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3. 23:56ㆍ교회사자료/5.근세교회사
현대 교회의 배교 - 근본주의 vs 신복음주의
(제1부 현대 자유주의 신학)
현대 교회의 배교적 상황
제프리 해든 설문조사
이 설문조사는 1960년대 후반에 미국의 사회학자 제프리 해든(Jeffrey Hadden)이 미국의 10,000명의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으로 실제로 7,441명이 대답해 왔다고 한다. 이 설문조사의 결과는 미국 교회들의 배교적 상황을 증거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포함한다:
1. 당신은 성경이 신앙과 역사와 세속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한 말씀임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87%, 감독교회의 95%, 연합 장로교회의 82%, 미국 침례교회의 67%, 미국 루터교회의 77%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2. 당신은 오늘 세계에 악한 귀신의 존재를 믿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62%, 감독교회의 37%, 연합 장로교회의 47%, 미국 침례교회의 33%, 미국 루터교회의 14%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3. 당신은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60%, 감독교회의 44%, 연합 장로교회의 49%, 미국 침례교회의 34%, 미국 루터교회의 19%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4. 당신은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사실로 받아들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감리교회의 51%, 감독교회의 30%, 연합 장로교회의 35%, 미국 침례교회의 33%, 미국 루터교회의 13%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Trans-Action
노엘 홀리필드의 논문
노엘 홀리필드(Noel W. Hollyfield)는 1976년 그의 신학석사(Th.M.) 논문인 "Sociological Analysis of the Degrees of 'Christian Orthodoxy' among Selected Students in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미국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있는 남침례신학교(미국에서 비교적 보수적인 교단이라고 알려져 있고 WCC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는 남침례교단 소속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데, 이것은 미국교회들의 배교가 비단 자유주의적 교단에 뿐만 아니라, 남침례교회에까지도 미치고 있음을 보인다(David O. Beale, S.B.C.: House on the S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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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Div. 1학년 |
M. Div. 3학년 |
Th. M. & Ph. D. |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없이 믿는다. |
74% |
65% |
63% |
마귀의 실제적 존재는 확실하다. |
66% |
42% |
37% |
기적들이 성경의 증거대로 실제로 일어났음을 믿는다. |
61% |
40% |
37% |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탄생은 확실하다. |
66% |
33% |
32% |
예수께서 물 위로 걸으셨음은 확실하다. |
59% |
44% |
22% |
예수께서 신적인 하나님 아들임을 의심치 않는다. |
87% |
63% |
63% |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은 구원에 절대필수적이다. |
85% |
60% |
59% |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로 믿는 것은 구원에 절대 필수적이다. |
42% |
33% |
21% |
죽음 너머의 삶이 있음은 확실하다. |
89% |
67% |
53% |
예수께서 어느날 실제로 땅에 돌아오실 것을 확신한다. |
79% |
56% |
53% |
예수 세미나의 결론들
1985년 약 125명의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학자들은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를 시작했는데, 그 목적은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고 무엇을 말씀하지 않으셨는지를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그 중심 인물은 로버트 펑크(Robert Funk)인데, 그는 밴더빌트(Vanderbilt)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신약학자이며, 에모리(Emory) 대학교 캔들러(Candler) 신학교 교수이었고, 그후 캘리포니아에 웨스타 연구원(Westar Institute)을 설립하였다. 미국에서 가장 큰 성경학자 협회인 성경문헌협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의 증경 회장이기도 하다. 이 세미나의 결과로 1988년에 『예수님의 비유들』(The Parables of Jesus)이라는 책자가 출판되었는데, 거기에도 적색, 분홍색, 회색, 흑색으로 예수님의 비유들의 역사적 신빙성의 정도를 표시했다(Robert W. Funk and Others, The Parables of Jesus-Red Letter Edition-A Report of the Jesus' Seminar
이 세미나의 대략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성경학 혹은 신학이 얼마나 배교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1) 예수의 말들이 오직 20%만이 실제로 그의 말로 생각되며, 요한복음에서는 오직 한 구절만이 그에게 돌려진다.
(2) 주기도문도 예수의 말이 아니다.
(3) 예수는 자신을 메시야라고 공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4) 예수는 자신이 신과 매우 가깝다고 느꼈지만, 자신을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5) 예수는 자신의 재림을 약속하지 않았다.
