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중에서>
2007. 12. 12. 21:26ㆍ참고자료/5,영성 자료
기도에는 여러 가지의 단계와 체험들이 있습니다.
기초적인 기도 중에 능력기도, 은사 적인 기도가 있는데 이것은 기도자의 영성이 별로 발전되어 있지 않아서 주님께서 그의 영혼과 교통하시기가 어려우므로 그의 육체에 은사를 부어주시는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이러한 은사적인 기도는 영혼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성도들이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영적인 어린아이들을 좀 더 자신에게로 이끄시도록 기도의 맛을 보여주는 단계입니다.
이러한 은사기도에는 환상이나 음성, 일종의 황홀경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기도의 초보자들은 여기에 빠지기 쉬우며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한 후에는 우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을 본다고 해도 그것은 영혼의 성숙에는 그리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기도의 능력들을 대단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들은 그들의 마음이 은사자들에게 노출되면,
"아이고, 쪽집게시네요. 과연 신령하시군요. 한 수 좀 가르쳐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그리고는 귓속말을 합니다.
"A보다 B가 더 영권이 센 것 같아."
그러나 영이 조금 자라면 더 이상 신기한 장난감들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 자신을 구하며 그분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키기 원할 뿐입니다. 누가 높으냐 깊으냐 누가 무엇을 체험했느냐. 하는 데는 별로 흥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세계에 조금 들어가서 영적 전쟁을 알게 되고 그 싸움의 현장을 보게 되고 여러 악한 영의 움직임들을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쉽게 긴장하고 이 전투기도에 몰두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 단계는 하나의 과정이기는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빨리 이 은사적 기도에서 발전해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 영적 현상과 느낌에 사로잡혀 마귀와 싸우는 데에 몰두하다 보면 거기에는 어떤 승리감과 자유함이 따라오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근본인 사랑과 누림, 안식, 여유, 따뜻함.. 이러한 것들을 상실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투는 바로 이 전투 후의 사랑의 관계를 누리기 위한 과정이며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세계가 열리고 전투에 몰두하여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는 이기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속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업하시는 집사님의 사무실에 방문하였습니다.
그 사업가는 마침 매우 심각한 표정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몹시 우울해 보이는 군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사업가는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영이 맑은 분이 다녀가셨는데, 우리 사무실을 용 몇 마리가 포위하고 있다는 군요. 그래서 요즘 사업이 안 풀리나봐요."
목사님은 쓴웃음을 짓더니 성경을 꺼내어 한 군데를 펼쳐보았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을 읽어보세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 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라고 되어있지요? 용이 100마리가 여기 있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요."
집사님은 갑자기 눈을 크게 떴습니다.
"정말일까요? 정말 주님이 같이 계신가요?"
목사님은 크게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주님께서 거짓말하는 것 보셨어요?"
사람들은 주님께서 성경에 직접 하신 말씀을 잘 믿지 않고 그래서 기분이나 느낌, 무당 비슷한 사람들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믿음이나 마음이 혼돈을 겪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도하다가 보이는 뱀이나 호랑이의 형상, 용이나 귀신의 모습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전체를 지금 사탄이 사용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계속 주님과 교통하지 않는 한 어디에나 귀신, 마귀가 있으며 그것은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분노, 미움, 욕심, 죄, 각종 악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악한 영들이 활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고, 그의 성장에 필요한 만큼의 고난과 훈련을 주님께서 허용하시므로 우리가 귀신이나 마귀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영성인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주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사는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의 침대가 몹시 흔들리는 바람에 잠이 깼습니다.
그가 눈을 떠보니 커다란 마귀의 형상을 한 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는 크게 입을 벌리면서 하품을 했습니다.
"오, 너였구나."
그는 다시 잠을 청했고 바로 잠들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그는 마귀를 무시하고 태연하게 잠이 들 수 있었을까요?
그의 영성은 이제 이런 사소한 일에 놀라지 않을 만큼 발전이 되었고, 그는 주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며 주님의 허락이 없이는 자기의 머리카락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어떤 형제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형님, 기도 좀 해주세요. 지금 마귀가 얼마나 극도로 역사하는지 온 몸이 너무 아파요.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아요."
나는 물었습니다.
"마귀가 어디 있는데?"
"제 주변을 포위하고 있어요. 공중에 전선줄이 있는데 거기에도 여러 놈들이 앉아있는데 가지를 않아요. 오늘, 기도를 얼마 못해서.. 영력이 떨어져서.."
나는 그에게 시중에서 떠도는 우스개 이야기를 하나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머리가 좀 맑아진 것 같지 않아?"
