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과 사울의 통치(사무엘상)

2008. 7. 3. 23:42신학자료/5.성경신학자료

    사무엘과 사울의 통치(사무엘상)
     

    1. 사무엘의 탄생

        사무엘의 탄생이야기는 사사 삼손의 탄생이야기와 유사하다. 한나의 기도로 탄생한 사무엘은 하나님께 바쳐지고 성전에서 일하게 된다(삼상 1:1-2:21).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식이 없을 때 하나님께 서원하는 경우가 많다. 아들을 주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이다. 딸을 주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 경우를 보면 딸은 별로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나 보다. 그러나 어디 여자 없이 역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남성위주의 사회가 낳은 기형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성서에서의 탄생설화는 그 인물이 장차 큰 일을 하게 될 때 소개된다. 모세가 그랬고 삼손을 비롯해서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이야기가 그렇다. 종종 탄생이야기는 그 인물의 비범함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며 대개 후대의 사가(史家)들에 의해 미화된다.
     
     

    [그림: 엘리가 사무엘을 가르치고 있다. 게리트 도우 작(Gerrit Dou, 1613-1675).]
     
     

    2. 엘리의 몰락

        실로의 제사장이자 사사였던 엘리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망나니들이어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엘리가 늙자 그 아들들이 회막(會幕) 어귀에서 일하는 여인을 겁탈하는가 하면 아버지의 말도 무시한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어지고 엘리시대의 종말을 고한다(삼상 2:22-36). 그에 반해 사무엘은 야훼의 은총을 받은 충실한 제사장이 될 인물로 부상한다. 하루는 아이 사무엘이 성전에서 자고 있는데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세번씩이나 엘리에게 가봤으나 엘리는 사무엘을 부른적이 없다고 한다. 마침내 엘리는 야훼께서 사무엘을 부른 것이라 여겨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가 자기에게 고하라고 일러 둔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그 말씀은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진다(삼상 3:1-18). 사무엘은 예언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타락한 엘리 가문의 심판을 선고하는 '중재자'(mediator)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사사시대의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제사장의 권한이 강대해지고 제사장은 사사의 역할을 겸한 것 같다. 사무엘은 성전의 제사장으로서, 때로는 예언자로서, 때로는 전쟁 영웅으로 활약하는 복합적인 인물이었다. 마치 모세가 다양한 모습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중재하는 예언자로 활약했듯이 사무엘 역시 그 모습이다. 예언자사상을 강조하는 신명기사가(DH)의 정신이 역사서에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역시 신명기 정신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야훼주의자들이었음을 생각할 때 이스라엘의 위대한 영웅은 당연히 예언자의 모습으로 비추어 진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 '선지자'(나비)로서의 명성을 얻고 하나님의 종으로 추앙받는다(삼상 3:19-21).

        사무엘의 탄생설화가 엘리가문의 몰락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등장한 것을 볼 때 엘리와 사무엘 사이에 정치적 알력이 있었던 것 같다. 엘리의 자식들이 저지른 죄는 블레셋 족속의 침략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환난을 겪게 된다.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법궤가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게 된다. 제사장이자 사사였던 엘리 역시 의자에서 넘어져 죽는다(4:1-22).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사건은 이스라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고대의 전쟁은 사람들 간의 전쟁보다는 자기들이 믿는 수호신(守護神)간의 싸움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벌인 전쟁은 모두 성전(holy war)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법궤를 빼앗긴 것이다.
     
     
     


    [그림: 이집트 군사와 바다 족속이라고 불려졌던 블레셋 사람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 기원전 1177년 경에 발생한 사건을 그린 것으로 람세스 3세의 궁전 벽에 그려져 있다. 블레셋 사람들은 머리에 깃털을 달고 전투에 임했으며, 이들은 가나안의 해변가를 공략하여 그곳에 정착하기도 했다(BAR 91-6-45).]
     

