인도 갠지스 강 어구에 있는 디무라리프데까지 이어진다.

 기원후 5세기부터 토욕혼에 의해 이용되다가 7~9세기부터는 티벳이 이 일대를 장악하게 되었다. 당나라와 티벳간의 화친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당의 사신이나 구법승들이 이길을 따라 인도에 내왕하였다. 준가리아 분지에서 통일제국을 이룩한 타타르가 이 길을 따라 티벳과 중국 서북 지방을 공략하기도 하였다.이 길을 따라 티벳에서 발생한 ‘라마교’가 북상하여 멀리 몽골에까지 전파되었다.

3. 불타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출발하여 타슈켄트와 사마르칸드를 거쳐 동서남북 십자로상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발흐(Balkh)와 페샤와르(Peshawar, 즉 Gandhara)를 지나 인더스 강 유역을 따라 중인도 서해안의 바루가자(현재 Surat)까지 남하하는 길이다. 이 길은 동서남북 교통로의 중심 교차점에 자리하고 있어 동서문명교류와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기원전 2000년에 아리안인들을 비롯해 후세의 알렉산더나 티무르 등의 외래 민족의 대 인도 침략이 이 길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불교는 이 길을 따라 북상한 다음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방에 전파되었다.  중국 법현, 현장, 오공같은 많은 ‘구법승’이 이 길로 천축(인도)에가서 수도하였다.
4. 메소포타미아로

    흑해와 카스피 해 중간지대에 있는 카프카즈(Kavkaz 일명 Caucasus) 북부를 기점으로 하여 트빌리시(Tbilishi)와 타브리즈(Tabriz)를 경유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따라 펼쳐진 메소포타미아를 관통한 후 페르시아 만의 바스라(Bastah) 항까지 이르는 길이다. 일찍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개화한 지대를 지나는 이 길은 고대 문명 전파에 크게 기여하였다.

5. 호박로

  북방의 발트 해에서 시작해 모스크바와 키예프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접지인 콘스탄티노플과 에베소(Ephesus)를 지나 지중해 연안을 따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까지 남하하는 길이다. 이 길은 페니키아 시대부터 중요한 ‘호박의 무역로’였다.

  실크로드는 중국이 세계를 하나로 묶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네트웍이었다. 해상로를 제외한 두 길의 중심에 중앙아시아가 있다. 그동안 이름으로만 들어왔던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실크로드가 다시 열리게 된 것은 1991년 12월 구 소련이 붕괴하고 15개의 독립된 국가들이 들어섬으로 새롭게 세계 속에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공산 치하에서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잃어버리고 통일된 언어(러시아어), 통일된 문화(공산문화), 통일된 정치 구조 속에서 억눌렸던 이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독립할 때만 하더라도 이들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이들의 가치를 가장 먼저 인식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며 일본과 미국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각축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세계의 자원이 고갈된다는 현실 앞에 자원 전쟁이 선포되었고 그 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앙아시아는 새로운 가치를 높이게 되었다. 과거에는 중앙아시아는 중국이 아랍과 유럽을 향하여 무역을 하기 위하여 나아가는 통로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중앙아시아는 통로가 아니다. 그 자체에서 엄청난 가치를 스스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중앙아시아가 가지는 가치는 지금 세계가 원하는 삼대 힘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하나는 에너지이다.

   특별히 중앙아시아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카자흐스탄의 원유 매장량은 공식적으로 세계 7위라 하지만 그 량이 어느 정도인지 사실은 모른다. 지금의 실크로드는 사실 Silk를 팔기 위한 길이 아니다. 그것은 명명일 뿐이고 오히려 “블랙 파이프라인”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카스피 해에서 시작하는 파이프라인은 중국으로, 유럽으로, 러시아로, 터키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세계는 중앙아시아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 특히 중국의 경제 성장의 뒤에는 카자흐스탄의 원유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우라늄이다.