전화기 너머로 의아해 하는 그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정말.. 신기하네. 머리가 안 아픈 것 같아요. 왜 그러지?.."
나는 설명을 합니다.
"계속 마귀를 생각하니까 머리가 아프지.. 잠깐 생각을 마귀로부터 우스운 다른 얘기로 돌리니까 맑아 진 거야. 하지만 이제는 빛의 생각을 해야지.. 성경을 펼쳐봐요.."
나는 그에게 성경 요한일서 4장 4절을 찾게 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으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기록되어있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마귀를 깨뜨렸기 때문에 이미 우리는 이긴 거예요. 그러니 이 말씀을 계속 주장해야돼. 사탄아, 나는 이미 이겼다, 주님은 이미 이기셨다! 하고 믿고 선포해야 돼요. 몸이 아픈 느낌, 그 감각을 믿으면 안돼요. 우리의 감각은 실제가 아니지만 주님의 말씀은 실제이니까."
많이 좋아진 목소리로 형제가 대답했습니다.
"형, 형이 그 말씀을 하니까, 전선줄 위에 앉아 있는 마귀들이 지금 눈이 뱅뱅 돌아서 헤매고 있어요."
"마귀 얘기 그만 하고 주님을 생각하라니까."
이 세상에는 많은 좋은 생각들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 희망적인 사고.. 그러나 그것들은 생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간의 위안에 불과하며 주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참된 빛의 생각은 바로 주님 자신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빛으로 감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은 심리적인 것이며, 사람을 부추기는 것이므로 마귀는 그런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경배드리게 되면 마귀는 극심한 고통으로 도망갈 수 밖 에 없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 투시, 영적 세계를 보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 별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는 데 약간 도움이 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영안이 열린 사람은 그 사람을 볼 때 으르렁거리는 호랑이의 모습이 보이거나 그의 가슴속에서 악한 불길이 움직이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누군가 간교하게 처신할 때 영안이 열렸다면 여우의 형상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정도는 영이 열리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사회경험, 사람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찬양을 하고 통성 기도를 할 때, 영안이 열린 사람이 보면 예배당 안에 천사가 가득하고 금빛 가루가 마구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전에 어떤 자매가 내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중에 영이 열려 내게서 빛이 환하게 쏟아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 무척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별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예배에서 대부분의 목회자가 기도하거나 찬양할 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빛과 불의 역사가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빛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힘이며 불은 말씀을 실천케 하는 역동적인 에너지입니다.
그러므로 집회에서 진리를 깨달았다면 이는 빛을 받은 것이며, 어떤 감동이나 도전을 받았다면 이것은 불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 빛과 불의 느낌은 신체적으로 반드시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 빛과 불은 각 사람의 수용 수준에 따라 경험되는 차원이 다르므로 그렇게 마냥 자랑스러워 할 것은 못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도 이 집회가 감동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지루하고 따분한 집회인지는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지루한 예배는 뭔가 영의 흐름이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분노와 미움, 용서하지 않음, 두려움, 근심 등이 목회자나 성도들 가운데 있을 때 이를 처리하지 않게 되면 영의 흘러나옴이 제한을 받게 되므로 영이 답답하여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는 아내가 워낙 센 마귀가 붙어서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소연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험상궂은 중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이 그녀의 믿음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나서 그에게 조언을 해줍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은 마귀가 붙어서 괴롭히는 면도 있지만 또한 고집에 세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중인지 뭔지 하는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습니다. 형제는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입니다.
"정말 요? 어떤 비결?"
"그녀에게 붙은 마귀를 쫓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아주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백화점에서 고객 감동 세일하듯이 아내 감동세일작전.."
실망한 형제는 곧 전화를 끊었습니다. 내가 장난을 치고 있는 줄 알았겠지요.. 하지만 나는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떤 신령한 비법이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습니다.
악한 영들은 사납고, 거칠고, 전투적인 분위기에서는 잘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쫓겨나지만 곧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나 사랑스러움, 부드러움, 따뜻함, 상대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있을 때 마귀는 견디지 못하고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분위기에서 몹시 고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이를 갈면서 우리를 해하려고 달려와도 조용한 시선으로 부드럽게 응시해주면 그들 속의 악의 기운이 순식간에 꺾여 버리는 것입니다.
