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과 십자가

2008. 5. 4. 23:49목양자료/1.기독교자료

콘스탄틴과 십자가



 

<로마 카톨릭의 어제와 오늘>(기독교문서선교회) - 랠프 E. 우드로우 著 김덕균/이송훈 共譯 -

로마 카톨릭 교회 내에서 십자가를 우상화 하는 데 기여한 가장 현저한 요소는 유명한 '십자가 환상'(vision of the cross)과 의문이 제기되는 콘스탄틴의 계속되는 '회심'(개종)에 있다.

콘스탄틴과 그의 군인들이 로마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밀비안 다리 전투(the Battle of Milvian Bridge)로 알려진 전투에 직면해야만 했다. 당대의 관습에 따라 하루스피시스(희생동 물의 내장을 보고 그러한 방법으로 점을 치도록 고용된 사람들)의 조언을 구했다. 성경은 바벨론 왕들이 어떻게 이와 동일한 관습을 따랐는가 기록하고 있다. "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두 길 머리에 서서 점을 치되 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의 간을 살펴서 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占卦)를 얻었으므로"(겔21:21-22). 콘스탄틴의 경우에 있어서는 신들이 그에게 원조를 하지 않아 그 전투에서 패배의 고난을 당할 것이라는 점괘를 얻었다. 그러나 환상 또는 꿈에서 그가 후에 말한 것과 같이 그에게 십자가가 나타나 '이는 정복의 표징' 이라는 말이 있었다. 312년10월 28일 그 다음날 그는 십자가(참고로, 앵크 십자가를 말함 - 역자 주)를 내세우며 그 뒤를 따라 진군하였다. 그 결과 그는 그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그 의 적을 패배시켰으며 개종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콘스탄틴의 십자가 환상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인 정되고 있다. 역사가들에 의해 그 이야기가 수집된 유일한 권위는 유세비우스(Eusebius, 카에 사레아의 주교로 콘스탄틴의 명을 받아 안디옥에서 온 사본에는 손도 대지 않고, 이집트의 왜곡된 사본을 사용하여 로마 카톨릭 교회를 위한 50권의 성경을 만든 교회사가 - 역자 주)에게 두고 있다. 그러나 만약 콘스탄틴이 이와 같은 환상을 보았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추론해야 하는가?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교 황제에게 십자가를 상징하는 군기(깃발)를 만들어 그 상징으로 정복하고 죽이도록 지시했다는 것인가?

콘스탄틴이 왕이 된 로마제국은 성경에 '짐승' 으로 묘사되어 있다. 다니엘은 네 개의 제 국으로 상징되는 네 개의 커다란 짐승들을 보았다. 네 개의 제국은 바벨론(사자), 메대와 페 르시아(곰), 헬라(표범), 그리고 로마이다.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네 번째 짐승은 너무 무서워 다른 짐승과는 다르게 상징되었다(단7:1-8).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이 무서운 짐승 로 마제국을 발전시키려고 콘스탄틴에게 십자가를 상징하는 군기를 가지고 정복하라고 말했다 는 근거가 전혀 없음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그 환상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콘스탄틴의 개종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제적으로 사실 그의 개종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설령 그가 그 시대의 교회 관습 들과 관련하여 많은 것들을 제정하였다 할지라도 그는 성경적 의미에서 참다운 개종을 하지 않았음을 이 사실들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가들은 그의 개종이 '그 시대의 표준에 의한다 할지라도 명목상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아마 그가 참다운 개종을 하지 않았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는 그가 개종한 후 몇 차례 살 인 행위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데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개종한 후 자기 부인과 자기 아들을 죽였다. 성경은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한다'(요일3:15) 고 말하고 있다.