(6) 성경에 묘사된 신화적 의미의 지옥은 없다.
(7) 예수는 독신이 아니었고 독신을 옹호하지도 않았다.
("Did Jesus Say He's Messiah?: Seminar Concludes He Didn't Publicly," The Charlotte
(제3부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서론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의 개념 정립과 성경적 검토는 오늘날 보수적 교회들의 바른 진로(進路)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라는 말은 말하는 이의 분별력이나 입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일찍부터 한국의 보수주의를 근본주의적이라고 비난해 왔다. 김재준 박사는 말하기를, "엄격한 근본주의 신학교육은 객관적 비판의 여지 없이 일정한 근본신조들의 주입이요 … 교회 지도자들의 시야는 극히 타계적이며 강한 율법주의와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었다"고 했다(간하배, 『현대신학해설』, 153쪽). 이종성 박사는 근본주의를 "신바리새주의"라고 불렀다(위의 책).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근본주의에 대한 개념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한편, 보수주의 진영에서도 빈번히 근본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고(故) 박윤선 박사는 논평하기를, 근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인간의 구원을 더욱 강조하며, 성경을 비교적 단편적으로 보고 체계적으로 깊이 보지 못하며,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의 교리를 깊이 보지 못하며, 권위주의적이고 반지식주의적인 경향이 있다고 했다("개혁주의 소고," 『신학지남』, 1979년 가을, 13-24쪽). 그러나 이것은 근본주의에 대한 비평이라기보다는 침례교회의 신학이나 세대주의에 대한 비판같이 보인다.
또한 다음의 글은 단지 한 보수적 신학교 학생의 견해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적 근본주의 신학은 논리에 있어 편협하고 실제에 있어 무기력하고, 삶의 건강함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을 끊임 없는 교리 논쟁으로 충동질하고, 순수성 시비를 부채질하며, 건강하고 창조적인 사고 대신 경직되고 획일화된 사고를 강요한다 …. 이 신학은 그리스도인들로 반(反)지성적이게끔 규제하고 오직 열심만이 최고의 미덕인양 체제 순종적인 교인들을 부추켜 세운다"(정현철, "근본주의적 신학풍토에 관한 일고[一考]," 『총신원보』, 1988년 10월 11일, 2쪽).
근본주의에 대한 개념에 따라 신복음주의에 대한 개념도 다양해진다. 그러나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가지고 정의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정의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근본주의는 무엇이고 신복음주의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의 입장이 성경적으로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 것인지 검토해 보자.
1. 역사적 개관
근본주의의 시작
근본주의의 시작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미국 교회의 상황에서 설명될 수 있다. 1875년 제임스 브룩스(James H. Brookes, 1830-1897)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성경공부 모임은 예언사경회로 발전했다. 이 모임은 1883년부터 1897년까지 1884년을 제외하고 매년 나이아가라에서 모였었는데, 나이아가라 예언사경회로 알려지게 되었다. 거기에 참여했던 강사들은 제임스 브룩스 외에 윌리암 어드만(William J. Erdman), 아도니람 저드슨 골든(Adoniram Judson Gorden), 에이 씨 딕슨(A. C. Dixon),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에이 티 피얼슨(A. T. Pierson) 등을 포함했다.
이 예언사경회는 1878년 부룩스의 지도 아래 14개 조항의 신조를 선언한 바가 있는데, 이것은 그후 '나이아가라 신조'로 불리워졌다. 그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성경의 영감, (2) 삼위일체, (3) 아담의 타락과 전적 부패, (4) 원죄와 사람의 전적 부패성, (5) 중생(다시 남)의 절대 필요성, (6)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속, (7)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죄책으로부터의 완전한 구원, (8) 구원의 확신은 모든 신자의 특권, (9)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중심되심, (10)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든 자들로 구성됨, (11) 성령은 우리들의 영속적 위로자이심, (12) 성령을 따라 삶, (13) 신자와 불신자의 죽은 후 상태와 최종적 부활, (14) 심판의 때가 가까움과 그리스도의 전천년적 재림(David O. Beale, In Pursuit of Purity: American Fundamentalism since 1850
1910년부터 1915년까지 『근본교리들: 진리에 대한 증언』(Fundamentals: A Testimony to the Truth)이라는 12권으로 된 책자들이 무료로 약 300만부 배포되었다. 이 일은 캘리포니아주의 부유한 석유 자본가인 리만 스튜어트(Lyman Stewart)씨와 그의 형제 밀톤 스튜어트(Milton Stewart)씨의 약 20만불의 헌금으로 가능하였다. 이 책자들의 내용은 주로 진화론과 성경의 고등비평에 대항하여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변호하는 것들이었다(C. T. McIntire, "Fundamentalism," Evangelical Dictinary of Theology, pp. 433; Dollar, p. 175.)