        블레셋은 법궤를 빼앗아 자기들의 신(神) 다곤의 곁에 두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법궤를 빼앗은 사건은 고대 근동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승리자들은 적으로부터 노획한 신(들)을 전승기념물로 간주하고 자기들의 신전에 진열하기도 했다. 그것은 자기네의 힘을 과시하면서 패전국의 무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때로는 노획한 신을 적에게 돌려주기도 했지만 그것은 패전자들에게 굴욕감을 더해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야훼의 법궤를 빼앗긴 것은 수치중의 수치였다. 그래서 역사가는 법궤에 얽힌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한다. 야훼의 법궤 옆에 있던 다곤 신상이 무너져 내려 박살이 났으며, 블레셋 사람들은 피부병으로 고초를 겪는다. 자기들에게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고 야훼의 법궤를 가져온 블레셋 사람들은 그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에게 돌려주기로 의견을 모은다(삼상 5장). 노획한 신을 되돌려보내는 것도 함부로 할 수 없었나 보다. 그들의 제사장과 복술가들이 모여 야훼께 속건제(贖愆祭)를 드리고, 금으로 만든 다섯개의 종기모양과 쥐형상을 수레에 실어 법궤와 함께 이스라엘로 보내기로 한다. 이들의 말대로 야훼의 궤는 벧세메스라는 지역에 옮겨졌는데 그 지방사람 역시 야훼의 궤를 보았기 때문에 오 만명 이상이 죽게 된다(삼상 6장). 법궤설화는 이스라엘의 체면을 살려주고 있다. 법궤를 잃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엘리가문의 죄악이요, 그로 인한 블레셋 족속의 침략은 일시적인 재난에 불과하다. 블레셋의 다곤 신도 야훼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며 야훼의 법궤를 잘못 취급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3. 사무엘의 활약
        이제 사무엘이 등장해야 한다. 엘리의 몰락과 사무엘의 등장은 정해진 순서이다. 법궤는 가얏여아림에 옮겨져서 그 곳에 20년동안 안치된다(삼상 7:1-2). 이 법궤는 후에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옮겨진다(삼하 6:1-11).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에 모으고 금식을 선포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야훼께 번제를 드릴 때 블레셋이 공격하자 하나님은 큰 우박으로 그들을 물리친다. 사무엘이 사는 동안 이후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지 않았단다. 사무엘은 해마다 벧엘-길갈-미스바를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리다가, 라마로 돌아와 사사의 직무를 행하며 야훼를 위한 제단을 쌓는다(삼상 7장). 사무엘의 모습에서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사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제사장이자 예언자이며 판관으로서의 사무엘은 여러지역을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지파중심의 공동체가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서서히 군주제로 전향하는 과정에서 사무엘은 활약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영웅으로서의 사무엘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비록 블레셋의 군대를 물리치긴 했지만 그것은 사무엘의 용맹함 때문이 아니라 갑자기 쏟아진 우박 덕택이다. 그 우박은 사무엘에게 승리를 안겨주기 위한 야훼의 선물이었음을 생각할 때 사무엘은 야훼의 은사를 직접적으로 받는 영적 지도자(charismatic leader)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나 보다. 엘리의 아들들이 타락한 덕택에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사무엘도 나이가 들자 똑같은 경험을 하게된다. 사사들이 된 사무엘의 아들들이 뇌물을 받고 재판하는 등 백성의 원성을 사게 된다(삼상 8:1-3). 이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와서 왕을 세워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른다.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에 사무엘이 순순히 응할 리가 없다. "지상의 왕을 요구하는 것은 야훼를 거역하는 것"이라는 사무엘의 말에도 백성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왕을 요구한다. 사무엘은 왕제도의 폐단을 들어 백성들을 설득한다. 왕을 세우면 그 왕은 백성들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군인을 만들고 왕궁을 위해 노역하게 하며, 딸들은 시녀로 전락하게 될 것이란다. 백성들과 사무엘 사이의 실랑이는 결국 사무엘의 양보로 결말지어 지고,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기에 이른다(삼상 8:4-22).
     

    4. 이스라엘의 왕권 형성

        마지 못해 사울을 왕으로 세운 사무엘은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사울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해 갈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무엘과 사울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고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을 요구하게 된 배경을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내부적인 요인으로서 백성들이 처음에 왕을 요구하게 된 배경은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가 되어 바른 정치를 하지 못한 사실에 기인한다(8:3). 약 250여년에 걸쳐 왕제도를 거부하면서 평등사회를 구축하고자 노력했던 이스라엘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오히려 경제적인 불평등을 느끼게 된다. 특히 므낫세, 에브라임, 베냐민 지파 중심으로 부가 편중되었으며, 엘리와 사무엘의 아들들이 제사장의 직권을 남용하고 백성들을 위해 정당한 재판을 행하지 않자 공동체의 일체감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내부적으로 치안부재와 부조리가 판을치게 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게 된다. 외부적 요인으로 블레셋의 침략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들에게 법궤를 빼앗긴 사건은 이스라엘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깨버렸으며, 민족의 장래를 어둡게 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우리도 다른 나라와 같이 왕을 세워 그들과 싸울 것이라"고 요구하기에 이른다(8:20). 당시 블레셋은 다른 가나안의 도시국가와는 달리 과두지배체제를 형성하고 있었고 철제무기를 이용하여 기동성있는 공격력을 갖추고 있었다. 블레셋의 강력한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 이스라엘도 사사중심의 부족 연합체에서 왕권중심으로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었다. 대내적으로 민심이 이완되고, 대외적으로 블레셋의 위협에 직면한 이스라엘은 급기야 왕정제도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우리 역사에서도 발견된다. 옛날 진한 땅에 여섯개의 촌락이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 6부의 조상들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로 되어 있다. 6부의 조상들이 각각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 언덕에 모여 의논한다. "우리들이 위로 임금이 없어서 백성들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제멋대로 하고 있으니,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을 삼아서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삼한시대를 거쳐 왕조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혼란을 극복하고 대외적으로 방어태세를 굳건히 하기 위해 여러 부족이 연합하여 왕권을 확립한 것으로 여겨진다. 진한의 부족을 병합하여 신라의 초대왕이 된 이가 바로 박혁거세로 알려지고 있다.
     
