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킹

2007. 12. 8. 18:15일반자료/1.일반자료

발목에서 무릎 위 그리고 허벅지

스타킹이란 단어가 생긴 것은 16세기 이후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양말이 스타킹을 대신했고

여성들이 발목이 덮이는 긴 스커트를 입고 다녔기 때문에 스타킹이 필요 없었다.

양말도 로마 여자들과 여성스러운 남자가 신는 부드러운 가죽 실내화에서 변형되었다. 당시

의 긴 양말은 다리는 덮어도 발목 밑은 덮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결국 스타킹이 지금의 형태로 활용되기까지 발목에서 무릎위로 그리고 허벅지까지 끌어 올리

는데 몇 백 년이 걸린 것이다.

발에 무엇인가를 신는다는 것은 인류가 거친 땅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해 된 것이

며, 처음 그런 신발이 등장했을 때는 주로 발끝에서 발꿈치를 덮은 얇고 부드러운 샌들형의 구

두로 탄생했다. 그런데 남자들은 이런 구두를 신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결국 이런 샌들은

희극에서 남자 배우가 관객을 웃기기 위해 신는 소품으로 변해버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로마에서 여자들은 이런 샌들을 라틴어화 하여 soccus라고 불렀고 그 soccus샌들이 scok

로 바뀌어 지면서 현대의 삭스가 탄생한 것이다.

양말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지만은 않았다. 따스한 지중해 나라들의 사람들은 다리

를 보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고 치마를 입었기에 양말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북유럽의 사

람들은 방한용으로 양말을 신었고 당시의 양말은 그 형태가 헐렁한 바지스타일의 스타킹이었

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최초의 스타킹은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먼저 신었던 것이다.

4세기 가톨릭 성직자들은 하얀 리넨으로 만든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스타킹을 신었고, 5세기

교회에서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스타킹을 신기도 했다. 그 이후 다리에 딱 맞는 스타킹을 신

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스킨 타이츠라는 이름으로 정복 왕 월리엄이 영국 해협을 건너 잉글랜

드의 노르만 왕이 되었을 때 스킨 타이즈를 영국에서 갖고 들어갔었다.

14세기가 되면서 남성용 타이츠는 다리 둔부 허벅지의 윤곽이 아주 선명하게 들어나는 것으

로 성직자들은 외설적이라고 비난을 했다. 그러나 베네치아의 젊은이들은 교회의 반발에도 불

구하고 짧은 셔츠에 깃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좌우 색이 다른 스킨 타이츠를 신고 있었다.

이렇게 요란스런 옷차림은 이탈리아 젊은 남성들에게 매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화 ‘로

미오와 줄리엣’에서의 젊은 남성들 복장을 보면 오른쪽 다리는 노란색, 왼쪽은 초록색, 그리

고 그 부위는 붉은 색의 스킨타이츠를 신고 있는 우습기도 하고 외설스러운 모습들을 볼 수 있

는데 그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1306년 영국의 부인들은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스타킹을 신었으면서 속옷을 입지 않아 언제 어

디서든 섹스를 즐길 수 있게 고안되었다. 즉, 남자처럼 여성들은 팬티스타킹을 신지 않았던 것

이다. 여성들이 즐겨 신던 스타킹은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것이었으며 속옷을 입지 않았기에

더욱 에로틱하게 남성들을 유혹할 수 있었다. 더욱이 스타킹을 고정시키는 리본을 묶고 풀 때

는 남성들의 도움을 청하는 여성들이 있었기에 남성들은 오묘한 여성의 신비로운 곳을 마음

껏 볼 수 있었으며, 여성들은 맘에 드는 남자에게 리본을 묶어달라고 부탁하는 일을 즐겨했다

고 한다.

1500년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가 되면서 여성용 스타킹이 등장했고 당시의 스타킹들

은 보라색, 진홍색 같은 화려한 색깔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처음으로 실로 짠 실크 스타킹

을 선물 받고 그 감촉에 반해 죽을 때까지 실크스타킹만 신었다고 한다.

16세기 영국에서 스페인의 여왕에게 선물로 실크 스타킹을 건넸을 때 스페인 대사는 “이 스타

킹은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스페인 여왕은 발이 없습니다.” 했다고 한다.

이렇듯이 여성용 스타킹이 등장하면서 남성들의 스타킹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가? 남자들 중에는 스타킹의 감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매끄러운 질

감의 스타킹은 성적인 자극에 최고의 소품이 될 수도 있다.