콘스탄틴의 첫번째 결혼은 미네르비나(Minervina)와 이루어졌는데 그와 부인 사이에 크리 스푸스(Crispus)라는 아들을 얻었다. 두 번째 부인은 파우스타(Fausta)인데 세 딸과 두 아들을 두었다. 크리스푸스는 뛰어난 군인이 되었고 그의 아버지를 도왔다. 그렇지만 326년 -니케 아 공의회가 열린 바로 직후- 그는 그의 아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이 이야기는 그 이 유를 그의 아들 크리스푸스가 둘째 어머니인 파우스타를 사랑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최소한 파우스타의 고소였다. 그녀는 첫번째 부인의 아들 크리스푸스를 그와 같은 방법으로 몰아내고 그녀의 아들 가운데 하나를 왕위에 앉히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콘스탄틴 의 어머니는 그를 설득하여 그의 아내로 하여금 그의 아들 콘스탄틴에게 순복하도록 했다. 콘스탄틴은 자기 부인 파우스타를 들끓는 목욕탕 안에 넣고 질식시켜 죽였다. 동시에, 그는 그의 누이의 아들을 태형(苔刑)으로 죽였고 누이의 남편도 목졸라 죽였다.

『카톨릭 백과사전』은 이와 같은 사건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말해주고 있다. "심지어 그의 개종 후에도 그는 첫 결혼으로부터 얻은 아들 크리스푸스와 아내 파우스타의 아들과 더불어 그의 처남과 후에 얻은 아들을 처형하였다. …이러한 잔인한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엔 동일한 황제가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충동을 가졌다고 믿기는 어려운 것이다. 인간 본 성이 모순으로 온통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콘스탄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수많은 호의를 베풀었다. 십자가형을 폐지하고 로마에서 잔 인하게 가해졌던 박해도 중지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호의를 베푸는 일을 순수하게 그리스도 인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결단하였는가? 아니면 정치적 동기가 있었는가? 『카톨릭 백과사 전』을 또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몇몇 주교들은 궁전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심지어는 황제를 거룩한 존재인 하나님의 천사로 크게 찬양하여 불렀고 하나님의 아들처럼 하늘에서 통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까지 하였다. 결과적으로 콘스탄틴이 기독교에 호의를 베풀었던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동기였으며 그는 그의 정책을 개진시키는 데에 있어서 단지 종교를 이용한 약삭빠른 폭군으로 간주되었다고 과감히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은 콘스탄틴에 대한 유명한 역사가 두란트(Durant)의 결론이다. "그의 개종은 진실된 것이었는가? 종교적인 신념의 행위였는가? 정치적인 지혜의 극치였는가? 아마 후자일 가능 성이 높다…. 그는 거의 그리스도인의 예배의식을 따르지 않았다. 비록 그가 의지적으로 제 국의 단합에 관심을 갖고 여기에 불일치 의사를 표명하는 자를 억압하였다고 할지라도 기독 교 주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독교계를 동요시켰던 신학적인 관심에서는 전혀 관심이 없 었음을 볼 때 이는 분명해진다. 그의 치세기간 중, 그는 주교들을 정치적인 조력자로 취급하 였다. 그는 주교들을 소환해 공의회를 주재하였고 대다수가 일치하는 의견에 동의하도록 강 요하였다. 참된 신자라면 그리스도인이 먼저 되어야 하고 그 후에 정치가가 되어야 하는데 콘스탄틴에게 있어서는 그 반대가 되었다. 기독교는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수단이었지 목적 이 아니었다."

박해가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지 못했다. 콘스탄틴은 바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독교 내에 이교도들과 갈등이 일어나 끊임없이 분열되자 그 대신 오히려 그는 이 두 종교를 혼합 하여 통일된 제국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직시하고 이러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겠는 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두 종교 사이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십자가 상징도 서로 구분 되게 하는 요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십자가가 사용되었기 때문 이다. 그리고 "콘스탄틴 군대에서 미트라(Mithra)를 숭배하는 자들에게도 십자가가 거리끼는 것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빛의 미트라 십자가를 지니고 오랫동안 싸웠기 때문이 다."

콘스탄틴의 기독교는 혼합물이었다. 비록 그가 이교 신전들로부터 자기의 상을 제거하고 자기에게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을 못하도록 선포했다고 할지라도 백성들은 계속 황제의 신 성을 말했다. 최고 지도자로서, 그는 이교예배를 돌보고 계속 그 권리를 보호하였다. 330년 콘스탄티노플을 바치는 의식에서 반반씩 이교도와 기독교 의식을 사용했다. 태양신 마차가 시장에 진열되었으며 그 마차 위에 십자가를 놓았다. 콘스탄틴에 의해 만들어진 동전들은 십자가가 특징적으로 그려져 있었지만 그러나 또한 마(Mars)나 아폴로(Appollo)를 나타내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면서도 그는 계속하여 농작물을 보호하고 질병을 고 치는 이교도의 마술적 방식을 믿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카톨릭 백과사전』에 잘 지적 되고 있다. 그렇지만 혼합물의 관념인 콘스탄틴의 관습은 분명히 로마 카톨릭 교회가 발전 되고 부로 부유하게 되고 증가된 방법이었다.