따뜻함, 사랑스러움 - 그것은 영적인 전쟁에서의 놀라운 힘입니다.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것이 보여도 그것을 무시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 영원한 사랑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신실하지 않아도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시니 항상 우리를 떠나시지 않고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에 대한 조용한 감사와 신뢰가 삶을 누리게 하며 신앙생활을 부드럽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영성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중에서>
기초적인 기도 중에 능력기도, 은사 적인 기도가 있는데 이것은 기도자의 영성이 별로 발전되어 있지 않아서 주님께서 그의 영혼과 교통하시기가 어려우므로 그의 육체에 은사를 부어주시는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이러한 은사적인 기도는 영혼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성도들이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영적인 어린아이들을 좀 더 자신에게로 이끄시도록 기도의 맛을 보여주는 단계입니다.
이러한 은사기도에는 환상이나 음성, 일종의 황홀경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기도의 초보자들은 여기에 빠지기 쉬우며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한 후에는 우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을 본다고 해도 그것은 영혼의 성숙에는 그리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기도의 능력들을 대단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들은 그들의 마음이 은사자들에게 노출되면,
"아이고, 쪽집게시네요. 과연 신령하시군요. 한 수 좀 가르쳐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그리고는 귓속말을 합니다.
"A보다 B가 더 영권이 센 것 같아."
그러나 영이 조금 자라면 더 이상 신기한 장난감들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 자신을 구하며 그분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키기 원할 뿐입니다. 누가 높으냐 깊으냐 누가 무엇을 체험했느냐. 하는 데는 별로 흥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세계에 조금 들어가서 영적 전쟁을 알게 되고 그 싸움의 현장을 보게 되고 여러 악한 영의 움직임들을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쉽게 긴장하고 이 전투기도에 몰두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 단계는 하나의 과정이기는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빨리 이 은사적 기도에서 발전해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 영적 현상과 느낌에 사로잡혀 마귀와 싸우는 데에 몰두하다 보면 거기에는 어떤 승리감과 자유함이 따라오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근본인 사랑과 누림, 안식, 여유, 따뜻함.. 이러한 것들을 상실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투는 바로 이 전투 후의 사랑의 관계를 누리기 위한 과정이며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세계가 열리고 전투에 몰두하여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는 이기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속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업하시는 집사님의 사무실에 방문하였습니다.
그 사업가는 마침 매우 심각한 표정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몹시 우울해 보이는 군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사업가는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영이 맑은 분이 다녀가셨는데, 우리 사무실을 용 몇 마리가 포위하고 있다는 군요. 그래서 요즘 사업이 안 풀리나봐요."
목사님은 쓴웃음을 짓더니 성경을 꺼내어 한 군데를 펼쳐보았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을 읽어보세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 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라고 되어있지요? 용이 100마리가 여기 있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까요."
집사님은 갑자기 눈을 크게 떴습니다.
"정말일까요? 정말 주님이 같이 계신가요?"
목사님은 크게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주님께서 거짓말하는 것 보셨어요?"
사람들은 주님께서 성경에 직접 하신 말씀을 잘 믿지 않고 그래서 기분이나 느낌, 무당 비슷한 사람들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믿음이나 마음이 혼돈을 겪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도하다가 보이는 뱀이나 호랑이의 형상, 용이나 귀신의 모습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전체를 지금 사탄이 사용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계속 주님과 교통하지 않는 한 어디에나 귀신, 마귀가 있으며 그것은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분노, 미움, 욕심, 죄, 각종 악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악한 영들이 활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고, 그의 성장에 필요한 만큼의 고난과 훈련을 주님께서 허용하시므로 우리가 귀신이나 마귀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영성인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주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사는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의 침대가 몹시 흔들리는 바람에 잠이 깼습니다.
그가 눈을 떠보니 커다란 마귀의 형상을 한 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는 크게 입을 벌리면서 하품을 했습니다.
"오, 너였구나."
그는 다시 잠을 청했고 바로 잠들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그는 마귀를 무시하고 태연하게 잠이 들 수 있었을까요?
그의 영성은 이제 이런 사소한 일에 놀라지 않을 만큼 발전이 되었고, 그는 주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며 주님의 허락이 없이는 자기의 머리카락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어떤 형제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형님, 기도 좀 해주세요. 지금 마귀가 얼마나 극도로 역사하는지 온 몸이 너무 아파요.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아요."
나는 물었습니다.
"마귀가 어디 있는데?"
"제 주변을 포위하고 있어요. 공중에 전선줄이 있는데 거기에도 여러 놈들이 앉아있는데 가지를 않아요. 오늘, 기도를 얼마 못해서.. 영력이 떨어져서.."
나는 그에게 시중에서 떠도는 우스개 이야기를 하나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머리가 좀 맑아진 것 같지 않아?"