     

    5. 왕이 된 사울

        이야기는 사울로 넘어간다.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불확실하지만 소년 사울은 아버지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에브라임 산지를 두루 헤맨다(삼상 9:1-4). 성서기자는 사울을 가리켜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위는 더하더라"고 보도한다(9:2). 사울은 벌써 왕이 될 수 있는 용모와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암나귀를 못찾은 사울은 사환의 제의에 따라 당시 신점자(diviner)로 유명한 사무엘을 찾아간다(9:5-14). 사울이 자기를 찾아 올 것이라고 미리 예견했던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다. 이때 사무엘의 모습은 왕제도를 반대했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사울에게 아주 호의적이다. 하나님 역시 사울이 나타날 것을 미리 사무엘에게 계시하면서 사울이 왕되는 사실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9:15-17). 이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이 왕제도를 요구할 때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서로 대립된 상태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사무엘의 모습도 삼상 8장에서는 왕권에 반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반면에, 삼상 9:17-27과 12장에서는 찬성하는 모습으로 비추어 진다.

        하지만 사울이 왕이 된 사실을 백성은 아직 모르고 있다. 이 일은 사무엘과 사울 사이에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이다(10:1). 사무엘의 지시로 암나귀를 찾은 사울은 예언자의 무리들이 있는 산에 이른다. 이 때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임하자 그는 예언자처럼 예언을 하는 체험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울도 선지자 가운데 하나더냐"라는 속담을 만들어 내게 된다(10:2-13). 이 말은 "미운 오리새끼 처럼 환영을 받지 못했던 사울이 예언자일 수 있느냐"라는 빈정대는 말로 종종 인용된다. 이것은 사울을 부정적으로 보는 신명기사가의 편견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이미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은 이제 백성들 앞에서 정식으로 왕이 되는 의식(ritual)을 거친다. 사무엘은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으고 온 지파 가운데서 사울을 선택한다. 제비를 뽑아 왕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 뽑혀 명실공히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다(10:17-24).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기서 사울과 사무엘은 이전에 서로 만난 사실이 없는 것 처럼 행동하고 있으며 소년이었던 사울은 이제 어느덧 장성한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사울이 비밀리에 왕이 된 사건과 공개적으로 왕이 된 사건을 별개로 취급한다. 두 이야기는 각각 후대에 전해지다가 성서기자에 의해 연속된 이야기로 소개된 것이리라.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하자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구원을 요청한다(삼상 11:1-4). 사울은 마침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 소식을 전해 듣는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내리고 암몬족은 사울에게 크게 패한다(11:5-11). 이미 왕으로 세워진 사울은 밭에서 소를 몰고 있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영을 받아 전쟁영웅이 되어 적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사울이 아직 사사의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자 벡성들은 사무엘에게 "누가 사울을 왕으로 세울 것을 반대하느냐"고 항의하면서 길갈로 가서 사울을 다시 왕으로 세운다(11:12-15). 우리는 사울에 얽힌 이야기가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울은 사무엘에 의해 비밀리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가 하면(삼상 10:1), 미스바에서 공개적으로 뽑혀서 왕이 되는가 싶더니(10:24), 이제는 암몬사람을 물리친 것을 보고 길갈에서 다시 왕으로 추대된다. 아마 사울이 왕이 된 이야기가 다양하게 전승된 모양이다. 성서기자가 사울의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를 줄거리에 맞게 배열한 것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볼 때 서로 일치하지 않은 면이 발견되며 그 원인이 사무엘과 사울 사이의 갈등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왕을 세우는데 주저했던 사무엘측과 새롭게 부상하는 사울측의 대립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을 변호하는 연설을 한다(삼상 12장). "내가 사사로 있는 동안 백성들에게 나귀나 소를 취했으며 누구를 속인적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백성들은 자기들을 속인적이 결코 없었다고 응수한다. 이에 사무엘은 야훼가 왕되심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왕을 요구하자 '야훼께서 지상의 왕을 허락하신 것'이라는 요지의 설교를 한다(12:12-13). 왕을 세웠으니 이스라엘이 야훼를 좇으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고 악을 행하면 왕과 함께 다같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12:14-25). 사무엘이 백성앞에서 자신의 통치권을 새로 임명된 왕에게 위임하는 모습이며, 다른 한편으로 아직도 자신의 위치가 확고하다는 것을 과시한다. 하나님께 범죄한다면 왕과 함께 백성을 멸할 것이라는 사무엘의 말은 사울의 행위를 지켜보겠다는 으름장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대리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사무엘은 당시만 해도 왕을 세우고 페위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울이 왕으로 즉위된 때가 대략 서기전 1,030년으로 여겨진다. 사울은 아직까지 사사의 티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사무엘과의 갈등 속에서 왕다운 역할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사울은 왕이라기 보다는 전쟁영웅인 '나기드'였다. 사울의 비극은 마지막 순간까지 정권을 놓지 않으려는 사무엘과의 불화에서 시작된다. 철제무기로 무장한 블레셋 병사 수만 명이 쳐들어 오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급한 나머지 굴과 수풀과 바위틈으로 몸을 숨기는 절박한 상황이 초래된다(13:1-7). 사울은 길갈에서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다. 사무엘이 와서 전쟁을 위한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약속한 날짜에 사무엘은 도착하지 않고 블레셋이 곧 길갈로 내려올 것 같아 사울이 대신 야훼께 희생제물을 바친다(13:8-9). 번제를 바치고 나자 현장에 나타난 사무엘이 사울을 비난한다. 사울이 야훼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참조. 삼상 10:8). 그래서 사울의 왕권이 위태롭단다(13:13-14).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울은 정한 기한대로 블레셋의 위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을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을 어긴 장본인은 사무엘이 아닌가? 그 책임을 야훼의 이름으로 사울에게 떠넘기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사울의 왕권이 길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내린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대리자인가? 그렇다면 사울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 엘리의 경우처럼 사사들은 제사장의 역할을 겸하기도 했다. 사무엘 역시 제사장과 예언자의 역할과 더불어 사사의 임무를 수행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사울 역시 사사로서 혹은 왕으로서 야훼께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다만 사무엘의 제사장 지위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약속한 대로 일주일을 기다린 것이다. 여기서 사무엘은 적어도 사울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앞선것 같다. 어쩌면 처음부터 왕을 세우기에 주저했던 사무엘이 사울의 잘못을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후에 사무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운 덕택에 신명기사가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사울 왕조가 지속되었다면 사무엘은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부정적인 인물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지도: 사울왕국의 경계: 주전 1025-1006]
     