콘스탄틴의 어머니 헬레나는 거의 나이가 80이 다 되어 예루살렘으로 순례여행을 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가 거기에 묻혀 있는 세 개의 십자가를 발견했는데 하나는 그리 스도의 십자가이고 다른 두 개는 강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주 교인 마카리우스(Macarius)의 제안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치료의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에 동일시되었지만 반면에 다른 두 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톨릭 백과사전』의 한 항목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참된 십자가의 한 부분이 예 루살렘에 봉함된 은 성물함(silver reliquary)에 남아 있다. 못들과 더불어 잔여 유물(the remainder)이 콘스탄틴에게 보내졌음이 틀림없다. …못들 가운데 하나는 황제의 헬멧을 조이 는데 그리고 하나는 말의 굴레를 채우는 데 사용되어졌다. 교부들에 따르면 이는 선지자 스 가랴에 의해 기록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슥14:20)" 이와 동일한 기사는 십자가에 관한 교회의 일반적인 가르침을 유지하려고 시도하면서 십자가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양하고 그리고 이 전승이(사실 후기에 발전 된 것임) 대부분이 전설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

326년 헬레나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한 것 같다. 그러나 그녀가 십자 가를 발견한 이야기는 약 114년 후인 44-0년인것 같다. 원래의 십자가가 처형된 이후 거의 300년 동안이나 여전히 예루살렘에 있었다는 것은 의심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유대인들의 율법은 십자가 처형에 사용된 후 그 십자가를 태워버리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군가가 실제의 십자가를 발견했다고 생각을 해보도록 하라. 물론 이러한 흥미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나무 조각 안에 무슨 덕(virtue)이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왜냐 하면 십자가는 이미 그 목적을 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21:9)한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들려올려질 것의 모형이었다(요3:15). 그러나 놋뱀이 그 의도된 목적 을 다한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뱀을 주위에 놓아두고 우상화하였다! 그렇지만 수세기 후에 히스기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었다"(왕하18:1-4). 히스기야는 정직히 행했으며 -이교도의 우상들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까지도 파괴하였다. 왜냐하면 현재 그것이 미신적이고 우상적인 방법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때 만약 원래의 참 십자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경배의 대상으로 세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리고 만약 원래의 십자가에 능력이 없다면 단순히 나무 조각의 모양으로 된 십자가 에 능력이 없다는 것은 더욱더 그러하지 않는가?

마치 이집트의 이교도들이 방첨탑을 세울 때 그들이 신의 상징으로서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서는 그 자체의 형상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세웠던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몇몇 사람들은 십자가를 그렇게 믿었던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십자가가 콘 스탄틴을 만약 돕지 않았다면 어떠하였을까? 십자가가 헬레나에게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다 면 어떠하였을까? 십자가가 헬레나에게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어떠하였을까? 십자가가 악한 영들을 쫓아낼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부적과 같이 여기고 있다. 그들은 십자가 를 부적처럼 담고 다니고 있다. 십자가를 교회탑 꼭대기 위에 번개를 쫓고자 두었지만 그러 나 그것은 그것의 높은 위치 때문에 번개를 유인하여 끌어 당기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가정에서 십자가를 사용하는 것은 고난과 질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해 준다고 믿기 때 문이다. '원래'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나무 조각들이 보호자로서 부적으로서 팔려 지고 교환되고 있다.

'목양자료 > 1.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라엘(Israel)  (0) 2008.05.05
안식일과 주일  (0) 2008.05.04
십계명 (The Ten Commandment)  (0) 2008.05.04
유대인의 달력체계  (0) 2008.05.04
예수님 탄생 당시의 통치자들의 상황  (0) 2008.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