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소학(小學) 6.善行第六(선행제육)

2013. 4. 29. 21:52일반자료/1.일반자료

소학(小學) 6.善行第六(선행제육)


呂滎公(여형공) : 여형공은

名希哲(명희철) : 이름이 <희철>이고

字原明(자원명) : 자는 원명이니

申國正獻公之長子(신국정헌공지장자) : 신국정헌공의 맏아들이다

正獻公居家(정헌공거가) : 정헌공이 집에 있을 때에

簡重寡黙(간중과묵) : 대범하고 무겁고 일을 덜고 말을 적게 하여

不以事物經心(불이사물경심) : 대체로 세속적인 일을 다 마음에 경영하지 않고

而申國夫人(이신국부인) : 신국부인은

性嚴有法度(성엄유법도) : 성질이 엄격하고 법도가 있어서

雖甚愛公(수심애공) : 비록 몹시 공을 사랑했으나

然敎公(연교공) : 그러나 공을 가르치되

事事循蹈規矩(사사순도규구) : 매사를 일정한 법도를 따라 실천하게 하였다

甫十歲(보십세) : 겨우 10살에

祁寒暑雨(기한서우) : 큰 추위와 덥고 비오는 때에도

侍立終日(시립종일) : 온 종일 모시고 서서

不命之坐(불명지좌) : 명하여 앉으라고 아니하면

不敢坐也(불감좌야) : 감히 앉지 않았다

日必冠帶(일필관대) : 날마다 반드시 갓 쓰고 띠 띤 의관을 정제한 차림으로써

以見長者(이현장자) : 어른에게 뵈이며

平居雖甚熱(평거수심열) : 평상시에 비록 몹시 더울지라도

在父母長者之側(재부모장자지측) : 부모나 어른의 곁에 있어서는

不得去巾襪縳袴(부득거건말전고) : 건이나 버선이나 행전을 벗지 못하며

衣服唯謹(의복유근) : 의복을 오직 삼갔다

行步出入(행보출입) : 걸어서 출입할 때에

無得入茶肆酒肆(무득입다사주사) : 찻집이나 술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市井里巷之語(시정리항지어) : 시정이나 이항의 비천한 말과

鄭衛之音(정위지음) : 정나라와 위나라의 음악과 같이 음란한 음악을

未嘗一經於耳(미상일경어이) : 일찍이 귀에 들리게 한 일이 없으며

不正之書(불정지서) : 바르지 못한 글과

非禮之色(비례지색) : 예에 맞지 않는 빛을

未嘗一接於目(미상일접어목) : 일찍이 한번도 눈에 접한 일이 없었다

正獻公通判潁州(정헌공통판영주) : 정헌공이 영주 통관으로 있을 때

歐陽公適知州事(구양공적지주사) : 구양공이 마침 주의 지사가 되더니

焦先生千之伯强(초선생천지백강) : 초선생 천지백강이

客文忠公所(객문충공소) : 구양문충공의 곳에 손님으로 있으면서

嚴毅方正(엄의방정) : 엄숙하고 의젓하고 품행이 방정하니

正獻公招延之(정헌공초연지) : 정헌공이 그를 자기 집으로 초빙하여 끌어들여서

使敎諸子(사교제자) : 여러 자제를 가르치게 시켰더니

諸生小有過差(제생소유과차) : 여러 제자들이 조금이라도 허물이나 어그러진 일이 있으면

先生端坐(선생단좌) : 선생이 단젛하게 앉아서

召與相對(소여상대) : 그 학생을 불러다가 마주 대하게 하여

終日竟夕(종일경석) : 날이 저물거나 밤이 새거나

不與之語(불여지어) : 말을 같이 아니하다가

諸生恐懼畏伏(제생공구외복) : 여러 생도들이 두려워하며 엎드려 죄를 빌어야

先生方略降辭色(선생방략강사색) : 선생이 비로소 말소리와 얼굴빛을 조금 부드럽게 했다

時公方十餘歲(시공방십여세) : 그 때에 공의 나이 10여 세였다

內則正獻公與申國夫人敎訓(내칙정헌공여신국부인교훈) : 안으로는 정헌공과 신국부인의 교훈이

如此之嚴(여차지엄) : 이와 같이 엄격하고

外則焦先生化導(외즉초선생화도) : 밖으로는 초선생의 교화와 지도가

如此之篤(여차지독) : 이와 같이 독실하니

故公德器成就(고공덕기성취) : 그래서 공의 덕행과 기국이 이루어져서

大異衆人(대이중인) : 뭇 사람들보다 크게 뛰어나게 되었다

公嘗言(공상언) : 공이 일찍이 말하기를

人生內無賢父兄(인생내무현부형) : "사람이 나서 집안에 어진 부형이 없고

外無嚴師友(외무엄사우) : 밖에 엄한 스승과 벗이 없고

而能成者(이능성자) : 그러면서도 성취할 수 있는 자는

少矣(소의) : 적은 것이다."고 했다

 

呂滎公張夫人(여형공장부인) : 여형공의 부인 장씨는

待制諱昷之之幼女也(대제휘온지지유여야) : 대제 장은지의 어린 딸이었다

最鍾愛(최종애) : 부모의 사랑을 가장 모으고 있었다

然居常至微細事(연거상지미세사) : 그러나 평상시에 미세한 일에 이르기까지

敎之必有法度(교지필유법도) : 가르치되 반드시 법도가 있게 하였다

如飮食之類(여음식지류) : 음식과 같은 유에도

飯羹許更益(반갱허갱익) : 밥과 국은 다시 더 먹는 것을 허락하고

魚肉不更進也(어육불갱진야) : 생선과 고기는 다시 더 주지 않았다

時張公已爲待制河北都轉運使矣(시장공이위대제하북도전운사의) : 그때에 장공이 이미 대제로 하복도전운사가 되었다

及夫人嫁呂氏(급부인가여씨) : 그리고 부인이 여씨에게 시집갔는데

夫人之母(부인지모) : 부인의 어머니는

申國夫人姊也(신국부인자야) : 신숙부인의 맏누이었다

一日來視女(일일래시녀) : 하루는 딸을 보러 왔다가

見舍後有鍋釜之類(견사후유과부지류) : 집 뒤에 남비와 가마 따위가 있는 것을 보고

大不樂(대불락) : 크게 즐기지 않으면서

謂申國夫人曰(위신국부인왈) : 신국부인에게 일러 말하기를

豈可使小兒輩私作飮食(기가사소아배사작음식) : "어찌 어린 아이들로 하여금 사사로이 음식을 만들 수 있게 하여

壞家法耶(괴가법야) : 가법을 파괴한단 말인가."라고 했다

其嚴如此(기엄여차) : 그 엄격함이 이와 같았다

 

康陽城爲國子司業(강양성위국자사업) : 당나라의 양성이 국자사업이 되어서

引諸生告之曰(인제생고지왈) : 여러 학생들을 인견하고 고하여 말하기를

凡學者(범학자) : "모든 배우는 사람들이

所以學爲忠與孝也(소이학위충여효야) : 학문을 하는 까닭은 충성과 효도하기를 배우기 위해서다

諸生有久不省親者乎(제생유구불성친자호) : 제군들 중에 오래도록 부모를 귀성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라고 하니

明日謁城還養者(명일알성환양자) : 이튼날에 학생들이 성에게 뵙고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기를 청하는 자가

二十輩(이십배) : 20여명이나 되었다

有三年不歸侍者(유삼년불귀시자) : 3년 동안을 돌아가 부모를 모시지 않은 자가 있었으므로

斥之(척지) : 내쫓아 버렸다

 

安定先生胡瑗(안정선생호원) : 안정선생 호원의

字翼之(자익지) : 자는 익지다

患隋唐以來(환수당이래) : 그는 수나라와 당나라 이래로

仕進尙文辭而遺經業(사진상문사이유경업)

: 벼슬에 나아가려는 사람이 시부`잡문 등 글짓는 것만 숭상하고 경서의 수업을 버려서

苟趨祿利(구추록리) : 구차하게 봉록과 이익에만 마음이 쏠려 향하는 것을 근심하니

及爲蘇湖二州敎授(급위소호이주교수) : 자신이 소주와 호주의 두 고을의 교수를 함께 하여서는

嚴條約(엄조약) : 교조와 약속을 엄하게 하여

以身先之(이신선지) : 몸소 먼저 실행함으로써 그들을 선도하여

雖大暑(수대서) : 비록 대서라도

必公服終日(필공복종일) : 반드시 공복으로 날을 마치어서

以見諸生(이견제생) : 이로써 모든 생도를 대하여

嚴師弟子之禮(엄사제자지례) : 스승과 제자의 에절을 엄격히 하여

解經至有要義(해경지유요의) : 경서를 해석하다가 중요한 뜻이 있는 곳에 이르면

懇懇爲諸生(간간위제생) : 간곡하게 여러 행도들을 위하여

言其所以治己(언기소이치기) : 자기 자신을 다스린 후에

而後治乎人者(이후치호인자) : 남을 다스릴 수 있다는 그 까닭을 설명하였다

學徒千數(학도천수) : 배우는 무리가 천으로 헤아렸는데

日月刮劘(일월괄마) : 그들은 날로 달로 마음의 때를 닦아내고 몸을 닦아 윤이 나게 하여

爲文章(위문장) : 문장을 짓되

皆傅經義(개부경의) : 경서의 뜻에 의하여

必以理勝(필이리승) : 반드시 문장의 수식보다 사물의 도리를 밝히는 것으로써 주로 하여

信其師說(신기사설) : 스승의 말을 믿어서

敦尙行實(돈상행실) : 행실을 두텁게 숭상하였는데

後爲太學(후위태학) : 선생이 뒤에 국자감 직강으로 태학의 교수가 되어서는

四方歸之(사방귀지) : 사방의 배우는 사람들이 모여 와서

庠舍不能容(상사불능용) : 교사에 다 수용할 수가 없었다

其在湖學(기재호학) : 그가 호주의 주학으로 있을 때에

置經義齋治事齋(치경의재치사재) : 경의재와 치사재를 설치했다

經義齋者(경의재자) : 경의재라는 것은

擇疏通有器局者居之(택소통유기국자거지) : 기질이 동창하고 현명하며 국량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있게 하고

治事齋者(치사재자) : 치사재라는 것은

人各治一事(인각치일사) : 사람마다 각기 한 가지 일을 다스리며

又兼一事(우겸일사) : 또 한 가지 일을 겸하게 하였으니

如治民治兵水利算數之類(여치민치병수리산수지류)

: 백성을 다스리는 일 군사를 처리하는 일 수리에 관한 일 산수 따위와 같은 것이다

其在太學亦然(기재태학역연) : 그가 태학에 있을 때에도 또한 그렇게 했다

其弟子散在四方(기제자산재사방) : 그의 제자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는데

隨其人賢愚(수기인현우) : 그 사람이 어질고 어리석음에 따라서

皆循循雅飭(개순순아칙) : 다 질서가 있고 예도에 따라서 단아하고 근신하니

其言談擧止(기언담거지) : 그들의 말과 행동은 그것만 보고

遇之不問可知爲先生弟子(우지불문가지위선생제자)

: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가 안정 션생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묻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고

其學者(기학자) : 학자들이

相語稱先生(상어칭선생) : 서로 말할 때에 <선생>이라고 말하면

不問可知爲胡公也(불문가지위호공야) : 묻지 않아도 호공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明道先生言於朝曰(명도선생언어조왈) : 명도 선생이 조정에 진언하여 말하기를

治天下(치천하) : "천하를 다스리되

以正風俗得賢才(이정풍속득현재) : 풍속을 바르게 하고 어진 인재를 얻는 것을

爲本(위본) : 근본을 삼을 것이다

宜先禮命近侍賢儒及百執事(의선예명근시현유급백집사)

: 마 땅히 먼저 가까이 모시고 있는 어진 선비와 모든 관원들에게 예를 갖추어 명령하여

悉心推訪(실심추방) : 성심을 다하여 찾아고

有德業充備足爲師表者(유덕업충비족위사표자) : 천하의 덕행과 학업이 완비하여 넉넉히 남의 사표가 될 만한 자를 찾아 하며

其次有篤志好學材良行修者(기차유독지호학재량행수자)

: 그 다음은 뜻이 독실하고 학문하기를 좋아하며 자질이 선량하고 행동이 잘 수행된 자가 있으면

延聘敦遺(연빙돈유) : 조정에서 예로써 맞이하고 예로써 보내어

萃於京師(췌어경사) : 서울에 모아

俾朝夕相與講明正學(비조석상여강명정학) : 아침 저녁에 서로 더불어 바른 학문을 강론하고 밝히게 해야 합니다

其道必本於人倫(기도필본어인륜) : 그 도는 반드시 인륜에 근본을 두어서

明乎物理(명호물리) :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其敎自小學灑掃應對以往(기교자소학쇄소응대이왕) : 그 가르침은 <소학>의 물뿌리고 쓸며 사람을 응대함으로부터 시작하여 감으로써

脩其孝悌忠信(수기효제충신) : 그 효도와 공경과 중성과 믿음을 닦으며

周旋禮樂(주선예악) : 예와 악에 맞게 기거동작을 해야 하니

其所以誘掖激勵漸摩成就之道(기소이유액격려점마성취지도)

: 그를 말로써 가르쳐 유도하고 손으로써 붙잡아주며 격려하고 물이 스며들 듯이 옥을 다듬듯이 성취하게 하는 길은

皆有節序(개유절서) : 다 절차와 순서가 있어야 합니다

其要在於擇善脩身(기요재어택선수신) : 그 요긴한 점은 선을 골라서 행하고 자신을 수양하고서야

至於化成天下(지어화성천하) : 천하에 교화가 이루어지는 데에 이르며

自鄕人而可至於聖人之道(자향인이가지어성인지도) : 시골 사람으로부터 성인의 도리에 이를 수 있는 데에 있습니다

其學行皆中於是者(기학행개중어시자) : 그 학문과 행실이 다 여기에 맞는 자라야

爲成德(위성덕) : 덕생을 이루게 되니 재

取材識明達可進於善者(취재식명달가진어선자) : 능과 식견이 밝고 통달하여서 선에 나아갈 수 있는 자를 뽑아서

使日受其業(사일수기업) : 날마다 그 스승이 수업을 받게 시키어

擇其學明德尊者(택기학명덕존자) : 그 중에 학문이 고명하고 덕이 높은 자를 골라서

爲太學之師(위태학지사) : 태학의 스승을 삼고

次以分敎天下之學(차이분교천하지학) : 그 다음 인물들로써 나누어 천하의 학교에서 가르치게 해야 합니다

擇士入學(택사입학) : 선비를 뽑아서 주학에 입학시키되

縣升之州(현승지주) : 현학이 주학에 추천하여 올리면

州賓興於太學(주빈흥어태학) : 주학이 향음주례에서 귀빈으로 접대하고 태학에 천거하면

太學聚而敎之(태학취이교지) : 태학이 그들을 모아서 교육하여

歲論其賢者能者於朝(세논기현자능자어조) : 해마다 그들의 어진 자와 유능한 자를 조정에서 논의하여 벼슬을 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凡選士之法(범선사지법) : 모든 선비를 선택하는 방법은

皆以性行端潔(개이성행단결) : 다 그의 성품과 행실이 단정하고 결백하여

居家孝悌(거가효제) : 집에 있어서는 효도하고 공경하며

有廉恥禮讓(유렴치예양) : 염치와 예양의 마음이 있으며

通明學業(통명학업) : 학업에 통달하여 밝으며

曉達治道者(효달치도자) :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알고 있는 자이어야 합니다."고 했다

 

伊川先生看詳學制(이천선생간상학제) : 이천 선생이 학제를 잘 살펴보니

大槪以爲學校(대개이위학교) : 대개는 생각하건대 학교라는 것은

禮義相先之地(예의상선지지) : 예의를 서로 먼저할 곳인데

而月使之爭(이월사지쟁) : 달마다 시험으로 비교하여 그들을 다투게 하는 것이

殊非敎養之道(수비교양지도) : 가르쳐 수양하는 도리가 아니다

請改試爲課(청개시위과) : 청컨대 달마다 시험 제도를 고쳐서 과정을 부과하여

有所未至(유소미지) : 이르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則學官召而敎之(칙학관소이교지) : 학관이 그를 불러다가 가르쳐 주게 하고

更不考定高下(갱불고정고하) : 다시는 성적의 높고 낮음을 고정하지 말아야 하며

制尊賢堂(제존현당) : 존현당을 지어서

以延天下道德之士(이연천하도덕지사) : 천하의 도덕이 높은 선비를

鐫解額(전해액) : 이끌어 맞이하며 정원을 줄이어

以去利誘(이거이유) : 이해관계로 유인하는 일을 버려야 하며

省繁文(생번문) : 교관에게는 번잡한 사무상의 문서를 생략하여

以專委任(이전위임) : 교관으로서 맡은 임무에  전념하게 하며

勵行檢(려행검) : 행검을 힘써서

以厚風敎(이후풍교) : 풍속과 교화를 순후하게 하고

及置待賓吏師齋(급치대빈이사재) : 그리고 대빈제와 이사재를 설치하며

立觀光法(입관광법) : 선비들이 와서 태학을 견학할 수 있도록 관광법을 세워야 하니

如是者(여시자) : 이와 같은 것이

亦數十條(역수십조) : 또한 수십조이었다

 

藍田呂氏鄕約曰(남전여씨향약왈) : 남전의 <여씨향약>에 이르기를

凡同約者(범동약자) : "모두 같이 향약을 맺은 자들은

德業相勸(덕업상권) : 덕행과 사업을 서로 권하고

過失相規(과실상규) : 허물과 잘못을 서로 규제하며

禮俗相交(예속상교) : 예스러운 풍속으로 서로 사귀며

患難相恤(환난상휼) : 근심과 어려운 일은 서로 구휼한다

有善則書于籍(유선즉서우적) : 착한 일이 있으면 문서에 기록하고

有過若違約者(유과약위약자) : 허물이 있거나 약속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亦書之(역서지) : 또한 문서에 기록하여

三犯而行罰(삼범이행벌) : 세 번 향약을 범하면 벌을 주되

不悛者絶之(불전자절지) : 고치지 않는 자라면 제명을 한다

 

明道先生敎人(명도선생교인) : 명도 선생이 사람을 가르치는데

自致知至於知止(자치지지어지지) : 자신이 이미 아는 것으로 미루어 지선에 이르러 그칠 줄 알며

誠意至於平天下(성의지어평천하) : 뜻을 정성되게 함으로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도리에 이르며

灑掃應對至於窮理盡性(쇄소응대지어궁리진성) : 쇄소응대의 소학의 도로부터 궁리진성하는 대학의 도에 이르게 하여서

循循有序(순순유서) : 순서와 차례를 따르게 하니

病世之學者(병세지학자) : 세속의 배우는 사람들이

捨近而趨遠(사근이추원) :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에 달려가며

處不而闚高(처불이규고) : 낮은 데 있으면서 높은 데를 엿본다

所以輕自大而卒無得也(소이경자대이졸무득야) : 경솔하게 스스로 존대하는 까닭에 마침내 얻는 것이 없게 된다

 

右實立敎(우실립교) : 이하는 명륜을 실례로 구체화 시킨 것이다

 

江革少失父(강혁소실부) : <강혁>이 젊어서 아버지를 여의고

獨如母居(독여모거) : 홀로 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遭天下亂(조천하란) : 천하에 병란을 만나서

盜賊並起(도적병기) : 도둑이 아울러 일어나니

革負母逃難(혁부모도난) : 혁이 어머니를 업고 환난을 도피하여

備經險阻(비경험조) : 갖은 험남하고 위태한 길을 지나서

常採拾以爲養(상채십이위양) : 항상 초목의 먹을 수 있는 것을 채취하여 이것으로써 주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數遇賊(수우적) : 길에서 자주 도둑을 만나서