     

        사무엘은 화가 나서 길갈에서 떠나가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 만이 백성들과 함께 블레셋의 공격에 대비한다(13:15-23). 설상가상으로 사울은 아들 요나단과의 갈등까지 겪게 된다. 요나단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울에게 알리지도 않고 병기든 소년과 단 둘이서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가 그들을 무찌른 쾌거를 이룬다. 나중에 사울이 알고 블레셋 진영으로 가보니 블레셋 병사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도망간다(14:1-23).
     

    7. 사울과 요나단의 갈등

        블레셋과 싸우는 도중 어느날 사울이 백성에게 금식령을 내린다. 사울이 왜 이런 명령을 내리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사울의 금식령이 종교적, 정치적으로 제 때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고대 이스라엘에서 금식이 행해진 경우는 주로 국가의 위기상황이나 공동체적 회개가 요구되는 특별한 경우에 주로 행해졌기 때문이다(참조. 삼상 7:6; 삼하 12:16. 비교. 시 35:13). 수풀에 들어갔을 때 백성들은 땅에서 꿀을 발견하게 되지만 사울이 내린 금령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감히 그 꿀을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14:25-26). 그런데 금령을 듣지 못했던 요나단은 꿀을 먹음으로 해서 사울이 내린 명령을 어기게 된다(14:27).

        요나단의 범죄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울은 제사장에게 이끌려 하나님께 신탁을 구한다: "내가 블레셋 사람을 쫓아 내려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나이까?"(14:37). 하지만 가부(可否) 간의 결정이 나오리라고 생각한 사울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은 그날 대답하지 않았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제사장의 신점을 통해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은 것이다. 신탁을 얻지 못한 사울은 사울은 누군가가 죄를 지었다고 단정하고, 죄인을 가려내기 위해 온 백성을 소환한다. 사울은 백성들을 한 편에 세우고, 자신은 요나단과 함께 다른 한 편에 선다(40절). 제비뽑는 방식으로 둘 가운데 한 쪽을 택한다. 그 결과 사울과 요나단이 있는 쪽이 먼저 뽑히고(41절), 그 다음으로 사울과 요나단 중에서 요나단이 범인으로 지목된다(42절).

        이제 요나단은 사울의 말대로 죽어야 한다. 이 때 백성들이 요나단의 생명을 구한다. 비록 요나단의 범법행위가 백성에게 불쾌감을 주고 공평하지 못한 감정을 심어주었지만 블레셋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그들로서는 요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울의 금식령과 요나단이 금령을 어긴 사건은 사울의 운명을 예시해준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버림받고, 이제는 아들 요나단까지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로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다윗의 등장은 사울을 사면초가에 밀어넣었으며 그 결과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8. 제사보다 나은 순종?