1910년 미국 북장로교회(PCUSA) 총회는 다음과 같은 5개항의 교리를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본질적 내용이라고 선언했다: (1) 성경 무오, (2)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3)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4)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5) 그리스도의 기적들의 사실성. 이 선언은 1916과 1923년 총회에서 두 번이나 재확인되었다(Margaret G. Harden, ed., A Brief History of the Bible Presbyterian Church and Its Agencies, p. 15: McIntire, pp. 433-435.)
이러한 선언은, 19세기 후반 1) 독일에서의 성경 고등 비평학, 2) 찰스 다윈(1809-82)의 진화론, 및 3) 칼 마르크스(1818-83)의 공산주의 사상 등과 더불어 교회들과 신학교들에 적지 않은 악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한 것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흔히 이 다섯 가지 교리들을 부정했다. 1890년경, 촬스 에이 브릭스(Charles A. Briggs)가 독일 유학후 그 당시 북장로교 소속 유니온(Union) 신학교 교수로 들어와 공공연히 성경의 오류를 주장했을 때, 1892년 미국 북장로교회 총회는 그를 징계했었다. 그러나 그때 유니온 신학교는 총회에서 독립하여 브릭스를 계속 채용했고, 이와 같이 자유주의 사상은 배제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교회를 부패시켰다.
1920년 컬티스 리 로스(Curtis Lee Laws)씨는 미국 뉴욕의 침례교회 주간 신문 『워치만 이그재미너』(Watchman-Examiner) 7월 1일자 사설에서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위해 싸우는 자들을 묘사하기 위해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라는 말을 초초로 사용하였다(McIntire, p. 433; 박형룡, "근본주의," 『신학지남』, 25권 1호 <1960>, 13쪽).
1920년대의 근본주의
1920년대의 근본주의는 미국의 각 교단들 안에서 교단의 정화 즉 자유주의의 제거를 위해 투쟁했다. 이 시기는 소위 근본주의와 현대주의의 싸움의 시대이었다(Beale, pp. 5, 6). 제이 그레샴 메이천(J. Gresham Machen)은 1923년 출간한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특별히 종교의 영역에서 현대는 논쟁의 시대이다. 항상 기독교로 알려져 왔던 저 위대한 속죄적 종교가 완전히 다른 형태의 종교적 신념과 싸우고 있는데, 그 종교적 신념은 전통적인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일층 더 파괴적일 뿐이다. 이 현대적 비구속적(非救贖的) 종교는 '현대주의' 혹은 '자유주의'라고 불리운다"(Christianity and Liberalism, p. 2).
예를 들어, 당시의 미국 북장로교회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면, 1923년 교단 안에는 소위 어번 선언서(The Auburn Affirmation)라는 것이 작성되었고, 곧 1293명의 목사들의 서명을 받았다. 그 선언서는 1910년, 1926년, 1923년 3차례에 걸쳐 총회가 선언한 5가지의 근본교리들을 "본질적이지 않고 이론들일 뿐"이라고 선언했고, 특히 성경 무오설은 성경숭배에 빠지기 쉽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이질적인 두 입장의 대립과 갈등이 노출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해 총회는 이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거나 서명자들을 징계하지 않았다. 총회는 벌써 진리의 싸움보다 평화를 원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1924년과 1925년 미국 북장로교회의 보수신학의 마지막 보루였던 프린스톤 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안에서,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했던 중 동부 신학교 협의회(The Middle Atlantic Association of Theological Seminaries=MAATS)와의 관계단절과 보다 보수적인 복음주의 학생연맹(The League of Evangelical Students) 결성에의 참여문제로 갈등과 싸움이 일어났다. 메이천과 다수의 학생들과 운영이사회(the Board of Directors)는 보다 강경한 보수주의적 입장을 취하여 학생회의 그러한 조치를 환영했으나, 교장 로스 스티븐슨(J. Ross Stevenson)은 그것들에 불만했고 스티븐슨의 동료 교수들과 특히 학생처장 찰스 어드만(Charles E. Eerdman), 그리고 재단이사회(the Board of Trustees)는 스티븐슨의 온건하고 포용적인 입장을 지지했다.