   세계는 원유가 고갈되어 가면서 유가가 점점 오르고 대체 에너지를 깊이 고심하는 가운데 우라늄은 가장 각광받는 대체 에너지이다. 카자흐스탄의 우랴늄 매장량은 세계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2011년 원자력 발전소를 건립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곳에서 나오는 엄청난 전력을 세계 속에 팔겠다는 것이다. 그 대상의 첫 번째가 중국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식량이다.

   우즈베끼스탄은 목화 생산으로는 세계 일위이다. 카자흐스탄의 밀은 질과 양을 인정받고 있다. 2011년 카자흐스탄 나자로브예프 대통령은 연두 교시에서 농업개발과 농지 확보를 제일 중점 사업으로 발표를 하였다. 이에 따른 시책으로 그동안 목축의 나라로 중요하게 생각하던 초지를 농경지로 바꾸는 것이었다. 지평선만 보이던 초원은 점점 밀밭으로 변하고 있다. 농업 개발을 위하여 기술개발과 품종개발에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막강한 경제적 힘을 가지고 있는 중앙아시아는 경제적 가치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점점 모슬렘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선교적 필연성과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동의 오일 파워가 얼마나 막강한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 오일을 얻기 위하여 모슬렘 사원을 지어주고, 수쿠크 법을 도입하며, 모슬렘들과의 결혼도 주선을 하고, 학교에서 아랍어를 가르치도록 권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일로 한국 안에서 모슬렘의 성장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중동의 오일 파워에 중앙아시아의 경제적 파워까지 겹친다면 선교를 후원하는 한국 교회가 크게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힘을 오히려 복음 선포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실크로드 선교 즉 중앙아시아 선교의 당위성이다.

실크로드에서 중앙아시아의 선교적 배경

  실크로드는 역사만큼이나 많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는 그동안 실크로드의 통로로서 수많은 사람과 문화가 왕래를 하였고, 10세기부터 이어진 몽고의 침략으로 많은 부분이 몽골화 되어졌다. 또한 공산 치하의 70여 년 동안 수많은 인종이 이곳으로 유입되었다. 1937년 스탈린의 인종 분산 정책에 의하여 동서의 수많은 인종들을 중앙아시아로 모았다. 따라서 이곳은 타문화와 외지인을 받아  들이는데 아주 적응 능력이 뛰어나다. 실크로드에서 중앙아시아는 다양성 그 자체이다. 초대교회를 형성하는 데 유대의 배경, 로마의 배경, 헬라의 배경, 디아스포라의 배경이 선교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중앙아시아가 가지고 있는 배경이 선교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언어가 러시아어로 통일되어 있고, 하나의 성경이 마련되어 있으며, 길은 모두 모스코바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신앙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 선교를 위하여 참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1) 지리적, 문화적 배경

  중앙아시아는 지리적 문화적으로 볼 때 좁은 의미로는 지리적으로 다섯 개의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카자흐스탄, 끼르기스탄, 우즈베끼스탄, 타지키스탄, 투루크메니스탄 이다. 모두 “스탄”이라는 나라들로 민족별로 그들이 사는 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유목민으로 넓은 초지를 차지하고 있어 나라의 면적은 넓은 편이다. 완전히 내륙 안에 위치하고 있어 실제로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가 없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볼 때 중아아시아는 지리적의미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선 카자흐스탄과 끼르기스탄은 몽고의 영향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다. 인종이나 언어나 문화가 몽고와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 또한 타지키스탄은 페르시아의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란과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 우주벡과 투루크메니스탄은 터키 계통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중앙아시아를 좁은 의미에서의 중앙아시아로만 보면 선교적 폭을 넓힐 수 없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넓은 의미로 중앙아시아를 바라보면 선교적 다양성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2) 이념적, 종교적 배경

