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0. 00:30ㆍ운영자자료/한국의 성지
신약전서, 1858년, 중국 상해 장로교 선교 출판사 간
예수셩탄미상지셩경, 18세기 후반, 저자미상, 우리말로 간행된 현존하는 최고의 천주교 성서
요한복음, 1882년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로스, 매킨타이어 공역
1872년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 로스(J. Ross)가 만주 관문인 영구(영구)에 도착해서 만주 선교를 시작하였고 1년 후에는 매제가 되는 매킨타이어(J. McIntyre) 선교사가 합류했다. 로스 목사는 1874년, 1876년 두 차례 봉황성 아래 고려문을 방문하였는데 이 때 그곳에서 장사하던 한국인을 처음 만났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 선교를 결심하게 되었고 만나는 의주 출신 상인들에게 한문 성경을 나누어주는 한 편, 이응찬을 비롯하여 최성균 · 김진기 · 이성하 등을 영구로 불러 들여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한문 성경이 국내에 전파되었다. 의주에 살던 백홍준이 성경을 읽고 3년 동안 탐구한 후 개종을 결심하고 1879년 3월 압록강을 건너 영구로 갔다. (안식년 휴가를 얻어 귀국한 로스 대신 그를 맞은) 매킨타이어 목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자 "함께 지내보고 진짜 교인이면 주겠다." 하였다. 백홍준은 3개월 동안 영구에 머물면서 의주 출신 성경 번역자들과 함께 성경을 번역하였고 마침내 그 해 6월 매킨타이어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한 달 후에는 3년 동안 성경을 번역하던 이응찬도 세례를 받았다. 이것이 한국인 최초 개신교 세례이다. 1881년 안식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로스 목사는 봉천(지금 심양)으로 옮겨 동관교회를 설립하는 한 편, 교회 구내에 성경 번역소 및 인쇄소를 차리고 한글로 된 문서를 찍어냈다. 즉 1881년 세례 문답과 전도용 문서인 <예수성교문답>과 <예수성교요령>을 인쇄하였고 이듬해엔 최초 한글 성경인 <예수성교 누가복음서>와 <예수성교 요한복음>을 인쇄하였다. 그 후 계속 쪽복음을 인쇄하였고 1887년 이르러 신약 전체를 번역하여 <예수성교전서>란 이름으로 출판했다. 이렇게 인쇄된 한글 성경은 백홍준 · 서상륜 등 매서인을 통해 압록강을 건너 의주로 전달되었고, 거기서 남쪽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이처럼 한글 성경이 인쇄되어 나오자 성경을 읽고 복음을 받아들인 개종자들이 사방에서 나와 이들을 중심으로 신앙공동체가 조직되었다. 국내에서는 의주에 교회가 처음 설립되었고, 거기서 구성을 거쳐 선천, 평양으로 복음이 퍼져 나갔으며 서상륜과 서경조 형제를 통해 황해도 소래(松川)와 서울에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만주 땅에 압록강을 따라 형성되었던 한인촌에서도 그런 신앙공동체가 조직되었다. 그 중에도 로스 목사를 도와 성경 교정과 인쇄 일을 맡아 보았던 김청송의 전도로 1898년 설립된 집안현 이양자(裡楊子)교회가 유명하였다. 임오군란(1882년) 때 피난 온 한국인들이 집단 거주하던 이양자 산골짜기에 교회가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압록강 연변 20여 개 한인촌 마을마다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처럼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만주에서 세례교인이 생겨났고, 말로 번역된 성경을 읽은 개종자들이 생겨나 선교사들이 들어와 세례를 베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를 두고 언더우드는 "우리는 씨를 뿌리러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 이미 뿌려진 씨의 결실을 얻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하였다. 우리 민족이 주체적으로 복음을 수용하고, 전파한 결과 '성경 중심적' 교회의 역사가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
누가복음, 1882년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로스, 매킨타이어 공역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로 한국개신교 최초의 성서이다. 1878년 서상륜에 의해 처음 번역된 이래 몇번의 수정을 거쳐 1882년 발간되었다. 장과 절 표시가 없고 띄어쓰기가 생략되어 있으며, '예수' 앞에서 띄어쓰기를 하는 대두법(擡頭法)을 사용하였다. 신의 명칭을 '하나님'으로 표기하였다. 51페이지 분량의 작은 성서이나 한국기독교사에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된 것보다 훨씬 오래갈 기념비”로 평가된다. 만주에서 출판된 한국 개신교 최초의 한글 성서이다.