或劫欲將去(혹겁욕장거) : 어던 때는 위협하여 혁을 잡아가려고 하였는데

革輒悌泣求哀(혁첩제읍구애) : 혁이 문득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애걸하여

言有老母(언유노모) :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말하여

辭氣愿款(사기원관) : 그 말과 기색이 성실하고 간곡하여

有足感動人者(유족감동인자) : 넉넉히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있었다

賊以是不忍犯之(적이시불인범지) : 도둑이 이로써 차마 범하지 못하며

或乃指避兵之方(혹내지피병지방) : 어떤 자는 곧 병란을 피할 수 있는 곳을 가리켜주니

遂得俱全於難(수득구전어난) : 드디어 모자가 모두두 난리 속에서 목숨을 보전할 수가 있었다

轉客下邳(전객하비) : 옮겨가서 <하비> 땅의 유랑객이 되어서는

貧窮裸跣(빈궁나선) : 가난하고 곤궁하여 맨발을 하고서

行傭以供母(행용이공모) : 품을 팔아서 어머니를 공양하였는데

便身之物莫不畢給(변신지물막불필급) : 어머니의 몸에 편한한 물건은 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薛包好學篤行(설포호학독행) : 설포는 학문을 좋아하고 행실이 독실하엿다

父娶後妻而憎包(부취후처이증포) : 아버지가 후처를 얻고 포를 미워하여

分出之(분출지) : 분가하여 보내니

包日夜號泣不能去(포일야호읍불능거) : 포가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차마 가지 못하니

至被毆杖(지피구장) : 몽둥이로 구타당하게 되어

不得已廬于舍外(불득이려우사외) : 부득이 집밖에 초막을 지어

旦入而灑掃(단입이쇄소) : 아침에 들어와 집안을 물뿌리고 쓸거늘

父怒(부노) : 아버지나가 성을 내어

又逐之(우축지) : 또 쫓아내었는데

乃廬於里門(내려어리문) : 이에 마을 입구에 초막을 짓고 살면서

晨昏不廢(신혼불폐) : 새벽과 저녁의 문안을 그치지 않았다

績歲餘父母慚而還之(적세여부모참이환지) : 여러 해를 지난 뒤에 부모가 부끄럽게 여겨 돌아오게 하였다

後服喪過哀(후복상과애) : 뒤에 거상하게 되어서는 애통함이 지나쳤다고 했다

旣而弟子(기이제자) : 이윽고 아우의 아들이

求分財異居(구분재이거) : 재산을 나누어서 따로 살기를 요구하니

包不能止(포불능지) : 포가 말리지 못하고

乃中分其財(내중분기재) : 드디어 그 재산을 반분하였는데

奴婢引其老者曰(노비인기노자왈) : 노비를 나눌 때에는 그중에 늙은이를 끌면서 말하기를

與我共事久(여아공사구) : "나와 함께 일해온 지가 오래 되었다

若不能使也(약불능사야) : 그래서 당신을 부릴 수 없다."고 하고

田廬取其荒頓者曰(전려취기황돈자왈) : 전지와 농막은 그중에서 거칠어진 밭과 기울어진 농막을 취하며 말하기를

吾少時所理(오소시소리) : "내가 젊었을 때에 다스리던 것이다

意所戀也(의소연야) : 마음에 그리는 바가 있다."하여

器物取其朽敗者曰(기물취기후패자왈) : 기물을 그 중에서 썩고 해어진 것을 가지며 말하기를

我素所服食(아소소복식) : "내가 평소에 그것으로 먹고 그 물품을 사용하여

身口所安也(신구소안야) : 몸과 입에 편한하다."고 했다

弟子數破其産(제자수파기산) : 아우의 아들이 자주 그 재산을 없애 버리니

輒復賑給(첩부진급) : 바로 다시 넉넉하게 구제해 주었다

 

王祥性孝(왕상성효) : 왕상이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蚤喪親(조상친) : 일직이 어머니를 여의고

繼母朱氏不慈(계모주씨불자) : 계모 주씨가 인자하지 않아서

數譖之(삭참지) : 자주 그를 참솨하니

由是失愛於父(유시실애어부) :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사랑을 잃어서

每使掃除牛下(매사소제우하) : 늘 쇠똥을 소제시켰는데

祥愈恭謹(상유공근) : 상이 더욱 공손하고 삼갔다

父母有疾(부모유질) : 부모가 질병이 있었는데

衣不解帶(의불해대) : 옷의 띠를 풀지 않았으며

湯藥必親嘗(탕약필친상) : 약을 달이면 반드시 자신이 몸소 먼저 맛을 보았다

母嘗欲生魚(모상욕생어) : 어머니가 일찍이 생어를 먹고 싶다고 하였는데

時天寒冰凍(시천한빙동) : 그때는 날씨가 차고 얼음이 얼었는데

祥解衣(상해의) : 상이 옷을 벗고

將剖冰求之(장부빙구지) : 얼음을 깨고 들어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였는데

冰忽自解(빙홀자해) : 얼음이 갑자기 저절로 깨어지면서

雙鯉躍出(쌍리약출) : 잉어 두 마리가 뛰어나오거늘

持之而歸(지지이귀) : 그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母又思黃雀炙(모우사황작자) : 어머니가 또 참새구이를 먹고 싶어하니

復有雀數十(부유작수십) : 다시 참새 수 십 마리가

飛入其幕(비입기막) : 날아 그의 집에 들어 오니

復以供母(부이공모) : 다시 이것으로써 어머니에게 대접했다

鄕里警嘆(향리경탄) : 향리에서 놀라고 감탄하여

以爲孝感所致(이위효감소치) : 생각하기를 효성에 감동되어 그렇게 한 것이라 하였다

有丹柰結實(유단내결실) : 단내가 열매를 맺은 것이 있어

母命守之(모명수지) : 어머니가 명령하여 상에게 지키라고 했다

每風雨祥輒抱樹而泣(매풍우상첩포수이읍) :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마다 상이 문득 나무를 안고 울었다

其篤孝純至如此(기독효순지여차) : 그의 독실한 효성이 순수하고 지극함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王裒字偉元(왕부자위원) : 왕부의 자는 위원이다

父儀爲魏安東將軍司馬昭司馬(부의위위안동장군사마소사마) : 아버지 의가 위나라 안동장군 사마소의 사마가 되더니

東關之敗(동관지패) : 관의 싸움에서 패함에

昭問於衆曰(소문어중왈) : 동소가 여러 사람에게 물어 말하기를

近日之事誰任其咎(근일지사수임기구) : "요전의 일을 누구에게 그 허물을 맡기겠는가."라고 했다

儀對曰(의대왈) : 의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責任元帥(책임원수) : "책임이 원수에게 있습니다."라고 했다

昭怒曰(소노왈) : 사마소가 성내어 이르기를

司馬欲委罪於孤耶(사마욕위죄어고야) : "사마는 나에게 죄를 쒸우려 하는가."라고 하고

遂引出斬之(수인출참지) : 드디어 끌어내어 베어 죽였다

裒痛父非命(부통부비명) : 부가 비명에 죽은 아버지를 애통하여

於是隱居敎授(어시은거교수) : 이에 세상에 숨어 살며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살며

三徵七辟(삼징칠벽) : 조정에서 세 번 부르고 군국에서 일곱 번 천거하였으나

皆不就(개불취) : 모두 취임하지 않고

廬于墓側(려우묘측) : 아버지의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살면서

旦夕(단석) : 아침 저녘으로

常至墓所(상지묘소) : 항상 묘소 앞에 이르러

拜跪(배궤) : 절하고 끓어 앉아

攀栢悲號(반백비호) : 측백나무를 붙잡고 슬피 소리내어 울어서

涕淚著樹(체루저수) : 눈물이 나무에 붙으니

樹爲之枯(수위지고) : 나무가 이 때문에 고사했다

讀詩(독시) : <시경>을 읽다가

至哀哀父母(지애애부모) : "슬프고 슬프도다, 부모님이

生我劬勞(생아구로) : 나를 낳으심에 수고로움셨다."고 하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未嘗不三復流涕(미상불삼복유체) : 일찍이 세 번 거듭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때가 없으니

門人受業者(문인수업자) : 문인으로 수업을 받은 사람들이

並廢蓼莪之篇(병폐료아지편) : 모두 <육아>편을 빼 버리고 읽지 않기로 하였다

家貧躬耕(가빈궁경) : 집이 가난하여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

計口而田(계구이전) : 식구수를 계산하여 밭을 경작하며

度身而蠶(도신이잠) : 옷입을 사람의 몸을 헤아려서 누에를 치더니

或有密助之者(혹유밀조지자) : 간혹 남몰래 돕는 이가 있어도

裒皆不聽(부개불청) : <부>가 다 듣지 않았다

及司馬氏簒魏(급사마씨찬위) : 사마씨가 위나라를 찬탈하여

裒終身未嘗西向而坐(부종신미상서향이좌) : <부>가 죽을 때까지 일찍이 서쪽을 향하여 앉지 않아서

以示不臣于晉(이시불신우진) : 이로써 사마씨가 진나라의 신하가 아님을 보이는 것이었다

 

晉西河人王延事親色養(진서하인왕연사친색양) : 진나라 서하 사람 왕연이 부모를 섬기되 화순하고 기쁜 얼굴빛으로 봉양하였는데

夏則扇枕席(하즉선침석) : 여름이면 배개와 자리를 부채질하고

冬則以身溫被(동즉이신온피) : 겨울이면 자신의 몸으로써 이불을 따뜻하게 하며

隆冬盛寒(륭동성한) : 한겨울 몹시 추울 때에

體常無全衣(체상무전의) : 자신은 항상 몸에 완전한 옷이 없었으나

而親極滋味(이친극자미) : 부모에게 맛좋은 음식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柳玭曰(유빈왈) : 유변이 말하기를

崔山南昆弟子孫之盛(최산남곤제자손지성) : "최산남의 형제와 자손의 번성함이

鄕族罕比(향족한비) : 향리의 겨레에 견줄 만한 이가 드물었다

山南曾祖王母長孫夫人(산남증조왕모장손부인) : 산남의 증조모 장손부인이 

年高無齒(년고무치) : 나이가 많아서 이가 없거늘

祖母唐夫人(조모당부인) : 조모 당부인이

事姑孝(사고효) : 시어머니를 효도로 섬기어

每旦櫛縰笄(매단즐쇄계) : 매일 아침에 머리빗고 검정 비단으로 머리를 묶고 비녀를 꽂고서 시어머니 계시는 곳에 가서

拜於階下(배어계하) : 섬돌 아래에서 절하고

卽升堂(즉승당) : 즉시 마루에 올라가서

乳其姑(유기고) : 그 시어머니께 젖을 먹이었으니

長孫夫人(장손부인) : 장손부인이

不粒食數年而康寧(불입식수년이강녕) : 밥을 수 년 동안 먹지 않고도 건강하고 편안하였다

一日疾病(일일질병) : 하루는 장손부인이 병환이 위중했다

長幼咸萃(장유함췌) : 어른과 어린이가 모두 베개 머리에 모였는데

宣言無以報新婦恩(선언무이보신부은) : 장손부인인 말하기를 "며느리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니

願新婦有子有孫(원신부유자유손) : 원하건대 며느리에게는 아들에 있어서나 손자에 있어서나

皆得如新婦(개득여신부) : 모두가  새 며느리처럼 효

孝敬(효경) : 도하고 공경할 수 있다면

則崔之門(즉최지문) : 최씨의 가문이

安得不昌大乎(안득불창대호) : 어찌 번창하고 크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南齊庾黔婁爲孱陵令(남제유검루위잔릉령) : 남제의 유검루가 잔릉현의 수령이 되어서

到縣未旬父易在家遘疾(도현미순부역재가구질) : 고을에 도착한 지 열흘이 못되었을 때에

黔婁忽心驚(검루홀심경) : 검루가 갑자기 마음이 놀라서

擧身流汗(거신유한) : 온 몸에 땀이 흘러내리니

卽日棄官歸家(즉일기관귀가) : 그 날로 벼슬을 버리고 본가로 돌아가니

家人悉驚其忽至(가인실경기홀지) : 집안 사람들이 모두 그가 홀연히 온 것에 놀랐다

時易疾始二日(시이질시이일) : 그때에 <이>가 병들어 이틀 되었는데

醫云(의운) : 의원이 말하기를

欲知差劇(욕지차극) : "병이 낫는지 위독한지를 알려면

但嘗糞甛苦(단상분첨고) : 다만 환자의 똥이 단가 쓴가를 맛소아야 한다."고 하니

易泄利(이설리) : <이>가 설사하였는데

黔婁輒取嘗之(검루첩취상지) : 검루가 곧 자져다 맛을 보니

味轉甛滑(미전첨활) : 맛볼수록 맛이 어둑 달고 미끄럽거늘

心愈憂苦(심유우고) : 검루가 마음으로 더욱 근심스럽고 괴로워서

至夕每稽顙北辰(지석매계상북신) : 밤이 되면 늘 북두칠성에게 머리를 조아려 절하면서

求以身代(구이신대) : 자신의 몸으로써 아버지를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海虞令何子平(해우령하자평) : 해우현의 수령 하자평이

母喪去官(모상거관) :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벼슬을 떠나

哀毁踰禮(애훼유례) : 애통하여 몸을 손상함이 예의 한계를 넘어서

每哭踊頓絶方蘇(매곡용돈절방소) : 매양 통곡하고 몸부림쳐 갑자기 기절하였다가 겨우 소행하였다

屬大明末東土饑荒(속대명말동토기황) : 그때는 마침 대명말년이었는데 동쪽 지방에 흉년이 들고

繼以師旅(계이사려) : 전란이 계속되니

八年下得營葬(팔년하득영장) : 8년 동안을 어머니의 장사를 지낼 수가 없어서

晝夜號哭(주야호곡) : 낮이나 밤이나 소리내어 통곡하되

常如袒括之日(상여단괄지일) : 항상 초상 당하던 날처럼 하여

冬不衣絮(동불의서) : 겨울에는 솜둔 옷을 입지 않고

夏不就凊凉(하불취청량) :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 나가지 않았으며

一日以米數合(일일이미수합) : 하루에 쌀 몇 홉으로써

爲粥(위죽) : 죽을 쑤어 먹고

不進鹽菜(불진염채) : 소금에 절인 채소도 먹지 않았다

所居屋敗(소거옥패) : 거처하고 있는 집이 무너져서

不蔽風日(불폐풍일) : 바람과 햇볕을 가리지 못하거늘

兄子伯興欲爲葺理(형자백흥욕위즙리) : 형의 아들 백홍이 지붕을 덮고 수리하려고 하였는데

子平不肯曰(자평불긍왈) : 자평이 듣지 않고 말하기를

我情事未申(아정사미신) : "내가 마음 속에 있는 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天地一罪人耳(천지일죄인이) : 천지 사이에 한 죄인일 뿐이다

屋何宜覆(옥하의복) : 집을 어떻게 마땅히 덮겠는가."라고 했다

蔡興宗爲會稽太守(채흥종위회계태수) : 채홍종이 회게태수가 되어

甚加矜賞(심가긍상) : 매우 민만히 여기고 그 효행을 아름답게 여겨서

爲營塚壙(위영총광) : 그의 어머니의 무덤을 만들어 장사지내게 했다

 

朱壽昌生七歲(주수창생칠세) : 주수장이 낳은지 일곱 살 때에

父守雍(부수옹) : 아버지가 <옹>의 수령으로 있었는데

出其母劉氏(출기모유씨) : 수창의 어머니 유씨를 보내어서

嫁民間(가민간) : 민간 사람에게 시집가게 했다

母子不相知者(모자불상지자) : 그리하여 모자 간에 서로 소식을 모른 것이

五十年(오십년) : 50년이나 되었다

壽昌行四方(수창행사방) : 수장이 사방을 다니면서

求之不已(구지불이) : 어머니를 찾기를 그치지 않아

飮食罕御酒肉(음식한어주육) : 먹과 마심에 술과 고기 먹는 일이 드물었고

與人言輒流涕(여인언첩유체) :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곤 했다

熙寧初棄官入奏(희녕초기관입주) : 희령 초년에 벼슬을 버리고 진나라에 들어가면서

與家人訣(여가인결) : 집안 사람들에게 하직하되

誓不見母(서불견모) : "맹세코 어머니를 보지 못하면

不得還(불득환) : 다시 집에 돌아오지 않았겠다."고 했는데

行次同州(행차동주) : 가다가 동주의 여관에 투숙하였을 때

得焉(득언) :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 유씨는

劉氏時年七十餘矣(유씨시년칠십여의) : 그 당시에 나이가 70여 세였다

雍守錢明逸以事聞(옹수전명일이사문) : 옹의 수령 전명일이 이 일을 조정에 아뢰었더니

詔壽昌還就官(조수창환취관) : 수창에게 조서를 내리어 돌아와 벼슬에 나가라고 하니

繇是天下皆知其孝(요시천하개지기효) : 이 일로 말미암아 천하가 다 그의 효도를 알게 되었다

壽昌再爲郡守(수창재위군수) : 수창이 다시 군수가 되더니 이

至是(지시) : 때에 이르러

以母故通判河中府(이모고통판하중부) : 어머니가 동주에 있어서 동주에 가까운 하중부의 통판이 되어서

迎其同母弟妹以歸(영기동모제매이귀) : 그와 같은 어머니의 소생인 아우와 누이동생을 데리고 같이 돌아왔다

居數歲母卒(거수세모졸) : 수년을 같이 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거늘

涕泣幾喪明(체읍기상명) : 눈물을 흘리어서 거의 시력을 상실할 뻔하엿다

拊其弟妹益篤(부기제매익독) : 그 아우와 누이동생을 사랑하여 돌봄이 더욱 독실하여

爲買田宅居之(위매전택거지) : 농토와 집을 사서 살 게 하고

其於宗族(기어종족) : 그가 종족에게

尤盡恩意(우진은의) : 더욱 은의를 다하여

嫁兄弟之孤女二人(가형제지고녀이인) : 형과 아우의 아버지 여윈 딸 두 사람을 시집조내 주었으며

葬其不能葬者十餘喪(장기불능장자십여상) : 종족 중에서 장사지낼 수 없는 사람 십여인의 장사를 지내주기도 했다

盖其天性如此(개기천성여차) : 대체로 그의 천성이 이와 같았다

 

伊川先生家(이천선생가) : 이천 선생이 집에서

治喪(치상) : 상사를 다스리는데

不用浮屠(불용부도) : 불교의 의식을 쓰지 않으시니

在洛亦有一二人家化之(재락역유일이인가화지) : 낙양에 있는 집에서 또한 한 두 사람의 집이 에에 감화됨이 있었다

 

霍光出入禁闥二十餘年(곽광출입금달이십여년) : 곽광이 나라의 중신으로서 궁궐에 출입한 지 20여년이 되었는데

小心謹愼(소심근신) : 조심하고 삼가하여

未嘗有過(미상유과) : 일찍이 과실이 없었다

爲人沈靜祥審(위인심정상심) : 사람됨이 침착하고 조용하며 자세하고 살핌으로서

每出入下殿門(매출입하전문) : 늘 궁궐을 출입할 적에 궁궐 문에서 수레를 내리는데

進止有常處 (전지유상처) : 나아가고 머무름이 일정한 곳이 있었다

郎僕射竊識視之(낭복사절지시지) : 낭복야가 몰래 그 위치를 표시하여 두고 보니

不失尺寸(불실척촌) : 한 자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고 한다

 