전화기 너머로 의아해 하는 그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정말.. 신기하네. 머리가 안 아픈 것 같아요. 왜 그러지?.."
나는 설명을 합니다.
"계속 마귀를 생각하니까 머리가 아프지.. 잠깐 생각을 마귀로부터 우스운 다른 얘기로 돌리니까 맑아 진 거야. 하지만 이제는 빛의 생각을 해야지.. 성경을 펼쳐봐요.."
나는 그에게 성경 요한일서 4장 4절을 찾게 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으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기록되어있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마귀를 깨뜨렸기 때문에 이미 우리는 이긴 거예요. 그러니 이 말씀을 계속 주장해야돼. 사탄아, 나는 이미 이겼다, 주님은 이미 이기셨다! 하고 믿고 선포해야 돼요. 몸이 아픈 느낌, 그 감각을 믿으면 안돼요. 우리의 감각은 실제가 아니지만 주님의 말씀은 실제이니까."
많이 좋아진 목소리로 형제가 대답했습니다.
"형, 형이 그 말씀을 하니까, 전선줄 위에 앉아 있는 마귀들이 지금 눈이 뱅뱅 돌아서 헤매고 있어요."
"마귀 얘기 그만 하고 주님을 생각하라니까."
이 세상에는 많은 좋은 생각들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 희망적인 사고.. 그러나 그것들은 생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간의 위안에 불과하며 주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참된 빛의 생각은 바로 주님 자신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빛으로 감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은 심리적인 것이며, 사람을 부추기는 것이므로 마귀는 그런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경배드리게 되면 마귀는 극심한 고통으로 도망갈 수 밖 에 없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 투시, 영적 세계를 보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 별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는 데 약간 도움이 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영안이 열린 사람은 그 사람을 볼 때 으르렁거리는 호랑이의 모습이 보이거나 그의 가슴속에서 악한 불길이 움직이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누군가 간교하게 처신할 때 영안이 열렸다면 여우의 형상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정도는 영이 열리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사회경험, 사람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찬양을 하고 통성 기도를 할 때, 영안이 열린 사람이 보면 예배당 안에 천사가 가득하고 금빛 가루가 마구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전에 어떤 자매가 내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중에 영이 열려 내게서 빛이 환하게 쏟아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 무척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별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예배에서 대부분의 목회자가 기도하거나 찬양할 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빛과 불의 역사가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빛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힘이며 불은 말씀을 실천케 하는 역동적인 에너지입니다.
그러므로 집회에서 진리를 깨달았다면 이는 빛을 받은 것이며, 어떤 감동이나 도전을 받았다면 이것은 불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 빛과 불의 느낌은 신체적으로 반드시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 빛과 불은 각 사람의 수용 수준에 따라 경험되는 차원이 다르므로 그렇게 마냥 자랑스러워 할 것은 못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도 이 집회가 감동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지루하고 따분한 집회인지는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지루한 예배는 뭔가 영의 흐름이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분노와 미움, 용서하지 않음, 두려움, 근심 등이 목회자나 성도들 가운데 있을 때 이를 처리하지 않게 되면 영의 흘러나옴이 제한을 받게 되므로 영이 답답하여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는 아내가 워낙 센 마귀가 붙어서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소연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험상궂은 중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이 그녀의 믿음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나서 그에게 조언을 해줍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은 마귀가 붙어서 괴롭히는 면도 있지만 또한 고집에 세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중인지 뭔지 하는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습니다. 형제는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입니다.
"정말 요? 어떤 비결?"
"그녀에게 붙은 마귀를 쫓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아주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백화점에서 고객 감동 세일하듯이 아내 감동세일작전.."
실망한 형제는 곧 전화를 끊었습니다. 내가 장난을 치고 있는 줄 알았겠지요.. 하지만 나는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떤 신령한 비법이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습니다.
악한 영들은 사납고, 거칠고, 전투적인 분위기에서는 잘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쫓겨나지만 곧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나 사랑스러움, 부드러움, 따뜻함, 상대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있을 때 마귀는 견디지 못하고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분위기에서 몹시 고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이를 갈면서 우리를 해하려고 달려와도 조용한 시선으로 부드럽게 응시해주면 그들 속의 악의 기운이 순식간에 꺾여 버리는 것입니다.
따뜻함, 사랑스러움 - 그것은 영적인 전쟁에서의 놀라운 힘입니다.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것이 보여도 그것을 무시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 영원한 사랑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신실하지 않아도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시니 항상 우리를 떠나시지 않고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에 대한 조용한 감사와 신뢰가 삶을 누리게 하며 신앙생활을 부드럽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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