        사울은 이후 계속되는 싸움에서 승리를 거듭함으로써 한 때의 위기 상황에서 벗어난다(삼상 14:47-15:5). 승리를 거듭하는 전쟁을 치루는 동안 사울과 사무엘의 두번째 대립이 표면화된다. 사울이 아말렉 왕 아간을 사로 잡고 전리품 가운데 좋은 것을 남겨둔다(15:6-9). 이것은 사무엘이 사울에게 명한 것과는 다른 행위였다. 사무엘은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고 남녀불문하고 어린 아이를 비롯한 동물까지도 모두 살해하라고 한 것이다(15:5). 이를 어기고 사울은 전리품의 일부를 남겨둔 것이다. 사무엘이 책망하자 사울은 좋은 것으로 야훼께 제사지내기 위해 남겨 놓았다고 변명한다(15:15). 사울이 자신의 부(富)를 위해서 전리품을 남겨두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야훼를 위해서 남겨두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사울은 여기서 결정적으로 실수하게 되고 그 결과 야훼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이후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이 사무엘과 사울사이를 결정적으로 떼어 놓음으로써 사울은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살아간다(15:16-35).

        여기서 발생한 유행어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흔히 듣는 이 구절은 그동안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는 목회자의 권위를 옹호하는데 좋은 방편이 되어왔다. 목회자는 사무엘을 대신한 것이요, 그에게 대적하는 사람은 사울을 대변한다. 한번 생각해 보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해진 사무엘의 명령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우리가 여호수아 1-12장에서 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에 의해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멸한 것일까? 하나님은 과연 그렇게도 인정이 없으신 분인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의 승리를 지나치게 강조하기 위한 고대인의 글쓰기 습성때문일 것이다. 여기서만 해도 그렇다. 아말렉을 무찌를 때 남녀노소를 비롯하여 어린 아이까지 진멸하라고 명하는 사무엘의 주장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인류 역사상 그렇게 잔인한 전쟁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울이 가나안 사람들을 생각해서 전리품을 남긴 것은 아니다. 왕만 사로잡고 백성들은 진멸하였으며 전리품 일부를 남긴 것이다. 사울은 지금까지 한번도 사무엘에게 대항한 적이 없다. 그는 늘 사무엘에게 순종했으며 잘못을 지적받을 때 사죄하곤 했다(15:24-25). 이점에서 볼 때 사울은 자기가 챙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리품을 남겨둔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야훼의 명령을 어긴 사울은 죄인이 되고 그의 왕권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인은 사무엘의 무조건적인 권위에 복종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이 다를 뿐더러 제사장의 권위는 그 인품과 하는 일의 정당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제사장이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 주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수 많은 목회자들은 제사장의 직임을 남용하고 있지 않은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조건적인 강요는 교인을 우매화시키고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합리적이고 바른 인격안에서 제사장은 자기의 소임을 다해야지 종교적인 특권으로 다른 사람을 억압해서는 안될 것이다.
     
     

    9. 왕이 된 다윗

        사울을 버린 사무엘은 은밀하게 다윗을 왕으로 삼는다(삼상 16장). 양을 치고 있는 이새의 아들 다윗을 불러 사무엘은 기름을 붓는다(16:13). 이로써 야훼의 영은 사울을 떠나 다윗에게 임한다. 사울은 이후 나쁜 영에 의해 시달림을 받고 다윗은 사울을 위로하는 수금타는 사람으로 왕궁에 들어간다. 그가 수금을 탈 때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던 사울은 다윗을 무척이나 사랑해 준다(16:14-23). 사울과 다윗의 만남은 이것이 처음인 것 같으며 적어도 다윗 자신도 사무엘에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지 않고 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둘은 자연스럽게 만나고 있다. 이후 다윗의 활약이 소개된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다윗의 세 형들은 사울을 따라 전쟁터로 나간다. 아버지 이새의 명을 받고 형들에게 먹을 것을 주러 온 다윗이 블레셋 장군 골리앗과 싸우게 된다(삼상 17장). 블레셋의 위용에 기가죽어 아무도 싸울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을 때 다윗이 나선다. 양치는 소년 다윗이 나서자 모두 놀랬으나 다윗은 양치는 중에 배워둔 돌팔매질을 이용해 골리앗을 무너뜨린다. 이 일로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불리치고 다윗은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을 모르고 있다. 골리앗을 쓰러 뜨린 다윗을 불러 누구냐고 확인한 다음 사울은 그가 이새의 아들임을 확인한다(17:55-58). 이전의 이야기를 보면 다윗은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탓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골리앗과의 싸움장면에서 그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로 등장하고 있다. 무슨 연유일까? 이것은 사울이 왕되는 사건이 여러번 소개된 것과 같이 사울과 다윗에 얽힌 이야기도 여러 이야기의 혼합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서의 모습은 늘 이렇다. 얼른 볼 때 사건의 전말이 일관성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부분적으로 단절된 부분이 많으며 이야기사이에 논리적인 비약과 불일치가 종종 발견된다. 성서를 대하는 우리들은 이 모든 이야기들이 어느 한 순간에 작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전해진 구전자료(口傳資料)를 기초로하여 혼재된 형태로 기록된 것을 알아야 한다.
     