汲黯景帝時(급암경제시) : 급암이 한나라 경제 때에

爲太子洗馬(위태자세마) : 태자선마라는 벼슬에 있었는데

以嚴見憚(이엄견탄) : 엄격함으로써 꺼림을 보았더니

武帝卽位(무제즉위) : 무제가 즉위하여

召爲主爵都尉(소위주작도위) : 소명하여다가 <주작도위>를 삼았다

以數直諫(이삭직간) : 자주 직간함으로써

不得久居位(불득구거위) : 오래 그 지위에 있을 수 없었다

是時太后弟武安侯田蚡爲丞相(시시태후제무안후전분위승상) : 이때에 태후의 아우 무안후 전분이 승상이 되어 있었다

中二千石拜謁(중이천석배알) : 중이천석이 절하고 뵈어도

蚡弗爲禮(분불위례) : <분>이 그에게 답례를 하지 않더니

黯見蚡未嘗拜(암견분미상배) : <암>은 분을 보았을 때에 아직 일찍이 절을 하지 않고

揖之(읍지) : 손을 모아 읍을 하였다

上方招文學儒者(상방초문학유자) : 임금이 바야흐로 글하는 선비를 부르더니

上曰(상왈) : 임금이 말하기를

吾欲云云(오욕운운) : "내가 앞으로 이러이러하게 하려 한다."하니

黯對曰(암대왈) : 급암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陛下內多欲而外施仁義(폐하내다욕이외시인의) : "폐하가 마음 속에는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 인의의 정치를 베푸시니

奈何欲效唐虞之治乎(내하욕효당우지치호) : 어찌 옛날 당우 때의 정치를 본받으려 하십니까."라고 했다

上怒變色而罷朝(상노변색이파조) : 임금이 성내어 얼굴빛을 변하면서 조회를 중지하시니

公卿皆爲黯懼(공경개위암구) : 참렬하였던 삼공과 구경들이 다 급함을 위하여 두려워했다

上退謂人曰(상퇴위인왈) : 임금이 물러나와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甚矣(심의) : "심하다

汲黯之戇也(급암지당야) : 급암의 우직함이여."라고 하였다

群臣或數黯(군신혹수암) : 여러 신하들이 혹 급암을 책하였는데

黯曰(암왈) : 급암이 말하기를

天子置公卿輔弼之臣(천자치공경보필지신) : "천하가 삼공과 구경의 보필하는 신하를 두는 것은

寧令從諛承意(녕령종유승의) : 어찌 순종하고 아첨하여 임금의 뜻을 받아서

陷主於不義乎(함주어불의호) : 임금을 불의에 빠지게 하려고 함이겠는가

且已在其位(차이재기위) : 또 이미 그 직위에 있으니

縱愛身(종애신) : 비록 몸을 아낄 것이나

奈辱朝廷何(내욕조정하) : 어찌 조정을 욕되에 버려둘 수 있겠는가."고 했다

黯多病(암다병) : 급암이 병이 많아서

病且滿三月(병차만삼월) : 병으로 휴가함이 석달이 차거늘

上常賜告者數(상상사고자수) : 임금이 항상 휴가를 주심이 자주 있었으되

終不癒(종불유) : 마침내 낫지 않으니

最後嚴助爲請告(최후엄조위청고) : 최후에 엄조가 그를 위하여 휴가를 주청하였는데

上曰(상왈) : 임금이 말하기를

汲黯何如人也(급암하여인야) : "급암은 어떤 사람인가."하고 했다

曰使黯任職居官(왈사암임직거관) : 대답하기를 "급암으로 하여금 직무를 맡겨 벼슬에 있게 하면

亡以癒人(망이유인) : 다른 사람보다 나을 까닭이 없겠지만

然至其輔少主守成(연지기보소주수성) : 그러나 그가 어린 임금을 보좌하여 선왕의 업을 지켜 이루게 하는데 이르러서는

雖自謂賁育(수자위분육) : 비록 맹분과 하육이라 자처할지라도

弗能奪也(불능탈야) : 그의 뜻과 절조를 빼앗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上曰(상왈) : 임금이 말하기를

然古有社稷之臣(연고유사직지신) : '그렇다 옛날에 사직지신이 있다고 하더니

至如汲黯(지여급암) : 급암같은 사람이라면

近之矣(근지의) : 그것에 가깝구나."라고 했다

大將軍靑侍中上踞厠視之(대장군청시중상거측시지)

: 대장군 청이 궁중에서 임금을 모실 때에 임금이 걸상의 가에 걸터 않아서 그를 보았고

丞相弘宴見(승상홍연현) : 승상 <홍>이 한가할 때에

上或時不冠(상혹시불관) : 임금이 어떤 때에는 갓을 쯔지 않은채 있기도 하였는데

至如見黯(지여견암) : 급암을 봄과 같음에 이르러서는

不冠而見也(불관이견야) : 갓을 쓰지 않고서는 보지 않았다

上嘗坐武帳(상상좌무장) : 임금이 일직이 무장에 앉았는데

黯前奏事(암전주사) : 급암이 앞에 나아가 국사를 하뢰게 되었다

上不冠(상불관) : 임금이 갓을 쓰지 않았다

望見黯避帷中(망견암피유중) : 급암을 바라보고 장막 안으로 피하여

使人可其奏(사인가기주) : 사람을 시켜서 그의 아뢰는 일을 재가하였다고 하니

其見敬禮如此(기견경례여차) : 그가 임금에게 존경과 예우를 받음이 이와 같았다고 하였다

 

初魏遼東公翟黑子(초위요동공적흑자) : 처음에 위나라의 요동공 적흑자는

有寵於太武(유총어태무) : 태무에게 총애를 받았다

奉使幷州(봉사병주) : 그가 병주에 봉명사신으로 가서

受布千疋(수포천필) : 베 천 필을 뇌물로 받았는데

事覺(사각) : 일이 발각되었거늘

黑子謀於著作郎高允曰(흑자모어저작낭고윤왈) : 적흑자가 저작랑 고윤에게 상의하여 말하기를

主上問我(주상문아) : "임금이 나에게 물으시면

當以實告(당이실고) : 마땅히 사실로써 아뢰어야 되는가

爲當諱之(위당휘지) : 마땅히 속여야 되는가"고 하니

允曰(윤왈) : 윤이 말하기를

公帷幄寵臣(공유악총신) : "공은 유악종신이니

有罪首實(유죄수실) : 죄가 있을 때에 사실대로 자수하면

庶或見原(서혹견원) : 혹은 아마 용서를 받을 수 있겠거니와

不可重爲欺罔也(불가중위기망야) : 임금을 거듭 속여서는 안될 것입니다."고 했다

中書侍郞崔鑑公孫質曰(중서시랑최감공손질왈) : 중서시랑 최감과 송손질은 말하기를

若首實(약수실) : "만약 사실대로 자수하면

罪不可測(죄불가측) : 죄를 예측할 수 없으니

不如姑諱之(불여고휘지) : 잠시 숨기는 것만 못합니다."고 했다

黑子怨允曰(흑자원윤왈) : 혹자가 윤을 원망하여 말하기를

君奈何誘人就死地(군내하유인취사지) : "그대는 어찌하여 남을 사지에 가도록 유인하는가."라고 하고

入見帝(입현제) : 마침내 임금을 알현하고서

不以實對(불이실대) :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았는데

帝怒(제노) : 임금이 성을 내어

殺之(살지) : 죽여 버렸다

帝使允授太子經(제사윤수태자경) : 임금이 고윤으로 하여금 태자에게 경서를 교수하게 하였는데

及崔浩以史事被收(급최호이사사피수) : 최호가 국사의 필화사건으로써 잡히게 됨에 이르자

太子謂允曰(태자위윤왈) : 태자가 윤에게 말하기를

入見至尊(입현지존) : "들어가 지존을 알현하여

吾自導卿(오자도경) : 내가 스스로 경을 유도하려는데

脫已尊有問(탈이존유문) : 만일 지존이 묻는 말이 있거든

但依吾語(단의오어) : 다만 내 말에 따르라."고 했다

太子見帝言(태자현제언) : 태자가 임금을 알현하고 말하기를

高允小心愼密(고윤소심신밀) : "고윤은 소심하여 삼가고 치밀하고

且徵賤(차징천) : 또 지위가 미천한지라

制由崔浩(제유최호) : 저작은 최호로 말미암은 것이니

請赦其死(청사기사) : 청하건대 그의 죽을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하니

帝召允問曰(제소윤문왈) : 임금이 윤을 불러 물어 말하기를

國書皆浩所爲乎(국서개호소위호) : "국서는 다 최호가 한 것인가."라고 했다

對曰(대왈) : 고윤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臣與浩共爲之(신여호공위지) : "신과 호가 함께 하였습니다

然浩所領事多(연호소령사다) : 그러나 호는 거느리는 일이 많아

總裁而已(총재이이) : 총괄적으로 결재만 했을 뿐이어니와

至於著述(지어저술) : 저술에 이르러서는

臣多於浩(신다어호) : 신이 호보다 많이 하였습니다."고 했다

帝怒曰(제노왈) : 임금이 성을 내어 말하기를

允罪甚於浩(윤죄심어호) : "윤의 죄가 호보다 더 심한데

何以得生(하이득생) : 어찌 살릴 수 있단 말이냐."고 하니

太子懼曰(태자구왈) : 태자가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天威嚴重(천위엄중) : "임금의 위험은 엄중하시니

允小臣(윤소신) : 윤은 조그만 신하입니다

迷亂失次耳(미란실차이) : 정신이 아득하고 혼란해져서 말을 제대로 못했을 뿐입니다

臣曏問(신향문) : 신이 전번에 물으니

皆云(개운) : 모두가

浩所爲(호소위) : 호가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고 했다

帝問允(제문윤) : 임금이 윤에게 묻기를

信如東宮所言乎(신여동궁소언호) : "정말 동궁이 말한 것과 같은가."라고 하니

對曰(대왈) : 윤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臣罪當滅族(신죄당멸족) : "신의 죄는 마땅히 별족의 형을 받아야 할 것이므로

不敢虛妄(불감허망) : 감히 거짓말로 기망할 수는 없습니다

殿下以臣侍講日久(전하이신시강일구) : 동궁 전하는 신이 써 모시고 강의한 것이 시일이 오래되서

哀臣(애신) : 신이 가엾게 여기어

欲丐其生耳(욕개기생이) : 살려 주시기를 빌고자 하는 것일 뿐인데

實不問臣(실불문신) : 실로 신에게 묻지도 않았으며

臣亦無此言(신역무차언) : 신 또한 그러한 말을 한 일이 없으니

不敢迷亂(불감미란) : 감히 아득하고 혼란하여 말을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고 했다

帝顧謂太子曰(제고위태자왈) : 임금이 태자를 돌아보면서 일러 말하기를

直哉(직재) : "정직하구나

此人情所難(차인정소난) :이런 일은 사람의 심정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인데

而允能爲之(이윤능위지) : 윤이 능히 하였다

臨事不易辭信也(임사불이사신야) : 죽음에 다다라서 말을 바꾸지 않은 것은 믿음이고

爲臣不欺君貞也(위신불기군정야) : 신하가 되어 임금을 속이지 않은 것은 곧음이니

宜特除其罪(의특제기죄) : 마땅히 특별히 그의 죄를 면제하여서

以旌之(이정지) : 정표해야 할 것이다."하고

遂赦之(수사지) : 드디어 그를 용서하였다

他日太子讓允曰(타일태자양윤왈) : 다른날 태자가 윤을 꾸짖어 말하기를 "

吾欲爲卿脫死(오욕위경탈사) : 내가 경을 위하여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고 하였는데

而卿不從何也(이경불종하야) : 경이 따르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하니

允曰(윤왈) : 윤이 말하기를

臣與崔浩實同史事(신여최호실동사사) : "신이 최호와 함게 실로 국사 편술의 일을 같이 하였으니

死生榮辱(사생영욕) : 죽거나 살거나 영화에나 굴욕에나

義無獨殊(의무독수) : 의리상 나 홀로 다를 수는 없는 것이니

誠荷殿下再造之慈(성하전하재조지자) : 진실로 전하의 다시 살려 주시려는 자비를 입었으니

違心苟免(위심구면) : 양심을 어기고 구차하게 죽음을 면함은

非臣所願也(비신소원야) : 신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太子動容稱嘆(태자동용칭탄) : 태자가 얼굴에 감동한 기색을 보이며 칭찬하고 감탄하였다

允退謂人曰(윤퇴위인왈) : 윤이 물러나와 다른 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我不奉東宮指導者(아불봉동궁지도자) : "내가 동궁의 유도에 따르지 않은 것은

恐負翟黑子故也(공부적흑자고야) : 적흑자를 저버릴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고 했다

 

李君行先生名潛(이군행선생명잠) : 이군행 선생의 이름은 잠이니

虔州人(건주인) : 건주 사람이다

入京師(입경사) : 경사에 들어가다가

至泗州(지사주) : 사주에 이르러서

留止(유지) : 머물렁 있었는데

其子弟請先往(기자제청선왕) : 그의 자제가 먼저 가기를 청하니

君行問其故(군행문기고) : 군행이 그 까닭을 물엇는데

曰科場近(왈과장근) : 말하기를 "과거볼 날이 가까웠으니

欲先至京師(욕선지경사) : 먼저 서울에 당도하여

貫開封戶籍(관개봉호적) : 개봉의 호적에 이름을 넣어서

取應(취응) : 응시를 갖고자 합니다."고 했다

君行不許曰(군행불허왈) : 군행이 허락하지 않고 말하기를

汝虔州人(여건주인) : "너는 건주 사람인데

而貫開封戶籍(이관개봉호적) : 개봉의 호적에 넣는다면

欲求事君(욕구사군) : 임금 섬기기를 바라면서

而先欺君(이선기군) : 먼저 임금을 속이고자 하는 것이니

可乎(가호) : 옳은 일인가

寧遲緩數年(녕지완수년) : 차라리 몇 년이 늦어질지언정

不可行也(불가행야) :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崔玄暐母盧氏嘗誡玄暐曰(최현위모노씨상계현위왈) : <최현위>의 어머니 노시가 일찍이 현위를 훈계하여 말하기를

吾見姨兄屯田郞中幸玄馭(오견이형둔전랑중행현어) : "내가 이종형 둔전낭중 신형어를 보니

曰兒子從宦者(왈아자종환자) : 그가 말하기를 '자식이 벼슬에 종사하고 있는 자를

有人來云(유인내운) : 누가와서 말하기를

貧乏不能存(빈핍불능존) : 그 사람은 가난하고 궁핍하여 견디어 갈 수 없다고 하면

此是好消息(차시호소식) : 이것은 바로 좋은 소식인데

若聞貲貨充足(약문자화충족) : 만일 재물이 충족하여

衣馬輕肥(의마경비) : 의복`거마가 경쾌하고 살이 쪘다면

此惡消息(차악소식) : 이것은 나쁜 소식이다.'라고 하니

吾嘗以爲確論(오상이위확논) : 나는 항상 그것을 확실한 의론이라고 생각한다

 

比見親表中仕宦者(비견친표중사환자) : 요사이 보니 내외의 친족 중에 벼슬한 자가

將錢物(장전물) : 곧 돈이나 물품을 가져와서 그

上其父母父母但知喜悅(상기부모부모단지희열) : 부보에게 올리었으면 부보는 다만 기뻐할 줄만 알고

竟不問此物(경불문차물) : 끝내 묻지 않노니 그 물건이

從可而來(종가이래) : 어디로부터 왔느냐고 말이다

必是祿俸餘資(필시록봉여자) : 반드시 그것이 자기의 녹봉을 절약한 나머지 물자라면

誠亦善事(성역선사) : 정말 또한 좋은 일이어니와

如其非理所得(여기비리소득) : 만일 그것이 도리어 이치에 어긋난 소득이라면

此如盜賊何別(차여도적하별) : 그것은 도둑과 무엇이 다른가

縱無大咎(종무대구) : 비록 큰 허물을 모면할 수 있을지라도

獨不內愧於心(독불내괴어심) : 홀로 내심에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했는데

玄暐遵奉敎誡(현위준봉교계) : 현위가 가르쳐 훈계함을 반들어 준수하게 했으니

以淸謹見稱(이청근견칭) : 청렴하고 근신한다고 세상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劉器之待制初登科(유기지대제초등과) : 대제 유기지가 처음 과거에 급제하여

與二同年(여이동년) : 두 사람의 동년과 함께

謁張觀參政(알장관참정) : 참정 장관을 뵈러 갔었다

三人同起身(삼인동기신) : 세 사람이 몸을 같이 일으키어

請敎(청교) :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張曰(장왈) : 장이 말하기를

某自守官以來常持四字(모자수관이래상지사자) : "나는 벼스지킴으로부터 이후로 항상 네 글자를 마음에 지니고 있엇는데

勤謹和緩(근근화완) : 그것은  부지런함`삼가함`오화함`너긋함."라고 했다

中間一後生應聲曰(중간일후생응성왈) : 그 중 중간의 한 후배가 소리를 응하여 말하기를

勤謹和旣聞命矣(근근화기문명의) : "부지럼함과 삼감 그리고 온화함과 너긋함"라고 했다

緩之一字某所未聞(완지일자모소미문) : '너긋함'의 한 마디는 저는 아직 듣지 못한 바입니다."고 했다

張正色作氣曰(장정색작기왈) : 장이 얼굴빛을 바로잡고 엄숙하게 하고 말소리를 높여 말하기를

何嘗敎賢緩不及事(하상교현완불급사) : "어찌 몸소 겪고서 어진 선비들에게 너긋하여 일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게 가르치겠는가

且道世間甚事不因忙後錯了(차도세간심사불인망후착료) : 또 말하거니와 세상의 무슨 일인들 바쁘게 처리한 뒤에 착오되지 않는 것이 있던가."고 하였다

 

伊川先生曰(이천선생왈) :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安定之門人(안정지문인) : "호안정의 문인이

往往知稽古愛民矣(왕왕지계고애민의) : 이따금 옛일을 상고하는 것과 백성을 사랑하는 사리를 안다

則於爲政也何有(즉어위정야하유) : 그러니 정사를 하는 데에 무엇이 어려움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呂滎公自少官守處(여형공자소관수처) : 여형공은 소시로부터 벼슬 자리에

未嘗干人擧薦(미상간인거천) : 일찍이 남게게 천거해주기를 간구한 일이 없엇다

其子舜從守官會稽(기자순종수관회계) : 그의 둘째 아들 순종이 회계에 봉직하고 있을 때에

人或譏其不求知者(인혹기기불구지자) : 어떤 사람이 혹 그를 기롱하여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고 하니

舜從對曰(순종대왈) : 순종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勤於職事(근어직사) : "자기의 직무를 부지런히 하고

其他不敢不愼(기타불감불신) : 그 밖의 것을 감히 조심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乃所以求知也(내소이구지야) : 이것이 곧 알아주는 이를 찾는 것이다."고 했다

 

漢陳孝婦年十六而嫁(한진효부년십육이가) : 한나라 진현의 효부는 나이 열 여섯 살에 시집가서

未有子(미유자) : 아직 자식을 두지 못하였는데

其夫當行戍(기부당행수) : 그의 남편이 국경의 수비병으로 감에 당하여

且行時屬孝婦曰(차행시속효부왈) : 막 떠날 때에 남편이 효부에게 부탁하여 말하기를

我生死未可知(아생사미가지) : "내가 살고 죽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幸有老母(행유노모) : 다행히 늙은 어머니가 계시고

無他兄弟備養(무타형제비양) : 다른 형제가 공양을 갖출 이 없으니

吾不還(오불환) : 내가 돌아오지 않을지라도

汝肯養吾母乎(여긍양오모호) : 네가 내 어머니를 봉양하겠는가."라고 하였다

婦應曰諾(부응왈락) : 아내가 응답하여 말하기를 "예"라고 했다

夫果死不還(부과사불환) : 남편이 과연 죽고 돌아오지 않으니

婦養姑不衰(부양고불쇠) :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봉양하기를 전과 같이 소홀히 하지 않았다

慈愛愈固(자애유고) : 시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한 자애와 며느리의 시어머니를 사랑함이 더욱 견고하여