제자행적(사도행전), 1883년 한문 성서를 대본으로 번역한 초기 한글성서,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로스, 매킨타이어 공역
1882년 발행된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이어 세번째로 발행된 한글성서이다. 이 제자행적은 《누가복음》을 수정하여 《사도행전》과 함께 묶은 합본성서이다. '예수' 앞에서 띄어쓰는 대두법을 사용하였고 신(神)의 명칭을 '하나님'으로 표기하였다. 장·절 표시가 없으며 지명이나 인명을 원문 그대로 표기하려고 노력하였다.
신약성서 마태전, 1884년, 이수정 편역 , (출처-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자료)
마가전복음서언해, 1885년 이수정 역
마가전복음서언해, 1885년 이수정 역
일본에 가서 농학을 공부하려 했던 이수정은 1883년 토쿄 노월정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미국성서협회(ABS)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루미스(Henry Loomis) 일본지회 총무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토를 단 한문성서 5종 즉 현토한한신약성서와 한글번역성서인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를 번역하였다.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는 국한문 혼용 성서로 한문 옆에 한글을 병기하고 있으며 고유명사를 가능한한 그리스어 원문성경의 발음대로 표기하려한 노력이 역력하다. 이 성서는 1885년 2월에 요코하마에서 6,000부가 인쇄되어 출판되었고,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처음 한국에 가져오게 되었다.
예수셩교젼셔,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로스(J.Ross), 매켄타이어(J.Macintyre) 공역
1887년 만주 봉천(奉天)에서 출판된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이다. 번역 주관자가 로스(J.Ross)였기 때문에 일명 '로스역성경'(Ross Version)이라 한다. 이 번역작업에 참여한 한국인 개종자들은 초기 기독교 신앙공동체 형성에 기여하였다. 이 성서는 중국어 음역표기에서 벗어나 서구식에 가깝게 정리되어 용어사적인 공로가 크다. 절 표시가 되어 있으나, 대두법 표기는 없어졌으며, 신의 명칭은 '하나님'으로 표기하였다. 짙은 평안도 사투리가 많은 특징이 있다. 이 신약전서는 국내에서 신약전서가 발간되는 1900년까지 한국교회에서 수많은 영혼에게 복음의 빛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다.
예수성교전서, 1887년 만주에서 출판된 최초의 한글판 신약전서(복제본
누가복음전, 1890년, 성서번역위원회 역
요한복음전, 1891년 M.C.Fenwick 역
마태복음, 1892년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로스, 매킨타이어 공역
1892년 예수성교본 발행의 마지막 단편이며, 이후 선교사들의 성서위원회에서 성경번역이 본격화되었다. 순한글본으로 신의 명칭을 '하나님'으로 표기하였으며 띄어쓰기는 하지 않았고, 각 절 표시가 되어있다.