    10. 사울과 다윗의 갈등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이상할 정도로 다윗에게 호의적이다. 그는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였고 자신의 군복과 칼까지 다윗에게 줄 정도였다(삼상 18:1-4). 요나단의 호의는 다윗이 왕권을 획득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하고 지혜롭게 처신하자 백성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하면서 다윗을 칭송하자 사울은 심히 불쾌해 한다(18:1-9). 다윗은 다시 사울 앞에서 수금타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지지만 실패한다(18:10-16).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했지만 자기 옆에 잡아두기 위해 맏딸 메랍을 다윗의 아내로 주려고 한다. 그 대가로 사울은 블레셋 사람의 양피 백개를 원한다. 이것은 다윗이 블레셋과 싸우는 도중 전사하기를 바라는 사울의 계교였다. 사울의 기대와는 달리 다윗이 승리를 거두어 블레셋 사람의 양피를 가져오자 사울은 이미 시집보낸 메랍 대신에 딸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준다(삼상 18:17-30; 삼하 3:14). 그러나 사울의 아들(요나단) 딸(미갈)까지도 모두 다윗편이다.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사울의 모습에서 우리는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무엇이 사울을 이토록 연약하게 만들었는가? 심리학자들의 분석이 요구되지만 그 첫째 요인은 당연히 사무엘의 편파적 처신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있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의 정치력을 유지하고자 했으며 은밀하게 다윗을 왕으로 세운 행위는 요즘말로 하면 역적행위에 해당된다. 물론 당시의 사회는 아직 왕권이 정착하지 못했던 때이지만 말이다.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 하고 요나단은 사울을 설득하여 다윗을 살리려 한다(19:1-7). 아내 미갈 역시 다윗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다윗은 결국 사울을 피해 사무엘에게로 피신한다(19:18-18). 다윗이 라마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사울이 라마의 나욧으로 향하는 도중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예언을 한다. 종일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 예언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사울도 예언자 중의 하나이냐"라고 했단다(19:19-24). 여기서 우리는 예언현상을 살펴볼 수 있다. 사무엘은 라마에서 예언자가 되고자 하는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이 무리를 지어 예언하면서 생활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 근처에 가는 사람들 역시 예언의 영을 받은 것이다. 예언의 영이 임하면 황홀경에 도취하면서 무아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자신이 벌거벗은지도 모르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린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예언한다(나비)'라고 한다. 사울은 예언자의 일을 수행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아지경에 빠지면서 예언을 한 것을 볼 때 보통사람도 가끔 겪는 현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아무데서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의 무리들이 거하는 산당이나 성전에서 종종 일어난다. 현대인도 가끔 예언하는 은사를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예언의 능력을 받았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사울의 경우를 보라! 다윗을 죽이러가기 위해 쫓아가다가 예언의 영을 받지 않았는가? 이 때의 영은 아마도 악령이었을 것이다. 살기가 등등한 사울에게 선한 영이 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종교현상을 동반하는 예언은 우리의 무전통(巫傳統)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성령의 은사를 가시적인 체험으로 이해하는 일부 교인들은 예언이나 방언의 은사를 사모할 수도 있지만 바울사도가 말한대로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전 13:1-3).

        다윗이 라마에서 나와 요나단에게 가서 사울이 왜 자기를 죽이려는가를 알고자 한다(삼상 20장). 요나단에 의해 확인된 사울의 계속적인 살해의도는 다윗으로 하여금 또다시 도망하게 만든다. 다윗은 요나단과 결별하고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피신한다. 아히멜렉에게 야훼께 바치는 거룩한 떡(진설병)을 얻어 먹고, 골리앗에게서 뺏은 칼을 얻어 도망간 곳이 블레셋 영역의 가드였다. 그곳에서 다윗은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또 다시 아둘람에 있는 굴속으로 피신한다(삼상 21:1-22:2). 형제들과 함께 모압 땅 미스베로 간 다윗은 모압 왕의 도움으로 피신생활을 하다가 유다 숲속으로 들어간다(22:3-5). 이에 뒤질세라 사울은 다윗을 붸아갔지만 이미 떠난 뒤엿다. 놉에 있던 제사장들이 다윗을 피신시켰다는 이유로 처형당하고 그 중 한 사람인 아비아달이 살아서 다윗에게 이 사실을 고한다(22:6-23).