紡績織紝(방적직임) : 길삼하고 베짜서

以爲家業(이위가업) : 이것을 집안의 생업을 삼고

終無嫁意(종무가의) : 끝끝내 시집갈 뜻이 없었다

居喪三年(거상삼년) : 3년을 거상하니 그

其父母哀其少無子(기부모애기소무자) : 이 친정 부모가 그가 젋고 자식이 없으면서

而早寡也(이조과야) : 일찍 과부된 것을 가엾게 여겨

將取嫁之(장취가지) : 장차 데러다가 시집조내려 하였는데

孝婦曰(효부왈) : 효부가 말하기를

夫去時(부거시) : "남편이 갈 때에

屬妾以供養老母(속첩이공양노모) : 저에게 부탁하여 늙은 어머니늘 공양하게 하였는데

妾旣許諾之(첩기허락지) : 제가 이미 허락하였으니

夫養人老母(부양인노모) : 저 남의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다가

而不能卒(이불능졸) : 그 일을 끝마치지 못하고

許人以諾(허인이락) : 남에게 그렇게 하겟다고 허락해 놓고

而不能信(이불능신) : 신의를 지키지 못한다면

將何以立於世(장하이립어세) : 장차 어떻게 세상에 서겠습니까."하고

欲自殺(욕자살) : 자살하려고 하였다 그

其父母懼(기부모구) : 의 친정 부모가 두려워서

而不敢嫁也(이불감가야) : 감히 시집보내지 못하여 드디어

遂使養其姑(수사양기고) : 그의 시어머리를 봉양하게 하니

二十八年姑八十餘(이십팔년고팔십여) : 28년만에 시어머니가 80여 세가 되었다

以天年終(이천년종) : 타고난 수명으로써 마치니

盡賣其田宅財物(진매기전택재물) : 그의 전지와 주택과 재물을 다 팔아서

以葬之(이장지) : 이로써 장사를 지내고

終奉祭祀(종봉제사) : 끝까지 제사를 받을었다

淮陽太守以聞(회양태수이문) : 회양태수가 이 사실을 조정에 아뢰었는데

聞使使者(문사사자) : 이를 듣고 임금이 사신을 시켜

賜黃金四十斤(사황금사십근) : 황금 40근을 하사하고

復之(복지) : 복호를 하여

終身無所與(종신무소여) : 일생동안 부역에 참여할 것을 없게 하였다

號曰(호왈) : 이름하여 말하기를

孝婦(효부) : "효부'라고 했다

 

漢鮑宣妻桓氏(한포선처환씨) : 한나라 포선의 아내 환씨의

字少君(자소군) : 자는 소군이다

宣嘗就少君父學(선상취소군부학) : 선이 일찍이 소군의 아버지에게 나아가 그에게 들을 배웠는데

父奇其淸苦(부기기청고) : 소군의 아버지가 선의 맑고 고로함을 기특하게 여겨서

故以女妻之(고이녀처지) : 자기의 딸로써 그의 아내로 시집을 보냈다

將送資賄甚盛(장송자회심성) : 그런데 시집가는데 보내는 재물이 매우 풍성하니

宣不悅(선불열) : 선이 기뻐하지 않으면서

謂妻曰(위처왈) : 그의 아내에 타일러 말하기를

少君生富驕(소군생부교) : "소군이 부유하고 교만하게 생장하여

習美飾(습미식) :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익혔으니

而吾實貧賤(이오실빈천) : 나는 진실로 가간하고 미천하여

不敢當禮(불감당례) : 감히 그러한 예절을 감당할 수 없다."라고 하니

妻曰(처왈) : 아내가 말하기를

大人以先生修德守約(대인이선생수덕수약) :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되 선생이 덕을 닦고 검약을 지킨다고 하였기에

故使賤妾侍執巾櫛(고사천첩시집건즐) : 천첩으로 하여금 아내가 되게 하였으니

旣奉承君子(기봉승군자) : 이미 군자를 받들게 되엇는데

惟命是從(유명시종) : 오직 명하시면 이에 따르겠습니다."고 하였다

宣笑曰(선소왈) : 선이 웃으며 말하기를

能如是(능여시) : "능히 그렇다면

是吾志也(시오지야) : 그것은 바로 내 뜻에 맞는 것이오."라고 했다

妻乃悉歸侍御服飾(처내실귀시어복식) : 아내가 이에 시녀와 하인과 복식을 모두 돌려보내고

更著短布裳(경저단포상) : 짧은 베치마로 갈아 입고

與宣共挽鹿車(여선공만록차) : 선과 더불어 같이 녹거를 끌고서

歸鄕里(귀향리) : 선의 향리로 돌아가서

拜姑禮畢(배고예필) : 시어머니께 뵙는 예를 마치고

提甕出汲(제옹출급) : 돋 동이를 들고 나아가서 물을 길어

修行婦道(수행부도) : 며느리의 도리를 닦아 행하니

鄕邦稱之(향방칭지) : 향리와 나라가 그를 칭찬하였다

 

曹爽從弟文叔妻(조상종제문숙처) : <조상>의 종제 문숙의 아내는

譙郡夏侯文寧之女(초군하후문녕지녀) : 초군하후 문녕의 딸이다

名令女(명영녀) : 이름은 영녀이다

文叔蚤死(문숙조사) : 문숙이 일직 죽으니

服闋(복결) : 봇상을 마치고

自以年少無子(자이년소무자) : 자신이 나이가 젋고 자식이 없으니

恐家必嫁己(공가필가기) : 아마 친가에서 반드시 자기를 시집보낼 것이다 하여

乃斷髮爲信(내단발위신) : 이에 머리털을 잘라서 맹세하였다

其後家果欲嫁之(기후가과욕가지) : 그 뒤에 친가에서 과연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令女聞(영녀문) : 영녀가 듣고서

卽復以刀截兩耳(즉부이도절양이) : 곧 다시 칼로 두 귀를 베어 버리고

居止常依爽(거지상의상) : 생활하는 것을 항상 조상에게 의지하니

及爽被誅(급상피주) : 조상이 반역의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되어

曹氏盡死(조씨진사) : 조씨의 일문이 모두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令女叔父上書(영녀숙부상서) : 영녀의 숙부가 조정에 상서하여

與曹氏絶婚(여조씨절혼) : 조씨와의 혼인 관계를 끊고

彊迎令女歸(강영영녀귀) : 강제로 영녀를 친정으로 맞아 돌아오게 했다

時文寧爲梁相一作州(시문령위량상일작주) : 그때 문녕이 양주의 관원으로 있었는데

憐其少執義(련기소집의) : 그의 젊은 나이에 수절하는 것을 가엾게 여기고

又曹氏無遺類(우조씨무유류) : 또 조씨는 살아남은 사람이 없어

冀其意阻(기기의조) : 그의 수절하는 마음이 그치기를 바라면서

乃徵使人風之(내징사인풍지) : 이에 은미하게 사람을 시켜서 그의 마음을 움직여보게 하였다

令女嘆且泣曰(영녀탄차읍왈) : 연녀가 탄식하여 울면서 말하기를

吾亦惟之(오역유지) : "나도 또한 생각하여 보니

許之是也(허지시야) : 허락하는 것이 옳겠다."고 했다

家以爲信(가이위신) : 집안에서는 이로써 믿고서

防之少懈(방지소해) : 감시하는 것을 조금 게을리하였는데

令女於是竊入寢室(영녀어시절입침실) : 영녀가 이에 몰래 침실오 들어가

以刀斷鼻(이도단비) : 칼로 자기의 코를 베어 버리고

蒙席而臥(몽석이와) :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

其母呼與語(기모호여어) : 그의 어머니가 부르면서 말을 하였으나

不應(불응) : 대답이 없거늘

發被視之(발피시지) : 이불을 열고 보니

血流滿床席(혈류만상석) : 피가 흘러 침상과 자리에 가득하거늘

擧家驚惶(거가경황) : 온 집안이 놀라서

往視之(왕시지) : 가보고

莫不酸鼻(막불산비) : 눈믈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或謂之曰(혹위지왈) :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일러 말하기를

人生世間(인생세간) : "사람이 세상에 산다는 것이

如輕塵棲弱草耳(여경진서약초이) : 가벼운 먼지가 약한 불에 붙은 것같을 뿐인데

何辛苦乃爾(하신고내이) : 어찌 그렇게  고생을 하는가

且夫家夷滅已盡(차부가이멸이진) : 또 남편의 집은 이미 멸망하여 다 죽고 없으니

守此欲誰爲哉(수차욕수위재) : 이는 누구를 위하여 수절을 하려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令女曰(영녀왈) : 영녀가 말하기를

聞仁者(문인자) : "내가 들으니 어진 사람은

不以盛衰改節(불이성쇠개절) : 성쇠로써 절개를 고치지 않고

義者(의자) : 의로운 사람은

不以存亡易心(불이존망이심) : 존망으로써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曹氏全盛之時(조씨전성지시) : 조씨가 한창 왕성할 때라도

尙欲保終(상욕보종) : 오리려 끝까지 지조를 지키려고 하였는데

况今衰亡(황금쇠망) : 하물며 지금 그들이 쇠망하였으니

何忍棄之(하인기지) : 어찌 차마 버릴 수 있겠는가

禽獸之行(금수지행) : 금수와 같은 행위를

吾豈爲乎(오기위호) : 내가 어찌 하겠는가."고 했다

 

唐鄭義宗妻(당정의종처) : 당나라의 정의종의 처

盧氏略涉書史(노씨약섭서사) : 노씨는 경서와 사기를 대략 섭렵하고

事舅姑(사구고) : 시아버지놔 시어머니를 섬김에

甚得婦道(심득부도) : 매우 며느리의 도리를 얻었다

嘗夜有强盜數十(상야유강도수십) : 일찍이 밤에 강도 수십 명이

持杖鼓噪(지장고조) : 몽둥이를 가지고 기세를 올려 떠들석하면서

踰垣而入(유원이입) : 담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家人悉奔Ꝩ(가인실분서) : 집안 사람들이 모두 달아나 숨고

唯有姑自在室(유유고자재실) : 오직 시어머니만이 스스로 집에 남아 있는데

盧冒白刃(노모백인) : 노씨가 칼날을 무릅쓰고

往至姑側(왕지고측) : 다가가 시어머니 곁에 이르러

爲賊捶擊(위적추격) : 도둑에게 매를 맞아

幾死(기사) : 거의 죽게 되었다

賊去後家人問(적거후가인문) : 도둑이 물러간 뒤에 집안 사람들이 묻기를

何獨不懼(하독불구) : "어찌 혼자 겁내지 않았는가."하니

盧氏曰(노씨왈) : 노씨가 말하기를

人所以異於禽獸者(인소이이어금수자) : "사람이 금수와 다른 바는

以其有仁義也(이기유인의야) : 사람에게 인의가 있기 때문이다

隣里有急(인리유급) : 이웃에 급한 일이 있으면

尙相赴救(상상부구) : 오히려 서로 달려가 구해야 할 것인데

况在於姑(황재어고) : 하물며 시어머니가 계시는데

而可委棄乎(이가위기호) : 내 버려 둘 수 있겠는가

若萬一危禍(약만일위화) : 행여 만의 하나의 위험한 재앙이라도

豈宜獨生(기의독생) : 어찌 마땅히 나만이 홀로 사는 것이 마땅할까."라고 했다

 

唐奉天竇氏二女(당봉천두씨이녀) : 당나라 봉천 두씨의 두 딸은

生長草野(생장초야) : 시골에서 생장하였으나

幼有志操(유유지조) : 어릴 때부터 지조가 있었다

永泰中群盜數千人(영태중군도수천인) : 영태 연간에 떼도둑 수천 명이

剽掠其村落(표략기촌락) : 그 촌락을 협박하여 빼앗앗는데

二女皆有容色(이녀개유용색) : 두 딸은 다 얼굴이 예뻣는데

長者年十九(장자년십구) : 맏딸은 나이가 열 아홉 살이고

幼者年十六(유자년십육) : 차녀는 나이가 열 여섯 살이었다

匿巖穴間(익암혈간) : 바위 틈에 숨어 있으니

曳出之(예출지) : 도둑이 끌어내어

驅迫以前(구박이전) : 몰아가 앞세우고 가다가

臨壑谷深數百尺(임학곡심수백척) : 계곡의 깊이가 수백 척이나 되는 곳에 이르러

其姊先曰(기자선왈) : 그 중 맏딸이 먼저 말하기를

吾寧就死(오녕취사) : "내 차라리 죽음에 나갈지언정

義不受辱(의불수욕) : 의리에 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 하고

卽投崖下而死(즉투애하이사) : 곧 벼랑 아래로 몸을 던져 죽으니

盜方驚駭(도방경해) : 도둑들이 바야흐로 놀라고 있었는데

其妹繼之自投(기매계지자투) : 그의 둘째 동생이 계속하여 스스로 몸을 던져

折足破面流血(절족파면유혈) : 발이 부러지고 얼굴이 깨어져 피가 흐러

群盜乃捨之而去(군도내사지이거) : 때도둑들이 드디어 버리고 갔다고 한다

京兆尹第五琦(경조윤제오기) : 경조윤 제오기가

嘉其貞烈(가기정렬) : 그들의 정렬을 가상히 여겨

奏之(주지) : 이것을 조정에 아뢰었다

詔旌表其門閭(조정표기문려) : 임금이 조서를 내려 그 동네의 거리에 정문을 세워 표상을 하고

永蠲其家丁役(영견기가정역) : 영구히 그 집의 부역을 면제했다

 

穆肜少孤(목융소고) : <목영>이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兄弟四人(형제사인) : 형제 4인은

皆同財業(개동재업) : 재산과 살림을 함께 했다가

及各取妻(급각취처) : 각각 아내를 맞이한 뒤에는

諸婦遂求分異(제부수구분이) : 여러 부인들이 드디어 재산을 나누고 살림을 따로 하기를 요구하고

又數有鬪爭之言(우삭유투쟁지언) : 또 자주 싸우고 다투는 말이 있어

肜深懷忿嘆(융심회분탄) : 목용이 깊이 분하고 한탄스러움을 품고서

乃掩戶自撾曰(내엄호자과왈) : 드디어 문을 달고 스스로 자신을 매질하여 말하기를

穆肜汝修身謹行(목융여수신근행) : "목용아 네가 몸을 닦고 행동을 삼가여

學聖人之法(학성인지법) : 성인의 법을 배우는 것은

將以齊整風俗(장이제정풍속) : 장차 나라의 풍속을 정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奈何不能正其家乎(내하불능정기가호) : 어째서 제 집안도 바로잡을 수 없는가."라고 하였다

弟及諸婦聞之(제급제부문지) : 아우와 여러 부인들이 듣고

悉叩頭謝罪(실고두사죄) :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여

遂更爲敦睦之行(수경위돈목지행) : 마침내 돈독하고 화목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蘇瓊除南淸河太守(소경제남청하태수) : <소경>이 남청하 태수가 되었는데

有百姓乙普明兄弟爭田(유백성을보명형제쟁전) : 관내의 백성에 을보명의 형제가 잇어 형제간에 전지를 가지고 다투어

積年不斷(적년불단) : 여러 해를 소송이 끊이지 않아

各相援據(각상원거) : 서로 증인이 되었으니

乃至百人(내지백인) : 백 여 명에 이르렀다

瓊召普明兄弟(경소보명형제) : 소경이 보명 형제를 불러서

諭之曰(유지왈) : 타일러 말하기를

天下難得者兄弟(천하난득자형제) : "하늘 아래서 얻기 어려운 것이 형제요

易求者田地(이구자전지) : 구하기 쉬운 것이 전지이다

假令得田地(가령득전지) : 설령 전지를 얻었다하더라도

失兄弟心(실형제심) : 형제의 마음을 잃는다면

如何(여하) : 어떻겠는가."라고 하고

因而下淚(인이하루) : 그 일로 눈물을 흘렸는데

諸證人莫不灑泣(제증인막불쇄읍) : 여러 증인이 눈물을 뿌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普明兄弟叩頭(보명형제고두) : 보명 형제가 머리를 조아리며

乞外更思(걸외갱사) : 밖에 나가 다시 생각하겠다고 빌면서

分異十年(분이십년) : 분가하여 따로 산지 십 년만에

遂還同住(수환동주) : 마침내 도로 같이 살았다고 한다

 

王祥弟覽母朱氏(왕상제람모주씨) : <왕상>의 아우 남의 어머니 주씨가

遇祥無道(우상무도) : 왕상을 대우하는 것이 무도하였는데

覽年數歲(람년수세) : 남이 나이 두 살 때에

見祥被楚撻(견상피초달) : 상이 매맞는 것을 보고

輒涕泣抱持(첩체읍포지) : 문득 껴안고 울었다

至于成童(지우성동) : 15세 이상의 아이에 이르러서는

每諫其母(매간기모) : 늘 자기의 어머에게 간언하니

其母少止凶虐(기모소지흉학) : 그 어머니가 조금 흉학함을 그쳤다

朱屢以非理使祥(주루이비리사상) : 주씨가 자주 무리한 일로써 왕상을 시키면

覽與祥俱(람여상구) : 남이 왕상과 더불어 함께 하고

又虐使祥妻(우학사상처) : 또 왕상의 아내를 학대하여 부리면

覽妻亦趨而共之(람처역추이공지) : 남의 아내가 도한 달려가서 함께 하니

朱患之(주환지) : 주씨가 그것을 근심하여

乃止(내지) : 곧 그쳤다고 한다

 

晉右僕射鄧攸永嘉末沒于石勒(진우복사등유영가말몰우석륵) : 진나라 상서성 차관 <등유>가 영가 말기에 <석륵>에게 포로가 되어

過泗水(과사수) : 사수를 지나갔는데

攸以牛馬負妻子而逃(유이우마부처자이도) : 등유가 우마로써 처자를 업고 도망하다가

又遇賊(우우적) : 또 도둑을 만나서

掠其牛馬(략기우마) : 그 소와 말을 약탈당하고

步走(보주) : 걸어서 도주하는데

擔其兒及其弟子綏(담기아급기제자수) : 그의 아이와 그의 아우의 아들 <수>를 짊어졌었다

度不能全(탁불능전) : 두 아이를 보전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乃謂其妻曰(내위기처왈) : 드디어 그의 아내에게 타일러 말하기를

吾弟早亡(오제조망) : "내 아우가 일찍 죽고

唯有一息(유유일식) : 오직 자식 하나가 있을 뿐이니

理不可絶(이불가절) : 도리상 후사를 끊을 수 없소

止應自棄我兒耳(지응자기아아이) : 다만 마땅히 스스로 내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소

幸而得存(행이득존) : 다행히 생존하게 되면

我後當有子(아후당유자) : 우리는 후에 마땅히 자식이 있을 것이오."라고 하니

妻泣而從之(처읍이종지) : 아내가 울면서 따르니

乃棄其子而去之(내기기자이거지) : 드디어 그 자식을 버리고 가더니

卒以無嗣(졸이무사) : 끝내 이로써 후사가 없었다

時人義而哀之(시인의이애지) : 그때 사람들은 그를 의롭게 여기고 가엾게 여겨서

爲之語曰(위지어왈) : 그를 위하여 말하기를

天道無知(천도무지) : "천도가 아는 것이 없어

使鄧伯道無兒(사등백도무아) : 등백도로 하여금 자식이 없게 하였다."고 했다

弟子綏服攸喪三年(제자수복유상삼년) : 아우의 아들 수가 유의 상을 아버지의 상과 같이 삼 년을 복상하였다

 