이 때, 포용적인 총회 정치가들은 신학교의 운영이사회와 재단이사회를 통합시킴으로써 자유적 세력을 우세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프린스톤은 포용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갔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1929년 메이천을 비롯한 3명의 보수적 교수들, 로버트 딕 윌슨(Robert Dick Wilson), 오스왈드 앨리스(Oswald T. Allis), 코넬리어스 반틸(Cornelius Van Til)은 프린스톤을 떠났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를 설립하였다(Harden, pp. 14-23; Beale, 165-170; 315-316).
1930년대의 근본주의
근본주의와 현대주의와의 싸움은 외적으로 근본주의의 패배로 끝났다. 대교단들은 자유주의를 제거하기는커녕 자유주의를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broadened churches)가 되었다. 이것은 주께 대한 배신이었고, 현대교회의 배교(背敎)와 변절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0년대의 근본주의는 자유주의화된 교단들로부터 분리(分離)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즉, 분리(分離, 혹은 성별 聖別, separation)의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많은 독립 교회들이 생겨났고, 작은 새 교단들이 형성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 근본주의 독립교회(Independent Fundamental Churches of America, 1930년에 조직됨), 정식 침례교회 총협의회(General Association of Regular Baptist Churches, 1932년에 조직됨), 미국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 1936년에 세워짐, 1939년에 정통장로교회
미국 북장로교회의 경우를 다시 잠시 살펴보면, 1932년 『선교를 재고함』이라는 보고서가 출판되었는데, 그 내용은 매우 자유주의적이었다. 그 보고서는 19세기의 선교 방법의 전면적 수정을 주장했고, 선교사들은 그 나라의 문화나 종교를 비판치 말고 존중하며 타협적으로 선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33년 메이천과 그의 동료들은 총회의 선교 정책이 바르게 되기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그래서 그들은 장로교 독립해외 선교부(IBPFM)를 설립했다. 그러나 1934년 총회는 독립선교부에 관련된 자들에게 그 선교부로부터 탈퇴할 것을 명령했고, 1934-35년 동안 총회의 그 명령에 불복했던 7명의 목사들이 면직을 당했다. 1936년 미국 북장로교회 총회는 메이천의 상소를 기각함으로써 실로 배교적(背敎的) 교회가 되었다. 따라서 그 해 미국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라는 분리된 작은 교단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1937년 전천년설 옹호와 금주 금연의 미국 장로교 전통의 주장 때문에, 이 교단으로부터 성경장로교회(Bible Presbyterian Church)와 훼이스 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가 분리되었고, 1939년 미국장로교회는 정통장로교회(Orthodox Presbyterian Church)로 이름을 바꾸었다(Beale, pp. 317-319).
신복음주의의 출현
1940년대에 들어와 신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1948년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 강연에서 해롤드 오켄가(Harold Ockenga)는 신복음주의(New Evangelicalism)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오켄가는 1930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했으나 1936년 교회 분리시 메이천을 따르기를 거절했다. 1942년 그는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를 조직, 초대 회장이 되었고, 또한 1947년 풀러 신학교의 초대 교장이 되었다. 그는 『크리스챤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誌)의 이사장으로 25년간, 보스톤의 파크 스트릿 교회(Park Street Church)의 담임목사로 33년간 봉사했다. 1985년 2월 8일 79세에 암으로 사망하기까지, 그는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의 절친한 친구요 신학적 조언자이었다.
오켄가는 풀러 신학교 교장 취임시 분리주의자들 곧 근본주의자들을 비난했고 자기 신학교는 주류 교단들 안에 있는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William Ashbrook, Evangelicalism: The New Neutralism, 9th ed. [Columbus, Ohio: Calvary Bible Church, n.d.>, p. 5). 그는 1957년 12월 8일 한 뉴스 팜플렛에서 "신복음주의는 그 전략을 분리에서 침투로 바꾸었다"고 말했다(위의 책, 4쪽). 그는 후에 "신복음주의는 분리를 거절함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달랐다"고 회고했다(Foreword to Harold Lindsell's The Battle for the Bible).