        사울에게 추격을 당하고 있는 다윗에게 구원의 요청이 왔다. 블레셋이 그일라 지방을 탈취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다윗은 야훼 하나님께 신점(divination)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다윗시대까지 제사장들은 우림과 둠밈을 이용하여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곤 했다. 전쟁을 하거나 왕을 세울 때, 혹은 도읍을 정할 때 가부간의 결정을 하고자 신점을 구한것이 통례였다. 다윗 옆에 제사장 아비아달이 있었던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 신점은 제사장에 의해 수행되었을 것이다(참조. 삼상 23:6). 비록 여기서 우림과 둠밈이 사용된 흔적은 없지만 '야훼께 여쭙다'(샤알)라는 히브리어 동사가 신점행위를 드러낸다.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 백성을 구하라는 결과를 얻자 부하들이 다윗을 가로막는다(23:22). 사울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에서 블레셋과 전투를 벌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윗은 재차 신점을 구한다. 결과는 마찬가지로 블레셋과 싸우라는 것이다. 주저하던 다윗의 부하들은 이제 힘을 얻고 블레셋과 싸워 승리를 거둔다(23:4-5).
     
     

    [그림: 이집트의 포로가 된 블레셋 전사-람세스 3세가 안치된 메디넷 하부 신전의 벽에 새겨짐- 주전 1175년]

        그일라를 구해주었건만 사울이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그 지방사람을 신뢰할 수 없어 다윗과 그의 부하들 약 육백명은 다시 황무지로 피해간다(삼상 23:13-14). 다윗을 좆아 사울은 십이라는 지방에 이르렀으나 블레셋이 자기 영토에 침입했다는 전갈을 받고 급히 되돌아간다(23:15-29). 이로써 사울의 추적이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블레셋을 따르던 사울은 다시 다윗을 추격한다. 정말 끈질긴 추격이요 생명을 건 싸움이다. 무엇이 그토록 사울과 다윗을 �고 �기게 했는가? 왕으로서 차분히 머물면서 정사를 돌볼 겨를이 없었던 사울은 블레셋과 싸우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 반면에 그 아들 요나단은 다윗과 계속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다(23:15-18). 요나단은 사울의 몰락과 다윗의 부상은 이스라엘에게 숙명적인 것이라고 미리 짐작이라도 한 것 같다.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이 굴속에 들어가 용변을 보는 사이에 다윗은 따라 들어가 사울의 옷자락만 베고 나온다(24:1-7). 다윗이 사울을 해칠 의도가 없어 옷자락만 베었다는 사실을 사울에게 알리자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한다(24:8-15). 사울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예견하고 자기 집안을 지켜줄 것을 간청한다(24:16-22).

        그 사이 사무엘은 죽고(25:1), 다윗과 아비가일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삼상 25:2-44). 수 천마리의 양떼를 거느린 나발에게 다윗이 부하들을 보내 먹을 것을 청하자 구두쇠 나발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것을 보고 있던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 급히 떡과 포도주를 챙겨 나발모르게 다윗에게 보낸다. 아내의 지혜스러운 행동으로 다윗군대의 공격을 피한 나발은 위기를 모면했으나 곧 죽고 만다. 다윗은 나발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는다(25:39-42). 그 사이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이 없는 사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졌고 다윗은 또 다른 여자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이한다(25:43-44). 사울과 다윗의 아슬아슬한 숨바꼭질 과정에서 일어났던 여러가지 일이 사이 사이 소개되고 있다.

        다윗이 하길라에 숨어 있다는 말을 듣고 사울은 급히 추격한다. 삼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추격한 사울은 광야앞에서 진을 치고 일전을 치룰 준비를 한다. 이것은 마치 전쟁과 같다. 무슨 철천지 원수진 일이 있다고 이다지도 집요하게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가? 사울이 진중에서 자고 있는 동안 다윗은 몇몇 부하들과 함께 사울이 자는 곳을 덮친다. 옆에 있던 아비새가 사울을 죽이라고 재촉했지만 다윗은 사울 옆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옴으로써 다시 한번 사울의 목숨을 살려준다. 야훼께서 기름부어 세운 왕을 죽이게 되면 결국 자신도 전쟁터에서 죽게 된다는 것이다(26:1-16). 잠이 깬 사울은 다윗이 자기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 한번 회개함으로써 다윗에게 참패를 시인한다(26:17-25).
     
     

    11. 블레셋 편이 된 다윗

        그러나 다윗과 사울은 여전히 화해할 수 없는 사이로 남는다. 다윗은 갈곳이 없어 블레셋 땅에 거하게 된다.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도망한 다윗은 이제 블레셋과 한 패가 되어 그들과 함께 아말렉을 침공하기도 한다(삼상 27:1-28:2). 이로써 후에 왕이 된 다윗은 블레셋과 한패가 되어 이스라엘에게 위협이 된 적이 있었다는 오명을 남기게 된다. 신명기사가는 다윗이 사울의 추격때문에 할 수 없이 블레셋 땅으로 가서 그들과 한 패가 될 수 밖에 없었다고 그를 옹호한다(삼상 27:1-2).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싸움에서 보여주는 것은 언제나 다윗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사울은 미친듯이 다윗을 쫓아다니는 정신병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만약 심리학자가 이 사실을 그대로 믿고 사울의 심리상태를 분석한다면 그것은 사울의 본래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후대의 역사가인 신명기사가에 의해 사울은 철저히 못난사람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윗은 위대한 인물이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소개된다. 이것은 다윗과 사울과의 세력다툼에서 사울이 참패한 결과 때문이다.
     