사도행전, 1895년 성서번역위원회 역
마가복음, 1895년, 성서번역위원회 역
<1900년대 아후, [출처] 성경번역사|작성자 ds550509 )
신약젼셔, 1900년, 성서번역자회, 105 x180 mm. 930면. [출처] 성경번역사|작성자 ds550509
《신약젼셔》(1900)은 성서번역자회가 발행한 최초의 신약전서이다. 성서번역자회는 한국교회의 출판요구에 부응하여, 1892년부터 발행된 낱권성서들을 한권으로 묶어 1900년에 발행한 것이다. 이 신약전서는 불완전한 시험역으로, 성서번역자회역과 개인역의 합본이다. 즉, 마태복음에서 로마서까지는 성서번역자회의 공식적인 의결을 거친 시험역이고, 고린도전서이후 서신서들은 성서번역자회의 수정 및 독본을 거치지 않은 개인역이다. 이것을 기반으로하여 나온 공인역이 1906년 《신약젼셔》이다. 1900년 신약전서는 큰활자로 1만부 발행된 서울 ‘삼국문자인쇄판’[미이미교회인쇄소]과 작은 활자로 1만2천부 발행된 ‘요코하마분사인쇄소판’이 있으며, 본 성서학문헌정보자료실은 요코하마판을 소장하고 있다. [출처] 성경번역사|작성자 ds550509
신약젼셔, 1900년, 성서번역자회
新約全書 국한문, 1906년, 유성준. 경성: 미국성서공회, 130 x 187 mm, 524 면
1906년에 발행된 <新約全書 국한문>는 국한문으로 쓰여진 최초의 성경이다. 이 성경은 유성준 등이 번역하여, 영국성서공회와 미국성서공회가 동시에 발행하였다. 이 성경은 한문성서에 한글 토를 단 것에서 약간 발전된 형태이기 때문에, 고도의 한문지식이 없이는 읽기 어려워 일반인은 쉽게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문에 익숙한 지식층에 널리 읽혀 1930년까지 계속 발행되었다. 이 성경은 고종 황제에게 헌정되어 치하받았는데, 이 사실을 통해 한국에서 성경과 기독교가 명실공히 국왕에게까지 공인,수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 성서공회 자료실은 서로 크기가 다른 2권의 초판본을 소장하고 있다.
[출처] 성경번역사|작성자 ds550509
新約全書 국한문, 1906년
구약젼셔, 1911년, 성서번역자회 옮김. 대영성서공회 출판, 185 x 130 mm.
1910년 구약성경의 번역이 완성되고 1911년 구약젼서가 간행됨으로써 한글로 완역된 최초의 성경젼서가 한국인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1911년 발행된 구약젼셔는 일본 요꼬하마의 ‘福音印刷合資會社’에서 인쇄되고 ‘조션 경셩 대영셩서공회’와 ‘죠션 미국셩셔공회’의 영국인 민휴(Miller)와 미국인 방거(Bunker)를 발행자로 하여 각각 10,000부씩 모두 20,000부가 발행되었다. 구약젼셔의 번역은 주로 레널즈와 김정삼, 이승두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인쇄는 4호 인쇄활자를 사용하였고 전체 2650면의 방대한 분량이 되었다. 따라서 구약젼셔는 2권으로 나뉘어 발행되었는데 뎨일권(제1권)은 창셰귀에서 력대하까지(1350면), 뎨이권(제2권)은 에스라에서 말라기까지(1300면)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창셰귀에만 ‘모세의 천재경’이라는 부제목을 붙여 놓고 있으며 시편119편에는 히브리어 자음 22자의 음역이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이 구약젼셔와 1906년에 공인된 신약젼셔를 합쳐 1911년 셩경젼셔가 3권으로 최초로 발행되었고 이것을 일반적으로 舊譯으로 불러 개역성경과 구분하고 있다.
[출처] 성경번역사|작성자 ds550509
구약젼셔, 1911년, 성서번역자회 옮김
셩경젼셔, 1911년, 성서번역자회 옮김. 대영성서공회. 190 x 130 mm, 구약 2650면. 신약 744면.
1906년에 발행된 신약과 1910년에 번역완료된 구약을 합쳐서,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전서가 1911년에 발행되었다. 한권으로 된 것과 세권으로 된 것 2종이 있는데, 세권짜리는 제1권은 구약 창셰귀에서 력대하까지, 제2권은 구약에스라에서 말라기까지, 제3권은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계실ㅅ대유대디도”와 “사도행젼디도”가 천연색으로 두 장 들어 있으며, 신의 명칭은 신구약 모두 ‘하나님’으로 통일되어 있다. 중국문리성서의 영향으로 한문투의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이 성경전서는 개신교의 성서번역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1887년 <예수셩교젼셔>가 발행된지 25년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나라 성서번역사상 하나의 큰 발전을 의미한다.
셩경젼셔, 1911년, 성서번역자회 옮김
성서번역위원회
예수교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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