  중앙아시아는 4,5세기경부터 경교의 통로로 경교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페르시아를 통하여 중국으로 들어가는 길에 많은 경교의 수도사들이 거쳐지나갔고 그들은 중앙아시아 곳곳에 기독교적 흔적들을 남기었다. 그러다가 10세기 경부터 이슬람이 중앙아시아로 포교 활동을 하였고 결정적으로 13세기 징기스칸이 이곳을 점령함으로 이슬람이 도입이 되게 되었다. 그것은 징기스칸의 하나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되어 들어 온 것이다. 그 후 러시아 정교회가 비잔틴 -슬라브적 특징을 가진 교회로 발전하게 되면서 피터대제의 영토 확장으로 인하여 정교회는 중앙아시아까지 전파되게 되었고 중앙아시아에 정교회가 본격적으로 전해지게 된 것은 미카엘 자코브레비치 글루차레프(Michael Jakovlevitch Glucharev)가 1819년 수도승이 되면서 마카리(Makary)란 이름으로 중앙아시아 알타이 고원에서 칼묵크(Kalmucks)족을 위한 선교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17년 이후 구소련으로 흡입이 되었고, 공산주의라는 이념 외에 아무런 신앙을 갖지 못하고 공산주의가 곧 그들의 신앙이었다, 구 소련의 유다가 망할 때 이집트에 망하지 아니하고 바벨론에 망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당시 이집트는 우상이 많았고 바벨론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 적었음으로 하나님은 이집트보다 바벨론을 선택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를 좀 더 좋은 선교적 여건을 마련하시기 위하여 74년 동안 공산 치하에 있게 하신 것이다. 마치 유다를 바벨론에 70년을 종으로 살게 하신 것처럼 중앙아시아가 그러하였다. 그리하여 선교사들이 처음 중앙아시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마치 백지와 같은 마음들 이었다. 너무나 순수하고 세상에 물들지 아니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앙적 갈등도 없었다. 그렇지만 독립한 후 각자의 나라들은 독자의 길을 가게 되었고 자기들의 문화와 언어를 찾으며 종교적으로도 그들은 전통적으로 이슬람을 믿었다고 생각을 하고 이슬람이 급격하게 성장을 하였다. 그것은 또 하나의 정치적 정책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러시아 언어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적 영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특히 러시아어 속에 담겨 있는 기독교적인 관용어들이 삶의 모든 영역 속에 나타나고 있다. 이름이나, 날자나, 속담들이 기독교적 영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신앙적으로 백지를 만들어 놓았다면 러시아어는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이미 기독교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중앙아시아 선교가 시작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한 인종분산 정책으로 인하여 원동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을 대거 중앙아시아 곳곳에 옮겨 놓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선교사들의 입이 되어 주었고 초창기 선교사들의 심적인 위로자들이 되었다. 지금도 이들이 선교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아울러 이들이 교회에 현지 지도자들로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선교사들의 언어가 그만큼 늦어지는 면도 있지만 사역의 효과적인 면은 더 커다는 것이다. 특히 고려인들은 구소련시절 근면함으로 민족의 우월성을 인정받고 있던 터라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한국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 현지인들로부터 처음에는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다만 이것은 초창기 선교사들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체 선교에 대단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시작한 중앙아시아 선교는 타 지역의 선교보다 그 속도가 빨랐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빠른 만큼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들도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선교 중국으로 가는 길목으로서의 중앙아시아