풀러 신학교(1947년에 설립), 『크리스�니티 투데이』지(誌)(1956년에 창간),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NAE) 등의 기관들 외에, 1951년에는 20개국의 NAE들이 모여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가 형성되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를 싫어했고 그것과 구별되기를 원했고, 점차 자신들을 단순히 복음주의자로 불렀다(G. M. Marsden, "Fundamentalism," New Dictiionary of Theology, p. 268).
한편, 1941년 근본주의적 정신으로 미국 기독교회 협의회(American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가 조직되었고, 1948년에는 이 단체를 중심으로 국제 기독교회 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가 조직되었다.
ICCC는 헌법의 서문(Preamble)에서 현대를 이교적 현대주의의 물결이 범람하는 배교의 어두운 시대라고 언급하고 "그의 백성에게 모든 불신앙과 부패로부터 분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들은 분명하고 적극적이다"고 진술한 후에,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교리적 선언을 채택했다: (1) 성경의 완전 영감, 무오, 최종 권위, (2) 하나님의 삼위일체, (3)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영원하신 신성과, 그의 참되신 그러나 죄 없으신 인성, (4) 그의 처녀 탄생, (5) 그의 대리적, 속죄적(expiatory, 속상적<贖償的)) 죽음, (6) 그의 육체적 부활, (7) 동일하신 그 분의 영광스러운 재림, (8) 사람의 타락과 전적 부패, (9) 성령에 의한 중생과,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 얻는 구원, (10) 구원받은 자들의 영원한 복과, 잃어버린 자들의 영원한 형벌, (11) 그의 보혈로 구속받은 모든 자들의 영적 일체성(一體性), (12) 교리와 생활에 있어서 교회의 순결성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지함의 필요성("Constitution of the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in Program and General Information: The Ninth World 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Nairobi, Kenya, 16-27 July 1975
비록 자유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교회(교단)들로부터의 분리 혹은 성별이 신복음주의라는 어려운 문제를 일으켰지만, 그것은 근본주의 진영에서 비교적 쉽게 이해되었다. 그러나, 신복음주의자들로부터의 분리는 보다 더 어려운 문제를 일으켰다. 그것은 흔히 '2차적 분리'(secondary separation)라고 불리웠다. 자유주의자들을 고의적으로 포용하고 협력하는 저 타협자들을 계속 용납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도 모종의 징계와 교제의 단절이 필요한가? 밥 죤스(Bob Jones), 칼 매킨타이어(Carl McIntire), 이안 페이슬리(Ian R. K. Paisley) 등은 신복음주의자들로부터의 분리도 주장했으나, 죤 알 라이스(John R. Rice) 등은 그것을 반대했다(John R. Rice, Come Out-or Stay In? 1976년 근본주의적 국제 기독교회 협의회(ICCC)와 별도로 세계 근본주의자 대회(World Congress of Fundamentalists = WCF)가 밥죤스(Bob Jones)와 이안 에이슬리(Ian R. K. Paisley)를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보다 최근에는 세계 성경적 교회 협의회(World Council of Biblical Churches = WCBC)가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한편 1980년대 이후에는, 근본주의자로 자처하는 제리 팔웰(Jerry Falwell) 같은 이들이 신복음주의자들과 교제하고 협력함으로써 근본주의 진영에 다시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Jerry Falwell, Ed Dobson, and Ed Hinson, eds., The Fundamentalist Phenomenon: The Resurgence of Conservative Christianity 이와 같이, 1930년 이후의 근본주의 운동은 '성별' 혹은 '분리'의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보수주의적 교회들은 교회의 순결성의 보존이나 성실한 권징의 실행에는 관심이 적었고, 심지어 근본주의적 교회들도 오류들을 배제하기보다는 그것들을 쉽게 포용하고 그것들과 타협하는 경향을 띠어 왔다. 비록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문제는 20세기 초엽과 중엽에 미국에서 일어난 문제였지만, 그것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경험될 수 있는 문제이다. 참고로 미국의 학교들, 선교부들, 잡지와 출판사들, 라디오와 텔레비 프로그램들에 대한 죠지 W. 달라(George W. Dollar)의 분류를 소개한다(George W. Dollar, Facts for Fundamentalists, rev. ed.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역사를 위해서는, 특히 최근의 인물들, 학교들, 기관들, 단체들에 대해서는 다음의 자료들을 참조하라: David O. Beale, In Pursuit of Purity: American Fundamentalism since 1850 (Greenville, S.C.: Unusual Publications, 1986); George W. Dollar, The Fight for Fundamentalism: American Fundamentalism, 1073-1983 (Sarasota, Fl.: Published by the Author, 19i83); John Ashbrook, New Neutralism II: Exposing the Gray of Compromise (Mentor, Ohio: Here I Stand Books, 1992). 1950년대 이후의 근본주의
1. 학교들
가. 전투적 근본주의 - Bob Jones University, Calvary Baptist Seminary, Denver Baptist Seminary, Fundamental Bible Institute, Landmark Baptist College, Maranatha Bible Institute, Northwest Baptist Seminary, Pensacola Bible Institute, San Francisco Baptist Seminary 등.