晉咸寧中大疫(진함녕중대역) : 진나라 함녕 중에 크게 역질이 돌더니

庾袞二兄俱亡(유곤이형구망) : <유곤>의 두 형제가 함께 죽고

次兄毗復危殆(차형비복위태) : 그 다음 형 <비>가 다시 위태하여

癘氣方熾(려기방치) : 전염병의 기세가 한창 치열하거늘

父母諸弟皆出次于外(부모제제개출차우외) : 부모와 여러 아우가 다 집에서 나가 밖에서 거쳐하였는데

袞獨留不去(곤독유불거) : 곤이 홀로 머무르고 나가지 않거늘

諸父兄强之(제부형강지) : 여러 부형들이 나가라고 강권하엿든데

乃曰(내왈) : 이에 말하기를

袞性不畏病(곤성불외병) : "곤이 천성이 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고

遂親自扶持(수친자부지) : 드디어 친히 환자를 붙들어 간호하여

晝夜不眠(주야불면) : 밤낮으로 자기 않으며

其間復無柩(기간복무구) : 그 사이에 다시 두 형의 관을 어루만지며

哀臨不輟(애임불철) : 슬피 울기를 그치지 않았는데

如此十有餘旬(여차십유여순) : 이와 같이 하기를 십여순이나 되어서

疫勢旣歇(역세기헐) : 전염병의 기세가 이미 그쳤다

家人乃反(가인내반) : 집사람들이 드디어 돌아오니

毗病得差(비병득차) : 비의 병이 차도가 있게 되고

袞亦無恙(곤역무양) : 곤도 역시 이상이 없었다

父老咸曰(부노함왈) : 부로들이 모두 말하기를

異哉(이재) : "기이하다

此子(차자) : 이 아이는

守人所不能守(수인소불능수) : 다른 사람이 지킬 수 없는 바를 지키며

行人所不能行(행인소불능행) : 다른 사람이 행할 수 없는 바를 행하니

歲寒(세한) : 해가 추워진 연후에야

然後知松柏之後凋(연후지송백지후조) : 소나무와 측백나무의 잎이 뒤에 지는 것을 안다고 하더니

始知疫癘之不能相染也(시지역려지불능상염야) : 비로소 역질이 서로 전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楊播家世純厚(양파가세순후) : <양파>의 집안은 대대로 순후하여

並敦義讓(병돈의양) : 모두 예의와 겸양을 두터이 하여

昆季相事(곤계상사) :  형제가 서로 섬기기를

有如父子(유여부자) : 아버지와 아들 사이와 같이 했다

椿津恭謙(춘진공겸) : 춘과 진이 온공하고 겸손하여

兄弟旦則聚於廳堂(형제단칙취어청당) : 형제가 아침이 되면 대청마루에 모여

終日相對(종일상대) : 온 종일 서로 마주 대하여

未嘗入內(미상입내) : 일찍이 안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有一美味(유일미미) : 한 가지 맛좋은 것이 잇으면

不集不食(불집불식) : 형제가 같이 보이지 않으면 먹지 않앗다

廳堂間往往幃幔隔障(청당간왕왕위만격장) : 대청마루 사이에 가끔 장막으로 막아

爲寢息之所(위침식지소) : 잠자고 쉬는 곳으로 만들어

時就休偃(시취휴언) : 때때로 나아가 쉬고 즐기고

還共談笑(환공담소) : 돌아와 함께 말하고 웃었다

椿年老(춘연노) : 춘이 늙어서

曾他處醉歸(증타처취귀) : 일찍이 다른 곳에서 술에 취하여 돌아오면

津扶持還室(진부지환실) : 전이 붙들고 부축하여 방에 도아와서 쉬게 한 후에

假寢閤前(가침합전) : 자신은 방문 앞에서 수잠을 자면서

承候安否(승후안부) : 형의 안부를 살폈다

椿津年過六十(춘진년과육십) : 춘과 진이 나이 60세가 넘어서

並登台鼎(병등태정) : 모두 삼공의 지위에 올랐지만

而津常旦莫參問(이진상단막참문) : 진이 항상 아침 저녁으로 뵙고 문안하면

子姪羅列階下(자질나열계하) : 자질들이 섬돌 아래에 벌려 섰는데

椿不命坐(춘불명좌) : 춘이 앉으라고 명령이 없으면

津不敢坐(진불감좌) : 진이 감히 앉지 않았다

椿每近出(춘매근출) : 춘이 항상 가까운 곳에 외출하여

或日斜不至(혹일사부지) : 혹 해가 기울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津不先飯(진불선반) : 진이 먼저 밥을 먹지 않으면서

椿還然後共食(춘환연후공식) : 춘이 돌아온 연후에 함께 먹었다

食則津親授匙箸(식즉진친수시저) : 밥을 먹을 때에는 진이 친히 수저를 춘에게 울리며

味皆先嘗(미개선상) : 음식의 맛을 다 먼저 맛보고

椿命食然後食(춘명식연후식) : 춘이 먹으라고 명령한 연후에 먹었다

津爲肆州椿在京宅(진위사주춘재경택) : 진이 사주차사가 되었을 때에 춘이 서울의 자택에 있었다

每有四時嘉味(매유사시가미) : 늘 사철의 맛좋은 것이 있을 때에는

輒因使次(첩인사차) : 곧 공용의 사자 편에

附之(부지) : 부쳐 보냈고

若或未寄(약혹미기) : 만일 혹시 아직 부치지 못했으면

不先入口(불선입구) : 그것을 먼저 입에 넣지 않았다

一家之內男女百口(일가지내남녀백구) : 한 집안에 남녀의 식구 수가 백명이나 되었는데

緦服同爨(시복동찬) : 시복지친이 한 집에서 생계를 같이 했지만

庭無間言(정무간언) : 가정에는 이간하는 말이 없었다

 

隋吏部尙書牛弘弟弼(수이부상서우홍제필) : 수나라 이부상서 <우홍>의 아우 <필>이

好酒而酗(호주이후) : 술을 좋아하여 술주정을 좋아하였다

嘗醉(상취) : 일찍이 술에 취하여

射殺弘駕車牛(사살홍가차우) : 홍의 수레를 끄는 소를 쏘아 죽이었는데

弘還宅(홍환택) : 홍이 집으로 돌아오니

其妻迎謂弘曰(기처영위홍왈) : 그의 아내가 맞이 하면서 홍에게 말하기를

叔射殺牛(숙사살우) : "서숙이 소를 쏘아 죽였습니다."고 하였다

弘聞(홍문) : 홀이 듣고

無所怪問(무소괴문) : 괴이하게 여겨 묻는 바 없이

直答曰(직답왈) : 곧 대답하여 말하기를

作脯(작포) : "포를 뜨게 하라."고 했다

坐定(좌정) : 홍이 앉음을 정하거늘

其妻又曰(기처우왈) : 그 아내가 또 말하기를

叔射殺牛(숙사살우) : "시숙이 소를 쏘아 죽였으니

大是異事(대시이사) : 매우 이것은 괴이한 일입니다."고 했다

弘曰(홍왈) : 홍이 말하기를

已知(이지) : '이미 알았소."라고 하고

顔色自若(안색자약) : 얼굴빛이 태연자약하여

讀書不輟(독서불철) : 글 읽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唐英公李勣(당영공이적) : 당나라 영공 <이적>은

貴爲僕射(귀위복야) : 벼슬이 귀하여 복야가 되었으며

其姊病(기자병) : 그의 누님이 병이 들면

必親爲然火煮粥(필친위연화자죽) : 반드시 친히 불을 때서 죽을 끓이더니

火焚其鬚(화분기수) : 불에 그 수염을 태웠다

姊曰(자왈) : 누님이 말하기를

僕妾多矣(복첩다의) : "종과 서녀가 많은데

何爲自若如此(하위자약여차) : 어째서 스스로 이와 같이 한단 말이오."하니

勣曰(적왈) : 적이 말하기를

豈爲無人耶(기위무인야) : "어찌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하겠습니까

顧今姊年老(고금자연로) : 지금 돌아보니 누님의 나이 늙었고

勣亦老(적역노) : 적이 또한 늙었으니

雖欲數爲姊煮粥(수욕삭위자자죽) : 비록 자주 누님을 위하여 죽을 쓰고자 해도

復可得乎(복가득호) : 다시 할 수 있겠습니까."고 했다

 

司馬溫公與其兄伯康(사마온공여기형백강) : 사라온공이 그의 형 백강과 더불어

友愛尤篤(우애우독) : 우애가 더욱 깊더니

伯康年將八十(백강년장팔십) : 백강의 나이 장차 18세가 되었다

公奉之如嚴父(공봉지여엄부) : 사마온공이 그를 받들기를 아버지와 같이 하여

保之如嬰兒(보지여영아) : 그를 보호하기를 어린애를 보호하듯 하여

每食少頃則問曰(매식소경즉문왈) : 매양 밥먹은 뒤에 조금 있으면 물어 말하기를

得無饑乎(득무기호) : "배고프지 않습니가."하며

天少冷則拊其背曰(천소냉칙부기배왈) : 천기가 조금 차가우면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衣得無薄乎(의득무박호) : "옷이 엷지 않습니가."고 했다

 

近世故家惟晁氏(근세고가유조씨) : 근세의 고가들 중에는 오직 조씨의 집안이

因以道申戒子弟(인이도신계자제) : 이도의 자게들에 대한 거듭 훈계로 인하여

皆有法度(개유법도) : 행동이 다 법도가 있으니

群居相呼(군거상호) : 여러 집을 살면서 서로 부를 때에

外姓尊長(외성존장) : 외성의 존장이라면

必曰(필왈) : 반드시 말하기를

某姓第幾叔若兄(모성제기숙약형) : "무슨 성 제 몇째 아저씨 또는 제 몇째 영이라."라고 하며

諸姑尊姑之夫(제고존고지부) : 여러 고모`존고모의 남편이면

必曰(필왈) : 반드시 말하기를

某姓姑夫某姓尊姑夫(모성고부모성존고부) : "무슨 성 고무부 무슨 성 존고모부라."라고

未嘗敢呼字也(미상감호자야) : 일찍이 감히 자를 부르지 않으며

其言父黨交游必曰(기언부당교유필왈) : 그가 아버지의 친구를 말할 때에는 반드시 말하기를

某姓幾丈(모성기장) : "무슨 성 몇째 어른이다."라고 하고

亦未嘗敢呼字也(역미상감호자야) : 또한 일찍이 감히 자를 부르지 아니하니

當時故家舊族(당시고가구족) : 그때의 고가구족이

皆不能若是(개불능약시) : 다 이와 같이 할 수 없었다

 

包孝肅公尹京時(포효숙공윤경시) :  포효숙공이 서울의 윤으로 있을 때에


民有自言(민유자언) : 한 백성이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以白金百兩(이백금백양) : "은 백량을

寄我者死矣(기아자사의) : 나에게 맡겨온 자가 죽었는데

予其子(여기자) : 그의 아들에게 돌려 주니

不肯受(불긍수) : 즐겨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願召其子(원소기자) : 원컨대 그의 아들을 불러서

予之(여지) : 돌려 주십시오."라고 했다

尹召其子(윤소기자) : 부윤이 그의 아들을 불렀는데

辭曰(사왈) : 사양하여 말하기를

亡父未嘗以白金委人也(망부미상이백금위인야) : "죽은 아버지가 일찍이 은으로써 남에게 맡긴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고

兩人相讓久之(양인상양구지) : 두 사람이 서로 사양하기를 오래 하였다

呂滎公聞之曰(여형공문지왈) : 여형공이 이것을 듣고 말하기를

世人喜言無好人三字者(세인희언무호인삼자자) : "세상 사람들이 '무호인'이라는 석 자를 즐겨 말하는 자는

可謂自賊者矣(가위자적자의) : 스스로를 해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으나

古人言(고인언) : 옛 사람이 말하기를

人皆可以爲堯舜(인개가이위요순) : '사람이 다 이로써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더니

蓋觀於此而知之(개관어차이지지) : 대개 이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고 했다

 

萬石君石奮歸老于家(만석군석분귀노우가) : 만석군인 <석분>이 늙어서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 있었는데

過宮門關(과궁문관) : 궁궐의 문을 지나면

必下車趨(필하거추) : 반드시 수레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걸어

見路馬(견로마) : 노마를 보고는

必軾焉(필식언) : 반드시 수레의 가로대 나무를 잡고 몸을 굽히어 경의를 표했다

子孫爲小吏來歸謁(자손위소리래귀알) : 자손이 작은관리가 되어 돌아와 뵈면

萬石君必朝服見之(만석군필조복견지) : 만석군은 반드시 조복을 입고서 보았고

不名(불명) :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子孫有過失(자손유과실) : 자손이 과실이 있을 때에는

不誚讓(불초양) : 꾸지지 아니하고

爲便坐(위편좌): 가에 앉아서

對案不食(대안불식) : 밥상을 대하여도 먹지 않으며

然後諸子相責(연후제자상책) : 그런 후에야 여러 자식들이 서로 허물을 꾸짖어서

因長老(인장노) : 족친 중의 나이 많은 어른을 통하여

肉袒(육단) : 웃옷을 소매를 걷고 어깨를 들어내고

固謝罪改之(고사죄개지) : 두 세 번 사죄하고 허물을 고쳐야

乃許(내허) : 비로소 허용했다

子孫勝冠者在側(자손승관자재측) : 자손 중 성년이 갓을 쓴 자가 곁에 있으면

雖燕必冠(수연필관) : 비록 한가해도 반드시 갓을 써고

申申如也(신신여야) : 화순한 모양으로 있었으나

僮僕訢訢如也(동복흔흔여야) : 하인들에게는 부드럽고 기쁜 모습으로 대하였으되

唯謹(유근) : 오직 조심하였다

上時賜食於家(상시사식어가) : 임금이 때때로 집으로 음식을 내려주시면

必稽首俯伏而食(필계수부복이식) : 반드시 머리를 조아려 엎드려 먹으면서

如在上前(여재상전) : 임금의 앞에 있는 것같이 하며

其執喪哀戚甚(기집상애척심) : 그가 거상할 적에 슬퍼서 서러워하는 것이 심했다

子孫遵敎(자손준교) : 자손들이 그의 가르침을 준수하여

亦如之(역여지) : 또한 그와 같게 하였다

萬石君家以孝謹(만석군가이효근) : 만석군의 집안이 효도하고 삼가는 것으로써

聞乎郡國(문호군국) : 군과 나라에 소문이 났다

雖齊魯諸儒(수제노제유) : 제나라나 노나라의 선배일지라도

質行皆自以爲不及也(질행개자이위불급야) : 질박한 행실은 다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長子建爲郞中令(장자건위랑중령) : 맏아들 <건>은 난중령이 되었고

少子慶爲內史(소자경위내사) : 작은 아들 <경>은 내사가 되었다

建老白首(건노백수) : <건>이 늙어서 백발이 되었으나

萬石君尙無恙(만석군상무양) : 만석군은 오히려 아무 이상이 없었다

每五日洗沐歸謁(매오일세목귀알) : 건이 매양 5일마다의 세목 휴가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뵙고

親入子舍(친입자사) : 친히 침실 대기실인 작은 방에 들어가서

竊問侍者(절문시자) : 모시는 자에게 몰래 물어서

取親中裙厠牏(취친중군측투) : 아버지의 이랫 내의와 속적삼을 가져다가

身自浣滌(신자완척) : 자신이 몸소 세탁을 하여

每與侍者言(매여시자언) : 늘 모시는 자에게 주면서 말하길를

不敢令萬石君知之以爲常(불감령만석군지지이위상) : 감히 만석군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을 상례로 했다

內史慶醉歸(내사경취귀) : 내사 경이 술에 취하여 귀가할 때

入外門(입외문) : 바깥 문을 들어오면서

不下車(불하거) : 수레에서 내리지 않았는데

萬石君聞之(만석군문지) : 만석군이 듣고

不食(불식) : 밥을 먹지 않거늘

慶恐(경공) : 경이 두려워서

肉袒謝罪(육단사죄) : 웃옷 소매를 걷고 살을 드러내고 사죄하였는데

不許(불허) : 허용하지 않거늘

擧宗及兄建肉袒(거종급형건육단) : 온 문중 및 형 건이 웃옷 소매를 걷고 살을 드러내었는데

萬石君讓曰(만석군양왈) : 만석군이 꾸짖어 말하기를

內史貴人(내사귀인) : "내사는 귀한 사람이다

入閭里(입여리) : 마을에 들어오면

里中長老皆走匿(이중장노개주익) : 마을 안의 어른들과 늙은이들이 모두 달아나 숨는데

而內史坐車中自如(이내사좌거중자여) : 내사께서 수레 안에 의젓이 앉아 있음은

固當(고당) : 본래부터 당연한 일이다."고 했다

乃謝罷慶(내사파경) : 비로소 경을 나가라고 하니

慶及諸子入里門(경급제자입리문) : 경 및 여러 아들들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趨至家(추지가) : 수레에서 내려 바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疏廣爲太子太傳(소광위태자태전) : <소광>이 태자태부가 되더니

上疏乞骸骨(상소걸해골) : 상소하여 늙었으니 치사해 줄 것을 빌엇는데

加賜黃金二十斤(가사황금이십근) : 임금이 노퇴하는 소광에게 황금 20 근을 특별히 더 하사하고

太子贈五十斤(태자증오십근) : 태자가 50근을 증여하였다

歸鄕里(귀향리) : 향리에 돌아와서

日令家供具設酒食(일영가공구설주식) : 매일 집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갖추어 공궤하고 술과 음식을 진설하여

請族人故舊賓客(청족인고구빈객) : 족인과 친구와 빈객을 청하여

相與娛樂(상여오락) : 서로 함께 즐겼으며

數問其家(수문기가) : 자주 그의 집 사람에게 묻기를

金餘尙有幾斤(금여상유기근) : "금이 남은 것이 아직 몇 근이나 있느냐

趣賣以供具(취매이공구) : 빨리 팔아서 이로써 술과 음식을 갖추어 공궤하라."고 했다

居歲餘廣子孫(거세여광자손) : 그러면서 살기 일년 되었을 때에 소광의 자손들이

竊謂其昆弟老人廣所信愛者(절위기곤제노인광소신애자) : 몰래 그의 형제 항렬인 노인에게 소광이 평소에 믿고 사랑하는 이에게

曰子孫冀及君時(왈자손기급군시) : 말하기를 "자손들은 가군이 계실 때에

頗立産業基址(파립산업기지) : 조금 사람의 밑천을 세우려고 하였더니

今日飮食費且盡(금일음식비차진) : 오늘에 음식비용으로 황금도 다 없어져 갑니다

宜從丈人所(의종장인소) : 마땅히 어른께서 기회를 따라

勸說君(권세군) : 가군께 권하고 달래어

置田宅(치전택) : 전지와 주택을 설치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老人卽以閒暇時爲廣言此計(노인즉이한가시위광언차계) : 노인이 즉시 한가한 때로 광을 위하여 이 계획을 말했다

廣曰(광왈) : 광이 말하기를

吾豈老悖(오기노패) : "내 어찌 노망하여서

不念子孫哉(불념자손재) : 자손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顧自有舊田廬(고자유구전려) : 돌아보건대 스스로 옛날의 전지와 초막이 있으니

令子孫勤力其中(령자손근력기중) : 자손들로 하여금 거기에서 부지런히 힘쓰면

足以共衣食(족이공의식) : 이로써 입고 먹는 것을 공급하기에는 넉넉하여

與凡人齊(여범인제) : 일반인으로 같을 것이다

今復增益之(금복증익지) : 이제 다시 더 보태어 주어서

以爲嬴餘(이위영여) : 이로써 여유가 있게 한다면

但敎子孫怠惰耳(단교자손태타이) : 다만 자손들에게 게으름을 가르칠 뿐이다

賢而多財(현이다재) : 어진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則損其志(즉손기지) : 그의 뜻을 손상하고

愚而多財(우이다재) : 어리석은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則益其過(즉익기과) : 그의허물을 더하는 것이다