  중국과 중앙아시아와의 관계는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관계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볼 때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원자재를 얻는 필수적인 공급처이고 중앙아시아는 원자재를 이용한 생필품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공장이고 상점이다. 그럴뿐만 아니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로서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상부상조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이다. 최근에는 중국이 끼르기스탄의 길을 깔아 주거나 타지키스탄의 길을 깔아주는 것도 그러한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이라고 본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끼르기스탄,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육로를 통한 많은 무역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으로 묘한 것은 과거 서로 간에 공산주의를 하고 있을 때도 실크로드는 열리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모든 무역을 모스코바가 관장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나라들이 독립을 하고 독자적으로 중국과 무역 로를 열고 있다. 그야말로 신(新) 실크로드를 열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트럭들이 줄을 지어 중앙아시아로 들어오고 있다. 자연히 사람이 따라오고 그 사람을 따른 문화가 들어온다. 그만큼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제 중국은 상품과 문화만이 아니라 중국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실행하는 곳이 중앙아시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굳이 “백 투 예루살렘”을 말하지 않더라도 중국 교회가 안고 있는 필연적 과제인 것이다. 중국교회가 중앙아시아의 복음화를 등한히 한다면 중국교회가 세계를 향한 복음화의 길을 간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되게 될 것이다. 과거부터 중앙아시아는 중국이 세계로 가는 통로였다. 이것은 복음적으로도 중국교회가 가야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중앙아시아를 복음화 하는 데에 몇 가지 풀어야 하는 난제가 있는 것이다. 1980년 대 이후부터 선교 동원 전략가들은 “백 투 예루살렘”을 외쳐왔고 그로 인하여 수많은 한국선교사들이 중국으로 들어갔지만 실제적인 “백 투 예루살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중국 선교는 중국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중국에 할 일이 많은데 밖으로 눈을 돌릴 겨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내실을 튼튼히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교회는 교회 초창기부터 선교사를 파송함으로 선교적 사명부터 실천하는 교회가 되었다. 그것이 오늘의 한국 교회를 이룬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중국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위하여 늦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교회가 중앙아시아를 지금 복음화 하지 않는다면 역으로 중국은 강력한 이슬람의 세력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복음의 서진이냐? 이슬람의 동진이냐? 가 판가름 나는 곳이 중앙아시아라는 것을 중국교회가 느껴야 하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바라보는 선교 중국이 되기 위하여 풀어야 할 과제

1) 인식의 전환

 지난해(2011년) 10월 SRF의 신학분과 모임이 상해에서 있어 모임을 가지고 항주로 여행을 떠나는 가운데 중간 지점에 위치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연세가 80세가 넘으신 목사님이 목회를 하는 교회였다. 삼자 교회도 아닌데 동네 한 가운데 교회를 건립하고 목회를 하고 있었다. 복음으로 인하여 다섯 번이나 감옥을 드나들고 힘든 과정을 거쳐 왔지만 꿋꿋하게 사역을 하고 있는 목사님을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항주로 가서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가정교회를 방문을 하였다. 마치 첩보영화에서 보는 것 같은 접선을 통하여 그곳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한 가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중국교회가 고난을 이겨나가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그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교적 의도를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 젊은이들에게 물었다. 이렇게 어렵게 신앙을 지켜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그들은 그 물음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선교적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국교회가 가정교회를 통하여 급속도로 성장을 하고 고난과 박해도 잘 견디어 내고 있지만 중국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교중국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중국교회의 성장은 조만간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2) 사상의 전환

 중국교회가 선교중국이 되기 위하여 풀어야 할 난제는 중화사상이다. 중앙아시아의 사람들은 중국을 향하여 말하기를 “물건은 오고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한다. 그 말은 중국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국 사람들의 생각이 곧 ‘중화사상’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자기 안에서 중국화 시켜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모두 중국의 속국처럼 만든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나라들이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을 해결하지 아니하고는 중앙아시아 어떤 나라도 중국의 선교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중국교회가 선교중국이 되기 위하여 선교사를 파송한다면 이것부터 해결을 하여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겸손과 섬김으로 준비되지 않고는 선교중국을 이루기는 힘든 것이다.

  3) 지도자들의 업그레이드

  중국교회가 주로 가정교회의 형태를 띠면서 교회는 성장하였지만 지도자들의 질이 많이 미흡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박해 가운데 숨어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현실에 적응하는 것은 빠를지 모르지만 교회를 이루어 나가기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금의 현지 지도자들을 통하여서는 중앙아시아로 선교사로 파송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든다. 카자흐스탄은 특히 도시에서는 60%이상이 고학력자들이다. 문화적으로도 구소련시절부터 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지금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에는 선교사들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나는 경제적 힘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 백성들을 가르칠만한 학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힘도 없고 학위도 없는 사람들을 국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적인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라고 생각을 한다. 선교현장이 선교사들의 업그레이드를 요구하고 있는데 지금의 중국교회는 앞으로 선교사들을 파송할 경우 이것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4) 한국 선교사들과의 네트웍 형성 