     

    [그림: 블레셋족의 채색도기-주전 12-11세기-미케네 영향작품]
     
     
     

    12. 사울의 최후

        다윗을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게 된 사울은 블레셋의 침략을 받게 된다(삼상 28:4). 용장 다윗도 이제는 사울 옆에 있지 않으며 백성들은 이미 사울보다는 다윗에 기울어져 있었다. 사무엘도 이미 죽고 아무도 사울을 위해 블레셋을 막아줄 사람이 없었다. 사울은 답답하여 하나님께 신점을 구한다.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를 통해서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사울은 모종의 결심을 한다(28:6). 사무엘이 죽자 사울은 그 땅에 신접한 자와 무당들을 몰아냈다(28:3). 그런데 이제 다급하게 되니까 자기가 몰아낸 무당을 찾는다. 변장을 하고 엔돌에 있는 무당을 찾아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라고 요청한다(28:7-11).

    [그림: 엔돌의 무녀(초혼자)와 사울-사무엘의 영]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라는 요구에 그가 곧 사울 왕인 것을 알아채고 그 무당은 벌벌 떤다. 사울은 그녀를 안심시키고 사무엘이 하는 말을 듣는다. 땅에서 올라온 사무엘의 혼은 사울을 돕기는 커녕 그의 죽음을 예고하는 말만하고 사라진다(28:12-19). 사울은 심히 두려워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괴로워하자, 그 무당은 사울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사울이 기력을 되찾도록 돕는다(28:20-25). 여기서 엔돌의 무당은 엄밀하게 말한다면 '무당'보다는 '초혼자'(招魂者)이다. 죽은자의 혼을 불러들이는 것은 아무 무당이나 하는 것은 아니다. 초혼점(necromancy)을 행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매우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함부로 행해지지 않았으며 대개는 금기로 여겨졌다. 특별한 상황에서만 행해지는 초혼점을 사울은 요구한 것이다. 자기의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울을 도운 그 초혼자에게서 '돌봄의 사역'을 엿볼 수 있다. 원래 무당은 자기에게 오는 손님을 가리지 않는다. 지위가 높든 낮든, 그 상황이 자기에게 유리하든 안하든 상관하지 않고 오는 손님을 박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경숙 교수는 엔돌의 초혼자를 '포용적 종교가'로 간주하기도 한다.
     
     

    13. 블레셋을 떠난 다윗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자 그곳을 떠나 이스르엘로 향한다(삼상, 29:1-11). 다윗은 그후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많은 전리품을 얻게 된다. 이 전리품을 분배하여 유다의 장로들에게 보내 그들의 환심을 얻고 그 밖의 지역에도 전리품을 보냄으로써 자신의 이미지 개선에 성공한다(30:1-30). 이에 반하여 사울은 길보아 전투에서 블레셋과 맞아 싸우다 부상을 입는다. 병기든자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사울은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자 칼을 뽑아 그 위에서 자결하고 만다(삼상 31:1-6).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세 아들이 죽어 있음을 발견하고 그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박아 걸어두고, 갑옷과 투구는 자기들의 여신 아스다롯의 집에 둔다. 블레셋이 물러간 다음 백성들은 그들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내고 칠일 동안 금식했다는 이야기다. 이로써 사무엘상이 막을 내린다.
     
     
     

    [그림: 전형적인 바다족속의 배모양-주전 13세기]
    [보충설명]
     
     
     

    맺음말

        사사 사무엘로 시작하여 사울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사무엘상은 사무엘과 사울의 알력과 사울과 다윗사이의 갈등의 연속이다. 다른 역대왕들과는 달리 한 번도 이방신을 섬긴다거나 우상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사울은 사무엘의 눈밖에 나서 어려움을 겪는다. 설상가상으로 왕권이 확립되기도 전에 다윗이라는 인물이 나타나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자 번민에 쌓이게 되고 급기야는 정신질환자 처럼 행동하게 된다. 집요하게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의 모습에서 우리는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사울을 보면 마치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다. 좀 잘해보려고 하지만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을 때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 결과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자꾸하게 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사무엘상의 제목을 '비운의 사나이 사울'로 잡아 본 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사울에게 돌을 던지기에는 무리가 있다. 신명기사가의 역사관은 철저히 다윗왕조를 옹호하는 측면에 서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객관적으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사울은 사무엘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정치집단에 의해 패배한 가련한 사나이였다.
성산지기(holyhill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