且夫富者(차부부자) : 또 대체로 부라는 것은

衆之怨也(중지원야) : 여러 사람들이 원망하는 것이니

吾旣無以敎化子孫(오기무이교화자손) : 내가 이미 자손들에게 교화로써 못하였다

不欲益其過而生怨(불욕익기과이생원) : 그러니 재물을 더하여 그들에게 허물을 더하게 하는 것이다

又此金者(우차금자) : 또 대체로 황금이라는 것은

聖主所以惠養老臣也(성주소이혜양노신야) : 임금께서 늦은 신하를 은혜로 기르신 것이다

故樂與鄕黨宗族(고낙여향당종족) : 그러므로 향당과 종족으로 더불어

共享其賜(공향기사) : 그 하사하신 은혜를 함께 누리어

以盡吾餘日(이진오여일) : 이로써 나의 남은 날을 다하려 하는 것이니

不亦可乎(불역가호) : 또한 옳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龐公未嘗入城府(방공미상입성부) : 방공이 아직 일찍이 성부에 들어간 일이 없었고

夫妻相敬如賓(부처상경여빈) : 부주가 서로 공경하기를 귀빈을 대하는 것처럼 하였다

劉表候之(유표후지) : 유표가 찾아가니

龐公釋耕於壟上(방공석경어롱상) : 방공이 둔덕 위에서 밭갈던 일을 놓고 손님을 맞았고

而妻子耘於前(이처자운어전) : 처자는 그 앞에서 김을 매거늘

表指而問曰(표지이문왈) : 표가 가리키면서 물어 이르기를

先生若居畎畝而不肯官祿(선생약거견무이불긍관록) : "선생이 고생스럽게 견묘에 살면서 관록을 즐기지 않으니

後世何以遺子孫乎(후세하이유자손호) : 후세에 무엇으로 자손에게 남겨 주려고 하십니까."라고 하니

龐公曰(방공왈) : 방공이 말하기를

世人皆遺之以危(세인개유지이위) : "세상 사람들은 다 위태한 것으로써 남겨주거늘

今獨遺之以安(금독유지이안) : 이제 나는 홀로 편안한 것으로서 남겨주려고 하니

雖所遺不同(수소유부동) : 비록 남겨주는 바가 같지는 않으나

未爲無所遺也(미위무소유야) : 남겨주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는데

表嘆息而去(표탄식이거) : 표가 탄식하고 돌아갔다

 

陶淵明爲彭澤令(도연명위팽택령) : 도연명이 평택령이 되어서

不以家累自隨(불이가루자수) : 가족으로써 스스로 따라가지 않았는데

送一力(송일력) : 한 종을 보내어

給其子(급기자) : 그의 아들에게 주고

書曰(서왈) : 편지에 이르기를

汝旦夕之費(여단석지비) : "네가 날마다 생활비에 있어서

自給爲難(자급위난) : 자력으로 공급하기가 어려울 것이어서

今遺此力(금유차력) : 이제 이 종을 보내어

助汝薪水之勞(조여신수지로) : 너의 땔나무하고 물깃는 괴로음을 돕게 한다

此亦人子也(차역인자야) : 이 종도 또한 사람의 지식이니

可善遇之(가선우지) : 잘 대우하여라."고 했다

 

崔孝芬兄弟(최효분형제) : 최효분의 형제는

孝義慈厚(효의자후) : 효도하고 의롭고 자애하고 순후하였다

弟孝暐等奉孝芬(제효위등봉효분) : 아우 <효위> 등이 <효분>을 받들되

盡恭順之禮(진공순지례) : 공순한 예도를 다하여

坐食進退(좌식진퇴) : 앉는 것 밥먹는 것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는 것에

孝芬不命則不敢也(효분불명즉불감야) : 효분이 명령하지 않으면 감히 자의로 하지 않았으며

鷄鳴而起(계명이기) : 첫닭이 울면 일어나서

且溫顔色(차온안색) : 또 얼굴빛을 온순하게 하며

一錢尺帛(일전척백) : 한 잎의 돈과 한 자의 명주를

不入私房(불입사방) : 자기들의 사사로운 방에 들여가는 일이 없고

吉凶有須(길흉유수) : 길훙사 때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聚對分給(취대분급) : 모여 앉아서 나누어 주었더니

諸婦亦相親愛(제부역상친애) : 여러 부인들도 또한 서로 친애하면서

有無共之(유무공지) : 있고 없는 것을 함께 하였다

孝芬叔振旣亡後(효분숙진기망후) : 효분의 숙부 진이 이미 죽은 뒤에

孝芬等承奉叔母李氏(효분등승봉숙모이씨) : 효분 등이 숙모 이씨를 승봉함을

若事所生(약사소생) : 마치 섬기기를 친어머니처럼 하여

旦夕溫凊(단석온청) :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드려 겨울에는 따뜻한가 여름에는 서늘한가를 물으며

出入啓覲(출입계근) :  나갈 째는 나간다고 아뢰고 돌아와서는 가 뵈이며

家事巨細一以咨決(가사거세일이자결) : 집안 일의 크고 작은 것을 한결같이 모두 물어서 결정하며

每兄弟出行(매형제출행) : 매양 형제가 나다닐 때에

有獲則尺寸以上皆入李之庫(유획즉척촌이상개입이지고) : 얻은 것이 있으면 한 자 한 치 이상의 것을 다 이씨의 고방에 넣고

四時分賚李氏自裁之(사시분뢰이씨자재지) : 사계절의 의복감을 나누어 줄 때에는 이씨가 스스로 결정하였다

如此二十餘歲(여차이십여세) : 이와 같이 함이 20여년이었다

 

王凝常居慄如也(왕응상거율여야) :  왕응은 평상시에 있을 때에도 엄숙하였다

子弟非公服(자제비공복) : 자제들이 공복이 아니면

不見(불현) : 감히 뵙지 못하여

閨門之內若朝廷焉(규문지내약조정언) : 가정 안에 있는 것이 조종에 있는 것처럼 엄숙하였다

御家以四敎(어가이사교) : 집안을 다스리는데 4 가지의 가르침으로써 했으니

勤儉恭恕(근검공서) :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공순하고 관용하는 것이고

正家以四禮(정가이사례) : 집안을 바로잡기를 4 가지 예로써 하니

冠婚喪祭(관혼상제) : 관례 혼례 상례 제례이다

聖人之書及公服禮器不假(성인지서급공복예기불가) : 성인의 말씀이 적혀 있는 서적과 공복과 예기를 남에게서 빌어오지 않으며

垣屋什物必堅朴(원옥십물필견박) : 담장과 가옥과 기물 등을 반드시 견고하고 검박하게 하여

曰無苟費也(왈무구비야) : 이르기를 "쓸데없는 비용을 없게 해야 한다."고 하며

門巷果木必方列(문항과목필방렬) : 문호와 과일나무의 심기를  반드시 바르게 하여

曰無苟亂也(왈무구난야) : 말하기를 "구차스럽고 어지럽게 함이 없게 해야 한다."고 했다

 

張公藝九世同居(장공예구세동거) : 장공예는 9대가 함께 살았는데

北齊隋唐(북제수당) : 북제와 수와 당이

皆旌表其門(개정표기문) : 모두 그 집에 정문을 세워 표창했다

麟德中(인덕중) : 당나라 인덕 연간에

高宗封泰山(고종봉태산) : 고종이 태산에 봉선하고

幸其宅(행기택) : 장공예의 집에 가서

召見公藝(소견공예) : 공예를 불러 보고서

問其所以能睦族之道(문기소이능목족지도) : 그가 종족 사이를 화목하게 할 수 있었던 도리를 물었는데

公藝請紙筆以對(공예청지필이대) : 공예가 종이와 붓을 청하여 글씨를 써서 대답하였는데

乃書忍字百餘以進(내서인자백여이진) : 이에 참을 인자를 백여 글자를 써서 올렸다

其意以爲宗族所以不協(기의이위종족소이불협) : 그 뜻은 생각하건데 종족이 화목하지 않은 까닭은

由尊長衣食(유존장의식) : 존장에 대한 의복과 음식이

或有不均(혹유불균) : 혹시나 고르지 못함이 있고

卑幼禮節(비유예절) : 항렬이 낮고 나이 어린 사람들이 지켜야 할 예절이

或有不備(혹유불비) : 혹시 불비한 점이 있으면

更相責望(갱상책망) : 번갈아 서로 책망해서

遂爲乖爭(수위괴쟁) : 드디어 사이가 벌어져 다투게 되는 것이다

苟能相與忍之(구능상여인지) : 진실로 능히 서로 더불어 참는다면

則家道雍睦矣(즉가도옹목의) : 집안의 도리는 화목하게 된다고 했다

 

韓文公作董生行曰(한문공작동생행왈) : 한문공이 <동생행>을 지어 이르기를

淮水出桐栢山(회수출동백산) : "회수가 동백산에서 출원하여

東馳遙遙(동치요요) : 동쪽으로 멀리멀리 흘러서

千里不能休(천리불능휴) : 천리를 쉬지 못하고

淝水出其側(비수출기측) : 비수가 그 곁에서 출원하여

不能千里(불능천리) : 천리를 흐르지 못하여

百里入淮流(백리입회류) : 백리에서 회수로 들어가 흐르는구나

壽州屬縣有安豊(수주속현유안풍) : 수주의 속현에 안풍이 있으니

唐貞元年時(당정원년시) : 당나라 정원 때에

縣人董生召南(현인동생소남) : 고을 사람 <동소남>이

隱居行義於其中(은거행의어기중) : 그 속에 숨어  살면서 의로운 행동을 행하였다

刺史不能薦(자사불능천) : 자사가 능히 천거하지 못하였으니

天子不聞名聲(천자불문명성) : 천자가 그의 명성을 듣지 못했다

爵祿不及門(작록불급문) : 벼슬과 봉록이 그의 집 문에 이르지 않고

門外惟有吏(문외유유리) : 문 밖에는 오직 아전들이 나타나

日來徵租更索錢(일래징조갱색전) : 날마다 몰려와 조세를 물리며 또 돈을 토색질하네

嗟哉董生(차재동생) : 슬프다 동생이여

朝出耕(조출경) : 아침에 나가서는 밭을 갈고

夜歸讀古人書(야귀독고인서) : 밤에 돌아와서는 옛사람의 글을 읽네

盡日不得息(진일불득식) : 온 종일 쉬지 못한채

或山而樵(혹산이초) : 혹은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하며

或水而漁(혹수이어) : 혹은 물에 가서 물고기를 잡는구나

入廚具甘旨(입주구감지) : 부엌에 들어가서 맛좋은 음식을 마련하고

上堂問起居(상당문기거) : 마루에 올라가서 부모의 안부를 물으니

父母不慼慼(부모불척척) : 부모는 근심하고 슬퍼하지 않으며 처

妻子不咨咨(처자불자자) : 자는 탄식하고 원망하지 않네

嗟哉董生(차재동생) : 슬프다 동생이여

孝且慈人不識(효차자인불식) : 효도하고 또 인자함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唯有天翁知(유유천옹지) : 오직 하늘만은 알고 있어

生祥下瑞無時期(생상하서무시기) : 상서를 내고 내리기를 때도 없이 하였네

家有狗乳出求食(가유구유출구식) : 집안에 새끼 낳은 개가 있어 나가 먹을 것을 구하니

雞來哺其兒(계래포기아) : 닭이 와서 그 새끼에게 먹이는데

啄啄庭中拾蟲蟻(탁탁정중십충의) : 뜰에서 쪼아다 벌레와 개미를 주어서 먹여도

哺之不食鳴聲悲(포지불식명성비) : 먹지 않으니 우는 소리 슬프서

彷徨躑躅久不去(방황척촉구불거) : 차마 가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머뭇거리며 서성거리고

以翼來覆待狗歸(이익래복대구귀) : 날개로써 와 덮어주면서 어미 개가 오기를 기다렸다네

嗟哉董生(차재동생) : 슬프다 동생이여

誰將與儔(수장여주) : 뉘와 장차 더불어 짝하리오

時之人夫妻相虐(시지인부처상학) : 시속의 사람들은 부부가 서로 학대하며

兄弟爲讎(형제위수) : 형제가 원수가 되어

食君之祿(식군지록) : 임금의 봉록을 먹으면서도

而令父母愁(이령부모수) : 부모를 근심하게 하니

亦獨何心(역독하심) : 또한 홀로 무슨 마음일까

嗟哉董生(차재동생) : 슬프다 동생이여

無與儔(무여주) : 함께 짝할 사람이 없구나

 

唐河東節度使柳公綽在公卿間(당하동절도사유공작재공경간) : 당나라 하동절도사 유공작이 공경들 사이에 있어서

最名有家法(최명유가법) : 가장 집안에 법도 있다고 이름이 났다

中門東有小齋(중문동유소재) : 중문 동쪽에 작은 집이 있었다

自非朝謁之日(자비조알지일) : 스스로 조회하는 날이 아니면

每平旦輒出至小齋(매평단첩출지소재) : 언제나 이른 아침에 문득 작은 집에 나가고

諸子仲郢皆束帶(제자중영개속대) : 모든 아들들과 중영 등이 다 의관을 정제하고서

晨省於中文之北(신성어중문지북) : 중문의 북쪽에서 새벽 문안을 드렸다

公綽決私事(공작결사사) : 공작이 집안 일을 결재하며

接賓客(접빈객) : 빈객을 접대하고

與弟公權及群從弟再會食(여제공권급군종제재회식) : 아우 공권과 여러 종제와 함께 두 번 회식하여

自朝至莫不離小齋(자조지막불리소재) :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작은 집을 떠나지 않고

燭至則命一人子弟(촉지칙명일인자제) : 촛불이 들어오면 자제 한 사람에게 명하여

執經史(집경사) : 경서나 사서를 가져오게 하여

躬讀一過訖(궁독일과흘) : 자신이 한 번 흟어 읽기를 마치고

乃講議居官治家之法(내강의거관치가지법) : 비로소 벼슬사는 도리 집을 다스리는 법을 간론하며

或論文(혹논문) : 혹은 문학을 논하여

或聽琴(혹청금) : 혹은 거문고를 듣가가

至人定鍾(지인정종) : 통행금지의 종소리가 들린

然後歸寢(연후귀침) : 뒤에 침실로 돌아가면

諸子復昏定於中門之北(제자부혼정어중문지북) : 모든 아들들이 또 중문의 북쪽에서 저녁 문안을 드렸다

凡二十餘年(범이십여년) : 무릇 20여년에

未嘗一日變易(미상일일변이) : 일찍이 하루도 고치지 아니 하였다

其遇飢歲(기우기세) : 그 흉년을 나나면

則諸子皆蔬食(즉제자개소식) : 모든 아들들은 나물 음식을 먹게 하고

曰昔吾兄弟侍先君爲丹州刺史(왈석오형제시선군위단주자사)

: 말하기를 "옛날 우리 형제가 선군을 모실 때에 선군께서 단주자사로 계셨는데

以學業未成不聽食肉(이학업미성불청식육) : 우리들의 학업이 이루지 못하였음으무로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吾不敢忘也(오불감망야) : 나는 그 일을 감히 잊지 못한다."고 했다

姑姊妹姪有孤嫠者(고자매질유고리자) : 고모나 자매나 질녀 중에 아버지가 없거나 남편이 없으면

雖疎遠(수소원) : 비록 촌수가 멀지라도

必爲擇壻嫁之(필위택서가지) : 반드시 사위감을 골라서 시집보내되

皆用刻木粧奩(개용각목장렴) : 모두 나무에 초각한 화장대를 썼으며

纈文絹爲資裝(힐문견위자장) : 묶어서 물들인 무늬있는 비단으로 자장하였다

常言(상언) : 항상 말하기를

必待資粧豐備(필대자장풍비) : "반드시 자장이 풍부하게 갖추기를 기다리기보다는

何如嫁不失時(하여가불실시) : 시집갈 시기를 잃지 않은 것이 어떠냐."라고 하였다

及公綽卒(급공작졸) : 공작이 죽음에 이르러서는

仲郢一遵其法(중영일준기법) : 중영이 한결같이 공작의 법을 준수하여

事公權如事公綽(사공권여사공작) : 공권을 섬기되 공작을 섬기는 것같이 하여

非甚病(비심병) : 심한 병이 아니면

見公權未嘗不束帶(현공권미상불속대) : 공권을 뵐 때에 아직  일찍이 의관을 정제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爲京兆尹鹽鐵使(위경조윤염철사) : 중영이 경조윤 염철사가 되어서

出遇公權於通衢(출우공권어통구) : 나가 공권을 거리에서 만남에

必下馬端笏立(필하마단홀립) : 반드시 말에서 내려 단정히 홀을 갖고 서서

候公權過(후공권과) : 공권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려

乃上馬(내상마) : 비로소 말을 타며

公權莫歸(공권막귀) : 공권이 저물 게 돌아오면

必束帶迎候於馬首(필속대영후어마수) :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말머리에 맞이하여 기다리니

公權屢以爲言(공권루이위언) : 공권이 여러 번 이로써 말하였으되

中郢終不以官達有小改(중영종불이관달유소개) : 중영이 끝끝내 자신이 벼슬의 현달로써 조금도 고치는 것이 없었다

公綽妻韓氏相國休之曾孫(공작처한씨상국휴지증손) : 공작의 아내 한씨는 상국 <한휴>의 증손녀이다

家法嚴肅儉約(가법엄숙검약) : 그 집의 법도가 엄숙하고 검약하여

爲搢紳家楷範(위진신가해범) : 사대부집들의 모범이 되더니

歸柳氏三年無少長未嘗見其啓齒(귀유씨삼년무소장미상견기계치)

: 유씨 짐안에 시집간 뒤 3년에 어린애나 어른할 것 없이 아직 일찍이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常衣絹素(상의견소) : 항상 무늬없는 깁옷을 입었고

不用綾羅錦繡(불용능라금수) : 능라금수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每歸覲不乘金碧輿(매귀근불승금벽여) : 친정에 근친하려 갈 때마다 황금과 벽옥으로 꾸민 가마를 타지 않았고

祗乘竹兜子(지승죽두자) : 오직 죽교자를 타고서

二靑衣(이청의) : 두 사람의 하인이

步屣以隨(보사이수) : 걸어서 이로써 따르게 하였다

常命粉苦蔘黃連熊膽(상명분고삼황연웅담) : 항상 고삼과 황련과 웅담을 가루로 만들어 섞어서

和爲丸(화위환) : 환을 만들게 명하여

賜諸子(사제자) : 모든 아들에게 주어

每永夜習學含之(매영야습학함지) : 오래 밤에 공부할 때마다 입에 머금게 하여

以資勤苦(이자근고) : 이로서 부지런히 애쓰는 일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江州陳氏(강주진씨) : 강주 진씨는

宗族七百口(종족칠백구) : 종족 700 여 명이 한 집에 살았는데

每食設廣席(매식설광석) : 식사 때마다 넓은 자리를 마련하고

長幼以次坐(장유이차좌) : 어른과 아이들이 차례로써 앉아 함께 먹었다

而共食之(이공식지) : 그 집에 기르른 개

有畜犬百餘(유축견백여) : 백여 마리가 있었는데

共一牢食(공일뢰식) : 함께 한 우리 안에서 길렀다

一犬不志(일견불지) : 한 마리 개라도 오지 않으면

諸犬爲之不食(제견위지불식) : 모든 개들이 이 때문에 먹지 않았다

 