나. 온건한 근본주의 - Cedarville College, Central Baptist Seminary of Minneapolis, Covenant Seminary, Dallas Theological Seminary, Grace Theological Seminary, Liberty Baptist Schools, Moody Bible Institute, Pensacola Christian College, Philadelphia College of Bible, Talbot Theological Seminary, Tennessee Temple University,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등.
다. 수정된 근본주의(신복음주의) - Bethel Seminary, Californ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 Columbia Bible College, Conservative Baptist Seminary, Fuller Theological Seminary, Gordon-Conwell Divinity School, 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 John Brown University, King's College(NY), Nyack College, Taylor University, Trinity Divinity School(IL), Wheaton College(IL) 등.
2. 선교단체들
가. 전투적 근본주의 - Associated Gospel Churches, Baptist Mid-Missions, Baptist World Mission, Bible Methodist Mission, Bible Protestant Missions, Inc., Evangelical Missions, Fellowship of Independent Missions, Independent Board of Presbyterian Foreign Missions, Independent Faith Mission, Inc., International Christian Missions, Inc., United Missionary Fellowship, World-wide Missions 등.
나. 온건한 근본주의 - Bible Christian Union,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Far Eastern Gospel Crusade, Gospel Missionary Union, International Missions, Inc., Orthodox Presbyterian Missions, 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United World Mission, Inc., World Missionary Evangelism 등.
다. 수정된 근본주의(신복음주의) - America's Keswick Bible Conference, Campus Crusade for Christ, Child Evangelism Fellowship, Inc., Inter-Varsity Fellowship, Navigators, Young Life, World Vision, Inc., Wycliffe Bible Translators, Inc. 등.
3. 잡지와 출판사들
가. 전투적 근본주의 - Biblical Evangelist, Biblical Viewpoint, Bob Jones University Press, Christian Beacon, F.E.A. News and Views, Fundamentalist, Gospel Standard, Harvest, The Voice of Fundamentalism, Straightway 등.
나. 온건한 근본주의 - Bibliotheca Sacra, Evangelist, King's Business, Moody Monthly, Radio Bible Class, Standard Bearer, Sword of the Lord, Trinitarian Bible Society, Voice(IFCA) 등.
다. 수정된 근본주의(신복음주의) - Baker Book House, Christian Herald, Christian Life, Christianity Today, David C. Cook, W. B. Eerdman's, Eternity, Gospel Light, His, Inter-Varsity Press, Kregel Publications, Navigators, Scripture Press, Tyndale House, United Bible Societies, United Evangelical Action, World Vision, World Literature Crusade, Zondervan 등.
4. 라디오와 텔레비 프로그램들
가. 전투적 근본주의 - Fortress of Faith, Gospel Hour, Let the Bible Speak, Radio and TV Commission of the ACCC, Twentieth Century Reformation Hour, Word of Life Hour, Word of Truth 등.
나. 온건한 근본주의 - Back to the Bible, Children's Bible Hour, Children's Gospel Hour, Old Time Gospel Hour, Radio Bible Class, Word of Life 등.
다. 수정된 근본주의(신복음주의) - Encounter, Hour of Decision, Rex Humbard, Oral Roberts, The Bible Study Hour, The PTL Club, Jack Van Impe Broadcasts, 700 Club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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