  중국 교회만으로 중앙아시아 선교지를 개척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이미 중앙아시아에서 성공적으로 선교를 이루고 있는 한국 선교사들과 네트웍을 형성하여 현지 훈련과 정착을 도움 받아야 한다. 또 한국 선교사들도  중국교회가 선교로 눈길을 돌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일을 한국 선교사들이 등한히 한다면 선교한국도 위태롭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세대는 독자적으로 선교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특히 선교한국이 언제까지 많은 선교비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또 세계적으로 볼 때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같은 경우 자립과 아울러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재정을 가지고 있다. 이제 한국 선교사들이 네트웍을 형성하여 일을 한다면 좀 더 효과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중국도 중앙아시아도 이제 한국교회가 재정적인 후원을 하는 선교를 계속할 수는 없다. 2012년 1월 발표로는 2011년 카자흐스탄의 일년 GNP가 11.000$이라고 한다. 특히 검은돈이 많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 11.000$은 실제로 유통하는 돈이 3배 이상은 많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중국을 이끌 지도자들을 물색하여 중앙아시아 선교사들과 연결하여 직접적인 훈련과 정착을 위한 적응훈련을 함으로 선교중국을 만들어야 한다.

선교 중국으로 가는 실질적 사역의 예

  아직은 미미하지만 선교중국으로 가는 길을 열고 있는 사역들이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도전이 되고 또 더 넓은 길을 열어가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1) 동남아로 향한 선교 중국

  중국의 곤명으로부터 대한예수교 장로교(통합) 선교사들이 선교중국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WMTC라는 훈련 센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아래는 WMTC로부터 사업 내용을 제공받은 내용을 그대로 실어본다.

  WMTC

1. 중국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회지도자훈련.
2. 중국 교회가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선교사훈련.

훈 련

1. 기본훈련(3개월)

  1) 곤명:2주 - 관계훈련, MBTI훈련, 출입국교육
  2) 치앙마이: 1개월- 타문화훈련(타문화선교, 타문화교회개척 등)
  3) K.L: 1개월- 다문화, 다인종, 이슬람교육
  4) 마카오: 1주 - 중국선교의 뿌리찾기 교육
  5) 홍콩: 1주- 중국디아스포라선교, 화교네트워크 등

2. 전문성훈련(6개월): 우루무치 및 카자흐스탄 알마타

  1) 문화권 전문성훈련
  2) 사역전문성훈련

파 송

1. 중국교회가 파송의 주체이며, 필요시 협력해서 파송한다.
2. 먼저, 1년 또는 2년 단기선교 후 상호 평가한다.
3. 통합네트워크를 통해서 현지협력사역 및 사역정착의 도움을 받는다.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중국선교사들을 파송할 경우 그 지역의 통로로서 역할을 한다.  전략적으로 파송지역을 컨설팅하고, 지역정착 및 사역을 협력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중국 곳곳에서 일어나야 하며 이러한 시도들이 중앙아시아 선교에 더 큰 불을 붙이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2) 카자흐스탄에 있는 중국인 교회

    카자흐스탄 전체에 중국인 교회가 하나 있다. 그 교회는 한인 선교사 노 대영목사(계약 장로교 총회 파송)의 지도를 받으며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아래의 글은 노 대영 목사로부터 직접 제공을 받은 글이다.

  알마띄 중국(미르)교회 연역

  94년 초 미국,유럽,홍콩,말레지아,대만 중국교회들이 재미 세계적인 전도자 토마스왕의 선교단체인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 에 모여 구소련 중앙아시아지역 선교를 협의하여 알마따에 입국 노대영 선교사를 만남.

  2.95년 3월 노대영선교사 도미하여 토마스왕 선교단체 대사명에서 채플을 인도하고 중국인선교사 파송을 역설함으로 토마스왕 알마따 집회에 선교사 후보들이 함께 입국함.

  96년 미 휴스톤 중국인 교회에서 구번치 장로 내외를 알마따 중국인 디아스포라 교회를 위해 파송 6월에 교회인가 받고 가정집에서 시작함.