溫公曰(온공왈) : 온공이 말하기를

國朝公卿能守先法(국조공경능수선법) : "우리나라의 공경이 능히 선대의 예법을 지켜서

久而不衰者(구이불쇠자) : 오래도록 쇠퇴하지 않는 이는

唯故李相家(유고이상가) : 오직 죽은 이상국의 집안 뿐이다

子孫數世至二百餘口(자손수세지이백여구) : 자손이 수대에 200여 명에 이르렀으되

猶同居共爨(유동거공찬) : 오히려 한 집에서 살며 함께 취사하면서

田園邸舍所收及有官者俸祿(전원저사소수급유관자봉록) : 전지와 집세의 수입과 관직에 있는 자의 봉록을

皆聚之一庫(개취지일고) : 모두 한 창고에 모아서

計口日給餉(계구일급향) : 식구의 수로 계산하여 날마다 식량을 지급하며

婚姻喪葬所費(혼인상장소비) : 혼인과 장사의 소요 비용은

皆有常數(개유상수) : 다 일정한 액수가 있어서

分命子弟(분명자제) : 일을 나누어서 자게들에게 명령하여

掌其事(장기사) : 그 일을 관장하게 하니

其規模大抵出於翰林學士宗諤所制也(기규모대저출어한림학사종악소제야)

: 그 법이 대개가 한림학사 <종악>이 제정한 것이다."라고 했다

 

右實明倫(우실명륜) : 이상은 명륜편을 실례로 부연한 것이다

 

或問第五倫曰(혹문제오륜왈) : 어떤 사람이 제오륜에게 물어 이르기를

公有私乎(공유사호) : "공은 사심이 있습니가."하니

對曰(대왈) : 대답하여 이르기를

昔人有與吾千里馬者(석인유여오천리마자) : "옛날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천리마를 주는 자가 있거늘

吾雖不受(오수불수) : 내 비록 받지 않았으나

每三公有所選擧(매삼공유소선거) : 늘 삼공의 한 사람으로서 사람을 천거하는 일이 있을 적에는

必不能忘(필불능망) : 반드시 마음 속에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없었는데

而亦終不用也(이역종불용야) : 또한 끝내 등용하지 않았으며

吾兄子嘗病(오형자상병) : 내 형님의 아들이 일찍이 병이 들었는데

一夜十往(일야십왕) : 나는 하룻밤에 열 번 가보았는데

退而安寢(퇴이안침) : 돌아와서 편안히 잠을 자고

吾子有疾(오자유질) : 내 아들이 병들어 있었는데

雖不省視(수불성시) : 비록 살펴보지는 않았으나

而竟夕不眠(이경석불면) : 밤을 마치도록 자기 못하였으니

若是者(약시자) : 이와 같이 한 것이

豈可謂無私乎(기가위무사호) : 어찌 사심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劉寬雖居倉卒(유관수거창졸) : 유관은 비록 갑작스런 경우를 당할지라도

未嘗疾言遽色(미상질언거색) : 아직 일찍이 빠른 마소리와 급히 서두르는 얼굴빛을 짓는 일이 없었다

夫人欲試寬令恚(부인욕시관령에) : 부인이 시험으로 관을 성내게 하려고 하여

伺當朝會(사당조회) : 조회에 나갈 때를 당하여

裝嚴已訖(장엄이흘) : 의관정제를 임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使侍婢奉肉羹(사시비봉육갱) : 시비를 시켜 고기국을 올리게 하여

翻汚朝服(번오조복) : 조복에 엎질러 더럽히게 하고

婢遽收之(비거수지) : 계집 종이 급히 그것을 지우니

寬神色不異(관신색불이) : 관이 얼굴빛을 변하지 않고서

乃徐言曰(내서언왈) : 비로소 천천히 일러 말하기를

羹爛汝手乎(갱난여수호) : "국에 네 손을 데었겠구나."라고 하였다

其性度如此(기성도여차) : 그의 성품과 도량이 이와 같았다

 

張湛矜嚴好禮(장담긍엄호례) : 장담이 급장하고 엄려하며 예절을 좋아하여

動止有則(동지유칙) : 행동거지에 일정한 법칙이 있어서

居處幽室(거처유실) : 아무도 보지 않는 그윽한 방에 있되

必自修整(필자수정) : 반드시 스스로 몸가짐을 닦아 정제하며

雖遇妻子(수우처자) : 비록 처자를 대할지라도

若嚴君焉(약엄군언) : 존엄한 어른처럼 하였다

及在鄕黨(급재향당) : 향당에 있음에 이르러서는

祥言正色(상언정색) : 말을 자세히 하고 얼굴빛을 바르게 하니

三輔以爲儀表(삼보이위의표) : 삼보들 사이에서는 이로써 모범을 삼았다

建武初爲左馮翊(건무초위좌풍익) : 건무 초기에 좌풍익 되었는데

告歸平陵(고귀평릉) : 휴가로 평릉에 돌아와

望寺門而步(망사문이보) : 평릉 고을의 관부의 문을 바라보고서 말에서 내려 걸어가니

主薄進曰(주박진왈) : 주부가 앞에 나와 말하기를

明府位尊德重(명부위존덕중) : "명부께서는 벼슬이 높고 덕망이 무거운 분이시니

不宜自輕(불의자경) : 스스로 가볍게 여기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湛曰(담왈) : 담이 말하기를

禮下公門(예하공문) : "예에 공문에서는 수레에서 내리며

軾路馬(식로마) : 노마를 보면 수레의 횡목을 잡고 허리를 굽혀 머리를 숙이라고 하였고

孔子於鄕黨恂恂如也(공자어향당순순여야) : 공자께서는 향당에 있으면서 신실한 모습으로 계셨다고 하니

父母之國(부모지국) : 부모가 살고 있는 고을에서는

所宜盡禮(소의진례) : 마땅히 예를 극지히 할 것이다

何爲輕哉(하위경재) : 어찌 가볍게 한다고 말하겠는가."라고 하였다

 

楊震所擧荊州茂才王密爲昌邑令(양진소거형주무재왕밀위창읍령) : 양진이 천거한 형주의 수재 왕밀이 창읍의 현령이 되었다

謁見(알현) : 양진을 청하여 뵈었는데

懷金十斤(회금십근) : 황금 10근을 품고 와서

以遺震(이유진) : 이것을 진에게 주었다

震曰(진왈) : 진이 말하기를

故人知君(고인지군) : "나는 그대를 알고 있는데

君不知故人何也(군불지고인하야) : 그대는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했다

密曰(밀왈) : 밀이 말하기를

莫夜(막야) : "어두운 밤이라

無知者(무지자)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고 하니

震曰(진왈) : 진이 말하기를

天知神知我知子知(천지신지아지자지) :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니

何謂無知(하위무지) : 어찌 아는 이가 없다고 말하는가."라고 했다

密愧而去(밀괴이거) : 그러니 밀이 부끄러워 하면서 물러갔다

 

茅容與等輩避雨樹下(모용여등배피우수하) : 모용이 같은 연배들과 함께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쉬었는데

衆皆夷踞相對(중개이거상대) : 여러 사람들은 다 쭈그려 앉아 서로 마주보되 용

容獨危坐愈恭(용독위좌유공) : 은 홀로 단정히앉아서 더욱 공손하거늘

郭林宗行見之而奇其異(곽림종행견지이기기이) : 곽임종이 지나다가 보고서 그의 특이함을 기특하게 여겨

遂與共言(수여공언) : 드디어 더불어 함께 말하고

因請寓宿(인청우숙) : 이로 하여 청해서 기숙했는데

旦日容殺鷄爲饌(단일용살계위찬) : 다음 날 아침에 용이 닭을 잡아 반찬을 마련하니

林宗謂爲己設(임종위위기설) : 임종이 이르기를 자기를 위하여 반찬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하더니

旣而以供其母(기이이공기모) : 이윽고 그것을 어머니에게 드리고

自以草蔬與客同飯(자이초소여객동반) : 스스로는 나물 반찬으로써 손님과 더불어 같이 밥을 먹었는데

林宗起(임종기) : 임종이 일어나서

拜之曰(배지왈) : 절하며 말하기를

卿賢乎哉(경현호재) : "선생은 어지십니다."라고 하고

因勸令學(인권령학) : 이로 하여 귄해서 글을 배우게 하여

卒以成德(졸이성덕) : 마침내 이로써 덕망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陶侃爲廣州刺史(도간위광주자사) : <도간>이 광주자사가 되어서

在州無事(재주무사) : 고을에 있으면서 일이 없으면

輒朝運百甓於齋外(첩조운백벽어재외) : 문득 아침에 벽돌 백 개를 집밖에 옮기고

莫運於齋內(모운어재내) : 저녁이면 집 안으로 옮겼다

入問其故(입문기고) :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는데

答曰(답왈) : 대답하여 이르기를

吾方致力中原(오방치력중원) : "내가 곧 중원을 회복하는데 힘을 바치고자 하나니

過爾優逸(과이우일) : 너무 편안하게 하면

恐不堪事(공불감사) : 일을 견디어 내지 못할까 두려움에서다."고 했다

其勵志勤力(기려지근력) : 그가 뜻을 면려하여 힘을 부지런히 함이

皆此類也(개차류야) : 모두 이와 같았다

後爲荊州刺史(후위형주자사) : 뒤에 형주자사가 되었는데

侃性聰敏(간성총민) : 간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勤於吏職(근어이직) : 관리로서의 직무에 부지런하였으며

恭而近禮(공이근례) : 태도가 공손하면서 예에 가까웠으며

愛好人倫(애호인륜) : 인륜을 지키기를 좋아하였다

終日斂膝危坐(종일렴슬위좌) : 온종일 무릎을 모으고 단정히 앉아서

閫外多事(곤외다사) : 도독의 일이 많아서

千諸萬端(천제만단) : 천 가지 만 가지로

罔有遺漏(망유유루) : 유루됨이 없으며

遠近書疏(원근서소) : 멀고 가까운 데서 온 서한을

莫不手答(막불수답) : 손수 답장을 쓰지 않는 것이 없었으나

筆翰如流(필한여류) : 끌쓰는 붓이 물흐르듯이 흘러서

未嘗壅滯(미상옹체) : 아직 일찍이 막혀 머무르는 일이 없었으며

引接疏遠(인접소원) : 소원한 사람도 모두 인견하여

門無停客(문무정객) : 문밖에 정체하는 손님이 없었다

常語人曰(상어인왈) :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大禹聖人(대우성인) : "우임금은 성인이셨지만

乃惜寸陰(내석촌음) : 곧 일촌만한 광음을 아겼다

至於衆人(지어중인) : 우리 보통 사람에 이르러서는

當惜分陰(당석분음) : 마땅히 광음을 아껴야 할 것이니

豈可逸遊荒醉(기가일유황취) : 어찌 방일하게 놀고 거칠 게 술에 취하여

生無益於時(생무익어시) : 살아서는 시세에 도움됨이 없으며

死無聞於後(사무문어후) : 죽어서는 후세에 이름을 전함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是自棄也(시자기야) : 그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고 했다

諸參佐或以談戱廢事者(제참좌혹이담희폐사자) : 여러 막료들이 간혹 잡담과 유희로 일을 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乃命取其酒器蒱博之具(내명취기주기포박지구) : 곧 그 술그릇`저포`장기`바둑 등의 기구를 가져오게 하여

悉投之于江(실투지우강) : 모두 강물에 던져 버리며

吏將則加鞭扑(리장즉가편복) : 관리나 장교라면 채찍과 매로치고 말하기를

樗蒱者(저포자) : "도박이라는 것은

牧猪奴戱耳(목저노희이) : 돼지를 치는 하인들의 유희일 뿐이다

老莊浮華(노장부화) : 노장의 설과 같은 부화한 헛된 말은

非先王之法言(비선왕지법언) : 선왕이 남긴 법도 있는 말이 아니니

不可行也(불가행야) : 해서는 안된다

君子當正其衣冠(군자당정기의관) : 군자는 마땅히 그 의관을 정제하며

攝其威儀(섭기위의) : 그 위의를 접속할 것이니

何有亂頭養望(하유란두양망) : 어찌 머리털을 어지럽게 풀어 흩어가지고 도량이 넓고 인생을 달관한다는 명망을 기다리면서

自謂弘達耶(자위홍달야) : 스르로 마음이 넓고 달관하는 사람이라 허세를 부리는가."고 했다

 

王勃楊炯盧照鄰駱賓王(왕발양형노조린낙빈왕) :  왕발`양형`노조린`낙빈왕은

皆有文名(개유문명) : 다 글 잘한다는 이름이 있어서

謂之四傑(위지사걸) : 사걸이라고 이르더니

裵行儉曰(배행검왈) : 배행검이 말하기를

士之致遠(사지치원) : "선비가 원대한 희망을 이루는 데에는

先器識(선기식) : 먼저 사람의 기국과 식견이 있은 뒤에

而後文藝(이후문예) : 글과 재주가 있어야 한다

勃等雖有文才(발등수유문재) : 왕발은 등이 비록 글재주가 있을 지라도

而浮躁淺露(이부조천로) : 부경하고 조급하며 얕고 드러나니

豈享爵祿之器耶(기향작록지기야) : 어찌 작록을 누릴 그릇이겠는가

楊子沈靜(양자심정) : 양자는 침착하고 고요하니

應得令長(응득영장) : 마땅히 영이나 장을 얻으려니와

餘得令終爲幸(여득영종위행) : 나머지 사람들은 몸을 잘 마칠 수 있음을 얻을 것이 다행스런 것이다."라고 했는데

其後(기후) : 그 뒤에

勃溺南海(발익남해) : 왕발은 남해에서 익사하고

照鄰投潁水(조린투영수) : 노조린은 영수에 투신하고

賓王被誅(빈왕피주) : 낙빈왕은 주살되고

炯終盈川令(형종영천령) : 양형은 영천령으로 마쳤으니

皆如儉之言(개여검지언) : 모두 행검의 말과 같았다

 

孔戡於爲義(공감어위의) : 공감이 옳은 일을 하는 데에는

若嗜慾(약기욕) : 마치 욕심을 즐겨하는 것처럼

不顧前後(불고전후) : 앞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於利與祿(어리여록) : 이익과 작록에 있어서는

則畏避退怯(칙외피퇴겁) : 두려워하여 회피하고 겁내어 뒤로 물러서기를

如懦夫然(여나부연) : 마치 나약한 사나이같이 했다

 

柳公綽居外藩(유공작거외번) : 유공작이 절도사로 있을 때

其子每入境(기자매입경) : 그 아들이 그의 관내에 들어올 때마다

都邑未嘗知(도읍미상지) : 군읍이 아직 일찍이 알지 못하였고

旣至(기지) : 이미 절도사의 관부에 도착하여

每出入(매출입) : 출입할 때마다

常於戟門外下馬(상어극문외하마) : 항상 영문 밖에서 말에서 내리게 하였으며

呼幕賓爲丈(호막빈위장) : 막객에게는 어른이라 부르게 하여

皆許納拜(개허납배) : 모두 그의 절을 받게 하고

未嘗笑語款洽(미상소어관흡) : 일찍이 그들과 웃으며 이야기하여 무관하게 하지 않았다

 

柳仲郢以禮律身(유중영이례율신) : 유중영이 예로서 몸을 다스리어

居家無事(거가무사) : 집에 있음에 일이 없을 때라도

亦端坐拱手(역단좌공수) : 또한 단정하게 앉아서 손을 앞으로 모으며

出內齋未嘗不束帶(출내재미상불속대) : 중문 안의 서재에 나갈 때에는 아직 일찍이 의관을 정제하지 않은 때가 없엇다

三爲大鎭(삼위대진) : 세 번이나 절도사가 되었으나

廐無良馬(구무양마) : 와양간에는 좋은 말이 없었으며

衣不薰香(의불훈향) : 옷에는 향내를 풍기게 하지 않았고

公退必讀書(공퇴필독서) : 공청에서 물러나와서는 반드시 글을 읽어

手不釋卷(수불석권) :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家法在官(가법재관) : 유씨의 가법에 "관리로 있으면서

不奏祥瑞(불주상서) : 상서가 있다고 임금에게 아뢰지 않았으며

不度僧道(불도승도) : 승려나 도사에게 도첩을 내려주지 않았으며

不貸臟吏法(불대장이법) : 장죄를 범한 관리를 처벌하는 일을 관대하게 하지 않았으며

凡理藩府(범리번부) : 번진의 모든 정치는

急於濟貧卹孤(급어제빈술고) :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고아를 구휼하는 일을 급히 했으며

有水旱(유수한) : 수해나 한재가 있으면

必先期假貸(필선기가대) : 반드시 조기에 양곡을 대여했으며

廩軍食(름군식) : 군의 식량을 주되

必精豐(필정풍) : 반드시 정선한 양곡으로 넉넉하게 하며

逋租必貰免(포조필세면) : 미납된 조세는 반드시 면제하여 주며

舘傳必增飾(관전필증식) : 관사와 역사를 반드시 증축하며

宴賓犒軍必華盛(연빈호군필화성) : 빈객을 위한 잔치와 군사들을 호궤하는 일은 반드시 화려하고 성대하였고

而交代之際(이교대지제) : 벼슬의 임기가 차서 후임자와 교대할 때에는

食儲帑藏(식저탕장) : 창고에 저축한 식량과 관타에 감춰 둔 돈과 명주가

必盈溢於始至(필영일어시지) : 반드시 자신이 처름 부임하였을 때에 비교하여 더 가득차고 넘치도록 하였으며

境內有孤貧衣纓家女(경내유고빈의영가녀) : 관내에 아버지 없고 가난한 조관의 집 딸로서

及笄者(급계자) : 시집갈 나이가 된 자가 있으면

皆爲選壻(개위선서) : 모두 그를 위하여 사윗감을 골라서

出俸金爲資裝(출봉금위자장) : 자신의 봉급에서 비용을 내어 시집가는 차림을 마련하여

嫁之(가지) : 시집을 보내주었다."고 했다

 

柳玭曰(유빈왈) : <유변>이 말하기를

王相國涯(왕상국애) : "상국 왕애가

方居相位(방거상위) : 바야흐로 정승의 자리에 앉아서

掌利權(장이권) : 이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두

竇氏女歸(두씨녀귀) : 씨에게 시집간 딸이 돌아와서

請曰(청왈) : 청하여 말하기를

玉工貨一Ꟃ(옥공화일차) : "옥공에게 비녀 한 개를 팔라고 하였는데

奇巧(기교) : 기이하고 교묘한지라

須七十萬錢(수칠십만전) : 70 만 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王曰(왕왈) : 왕애가 말하기를

七十萬錢我一月俸金耳(칠십만전아일월봉금이) : "'칠십 만 전은 나의 한 달 봉급일 뿐이니

豈於女惜(기어녀석) : 어찌 너에게 그것을 아끼겠는가

但一Ꟃ七十萬(단일차칠십만) : 다만 비녀 한 개에 칠십 만 전이니

此妖物也(차요물야) : 이것이 요물이다

必與禍相隨(필여화상수) : 반드시 화가 더불어 서로 따를 것이다."고 했는데

女子不復敢言(여자불복감언) : 딸이 다시는 감히 말하지 못했다 

數月女自婚姻會歸(수월여자혼인회귀) : 두어 달 뒤에 딸이 어느 혼인의 모임으로부터 돌아와

告王曰(고왕왈) : 왕애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前時Ꟃ爲馮外郞妻首飾矣(전시차위풍외랑처수식의) : "먼저 번 그 비녀가 풍외랑의 아내의 머리 꾸미개가 되었습니다."고 했다

乃馮球也(내풍구야) : 그는 곧 <풍구>였다

王嘆曰(왕탄왈) : 왕애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馮爲郎吏(풍위낭리) : "풍이 낭리가 되어서

妻之首飾有七十萬錢(처지수식유칠십만전) : 아내의 머리 꾸미개에 칠심만 전을 쓴 것이 있으니

其可久乎(기가구호) : 그가 오래 갈 수 있겠는가."고 했다

馮爲賈相餗門人(풍위가상속문인) : 풍구는 가속의 문인이 되었는데

最密(최밀) : 가장 친밀했다

賈有蒼頭頗張威福(가유창두파장위복)

: 가속에게 한 하인이 있어 자못 주인의 세력을 믿고 형벌을 주고 복을 주는 것일 제멋대로 하니

馮召而勗之(풍소이욱지) : 풍이 그를 불러다 타일렀더니

未浹旬馮晨謁賈(미협순풍신알가) : 열흘이 못되어 풍이 새벽에 가속을 보려 갔었을 때

有二靑衣捧地黃酒(유이청의봉지황주) : 두 하녀가 지황주를 들고

出飮之(출음지) : 와서 그에게 마시게 하였는데

食頃而終(식경이종) : 한참 뒤에 풍이 죽었다

賈爲出涕(가위출체) : 가속이 그를 위하여 눈물으 흘렸으나

竟不知其由(경불지기유) : 마침내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又明年王賈皆遘禍(우명년왕가개구화) : 또 다음 해에 왕애와 가속이 다 화를 당했으니

噫王以珍玩奇貨爲物之妖(희왕이진완기화위물지요) : 슬프다 왕애가 진기한 완호물로써 요물이라고 하더니

信知言矣(신지언의) : 진실로 사리를 아는 말이어니와

徒知物之妖(도지물지요) : 한가지 물건의 요괴한 것은 알면서

而不知恩權隆赫之妖(이불지은권륭혁지요) : 임금의 은총과 벼슬의 권세가 높고 빛나는 것의 요괴함이

甚於物耶(심어물야) : 물건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馮以卑位貪寶貨(풍이비위탐보화) : 풍이 낮은 지위로 보물을 탐내어

已不能正其家(이불능정기가) : 이미 자기의 집안을 바로잡지 못하였고

盡忠所事(진충소사) : 주인을 섬기는데 충성을 다하였으면서

而不能保其身(이불능보기신) : 자기의 몸을 보전할 수 없었으니

斯亦不足言矣(사역불족언의) : 이 또한 말할 가치가 없다

賈之臧獲(가지장획) : 가속의 노비가

害門客于牆廡之間(해문객우장무지간) : 문객을 담과 집 기슭 사이에서 살해하였어도

而不知(이불지) : 알지 못했으니

欲終始富貴(욕종시부귀) : 이런 사람이 오래 부귀를 누리고자 한들

其可得乎(기가득호) : 될 수 있었겠는가

此雖一事(차수일사) : 이것은 비록 하나의 일이지만

戒臧數端(계장수단) : 우리에게 주는 경계심은 여러 가지다."라고 했다

 

王文正公發解南省廷試(왕문정공발해남성정시) : 왕문정공이 향시와 성시와 정시에서

皆爲首冠(개위수관) : 모두 수석으로 합격하니

或戱之曰(혹희지왈) : 어떤 사람이 농담으로 말하기를

狀元試三場(장원시삼장) : "세 과장에서 모두 장원을 하였으니

一生喫著不盡(일생끽저부진) : 한 평생 먹고 입을 것이 다할 수 없겠습니다."고 하니

公正色曰(공정색왈) : 공이 정색하여 말하기를

曾平生之志(증평생지지) : "증의 평생의 뜻이

不在溫飽(부재온포) :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는데 있지 않습니다."고 했다

 

范文正公少有大節(범문정공소유대절) : 법문정공이 소년 때부터 큰 마음의 절조가 있었다

其於富貴貧賤毁譽歡戚(기어부귀빈천훼예환척) : 그는 부귀함과 빈천함, 헐뜯음과 칭찬함, 그리고 기쁨과 슬픔에 있어

不一動其心(불일동기심) : 한번도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而慨然有志於天下(이개연유지어천하) : 개연히 천하를 위하여 다한다는 당당한 뜻을 품고 있었는데

嘗自誦曰(상자송왈) : 일찍이 스스로 입으로 외우며 말하기를

士當先天下之憂而憂(사당선천하지우이우) : "선비는 마땅히 천하의 근심에 앞서서 근심하고

後天下之樂而樂也(후천하지락이락야) : 천하의 즐거움에 뒤져서 즐거워해야 할 것이다."고 했다

其事上(기사상) : 그가 웃사람을 섬기고

遇人(우인) : 남을 대우하는데

一以自信(일이자신) : 한결같이 자신의 신념으로써 하여

不擇利害爲趨捨(불택리해위추사) : 이익되고 손해가 되는 것을 가려서 달려가고 버리고 하는 일이 없었다

其有所爲(기유소위) : 그가 하는 바가 있음에

必盡其方曰(필진기방왈) : 반드시 그 방법을 다하여 말하기를

爲之自我者(위지자아자) : "스스로 내가 할 수 있은 것은

當如是(당여시) :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나니

其成與否(기성여부) : 그것이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有不在我者(유불재아자) : 내게 있는 것이 아니다

雖聖賢不能必(수성현불능필) : 비록 성현이라도 반드시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니

吾豈苟哉(오기구재) : 내 어찌 구차하게 하리오."라고 했다

 

司馬溫公嘗言(사마온공상언) : 사마온공이 일찍이 이르기를

吾無過人者(오무과인자) : "나는 남보다 나을 것이 없거니와

但平生所爲(단평생소위) : 다만 내 평생에 한 바가

未嘗有不可對人言者耳(미상유불가대인언자이) : 일찍이 부끄러워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없을 뿐이다."고 했다

 

管寧嘗坐一木榻(관녕상좌일목탑) : 관녕이 일찍이 한 나무 평상에 앉았기를

積五十餘年(적오십여년) : 50여 년이니 오래 되었는데

未嘗箕股(미상기고) : 아직 일찍이 다리를 키모양으로 벌려 뻗치는 일이 없엇다

其榻上當膝處皆穿(기탑상당슬처개천) : 그래서 그 평상 위의 무릎닿는 곳이 모두 뚫어졌다고 한다

 

呂正獻公自少謹學(여정헌공자소근학) : 여정헌공이 젊었을 때부더 학문을 강구하였는데

卽以治心養性(즉이치심양성) : 곧 치심과 양성하는 것으로

爲本(위본) : 근본을 삼아서

寡嗜慾(과기욕) : 기호와 욕심을 적게 하며

薄滋味(박자미) : 맛좋고 기름진 음식은 적게 먹으며

無疾言遽色(무질언거색) : 빠른 말과 급히 서두르는 얼굴빛을 짓지 않으며

無窘步(무군보) : 촉박한 걸음걸이를 하지 않으며

無惰容(무타용) : 거으른 용모를 짓지 않으면

凡嬉笑俚近之語(범희소리근지어) : 무릇 희롱해 웃는 웃음과 비속한 말을

未嘗出諸口(미상출제구) : 아직 일찍이 입밖에 내는 일이 없었으며

於世利紛華聲伎游宴(어세이분화성기유연)

: 세상의 이득에 관계된 일과 어지럽고 화려한 일 노래와 교묘한 유희와 노름놀이와 연희에서

以至於博奕奇玩(이지어박혁기완) : 장기 장`바둑`진기한 구경거리에 이르기까지

淡然無所好(담연무소호) : 시들하게 여겨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明道先生終日端坐(명도선생종일단좌) : 명도 선생은 온 종일 단정히 앉아 있음이

如泥塑人(여니소인) : 마치 진흙으로 빚어 만든 인형과 같았다

及至接人(급지접인) : 그러나 사람을 접견하게 되어서는

則渾是一團和氣(즉혼시일단화기) : 전혀 사람 전체가 한 덩어리의 화기와 같았다

 

明道先生作字時(명도선생작자시) : 명도 선생이 글씨를 쓸 적에

甚敬(심경) : 매우 조심하더니

嘗謂人曰(상위인왈) : 일찍이 어떤 사람에게 일러 말하기를

非欲字好(비욕자호) : "글씨를 쓸 때에 조심하는 것은 글씨를 잘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卽此是學(즉차시학) : 즉 이것이 곧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劉忠定公見溫公(유충정공견온공) : 유충정공이 사마온공을 보고 묻기를

問盡心行己之要(문진심행기지요) : "본심을 다하고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데 중요한 것으로써

可以終身行之者(가이종신행지자) : 일생 동안 실행햐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公曰(공왈) :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其誠乎(기성호) : "그것은 성실함이다."라고 했다

劉公問(유공문) : 유충정공이 묻기를

行之何先(행지하선) : "성실함을 실행함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라고 하니

公曰(공왈) :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自不忘語始(자불망어시) : "거짓말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劉公初甚易之(유공초심이지) : 유충정공이 처음에는 아주 쉽게 여겼다

及退而自檃栝日之所行與凡所言(급퇴이자은괄일지소행여범소언)

: 그러나 물러나와서 스스로 날마다 실행한 것과 모든 말한 것을 은괄해보니

自相掣肘矛盾者多矣(자상체주모순자다의) : 스스로 서로 견제되고 모순되는 것이 많았다

力行七年以後成(력행칠년이후성) : 힘써 실행한지 7년이 된 뒤에 성취하게 되니

自此言行一致(자차언행일치) : 이로부터 언행이 일치하게 되었다

表裏相應(표리상응) : 겉과 속이 서로 호응하게 되어

遇事坦然(우사탄연) : 일을 당하여도 마음이 평탄하여

常有餘裕(상유여유) : 항상 여유가 있었다고 했다

 

劉公見賓客(유공견빈객) : 유공이 손님과 만나

談論踰時(담논유시) : 시간이 지나도록 이야기할 때에도

體無攲側(체무기측) : 몸을 옆으로 기울이는 일이 없어서

肩背竦直(견배송직) : 어깨와 등이 높고 곧으며

身不少動(신불소동) :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至手足(지수족) : 손과 발까지도

亦不移(역불이) : 또한 옮기는 일이 없었다

 

徐積仲車初從安定胡先生學(서적중차초종안정호선생학) : 서적 중거가 처음에 안정호선생에게서 배우더니

潛心力行(잠심력행) : 마음을 학문에 침잠시켜 힘써 실행하여

不復仕進(불복사진) : 다시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其學以至誠爲本(기학이지성위본) : 그의 학문은 지성으로써 근본을 삼아서

事母至孝(사모지효) : 어머니를 섬기리를 지극히 효성스럽게 하였다

自言(자언) : 스스로 말하기를

初見安定先生(초견안정선생) : "처음에 안정선생을 뵙고 물러나오는데

退頭容少偏(퇴두용소편) : 머리 모양이 조금 한편으로 기울었더니

安定忽厲聲云(안정홀려성운) : 안정선생이 갑자기 큰 소리로 이르기를

頭容直(두용직) : "머리 모양을 곧게 하라."고 하니

某因自思(모인자사) : 나는 이로써 스스로 생각하기를

不獨頭容直(불독두용직) : "홀로 머리 모양만을 바르게 가질 것이 아니라

心亦要直也(심역요직야) : 마음도 또한 바르게 가져야 할 것이다.'라고 하여

自此不敢有邪心(자차불감유사심) : 그때부터 감히 사악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고 하였다

卒諡節孝先生(졸시절효선생) : 죽은 뒤에 시호를 <절효선생>이라고 했다

 

文中子之服儉以絜(문중자지복검이혈) : 문중자의 의복은 검소할으로써 깨끗하고

無長物焉(무장물언) : 남은 옷이 없었다

綺羅錦繡不入于室曰(기라금수불입우실왈) : 화려하고 무늬가 많은 사치스러운 비단을 집에 들여오지 않고 말하기를

君子非黃白不御(군자비황백불어) : "군자는 누른빛과 흰빛의 옷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고

婦人則有靑碧(부인즉유청벽) : 부인이면 푸른빛과 청록색의 옷을 자져야 한다."고 했다

 

柳玭曰(유빈왈) : <유변>이 말하기를

高侍郞兄弟三人(고시랑형제삼인) : "고시랑의 형제 세 사람이

俱居淸列(구거청렬) : 모두 청현한 벼슬의 지위에 있었으나

非速客(비속객) : 손님을 초청한 때가 아니면

不二羹胾(불이갱자) : 고깃국과 고기 산적의 두 가지를 반찬으로 쓰지 않으며

夕食齕蔔匏而已(석식흘복포이이) : 저녁 밤에는 무우와 박나물을 반찬으로 먹을 뿐이었다."고 했다

 

李文靖公治居第於封丘門外(이문정공치거제어봉구문외) : 이문정공이 살 집을 봉구문밖에 짓는데

廳事前僅容旋馬(청사전근용선마) : 대청 앞 뜰이 겨우 말 한 필을 돌리는 것을 포용할 정도였다

或言(혹언)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其太隘(기태애) : "뜰이 너무 좁습니다."라고 하였는데

公笑曰(공소왈) : 공이 웃으며 말하기를

居第當傳子孫(거제당전자손) : "살림집은 마땅히 자손에게 전해 주어야 할 것이니

此爲宰輔廳事誠隘(차위재보청사성애) : 이것이 재상의 대청으로는 진실로 좁다 하겠지만

爲太祝奉禮廳事(위태축봉예청사) : 대축이나 봉례의 대청으로는

則已寬矣(즉이관의) : 너무 넓은 것이다."고 했다

 

張文節公爲相(장문절공위상) : 장문절공이 재상이 되어

自奉如河陽掌書記時(자봉여하양장서기시) : 스스로 봉양함이 하양장서기 때와 같이 검소하게 하였는데

所親故規之曰(소친고규지왈) : 친한 사람이 충고하여 말하기를

今公受俸不少(금공수봉불소) : "지금 공이 받는 봉록이 적지 않으면서

而自奉若此(이자봉약차) : 스스로 봉양함이 이와 같으니

雖自信淸約(수자신청약) : 비록 스스로 청렴하고 간략함을 믿을지라도

外人頗有公孫布被之譏(외인파유공손포피지기)

: 바깥 사람들이 자못 옛날 공손홍의 베 이불처럼 거짓 속이는 것이라고 하여 헐뜯어 비난함이 있을 것이니

公宜少從衆(공의소종중) : 공은 마땅히 조금 여러 사람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公嘆曰(공탄왈) : 공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吾今日之俸(오금일지봉) : "나의 오늘의 봉록이

雖擧家錦衣玉食(수거가금의옥식) : 비록 온 집안이 비단옷을 입고 흰 쌀밥을 먹은들

何患不能(하환불능) : 어찌 근심하겠는가

顧人之常情(고인지상정) : 그러나 돌아보면 사람의 상정이

由儉入奢易(유검입사이) : 검소함로부터 사치함에 들어가기는 쉽고

由奢入儉難(유사입검난) : 사치함으로부터 검소함에 들어가기는 어려운 것이니

吾今日之俸(오금일지봉) : 내 오늘의 봉록이

豈能常有(기능상유) : 어찌 항상 있을 수 있으며

身豈能常存(신기능상존) : 이 몸이 어찌 항상 생존할 수 있겠는가

一旦異於今日(일단이어금일) : 하루 아침에 오늘과 달라지면

家人習奢已久(가인습사이구) : 집안 사람들이 사리를 익힌 것이 이미 오래되었는데

不能頓儉(불능돈검) : 갑자기 검소할 수 없어서

必至失所(필지실소) : 반드시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니

豈若吾居位去位身存身亡如一日乎(기약오거위거위신존신망여일일호)

: 어찌 내가 벼슬에 있거나 벼슬을 그만두거나 생존한 때나 사망한 때나 하루같이 살 수 있게 하는 것만 하겠는가."라고 했다

 

溫公曰(온공왈) : 온공이 말하기를

先公爲群牧判官(선공위군목판관) : "선고께서 군목판관으로 계실 때에

客至(객지) : 손님이 오면

未嘗不置酒(미상불치주) : 일찍이 술자리를 차리지 않은 일이 없었는데

或三行(혹삼행) : 어떤 때는 세 순배

或五行(혹오행) : 어떤 때는 다섯 순배를 하며

不過七行(불과칠행) : 일곱 순배를 넘지 않으셨지만

酒沽於市(주고어시) : 술은 저자에거 사오고

果止梨栗棗柿(과지이율조시) : 과일을 백`밤`태추`감에그쳤고

肴止脯醢菜羹(효지포해채갱) : 안주는 육포와 잣갈과 나물국에 그쳤고

器用자漆(기용자칠) : 그릇은 사기그릇과 옻칠한 나무 그릇을 사용하였다

當時士大夫皆然(당시사대부개연) : 그러나 당시의 사대부들은 다 그렇게 하였다

人不相非也(인불상비야) :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는 이 없었으니

會數而禮勤(회수이례근) : 모임을 자주하여서 예도를 부지런히 하였으며

物薄而情厚(물박이정후) : 물건은 박하였지만 정은 두터웠다

近日士大夫家(근일사대부가) : 요사이 사대부의 집에서는

酒非內法(주비내법) : 술은 궁내의 술빚는 법에 따라 빚은 것이 아니면

果非遠方珍異(과비원방진이) : 과일은 원방의 진기하고 특이한 것이 아니면 

食非多品(식비다품) : 식품은 많지 않으면

器皿非滿案(기명비만안) : 그릇이 상에 가득하게 차리지 않으면

不敢會賓友(불감회빈우) : 감히 손님과 벗을 모으지 못하게 되어

常數日營聚(상수일영취) : 항상 여러 날에 걸쳐서 경영하고 음식을 모은다

然後敢發書(연후감발서) : 그런 후라야 감히 편지를 낼 수 있다

苟或不然(구혹불연) : 진실로 혹시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人爭非之(인쟁비지) : 사람들이 다투어 비난하여

以爲鄙吝(이위비린) : 이로써 더럽고 인색하다고 한다

故不隨俗奢靡者鮮矣(고불수속사미자선의) : 그러므로 시속을 따라 지나치게 사치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다

嗟乎(차호) : 슬픈 일이다

風俗頹弊如是(풍속퇴폐여시) : 풍속의 퇴폐가 이와 같으니

居位者(거위자) : 벼슬 자리에 있는 이들이

雖不能禁(수불능금) : 비록 금할 수는 없을지라도

忍助之乎(인조지호) : 차마 자리에 있는 이들이 조장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溫公曰(온공왈) : 온공이 말하기를

吾家本寒族(오가본한족) : "우리 집은 본래 가난한 집안이라

世以淸白相承(세이청백상승) : 대대로 청백한 것으로써 서로 계승하여 왔고

吾性不喜華靡(오성불희화미) : 내 성질이 화려하고 사치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自爲乳兒時(자위유아시) : 유아 때부터

長者加以金銀華美之服(장자가이금은화미지복) : 어른들이 나에게 금빛 은빛의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민 옷으로써 입혀 주면

輒羞赧棄去之(첩수난기거지) : 문득 부끄럽게 여겼다

年二十忝科名(년이십첨과명) : 나이 20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聞喜宴獨不戴花(문희연독불대화) : 문희연에 홀로 머리에 꽃을 꽂지 않았더니

同年曰(동년왈) : 동년이 말하기를

君賜(군사) : "임금이 주신 것이다

不可違也(불가위야) : 어길 수 없다."고 하거늘

乃簪一花(내잠일화) : 비로소 하나의 꽃을 쫒았었다

平生衣取蔽寒(평생의취폐한) : 평생에 옷은 추위를 막을 만큼만 취하며

食取充腹(식취충복) : 음식은 배를 채울 만큼만 취하고

亦不敢服垢弊(역불감복구폐) : 또한 감히 때묻고 떨어진 옷을 입어서

以矯俗干名(이교속간명) : 세속에 다른 짓을 함으로서 이름을 간구하지도 않았고

但順吾性而已(단순오성이이) : 다만 내 성질대로 좆았을 뿐이다."라고 했다

 

汪信民嘗言(왕신민상언) : 왕신민이 일찍이 말하기를

人常咬得菜根(인상교득채근) :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먹는 가난한 생활을 견디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념

則百事可做(즉백사가주) : 어떤 온갖 일도 이룰 수 잇을 것이다."라고 했다

胡康侯聞之(호강후문지) : 호강후가 듣고

擊節嘆賞(격절탄상) : 무릎을 치며 감탄하여 칭찬했다


 右實敬身(우실경신) : 이상은 경신을 실례로 부연했다.

출처 : 昌輝慶雲(창휘경운)
글쓴이 : 杉堂淨舍삼당정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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