  97년 6월 노대영 선교사 교회 예배 처소가 마련됨으로 합류.
(주일예배, 수요기도회, 토요일 성경공부모임)

  99년 구장로 M.Div.과정 수학차 대만으로 들어감.
수학 후 목사 안수 받고 2001년 재입국 1년 시무 후 노대영선교사 지도하의 현지인에게 교회를 위임함.
 
  2002년 구목사 휴스톤 중국교회 선교국장으로 임명됨.

  2006년 북경 가정교회에서 관리밍 선교사 가정을 알마아따로 파송. 관리밍: 중국에서 대학졸업, 알마아따cavenant신학교(야간)과정 3년을 마치고 세계 중국인 목사들의 노어권 복음전도를 위한 전문 통역선교사로 서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3) 타지키스탄에서의 지도자 교육

 타지키스탄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이 병찬 선교사는 중국 교회로부터 중국인 현지 지도자 한 가정을 위임 받아 선교 훈련을 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는 3차 SRF 이스탄불 포럼에서 “현지인지도자의 자리 매김을 위한 디아스포라 사역”이라는 발제를 통하여 최근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의 일환으로 중국 현지인 지도자들이 타지키스탄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보고를 하고 이들을 한국 선교사들이 받아 잘 훈련을 시키고, 정착하는 일들과 언어 훈련을 도움으로 선교중국의 길을 트게 된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실제로 감당하고 있어 선교중국의 길을 중앙아시아에서 열고 있는 실제적인 예를 가지고 있다.

  4) SRF를 통한 전략모임

  실크로드 선교를 위하여 2006년 발족을 하여 2007년 1차 포럼을 끼르기스탄의 익스쿨 호수에서 가졌다. 2차 모임은 2009년 홍콩에서, 그리고 3차 모임은 2011년 이스탄불에서 가졌다. SRF는 실크로드 선상의 11개 나라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시니어 선교사들이 코디를 맡고 2년마다 전체대회를 여는 전략적 모임이다. 이 모임은 조직체가 아니라 운동체로서 코디만이 연락책으로 활동을 하고 섬김으로 포럼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사실 재정적 부담이 있어 모든 선교사들이 다함께 하지 못하지만 실크로드 선상에서 10년 이상의 사역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모임으로 전략적 내용은 알차게 꾸려가고 있다. 특별히 이 포럼은 발제를 중심으로 만들어 나아가는 선교사들 중심의 포럼이다. 따라서 진지하고 사실적인 전략들을 세워 나갈 수 있는 모임이다. 특별히 SRF를 통하여 2010년부터 실질적인 논의를 하여 2011년 SRTA(Silk Road Theological Association)를 발족하고 실크로드 선상에서 교수교류, 학생교류, 교제교류, 학위교류를 통하여 현지지도자들을 길러내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도록 진행을 하고 있다.

  또한 세계의 선교적 흐름을 파악하여 선교사들이 자신의 업그레이드를 위하여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선교지에서 각자의 사역을 감당하느라 모든 모임이 원만하게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후원 이사들이 헌신적인 마음으로 이러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실크로드 선교 전략을 세우고 선교중국을 만들어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나가는 말

  한국선교가 선교한국으로 바꾸어지고, 중국선교가 선교중국으로 바꾸어지고,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 선교가 선교 중앙아시아를 만들게 되는 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선교적 교회이다. 이 일의 중심에 한국 선교사들이 포진해 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선교 현지를 가꾸어 나가고 새로운 도전을 주며 새로운 선교 동력들이 나와야 한다. 지금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교회를 어떻게 선교 동력화 할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이다. 그 중국교회를 선교 동력화 하는 데에 있어 가장 먼저 나서야 하는 곳이 중앙아시아이다. 선교가 지역적이고 방향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각 지역마다 효과적인 선교는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많은 선교사들과 수많은 선교비를 동원하여 선교중국이라는 눈을 뜨게 하였다면 이제 좀 더 중앙아시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들과 네트웍을 형성하여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선교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선교중국의 동기 부여는 전적으로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들의 몫이다. 그 몫을 잘 감당함으로 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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